2021년 2월 15일 월요일

연수일기 13. UCSD 방문

2월 9일 화요일. 17일째 날.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 집 근처를 뛰었다. 운동을 쉰 지 두 달이 넘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아파트 gym이 문을 닫은 상태라 근력 운동은 어렵지만 러닝이라도 하면 나을 것 같았다. 겨우 30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이전보다 숨이 찼다. 그새 체력이 떨어졌나 보다. 그래도 오랜만에 운동으로 땀을 내니 기분이 개운해졌다. 당분간은 러닝을 하고 날씨가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수영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받았던 무빙세일 살림 중에 청소 용품과 몇 가지 물건들을 추가로 오늘 받기로 해서 C 선생님 댁을 다시 방문했다. C 선생님은 연수를 마치고 내일 출국 예정이라고 했다. 청소 용품들 외에 아이들 옷과 미처 챙기지 못한 자질구레한 주방 용품, 그리고 꼭 필요한 양념들까지 꼼꼼하게 포장해 넘겨주셨다. 마음 씀씀이가 참 감사했다.

오후에는 나를 초청해준 UCSD의 A 교수님과 온라인 미팅이 있었다. 입국 후 2주일이 지났지만 A 교수님을 뵙지 못했다. 작년 3월에 처음 온라인 미팅을 했으니 거의 1년 만에 얼굴을 본 셈이었다. 작년에 연구 계획서를 완성하고 7월에 MESA 코호트 데이터를 받았지만 연수 일정이 미뤄지고 난 뒤엔 거의 진행하지 못했다. 이제는 묵혀두었던 계획서와 자료도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다. 연구 주제에 대한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지 않으면 금새 감이 떨어지고, 이후에 다시 진행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목요일에 A 교수님의 연구실에 찾아뵙고 직접 인사를 드리기로 약속했다.

미팅 후에 Social Security Number (SSN) 신청을 위한 인터뷰 예약을 했다.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으로 비자와 입국 관련 자료가 넘어가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J-1 프로그램 시작 날짜 이후 일주일 이상 지난 뒤에 신청을 하는 것이 좋다고 들었다. 이전에는 근처의 office 어느 곳이든 직접 방문하면 인터뷰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covid-19 때문에 zip code에 따라 정해진 office에서만 신청이 가능하고, 인터뷰도 전화 예약을 통해서만 일정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SSA office에 전화를 걸어 직원과 연결되기까지 15분 정도 걸렸고, 인적 사항과 입국 날짜 등을 알려주니 인터뷰 일정을 잡아서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메일로 보내줄 수는 없고 전화만 가능하다고 한다. 연락이 다시 올 때까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전화를 행여 놓칠까 걱정하며 기다려야 했다. 이틀 뒤 인터뷰 일정을 알려주는 전화를 받았고, 다음 주로 예약했다.


2월 10일 수요일. 18일째 날. 노드스트롬 랙에 들러 나와 아내의 러닝화와 몇 벌의 옷을 샀다. 다른 마트들보다 저렴하고 다양한 물건이 많아 괜찮았다. 코스트코에 들러 돼지고기를 산 뒤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수요일은 학교 수업이 30분 일찍 끝나서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 오후에는 SDSARAM을 통해 중고 청소기와 킥보드, 농구공과 축구공 등을 받았다. 지난 며칠 간 중고 거래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 주말이 되면 살림 마련과 집안 정리가 거의 마무리가 될 것 같다.


2월 11일 목요일. 19일째 날. 오후에 A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San Diego VA medical center로 향했다. A 교수님의 연구실은 5층의 vascular surgery 파트에 위치하고 있었다. 처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고 긍정적인 답신을 받았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흔쾌히 승낙을 받지 못했다면 이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 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간에 일정이 연기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만큼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누니 더 반가웠다. 짧게 깎은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대비되는 소년처럼 맑고 깊은 푸른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동료 교수와 직원들에게도 나를 소개해주어 인사를 나누었다. VA hospital 내부와 UCSD 캠퍼스도 A 교수님과 함께 둘러볼 수 있었다.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먼저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캠퍼스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직접 돌아보니 생각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동안에도 많은 메일을 주고받았지만, 바다 건너에서 찾아온 후배 연구자를 위해 기꺼이 번거로운 일을 하고 시간을 내어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를 표현하자 "My pleasure."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미리 준비해 간 내가 썼던 에세이 책에 사인을 해 선물했다. 그가 한국어 책을 직접 읽지는 못하겠지만 뜻밖의 선물에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마음이 느껴져 내 마음도 좋았다.

발렌타인 데이를 앞두고 학교에서는 내일 아이들과 선물을 나눈다고 했다. 이전에는 다과를 준비해 파티를 했지만 역시 covid-19로 파티 없이 선물만 주고받게 되었다. 딸아이는 며칠 전부터 직접 카드를 만들었는데, 너무 욕심을 부리다 보니 겨우 세 명 분 정도만 만든 상태였다. 결국 어제와 오늘 저녁엔 모든 가족이 카드 제작에 동참하게 되었고, 다 만들고 나니 자정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도 하지 않던 아이 숙제 함께 만드는 일을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각각의 카드 안에 두 개의 작은 카드와 종이로 접은 당근, 토끼, 알약이 숨어있다.

오늘 한국은 설날이다. 저녁에 부모님과 영상 통화로 새해 인사와 세배를 올렸다. 명절 연휴를 적적하게 지내실 부모님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언제든 영상 통화로 아이들과 함께 인사를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좀더 자주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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