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7월 12일 화요일

팬데믹 시대, 다시 돌아보는 손 씻기의 역사

이 년이 넘도록 이어진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역사적으로 감염병 예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해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있을까 싶다. 코로나19와 같이 전파력이 높고 단기간에 감염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를 일으키는 질환은 전파를 막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스크를 비롯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백신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스크와 백신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이들 못지않게 강조되어야 할 예방법이 손 씻기이다. 기침과 재채기를 할 때 침 방울(비말)에 섞여 외부로 나온 바이러스가 타인의 손에 묻어 전파되는 것이 주요 감염 경로이기 때문이다. 손에 묻은 바이러스는 코와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 증상을 일으킨다.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질환과 감염성 위장 질환의 절반 이상을 예방할 수 있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성 호흡기 질환도 20퍼센트를 줄일 수 있다. 예방법으로써 손 씻기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용은 기껏해야 비누 부스러기 정도에 불과하다. 백신의 경우 델타, 오미크론 등 새로운 변이가 등장할 때마다 예방 효과가 떨어질 것을 걱정하지만, 손 씻기는 어떤 변이에도 효과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장점도 있다.

손 씻기가 미생물에 의한 감염을 막는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세균이 아니라‘미아즈마’라고 불리는 나쁜 공기와 악취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공기가 아닌 다른 매개체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학자들은 무시와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대의 세균 학설이 미아즈마 학설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개의 질병이 산욕열과 콜레라이다. 

출산 후 6주의 기간을 일컫는 산욕기에 열이 나는 것을 산욕열이라 부른다. 분만 과정에서 생긴 감염이 원인이며, 현재는 감염 예방 조치와 항생제의 역할로 선진국에서 이 질환으로 죽는 산모는 거의 없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는 산모 네 명 중 한 명이 산욕열로 사망할 만큼 흔하고 무서운 병이었다. 특이한 점은 집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출산한 산모에 비해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의 산욕열 발병 확률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는 것을 기피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의료진은 병원에서 산욕열이 더 잘 생기는 것이 비좁고 환기가 잘 안 되는 환경에서 나쁜 기운이 산모들에게 옮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나쁜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당시 학계의 정설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원인을 찾고자 한 이들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의사인 알렉산더 고든은 1795년의 보고서에서 산욕열의 원인이 공기의 해로운 성분이 아니라 의료진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료를 본 환자로부터 의사 자신에게 있는 무엇인가를 통해 새 환자에게 열이 전파된다고 믿었다. 1843년 미국의 수필가이자 의사인 올리버 웬델 홈스는 <산욕열의 전염성>이란 책에서 고든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하지만 반세기 간격으로 등장했던 두 의사의 파격적인 학설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는 미생물의 존재까지 알진 못했고, 다른 의사들은 자신이 질병을 옮긴다는 주장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등장한 이가 헝가리 의사인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였다. 오스트리아 빈 종합 병원에서 일하던 그 역시 산욕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산모들은 두 개의 병실에 입원했는데 한쪽은 의대생이, 다른 쪽은 산파가 산모를 돌보았다. 그런데 병실의 시설은 의대생이 담당한 쪽이 더 좋았음에도 사망률은 무려 세 배나 높았다. 동료들은 산파에 비해 남학생들이 환자를 더 거칠게 다루기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제멜바이스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시신 해부를 하다가 곧바로 산모를 돌보러 오는 의대생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시신의 감염성 물질이 의대생을 통해 산모에게 전파되어 산욕열이 생긴다고 추정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염소 처리를 한 물통을 설치하고 의대생들로 하여금 해부실에서 병실로 가기 전에 손을 씻도록 했다. 그러자 이전에 18.3퍼센트였던 사망률이 넉 달 만에 1.9퍼센트로 떨어졌다. 이 실험을 통해 제멜바이스는 접촉을 통한 오염이 산욕열을 일으킨다고 주장했고 1861년에는 이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주장 역시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빈 종합병원의 산욕열 환자 사망률
손 씻기를 시작한 1847년 5월 이후 급격하게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영국 런던에서는 콜레라가 맹위를 떨쳤다. 1854년의 유행에 의해 영국에서만 이만 명 이상이 콜레라로 사망했고 그 중심에 런던이 있었다. 당시 학자와 주민들은 기존의 미아즈마 학설에 따라 템즈강의 더러운 물에서 나오는 유독한 공기가 원인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 의사가 현대 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스노였다. 그는 1854년 런던 소호 지역에서 발생했던 콜레라를 조사하면서 환자가 발생한 곳을 지도에 표시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감염 지도를 통해 환자 대부분이 브로드가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콜레라가 공기에 섞인 유독한 기체가 아니라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지역 당국을 설득해 브로드가 우물 펌프의 손잡이를 떼어냈다. 그러자 그 지역의 콜레라 유행이 곧바로 수그러들었다. 브로드윅으로 이름이 바뀐 거리에는 지금도 존 스노의 이름을 딴 술집과 과거의 우물 펌프를 본딴 모형이 있다. 

Map of cholera cases in Soho, London, 1854. Source: Wikimedia Commons

이러한 사례와 근거가 쌓이면서 공기나 악취가 아닌 접촉을 통해 질병이 전파된다는 이론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1867년에는 영국 외과의사인 조지프 리스터가 석탄산을 사용해 소독을 하는 살균 수술법을 학술지 ‘랜싯’에 발표했다. (구강청결제의 대명사 격인 리스테린은 1879년에 리스터의 이름을 따 살균소독제로 개발된 것이다.) 이후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와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주도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비로소 감염병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미생물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병원 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손 씻기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없애려면 흐르는 물과 비누를 이용해 손바닥, 손등, 손가락 사이까지 꼼꼼히 씻는 것이 좋다. 횟수는 하루에 여덟 번 이상을 권하며 이와 별도로 음식을 먹기 전이나 용변을 본 후에도 씻어야 한다. 질병관리청의 감염병 예방 행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손 씻기 실천율은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외출 후 손을 씻는 비율은 2013년 81.9퍼센트에서 2019년 85.5퍼센트로 높아졌고,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97.6퍼센트까지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자가 보고와 관찰 조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올바른 손씻기를 실천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7.3퍼센트인데 반해 실제 관찰 조사에서 용변 후 손을 씻는 비율은 75.4퍼센트에 그쳤다. 또한 관찰 조사에서 용변 후 비누를 사용해 손을 씻은 비율은 37.1퍼센트에 불과했다. 손을 씻지 않는 이유로는 습관이 안 되어서, 귀찮아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참고문헌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Show Me the Science - Why Wash Your Hands? Available from: https://www.cdc.gov/handwashing/why-handwashing.html

조경숙. 2013-2020년 손씻기 실천율의 변화. 주간 건강과 질병 2021;14(42):2972-87.

린지 피츠해리스. 수술의 탄생. 열린책들;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