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24일 화요일

중용을 지키는 건강 습관

<논어(論語)> 선진편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성어가 있다. 자공이 공자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한지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다는 뜻입니까”라 다시 물었고 이에 대한 공자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논어와 더불어 사서에 속하는 <중용(中庸)>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중용은 군자의 예(禮)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한결같은 마음을 의미한다. 

옛 현인들의 말씀 중에 틀린 게 없다는 걸 종종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삶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하지만 그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해가 갈수록 더 깊이 실감하게 된다. 공자는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로 중용을 말했지만 중용의 이치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춘 생리 기능도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온은 36-37도 가량을 유지하고 안정 시에 심박수는 60에서 100회 사이에 있다. 굶거나 과식을 해도 건강한 사람의 혈당은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고혈당과 저혈당을 일으키는 당뇨병에서 볼 수 있듯이, 중요한 생리 기능과 관련된 수치가 지나치거나 모자란다면 대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이다.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은 혈액 검사 결과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란 수치에 붉은색 화살표를 붙여 표시해주는데, 환자의 검사 결과를 열었을 때 붉은색이 보이면 순간 긴장하게 되고 반대의 경우엔 마음이 편안해진다. 공자가 인체의 생리 기전을 알았다면 적정 범위의 검사 결과를 유지하는 것 또한 예(禮)라 칭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건강과 관련된 생활 습관에서도 중용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식습관이다.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 습관으로 식습관과 더불어 흡연, 음주, 운동, 수면 등이 흔히 꼽힌다.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건강한 식습관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본다. 담배와 술은 피할 수록 건강에 좋고, 수면이나 운동의 경우엔 부족했을 때가 문제다. 애초에 답은 한쪽 방향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니 어떤 게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알고 있는 정답을 실천하기 어려울 따름이다. 하지만 음식이나 영양소의 경우엔 지나쳐도 문제, 모자라도 문제이다. 중용을 지키는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건강에 이롭거나 해롭다는 음식은 수없이 많아서 골라 먹기가 쉽지 않다. 건강에 좋은 음식이나 식단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나, 무엇을 얼마만큼 먹어야 할지 모르니 다른 생활 습관과 달리 일단 정답부터 고민이다. 적당히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하지만 그 ‘적당히’의 기준도 음식에 따라, 영양소에 따라, 내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니 더 어렵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중용의 실천은 우선 매일 먹는 음식의 양에서 시작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음식의 열량이다. 내게 필요한 적절한 열량은 기초 대사량과 활동에 의한 대사량을 합친 것과 같은데, 여러 계산 방법이 있지만 대개 하루에 여성은 2000칼로리, 남성은 2500칼로리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운동량이 많거나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등 신체 활동량이 많다면 이보다 더 많은 열량을, 반대로 주로 앉아서만 생활하는 사람은 더 적은 열량을 필요로 한다. 하루이틀 폭식을 한다고 체중이 쉽게 늘진 않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열량보다 더 많이 먹는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체중이 늘어 비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필요한 열량보다 적게 먹는 습관을 유지하면 체중을 줄일 수 있다. 보통 다이어트 식단에서 하루 1500-1800칼로리 정도를 처방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내가 하루에 먹는 음식의 열량이 궁금하다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식단 분석 기능을 갖춘 애플리케이션만 해도 수십 종류이다. 먹은 음식을 기록하면 열량뿐 아니라 영양소별 섭취량까지 분석해준다. 식사를 일일이 기록하기 번거롭다면 음식 사진만으로 분석을 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식단 전체의 열량을 확인했다면 다음은 개별 영양소를 돌아볼 차례이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뇌와 장기의 활동, 근육의 움직임을 위한 연료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를 생성하는 영양소는 3대 영양소, 흔히 탄단지라고 부르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1그램에 4칼로리, 지방은 1그램에 9칼로리의 열량을 만들어낸다. 비타민, 미네랄과 같은 영양소에 비해 섭취량이 많아 이들을 다량영양소(macronutrient)로 분류하는데, 이들 영양소에 대해선 에너지 적정 비율(acceptable macronutrient distribution ranges, AMDR)을 두고 있다. 총 에너지(열량)에서 해당 영양소가 차지하는 비율의 적정 범위를 말하며, 탄수화물 55-65%, 단백질 7-20%, 지방 15-30%이다. 이 수치는 범위를 벗어났을 때 만성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들을 기반으로 정해졌다. 세 영양소 간의 비율과 균형이 깨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해야 하니 여기서도 중용의 이치가 적용된다 하겠다.

한국인의 일반적인 식단은 대개 이 적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전체 열량에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60:16:24로 적정 범위 내에 있었다(그림). 하지만 이는 평균 수치일 따름이며 모두가 적절히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정 범위를 넘어서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먹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세 영양소의 비율은 특히 나이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노인 연령에선 탄수화물 섭취가 늘고 단백질과 지방의 비율이 줄어든다. 낮은 가계 수입, 사회적 고립, 건강 문제 등으로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노인의 식단이 단순, 빈약해지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로 서양에선 이를 ‘tea and toast syndrome’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밥, 국, 김치와 밑반찬 등으로 식사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육류나 생선이 없으므로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 된다. 실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도 60세 이상에선 탄수화물의 비율이 65%를 초과하고 70세 이상이면 더 높아진다. 이렇게 탄수화물 비율이 너무 늘면 대사증후군, 당뇨병 등의 위험이 커진다. 근육량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 섭취가 줄어 노인의 근감소증 위험도 높아진다. 

그림. 한국인의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섭취 비율 변화
(2011-2020 국민건강영양조사)

지방 섭취가 많은 서양 기준에서 보면 한국인의 식단은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사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탄수화물 섭취량은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탄수화물의 비율이 5퍼센트 정도 줄었다(그림).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단백질과 지방 비율이 높아지는데, 이러한 변화는 젊은 연령층에서 더 뚜렷하다. 특히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포화 지방의 섭취량이 젊은 연령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노인의 경우는 탄수화물 과잉과 단백질 섭취 부족이, 청년층에선 단백질과 포화 지방 섭취 과잉이 빈번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서구식 식생활로의 변화와 더불어 체중 감소 목적의 저탄수화물 식단이 유행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은 단기적으론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나 포화 지방의 섭취가 지나치면 나쁜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는 이상지질혈증과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적정 비율을 지켜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다. 식품군에 따라 곡류, 고기와 생선류, 채소류가 하루 식사에 골고루 포함되도록 한다. 적당한 양을 먹으려면 식사를 천천히 하고, 한끼를 과하게 먹었다면 다음 끼니는 다소 모자란 듯 먹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내 어머니께서는 늘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도록 하라는 공자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군자의 예를 체득하는 것이 어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던가. 이번 설 명절에 친가에 갔을 때도 팔순이 가까운 노모께서는 당신 말씀과 달리 끼니마다 음식을 지나치게 차려 주셨다. 음식 맛은 두말해 무엇하랴. 매번 과식을 하고 말았으니, 중용의 실천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참고문헌

* Oh SW. Current status of nutrient intake in Korea: focused on macronutrients. J Korean Med Assoc. 2022 Dec;65(12):801-8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