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월 23일 토요일

연수일기 3. 집, 차, 보험, 휴대폰

연수 일정을 변경한 뒤의 타임라인은 다음과 같다.


연수 일정 변경: 6월 말

두 번째 DS-2019 도착: 11월 9일

비자인터뷰: 12월 16일

출국 날짜: 1월 24일

연수 시작: 2월 1일

그동안 결정해야 했던 몇 가지 중요한 일들에 대한 정리.

- 한국 집 문제: 전세 계약을 2020년 7월 말로 맞춰두었다가 연수 일정이 미뤄지는 바람에 6개월 간 임시로 다른 집에서 살아야 했다. 출국 전에 다시 이삿짐을 빼면서 나중에 돌아와 쓸 살림은 처가의 창고에 보관하기로 했다. 결국 6개월 간 두 번의 이사를 하게 된 셈이고 (여기서 한숨 두 번...) 덕분에 결혼 후 십오 년 간 써왔던 많은 물건들을 처분했다. 버린 것도 많지만 중고로 넘긴 물건들도 많은데, 이 과정에서 당근마켓이 지대한 역할을 했다.
연수가 미뤄지면서 예정에 없던 큰 변화가 생겼다. 생애 처음으로 살 집을 구입한 것이다. 원래 계획대로 출국했다면 집을 계약할 생각도, 여유도 없었을 것이다. 되돌아보면 급히 단기 월세집을 구하다 보니 연수가 끝나고 돌아왔을 때 살 집에 대해 더 고민하게 되었던 것 같다. 지금은 내년에 돌아왔을 때 거처할 곳이 정해져 있다는 사실만으로 가슴 한구석 안도감이 든다. 모든 게 불확실한 상황이라 더 그렇겠지.

- 미국 집 문제: 정착 서비스를 통해 출국 전에 미리 살 집을 계약하고 가는 경우도 많다. 그렇지만 우리는 도착 후에 직접 투어를 하며 구하기로 했다. 직접 보지 않고서는 제대로 선택을 하기 어렵고, 집을 구하는 과정에서 느끼는 재미도 있을 것 같았다. 각각의 장단점이 있을 것이고 어떤 선택이 더 나을지는 모르겠다. 구글맵과 zillow 등의 렌탈 사이트를 이용하면 집들의 위치 뿐 아니라 내부 3D 이미지와 거리 풍경까지 확인할 수 있지만, 아이들을 데리고 입국 후 며칠 만에 집 계약을 순조롭게 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선 여전히 불안하다. 집은 구하셨어요? 하는 물음에 도착해서 구할 거라 답했을 때 그래도 괜찮냐는 듯한 표정으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라보는 주변 선생님들의 표정을 대할 때마다 더욱.

- 보험: 장기 연수를 오는 외국인은 연수 기간 동안 일정 기준 이상의 보험을 가입해야 한다. 연수를 다녀온 이들에게 대대로 전해 내려오는 인계장에 있는 모 보험사를 이용했다. 우리 병원에서는 많은 선생님들이 이 보험사의 대표를 거쳐갔는데, 다른 병원의 족보에도 등장하는 걸 보면 이 바닥에서 고객을 늘리기 위해선 인계장과 족보에 등재되는 것이 중요함을 잘 아는 것이 틀림없다. visiting scholar 계의 스캇 보라스와 같은 존재라 할까.

- 자동차: 한국에서 타던 자동차에 대한 처리. 지금 타는 차는 친척에게 맡겨놓기로 하고 자동차보험 운전자 범위를 변경했다. 미국 도착 후 이용할 미니밴을 LA 공항에서 픽업할 수 있도록 예약했다. 반납은 임시로 머물 레지던스 근처 사무실로 지정했다. 만 4일 예약한 렌트카를 반납하기 전에 중고차를 구입해야 할텐데... (구입 후기는 다음에)

- 휴대폰: 미국에 장기 체류를 앞둔 사람들 대부분이 한국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처리할까를 고민하게 된다.
내 경우엔 한국 폰으로 연락을 받을 일이 꽤 있을 것 같아 전화와 문자 수신만 가능한 최저 요금제로 살려두기로 했다. 한국 폰을 살려둘 때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1) 미국 유심을 구입해 교체, 2) 미국 폰과 한국 폰 2개 사용, 대개는 이렇게 두 가지인데 둘 다 불편함이 있다.
최근엔 한 가지 방법이 더 생겼는데, esim을 구입해 듀얼심을 활용하는 것이다. 아이폰SE 2세대는 esim을 지원하는 기기라, 이번 기회에 사용해보기로 했다.
내일 출국을 앞두고 미리 T-mobile esim을 구입했다. 이를 위해서는 전용 앱을 다운받아야 하며, 설치와 개통 방법은 아래 링크에 튜토리얼을 포함해 잘 나와있다. 데이터 제공량에 따라 몇 가지 플랜을 선택할 수 있고 30일 단위로 요금이 부과된다.
어제 밤에 집에서 개통했고 시간은 5분 정도 걸렸다. 세상 참 편해졌다... 개통이 끝나면 아래와 같은 설정 화면을 확인할 수 있다.(T-mobile은 한국에서 SKT 망을 쓰는 모양이다.)


장점:
1) 구입 장착 과정이 간단하고 한국에서 미리 개통도 가능하다.
2) 자신이 한국에서 쓰던 폰을 미국에서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3) 심을 바꿔 끼우거나 폰을 바꾸는 일 없이 하나의 폰으로 미국 전화번호와 한국 전화번호를 동시에 쓸 수 있다.
단점:
1) esim을 지원하는 폰에서만 사용 가능하다. (아이폰의 경우 XR, XS 이후 버전)
2) esim을 지원하는 통신사만 사용 가능하다. (T-mobile의 경우 AT&T에 비해 커버리지가 약하다는데... 최근엔 T-mobile 외에 민트나 기타 저렴한 통신사도 esim을 지원한다고 하니 선택의 폭이 넓어진 것 같다.)
자, 이제 직접 가서 사용해보자.

2021년 1월 18일 월요일

연수일기 2. 두 번째 DS-2019를 받기까지

연수를 갈 기관을 정한 건 2019년 3월이었고, 이듬해인 2020년 연수 대상자로 확정된 것이 10월이었다. 이후 6개월간 UC San Diego의 A 교수님과 메일을 주고받으며 연구 계획서를 완성하고 MESA 코호트 데이터를 받았다. 동료들은 연수를 가서 해야할 일을 벌써 절반쯤은 한 셈이라고 우스갯소리를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2020년 7월에는 LA행 비행기 안에 있었어야 했다. 중국에서 시작된 바이러스의 날갯짓이 전 지구를 휩쓸지 않았다면 그렇게 되었을 것이다.

2020년 3월에 미국 대사관의 비이민 비자 인터뷰가 중단되었고, 봄이 다 가도록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연수 대상자에게 가장 중요한 허가 서류인 DS-2019는 5월에 받았지만 6월이 되어서도 비자 인터뷰가 재개될 기미는 없었다. 당해 연수를 취소할 수 있는 기한은 6월 까지다. 그때까지는 연수 일정을 2021년으로 미룰지 여부를 결정해야 했다. 취소를 하지 않은 상태에서 그해에 출국을 못했을 때는 이듬해 연수 대상자가 되지 못할 수도 있었다. Covid-19 관련 상황이 좋아지지 않는다면 대사관 인터뷰가 열려 원래 일정대로 미국에 간다 해도 문제였다.

6월 말, 연수 일정을 결국 취소했다. 대사관에 신청했던 긴급 인터뷰가 거절된 뒤였다. UCSD에 양해를 구했고, 새로운 일정은 2021년 2월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일정이 바뀌었으므로 DS-2019 역시 다시 받아야 했다. 몇 달간 준비했던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새로운 서류를 준비하는 동안 7월부터 대사관 인터뷰가 재개되었지만 이미 일정이 변경된 뒤였으므로 도움이 되진 않았다.

두 번째 DS-2019는 11월에 도착했다. 책상에 놓인 익숙한 FedEx 봉투를 보았을 때, 한 번 받기도 수월치 않은 서류를 두 번 씩이나 받았구나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미국의 판데믹 상황은 더 나빠지고 있었다. 12월 중순으로 대사관 비자 인터뷰 전에 또 비자 업무가 중단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도 들었다. 그래도 이제 구체적인 준비를 진행해야 했다.


월급 명세서보다 더 반가웠던 봉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