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5월 3일 금요일

구두 밑창을 갈며

길건너에 있는 구두 수선 노점에 들렀다. 구두를 자주 닦는 편은 아니다. 길가다가 문득 생각이 날 때 가까운 노점을 찾는 정도라 막상 회사 근처에 있으면서도 오랜만에 방문한 곳이었다.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선지 노점 안의 손님은 중년 신사 한 명 뿐이었다. 희끗희끗한 스포츠 머리에 다부진 체격의 주인이 손을 재게 놀리며 낡은 검정 구두를 닦고 있었다. 밑창과 굽을 갈아달라는 말에 그가 덤덤하게 대답했다.

- 국산으로 하면 밑창하고 굽 각각 만오천원, 수입으로 하면 각각 이만오천원입니다.

구두를 닦던 손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은 채였다. 벗은 구두를 작업대 옆에 놓은 뒤 삼선슬리퍼를 신고 노점 한켠의 벤치 의자에 엉거주춤 앉았다. 바닥에 열선이 깔렸는지 엉덩이가 뜨끈했다. 닦던 구두를 마무리하고 손님을 보낸 그가 밑창 샘플을 내밀었다. 좀더 두껍고 오래 간다는 수입산 제품을 선택했다. 밑창과 굽 합쳐 오만원이다. 구두를 살펴보던 그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 좋은 구두네요. 아무래도 두꺼운 게 더 나을 겁니다.

닳아버린 뒷굽을 그라인더로 갈아내 평평하게 만들고 구두 바닥에 본드를 바른다. 새 밑창과 굽에도 본드를 바르고 드라이기로 가열한 뒤 구두에 단단히 붙인다. 새로 붙인 밑창이 들뜨지 않도록 모서리 부분을 꾹꾹 누르며 힘을 줄 때마다 세월에 단련되었음직한 그의 팔뚝 근육이 꿈틀거렸다. 구두를 돌려가며 접착 상태를 확인한 뒤 끌칼로 기존 굽과 밑창에 맞춰 새 밑창을 잘라내는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거침이 없었다.

새 손님이 방문했다. 기다리는 손님이 생기자 구두를 매만지는 그의 손놀림은 더 빨라졌다. 새 밑창과 굽으로 갈아신은 구두는 다시 작업대에 올랐다. 광택을 내 마무리를 지어야 하는 것이다. 장인의 손길이 다시 물흐르듯 움직였다. 팔뚝 길이만한 흰 천을 오른손 검지와 중지에 야무지게 두르고는 느슨해지지 않도록 엄지에 다시 돌려 감는다. 천을 두른 손가락으로 젖은 스펀지를 두드린 뒤 갈색 구두약을 발라 구두 가죽을 문지르기 시작한다. 물광을 내기 위함이다. 약통과 구두를 오가는 리드미컬한 움직임은 군더더기 하나 없이 우아했다.

뜨끈한 의자때문에 중간중간 엉덩이를 움찔거려야 했지만 삽십분 남짓한 시간은 지루하지 않았다. 늘 그렇지만 구두를 닦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오히려 즐겁기까지 하다. 가끔은 그 과정이 숙련된 예술가의 공연을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그래서인지 그에게 오만원짜리 지폐 한 장을 건넸을 때 나는 마치 그의 노동력에 대한 댓가가 아니라 그의 행위에 대한 관람료를 지불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두 평이 채 안되는 공간이었으나 공연은 훌륭했고 그는 찬사를 받아 마땅했다. 그러므로 까만 구두약 때가 잔뜩 낀 손가락으로 조심스럽게 지폐를 받는 그를 향해 나 역시 최대한 정중하게 인사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