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15일 토요일

벌써 일 년

"3월로 시계를 돌린다면 어떤 과목을 열심히 하고 싶은가요? 이 질문에 상위권 학생들은 수학, 영어, 탐구 순을, 중위권 학생들은 영어, 수학, 탐구 순을 선택했습니다."
수능을 하루 앞둔 날이었다. 곱창집 기름내 섞인 연기 사이로 보이는 티비 화면의 뉴스에선 수험생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를 그래픽을 써가며 설명하고 있었다. 기자는 곱창집의 시끌거림을 이겨내기라도 하겠다는 듯한 말투로 수학, 영어, 탐구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발음했다.

우스웠다. 아홉시 뉴스 꼭지로 이런 내용이라니. 의미없는 질문과 답이 전파를 낭비하는 동안, 내일 하루의 시험으로 인생이 결정될거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스스로의 지난 일 년의 시간을 어떻게 떠올리게 될까를 잠시 생각했다. 

곱창집을 나서는데 바람이 옷깃 사이를 매섭게 파고들었다. 올해도 수능 한파라고 했다. 며칠 새에 겨울이 성큼 다가와 있었다. 

*
매년 이 시기가 되면 건강검진을 받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진료실도 바빠진다. 다음날 방문할 이들의 작년 검사 결과를 미리 검토하다 보면 눈에 들어오는 익숙한 이름에 당황스러울 때가 있다. 지난번 그와 상담을 했던 때가 얼마 안된 것 같은데 벌써 일 년이 지난 것이다. 설마 그 사람일까. 동명이인일지도 모른다 생각하며 차트를 열어보지만 대부분 기대를 벗어나고 만다. 요즘 그런 일이 부쩍 늘었다.

그 때마다 드는 생각은, 이룬 것 없이 또 한 해가 훌쩍 지나버렸다는 것. 연초에 다짐했으나 행하지 못한 것들을 떠올리곤 스스로의 모자란 실천력에 좌절감을 느끼며 이제라도 무언가 해야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 괜히 조급해지기도 한다. 주변을 조금만 둘러봐도 의미있고 멋지게 시간을 소비하며 발전해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가. 인터넷과 SNS에 가득한, 반짝반짝 빛나보이는 그들의 스토리를 접할 때면 괜한 질투심이 일기도 하고 그에 비해 해야할 일들만 허덕허덕 반복해온 내 지난 일 년의 시간은 밋밋하고 비루하게 느껴졌다. 

벌써 일 년이 되었네요. 
그러게요. 시간이 참 빠르지요. 

진료실에서 인사를 나누고 검사 결과를 설명하기 전에 멋적은 듯 허허 웃는 그를 보며, 그도 어쩌면 나와 비슷한 것을 느꼈을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지난 일요일, 아이의 두 번째 국기원 심사였다. 작년에 한번 경험을 했다해도 역시 긴장이 되는 것은 어쩔 수 없었나보다. 국기원에 모인 많은 아이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진지했다. 1품 심사가 진행되고 있었고, 아이는 도장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대기석에 먼저 도착해서 2품 심사 대상인 자기 차례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었다. 장내 방송을 통해 아이의 번호가 속한 조가 불리고, 평소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달리 한껏 굳어있던 얼굴은 품새와 겨루기, 격파까지 그럴듯하게 해내고 나서야 다시 환해졌다.

그날 밤 휴대폰으로 찍은 심사 동영상을 정리하다 일 년 전 이맘 때의 1품 심사 영상을 발견했다. 일 년 전의 영상 안에선 지금보다 한 뼘은 작아보이는 아이가 어설프게 주먹을 지르고 발차기를 했다. 그에 비해 오늘 찍은 영상 속 발차기의 매서움은 차원이 달랐다. 어느 새 이렇게 컸었나.

앞차기와 얼굴 막기, 그리고 몸통 지르기. 입술을 꼭 다문 아이의 절도있는 동작을 되풀이해 돌려보며 엉뚱하게도 나는 내 지난 일 년의 시간을 떠올렸고, 비루했던 그 시간에 대해 관대해짐을 느꼈다.

하루하루 해야할 일들을 하는 동안 어쩌면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것들이 변했을지도 모르겠다. 변화는 언제나 가까이에 있지만 그 변화를 느끼기는 어렵고, 작은 변화는 흔히 대단찮은 것으로 치부된다. 하지만 인생은 중요한 시험에서 성공을 거두거나 훌륭한 성과를 내는 것과 같은 끝내주는 경험만으로 이루어질 수는 없다. 우리가 해야할 일은 작은 변화들을 관찰하고, 스스로가 이룬 그것을 소중히 여기고 감탄해주는 것이다.
퍽퍽한 일상을 살아가는 데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은 바로 그런 것들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