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9월 19일 토요일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은 일요일 오후처럼 짧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시간은 일요일 오후처럼 짧습니다.

어렸을 적에 살던 주공아파트 단지엔 여느 아파트 단지가 그렇듯 군데군데 작은 놀이터가 있었어요. 모래 바닥에 미끄럼틀과 시소, 그네, 뺑뺑이가 있는 평범한 놀이터였지요. 요즘이야 놀이 기구들도 알록달록 예쁘고 모양도 다양하지만 그땐 다 생긴게 뭉툭하니 비슷했어요. 철제로 된 미끄럼틀은 여기저기 칠이 벗겨져있었고 아이들의 손이 닿는 곳은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윤이 났죠.

일요일 저녁, 동네 아이들도 하나둘 집으로 돌아가는 시간입니다. 해가 뉘엿뉘엿 아파트 옥상에 가까워지고 주변 풍경이 노랗게 물들 때. 아마 저녁 여섯시쯤 될거에요. 그 시간이면 늘 아파트 단지 안 교회에서 차임벨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익숙한 찬송가였는데 무슨 노래였는지 지금은 생각나질 않네요. 혼자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아파트 사이로 멀리 보이는 밭두렁 길을 바라보며 그 소리를 들으면 이제 일요일이 다 가버렸다는게 실감나면서 괜히 서글퍼지곤 했습니다. 열서넛 나이의 사춘기 소년이 품을만한 고민에 대해 생각하기도 했던 것 같습니다. 시험이라거나 친구라거나, 또 미래라거나 뭐 그런 것들이었겠지요. 아쉬움과 불안함이 섞인 감정이 밀물처럼 차오릅니다.

몸을 부르르 떤 건 때마침 불어온 서늘한 저녁 바람 때문일 겁니다. 해는 어느새 자취를 감추고 어둠이 내려앉습니다. 그 변화가 어찌나 빠른지. 다른 생각에 빠졌다가도 문득 주변을 돌아볼때면 매번 흠칫 놀라게 됩니다. 짙어지는 그림자와 차가워지는 공기와 깊어지는 교회 차임벨의 울림은 마음을 조급하게 만듭니다. 고즈넉한 주변 풍경은 슬로우 비디오로 보이지만 이 시간이면 이상하게도 나를 둘러싼 공기와 시간만이 두 배 빨리 보기 속도로 흐르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면 시간을 멈출 수 있는 초능력을 간절히 바라곤 했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는 지금. 일요일 오후 어둠이 깔리는 놀이터에서의 시간, 열서넛 소년의 기분을 다시 느낍니다. 우리를 둘러싼 시간은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흐릅니다. 당신도 느끼나요? 이런 기분을 나만 느낀다면 못견디게 억울해질 거에요. 

2015년 9월 16일 수요일

딸아이와의 전쟁

사건의 발단은 아주 사소한 문제였다.

초등학생이 된 아들은 이제 혼자서도 이를 닦지만 네살 딸은 아직 이를 닦아줘야 한다. 이닦기를 좋아하는 편은 아니어서 욕실에 들어가 칫솔을 물게 하려면 여러 차례 실랑이를 해야한다. 이를 닦으라고만 하면 도망을 가서 종종 번쩍 안아다 억지로 세면대 앞에 세우는 경우도 있는데 이런 경우엔 한바탕 울음을 터뜨리고 나서야 이닦기가 시작된다.

잠들기 전엔 꼭 책을 두세 권씩 읽어주어야 하는데, 이를 닦기 전에 책을 읽겠다고 고집을 부리곤 한다. 밤에 아이들 옆에 누워 책을 읽어줄 때쯤이면 대개는 녹초가 된 상태로 책을 읽어주며 졸다 깨다 하는 적도 많다. 그럴 땐 다시 일어나 이를 닦이는게 또 힘든 일이라 이를 먼저 닦지 않겠다고 하는 딸에게 짜증을 낼 때도 있다. 어제 밤의 문제도 이를 먼저 닦느냐 책을 먼저 읽느냐 하는 것이었다.

여느 때처럼 책을 먼저 읽어달라는 딸에게 오늘은 이부터 닦는거라 선포를 했다. 역시 여느 때처럼 아이는 책을 먼저 읽겠다 고집을 부렸고, 책을 읽어주지 않자 울음을 터뜨렸다. 최근엔 떼를 쓰다가도 잘 타이르고 달래면 말을 듣곤 했지만 어제 밤엔 영 막무가내였다. 졸음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아이들은 졸리면 괜한 떼를 더 쓰게 마련이다.

딸은 네 살 터울 오빠보다 훨씬 고집이 세고 떼도 많았다. 제 뜻대로 안되면 떼를 쓰는 버릇을 이번에야말로 고치고 말리라. 어른답게 차분하고 단호하게. 왜 그런 부질없는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때부터 아이와의 대화는 같은 말의 무한 반복이었다.

"책 읽고 이 닦을래."
"안돼. 이 먼저 닦고 책 읽는거야."

아이는 울면서 소리를 질렀다. 왜, 왜, 왜 이 먼저 닦아야 하는데. 늘 책 먼저 읽어줬잖아. 사실 왜 이를 먼저 닦아야하는 건지 나도 모르겠다. 차분하고 단호하게 대처하겠다던 마음가짐은 5분도 되지 않아 무너졌고, 어느새 나도 아이에게 소리를 치고 있었다. 어른답게 대했다면 아이가 이렇게 심하게 떼를 쓰진 않았을까.

밤 열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아랫집과 층간 소음으로 말썽이 있던 터라 아이 울음 소리에 또 민원이 접수될 수도 있었다. 아이가 떼를 쓰며 발을 동동 구르지 못하도록 꼭 끌어안았다. 숨이 넘어갈듯 소리를 지르는 아이의 입을 손으로 틀어막기도 했다. 평소와 다른 아빠의 모습에 놀랐는지 딸은 더 비명을 지르고 발버둥을 쳤다. 나는 내 감정을 조절하는데 완벽하게 실패한 상태였고, 내 아이를 향한 스스로의 폭력적인 행동에 당혹해하고 있었다. 그만두어야 하나. 아니, 여기서 물러서면 버릇이 더 나빠질지도 몰라. 제발, 이제 아빠 말좀 들어줘.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었다. 눈물이 날 것 같았다.

30분이 넘는 혼돈의 상황을 끝낸 것은 울먹거리느라 알아듣기도 힘든 아이의 말이었다.
아빠, 말대로, 이, 닦고, 책, 읽을께.
아이도 나도 땀 범벅이었다. 드디어 고집을 꺾었다는 안도감은 개뿔, 후회와 자책감이 엄청나게 밀려왔다. 혼자서 이도 잘 못닦는 네살짜리 딸을 데리고 뭐하는 짓인가. 이를 먼저 닦든 책을 먼저 읽든 그게 뭐그리 문제인가. 나는 제대로 된 아빠인가.

이를 닦아주는데 손이 후들후들 떨렸다. 내 행동이 상처가 되어 오래 남진 않을까. 당분간 아빠를 본체만체 하면 어떡하나. 이를 닦는 동안 딸아이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사과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아까 많이 화내서 미안해. 아빠 말 들어줘서 고마워. 내 사과를 받아주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나란히 누워 책을 읽을 때엔 다시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었다. 졸음이 쏟아지는지 눈을 깜빡깜빡하며 비비는 아이에게 다시 한번 사과했다. 아까 화내서 미안해.

아이는 씩 웃으며 한 마디 하고 이내 잠이 들었다.

나 아빠 말대로 이 먼저 닦고 책 읽었어. 오늘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