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4월 8일 수요일

유산균, 과연 누구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그 영양제, 정말 먹어도 될까?] 의사가 알려주는 12가지 장기별 건강기능식품 가이드 ④ 장

유산균, 과연 누구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곧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소중한 이들을 위한 선물 꾸러미 속에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이 있습니다. 바로 유산균입니다. 홍삼에 이어 건강기능식품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할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이 영양제는 면역력 강화부터 배변 활동 개선, 심지어 다이어트와 피부 관리까지 책임지는 만능 해결사로 대접받곤 합니다. 해외 수입 원료를 쓴 프리미엄 제품부터 수백억 마리의 균이 들어있다는 제품까지. 대한민국 국민 중에 집 냉장고 한 켠에 유산균 제품 하나쯤 없는 분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유산균, 또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는 ‘적당한 양을 섭취했을 때 숙주에게 건강상의 이익을 주는 살아있는 미생물'입니다(WHO 정의). 하지만 우리가 선물 상자에 담아 보낸 그 막연한 믿음 중에 의학적으로 확실한 근거 위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근거 있는 곳과 없는 곳: 유산균 효능의 경계선

의학계에서 프로바이오틱스의 효능을 인정하는 영역은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한정적입니다. 수많은 임상시험을 분석한 연구들을 종합하면 그 경계가 명확해집니다.

가장 많은 근거가 쌓인 분야는 ‘항생제 연관 설사(Antibiotic-Associated Diarrhea)’ 예방입니다. 항생제는 병원균만 골라 죽이지 않고 장 속의 이로운 균까지 광범위하게 교란해 설사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많은 연구 결과 유산균을 항생제와 함께 복용했을 때 설사 발생 위험이 약 30~50% 낮아진다고 합니다. 그나마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 영역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과민성장증후군에서도 일부 증상 개선 효과가 보고되기는 합니다. 복통, 복부 팽만감 등이 다소 줄어든다는 연구들이 있어 시험 삼아 복용해볼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그러나 연구마다 결과가 들쭉날쭉하고 전반적인 근거의 질이 낮습니다. 주요 소화기학회들이 여전히 과민성장증후군에 유산균 복용을 공식적으로 권고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전에 소개해드린 관절 영양제의 근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효과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확신할 만큼 근거가 탄탄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미 장내 환경이 건강한 성인에게는 유산균이 장에 정착조차 하지 못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튼튼하게 자리 잡은 장내 '원주민' 균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소수의 '외래종'에게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 경우 유산균은 장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배출되는, 이른바 '비싼 변'에 불과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건강한 성인의 면역력 증진'이나 '체중 감량' 등의 효과는 근거가 매우 빈약합니다. 

유산균에도 이름이 있다: 균주 특이성의 함정

유산균 이야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균주 특이성(Strain Specificity)'입니다.

'유산균'이라는 말은 수천 종의 서로 다른 미생물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비피도박테리움(Bifidobacterium) 등 종류가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종 안에서도 균주에 따라 효능이 다릅니다. 항생제 연관 설사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인 균주가 과민성장증후군에도 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비유하자면, 독감 백신과 파상풍 백신이 모두 '백신'이라고 불리지만 서로 전혀 다른 질병을 표적으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학적 근거는 '유산균 일반'이 아니라 특정 균주에 대해 특정 질환에서 쌓인 것입니다.(식약처 홈페이지에서 기능성을 인정받은 19종의 균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산균 광고나 관련 영상에서 균주명 확인을 강조하는 배경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균주명이 표시되어 있어도 그 균주의 개별 효능을 일반 소비자가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중의 많은 제품은 여러 종을 섞어 넣는 방식을 택하면서 정작 각 균주의 구체적인 근거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고르는 것은 결국 '브랜드'와 '마리 수'이지, '어떤 균이 내 증상에 맞는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품 광고에서 흔히 강조하는 '100억 마리 보장'이라는 숫자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그에 비례해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식약처 기준으로 생균 1억마리 이상이라면 기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위하여

그렇다면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유산균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있습니다. 과거 항생제 부작용을 경험했는데 다시 항생제를 복용하게 되었을 때, 혹은 과민성장증후군으로 배가 자주 불편한 분이라면 시험 삼아 복용해볼 수 있습니다. 단, 증상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굳이 계속 복용할 이유는 없습니다. 특별한 증상도 없이 막연하게 '장 건강이나 면역력에 좋겠지'라는 기대로 고가의 유산균을 꾸준히 구매하는 것은 근거보다 마케팅을 믿는 일에 가깝습니다.

외부에서 유산균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이미 내 몸 안에 있는 유익균이 잘 자라도록 돕는 것입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통곡물, 규칙적인 식사, 그리고 충분한 수면이 그 역할을 합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는 수십 년에 걸친 식습관과 생활환경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정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유산균 캡슐은 잘 정돈된 정원에 뿌리는 씨앗 한 줌과 같습니다. 토양(식이섬유)이 충분하고 햇빛(규칙적인 생활)과 물(수면, 스트레스 관리)이 갖춰진 정원이라면 씨앗이 잘 자랄 수 있지만 메마른 땅이라면 아무리 씨앗을 뿌려봤자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장 건강의 토대는 결국 식탁 위에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참고문헌)

Goodman C, et al. Probiotics for the prevention of antibiotic-associated diarrhoea: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BMJ Open. 2021 Aug 12;11(8):e043054.

Goodoory VC, et al. Efficacy of Probiotics in Irritable Bowel Syndrome: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Gastroenterology. 2023;165(5).

Éliás AJ, et al. Effect of probiotic supplementation on the gut microbiota diversity in healthy population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of randomised controlled trials. BMC Med. 2026;24(1):71.

McFarland LV, et al. Strain-Specificity and Disease-Specificity of Probiotic Efficacy: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Front Med. 2018;5:124.

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 프로바이오틱스.


(그림 Gemini)



2026년 4월 4일 토요일

내 몸의 '점'이 아닌 '선'을 보다 : 만성질환 관리의 디지털 혁명

1. 진료실에서 마주하는 흔한 풍경

"선생님, 정말 이상해요. 집에서 잴 때는 분명히 120에 80 근처였거든요? 그런데 병원 기계로 재면 왜 이렇게 150이 넘게 나오는 거죠? 제 혈압계가 고장 난 걸까요, 아니면 병원 공기가 저랑 안 맞는 걸까요?"

진료실 의자에 앉자마자 J씨가 억울한 표정으로 쏟아낸 말이다. 고혈압과 당뇨병을 동시에 진단받은 지 3년째인 그는 나름대로 관리에 공을 들이는 환자다. 하지만 고민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집에서도 문제예요. 아침에 잴 때 다르고, 회사에서 재면 또 다르고, 운동하고 나서 재면 또 달라요. 그때마다 수치가 바뀌니 진짜 혈압이 얼마인지 갈피를 못 잡겠어요. 당뇨는 또 어떻고요. 집에서 혈당을 재긴 하는데 손가락을 찔러 피를 보는 게 영 번거롭고 무서워서 자주 재기는 어렵고, 어떤 음식을 먹어야 혈당이 덜 오르는지 알고 싶어도 그때마다 손가락을 찌를 수도 없으니 참 답답합니다."

이 대화는 만성질환 관리의 현주소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진료실 수치와 일상의 수치 사이에는 흔히 간극이 존재하고, 그 간극이 환자를 혼란에 빠뜨린다. 병원에서만 혈압이 높아지는 '백의 고혈압' 현상 때문에 진료실 측정값만으로는 평소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 어려운 환자들이 많다. 이 경우엔 병원 밖 일상생활 공간에서 혈압을 정기적으로 재야 한다. 그런데 J씨처럼 다양한 환경에서 혈압을 재어도 장소마다 달라지는 조건과 들쭉날쭉한 변동 폭 때문에 자신의 진짜 상태를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당뇨병의 경우에도 병원 채혈을 통해 간헐적으로 확인한 혈당으론 평소 상태를 알 수 없고, 장기적인 혈당 수치를 반영하는 당화혈색소의 경우에도 매일의 혈당 변화 패턴까지 알기는 어렵다. 자가 혈당 측정 기계가 보완적인 역할을 할 수 있지만 번거로움과 통증으로 인해 실시간 변화를 쫓기 어렵다는 문제가 있다.

2. 침묵의 살인자가 노리는 틈새와 조절률의 한계

고혈압과 당뇨병은 현대인의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흔하면서도 치명적인 질환이다. 국내 유병률은 꾸준히 늘어, 성인 3명 중 1명이 고혈압을, 7명 중 1명이 당뇨병을 앓고 있는 것으로 보고된다. 이들 질환이 무서운 이유는 분명하다. 뚜렷한 자각 증상 없이 진행되면서도 장기간 방치되면 혈관을 서서히 망가뜨려 심뇌혈관 질환이나 신장 질환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부른다.

그럼에도 혈압과 혈당이 목표 범위 안에서 적절히 조절되는 비율은 여전히 만족스럽지 않다. 질병의 위험성을 인지하는 것과 일상에서 꾸준히 관리하는 것 사이에 넘기 어려운 벽이 있기 때문이다. 도미노가 쓰러지듯 여러 합병증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막으려면 가끔 측정하는 수치에 의존하는 데서 벗어나 일상 속 혈압과 혈당 패턴을 정확히 파악하고 그에 맞는 맞춤형 관리가 이루어져야 한다. 결국 내 몸의 상태를 제대로 아는 것이 변화의 첫걸음이다.

3. 전통적 측정 방식이 지닌 물리적·심리적 한계

기존의 측정 방식은 환자와 의료진 모두에게 적잖은 불편함과 불확실성을 안겨주었다. 혈압의 경우, 진료실에서 한 번 재는 수치는 환자의 긴장 상태나 피로도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에 신뢰도가 제한적이다. 이를 보완하기 위해 24시간 활동 혈압 측정(ABPM)이 표준으로 권고되지만, 기기를 하루 종일 몸에 달고 있어야 하는 불편함이 적지 않다. 밤마다 일정 주기로 커프가 팔을 강하게 조이며 부풀어 오르는 탓에 수면을 방해받는다는 점도 단점이다.

혈당 측정도 마찬가지다. 자가혈당계는 매번 통증을 동반하는 채혈이 필요하고, 이것이 환자의 순응도를 떨어뜨리는 주된 원인이 된다. 게다가 채혈 순간의 단편적인 수치만 확인할 수 있을 뿐, 식사 후 혈당이 최고치에 오르는 과정이나 운동 직후의 변화 흐름을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처럼 '점'의 기록만으로는 환자의 대사 상태를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기에, 일상의 변화를 연속적인 ‘선’으로 포착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이 절실해졌다.

4. 연속혈당측정기(CGM)가 가져온 인식의 전환

최근 만성질환 관리의 게임 체인저로 떠오른 것은 단연 웨어러블 디바이스다. 그중에서도 연속혈당측정기(CGM)는 당뇨병 관리의 패러다임을 통째로 바꾸어 놓았다. 피부에 부착된 미세 센서가 혈액이 아닌 세포 간질액의 포도당 농도를 실시간으로 측정해 스마트폰으로 전송하는 이 기기는, 환자가 자신의 몸이 음식과 운동에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직관적으로 확인하게 해준다.

단순히 수치를 아는 것을 넘어, 특정 음식을 먹었을 때 혈당이 급격히 치솟는 '혈당 스파이크'를 실시간 그래프로 직접 목격하는 경험은 환자에게 강력한 동기가 된다. 무엇을 먹어야 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를 스스로 깨달으면서 강요된 처방이 아닌 자발적인 생활습관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다. 실제 진료 현장에서도 CGM 도입 이후 환자들이 스스로 식단을 조절하고 운동량을 늘리는 등 적극적인 변화를 보이는 사례가 늘고 있다. 이는 자기 주도적 관리 능력이 만성질환 치료의 핵심임을 다시 한번 입증한다.

5. 링타입 혈압계, 24시간 혈압 관리의 새로운 지평

혈압 관리 영역에서도 혁신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최근 주목받는 링타입 혈압계는 팔뚝을 압박하는 커프 방식에서 벗어나, 손가락에 끼우는 것만으로 혈압을 연속 측정할 수 있게 해준다. 광혈류측정(PPG) 기술을 기반으로 혈관의 용적 변화를 분석해 혈압 추이를 추적하는 이 기기는 착용감이 뛰어나 24시간 내내 거부감 없이 사용할 수 있다. 특히 링타입 혈압계의 진가는 수면 중 혈압 측정에서 드러난다. 건강한 사람은 수면 시 혈압이 낮아져야 하지만, 고혈압 환자 중에선 밤사이에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는 '논 디퍼(Non-dipper)' 패턴을 보이는 경우가 적지 않다. 이는 심혈관 질환 위험을 높이는 위험한 신호임에도, 기존 방식으로는 수면 방해 때문에 정확한 측정이 어려웠다. 반지형 기기는 환자가 잠든 사이에도 조용히 데이터를 수집하며 보이지 않는 위험을 찾아낸다.

링타입 혈압계를 이용한 24시간 혈압 측정은 기존 커프 방식과 비교했을 때 동등한 수준의 정확도를 인정받아 건강보험 급여가 적용되고 있다, 최근엔 병원용 이외에 일반 소비자가 직접 구매할 수 있는 개인용 모델도 출시되었다. 하지만 혁신적인 방식에도 불구하고 해결해야 할 과제는 남아있다. 기존 방식 기기보다 높은 가격대와 주기적으로 커프형 혈압계를 이용해 수치를 보정해줘야 하는 번거로움은 대중화를 위해 넘어야 할 산이다.

6. 임상적 근거와 학회 지침의 변화

이러한 디지털 기기들의 효용성은 최신 연구와 학회 지침을 통해 더욱 뒷받침되고 있다. 주요 당뇨병 학회들은 이미 인슐린 투여 환자뿐 아니라 생활습관 교정이 필요한 2형 당뇨병 환자들에게도 CGM 사용을 적극 권고하고 있다. 특히 '목표 범위 내 유지 시간(Time In Range, TIR)'이라는 지표가 주목받고 있는데, 이는 하루 중 혈당이 정상 범위에 머무는 시간의 비율로, 합병증 예방의 새로운 기준이 되고 있다. 고혈압 분야에서도 디지털 혈압계를 활용한 데이터 기반 치료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를 활용한 혈압 모니터링이 약물 순응도를 높이고 생활습관 개선을 이끈다는 임상 근거들이 쌓이면서, 전문가 단체들은 디지털 헬스케어 기기를 핵심 관리 도구로 편입시키는 추세다. 물론 기기 정확도 향상과 정기적인 보정 같은 기술적 과제가 남아 있지만, 빅데이터와 결합한 정밀 의료의 발전은 이러한 한계를 빠르게 넘어서고 있다. 향후 일상에서 수집된 방대한 데이터를 진료 현장에서 어떻게 효율적으로 분석하고 수가 체계 내로 편입시킬지에 대한 제도적 논의도 함께 병행되어야 한다.

7. 디지털 기기와 함께하는 새로운 시작

만성질환 관리는 쉼 없이 달려야 하는 마라톤과 같다. 그 긴 여정에서 디지털 웨어러블 기기는 24시간 내 몸의 상태를 곁에서 알려주는 든든한 조력자가 될 수 있다. 기기를 현명하게 사용하기 위해선 기기가 보내는 데이터의 신호들을 생활습관을 점검하고 바꾸는 출발점으로 삼는 것, 그리고 완벽한 수치에 집착하거나 일희일비하기보다 어제보다 더 안정적인 그래프를 만들어가는 과정 자체에 집중하는 태도가 중요하다. 

디지털 기기의 도움을 받을 여건이 된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해 자신의 혈압과 혈당을 스스로 통제하고 관리하는 경험을 해보길 권한다. 그 작은 변화의 조각들이 모여 합병증 없는 건강한 미래로 가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2026년 새해, 이제 당신의 건강 관리를 디지털 기술의 날개 위에 올려보는 것은 어떨까.


2026년 3월 12일 목요일

‘맑은 피’에 대한 믿음과 오메가-3의 진실

[그 영양제, 정말 먹어도 될까?] 의사가 알려주는 12가지 장기별 건강기능식품 가이드 혈관

맑은 피에 대한 믿음과 오메가-3의 진실  

진료실에서 환자들과 대화하다 보면맑은 피에 대한 뿌리깊은 믿음을 실감할 때가 있습니다. “피가 탁해서 그런지 손발이 저려요”, “피를 맑게 하는 영양제 좀 추천해 주세요와 같은 말들이 대표적입니다. 건강 관련 프로그램이나 동영상에서도 피를 맑게 해주는 음식이나 생활습관에 대한 내용을 쉽게 만나곤 합니다. 이러한 맑은 피에 대한 집착은 우리의 전통 문화와 과거 질병 패턴의 복합적인 영향 때문인 것 같습니다.

과거 우리는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지는 뇌졸중을중풍(中風)’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바람()에 맞았다()'는 뜻으로, 세찬 바람에 나무가 쓰러지듯 갑작스런 신체 마비나 의식 장애로 쓰러지는 증상을 형상화한 용어입니다. '풍을 맞았다'고 표현하기도 했는데, 이런 용어를 보면 뇌졸중에 대한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습니다. 특히 팔다리 마비와 같이 겉으로 드러나는 후유증은 뇌졸중에 대한 공포를 키우는데 일조했습니다. 실제 뇌졸중은 과거 2010년대까지 한국인 사망 원인 중 암 다음으로 2위를 오랫동안 지켜오기도 했습니다.

한의학에서는 혈액이 탁해져서 생긴 어혈(瘀血)이 혈관을 막는 것을 뇌졸중의 주원인으로 본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이런 관점에서는 '피를 맑게 하는 것'이 중풍을 예방하는 방법이 됩니다. 체했을 때 손을 따서 검은 피를 짜내는 민간요법이나, 흔히 부항이라고 부르는 사혈의 기저에도 맑은(좋은) 피와 탁한(나쁜) 피에 대한 오랜 이분법적 믿음이 있습니다. 서양에선 보통 이와 달리 끈적한(thick) 피와 묽은(thin) 피로 구별하는데, 이는 혈액의 응고 정도를 기준으로 한 개념이지만 지나치게 끈적하거나 묽은 상태가 혈관의 폐쇄나 출혈의 원인이란 면에선 한의학적 관점과 비슷한 면이 있습니다. 사실 나쁜 피를 빼내는 사혈요법은 고대 이집트에서부터 시작되어 중세 이후까지 계속되던 인기있는 치료법이기도 했습니다. 이런 사실들을 고려하면 혈액과 혈관의 상태가 건강을 좌우한다는 인식은 아주 오랜 역사를 가진 셈입니다.

- 식약처가 인정한 성분들, 그 이면의 현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혈행 개선기능성을 인정한 원료로는 오메가-3(EPA DHA 함유 유지)를 필두로 은행잎 추출물, 감마리놀렌산, 영지버섯 추출물, 홍삼 등 비교적 잘 알려진 것들 외에도 개별인정형으로 나토균배양분말, L-아르기닌, 피크노제놀 등 다양한 성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냉정하게 의학적 근거를 따져볼 때 대다수는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말초 혈류 개선과 인지 기능 보조 측면에서 연구 결과가 많은 편인 은행잎 추출물 정도도 연구들마다 결과가 다르고 전반적인 근거를 종합하면 효과가 없는 쪽에 가깝습니다.

- 오메가-3: 가장 화려한 근거, 그러나 엇갈리는 결론

그렇다면 혈관 영양제의 주인공 격에 해당하는 오메가-3는 어떨까요? 오메가-3는 필수지방산인 알파-리놀렌산(ALA), EPA, DHA 등으로 구성된 불포화지방산입니다. 국내 건강기능식품 시장에서 매년 4위 이내에 들만큼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의학계에서도 가장 많은 임상시험이 이루어진 성분 중 하나입니다. 모든 연구 결과들을 세세히 설명하기는 어렵겠지만 확실한 근거 위주로 요약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중성지방(TG)은 낮추지만 콜레스테롤에는 무력합니다.

하루 2~4g의 오메가-3 보충은 중성지방 수치를 약 15% 정도 낮추는 효과가 있습니다. 그러나 정작 동맥경화와 심혈관 질환 위험에 더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LDL 콜레스테롤(나쁜 콜레스테롤)이나 HDL 콜레스테롤 수치에는 큰 변화를 주지 못합니다. 보통 고지혈증은 LDL 콜레스테롤이 높은 상태를 뜻하는데 이런 환자가 오메가-3를 복용할 필요가 없는 이유입니다.

둘째, 효과는누가,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다를 수 있습니다.

86개의 임상시험을 통합 분석해 2020년 발표된 코크란 리뷰(Cochrane review)에 따르면 심혈관 질환 예방 효과는거의 없거나 미미(little or no effect)’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2023년 미국심장학회(AHA)에서는 오메가-3 보충제가 심혈관 사건이나 사망 위험을 낮추지 못한다고 못박았습니다. , 질병이 없는 건강한 일반인이 단지 혈액순환 개선을 기대하며 챙겨 먹기에는 의학적 근거가 매우 빈약합니다. 하지만 이후 발표된 최신 연구들에서는 긍정적인 효과를 보고하기도 했는데, 심혈관질환이 이미 있거나 발생 위험이 높은 고위험군에서, EPA 고순도 제제를 복용하는 경우에 더 효과가 두드러졌습니다. 결론적으로 오메가-3 보충제는 평소 생선 섭취량이 매우 적은 사람이나 심혈관 질환 환자 또는 고위험군에게는 일부 혜택을 줄 가능성이 있습니다.

셋째, 보충제보다는 식단이 정답입니다.

기존 연구들은 오메가-3 보충제 캡슐보다는 생선이나 해산물, 견과류를 직접 섭취하는 것이 심장 건강 증진에 훨씬 효과적임을 일관되게 보여줍니다. 미국심장학회에서 보충제에 냉담한 평가를 내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또한 일부 연구들에서는 보충제가 부정맥 발생 위험을 높이기도 했습니다. 심장 근육(심근경색)은 보호할지 몰라도, 심장 박동(부정맥)에는 해로울 수 있다는 것이지요.

혈관은 영양제로 청소할 수 있는 파이프가 아닙니다. 소위 말하는 탁한 피는 영양제보다 금연, 식단 관리, 운동과 체중 관리를 통해 훨씬 더 드라마틱하게 개선됩니다. 무엇보다 잊지 말아야 할 혈관의 주적은 담배입니다. 매일 담배를 피우면서 혈관 건강을 위해 오메가-3를 찾는 것은, 방 안에 연탄불을 피워두고 공기청정기 필터를 뭘 쓸지 고민하는 것과 다를 바 없습니다. 가장 확실한 혈액순환 개선제는 영양제 캡슐이 아닌 여러분의 결단과 생활 습관 속에 있는 것입니다.


(참고문헌)

Nicolaï SP, Kruidenier LM, Bendermacher BL, Prins MH, Stokmans RA, Broos PP, Teijink JA. Ginkgo biloba for intermittent claudication.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3 Jun 6;2013(6):CD006888.

Nguyen T, Alzahrani T. Ginkgo Biloba. [Updated 2023 Jul 3]. In: StatPearls [Internet]. Treasure Island (FL): StatPearls Publishing; 2026 Jan-. Available from: https://www.ncbi.nlm.nih.gov/books/NBK541024/

Abdelhamid AS, Brown TJ, Brainard JS, Biswas P, Thorpe GC, Moore HJ, Deane KH, Summerbell CD, Worthington HV, Song F, Hooper L. Omega-3 fatty acids for the primary and secondary prevention of cardiovascular disease.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20 Feb 29;3(3):CD003177.

Mattumpuram J, Maniya MT, Noman A, et al. Effect of omega-3 fatty acids on cardiovascular disease risk: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with meta-regression. Clin Transl Disc. 2025; 5:e70094.

2026년 2월 8일 일요일

무릎이 뻑뻑할 때 찾는 '관절 영양제', 마모된 관절을 되살릴 수 있을까?

[그 영양제, 정말 먹어도 될까?] 의사가 알려주는 12가지 장기별 건강기능식품 가이드 ② 관절

: 무릎이 뻑뻑할 때 찾는 '관절 영양제', 마모된 관절을 되살릴 수 있을까?


따스해진 봄바람이 불어오니 겨우내 웅크렸던 몸이 근질거립니다. 바야흐로 러닝의 계절입니다. 요즘은 공원은 물론 도심 어디서든 러닝 크루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러닝 인구가 천만을 넘었다고 하니 대세이긴 한가 봅니다. 저 역시 5~6년 전부터 달리기 시작한 러너 중 한 명입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를 때 느껴지는 짜릿한 느낌, 이른바 러너스 하이(Runner’s High)를 맛보다 보면 힘이 들더라도 또 달리고 싶어집니다. 스마트 기기에 차곡차곡 쌓이는 러닝 기록을 보면 뿌듯한 마음도 들고, 문득 욕심이 생겨 기록을 조금 더 단축해 보려고 속도를 높이기도 합니다.

러닝을 꾸준히 하다 보니 이전에 없던 걱정도 생겼습니다. 작년부터 무릎에 뻑뻑함을 느끼는 빈도가 늘었거든요. 예전엔 조금 무리를 했더라도 금방 풀렸던 것 같은데, 삐걱거리는 느낌이 며칠을 가고 어떤 때는 무릎에서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하긴 이제 50대에 접어든 나이이니 관절이 이전 같을 수는 없겠지만 슬슬 걱정이 됩니다. '이러다 러닝을 못 하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감은 이내 '무릎에 좋다는 걸 뭐라도 좀 챙겨 먹어야 하나?'라는 생각으로 이어집니다. 무심코 지나치던 홈쇼핑이나 SNS 피드의 관절 영양제 광고도 이제 예사로 보이지 않습니다. 

3월이 되면 진료실에도 저와 같은 고민을 안고 찾아오는 분들이 부쩍 늡니다. 러닝 후 무릎 통증을 호소하는 2030 세대부터 등산이나 골프를 즐기려는 중장년층까지. 그들의 손에는 어김없이 글루코사민, 콘드로이틴, MSM(식이유황), 보스웰리아 같은 관절 영양제 리스트가 들려 있습니다. 러닝 붐으로 정형외과와 관절 영양제 시장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는 웃지못할 뉴스도 있습니다. 사람들은 왜 그토록 관절 영양제를 찾을까요? 의학적 효능을 떠나, 그 기저에 깔린 세 가지 심리에 대해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바로 환상, 불안, 그리고 욕망입니다.

첫째, '채워진다'는 환상입니다. 건강 프로그램이나 홈쇼핑에서 흠집 난 연골 사이로 하얀 성분이 스르륵 차오르며 매끈해지는 3D 그래픽 광고를 가끔 봅니다. 시각적으로 매우 강력한 이 이미지는 소비자들에게 닳아버린 연골을 다시 채울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줍니다. 하지만 이는 의학적으로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혈관이 없는 연골은 한번 구조적으로 마모되거나 손상되면 피부처럼 새살이 돋아나지 않습니다. 정형외과학회 등 전문가 단체가 관절 영양제를 권장하지 않거나(Not Recommended), 보류하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먹는 영양제가 소화기관을 거쳐 혈관이 없는 무릎 연골까지 도달해 조직을 재생시킨다는 것은, 현재의 의학 수준에서는 환상에 불과합니다.

둘째, '삐걱거림'에 대한 불안입니다. 무릎에 통증을 느낄 때, 사실 통증보다 더 무서운 건 기능의 고장이겠지요. 무릎에서 소리가 나거나 뻐근해지는 느낌이 들면 우리는 기계에 녹이 슨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이때 영양제 광고는 ‘윤활유를 쳐주라’고 속삭입니다. 이 지점에서는 그나마 긍정적인 과학적 근거가 있습니다. 글루코사민, 콘드로이친, 보스웰리아, MSM제제 등이 관절의 통증이나 뻣뻣함을 다소 줄여줄 수 있다는 연구들도 꽤 많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진통소염제처럼 일시적인 증상 완화일 뿐, 관절을 근본적으로 고치는 수리는 아닙니다. 또한 효과가 있다 해도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타나진 않으므로, 통증이 있는 경우 시험 삼아 복용해 볼 수 있겠지만 증상의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굳이 계속 복용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지 불안을 잠재우기 위해 비용을 지불하기에는 그 의학적 근거가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셋째, '멈추고 싶지 않다'는 욕망입니다. 결국 우리가 영양제를 찾는 진짜 이유는 현재의 라이프스타일을 유지하고 싶은 욕망 때문입니다. 등산을 계속하고 싶고, 친구들과 골프를 치고 싶고, 저처럼 계속 달리고 싶은 마음. 제약회사와 건강기능식품 업체들은 정확히 이 욕망과 불안을 파고듭니다. ‘이걸 먹으면 당신은 계속 달릴 수 있습니다’라고 유혹하죠. 그 유혹에 빠져 영양제를 믿고 무리한다면 관절은 더 망가지게 됩니다. 관절 영양제의 진짜 문제점은 여기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3월의 봄, 다시 운동화 끈을 매는 당신에게 의사로서 드리는 진짜 처방은 영양제 쇼핑이 아닙니다. 닳아버린 타이어(연골)를 새것으로 갈아 끼울 수 없다면 방법은 하나뿐입니다. 타이어를 지탱하는 차체(근육)를 튼튼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무릎 관절의 가장 강력한 지킴이는 대퇴사두근입니다. 대퇴사두근은 허벅지 앞쪽에 위치한 네 개의 큰 근육으로 무릎 관절을 펴고 안정성을 유지하는 핵심 근육입니다. 이 근육이 튼튼하다면 무릎으로 가는 하중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영양제 한 알을 삼키는 쉬운 길 대신, 스쿼트를 하고 계단을 오르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러닝 전 충분한 스트레칭으로 관절의 가동 범위를 확보하고, 적정 체중을 유지해 무릎의 짐을 덜어주는 것이 비싼 관절 영양제보다 백배 더 효과적입니다.

영양제는 기껏해야 운동화 속에 까는 얇은 깔창 정도입니다. 얇은 깔창 하나 믿고 무리하게 뛰다가는 오히려 더 큰 부상을 입습니다. 흔들리는 무릎을 잡아주는 건 신용카드로 산 영양제가 아니라 우리가 흘린 땀으로 만든 근육임을 기억하세요. 그래야 우리는 70대가 되어서도 계속 달릴 수 있을 것입니다.


(이미지: Google Gemini)

(참고문헌)

Yu G, Xiang W, Zhang T, Zeng L, Yang K, Li J. Effectiveness of Boswellia and Boswellia extract for osteoarthritis patient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BMC Complement Med Ther. 2020 Jul 17;20(1):225.

Baden KER, Hoeksema SL, Gibson N, Gadi DN, Craig E, Draime JA, Tubb SM, Chen AMH. The Safety and Efficacy of Glucosamine and/or Chondroitin in Humans: A Systematic Review. Nutrients. 2025 Jun 24;17(13):2093.

Butawan M, Benjamin RL, Bloomer RJ. Methylsulfonylmethane: Applications and Safety of a Novel Dietary Supplement. Nutrients. 2017 Mar 16;9(3):290.


2026년 1월 15일 목요일

회식 잦은 연말연시, '밀크씨슬'만 믿고 달리는 당신에게

그 영양제, 정말 먹어도 될까? 의사가 알려주는 12가지 장기별 건강기능식품 가이드 ① 간

: 회식 잦은 연말연시, '밀크씨슬'만 믿고 달리는 당신에게 


새해가 밝았습니다. 매년 이맘때면 진료실 풍경은 사뭇 진지해집니다. 연말연시 잦은 술자리와 모임으로 몸을 혹사시킨 후, 새해 결심으로 건강검진을 받으러 오시는 분들이 부쩍 늘어나기 때문입니다. 검진 결과 상담실에서 가장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이것입니다. 

“교수님, 제가 이번에 간 수치가 좀 높게 나왔던데요. 간에 좋다는 영양제를 좀 챙겨 먹으면 도움이 될까요?”

영양제, 정확하게 말하면 ‘건강기능식품’이라고 하지요. 이런 분들이 흔히 먹는 건강기능식품 성분이 밀크씨슬입니다. 아마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의 식탁 위나 서랍 속에도 밀크씨슬 영양제 한 통쯤 놓여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영양제 중 하나이자, 피로 회복과 간 건강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밀크씨슬. 과연 이 작은 알약이 지친 간을 되살리는 구원투수가 되어줄 수 있을까요? 오늘은 의학적 근거를 통해 그 진실을 들여다보려 합니다.

- 효과는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밀크씨슬은 간에 도움이 됩니다. 밀크씨슬의 핵심 성분인 실리마린(Silymarin)은 엉겅퀴라고 불리는 국화과 식물에서 추출한 성분으로 항산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간세포의 외부 막을 튼튼하게 해 독소 침투를 막고 단백질 합성을 촉진해 손상된 간세포의 재생을 돕는 역할을 함으로써 간 기능에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실제로 학계에 보고된 연구 결과들은 꽤 긍정적입니다. 2024년 Canadian Liver Journal에 발표된 최신 메타분석 연구에 따르면, 지방간 환자가 실리마린을 꾸준히 복용했을 때 간 세포 손상 지표인 ALT와 AST 수치가 10~20 정도 유의하게 줄어드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즉, 검진표에 찍히는 빨간 숫자를 정상 범위로 돌려놓는 데 효과가 있다는 뜻입니다. 이런 이유로 실리마린 성분은 전문의약품으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 건강기능식품이 술을 이길 수 있을까?

하지만 환자를 만날 때 우려하는 지점은 밀크씨슬의 효능 자체가 아닙니다. 이것을 술에 대한 면죄부처럼 여기는 심리입니다.

“요즘 밀크씨슬 먹고 있으니까, 술 좀 더 마셔도 덜 취하겠지?” 

“영양제 챙겨 먹으니까 간은 보호되고 있을 거야.”

이런 생각은 위험합니다. 세계적으로 가장 신뢰받는 의학 근거 분석 기관인 코크란(Cochrane) 리뷰에 따르면 밀크씨슬이 알코올성 간질환 환자의 사망률을 낮추거나 간경변증 같은 치명적인 합병증을 막아준다는 근거는 미미합니다. 쉽게 말해, 불이 난 집(음주로 손상된 간)에 물 한 바가지(밀크씨슬)를 끼얹는다고 해서 불길이 잡히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름(술)을 계속 붓고 있다면 더더욱 그렇습니다. 밀크씨슬이 검사 수치 상의 염증을 조금 줄여줄 수는 있어도, 술이 가하는 타격을 원천 봉쇄할 수는 없습니다. 또한 흔치는 않지만 밀크씨슬이 위통, 설사 등의 부작용을 일으킬 수도 있으므로 복용 후 불편이 생기면 바로 중단해야 합니다.

- 2026년 새해, 간을 위한 처방 

그렇다면 간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간을 살리는 1순위 치료법은 우루사나 영양제가 아니라 절주를 비롯한 생활습관 교정과 체중 감량입니다. 과음과 비만이 불러온 지방간의 치료법은 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며, 간장약이나 건강기능식품으로 간에 낀 지방을 줄일 수는 없습니다. 그러니 비싼 영양제를 사 먹는 것보다 오늘 저녁 술잔을 내려놓고 밥 한 숟가락을 덜 먹고 운동화 끈을 매는 것이 간에게 훨씬 더 강력한 치료제인 셈입니다. 바로 그게 어렵다구요? 이런.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은 비싼 운동화와 같은 존재입니다. 좋은 러닝화를 신으면 발의 피로를 조금 덜어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비싼 신발을 신어도 결국 내 두 다리로 뛰지 않으면 살은 빠지지 않습니다. 신발장에 명품 운동화를 진열해 두고 소파에 누워 치킨을 먹으며 건강해지기를 바랄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명품 운동화가 없어도 뛸 수 있지만, 뛰지 않는 사람에게 비싼 운동화는 그저 장식품일 뿐입니다.

검진 결과표의 간 수치가 걱정되시나요? 그렇다면 영양제를 찾기 전에 오늘 밤 술잔부터 내려놓으세요. 그리고 체중계 위에 올라가십시오. 그것이 2026년 새해, 여러분의 간이 바라는 진짜 처방전입니다.

(이미지: Google Gemini)

(참고문헌)

Malik A, et al. "Effects of silymarin use on liver enzymes and metabolic factors in metabolic dysfunction-associated steatotic liver disease: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Canadian Liver Journal. 2024 Feb;7(1):40-53.

Rambaldi A, et al. "Milk thistle for alcoholic and/or hepatitis B or C virus liver diseases."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07 Oct 17;2007(4):CD003620.

식품의약품안전처. "2020년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 재평가 결과보고서: 밀크씨슬 추출물".

2026년 1월 6일 화요일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에 대해

올해 첫 책은

존 스튜어트 밀의 '자유론'이 되었다. 너무나 유명한 고전임에도 막상 읽을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던 책에 대해 논할 수 있게 된 건 우습게도 아들이 학교에 제출할 독서 감상문 때문이었다. 같은 조에 속한 괴팍한 취향의 친구 때문에 아이에겐 어렵기 짝이 없는 이 책을 고르는 재앙스러운 일이 생겼단다. 미궁에 빠진 감상문에 대해 이야기하다 무심코 펼친 책의 첫 장 머리말에 빠져들어 나머지 네 개의 장과 해제까지 이어서 읽고 말았다.

1859년에 쓰여진 책이라고는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2026년의 대한민국에서 쓰여진 책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만큼, 시대를 뛰어넘는 통찰이 가득한 글이다. 책에 좋은 글귀가 너무나 많았다. 줄을 그어가며 읽은 책은 정말 오래만이었다. 인상적이지 않은 구절을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 글귀를 옮기는 것은 무의미할 것 같다. 

밀은 세살 때 그리스어를, 여덟살 때 라틴어를 배웠다고 하는데, 천재였음에 틀림없다. 책을 읽으면서 감탄했던 점은 그가 자신의 주장에 대해 논리적 근거를 펼치고 증명하는 방식이었다. 책을 읽는 내내 단순히 지식을 전달받는 게 아니라 거대하고 정교한 사유의 건축물이 세워지는 과정을 목격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주로 선택하는 증명 방식은 반대 의견의 강화이다. 그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만 찾는 게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무너뜨릴 수 있는 날카로운 비판을 스스로 만들어내고 그걸 다시 논파하곤 한다. 그 치열한 과정을 거쳐 살아남은 주장이 책에 담겼기에 170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그 견고함에 감탄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그는 '관습의 독재'란 표현을 사용해 사회의 눈치와 관습이 개인의 개성을 말려 죽이는 상황을 경계했다. 더불어 유럽이 발전한 이유를 다양성에서 찾으면서 그 반대 사례로 중국을 비롯한 동양 국가들을 언급하는데, 이 지점에서 제국주의와 유럽 우월주의적인 시각이 엿보인다는 것이 흠이라면 유일한 흠이었다. 지금 보기엔 동양은 관습에 얽매여 있고 서양은 자유롭다는 식의 이분법이 지나치게 단순하고 편향되게 느껴지지만,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순응이 인간의 발전을 가로막는 가장 큰 장애물이라는 본질적인 메시지의 가치만큼은 변하지 않는다. 하긴 19세기에 영국의 동인도 회사에서 일을 했고 전 생애를 유럽에서 보냈던 그가 당시의 시각에서 완전히 자유롭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천재인 그도 인간적인 한계가 있었던 것이겠지.  

그가 구축한 지적인 논리 유희를 좇는 즐거움이 컸지만, 동시에 나 자신이 거대한 천재를 접하는 평범한 인물임을 스스로 실감하며 자조하기도 했다. 그가 택한 방식처럼 모든 의견에 반론을 허용하고 내 믿음을 계속 시험대에 올리는 일은 엄청난 에너지가 소모되는 일이라 나같은 범인에겐 지적 중노동이 되고 만다. 관습을 거부하고 매 순간 개별성을 발휘하라는 권유 역시 하루하루 먹고살기 바쁜 현실에선 구름 위 이야기처럼, 때로는 그가 무엇보다 경계한 도그마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천재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이만큼 까마득한 지적 거리감이라니.

그래도 올해 처음 읽은 것이 이 책이어서 다행이었다. 천재 철학자의 가르침을 이생에서 다 실천하긴 글렀으나, 올해를 살면서 작은 선택 몇 가지 정도는 관습의 독재를 따르지 않고 온전히 내 기질과 선호에 따라 결정할 수 있지 않을까. 그정도면 올해의 목표로 충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