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16일 목요일

나이 든다는 것

- 이젠 수영을 하지 않아요.

당뇨병이 있었지만 운동으로 조절을 잘 하는 50대 여자 환자였다. 수영은 그녀가 십여년째 꾸준히 하던 운동이었다. 잠깐 머뭇거리던 그녀가 말을 이었다.

- 선생님도 아시다시피 전 수영을 잘했어요. 수영 클럽에서 여자 회원들 중에 저보다 잘하는 사람은 없었지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제가 뒤쳐지기 시작하는거에요. 예전만큼 속도를 내기 힘들고 숨도 차고... 다른 젊은 회원들을 따라갈 수가 없었어요.
나이가 들은거죠. 근데 그게 싫었어요.

누구나 나이를 똑같이 먹지만 나이듦의 방식은 제각각 다르다. 

모두가 그 과정에서 소쩍새의 울음 소리와 천둥 먹구름을 뒤로 하고 거울 앞에 선 중년의 여성을 떠올리는 시인처럼 평온함과 성찰을 획득하는 것은 아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종종 오히려,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둘 잃어가는 과정이다.

그것은 흰머리는 늘어나고 머리칼은 더 듬성듬성해지는 것, 책의 작은 활자가 이전만큼 또렷이 보이지 않게되는 것, 가까운 사람의 이름이 문득 생각나질 않는 것, 이전보다 더 자주 소변을 보러 화장실에 가야하는 것, 짧은 계단을 오를 때도 무릎이 뻐근해지는 것, 피부가 쉽게 말라서 가려움증이 생기는 것, 잇몸이 퇴축되고 잇새가 떠서 치솔질을 더 꼼꼼히 해야하는 것, 가슴이 처지고 폐경을 겪는 것, 발기했던 성기가 결정적인 순간에 사그라들어 버리는 것, 그런 경험이 하나둘 늘어나는 것이다.

소설 '은교'에서 칠십대의 시인 이적요는 삼십대 제자의 젊음을 질투하고 열일곱 소녀의 젊음을 욕망한다. 그는 늙는다는 것의 추함을 서러워하며 항변하듯 이야기했다.

늙는 것은 용서할 수 없는 '범죄'가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노인은 '기형'이 아니다, 라고 나는 말했다.
따라서 노인의 욕망도 범죄가 아니고 기형도 아니다, 라고 또 나는 말했다.
노인은, 그냥 자연일 뿐이다.
젊은 너희가 가진 아름다움이 자연이듯이.
너희의 젊음이 너희 노력에 의하여 얻어진 것이 아닌 것처럼,
노인의 주름도 노인의 과오에 의해 얻은 것이 아니다.

*

누구나 나이를 똑같이 먹지만 나이듦의 방식은 제각각 다르다. 

내가 나이 먹었음을 진정으로 실감한 순간은 이전과 같이 노래부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였다. 음역이 높은 편이라 대개 테너 파트를 맡았고 즐겨 부르는 곡들도 그런 노래들이었다. 제작년이었나, 아주 오랜만에 노래를 부를 기회가 있었는데 이전처럼 고음을 낼 수 없었다. 목에 잠깐 문제가 생긴건가 싶었지만 그 뒤로도 상태는 마찬가지였다. 내 음역에서 몇 개의 콩나물 대가리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그 상실감은 꽤 컸다. 수백 번은 불렀음직한 노래들은 그 이후로 예전의 그 노래가 아니었고, 콩나물 대가리 일부가 사라진 세상은 내게 더이상 이전과 같지 않았다. 

누군가는 내게 그게 뭐 그리 중요한 거냐고 물을 수도 있겠다. 그 사람이 내게 가까운 존재라면 내 특별한 상실감을 알아주지 않음에 조금은 서운함을 느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느끼는 상실의 지점과 정도는 제각각인 것이다. 그에게는 그만의 콩나물 대가리가 있을 것이고 그가 내 콩나물 대가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처럼 나도 그의 콩나물 대가리를 온전히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단지 필요한 것은 모든 사람들이 각자의 콩나물 대가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는 잃어버린 콩나물 대가리를 그리워하지만 그 상실에 그럭저럭 익숙해지며 살아가고, 그것이 어려워질 때 가끔은 병원을 찾기도 한다. 그녀에게 수영은 나의 콩나물 대가리와 같은 존재였을 것이고, 내가 그런 것처럼 그녀도 그럭저럭 잘 적응해갈 것이다.

수영을 앞으로도 안할거냐는 질문에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 네, 당분간은요. 대신 이젠 등산을 다녀요.

2014년 10월 10일 금요일

맥가이버 아저씨

맥가이버 아저씨라 불리는 분이 우리 동네에 계시다는 걸 알게된 건 얼마 전이었다.

어느 집에서 고장난 전자기기를 봐달라 출장 요청을 했는데, 오신김에 그 기기 뿐 아니라 고장난 전등, 망가진 주방용품까지 그동안 애먹이던 것들을 모두 말끔히 고쳐주셨단다. 그 집 엄마는 놀라운 경험을 아파트 맘카페에 공유했고, 그 글을 본 다른 집 엄마들이 하나둘 비슷한 경험을 하면서 그는 맥가이버 아저씨로 불리게 되었다.
아파트가 6, 7년쯤 되면 비치된 집기들이 말썽을 일으키게 마련이다. 브랜드 제품이라면 해당 회사에 유상 수리를 요청하겠지만, 아파트의 집기들은 요청을 해도 함흥차사에 수리를 의뢰할 다른 곳도 마땅치않은 경우가 많다. 예전에는 동네마다 전파사가 있었지만 요즘이야 어디 찾기가 쉬운가.
이사를 앞두고 삐걱이는 침대를 어떻게 처리할까 아내와 상의를 하는데 아내가 그 맥가이버 아저씨를 불러보자 한다. 이런 것도 고쳐주실까 싶었지만 밑져야 본전이다 싶어 전화를 했다. 삐걱이는 침대와 알미늄 관절에 문제가 생긴 스탠딩 조명, 서랍 하나가 닫히지 않는 아이방 서랍장 수리를 요청했는데 흔쾌히 와서 봐주시겠다고 한다.

"아이 아빠가 얼굴은 동안인데 머리는 나만큼 허옇네요. 이래도 되는건가? 허허." 60대쯤으로 보이는 사람 좋은 인상의 아저씨는 공구 가방을 들고 농담을 건네며 들어오셨다. 삐걱이는 침대를 이리저리 돌아보며 소리가 나는 부분을 확인하고, 매트리스를 치운 뒤 프레임을 살펴보던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프레임을 연결하는 쇠가 헐거워져서 마찰이 생긴거네요. 집에 바셀린 있나요?"

기름이나 구리스(물론 그런건 우리집엔 없었지만)도 아니고 바셀린이라니. 갑자기 빰빰빰빰빰빰빰 빰 빰빠빰~ 맥가이버의 테마 음악을 배경으로 '할아버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지...'로 시작하는 리차드 딘 앤더슨의 대사가 배한성씨 음성으로 들리는 듯 했다.
프레임 연결부위에 바셀린이 쓱쓱 칠해진 침대는 언제 삐걱였나 싶게 조용해졌다. 60대 맥가이버가 침대에 이어 스탠딩 조명과 서랍장을 수리하는 동안 나는 그의 우아한 손놀림을 멍하니 지켜보았다. 그에게서는 약간의 금속 냄새와 묵은 먼지 냄새가 났고, 손톱 밑엔 기름때가 끼어있었다. 의뢰했던 임무가 끝난 뒤 비타500 한 병을 드린 것은 순수한 경의의 표시였다. 거실에 나와 짧은 대화를 하며 한쪽 구석에 놓인 턴테이블을 본 맥가이버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말했다. "한 번 틀어봐요."

언뜻 그의 눈빛이 반짝 빛나는 것 같았다. 그러고보니 턴테이블에도 문제가 있다는 걸 잊고 있었다. 때때로 오른쪽 스피커 소리가 죽곤 했는데, 턴테이블의 스피커 출력 부분에 접촉 문제가 생긴게 아닌가 짐작하고 있던 차였다. 증상을 들은 맥가이버는 스피커 출력 선이 아닌 턴테이블 바늘을 암에서 분리한 뒤 말했다. "신문지 있나요?"

이번엔 신문지다. 나는 그의 주문이 떨어지자마자 잘 훈련된 강아지처럼 주방 수납장에 접혀있던 신문지를 얼른 가져왔고, 맥가이버는 바늘의 분리된 면을 그 신문 지면에 문지르기 시작했다. "접촉 문제는 대부분 여기서 생겨요. 신문지에는 기름 성분이 있어서 접촉 부위 때정도는 다 벗겨주죠." 신문지로 몇 번 문지른 턴테이블 바늘을 다시 끼웠을 때, 난 양쪽 스피커가 문제없이 작동할 것임을 알고 있었다.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는가?
제대로 소리가 나는 것을 확인한 그는 다시 바늘을 분리해 꼼꼼히 살펴보고는 핀셋으로 바늘의 위치를 조심스럽게 바로잡았다.(물론 도구가 된 속눈썹 핀셋은 현장에서 조달했다.) 바늘을 끼우고 암을 조정해 수평을 맞추는 그의 손길은 마치 애인을 쓰다듬듯 부드러웠다.

"좋은 제품이에요. 이때만 해도 일본 제품들이 최고였죠. 제대로 만들었으니까."

테크닉스 SL1900 모델에 대한 맥가이버의 평이었다. 턴테이블에 올려진 Enya의 LP 한 면이 끝까지 도는 동안 나는 그에게 턴테이블의 원리와 역사에 대한 강의를 들었다. 또한 고등학생 때부터 동네 전파사 앞에 버려진 흑백 텔리비젼을 집에 가져와 고치곤 했고, 진공관 앰프와 튜너에 빠져 몇 달치 월급과 새 기기를 바꾸곤 했던 한 청년의 이야기를 들었다.
며칠 전 아파트 재활용 쓰레기장에서 버려진 앰프(한 시대를 풍미했던 모델인)를 주워 수리했는데 멀쩡히 소리가 잘 나더라며, 마누라는 또 애물단지를 가져왔다고 타박을 하지만 오늘은 카세트 데크를 수리해야겠다며 말할 때는 재미난 장난감 포장을 막 뜯은 소년처럼 조금은 들떠 있었다.

그 순간 그가 참 행복해 보였다.

지금 그는 30년째 같은 곳에서 전파사를 하고 있다. 언젠가 퇴근길에 한번쯤 그의 작업대를 구경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은 맥가이버 아저씨의 짧은 강의 흔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