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26일 화요일. 3일째 날. 아침에 A 아파트에 가서 집을 계약했다. 리싱 오피스에서 계약과 아파트 관리까지 하는 시스템이 한국과는 달라 생소했다. covid-19로 대부분의 리싱 오피스가 예약제로 운영된다고 한다. 오픈 시간에 맞춰 닫힌 사무실 문을 노크하니 직원이 문을 열어주었다. 그런데 계약 신청은 아파트 웹사이트에서 해야 하므로 돌아가서 온라인으로 하라고 한다. 판데믹 상황 때문이기도 한 것 같다. 숙소로 다시 돌아가야 하나 망설이고 있는데 좀더 나이가 많은 매니저가 다시 문을 열고 나와서 사무실 안의 컴퓨터로 계약 진행을 할 수 있다고 했다. 다행히 숙소에 돌아가는 일 없이 아파트 홈페이지에서 새로 계정을 만들고 몇 가지 서류에 사인을 했다. 12개월 계약에 1개월 치 렌트비를 할인해주는 조건이다. 종종 이런 프로모션을 한다고 한다. Holding deposit 500불과 application fee 50불을 지불했다. 이 돈은 입주 전 첫 달 렌트비에서 제외하게 된다. 가능한 입주일은 닷새 뒤였다. 그동안 웹페이지에서 정식 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첫 달 렌트비가 포함된 입주비를 지불해야 한다. 아파트 이름이 쓰여진 파일에 담긴 여러 장의 서류를 받고 나니 집을 계약한 게 조금은 실감났다. 입국 후 해야할 가장 중요한 일 중 하나를 해결했다.
다음은 은행 계좌를 만들 차례였다. 근처 쇼핑몰에 있는 Bank of America 지점을 방문했다. 거리두기 지침으로 건물 내에 들어갈 수 있는 인원에 제한을 두고 있어서 십 분 정도 줄을 서 기다린 뒤 입장했다. 지점 내에는 뱅커들의 사무실이 있고, 계좌 개설 업무는 그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 같다. 아내와 공동으로 사용할 수 있는 체크 계좌와 세이빙 계좌를 만들고 데빗카드를 신청했다. 신용 점수가 없는 상태에서 신용카드는 만들기 어렵다고 알고 있었는데, 담당 뱅커가 신용카드 신청도 권해 함께 진행했다. 신청한 카드는 일주일 정도 내에 집 주소로 배송된다고 한다. 복잡한 절차를 거쳐 온라인 뱅킹 신청까지 마무리한 뒤 한국에서 환전했던 현금 4만불을 입금했다. 큰 돈을 가지고 다니며 불안해했던 아내가 이제야 안심할 수 있게 되었다.
쇼핑몰 안에 있는 판다익스프레스에서 늦은 점심을 해결했다. 매장 내 식사가 안되는 곳이 많아 식사할 곳을 찾기도 쉽지 않다. 매장이 넓거나 외부에 간이 식탁과 의자를 둔 식당 정도가 선택 가능했다.
식사 후에 샌디에고에서 가스와 전기 공급을 담당하는 기관인 SDGE에 가서 가스와 전기 신청을 해야 했다. SDGE 서비스 신청은 가스와 전기 사용을 위한 것이지만, 거주지를 증명하는 역할도 한다. 아이들 학교 편입 시 대개 두 개 이상의 거주지 증명서를 제출해야 하는데 SDGE의 확인서가 그 중 하나이다. 웹페이지를 통한 서비스도 제공했지만 이를 통한 신규 신청은 안되는 것 같았고, 전화로 신청을 할 수도 있었지만 다운타운 쪽도 구경할 겸 직접 가보기로 했다. 하루 종일 따라다니느라 힘들었는지 아이들은 금새 뒷자리에서 잠이 들었다. 다운타운까진 20마일 정도 되었지만 20분 정도면 갈 수 있었다. 어디를 가든 지도 상의 거리는 멀어도 고속도로를 통해 가니 오래 걸리진 않는다.
SDGE에 도착했지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문 앞을 지키는 직원이 안내문을 주면서 covid-19 때문에 방문 접수를 받지 않는다고 한다. 별다른 소득 없이 숙소로 돌아가야 했다. 차를 주차해둔 곳으로 가는데 둘째가 화장실에 가고 싶다고 한다. 다운타운에선 공중 화장실을 찾기도 쉽지 않았다. 일단 차를 타고 집으로 가는 도중에 급히 쇼핑몰에 들렀는데 너무 급했는지 차에서 막 내리자마자 화장실을 찾기도 전에 쉬를 하고 말았다. 하루 종일 잔뜩 긴장을 했던 상태라 맥이 풀리면서 피곤이 밀려왔다.
근래에 이렇게 긴 하루를 보냈던 적이 없었던 것 같다. 결국 전기와 가스 서비스는 전화로 신청했다. 다행히 콜센터는 저녁 여덟 시까지 운영을 하고 있었다. 발음이 정확치 않으니 전화로 인적사항, 새 주소와 이메일을 전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연결 상태가 좋지 않았는지 중간에 전화가 끊겨 다시 전화가 연결되기까지 또 오랜 시간이 걸렸다. 콜센터 직원이 알려준 이메일로 photo ID를 보내야 했는데 직원의 이메일을 제대로 받아 적었는지도 확신이 들지 않았다. 다음 날 오전 직원의 이메일 답신을 받고 나서야 마음이 놓였다. 한국에서라면 몇 시간이면 되었을 일들이 이곳에선 두세 배의 시간과 노력이 든다.
1월 27일 수요일. 4일째 날. 인터넷을 신청했다. 스펙트럼과 AT&T를 많이 이용하는 것 같고, 아파트에서 준 파일에도 두 회사의 전단지가 끼워져 있었는데 서비스 내용과 가격은 비슷했다. 인터넷 신청은 웹페이지에서 가능해 수월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 (직접 방문이나 전화를 하지 않아도 된다니 이런 황홀한 서비스가 있나!) 한국과 달리 배송된 모뎀을 고객이 직접 연결해야 한다. A 아파트는 동축케이블 단자가 설치되어 있어서 연결이 어렵지 않을 것 같지만 오래된 아파트나 주택은 어떨지 모르겠다. 비용을 추가하면 무선 공유기를 함께 신청할 수 있는데 한국에서 쓰던 iptime 공유기를 가져와서 따로 신청하진 않았다.(실제 사용에도 별다른 문제는 없었다.)
도착 후 사흘 동안 집 계약, 은행 계좌 만들기, 전기와 가스 신청, 인터넷 신청을 끝냈다. 아내와 나에게도 잠시 휴식이, 아이들에게도 숨돌릴 시간이 필요했다. 점심을 먹기 전에 가까운 해변에 가보기로 했다. 자동차로 5분 거리에 있는 토리 파인즈 스테이트 Torrey Pines State 비치에 들렀다. 아직은 겨울 날씨가 쌀쌀한 편이라 - 그래도 섭씨 15도이다 - 수영을 하는 사람들은 없지만 간간이 서퍼들은 볼 수 있었다. 바닷바람이 상쾌하다. 며칠간 받았던 스트레스도 바람에 날아가는 기분이었다. 아이들도 예쁜 자갈과 조개껍데기를 주우며 오랜만에 한가로운 시간을 보냈다.
Torrey Pines State Beach |
점심은 키어니메사 Kearny Mesa 의 한인 고기 뷔페 식당에서 먹었다. 거리두기로 매장 입장에 제한이 있었지만 사람이 많지 않아 오래 기다리지 않고 들어갈 수 있었다. 입국 후 며칠간 제대로 된 식사를 못했던 나도 아이들도 오랜만에 한국식 고기 구이를 배부르게 즐겼다.
식사 후에 근처 H마트에 들러 먹을거리를 샀다. 샌디에고의 한인 마트는 H마트와 시온마켓 두 곳을 꼽는다고 하는데 앞으로 수없이 오게 될 것 같다. 마트 회원 카드를 만들었다. 아파트 입주일 전까지는 지금 묵는 레지던시에서 지내야 한다. 음식을 조리할 도구가 많지 않아 간단히 먹을 수 있는 것들로 선택하다 보니 즉석식품 위주로 고를 수 밖에 없었다.
숙소에 들렀다가 무빙세일을 받기로 한 C 선생님 댁에 방문했다. 샌디에고 한인 웹사이트인 SDSARAM을 통해 거래 약속을 했고, 살림은 입국 2주 후에 받기로 했다. 아파트 입주 후에도 일주일 정도는 가구와 살림이 갖춰지지 않은 상태에서 지내야겠지만, 새로 구입하거나 개별로 중고물품을 받는 것보단 되도록 살림 전체를 한꺼번에 받는 것이 여러모로 편하다. 받을 물품을 체크하면서 자질구레한 도구들도 무료로 받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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