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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6월 11일 일요일

당신의 건강 문해력은 안녕한가요

최근 몇 년간 한국 사회를 달군 이슈 중 하나는 문해력에 대한 것이다. 작년에 있었던 ‘심심한 사과’ 논란이 그 예이다. 어느 웹툰 작가의 사인회를 준비하던 카페 측에서 예약 과정의 불편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드린다는 글을 올렸는데, 일부 누리꾼들이 '마음의 표현 정도가 깊고 간절하다'란 뜻의 심심(甚深)이란 단어를 ‘지루하고 재미가 없다’는 뜻으로 오해하고 사과에 성의가 없다며 주최측을 비난한 것이다. 이 사건이 알려지면서 디지털 세대의 낮은 문해력을 개탄하는 이들이 많았다.

해프닝 정도로 넘길 일이 논란이 된 이유는 이전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어서였다. 몇 년 전 영화 ‘기생충’ 개봉 당시엔 어느 평론가의 한 줄 평이 화제가 되었다. “상승과 하강으로 명징하게 직조해낸 신랄하면서 처연한 계급 우화”라는 평에 대해, 무슨 말인지 이해를 못하겠다, 너무 현학적이다, 꼭 어려운 단어를 써서 잘난 체를 해야 하느냐며 SNS와 게시판을 통해 불만을 제기한 이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이다. 당시에도 평론의 내용보다 단어의 어려움이 화제가 되는 상황의 배경에 낮은 문해력이 있다고 해석하는 의견이 많았다. 제작년엔 정치권에서 모 당대표가 다른 당의 대표에게 ‘무운을 빈다’라는 말을 했는데, 이를 운이 없기를 바란다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논평을 한 방송사 기자가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같은 해엔 ‘사흘’ 논란도 있었다. 토요일인 광복절부터 월요일 임시 공휴일까지 사흘 연휴가 이어진다는 신문 기사에 대해 순 우리말인 ‘사흘’의 뜻을 4일로 착각한 이들이 “3일인데 왜 사흘이라고 쓰냐”는 댓글 항의를 올렸던 것이다. 덕분에 ‘사흘’이 포털 사이트의 검색어 1위에 오르기도 했다. 비슷한 사례로 모레 다음날을 의미하는 ‘글피’의 뜻을 모르거나 ‘금일’을 금요일로 착각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문해력, 영어로 리터러시(literacy)는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의미한다. 위의 사례들은 단어의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생긴 일들이지만, 단어가 모여 문장이 되고 문장이 모여 단락과 맥락을 이루니 결국 이해의 문제는 단어에만 머물진 않을 것이다. 비슷한 사건이 있을 때마다 한국인의 낮은 문해력을 지적하는 의견이 단골처럼 등장한다. 문맹률이 낮기로는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글을 읽고 이해하는 문해력은 점점 나빠지고 있으며, 특히 청소년과 젊은 세대에서 문제가 심각하다고 한다. 반면에 일부 전문가들은 청소년의 문해력이 낮다는 진단은 성인 중심의 시각이고 문해력 논란도 과장되었다고 반박한다. 요즘 세대가 영상과 멀티미디어에 대한 이해 능력은 훨씬 높으며, 디지털 시대에서 문자 위주의 텍스트를 이전보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문해력이 낮다고 하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온라인 공간에서 오가는 요즘 아이들의 신조어를 외계어처럼 받아들이는 어른들을 보면 틀린 말이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문해력 문제의 심각성을 보는 시각은 이렇게 관점에 따라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인의 전반적인 문해력 수준이 과거에 비해 낮아졌다는 점에는 대부분의 전문가들이 동의하는 것 같다.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와 같이 객관적으로 문해력을 평가하는 점수도 낮아지는 추세이다. 초중고 교사들 역시 학생들의 문해력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글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해 교과서나 긴 지문을 읽기 버거워한다는 것이다. 대학도 예외는 아니어서 길고 복잡한 글의 맥락을 파악하고 글로 자신의 생각을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글을 읽고 쓰는 법을 가르치는 강의가 보편화된지 오래이다. 서울대에서는 작년부터 전체 신입생을 대상으로 글쓰기 평가를 시행해왔는데 올해 시험의 경우 3명 중 1명이 미달에 해당하는 점수를 받았다고 한다.

문해력과 관련된 논란이 반복되자 작년엔 대통령까지 나서 국무회의에서 “전 세대에 걸쳐 디지털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체계적으로 제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바야흐로 국민의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을 국가가 걱정하는 상황이 된 것인데, ‘문자와로 서르 사맛디 아니할쎄 어린 백셩을 어엿비너긴’ 세종 시대 이후 육백 년 만의 일이 아닐까 싶다.

위에서 언급한 디지털 문해력은 스마트폰 등장 이전엔 존재하지 않았던 개념이다. 과거엔 문자로 된 글을 두고 문해력을 이야기했지만, 요즘 문해력은 단순히 단어와 문장의 뜻을 이해하는 것보다 더 넓은 의미를 포함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문자 외에 이미지나 동영상 등 다양한 형태의 텍스트를 접한다. 그러다 보니 문해력도 컴퓨터 문해력, 미디어 문해력, 정보 문해력, 수 문해력, 과학 문해력 등 대상에 따라 다양하게 세분화된다. 이어서 이야기할 건강 문해력도 그 중 하나이다.

헬스 리터러시라고도 불리는 건강 문해력은 ‘건강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정보를 이해하고 해석하는 능력’을 말한다. 건강 정보를 제대로 읽고 판단하지 못하면 자칫 건강에 해를 끼칠 행동을 할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메탄올을 마시면 감염을 막을 수 있다는 가짜 정보가 돌면서 실제 메탄올을 마셔 전세계적으로 수백 명이 사망한 사례가 대표적이다. 국내에서도 감염을 예방한다며 신도들의 입에 소금물 스프레이를 뿌린 종교 시설에서 집단 감염이 발생하기도 했다. 이러한 이유로 국제 기구와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일찍부터 건강 문해력 향상을 국가 보건 정책의 주요 의제로 채택하고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다.

2021년 국내 성인 9500명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 건강 문해력이 ‘적정’ 수준으로 나온 응답자는 전체의 50.6%, ‘경계’수준은 20.1%, ‘부족’수준은 29.3%였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강 정보를 적절히 찾고 이해할 수 있는 성인이 절반에 불과하다는 의미이다.(한국의료패널 부가 조사) 특히 고령자와 취약 계층에서 문해력 점수가 낮았다. 이렇게 상대적으로 건강 문해력이 더 낮은 사람들에게는 적절한 교육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실제로 교육부에서 성인 문해 교육 활성화 지원 사업을 하고 있고, 일부 지자체에서는 자체적인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한다. 아직까진 충분치 않지만 대통령도 문해력을 높일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지시했으니 앞으로 더 나아지지 않을까 기대한다. 그런데 교육 외에 도움이 될 만한 다른 방법은 없을까.

고혈압으로 진료를 받던 환자가 있었다. 그는 서너 달에 한 번씩 진료실을 찾았고, 그날도 여느 때처럼 혈압을 확인하고 약을 처방하려는데 그가 걱정스런 표정으로 종이 한 장을 내밀었다. 건강검진 결과를 받았는데 B형 간염 검사 항목에 이상이 있다는 것이었다. 결과지를 살펴보니 B형 간염 항원은 음성, 항체는 양성이었다. 문제될 것이 없는 결과라 뭐가 이상한지 되물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항체 검사 결과의 양성이란 단어를 보고 이상이 있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오래 전 부친이 간경변을 앓다가 돌아가셨는데 자신도 B형 간염이 생긴 줄 알고 며칠 동안 속앓이를 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늘 병원에 온 김에 검사를 다시 받아보려 했다는 것이다. 같은 양성이라도 항원과 달리 항체 양성은 면역이 있다는 뜻이며, 향후에도 B형 간염에 걸릴 위험은 없다고 설명하니 그제서야 얼굴빛이 밝아졌다. 검사를 받지 않아도 되었음은 물론이다.

B형 간염 항원과 항체 양성의 경우처럼, 양성(positive)과 음성(negative)은 검사 항목에 따라 긍정적인 결과가 되기도 하고 부정적인 결과가 되기도 한다. 같은 간염이라도 B형 간염은 ‘항체 양성’이 면역이 있다는 뜻이지만 C형 간염에선 반대로 병이 있어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이다. 더 나아가면 ‘악성(malignant)’의 반대말인 ‘양성(benign)’도 있다. 악성 종양, 양성 종양이 예이다. 양성이란 단어만큼 흔히, 그리고 다양한 의미로 쓰이는 의학 용어도 없을 것이다. 이쯤 되면 일반인 입장에선 헷갈릴 수밖에 없다. 코로나19 덕분에 그나마 ‘검사 양성’의 의미를 알게 된 사람이 많아지긴 했다. 하지만 건강 검진 결과지에 등장하는 수많은 ‘양성’의 의미를 구별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헷갈리는 환자들을 볼 때마다 악성의 반대말이라도 다른 용어를 사용했다면 낫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을 종종 느낀다. 애초에 더 나은 용어를 썼다면 좋겠지만, 당장 용어를 바꿀 수 없다면 그 의미를 좀더 자세히 설명해야 할 것이다.

전 국민이 건강 검진을 받게 되면서 과거엔 의사의 설명을 통해서만 듣던 검사 결과를 직접 접하게 되는 일도 많아졌다. 의료진의 설명 없이 달랑 결과지만 받는 경우도 흔하다. 그러다 보니 검사 결과에 이상이 없는데도 괜한 걱정을 하거나, 반대로 이상이 의심되는데도 꼭 필요한 후속 검사나 진료를 받지 않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사실 많은 검사 결과가 담긴 결과지를 혼자 제대로 이해하는 것은 애초부터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직장인 1000여명에게 조사한 결과 건강 검진 결과지 내용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71%나 되었다고 한다.(2020년 리치플래닛 조사) 수치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는데다 어려운 전문 용어가 많아 검사 결과의 의미를 정확히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에 대해 의사의 설명을 들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건강 검진 결과지는 일반인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만큼 친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국민의 문해력을 높이는 교육은 중요하다. 하지만 건강 정보의 경우엔 그보다 먼저 국민의 문해력 수준에 맞는 정보를 만드는 것이 우선일 것이다. 건강 검진 결과지도, 온라인 건강 정보도 보다 친절해질 필요가 있다. 질병관리청의 국민건강포털이나 대학 병원 홈페이지 등 정확한 정보를 담은 플랫폼은 이전보다 늘고 있다. 하지만 이곳에 담긴 정보들은 여전히 어려운 구석이 많으며, 국민의 눈높이에 맞추기 위한 노력이 더 필요하다. 정확하고 어려운 정보보다 부정확하고 쉬운 정보가 대중에게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참고

한국인 '건강 문해력' 어느 정도?…"성인 절반만이 '적정' 수준"

https://www.yna.co.kr/view/AKR20230304027400530

"직장인 71%, 건강검진 결과지 충분히 이해 못 해"

https://ebn.co.kr/news/view/1027995

 

2023년 5월 13일 토요일

ChatGPT, 유튜브, 건강 정보

챗지피티(ChatGPT)가 화제다. 미국의 스타트업 기업 오픈에이아이가 개발한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으로, 지난해 11월 출시 후 겨우 두 달 만에 사용자 수가 1억명을 넘겼다고 한다. 이 챗봇에 대한 뉴스 기사, 책, 논문이 쏟아지고 있다. 인기를 넘어 가히 열풍이라 불릴만하다. 어마어마한 양의 자료를 학습한 덕분에 인간의 언어를 이해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점이 특징인데, 기껏해야 단답형이나 정형화된 답변 정도를 할 수 있는 기존의 챗봇과는 달리 자연스러운 대화가 가능하다. 이전 대화 내용을 기억해 맥락을 이해할 수도 있고, 질문을 그저 알아듣는 수준이 아니라 웬만한 전문 영역에서까지 그럴듯한 답을 내놓아 기존의 챗봇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경험을 선사한다.

나도 챗지피티와 몇 번 대화를 나눠보았다. 중학생 아들에게 적당한 생일 선물을 알려달라고 하니 게임 콘솔, 자전거, 악기, 책, 스포츠 용품 등을 추천했다. 십대 남자 아이를 위한 무난한 답변인데, 아이의 관심사와 성격을 고려해야 한다는 조언도 빼놓지 않았다. 러닝할 때 들을 한 시간짜리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어달라는 요청에는 스무 곡짜리 리스트를 뚝딱 내놓았다. 이중 몇 곡은 내 스마트폰의 리스트에도 추가해 종종 듣고 있다.

조금 더 전문적인 요구도 해보았다. 미국, 영국, 한국의 의료 제도를 비교해달라는 요청에 한 장 남짓 분량의 요약문을 깔끔하게 만들어냈다. 리포트를 보니 무턱대고 서술하는 것이 아니라 세 나라 제도의 특성과 핵심을 이해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체적인 예시를 포함해 이천 단어 분량으로 좀더 긴 글을 요구했다. 그러자 미국의 경우엔 오바마 케어를 둘러싼 논란을, 영국의 경우엔 관절 치환술과 같은 수술을 받기까지의 오랜 대기 기간을 문제점으로 꼽았다. 한국에 대해선 코로나 팬데믹에 대해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었던 배경에 고유의 의료 제도가 있었다고 설명했다. 학부 리포트 정도론 충분한 수준이었다. 온라인에선 챗지피티를 사용한 이들의 경험담이 넘쳐난다. 논문 초록이나 서론을 특정 저널의 형식에 맞춰 그럴듯하게 작성해 주더라는 후기도 찾을 수 있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교육계와 학계에서도 챗지피티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과제에 챗지피티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거나 인공지능 활용에 대한 지침을 마련한 학교가 늘고 있고, 네이처나 사이언스와 같은 유명 저널은 챗지피티를 저자로 인정할 수 없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임상 의학계도 예외는 아니어서, 최근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서는 챗지피티 활용에 있어서 장점과 한계에 대한 특별 기고를 발표하기도 했다.  

챗지피티는 생성형 인공지능(Generative AI)에 속한다. 챗지피티 열풍의 핵심은 이용자의 요구에 따라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내는 이 생성 능력에 있다. 하지만 놀라운 능력 이면에는 그림자도 있는데, 바로 ‘환각(hallucination)’이라 부르는 문제다. 인공지능이 모르는 질문에 대한 답변도 아는 척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현상을 일컫는 용어이다. 세종대왕이 맥북 프로를 던진 사건에 대한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을 알려달라는 황당한 질문에 실제 한글 창제 과정에서 있었던 역사적 사건이라고 답을 한 사례는 유명하다. 현재 한국 대통령을 묻는 질문도 환각의 대표적인 예다. 2021년 자료까지만 학습한 챗지피티가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함에도 종종 틀린 답을 천연덕스럽게 내놓는다. 

이러한 사례를 고려하면 아직까지 챗지피티를 정보 검색 용도로 쓰기엔 한계가 있어 보이지만, 언젠가는 인공지능을 이용한 검색이 대세가 될지도 모른다. 최근엔 마이크로소프트가 챗지피티의 최신 언어 모델 GPT-4를 탑재한 새로운 빙을 내놓고 구글의 아성에 도전하고 있다. 구글도 생성형 인공지능을 이용한 검색 서비스를 준비하고 있다 하니 두 공룡 기업의 싸움이 어떻게 진행될지 흥미롭다. 두 기업의 생성형 인공지능 중 어느 쪽이 승자가 될지는 모르지만 개인적으로는 검색 시장에서 구글의 영향력이 더 강해질 거라고 생각한다. 바로 유튜브 때문이다.

작년에 아들의 자전거를 새로 사면서 자전거를 자주 타는 동료에게 자전거 모델 추천을 부탁했다.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던 그가 말했다. “유튜브도 한번 찾아보세요. 요즘은 자전거 타는 사람들이 많아서 유튜브에 정보가 다 있습니다.” 유튜브로 검색을 한다고? 검색 하면 자연스레 구글이나 네이버를 떠올리는 나로선 낯선 경험이었다. 그런데 찾아보니 실제 유용한 정보가 많았다. 요즘 유행하는 자전거 모델, 자전거를 살 때 주의할 점, 구입 후기와 사용기 등 초보에게 필요한 콘텐츠도 충분했다.

직접 검색을 해보니 왜 유튜브를 이용하는지 이내 알 수 있었다. 동영상은 텍스트나 이미지에 비해 이해하기 쉽고 기억에도 오래 남았다. 자전거를 고를 때만 그럴까. ‘강남역 맛집’, ‘부산 여행’, ‘스파게티 만들기’ 등의 검색어를 입력할 때 네이버나 구글, 그리고 유튜브 중 어느 쪽이 더 생생한 정보를 줄 수 있을지를 생각해보자. 제품 사용기, 여행기, 요리, 맛집 후기 등 사용자 경험에 기반한 정보라면 동영상이 주는 장점이 클 것이다. 영화나 미술, 게임과 같은 문화 콘텐츠도 마찬가지이다. 유튜브에는 신작 영화나 게임 스토리를 요약한 십여 분짜리 영상이 넘쳐난다. 젊은 연령일수록 유튜브를 더 많이 이용한다고 하니 유튜브의 영향력은 점점 커질 것이다. 컴퓨터 게임을 좋아하는 중학생 내 아들만 해도 검색을 위해 초록색 테두리 창이 아닌 붉은색 유튜브 아이콘을 먼저 떠올리지 않을까 싶다.

검색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 중에 건강에 대한 내용을 빼놓을 수 없다. 의료는 전문성이 높고 학문의 발전 속도가 빨라 공급자와 소비자 간에 정보의 비대칭이 가장 심한 분야이다. 환자 입장에선 이 의사의 말이 맞는지 틀린지, 이 병원과 저 병원 중 어떤 병원이 더 나은 진료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그래서 인터넷을 뒤진다. 미국의 조사에 따르면 환자 네 명 중 세 명이 자신의 질병에 대한 의사결정 과정에서 온라인 정보를 이용했다. 최근 국내 조사에서도 국민 열 명 중 일곱 명이 인터넷을 통해 건강 정보를 얻는다고 답했다(과기정통부 2021년 인터넷이용실태조사). 이는 팬데믹을 거치며 크게 증가한 수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건강 정보를 찾지만 막상 그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 판단하기란 역시 어렵고 잘못된 정보를 만나는 경우도 많다.

국가 기관이나 대학 병원의 정보라면 대개 믿을만하지만 난이도가 문제이다. 건강 정보를 이해하고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헬스 리터러시(health literacy)라고 하는데, 2020년 조사에서 적정 수준의 헬스 리터러시를 지닌 사람은 우리 국민의 29.1%에 불과했다(한국보건사회연구원). 건강 정보에 대한 일반인의 이해 수준이 낮은 만큼 정보의 내용도 이에 맞추어야 하겠지만 그게 만만치 않다. 

몇 년 전 질병관리청의 국가건강정보포털 원고를 집필한 적이 있다. 국민에게 질병이나 증상에 대한 정보를 제공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웹사이트로, 유용한 정보가 많다. 이 포털의 원고 집필 지침은 누구나 이해할 수 있도록, 초등학교 고학년 눈높이에 맞추도록 하는데 이렇게 쓰는 것이 보통 고민스런 일이 아니었다. 의학 용어 하나, 표현 하나도 일반인이 이해할 수 있도록 풀어 써야 했다. 나를 비롯한 모든 집필진이 비슷한 고민을 했겠지만 정보들이 이용자의 눈높이에 충분히 맞추어져 있는지는 의문이다. 전문가라 해도 의학 지식의 양과 그 지식을 일반 대중에게 전달하는 능력은 비례하지 않기 때문이다. 

텍스트 형식에 비해 동영상은 쉽고 친근하며 정보 전달력도 높다. 이런 장점은 딱딱한 의학 지식을 전달하는 과정에서 빛을 발한다. 이러한 이유로 건강 정보를 검색하는 플랫폼으로서 유튜브의 역할도 점점 커지고 있다. 유튜브의 인기가 높다 보니 학회, 대학 병원은 물론 웬만한 종합 병원들도 홍보와 정보 전달 목적으로 유튜브 채널을 운영한다. 의사 중에서도 유명 유튜버가 많다. 비의료인이 운영하는 구독자 수십만의 채널들도 있다. 그렇다면 이들 채널의 정보는 얼마나 정확할까. 

캐나다 연구진에 따르면 코로나 19 관련 인기 있는 유튜브 컨텐츠를 분석한 결과 27.5%가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었다. 국내 연구에서도 통풍에 대한 유튜브 컨텐츠를 검토한 결과 10개 중 3개의 컨텐츠가 잘못된 정보를 주거나 개인적 경험을 전달하는 수준으로 나타났다. 유용한 컨텐츠의 대부분은 통풍과 관련된 학회나 전문의가 제작한 것이었고, 반면에 비전문가의 컨텐츠는 잘못된 정보를 담은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영상에 대한 선호도는 정보의 정확성 여부와 관련이 없었고, 조회 수는 부정확한 컨텐츠가 오히려 높았다. 이 경우 검색 결과 부정확한 정보를 만나게 될 확률이 높아진다. 유튜브 검색 알고리즘은 정확성보다는 컨텐츠의 인기나 과거 시청 패턴을 기반으로 하기 때문이다.

유튜브에서 가짜 건강 정보를 피하기 위한 팁을 몇 가지 소개한다. 일단 의사가 만든 동영상을 선택하면 비교적 안전하다. 더 깐깐하게 고르자면 의사 개인 채널보다는 병원이나 학회의 채널이 낫다. 의사라고 해서 모두 맞는 말만 하진 않기 때문이다. 의사가 아닌 기타 무슨무슨 전문가나 박사 등의 채널은 적당히 거른다. 건강기능식품 쇼핑몰을 함께 운영하는 채널은 피하는 게 답이다. 추가로 ‘이것만 하면 된다’, ‘이건 큰일난다’거나, ‘무조건’, ‘반드시’ 등의 단어로 확신을 내뿜는 제목은 조회 수를 늘리기 위한 장치일 뿐이니 내용을 기대하지 말 것.

챗지피티에서 환각 현상과 같은 오류는 시간이 가면서 줄어들겠지만 유튜브에서 엉터리 건강 정보를 만나는 일이 줄어들지는 의문이다. 건강 정보의 경우 어느 영역보다도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격차가 큰데다, 유튜브 컨텐츠 생산자의 수입은 정보의 질이 아니라 구독자와 조회 수가 결정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조에서는 정확한 내용보다 구독자의 관심을 끌 만한 내용의 정보가 많이 만들어지고 유통될 수밖에 없다.

부정확한 정보가 문제가 되면서 유튜브에서는 의사들이 만든 컨텐츠를 상단에 배치하는 등 나름의 대응책을 마련해 왔다. 최근엔 대학 병원 중심으로 인증 기관을 선정하고 신뢰도가 높은 컨텐츠를 우선 노출시키는 ‘유튜브 헬스’ 서비스를 시작한다고 한다. 일단 환영할 일이지만 문제가 해결될지는 모르겠다. 정확한 정보가 아니라 조회 수를 올릴 수 있는 내용의 컨텐츠가 수익을 올리는 구조는 그대로일 테니 말이다.


참고문헌

Osman W, Mohamed F, Elhassan M, Shoufan A. Is YouTube a reliable source of health-related information? A systematic review. BMC Med Educ. 2022 May 19;22(1):382. 

Koo BS, Kim D, Jun JB. Reliability and Quality of Korean YouTube Videos for Education Regarding Gout. J Korean Med Sci. 2021 Nov;36(45):e303.

‘의료 괴담’은 그만…유튜브, 의학 콘텐츠 인증제 도입

https://www.hani.co.kr/arti/economy/it/1077061.html

2023년 3월 2일 목요일

음식은 약이 아니다

오십대 남자 환자에게 검사 결과를 설명하던 중이었다. 혈당 수치 오른쪽에 정상 범위보다 높음을 의미하는 붉은색 화살표가 선명했다. 

“혈당이 높습니다. 작년보다 더 높아졌어요. 지금 수치는 당뇨병에 해당합니다.”  

공복 혈당 장애라 불리는 당뇨병 전 단계에 접어든 지도 벌써 몇 년 되었으니 당뇨병을 조심하라는 이야기도 되풀이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도통 처음 듣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당뇨병이 온 건 아니겠지요?”

일찍이 정신의학자 엘리자베스 퀴블러로스는 죽음을 앞둔 사람이 부정, 분노, 타협, 우울, 수용의 다섯 단계 감정을 차례로 겪는다고 했다. 죽음의 경우만큼 강렬하진 않겠지만 만성 질환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도 비슷한 감정의 수순을 거친다. 지금은 그중 첫 번째인 부정 단계라 할 수 있다. 환자들은 대개 자신이 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나는 그와 눈을 맞추고 천천히 설명했다. 

“아뇨. 당뇨병이 온 겁니다. 이제 치료가 필요하다는 의미죠.”

“제 가족 중에 당뇨병 환자도 없는데 왜 저만 당뇨병이 생겼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그의 언성이 약간 높아졌다. 두 번째, 분노의 단계다.

“유전적인 원인 외에도 다른 여러 원인들이 있고 아직까지 알려지지 않은 부분도 있습니다. 내게 왜 당뇨병이 생겼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어요. 사실 지금은 왜 당뇨병에 걸렸는지보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할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럼 이제 약을 먹어야 하나요? 당뇨병 약을 먹기 시작하면 평생 먹어야 한다고 들었는데요.”

“필요하다면 그렇게 해야죠. 하지만 당뇨병 초기이고 심하지 않은 상태니 먼저 생활 습관을 바꿔서 조절해 봅시다. 변화가 없으면 약을 처방해 드리겠습니다.”

침울한 표정을 짓던 그가 조금은 안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당뇨병을 처음 진단받은 환자 대부분은 평생 약을 먹기를 부담스러워 한다. 

“운동을 더 열심히 해야겠습니다. 그럼 당뇨병이 생기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겠지요?”

우울과 타협 단계. 다섯 단계 감정이 반드시 순서대로 찾아오지는 않는다. 중간 단계를 건너뛰기도 하고 타협을 했다가 다시 분노 단계로 돌아가기도 한다. 지금은 잠시 앓고 지나갈 것처럼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시간이 지나 병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자연스레 마지막 단계인 수용에 이를 것이다. 그때까지는 해야할 일을 구체적으로 알려줄 필요가 있다.

“운동은 걷기를 하고 계시니 조금 더 늘려보지요. 속보로, 숨이 차고 땀이 날 정도로 강도를 높여서 빨리 걷는 게 좋습니다. 매일, 최소한 일주일에 다섯 번 이상은 해야 합니다.”

“펜을 빌릴 수 있을까요?”

모니터 옆 철제 펜꽂이에서 볼펜을 꺼내 환자에게 건넸다. 그는 혈당 검사 수치 옆에 방금 들은 말을 기록했다. 반듯한 글씨였다. 나는 그가 기록을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

“다음은 체중 감량입니다. 한 달에 일 킬로그램씩. 석 달에 삼 킬로그램만 줄여보세요.”

그는 선생님의 강의를 요점 정리하는 학생처럼 볼펜을 부지런히 놀렸다. ‘체중 줄이기, 3킬로 / 3개월’이라 적고 앞쪽의 숫자 3에 동그라미를 두 번 그렸다. 

“마지막으로 식단입니다. 체중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먹는 양을 줄여야 합니다. 지금 먹는 양에서 삼분의 일을 덜어내고 삼분의 이만 먹는다고 생각하세요. 단맛이 나고 당분이 많은 간식은 피하되, 무엇보다 골고루 드시는 게 중요합니다.”

“한 가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그가 정중하게 물었다. 나는 설명을 멈추고 그의 질문을 기다렸다. 그의 얼굴에 기대 섞인 표정이 떠올랐다. 다음에 이어질 질문이 무엇인지 알 것 같았다. 

“뭘 먹으면 혈당이 내려갈까요? 당뇨병에 도움이 되는 식품 같은 게 없을까요?”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린 적이 없다. 이 질문은 만성 질환 환자와의 대화 중에 주로 타협 또는 수용 단계에서 등장한다. 내게는 어렸을 적 그림책에서 보았던 전래 동화에 대한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질문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역시 나는 그 이야기를 떠올렸다. 

옛날 어느 마을에 병든 어머니를 모시고 사는 효자가 있었다. 추운 겨울날, 어머니가 딸기를 먹고 싶다고 했다. 엄동설한에 딸기가 있을 리 만무했지만, 딸기를 먹으면 병이 나을 것 같다는 어머니의 말에 효심이 깊은 아들은 딸기를 구하기 위해 눈 덮인 산을 올랐다. 추위를 무릅쓰고 산 속을 헤매던 효자 앞에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그를 등에 태우고 딸기가 있는 곳에 데려다 주었다. 아들이 구해온 딸기를 먹은 어머니는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고 한다.

이야기는 여러 버전이 있어서 어떤 때는 효자가 효녀로, 호랑이가 산신령으로, 딸기가 봄나물이나 홍시로 바뀌기도 한다. 그래도 주된 내용은 대동소이하다. 호랑이를 감동시킨 효심은 놀랍지만 효심에 대한 설화는 많기에 이 이야기가 특별하진 않다. 내가 이 이야기를 떠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음식으로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생각이 흥미로워서이다. 한해 동안 병치레를 피하기 위해 대보름날에 오곡밥이나 부럼을 먹던 풍습을 보면 음식이 질병을 예방하거나 치료한다는 개념이 꽤나 오래 되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오래 전 약도 의학 지식도 부족했던 시대엔 음식과 약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았다. 당시엔 풀뿌리를 빻거나 나무 열매를 달여서 약으로 쓰기도 하고, 관절이 아픈데 좋다는 음식을 기침이나 두통에 쓰기도 했을 것이다. 우연이든 아니든 이렇게 만든 약을 먹고 어떤 이의 병세가 좋아졌다면 그 이야기가 다른 사람에게 전해지거나 책으로 쓰이기도 했을 것이다.

‘약식동원(藥食同源)’이라는 말이 있다. 약과 음식은 그 근본이 동일하다는 뜻으로, 기원전 중국 진한 시대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진 의서 <황제내경>에 적힌 말이라 한다. 그러니 음식으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믿음은 예수의 탄생만큼이나 오래된 셈이다. 조선 선조 때 허준이 집필한 <동의보감>에서도 같은 말을 찾을 수 있다. 중국과 한국 등 동양 의학에선 체질과 음식의 조화를 중요하게 생각해서인지 음식이 질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개념도 일찍부터 더 깊게 뿌리내렸던 것으로 보인다.(서양 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히포크라테스 역시 비슷한 말을 했다는 설도 있지만 출처가 확실치 않다.) 쑥이나 냉이, 도라지, 더덕 등의 식재료는 한약재로도 알려져 있다. 심지어 이런 약재를 넣어 담근 술도 약(藥)주라고 부른다. 

음식과 관련된 믿음은 지금도 흔하다. 가끔 가는 동네 콩나물국밥 집 벽엔 메뉴판과 함께 염증을 억제하고 대사를 촉진한다는 콩나물의 놀라운 효능에 대한 설명이 걸려있다. 어떤 질병이든 좋다는 음식이 있다. 책이나 방송은 이를 되풀이해 재생산한다. 고향을 소개하는 다큐에서도, 자연인이 등장하는 리얼리티 프로그램에서도 어느 병에 좋다는 음식을 만들고 먹는 모습은 빠지지 않는다. 오죽하면잘 먹고 잘 사는 법이란 이름의 프로그램도 있었을까. 요즘은 유튜브가 한몫 한다. 조회수를 위한 자극적인 제목은 필수이다. 어떤 음식은 먹으면 큰일날 것처럼, 또 어떤 음식은 안 먹으면 큰일날 것처럼 말한다. 이 과정에선 종종 식품의 종류보다 구체적인 개별 식품이 강조된다. 그냥 채소보다는 브로컬리가, 그냥 견과류보다는 브라질너트가, 그냥 가금류보다는 오리고기가 특효라고 콕 집어 이야기하는 식이다. 당뇨병을 예로 들면 여주, 돼지감자, 노니, 누에 등, 스테디셀러만 해도 여러 가지이다. 다들 각각은 흠잡을 데 없는 음식이지만 따로 찾을 만큼 병을 치료하는 특출난 효과는 없다. 하지만 음식점 벽 메뉴에서까지 음식의 효험에 대한 과장된 설명을 볼 수 있을 정도이다 보니 진료실에선내가 어디가 안 좋은데 뭘 먹어야 좋아지느냐는 질문도 흔히 접한다. 건강기능식품의 과도한 인기 이면에도 음식이 약이 된다는 믿음이 자리잡고 있다.

물론 음식은 건강에 중요하다. 하지만 음식으로 모든 병을 치료할 수는 없다. 당뇨병과 같은 만성 질환 관리에 있어 식이 요법은 약물 치료 못지 않게 중요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식이는 개별 음식 한두 가지가 아니라 다양한 음식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식단 전체를 의미한다. 기존의 잘못된 식단은 그냥 두고 특정 음식만 더해 먹는다고 마법같은 변화가 생기진 않는다. 또한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그 음식만 과하게 먹으면 균형이 깨지거나 영양실조가 생긴다. 그러니 내 답을 기대하는 환자에겐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뇨병에 특효인 식품 같은 건 없습니다. 음식은 약이 아니에요.”

2023년 1월 24일 화요일

중용을 지키는 건강 습관

<논어(論語)> 선진편에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성어가 있다. 자공이 공자에게 자장과 자하 중 누가 더 현명한지 묻자 공자는 “자장은 지나치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다.”고 답했다. “그럼 자장이 더 낫다는 뜻입니까”라 다시 물었고 이에 대한 공자의 답은 다음과 같았다고 한다. “지나친 것은 미치지 못한 것과 같다.” 논어와 더불어 사서에 속하는 <중용(中庸)>에서도 비슷한 말이 나오는데 ‘지혜로운 자는 지나치고, 어리석은 자는 미치지 못한다.’라고 했다. 중용은 군자의 예(禮)로서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거나 기대지 않고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한결같은 마음을 의미한다. 

옛 현인들의 말씀 중에 틀린 게 없다는 걸 종종 깨닫는다. 나이가 들수록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중용의 삶에 대한 동경은 커진다. 하지만 그 실천이 얼마나 어려운지도 해가 갈수록 더 깊이 실감하게 된다. 공자는 세상을 살면서 지켜야 할 도리로 중용을 말했지만 중용의 이치는 사람의 말과 행동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갖춘 생리 기능도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한결같이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체온은 36-37도 가량을 유지하고 안정 시에 심박수는 60에서 100회 사이에 있다. 굶거나 과식을 해도 건강한 사람의 혈당은 일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고혈당과 저혈당을 일으키는 당뇨병에서 볼 수 있듯이, 중요한 생리 기능과 관련된 수치가 지나치거나 모자란다면 대개 건강에 문제가 생겼다는 의미이다. 병원의 전자의무기록은 혈액 검사 결과에서 지나치거나 모자란 수치에 붉은색 화살표를 붙여 표시해주는데, 환자의 검사 결과를 열었을 때 붉은색이 보이면 순간 긴장하게 되고 반대의 경우엔 마음이 편안해진다. 공자가 인체의 생리 기전을 알았다면 적정 범위의 검사 결과를 유지하는 것 또한 예(禮)라 칭했을 지도 모르겠다는 실없는 생각도 해본다.

건강과 관련된 생활 습관에서도 중용의 예를 찾아볼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은 식습관이다. 건강에 큰 영향을 미치는 생활 습관으로 식습관과 더불어 흡연, 음주, 운동, 수면 등이 흔히 꼽힌다. 모두가 다 중요하지만 건강한 식습관을 지키는 것이 가장 어렵다고 본다. 담배와 술은 피할 수록 건강에 좋고, 수면이나 운동의 경우엔 부족했을 때가 문제다. 애초에 답은 한쪽 방향으로 명확하게 정해져 있으니 어떤 게 좋을지 고민할 필요가 없다. 알고 있는 정답을 실천하기 어려울 따름이다. 하지만 음식이나 영양소의 경우엔 지나쳐도 문제, 모자라도 문제이다. 중용을 지키는 식습관이 중요하다는 의미이다. 게다가 건강에 이롭거나 해롭다는 음식은 수없이 많아서 골라 먹기가 쉽지 않다. 건강에 좋은 음식이나 식단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없을 것이나, 무엇을 얼마만큼 먹어야 할지 모르니 다른 생활 습관과 달리 일단 정답부터 고민이다. 적당히 먹는 것이 건강에 이롭다고 하지만 그 ‘적당히’의 기준도 음식에 따라, 영양소에 따라, 내 건강 상태에 따라 달라지니 더 어렵다.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중용의 실천은 우선 매일 먹는 음식의 양에서 시작한다. 정확하게 말하면 음식의 열량이다. 내게 필요한 적절한 열량은 기초 대사량과 활동에 의한 대사량을 합친 것과 같은데, 여러 계산 방법이 있지만 대개 하루에 여성은 2000칼로리, 남성은 2500칼로리 정도가 필요하다고 한다. 운동량이 많거나 몸을 많이 쓰는 일을 하는 등 신체 활동량이 많다면 이보다 더 많은 열량을, 반대로 주로 앉아서만 생활하는 사람은 더 적은 열량을 필요로 한다. 하루이틀 폭식을 한다고 체중이 쉽게 늘진 않지만 내가 필요로 하는 열량보다 더 많이 먹는 습관을 오랫동안 유지하면 체중이 늘어 비만으로 이어지게 된다. 반대로 필요한 열량보다 적게 먹는 습관을 유지하면 체중을 줄일 수 있다. 보통 다이어트 식단에서 하루 1500-1800칼로리 정도를 처방하는 데는 이런 이유가 있다. 내가 하루에 먹는 음식의 열량이 궁금하다면 스마트폰을 이용해 어렵지 않게 확인할 수 있다. 식단 분석 기능을 갖춘 애플리케이션만 해도 수십 종류이다. 먹은 음식을 기록하면 열량뿐 아니라 영양소별 섭취량까지 분석해준다. 식사를 일일이 기록하기 번거롭다면 음식 사진만으로 분석을 해주는 애플리케이션도 있으니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식단 전체의 열량을 확인했다면 다음은 개별 영양소를 돌아볼 차례이다. 우리가 살아가려면 뇌와 장기의 활동, 근육의 움직임을 위한 연료인 에너지가 필요하다. 이 에너지를 생성하는 영양소는 3대 영양소, 흔히 탄단지라고 부르는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다. 탄수화물과 단백질은 1그램에 4칼로리, 지방은 1그램에 9칼로리의 열량을 만들어낸다. 비타민, 미네랄과 같은 영양소에 비해 섭취량이 많아 이들을 다량영양소(macronutrient)로 분류하는데, 이들 영양소에 대해선 에너지 적정 비율(acceptable macronutrient distribution ranges, AMDR)을 두고 있다. 총 에너지(열량)에서 해당 영양소가 차지하는 비율의 적정 범위를 말하며, 탄수화물 55-65%, 단백질 7-20%, 지방 15-30%이다. 이 수치는 범위를 벗어났을 때 만성 질환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들을 기반으로 정해졌다. 세 영양소 간의 비율과 균형이 깨어지면 문제가 생긴다. 지나치거나 모자라지 않도록 해야 하니 여기서도 중용의 이치가 적용된다 하겠다.

한국인의 일반적인 식단은 대개 이 적정 범위를 벗어나지 않는다. 2020년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 전체 열량에서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이 차지하는 비율은 60:16:24로 적정 범위 내에 있었다(그림). 하지만 이는 평균 수치일 따름이며 모두가 적절히 먹는다는 의미는 아니다. 적정 범위를 넘어서 지나치거나 모자라게 먹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이다. 세 영양소의 비율은 특히 나이에 따라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노인 연령에선 탄수화물 섭취가 늘고 단백질과 지방의 비율이 줄어든다. 낮은 가계 수입, 사회적 고립, 건강 문제 등으로 다양한 음식을 준비하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노인의 식단이 단순, 빈약해지는 건 다른 나라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문제로 서양에선 이를 ‘tea and toast syndrome’이라 부른다. 우리나라 노인들은 밥, 국, 김치와 밑반찬 등으로 식사를 때우는 경우가 많다. 육류나 생선이 없으므로 탄수화물 위주의 식단이 된다. 실제 국민건강영양조사 결과도 60세 이상에선 탄수화물의 비율이 65%를 초과하고 70세 이상이면 더 높아진다. 이렇게 탄수화물 비율이 너무 늘면 대사증후군, 당뇨병 등의 위험이 커진다. 근육량 유지에 필요한 단백질 섭취가 줄어 노인의 근감소증 위험도 높아진다. 

그림. 한국인의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 섭취 비율 변화
(2011-2020 국민건강영양조사)

지방 섭취가 많은 서양 기준에서 보면 한국인의 식단은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사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탄수화물 섭취량은 해가 갈수록 줄어드는 추세이다. 10년 전에 비하면 탄수화물의 비율이 5퍼센트 정도 줄었다(그림). 탄수화물 섭취 비율이 낮아지면 자연스럽게 단백질과 지방 비율이 높아지는데, 이러한 변화는 젊은 연령층에서 더 뚜렷하다. 특히 심혈관 질환의 위험을 높이는 포화 지방의 섭취량이 젊은 연령에서 빠르게 늘고 있다. 노인의 경우는 탄수화물 과잉과 단백질 섭취 부족이, 청년층에선 단백질과 포화 지방 섭취 과잉이 빈번해지는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서구식 식생활로의 변화와 더불어 체중 감소 목적의 저탄수화물 식단이 유행해온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한동안 인기를 끌었던 저탄수화물 고지방 식단은 단기적으론 체중 감량에 효과적이나 포화 지방의 섭취가 지나치면 나쁜 콜레스테롤이 높아지는 이상지질혈증과 심혈관 질환의 위험이 높아지게 된다. 

탄수화물, 단백질, 지방의 적정 비율을 지켜 먹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음식을 골고루 먹는 것이다. 식품군에 따라 곡류, 고기와 생선류, 채소류가 하루 식사에 골고루 포함되도록 한다. 적당한 양을 먹으려면 식사를 천천히 하고, 한끼를 과하게 먹었다면 다음 끼니는 다소 모자란 듯 먹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려서부터 내 어머니께서는 늘 골고루 적당히 먹는 게 좋다고 하셨는데, 지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도록 하라는 공자의 말씀과 일맥상통한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군자의 예를 체득하는 것이 어디 쉽게 이룰 수 있는 일이던가. 이번 설 명절에 친가에 갔을 때도 팔순이 가까운 노모께서는 당신 말씀과 달리 끼니마다 음식을 지나치게 차려 주셨다. 음식 맛은 두말해 무엇하랴. 매번 과식을 하고 말았으니, 중용의 실천이란 참으로 어려운 것이다. 


참고문헌

* Oh SW. Current status of nutrient intake in Korea: focused on macronutrients. J Korean Med Assoc. 2022 Dec;65(12):801-809.


2022년 10월 10일 월요일

애주가를 위한 변론

학회에서 음주를 주제로 한 세션을 듣던 중이었다. 마지막 강의는 심뇌혈관 질환 환자에 대한 상담이었는데 적정 음주 기준에 대한 설명에 이어 ‘술을 끊어야 하는가?’라는 제목의 슬라이드가 등장했다. 심뇌혈관 질환, 예를 들어 뇌졸중을 앓고 회복한 환자가 이전에 과음을 해왔다면 의사는 당연히 술을 끊도록 권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적정 음주를 해왔다면 그 경우에도 술을 완전히 끊도록 해야 할까.

일단 ‘적정 음주’의 기준부터 알아보자. 술의 종류에 따라 도수가 다르므로 적정 음주의 기준을 계산할 때는 표준잔(standard drink)을 이용한다. 1 표준잔은 알코올 14그램에 해당하는 양으로, 주종 별로 맥주 350 cc, 포도주 150 cc, 소주 100cc, 양주 40 cc 가량이다.주1) 각각 맥주 1캔, 포도주 1잔, 소주 2잔, 양주 1잔 정도라 생각하면 된다. 한국인에서 적정 음주의 기준은 남성의 경우 일주일 평균 8 표준잔 이하이다.주2) 이 기준을 넘어서면 과음(heavy drinking)이 된다. 그러니 일주일에 맥주로는 여덟 캔, 소주로는 두 병을 넘기면 과음이 되는 것이다. 여성 또는 65세 이상 남성의 경우 그 절반인 일주일에 4 표준잔, 65세 이상 여성의 경우엔 또 그 절반인 2 표준잔이 적정 음주의 기준이다.

폭음(binge drinking)에 대한 기준도 있다. 한 번에 4 표준잔(맥주 4캔, 소주 8잔) 부터는 폭음이다. 소주 한 병을 넘게 마시면 폭음인 셈이다. 조금씩 자주 마시는 것과 가끔씩 많이 마시는 것 중 어떤 게 건강에 더 안 좋은가 하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결론적으론 둘다 해롭다. 이런 질문은 대개 술을 즐기는 분이 하는데, 어떻게든 술을 마실 수 있는 구실을 찾으려는 의도가 숨어있다. 그래도 덜 해로운 방향으로 술을 마시겠다면 낫지 않느냐 할 수 있지만, ‘조금씩’이 실제로는 조금이 아니고 ‘가끔씩’도 실제 가끔이 아닌 경우가 많은 게 문제이다.

글 첫머리의 질문에 답을 하기 위한 다음 단계는 음주가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술을 즐기시는 장인께서는 적당히 마시는 술은 몸에 좋은 약주(藥酒)라는 말씀을 입버릇처럼 하셨는데, 소량의 음주가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통념은 오래되었고 근거도 많다. 관련 연구에 따르면 하루 한두 잔까지는 술을 마시지 않는 것에 비해 사망 위험이 낮다. 적정 음주를 하는 경우 관상동맥질환과 뇌졸중, 심장 돌연사 위험 역시 낮아진다는 연구도 많다. 심뇌혈관질환 예방에는 술이 도움이 될 여지가 있는 것이다. 알코올이 HDL 콜레스테롤을 높이고 혈액응고인자 농도를 낮춰 혈전 생성을 줄이는 것이 기전으로 꼽힌다. 단, 이 모든 긍정적인 결과는 과음이 아니라 적정 음주에서 그친다는 전제 하에서의 이야기다. 과음을 하게 되면 위험은 오히려 훌쩍 높아진다.

음주와 사망 위험의 관련성에 대한 메타분석 결과. 적정 음주에서 위험도가 낮아지고 이후 높아지는 J-shape 곡선을 그린다. (출처: Arch Intern Med. 2006;166(22):2437-45)

적정 음주라고 모든 질환에 도움이 되진 않는다. 같은 심장 질환이라 해도 부정맥의 경우엔 과음이 해가 되는 것은 물론이고 소량의 음주가 주는 긍정적인 효과도 찾아볼 수 없다. 알코올은 직접적으로 심장 근육 세포에 독성을 끼쳐 심방 세동과 같은 부정맥을 일으킨다. 주말이나 크리스마스, 신년 등의 시기에 과음으로 인한 부정맥이 늘어나는 현상을 빗대어 휴일심장증후군(holiday heart syndrome)이란 용어가 생기기도 했다. 암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가벼운 음주도 암 발생 위험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들이 보고되면서 음주에 대한 허용 기준도 보다 엄격해지는 추세이다. 2016년에는 국민 암 예방 수칙이 '술은 하루 두 잔 이내로 마시기'에서 '암 예방을 위해 하루 한두 잔의 소량 음주도 피하기'로 개정되기도 했다.

이처럼 적정 음주라도 질환에 따라 긍정적, 부정적 영향이 모두 있으므로 술을 안 마시던 사람이 심뇌혈관질환 예방을 위해 굳이 한두 잔을 일부러 마실 필요는 없다. 특히 부정맥이나 간 질환, 암 등 알코올에 민감한 질환을 앓고 있다면 금주가 필수이다. 이런 질환이 없고 과음이나 폭음을 하는 경우엔 적정 음주량 이내로 술을 줄이면 건강에 도움이 될 것이다.

슬라이드를 보며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는 동안 강의는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그런데 음주와 심뇌혈관질환의 관련성에 대한 설명을 들으며 조금 어색한 느낌을 받았다. 절주를 강조하기보다는 소량의 음주가 괜찮다는 걸 확인하려는 듯 보였기 때문이었다. 본인도 맥주를 즐긴다는 강사의 고백을 듣고서야 그 느낌이 맞았음을 알게 되었다. 심뇌혈관질환이 있다 해도 하루 한두 잔까지는 괜찮다는 결론에선 마치 경범죄를 저지른 이의 죄를 사면하는 선고를 듣는 것 같았다. 적정 음주의 기준을 따른다면 술에 대한 애정을 완전히 거두지는 않아도 되니 다행스런 일이다. 호부호형을 허락 받은 길동의 마음이 이러했을까. 강사께서는 딱딱한 연구 결과보다 스스로의 음주 습관에 대한 설명을 할 때 훨씬 활기차 보였다. 요즘은 술을 줄이기 위해 무알콜 맥주를 즐겨 한다는 말씀에선 애잔함과 함께 동질감이 느껴졌다.

고백하자면, 나도 맥주를 좋아한다. 종종 적정 음주 기준을 넘기기도 한다. 이 글을 쓰는 지금 캔맥주를 홀짝이고 있음도 함께 고백한다. 미국의 캘리포니아에 장기 연수를 갔다가 올해 돌아왔는데, 좋은 기억이 많지만 사실 무엇보다 그리운 것은 그곳의 다양한 로컬 맥주이다. 자타 공인 맥덕인 무라카미 하루키는 그의 소설에서 하루 끝자락에 마시는 차가운 맥주야말로 삶이 우리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동감이다. 한 마디 덧붙이자면 맥주는 일반 냉장고보다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는 것이 더 차갑고 맛있다. 하루키도 이 사실은 몰랐을 것이다. 아직까지 내 건강에 문제가 없어 맥주의 시원하고 쌉싸름한 맛을 즐기며 하루를 정리할 수 있음이 감사할 따름이다. 물론 적정 음주 한도를 존중하는 선에서 말이다. 그러니 이제 김치냉장고 서랍을 열고 두 번째 맥주 캔을 꺼내와야겠다. 


주1) 알코올 양은 WHO의 환산 공식 ‘술의 양(cc)*도수(%)*알코올 비중(0.79)=알코올 양(g)’으로 계산한다. 계산이 번거롭지만, 주종 별로 잔의 크기가 다르므로 과거보다 도수가 낮아진 소주를 제외하면 각각 한 캔, 또는 한 잔이 대략 1 표준잔이 된다.

주2) 미국의 National Institute on Alcohol Abuse and Alcoholism (NIAAA)에서는 남성의 경우 하루 2 표준잔, 일주일에 14 표준잔 까지를 적정 음주의 기준으로 한다. 하지만 체구가 작고 알코올에 상대적으로 취약한 한국인은 기준을 낮춰야 한다는 의견이 꾸준히 제기되었고, 최근 권고안에서는 일주일에 8 표준잔을 기준으로 삼았다.


참고문헌

* 정진규, 김종성, 윤석준, 이사미, 안순기. 음주 진료 지침. Korean J Fam Pract 2021; 11(1): 14-21.

* Di Castelnuovo A., Costanzo S., Bagnardi V., Donati M.B., Iacoviello L. and de Gaetano G. : "Alcohol dosing and total mortality in men and women: an updated meta-analysis of 34 prospective studies". Arch Intern Med 2006; 166: 2437.


2022년 9월 12일 월요일

자연인을 꿈꾸는 이들에게

자연을 배경으로 한 프로그램이 인기다. 한적한 시골집에서 하루 세끼를 지어 먹거나, 산속에서 캠핑을 하거나, 논밭에서 땀을 흘리며 일을 하는 연예인 출연자의 하루를 담는 등 종류도 내용도 다양하다. 너무 많은 프로그램이 나오다 보니 최근엔 오히려 식상하게 느껴질 때도 있지만 또 새로운 프로그램이 만들어지는 걸 보면 이러한 프로그램에 대한 애정은 아직 식지 않은 듯 하다. 산 속에서 혼자 사는, 이른바 자연인을 찾아가는 프로그램은 첫 방영 후 십 년이 된 지금도 시청률이 높기로 손꼽힌다고 한다.

산에서 약초나 나물 캐고, 텃밭에서 채소 따고, 삼시세끼 해먹는, 어찌 보면 심심하고 재미없을 법한 내용으로 가득한 프로그램이 인기가 많은 것은 도시를 떠나 자연과 가까운 곳으로 돌아가고픈 현대인의 욕망을 대리 충족시켜 주었기 때문일 것이다. 자연이란, 시골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들에겐 돌아가고픈 고향이며, 매일 콩나물 시루 버스나 지하철에 실려 출퇴근을 하는 직장인에겐 힐링을 느끼는 대상이며, 아파트와 빌라촌에서 일상을 보내는 이들에겐 언젠가 살아보고 싶은 공간이다. 무엇보다 자연은 건강을 선사해주는 곳이기도 하다. 도시에서 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각종 질병이 생겼다가 산 속에서 자연을 벗삼아 살면서 건강을 회복했다는 경험담은 자연인이 등장하는 프로그램에서 자주 등장하는 내러티브이다. 자연인이 숲에서 직접 채취하는 약초도 그가 건강을 회복하는 과정에 한몫 했던 것으로 그려진다.

자연을 가까이하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이를 증명하는 연구 역시 차고 넘친다. 녹지가 많은 곳에 살수록 심혈관 질환, 비만, 당뇨, 천식으로 인한 입원, 심리적 스트레스, 나아가 사망 위험까지 줄어든다. 2만 명의 영국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 결과 일주일에 120분 이상을 공원, 숲, 해변 등 자연 속에서 보낸 사람들은 자연과 전혀 접하지 않은 이들에 비해 스스로 건강하고 삶에 대해 만족한다고 답한 비율이 현저하게 높았다(그림). 집 근처에 녹지가 얼마나 많은지는 현재뿐 아니라 먼 미래의 건강에도 영향을 미친다. 덴마크에서 90만명 이상을 대상으로 어렸을 때 살았던 집 주변의 녹지 비율과 청소년, 성인이 되었을 때 정신 건강 사이의 관련성을 분석했는데, 녹지 비율이 가장 낮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는 가장 높은 환경에서 자란 아이에 비해 정신 질환 발생률이 최대 55퍼센트 높았다. 이쯤 되면 도시에서 살면서 망가졌던 건강을 산에서 회복한 자연인의 이야기에도 나름 근거가 있는 셈이다.

스스로 건강하다고 느낄 확률은 자연과 접하는 시간이 일주일에 120분에 이를 때까지 급격히 높아지고 200∼300분 이후부턴 차이가 없어진다. 가로축은 일주일 동안 자연과 접한 시간(분), 세로축은 건강하다고 느낄 확률.

그러나 자연을 직접 가까이 할 여유가 없는 우리는 간접적으로나마 자연을 느끼려 한다. 마트에서 유기농 채소를 사고, 옷 가게에선 합성 섬유보다는 천연 섬유 옷을 고르고, 횟집에서도 양식보다는 자연산을 찾는다. 일반 채소보다 비싼 유기농 채소를 찾는 것은 농약이나 화학 비료와 같은 인공 물질을 쓰지 않아서 건강에 더 좋을 것이란 믿음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영양 성분에 차이가 있다는 보고도 있다. 하지만 유기농 채소가 일반 채소보다 건강에 좋다는 과학적 근거는 빈약하다. 일반 당근이나 유기농 당근이나 당근은 그저 당근인 것이다. 농약의 성분이 건강에 좋을 리는 없겠지만 이는 잘 씻어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피할 수 있다. 생각해보면 농사란 행위가 근본적으로 인공적인 것이다. 진정한 자연 식품만 골라 먹으려 한다면 원시 시대처럼 수렵 채집한 음식으로만 오롯이 식탁을 채워야 할 것이다. 영양실조에 걸릴 위험은 덤이다.

우리는 흔히 자연에서 얻은 천연 물질은 건강에 이롭고 안전한 반면, 인위적으로 합성한 것은 건강에 해를 끼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반대의 예는 쉽게 찾을 수 있다. 백여 년 전 영국의 화학자 플레밍이 처음 발견해 페니실린이란 이름을 붙인 화학 물질은 패혈증으로 꼼짝없이 사망했을 수많은 사람들이 죽음을 피할 수 있게 해주었다. 인류가 감염병과의 전쟁에서 처음으로 우위를 점하기 시작한 것도 푸른곰팡이에서 추출한 페니실린을 대량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이후로 개발된 다양한 항생제는 인류의 수명을 비약적으로 늘렸다. 근래엔 항생제의 오남용과 내성 문제가 더 심각하게 대두되지만 의료 자원이 부족한 최빈국의 경우엔 항생제가 없어 사망하는 환자가 여전히 많다. 빌 앤 멜린다 게이츠 재단이 후원한 연구에서는 아프리카의 5세 미만 아이들에게 일 년에 두 번 경구 항생제를 주는 것만으로 사망을 13.5퍼센트 줄였다. 물론 모든 항생제는 공장에서 합성된 인공 물질이다. 하지만 패혈증이 왔을 때 옆에 항생제를 두고 염증 완화에 좋다는 약초를 달여먹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헬리코박터균을 발견한 공로로 2005년 노벨상을 수상한 배리 마셜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나는 항생제를 투여함으로써 사람을 죽인 적이 없다. 그러나 항생제를 먹지 않아 죽은 사람은 부지기수다.”

항생제 못지 않게 인류의 수명을 연장시킨 인공 화합물은 또 있다. 인류 역사상 가장 많은 사망자를 만들어 최악의 전염병으로 손꼽히는 천연두를 박멸한 주인공은 백신이었다. 과거 미국에서 ‘죽음과 세금만큼 불가피한 것’이라고 할 정도로 흔했던 홍역 감염도 1960년대에 백신이 개발된 후 매년 수십만 건에서 수백 건으로 줄었다. 하지만 제조 과정에서 들어가는 화학 첨가물이 자폐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킨다는 잘못된 학설이 퍼지면서 백신 접종이 감소했고, 그 결과 거의 사라졌던 홍역이 다시 활개를 치기도 했다. 한동안 잠잠했던 백신 반대론은 최근 유전자 재조합 방식인 코로나 백신을 두고 다시 부상했다. 백신 반대론에서도 합성물에 대한 불신과 자연에 대한 일방적인 짝사랑을 찾을 수 있다. 백신에 의한 면역과 자연 면역은 둘 중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제로섬이 아니지만, 합성 물질인 백신을 피하고 자연스럽게 병에 걸려 면역을 얻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다. 백신 반대 운동과 자연 면역에 대한 맹신이 결합해 수두 파티(수두에 걸린 아이를 초대해 다른 아이들이 자연스럽게 수두에 걸리게 하는 것)같은 어이없는 사건을 일으키기도 한다. 

천연 식품과 합성 식품은 또 어떤가. 천연 식품이라고 다 건강에 이롭지 않고 합성 식품이 무조건 해롭지도 않다. 적절한 허가를 받아 합성 식품에 들어가는 첨가물은 대부분 안전하다. 첨가물이 알레르기나 과민 반응을 일으킬 수 있지만 이는 견과류나 계란과 같은 천연 식품도 마찬가지이다. 천연 식품인 밥이나 과일도 너무 많이 먹으면 비만이 생길 수 있다. 당뇨병이 있어 설탕이 든 음식은 피하면서도 천연 꿀은 건강에 이로울 거라 생각하고 매일 먹어서 혈당이 높아진 환자도 종종 만난다. 꿀의 성분인 과당 역시 간에서 포도당으로 바뀌어 혈당을 높인다. 설탕보다 혈당을 천천히 올린다 해도 당뇨병 환자에게 장려할 음식은 아닌 것이다. 천연 빵, 천연 주스, 천연 비타민 등 천연이란 단어만 붙으면 질이 높고 건강에도 좋다는 느낌이 들지만 역시 근거는 빈약하며 대부분 마케팅의 영향을 받은 막연한 기대에 불과하다. 천연 식품이든 합성 식품이든, 무엇보다 과하지 않고 적당히 먹는 것이 좋다.

자연은 돈을 주고 살 수 없지만 먼 곳에 있지 않다. 앞에서 예로 든 영국의 연구에서 자연에 해당하는 환경은 숲, 강이나 해변, 시골 농장 등 외에 도심의 야산이나 공원도 포함되었다. 일주일에 두 시간만 가까운 공원이나 산에서 보내는 것만으로도 효과가 있는 것이다. 어느 도시에 살든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니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가자. 


참고문헌

* White MP, Alcock I, Grellier J, Wheeler BW, Hartig T, Warber SL, et al. Spending at least 120 minutes a week in nature is associated with good health and wellbeing. Sci Rep 2019;9:1–11.

* Engemann K, Pedersen CB, Arge L, Tsirogiannis C, Mortensen PB, Svenning JC. Residential green space in childhood is associated with lower risk of psychiatric disorders from adolescence into adulthood. Proc Natl Acad Sci U S A. 2019;116(11):5188-93.

* Mie A, Andersen HR, Gunnarsson S, Kahl J, Kesse-Guyot E, Rembiałkowska E, et al. Human health implications of organic food and organic agriculture: a comprehensive review. Environmental Health. 2017;16(1):1–22.

* Keenan JD, Bailey RL, West SK, Arzika AM, Hart J, Weaver J, et al. Azithromycin to Reduce Childhood Mortality in Sub-Saharan Africa. N Engl J Med. 2018;378(17):1583-92.

2022년 8월 4일 목요일

코로나 백신과 노시보 효과

고혈압으로 외래에 다니는 50대 남성이 진료실을 나가기 전에 머뭇거리다 걱정스런 말투로 묻는다. 

“한 달 전 코로나 백신을 맞고 나서부터 가슴이 답답해서 자꾸 심호흡을 하게 되네요. 백신 부작용으로 심장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요?”

요즘 진료실에서 종종 겪는 일이다. 코로나 백신이 심근염이나 심낭염을 일으킬 수 있다는 뉴스가 보도된 뒤에는 이러한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가 더 늘었다. 화이자, 모더나 백신과 같은 mRNA 백신 접종 후 실제로 심근염이나 심낭염이 생길 수는 있지만 30만 명당 1명 꼴로 극히 드물다. 물론 질문을 한 50대 남성의 심장은 멀쩡했다. 마찬가지로 진료실에서 가슴 답답함을 호소하는 이들 대부분은 심장에 문제가 없다. 그렇다고 이 환자들이 단체로 거짓말을 하는 것도 아니다.

약에 대한 부정적인 기대를 가지고 있는 경우 약의 효과가 적게 나타나거나 부작용이 더 많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노시보 효과(Nocebo effect)라고 한다. 노시보의 어원은 라틴어로‘해를 끼치게 한다’라는 뜻이다. 다소 생소한 용어일 수 있지만 이와 반대되는 개념인 플라시보 효과(Placebo Effect)에 대해선 많은 이들이 알고 있을 것이다. 역시 '기쁨을 줄 것이다'라는 라틴어 플라시보가 어원으로, 의학적인 효과가 없는 가짜 약이나 치료를 받은 환자가 병세의 호전을 보이는 경우를 말한다. 위약(僞藥) 효과라고도 부른다.

노시보 효과나 플라시보 효과의 대표적인 사례는 신약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수행하는 임상 시험에서 찾을 수 있다. 약의 효과를 확인하려 할 때 약을 먹기 전후만을 비교하면 질병의 자연 경과가 결과에 영향을 미쳐서 정확한 판단이 어렵다. 이러한 문제를 피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작위 배정 임상 시험(Randomized Controlled Trial, RCT)이다. 환자를 무작위로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신약과 위약(placebo)을 먹도록 배정하는 방법이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약에 의한 효과나 부작용은 진짜 약을 먹은 환자에서만 나타나야 한다. 하지만 실제 연구에선 위약을 먹인 그룹도 병세가 나아지거나 부작용이 생기는 경우를 흔히 본다. 위약을 먹은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변화는 플라시보 또는 노시보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그러므로 새로 개발한 약이 승인을 받기 위해서는 위약의 효과를 확실히 뛰어넘는다는 점을 증명해야 한다. 

플라시보 효과는 실제로 얼마나 흔할까.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위약으로 2-30퍼센트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알려져 있는데, 2011년에 최고 권위의 학술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위약의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40여 명의 천식 환자들을 상대로 치료제와 위약의 효과를 비교했다. 진짜 천식 치료 흡입제, 가짜 흡입제(위약), 가짜 침 치료를 교대로 받게한 뒤 환자가 느끼는 증상(주관적 지표)과 폐기능 검사 결과(객관적 지표)가 얼마나 좋아지는지를 확인했다. 객관적 지표인 폐기능 검사 수치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20퍼센트 좋아졌지만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에는 치료를 안 한 것과 같은 7퍼센트 호전에 그쳤다.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50 퍼센트,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는 45퍼센트 좋아졌다. 진짜 치료든 가짜 치료든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은 똑같은 정도로 좋아진 것이다. (참고) 

이렇게 위약은 경우에 따라 실제 치료와 맞먹는 효과를 보이는데, 객관적인 질병의 경과보다는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그렇다면 가짜 약임을 알고 복용하는 경우엔 어떨까. 언뜻 생각하면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것 같은데, 관련 연구에 따르면 위약임을 알고 먹어도 증상이 나아질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를 믿는 사람에게 이러한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한다. 최근에는 기능적 자기공명영상과 같은 첨단 장비를 이용해 뇌 어떤 부위의 활동이 플라시보 효과를 일으키는지에 대해서도 연구가 이루어지고 있다. 뇌과학 연구를 통해 이러한 효과를 일으키는 뇌 부위를 밝힐 수 있다면 이를 이용한 치료도 가능할 것이다.

노시보 효과도 플라시보 효과만큼 흔하게 나타날까. 영국 임페리얼 대학 연구팀은 고지혈증 치료제인 스타틴에 대한 임상 시험 부작용 사례를 분석해 2020년 같은 학술지에 발표했다. 스타틴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약 중 하나이나 근육 손상 등의 부작용이 생길 수 있고 부작용에 대한 우려로 복용을 중단하는 경우도 많다. 연구진은 60명의 환자에게 무작위로 스타틴이 든 병, 위약이 든 병, 그리고 빈 병을 한 달씩 교대로 나누어주고 복용하게 하면서 부작용을 관찰했다. 1년 동안 관찰한 결과 부작용 증상 점수는 스타틴이 16점, 위약이 15점, 빈 병은 8점이었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스타틴과 위약 간에 부작용 정도에 큰 차이가 없으며 스타틴 부작용의 90퍼센트가 노시보 효과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 백신에 대해서도 비슷한 연구를 찾아볼 수 있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코로나 백신 관련 열두 개의 임상 시험을 모아 재분석한 결과 위약(식염수 주사)을 접종한 대상자의 35퍼센트에서 두통이나 피로와 같은 부작용이 생겼다. 반면 진짜 백신을 맞은 군에서는 46퍼센트에서 부작용이 생겼다. 연구진은 이를 근거로 코로나 백신 부작용을 겪는 사람 네 명 중 세 명은 노시보 효과가 원인이 되었으리라 추정했다. 주사 전에 코로나 백신의 부작용에 대해 미리 안내하는데 이것이 부정적인 기대나 불안을 일으켜 노시보 효과를 불러온다는 것이다. 부작용의 경우 백신 자체보다 백신에 대해 가진 생각이 더 큰 영향을 미쳤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백신 접종 시에 부작용에 대한 정보를 감추는 것은 윤리적이지 못하다. 대신 노시보 효과에 대한 정보를 함께 주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플라시보 효과에 대한 지식과 믿음이 긍정적인 반응을 더 일으키는 것처럼 불안과 걱정이 일으키는 노시보 효과에 대해 이해한다면 부작용을 줄일 수 있다. 백신을 맞은 뒤 생기는 증상이나 변화에 대해서도 좀더 차분하게 지켜보고 판단하게 될 것이다. 

일반 대중을 향한 정보도 중요하다. 노시보 효과를 피하려면 객관적이고 정확한 정보를 전달하고 과도한 불안을 줄일 필요가 있다. 작년 코로나 백신 접종 초기에 혈전증 등 심각한 부작용 사례에 초점을 맞춘 언론 보도가 많았는데, 그에 반해 부작용의 객관적인 빈도와 과학적 근거를 균형 있게 다룬 기사는 상대적으로 드물었다. 과학적 근거를 담은 기사에 비해 부작용 사례에 대한 기사는 쉽게 관심을 끌고 독자의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우리에겐 특정 사건이 눈에 많이 띄거나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경우 해당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견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현상을 심리학 용어로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이라고 한다. 대중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객관적인 판단에 필요한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할 경우 치우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심각한 부작용만을 다룬 기사가 늘어날수록 백신 접종에 대한 판단에 부작용 사례가 많은 영향을 미치며 내가 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믿음 역시 커진다. 이러한 부정적인 믿음은 노시보 효과를 통해 실제 부작용으로 나타난다. 

‘모르는 게 약이다’, 그리고 ‘아는 것이 힘이다’라는 속담이 있다. 모순되게 들리지만 플라시보와 노시보 효과의 의미를 생각하면 두 속담 모두 맞는 구석이 있다. 아는 것이 힘이 되지만 때로는 모르는 게 약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옛 사람들은 인터넷도, 스마트폰도 없었지만 세상의 이치는 다 알고 있었다는 생각도 든다. 어디서든 인터넷 검색을 할 수 있고 소셜미디어나 유튜브를 통해 수많은 정보를 접하는 지금은 오히려 정보의 과잉과 잘못된 정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차라리 모르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아는 것은 힘이 되지만 잘못된 정보는 모르느니만 못하다. 그러니 ‘제대로’ 아는 것이 힘이다. 


참고문헌

Wechsler ME, Kelley JM, Boyd IO, Dutile S, Marigowda G, Kirsch I, Israel E, Kaptchuk TJ. Active albuterol or placebo, sham acupuncture, or no intervention in asthma. N Engl J Med. 2011 Jul 14;365(2):119-26.

Wood FA, Howard JP, Finegold JA, et al. N-of-1 trial of a statin, placebo, or no treatment to assess side effects N Engl J Med. 2020 Nov 26;383(22):2182-4.

Haas JW, Bender FL, Ballou S, Kelley JM, Wilhelm M, Miller FG, Rief W, Kaptchuk TJ. Frequency of Adverse Events in the Placebo Arms of COVID-19 Vaccine Trials: A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AMA Netw Open. 2022 Jan 4;5(1):e2143955. 

2022년 7월 12일 화요일

팬데믹 시대, 다시 돌아보는 손 씻기의 역사

이 년이 넘도록 이어진 팬데믹으로 전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역사적으로 감염병 예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과 이해가 지금처럼 높았던 적이 있을까 싶다. 코로나19와 같이 전파력이 높고 단기간에 감염자 수의 폭발적인 증가를 일으키는 질환은 전파를 막는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마스크를 비롯한 사회적 거리 두기와 백신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마스크와 백신에 관심이 쏠리다 보니 상대적으로 조명을 받지 못했지만 이들 못지않게 강조되어야 할 예방법이 손 씻기이다. 기침과 재채기를 할 때 침 방울(비말)에 섞여 외부로 나온 바이러스가 타인의 손에 묻어 전파되는 것이 주요 감염 경로이기 때문이다. 손에 묻은 바이러스는 코와 입을 통해 체내로 들어가 증상을 일으킨다.

손을 잘 씻는 것만으로 콜레라나 장티푸스 같은 수인성 질환과 감염성 위장 질환의 절반 이상을 예방할 수 있고 코로나19와 같은 감염성 호흡기 질환도 20퍼센트를 줄일 수 있다. 예방법으로써 손 씻기의 가장 큰 장점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용은 기껏해야 비누 부스러기 정도에 불과하다. 백신의 경우 델타, 오미크론 등 새로운 변이가 등장할 때마다 예방 효과가 떨어질 것을 걱정하지만, 손 씻기는 어떤 변이에도 효과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는 장점도 있다.

손 씻기가 미생물에 의한 감염을 막는 효과적인 방어 수단이라는 것은 상식이다. 하지만 불과 150년 전만 해도 이를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당시에는 세균이 아니라‘미아즈마’라고 불리는 나쁜 공기와 악취로 인해 전염병이 발생한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기 때문이다. 공기가 아닌 다른 매개체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던 학자들은 무시와 조롱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잘못된 믿음이 바뀌는 데에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현대의 세균 학설이 미아즈마 학설을 대체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두 개의 질병이 산욕열과 콜레라이다. 

출산 후 6주의 기간을 일컫는 산욕기에 열이 나는 것을 산욕열이라 부른다. 분만 과정에서 생긴 감염이 원인이며, 현재는 감염 예방 조치와 항생제의 역할로 선진국에서 이 질환으로 죽는 산모는 거의 없다. 하지만 19세기 중반에는 산모 네 명 중 한 명이 산욕열로 사망할 만큼 흔하고 무서운 병이었다. 특이한 점은 집에서 산파의 도움을 받아 출산한 산모에 비해 병원에서 출산한 산모의 산욕열 발병 확률이 훨씬 높았다는 것이다. 그래서 산모들은 아이를 낳으러 병원에 가는 것을 기피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의료진은 병원에서 산욕열이 더 잘 생기는 것이 비좁고 환기가 잘 안 되는 환경에서 나쁜 기운이 산모들에게 옮았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나쁜 공기가 질병의 원인이라는 당시 학계의 정설을 고려하면 자연스러운 믿음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원인을 찾고자 한 이들이 있었다.

스코틀랜드 의사인 알렉산더 고든은 1795년의 보고서에서 산욕열의 원인이 공기의 해로운 성분이 아니라 의료진 자체라고 주장했다. 그는 진료를 본 환자로부터 의사 자신에게 있는 무엇인가를 통해 새 환자에게 열이 전파된다고 믿었다. 1843년 미국의 수필가이자 의사인 올리버 웬델 홈스는 <산욕열의 전염성>이란 책에서 고든과 비슷한 주장을 했다. 하지만 반세기 간격으로 등장했던 두 의사의 파격적인 학설은 별다른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당시는 미생물의 존재까지 알진 못했고, 다른 의사들은 자신이 질병을 옮긴다는 주장을 모욕으로 받아들이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등장한 이가 헝가리 의사인 이그나즈 제멜바이스였다. 오스트리아 빈 종합 병원에서 일하던 그 역시 산욕열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를 고민했다. 산모들은 두 개의 병실에 입원했는데 한쪽은 의대생이, 다른 쪽은 산파가 산모를 돌보았다. 그런데 병실의 시설은 의대생이 담당한 쪽이 더 좋았음에도 사망률은 무려 세 배나 높았다. 동료들은 산파에 비해 남학생들이 환자를 더 거칠게 다루기 때문이라고 여겼지만 제멜바이스는 동의하지 않았다. 그는 시신 해부를 하다가 곧바로 산모를 돌보러 오는 의대생이 많다는 사실에 주목했고, 시신의 감염성 물질이 의대생을 통해 산모에게 전파되어 산욕열이 생긴다고 추정했다. 이를 증명하기 위해 그는 염소 처리를 한 물통을 설치하고 의대생들로 하여금 해부실에서 병실로 가기 전에 손을 씻도록 했다. 그러자 이전에 18.3퍼센트였던 사망률이 넉 달 만에 1.9퍼센트로 떨어졌다. 이 실험을 통해 제멜바이스는 접촉을 통한 오염이 산욕열을 일으킨다고 주장했고 1861년에는 이를 정리한 책을 펴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주장 역시 동료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빈 종합병원의 산욕열 환자 사망률
손 씻기를 시작한 1847년 5월 이후 급격하게 낮아졌음을 알 수 있다.

비슷한 시기 영국 런던에서는 콜레라가 맹위를 떨쳤다. 1854년의 유행에 의해 영국에서만 이만 명 이상이 콜레라로 사망했고 그 중심에 런던이 있었다. 당시 학자와 주민들은 기존의 미아즈마 학설에 따라 템즈강의 더러운 물에서 나오는 유독한 공기가 원인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믿음에 의문을 제기한 의사가 현대 역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존 스노였다. 그는 1854년 런던 소호 지역에서 발생했던 콜레라를 조사하면서 환자가 발생한 곳을 지도에 표시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감염 지도를 통해 환자 대부분이 브로드가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 먹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는 콜레라가 공기에 섞인 유독한 기체가 아니라 오염된 물을 통해 전파된다고 결론을 내리고 지역 당국을 설득해 브로드가 우물 펌프의 손잡이를 떼어냈다. 그러자 그 지역의 콜레라 유행이 곧바로 수그러들었다. 브로드윅으로 이름이 바뀐 거리에는 지금도 존 스노의 이름을 딴 술집과 과거의 우물 펌프를 본딴 모형이 있다. 

Map of cholera cases in Soho, London, 1854. Source: Wikimedia Commons

이러한 사례와 근거가 쌓이면서 공기나 악취가 아닌 접촉을 통해 질병이 전파된다는 이론도 힘을 얻기 시작했다. 1867년에는 영국 외과의사인 조지프 리스터가 석탄산을 사용해 소독을 하는 살균 수술법을 학술지 ‘랜싯’에 발표했다. (구강청결제의 대명사 격인 리스테린은 1879년에 리스터의 이름을 따 살균소독제로 개발된 것이다.) 이후 프랑스의 루이 파스퇴르와 독일의 로베르트 코흐가 주도한 연구가 진전되면서 비로소 감염병을 전파하는 매개체가 미생물이라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병원 내 감염을 예방하기 위해 손 씻기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진 것은 한참 뒤의 일이다.

세균과 바이러스를 보다 효과적으로 없애려면 흐르는 물과 비누를 이용해 손바닥, 손등, 손가락 사이까지 꼼꼼히 씻는 것이 좋다. 횟수는 하루에 여덟 번 이상을 권하며 이와 별도로 음식을 먹기 전이나 용변을 본 후에도 씻어야 한다. 질병관리청의 감염병 예방 행태 실태 조사에 따르면 손 씻기 실천율은 최근까지 꾸준히 증가해 왔다. 외출 후 손을 씻는 비율은 2013년 81.9퍼센트에서 2019년 85.5퍼센트로 높아졌고, 특히 2020년에는 코로나19의 유행으로 97.6퍼센트까지 급격히 증가했다. 하지만 자가 보고와 관찰 조사 사이에는 차이가 있었다. 올바른 손씻기를 실천한다고 응답한 비율은 87.3퍼센트인데 반해 실제 관찰 조사에서 용변 후 손을 씻는 비율은 75.4퍼센트에 그쳤다. 또한 관찰 조사에서 용변 후 비누를 사용해 손을 씻은 비율은 37.1퍼센트에 불과했다. 손을 씻지 않는 이유로는 습관이 안 되어서, 귀찮아서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참고문헌

Centers for Disease Control and Prevention. Show Me the Science - Why Wash Your Hands? Available from: https://www.cdc.gov/handwashing/why-handwashing.html

조경숙. 2013-2020년 손씻기 실천율의 변화. 주간 건강과 질병 2021;14(42):2972-87.

린지 피츠해리스. 수술의 탄생. 열린책들; 2020.


2022년 6월 30일 목요일

손 저림의 원인에 대하여

손발 저림은 흔한 증상이다. 손발이 저리면 혈액 순환이 안 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지만 이는 잘못된 상식이다.

혈관에는 동맥과 정맥이 있다. 동맥의 경우 동맥경화로 인해 혈관이 좁아지면 혈류에 장애가 생기고, 이때 나타나는 증상은 주로 통증이다. 해당 부위에 혈액이 많이 필요한 상황에서 동맥이 충분한 혈액을 공급하지 못하는 것이 통증의 이유이다. 평소엔 괜찮다가 일정 거리 이상을 걸을 때 종아리에 통증이 생긴다면 하지의 동맥 문제를, 숨찬 운동을 할 때 명치 부위에 통증이 생긴다면 심장 근육에 피를 공급하는 관상 동맥이 좁아졌음을 의심할 수 있다.

큰 혈관이 아닌, 손가락이나 발가락의 말초 동맥의 경우엔 주로 추운 날씨와 같은 특정 상황에서 혈관이 과도하게 수축해서 통증이 생긴다. 추울 때 혈관이 수축을 하는 것은 정상적인 반응이지만, 피부가 창백해지거나 통증이 생길 정도로 심하면 이를 레이노드 현상 (Raynaud’s phenomenon)’이라고 부른다. 찬물에 손을 담갔을 때 손가락의 혈색이 사라지면서 통증이 생기면 진단할 수 있다. 이러한 증상이 심하면 류마티스 질환이 원인일 수 있으므로 이에 대한 확인이 필요하다. 단순히 손발이 찬 정도라면 추운 날씨에 피부의 노출을 피하고 모자, 장갑과 따뜻한 양말 등을 사용해 몸을 따뜻하게 유지하는 습관만으로도 증상을 줄일 수 있다. 반신욕이나 족욕도 도움이 된다.

정맥의 경우 혈관이 좁아지는 게 아니라 혈관 벽과 판막이 약해지는 것이 혈류 장애의 원인이다. 중력을 거슬러 심장으로 혈액을 되돌려 보내려면 혈관 벽의 탄력과 역류를 방지하는 판막의 역할이 중요한데 그 부분에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증상은 주로 부종으로 나타난다. 가장 흔히 나타나는 다리의 경우, 증세가 심하면 혈관이 튀어나오는 정맥류로 발전할 수 있다.

통증이나 부종과 같은 혈류 장애의 주된 증상 없이 손발 저림만 있다면 혈관보다는 말초 신경의 이상이 원인일 가능성이 높다. 오랫동안 바닥에 앉아 있었거나 엎드려 잠들었을 때 손발이 저리는 것은 말초 신경이 체중에 의한 압력으로 눌리면서 생기는 증상이다. 이 경우엔 자세를 바꿔 신경에 가해지는 압력이 사라지면 금새 나아진다. 하지만 만성적으로 신경이 눌리는 상황이라면 저림 증상도 사라지지 않고 반복해 나타난다.

손발로 내려가는 말초 신경의 뿌리는 척추에 있다. 척추의 뿌리에서 시작한 신경 줄기는 팔, 다리를 거쳐 잔 가지로 갈라지고 가지의 끝은 손가락과 발가락까지 닿는다. 신경의 뿌리와 줄기, 가지 어디서든 눌릴 수 있다. 척추관 협착증이나 추간판(디스크) 탈출증이 신경 뿌리가 눌리는 대표적인 질환이다. 경추()에서 발생하면 팔과 손이, 요추(허리)에서 발생하면 다리와 발이 저리게 된다.

손 저림의 가장 흔한 원인은 신경 가지가 손목에서 눌리는 것으로, 손목 터널 증후군이라고 부른다. 손목 터널 증후군은 손바닥과 손끝이 저리고 밤에 저림 증상이 심해진다. 손을 많이 쓰는 경우에 흔히 발생한다. 집안일을 많이 하는 주부, 미용사, 피부관리사 등에게 많이 생기는 이유이다. 스마트폰이나 컴퓨터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원인이 된다. 임신 중에도 몸이 붓고 손목 터널이 좁아져 더 잘 생긴다. 그 외에도 만성 신부전으로 투석을 받는 환자나 류마티스 관절염, 갑상선 기능 저하증, 당뇨병을 앓는 경우에도 흔히 발생한다.

이렇게 말초 신경이 눌려서 생기는 저림 증상은 대개 한쪽에만 생긴다. 만약 양쪽 손과 발이 동시에 저리다면 여러 신경을 함께 침범하는 전신 질환을 먼저 의심한다. 당뇨병성 신경병증이 가장 흔한 원인이다. 손발 저림이 뇌졸중(중풍)의 전조 증상이라 생각해 불안해하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뇌졸중 때문에 저린 증상만 생기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뇌졸중은 갑자기 발생하는 급성 질환이며 오랫동안 손발이 저리다가 발병하지는 않는다.

손목 터널 증후군의 치료 방법은 증세의 정도에 따라 다르다. 심하지 않다면 부목 기능이 있어 손목을 고정하는 보호대를 쓰게 하고 약물 치료를 한다. 손목에 스테로이드 주사 치료를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치료 효과가 충분하지 않거나 손바닥 근육이 약해질 정도로 증세가 심하면 손목의 인대를 절제하는 수술 치료를 한다. 적절한 치료를 하면 대부분 나아질 수 있지만 증세가 오랫동안 진행될수록 치료의 효과는 덜하다. 그러므로 반복적인 손 저림이 있다면 혈액 순환을 좋게 한다는 은행잎 성분이나 마그네슘 따위를 먹으며 나아지길 기대하기보다 진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https://commons.wikimedia.org/wiki/File:Carpal_Tunnel_Syndrome.png


2022년 6월 11일 토요일

당뇨병에 걸렸다는 말을 들었다면

2018년 기준 우리나라 30세 이상 성인 일곱 명 중 한 명이 당뇨병 환자이며, 이를 전체 인구로 환산하면 494만명에 달한다. 국민 전체의 건강에 영향을 줄 만큼 흔한 질환이지만 당뇨병 환자 열 명 중 네 명은 스스로 당뇨병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않을 정도로, 관리 수준은 기대에 미치지 못한다.

당뇨병을 진단받는 순간이 환자에겐 삶의 위기로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부정(denial)은 흔히 나타나는 반응이다. 당뇨병은 대개 서서히 진행한다. 대표적인 증상인 3다(多) 증상, 즉 다음(물을 많이 마시는 것), 다식(많이 먹는데 체중이 늘지 않는 것), 다뇨(소변 양이 많아지는 것)는 심한 당뇨병에서 나타나므로 초기 환자는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것을 쉽게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부정은 정서적 충격으로부터 자신을 보호하는 심리적 방어기제이기도 하다.

분노, 죄책감과 우울 역시 당뇨병 환자에게 흔히 나타나는 정서이다. 누구나 겪을 수 있지만, 이러한 감정이 오래 지속되면 질병을 인정하는 수용(acceptance)의 단계로 나아가기 힘들다. 수용은 당뇨병을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질병 관리를 위한 치료와 생활 습관 변화를 실행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이다. 전문가들은 당뇨병을 친구처럼 받아들이고 조급함 대신 멀리 보는 마음가짐을 갖는 것이 건강하게 당뇨병을 관리하고 합병증을 예방하기 위한 첫걸음이라고 말한다.

부정적 감정은 게으름이나 자기 관리 실패가 당뇨병의 원인이라는 편견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편견은 자신이 당뇨병 환자임을 숨기게 되는 원인이기도 하다. 대다수의 환자가 자신이 당뇨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기 꺼려한다. 하지만 당뇨병 관리를 위해선 식이 요법과 운동을 비롯해 생활 습관의 변화가 필수적이며, 이를 위해선 가정과 학교, 직장에서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자신이 당뇨병 환자이고 생활 습관 관리가 필요하다는 점을 주변에 알리는 것은 성공적인 당뇨병 관리에 도움이 될 수 있다. 당뇨병에 대한 사회적 인식의 변화가 필요한 이유이다.

2022년 5월 30일 월요일

기러기 아빠의 건강

2007년 영화 ‘우아한 세계’에서 주인공인 중년 남자는 조직폭력배이면서 가정을 건사하느라 하루하루 애쓰는 평범한 가장이다. 영화는 직업인으로서의 조직폭력배,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빠의 역할 사이에서 힘겨운 줄타기를 하는 주인공의 비루한 일상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가족을 캐나다로 보내고 기러기 아빠가 된 그가 혼자 라면을 먹다 흐느끼는 장면은 기억에 남을만한 장면 중 하나다. 2017년 개봉한 ‘싱글 라이더’의 주인공 역시 기러기 아빠이다. 비극에만 초점을 맞춘 내용은 아니지만, 영화에서 가족을 지키고 싶어했던 주인공은 가족이 있는 곳으로 갈 비행기표만 사두고 약물과 알코올 남용으로 쓸쓸히 죽는다.

서로 다른 나라에서 떨어져 사는 가족에 대한 정확한 자료는 없지만 조기 유학 관련 통계를 통해 간접적으로 그 숫자를 짐작할 수 있다. 조기 유학이 본격적으로 유행한 것은 2000년대에 들어와서인데, 한국교육개발원의 유학생 통계에 따르면 초등학생의 경우 2000년 705명에서 2006년 13,814명으로 급격히 상승했다. 조기 유학생 중 절반 정도에서 가족이 떨어져 사는 것으로 추산하며, 이들 중 대부분은 엄마와 아이들만 외국에 나간 케이스이다. ‘기러기 아빠’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그 즈음이다. 이후에는 2009년 글로벌 경제 위기와 조기 유학의 인기 감소로 가족과 떨어져 사는 기러기 아빠 수도 줄었다. 교육통계서비스 자료에 따르면 2020년에는 초중고생 8,458명이 외국 유학을 떠났는데, 이는 코로나19 여파로 전년도에 비해 절반 정도로 감소한 숫자이다. 하지만 올해는 판데믹 상황이 나아지면서 다시 숫자가 늘어날 것으로 전망한다. 해외 유학이 줄고 대신 국내 유학이 늘어나면서 최근엔 국제 학교가 있는 제주도와 같은 지역에 가족을 보낸 국내 기러기 아빠도 많다.

기러기 아빠는 대개 4-50대이다. 건강에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는 나이인데다 혼자 지내며 생활 습관이 나빠져서 관련 질병에 취약해질 수 있다. 불규칙한 식사와 과음으로 중성지방이 높아지는 이상지질혈증이나 간기능 이상, 위장 질환이 생기는 것이 흔한 예이다. 이러한 신체 질환뿐 아니라 심리적으로 외로움을 겪으면서 생기는 우울증 역시 큰 문제인데, 악화될 경우 자살 등 극단적 선택으로도 이어질 수 있다.

가족과 떨어져 장기간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건강을 관리해야 한다. 기상과 취침 시간을 일정하게 하고 간단하게라도 아침 식사를 한다. 규칙적인 운동은 필수다. 특별히 불편한 증상이 없더라도 건강검진을 빼먹지 않고 받아야 한다. 외로움은 회식이나 술을 통해 해결하기보다 취미 생활과 운동을 매개로 한 동호회 활동을 통해 달래도록 한다. 친구나 동료, 친지 등과 이야기를 나누고 외로움과 고민을 해소할 필요도 있다. 가족을 직접 만나지 못하더라도 스마트폰, 컴퓨터를 이용해 자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의 일상을 공유하는 것이 좋다. 한국의 아빠들은 대부분 자신의 힘든 모습이나 못난 모습을 가족, 특히 자녀에게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다. 하지만 때로는 가족과도 솔직한 대화가 필요하다. 고통과 어려움을 숨기고 의연한 척하는 것보다는 지금 내가 힘들다는 사실, 그리고 그 이유를 가족과 공유하고 해결책을 함께 찾는 것이 바람직하다.


2022년 5월 23일 월요일

암 검진 몇 살까지 받아야 할까

우리 나라 국민 네 명 중 한 명은 암으로 죽는다. 암은 사망 원인으로 수십 년째 부동의 1위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그 비율도 계속 늘어나는 추세이다. 이로 인해 암 검진의 중요성도 부각되고 있다. 암 종류마다 차이가 있지만 대개 암 발생과 사망 위험이 높아지는 40대부터 정기적인 암 검진을 권한다. 그렇다면 몇 세까지 검진을 받아야 할까? 80세가 넘은 나이에도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검진을 받는 것이 좋을까?

암 검진은 이득(benefit)과 위해(harm)가 모두 존재한다. 암 검진의 이득은 해당 암으로 인한 사망의 감소이고, 위해는 거짓 양성 결과로 인한 추가 정밀 검사, 정신적 스트레스, 서서히 진행하는 암에 대한 과진단(overdiagnosis)과 과치료(overtreatment) 등이다. 대개 만 65세 이상을 노인으로 칭하며, 75세 이상을 고령 노인, 85세 이상을 초고령 노인으로 따로 구분하기도 한다. 75세 이상의 고령 노인에서 암 검진의 이득과 위해의 크기는 건강한 장년 성인과 다르다. 암의 경우 사망 감소라는 가장 중요한 이득이 발생하기까지는 대개 10년 이상이 걸린다. 기대여명이 이보다 적은 경우에는 이득은 확실치 않은 반면 검사와 치료 합병증 등의 위해는 커질 가능성이 많다. 고령 노인에서 수술이나 항암 치료 등의 효과는 떨어지는 반면 심각한 부작용의 위험은 높아지는 것이 예이다. 그러므로 미국 암 협회를 비롯한 많은 전문 학회들이 기대여명이 10년 이하인 경우 암 검진을 받지 않도록 권한다. 

국내 지침도 마찬가지이다. 2015년 발표된 국립암센터 권고안의 경우 위암은 74세까지 2년마다 내시경으로 검진을 받도록 하지만 75-84세에는 실익을 따져본 뒤 결정하도록 하며 85세 이상에선 검진을 권고하지 않는다. 이외에도 대장암은 80세, 유방암은 69세, 폐암은 74세까지만 검진을 권장한다. 암 검진에도 은퇴 나이가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현실은 다르다. 미국의 한 연구에서는 기대여명이 9년 미만 노인의 절반 이상이 전립선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대장암 등의 검진을 받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국가 차원에서 무료로 암 검진 사업을 하고 있는 우리나라는 더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다. 2021년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75세 노인의 기대여명은 13.2년이다. 75-80세 이상의 경우 암 검진의 이득보다 위해가 클 수 있어 보다 신중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하지만 국가 암 검진에는 검진 종료 연령이 없으므로 본인이 원한다면 연령에 관계없이 검진을 받을 수 있다. 국민건강보험공단 통계에 따르면 2019년 암검진 수검 대상자 중 75세 이상은 2,662,759명이었고 그 중 1,012,215(38%) 명이 검진을 받았으며, 이중 85세 이상도 90,132명에 달했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말이 있다. 나이에 상관 없이 마음만 먹으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이지만, 암 검진에서 나이는 중요하다. 고령 노인은 조기 발견과 치료로 얻는 이득보다 잃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기대여명을 낮추는 병을 이미 가지고 있거나 건강 상태가 나쁜 경우엔 더 그렇다. 그럼에도 건강보험공단에선 나이 제한 없이 암 검진 안내문을 보내고, 90세가 넘는 노인이 부축을 받으며 내시경을 받으러 오는 아이러니한 상황도 종종 생긴다. 국가 검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시혜나 복지로 여기는 인식은 이러한 문제를 부채질한다. 이득보다 해가 클 수 있는 일을 그만두는 것이므로 “이제 암 검진은 그만 받아도 됩니다.”란 말을 들었을 때 서운해 할 필요는 없다. 의료진 입장에선 “나이 들었다고 검진도 받지 말라니 죽으란 말이냐”는 원망을 받을 것이 염려되어 암 검진 중단을 권하지 못하는 일이 많은데, 암 검진의 근거에 대해 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검진 중단에 대해 상의할 필요가 있다.


* Statistics Korea. Korean Statistical Information Service [Available from: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350&tblId=DT_35007_N010

* 위암 74살, 대장암 80살… 암 검진 ‘은퇴 나이’ 생겼다. https://www.hani.co.kr/arti/society/health/708988.html

* [김철중의 생로병사] 노년기에 너무나 많이 행해지는 검사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7/08/28/2017082803248.html

2022년 5월 20일 금요일

항생제 내성에 대해

신종 감염병의 연이은 유행으로 감염병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최근의 신종 감염병은 세균이 아닌 바이러스로 인한 질환이 대부분이라, 세균을 치료하는 항생제와는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하지만 감염병의 치료와 예방에 대해 이야기할 때 항생제를 빼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항생제의 개발은 현대 의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이다. 1940년대에 알렉산더 플레밍이 푸른곰팡이를 이용한 페니실린을 개발했을 때만 해도 많은 이들이 언젠가 감염병을 완전히 정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품기도 했다. 하지만 세균은 내성을 통해 항생제에 대응하는 법을 빠르게 터득했다. 이후의 감염병 치료 역사는 항생제 내성 세균과의 싸움에 대한 기록에 가깝다. 기존 항생제 내성균을 퇴치하는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면 수 년 내에 새 항생제에 대한 내성균이 출현한다. 새로운 항생제의 개발 속도에 비해 세균이 내성을 획득하는 속도가 더 빨라지면서 항생제 내성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중요하고 심각한 보건 문제로 여겨지고 있다. 가장 강력한 항생제 중 하나인 반코마이신에 대한 내성균은 국내에서도 빠르게 증가하는 추세이다.

항생제 내성의 주요 원인으로는 오남용이 꼽힌다. ‘오용은 잘못 사용하는 것, ‘남용은 지나치게 많이 사용하는 것을 뜻한다. 국내 인체 항생제 사용량은 OECD 국가 중 최상위권에 속하며, 2021년 발표된 국가 항생제 내성 관리 대책에서는 항생제 사용량을 5년 내 20퍼센트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항생제의 남용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오용을 피하고 정확히 사용하는 것도 중요한데, 항생제를 처방대로 복용하지 않고 불충분하게 먹는 것이 오용의 대표적 예이다. 이를 줄이기 위해선 항생제 내성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하다.

내성은 견딜 내耐, 성품 성性으로 적는다. 표준국어대사전의 뜻 풀이는 다음과 같다.

1. 약물의 반복 복용에 의해 약효가 저하하는 현상

2. 생명 세균 따위의 병원체가 화학 요법제나 항생 물질의 계속 사용에 대하여 나타내는 저항성

3. 생명 환경 조건의 변화에 견딜 수 있는 생물의 성질. 내열성(耐熱性), 내한성(耐寒性) 따위가 있다.

많은 이들이 이중 첫 번째와 두 번째 개념을 혼동한다. 첫 번째는 사람의 몸이 변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세균 자체가 변하는 것이다. 항생제 내성은 두 번째 개념, 즉 세균에 생기는 변화이다. 항생제를 반복해 쓰면 약이 내 몸에 쌓여 약효가 줄어든다는 믿음 때문에 복용을 꺼리는 경우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내 몸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부작용과 내성을 걱정해 항생제를 부적절하게 복용한다. 충분한 기간을 복용하지 않고 조기에 중단하면 당장 병은 낫더라도 살아남은 균이 내성을 획득하고 다른 사람을 감염시킬 수 있다. 질병관리청에 따르면 2017년과 2019년 일반인 대상 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반 이상이 증상이 나아지면 항생제 복용을 중단해도 된다.’고 답해 인식 개선이 필요함을 알 수 있었다*.

소아청소년과 전문의이자 번역가인 강병철 작가는 이러한 현상은 부정확한 개념어가 일으킨 촌극이며, 잘못된 인식을 줄이기 위해 내성이란 용어보다 ‘(항생제) 저항성이란 용어를 쓰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말한다*. 영어의 예를 보자면 위의 첫 번째 개념에 대한 단어는 ‘tolerance’, 두 번째 개념에 대한 단어는 ‘resistance’로 전혀 다르다.

 

* 질병관리청. 내 몸을 위한 항생제, 건강을 위해 올바르게 써주세요! 2021.11.18 보도자료

* 강병철. 무엇이 아이의 건강을 위협하는가-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비판. 스켑틱 72017.

2022년 5월 19일 목요일

내 가족이 암에 걸렸을 때

한국인 세 명 중 한 명은 사는 동안 한 번은 암에 걸린다. 신규 암 발생자 수는 201522만명에서 201925만명으로 늘었으며 최근 매해 꾸준히 증가해 왔다. 예전엔 암이라 하면 죽을 병으로 생각했지만 그런 인식도 많이 바뀌었다. 조기 발견과 치료법의 발전으로 암 생존율은 크게 늘었다. 2019년 기준 암 환자의 5년 생존율은 70.7%, 십 년 전보다 5퍼센트 가량 높아졌다. 암에 걸려도 열 명 중 일곱 명은 5년 이상 생존하는 것이다. 같은 해 기준 암 유병자(암을 진단받고 치료 중이거나 완치된 사람)215만명이다. 우리나라 국민 25명 중 한 명이 암을 앓았던 사람인 셈이다.

암 환자가 늘어나면서 암 생존자의 삶의 질과 건강 문제에 대한 관심은 높아졌지만, 암 환자를 간병하는 가족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이들은 간병 과정에서 겪는 신체적, 정신적, 사회경제적 스트레스로 암 환자 못지않은 어려움을 겪는다. 하지만 환자에게 부담이 되는 것을 염려해 자신의 문제를 참거나 숨기는 경향이 있다. 암을 진단받은 환자의 가족은 대부분 보호자로서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게 느끼며, 죄책감을 갖는 경우도 흔하다. 예전에 잘못했던 일들을 떠올리며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 가족이 암에 걸렸을지도 모른다는 자책을 하는 것이다. 그러나 나의 행동이 가족을 암에 걸리도록 만든 것은 아니며, 가족이 암에 걸리는 것을 내가 막을 수도 없다. 스스로에 대한 책망은 환자에게나 환자를 돌보아야 할 가족에게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

병원에서 환자가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평소 환자와 연락하지 않고 지내던 가족이 갑자기 나타나 의료진에게 할 수 있는 것은 끝까지 다 해달라"고 하는 상황을 종종 보게 된다. 갑작스러운 가족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든데다 환자에 대한 자신의 죄책감이 더해진 것이 이런 행동의 이유일 것이다. 더 이상의 치료가 의학적으로 의미가 없음에도 가족간의 갈등으로 연명 치료를 지속하는 경우도 있다. 미국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을 빗댄 '캘리포니아에서 온 딸 신드롬(Daughter from California Syndrome)'이라는 표현이 있는 걸 보면 비단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일은 아닌 것 같다. 위중한 병을 앓는 환자의 가족이 느끼는 죄책감은 그만큼 보편적인 감정인 것이다.

암 치료라는 힘든 여정을 잘 헤쳐나가기 위해서는 환자와 가족 모두 스트레스를 적절하게 관리해야 한다. 가족이 건강해야 환자도 치료를 잘 받고 삶의 질을 유지할 수 있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국내 연구에 따르면 암 환자를 돌보는 가족 세 명 중 두 명이 우울 증상을 겪으며, 실제로 우울증이 발생할 확률도 1.6배 높았다. 전문가들은 가족 모두에게 역할을 분배해서 한 명이 전담하는 독박 간병을 피하도록 하며, 주 간병인 역할을 맡더라도 적어도 일주일에 하루는 자신을 위해 쓰라고 조언한다. 아파하는 환자를 두고 내 시간을 챙기는 것에 죄책감을 가질 필요는 없다. 자신을 위한 휴식은 환자를 더 잘 돌볼 수 있는 힘을 키우기 위해서도 꼭 필요하기 때문이다.


* Rhee YS, Yun YH, Park S, Shin DO, Lee KM, Yoo HJ, Kim JH, Kim SO, Lee R, Lee YO, Kim NS. Depression in family caregivers of Cancer patients: the feeling of burden as a predictor of depression. J Clin Oncol. 2008;26(36):5890–5895.

* 조영대, 전용우, 장성인, 박은철. Family Members of Cancer Patients in Korea Are at an Increased Risk of Medically Diagnosed Depression. 예방의학회지 2018;51(2):100-108.


2021년 6월 3일 목요일

연수일기 74. CDC의 변경된 마스크 관련 지침에 대해

6월 2일 수요일. 130일째 날.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CDC의 5월 13일 발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발표로 인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마스크를 벗게 됨으로써 새로운 환자 발생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를 했다. 반면에 백신 접종을 하면 마스크를 벗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백신 접종을 주저하던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을 동기를 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있었다.

NY Times의 오늘 칼럼을 보면 긍정적 전망에 조금 더 기대어봐도 될 것 같다. 이 칼럼에서는 그 근거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5월 13일 이후에도 새로운 환자 발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CDC 발표 이후 실제로 일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도 마스크를 벗고 있지만, 환자 발생 추이를 바꿀 만큼 영향이 크진 않았을 것으로 분석한다. 물론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어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위험이 극히 낮다.
둘째는 4월 중순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던 백신 접종자 수가 CDC 발표 이후 감소 추세를 멈추었다는 점이다.(접종 대상 연령으로 새로 추가된 12-15세 청소년을 더하면 하루 백신 접종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CDC 발표가 있던 날, 내 주변의 백신 접종 장소를 안내하는 vaccines.gov 사이트의 트래픽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후에도 발표 이전에 비해 늘어난 트래픽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접종자 수 추이의 변화에 CDC의 발표가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가 일시적으로 건강 관련 행동을 바꿀 수 있지만, 이러한 효과는 제한적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포가 가져온 효과는 오래 가기 힘들고 필연적으로 저항과 반작용을 만나게 된다. 반면 '희망'이 불러일으킨 행동 변화는 좀더 오랫동안 유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백신을 맞지 않으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다라는 무시무시한 메세지만으로 끝나선 안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메세지가 필요하며, 그 내용은 구체적일 수록 좋다. 백신을 맞으면 더이상 자신의 삶을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친구들을 만나고 친척들과 포옹을 나눌 수 있다는 것. 대중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주는 효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으며, 이는 긍정적 강화가 사람들의 건강 관련 행동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사례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백신을 맞으면 할 수 있는 일들
출처: https://www.cdc.gov/coronavirus/2019-ncov/vaccines/fully-vaccinated.html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도 백신 접종자는 거리두기 완화가 가능하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언론도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최근 주요 신문의 논조는 개인적으로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만큼의 태세 전환인데, 내가 한국에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지는 모르겠다.) 백신 접종자가 600만명을 넘어서고, 하루 50만명 씩 접종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노쇼 백신을 예약하기가 어렵다는 소식도 있었다. 미국에서 목격하는 희망적인 추세가 계속 이어지기를, 그리고 한국에서도 '희망'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1년 5월 19일 수요일

연수일기 65. 미국 수돗물은 건강에 안 좋을까?

5월 18일 화요일. 115일째 날. 

미국의 수돗물(tap water)은 석회가 많은 센물(hard water)이라 개수대나 세면대에 물이 마른 뒤 남아있는 석회 자국을 쉽게 볼 수 있다. 설겆이를 해도 그릇에 남은 허연 얼룩이 지저분해 보인다. 석회가 섞인 물이라니, 마치 걸러지지 않은 흙탕물을 먹는 것 같아 꺼림칙할 수도 있지만 이 나라 사람들은 그리 신경쓰진 않는 것 같다. 한국인들 중엔 건강을 걱정해 생수를 사 먹거나 연수 기능이 있는 정수기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석회가 섞인 물이 건강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근거는 빈약하다. Hard water 관련 연구들을 살펴보면 오히려 질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결과도 있다. 심혈관 질환에 대한 것인데, 이에 대해선 꽤 많은 연구를 찾을 수 있다. 주된 가설은 hard water에 많이 포함된 마그네슘이 심혈관 질환 위험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WHO의 보고서에서도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연구들 사이에서도 결과가 일치하지 않아 명확한 결론을 내리긴 어렵다. 

WHO 보고서에서는 hard water가 심혈관 질환 예방에 도움이 될 수 있지만 습진이나 아토피 피부염과 같은 피부 질환은 악화시킬 수 있다고 언급한다. 하지만 이 역시 근거는 확실치 않다. 설사 관련성이 있다 해도 그것이 직접적으로 물 때문인지, 아님 비누나 샴푸 등의 사용 환경 변화(거품이 잘 나지 않아 비누를 더 많이 쓰게 되고, 비누가 잘 씻겨나가지도 않는다)나 옷 세탁 후 섬유에 남은 미네랄 성분 때문인지 구분하기 어렵다. 미국에 와서 푸석해진 머리결이나 피부 트러블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개인적으론 물 성분의 변화가 이런 문제엔 영향을 줄 수 있을 거란 생각은 든다. 

건강과 관련해 좀 더 광범위한 내용은 이 리뷰를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이 연구에서는 심혈관 질환 외에도 암, 뇌졸중, 신경계 질환 등 다양한 문제와의 관련성에 대해 기존의 과학적 근거를 살펴보았다. 대부분의 질환에 대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엔 근거가 부족함을 확인할 수 있다. 

Hard water는 칼슘과 마그네슘이 주 성분이다. 탄산칼슘(CaCO3)으로 물 1리터당 120mg 이상은 hard, 180mg 이상은 very hard로 구분한다. 아래 지도에서 아리조나, 유타, 뉴멕시코, 콜로라도, 텍사스 등이 very hard water 지역에 속한다. 샌디에고가 포함된 캘리포니아 남부 역시 여기에 해당한다. 하루 2리터의 물을 마시는 A씨가 한국에서 샌디에고로 이사를 했다면, 이곳 물을 마시는 것만으로 식수를 통해 하루에 대략 탄산칼슘 400mg을 더 먹게 되는 것이다. 

Hard water의 나라

한국 성인의 칼슘 권장 섭취량은 700mg 이상이며, 골다공증이 있는 경우엔 1000-1200mg 섭취를 권한다. 하지만 한국인의 실제 평균 섭취량은 500mg 정도에 불과하다. 칼슘은 한국인에게 가장 부족한 영양소 중 하나이다. 여기서의 칼슘 양은 칼슘 원소(elemental calcium)를 말하는 것으로, 칼슘의 형태에 따라 포함된 칼슘 원소의 양이 다르다. 

탄산칼슘에 포함된 칼슘 원소의 양은 40%이다. 앞에서 들은 A씨의 예와 같이 식수를 통해 하루 400mg의 탄산칼슘을 먹는다면, 이를 통해 실제 섭취하는 칼슘 원소의 양은 160mg가 된다. 결국 한국인 평균인 500mg의 칼슘을 섭취하는 경우 샌디에고의 수돗물만 마셔도 하루 권장 섭취량인 700mg에 가까워지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칼슘 섭취가 부족한 한국인의 경우엔 미국 수돗물을 마시는 것이 건강에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참고로 건강기능식품인 칼슘 보충제에는 보통 이보다 훨씬 많은 1000mg 이상의 탄산칼슘이 포함되어 있다. 

마그네슘의 권장 섭취량은 300-400mg이다. WHO 보고서에 따르면 하루 2리터의 물을 마시는 경우 이를 통해 soft water는 2.3mg, hard water는 52.1mg의 마그네슘을 섭취하게 된다고 한다. 마그네슘 보충제 역시 함량이 이보다 훨씬 높은, 100mg이 넘는 제품을 흔히 볼 수 있다. 

미국에서 우리가 마시는 수돗물은 이런 보충제를 쪼개서 녹인 물이라고 생각해도 과히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칼슘 또는 마그네슘 보충제도 과하면 건강에 해가 될 수 있지만, 물에 포함된 해당 미네랄 성분의 양은 일반적인 보충제 함량보다 낮다. 샌디에고 시에서 정기적으로 발간하는 수돗물 조사 보고서에서는 기타 중금속 등의 유해 성분에 대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샌디에고 수돗물 1L엔 이 칼슘보충제 1/3알이 들어있다.

그러니 미국의 수돗물을 마시며 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을 듯 하다. 그저 입맛에 맞는 물을 마시면 되지 않을까. 우리 집의 경우 수돗물의 맛 때문에 그냥 마시진 않고 끓여서 보리차를 우러내 마시는데, 식탁에 항상 함께 올라오는 생수 병은 보리차를 좋아하지 않는 둘째의 몫이다.  

2021년 5월 8일 토요일

Covid-19 백신 뉴스 기사에 대한 생각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TV 뉴스를 켠다. 아이들을 깨우고 함께 아침을 먹고 등교와 출근 준비를 하며 보는 것이다. Covid-19와 백신 관련 기사는 매일 빠지지 않는다. 미국은 2억 명 접종의 마일스톤을 넘겼다. CDC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상 미국 성인의 40% 이상이 접종을 완료했고, 60% 가까이 최소 1회 접종을 받았다. 

https://covid.cdc.gov/covid-data-tracker/#vaccinations

이곳 뉴스에선 매일 백신 접종률을 보도한다. 접종 시작 이후 애초의 목표를 넘어서는 접종률을 기록하며 순항함에 따라 정부는 몇 차례 목표를 상향해왔다. Real world data 분석에서는 화이자와 모더나 2회 접종을 한 경우 90%의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내에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해져 간다. 변이 바이러스와 최근 둔화된 접종 속도 때문이다. 주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존슨앤존슨 백신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후로 접종을 꺼리는 사람이 늘어났고 2차 접종을 미루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이전보다 접종 예약도 수월해졌다. 접종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일찍 접종을 받았고 현재 남은 사람들 중에선 접종을 꺼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접종 속도가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접종을 꺼리는 현상(vaccine hesitancy)은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제일 것이나, 사회 문제가 될 정도의 안티 백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에도 '안아키'와 같은 카페가 존재하지만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소수이다.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시키지 않아 홍역과 백일해가 다시 유행했던 미국이나 유럽만큼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될 정도의 영향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안티 백서들이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들을 때면 이 나라의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 수준이나 의료 체계의 문제 등을 떠올리며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국은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선 과학과 미신을 구별할만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한국의 뉴스에선 낮은 접종률, 그리고 순조로운 접종을 위한 전략보다는 접종의 부작용을 다루는 기사가 더 눈에 띈다. 기사는 반복해 재생산되고 SNS를 통해 확산된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접종을 꺼린다.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목적인 백신의 경우, 무엇보다 안전성이 중요한 문제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과학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접종을 진행한 나라들의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백신의 이득과 위험은 빠르게 수치화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는 AZ 백신의 위험보다 이득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여기서 전문가는 감염병과 백신 부작용, 그리고 공중보건 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를 말하며, 이러한 지식이 없는 의사들은 일반 대중과 큰 차이가 없다. 

접종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의료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이 이와 같은 문제를 현명하게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는 이득과 위험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골치아픈 일이며,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충분하고 객관적인 정보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를 전달할 의무가 있지만 이러한 의무를 다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을 보도한 어떤 기사도, AZ 백신으로 인한 혈전증의 빈도가 백만분의 일 정도이며 이로 인한 사망보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4-10배 높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기고문 참고). 과학적 근거를 담은 기사는 쓰기도 쉽지 않겠지만 독자의 흥미를 끌기도 어렵다. 이에 반해 부작용 사례에 대한 기사는 쉽게 관심을 일으킬 수 있고, 독자의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우리에겐 특정 사건이 눈에 많이 띄거나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경우 해당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견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현상을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이라고 한다. 대중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객관적인 판단에 필요한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할 경우 치우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심각한 부작용만을 다룬 기사가 늘어날수록 백신 접종에 대한 판단에 부작용 사례가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실제 확률과 별개로 내가 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커진다.



이곳에서 한국의 인터넷 뉴스를 많이 보진 않지만 최근의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은 또 한 번 언론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경찰의 조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일부 기사들은 이미 옆에 있던 친구를 용의자로 단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보도가 온전히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기사들에서 백신 부작용에 대한 기사를 볼 때와 비슷한 기시감을 느낀 건 나 뿐이었을까.


2020년 10월 23일 금요일

Swimming in the pool with COVID-19

The office setup was simple. Other than desks and chairs, all that was in the room was a water purifier and a box of instant coffee. It seemed like not many things were needed for a temporary office. A low divider was set up between desks on which a monitor was placed. At first glance, the office looked like a call center, but a large monitor mounted on the wall at the back of the office hinted that this was not a typical call center. The status board listed occupied room numbers, patients names, and their ages. This ward was different from other hospitals where as most of the rooms were designed for one patient, not a group. Also, the patient rooms were 112 miles from the main office of the medical team.

The facility called “Life Treatment Center” which is located in Mungyeong, Geongsangbuk-do Province, was designed for mild patients who do not need to be hospitalized. Except for a few family rooms, all the rooms were prepared for a single patient with the purpose of quarantine in mind. The original purpose of the building was for the hospitals employee training, so I had also stayed in the building a few times to attend workshops. Staring at the status board, I remembered the structure of the room that I was familiar with. Two single beds, a desk, a small wall mounted TV, a refrigerator, and a bathroom with a shower. It was a tiny room that could be found in any cheap resort. One of two beds must be empty at all times because only one patient can stay in each room at any given time. Every patient was usually required to stay in the room for at least 2 weeks.

After patients in Mungyeong check body temperature themselves twice a day and record symptoms, a medical team based in Seoul reviews the records and provides medical consultation. Some cases need treatment from the division of infectious diseases and Psychiatry. All consultations and treatments are provided remotely through a video call from the central monitoring center in Seoul. Another medical team dispatched to Mungeyong performs tests including a blood test, a corona virus PCR, and a chest X-ray and handles problems that happen to the patients. The field team works closely with the medical team in Seoul to decide who can check out and who needs further treatment.

Two doctors and ten nurses resided in the central monitoring center in our hospital. Everyone is given a combination of their job title and a unique number like Doctor 1 or Nurse 5 to use on the messenger app downloaded on their work phone. The combinations are taken by different people as various departments take turns working at the center. I was entitled “Doctor 1” four days ago, but this afternoon I’m “Doctor 2”. In the earlier stages, all medical teams found it challenging to adapt to the new setup but it has gotten much easier as a month has passed and the number of confirmed cases has decreased. According to the status board, today’s total inpatient number was 63. There was no appointment scheduled for Doctor 2 in the afternoon so I was supposed to stay in my seat answering inquiries that come in occasionally. 

“Oh no, that must be frustrating.”

It sounded like someone in the nurse room was comforting a child. Probably a patient was complaining during the afternoon regular consultation. Being stuck in a tiny room for two weeks or more can’t be an easy thing. Being quarantined in the tiny room alone can give people a headache that they have never experienced, or even a single dry cough can frighten them. Therefore, it is equally important for a medical team to understand the anxiety patients can experience and to empathize with them to help them stay calm and not panic. Some patients who experience serious anxiety and depression get psychological counseling as well. Even if the process of identifying patients' condition through a video call or a phone call was challenging, all our nurses were doing a great job.

“Doctor, I heard the test result of positive this morning. When is the next test?”

It was towards the end of my shift when I got the inquiry from a patient. I checked the name on the messenger and checked the medical history. It was a young lady. She was admitted on the first day of opening the center so it has been more than a month. Patients regularly get a PCR test and they can check out only if they test negative twice in a row. The patient tested negative in mid March but after four days she tested positive so her check-out was postponed. The next test was negative but after that, the latest test turned out positive again. She got that result this morning. I messaged her that the next test will be in four days, and she replied quickly with thank you. The brief message made my heart heavy. She had been tested ten times by now. It is probably very depressing to get tested positive from negative twice. She was probably thinking that she can go back home soon, sit around the table with her family and eat dinner, and walk on the street with her friends with coffee in one hand.

I had reminded me of the time when I learned to swim for the first time. I felt like I’m the only one remaining in the same spot when everyone else in the pool was moving forward. In order to pass the beginner class I had to be able to swim to the end of the lane without stopping but once I was in the water that seemed impossible. I estimated the remaining distance floating in the water looking down the blue tiles at the bottom of the pool. I could reach the end after three drains. Passing the first drain was easy, the second was tough, and I got out of breath before reaching the third drain and gave up. Even if I kicked as hard as I could until I got a cramp, my body didn’t move as I had intended. The patient was smiling in the profile photo of the messenger. For the past month, she might have been feeling the same as I did in the pool. Probably hopes crumbled as test results turn out to be the opposite of what she wanted. Spring has arrived but the world is moving on as if her existence is completed removed.

The central monitoring center was closed after 36 days of operations. Total 118 patients stayed at the center during that period. A few patients who have to remain will be soon relocated to another center. When the center was closed, even if I worked there only a handful of times, I wanted to check the list of patients who remained. Her name was there. I just hoped that she can reach the end of the lane not too far from now. I was hoping that she doesn’t stop kicking until then.


(Telemedicine is illegal in Korea, but it is temporarily allowed during the covid-19 epidemic. It was March, 2020 when the Seoul National University Hospital operated the Life Treatment Center in Mungeyong. The number of patients in Korea decreased over time and the daily cases stayed around 50 for four months. However, since August, new confirmed cases started increasing drastically and we opened two new centers in the suburbs of Seoul. We haven’t reached the end of the lane y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