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7일 목요일

피로하시다구요?


컵에 물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컵 밖의 바닥에 물이 흘렀습니다. 왜일까요?

먼저 이렇게 생각해볼 수 있습니다.



- 컵이 깨졌거나 구멍이 났다.

'피로'때문에 병원을 찾는 환자의 생각은 이와 같습니다. 피로라는 증상이 생기면 내 몸 어딘가가 깨졌거나 구멍이 났다고 생각하는거지요. 본래의 기능을 하지 못할만한 문제가 생겼다는 것인데, 피로가 아닌 다른 증상이 생긴 경우에도 대개 이렇게들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실제론 다음의 경우가 더 많습니다.

- 컵 크기보다 많은 물이 들어와서 넘쳤다.

'증상'이란 현상은 바닥에 흐른 물과 같습니다. 잘 닦여있어야 할 식탁 위를 적신 물.

만약 컵 어딘가가 깨지거나 구멍이 났다면 찾아서 고치고 때워야합니다. 병원에서 하는 검사는 그 부위를 찾는 과정이며, 적절한 치료는 찾은 구멍을 고치고 때우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근본적인 원인이 컵에 난 구멍이 아니라 한꺼번에 너무 많이 들어온 물이었다면, 해결책은 물이 지나치게 들어오지 않도록 하는 것이 맞겠지요. '피로'라는 증상으로 생각해보면 과로를 했거나 스트레스가 지나치게 많은 경우라 할 수 있고, 그 해결책은 일을 줄이거나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됩니다.


이미지 출처: 매일경제


가장 흔한 경우는 세번째의 경우입니다.

- 담겨있는 물은 그대로이나, 컵의 크기가 줄어들어서 넘쳤다.

이 경우에도 물이 바닥으로 흐르는, 즉 '증상'이 생기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내 몸이 고장난 것도 아니고, 특별히 일이나 스트레스가 많아진 것도 아닙니다. 컵에 구멍이 나거나 깨진 것이 아니니 병원에서도 특별한 이상이 없다고 합니다. 나는 피로를 느끼는데 피로가 생길만한 이유를 잘 모르겠고, 병원을 찾아도 이상이 없다고 하니 답답할 노릇이지요.

쉽게 말하자면 '체력이 떨어졌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컵의 크기, 즉 체력이 줄어드는 제일 흔한 이유는 나이가 드는 것입니다. 40대가 되었는데 2-30대 때의 체력과 같을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50대가 되었는데 40대 때의 체력과 같을 수도 없지요. 나이가 많아질수록 5, 10년 정도가 아니라 당장 1, 2년 뒤가 다릅니다. 내 컵의 크기는 줄어드는데도 직책이 높아지면서 직장과 사회에서 내게 요구하는 것은 더 많아집니다. 가사를 담당하는 여성의 경우도 육아 부담이 늘어나고 아이가 커가면서 나에 대한 주변의 요구는 늘어나게 마련입니다.

이 경우에도 물을 덜어내는 것, 즉 업무나 스트레스 요인을 줄이는 것이 해결책이 될 수 있겠습니다. 어떤 환자분의 경우엔 아예 이직을 하거나 시골로 내려갔더니 증상이 좋아지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선택은 쉽게 할 수 없고, 내가 일과 스트레스를 줄이고 싶다고 바로 줄일 수 있는 경우도 많지 않습니다.

외부의 환경을 바꿀 수 없다면 결국 나 스스로를 바꿔야합니다. 컵의 크기, 즉 내 체력을 다시 키워야한다는 것입니다. 흡연 중이라면 금연을 하고, 잦은 과음을 피하고,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꾸준히 운동을 하는 것이 그 방법입니다. 이런 기본적인 건강 관리의 원칙만 잘 지켜도 컵의 크기는 늘어납니다.

대부분의 피로는 간 때문이 아닙니다.

이런 기본적인 건강 관리는 재미도 없고 효과가 금방 나타나지도 않지만 가장 근본적인 해결책입니다. 우리는 재테크에 대해서는 계획을 세우고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면서도, 건강에 대해 포트폴리오를 짜는 것 역시 필요하다는 생각은 하지 못합니다. 투자한 효과가 당장 드러나지 않으니 기초 체력을 위해 시간을 쓰는 것에 인색합니다. 보다 쉬운 방법을 찾기 위해 피로의 원인이 간때문이 아닌데도 간장약을 찾기도 하고, 보약이나 영양제를 구입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기본이 잘 되어있지 않다면 컵의 크기는 쉽게 줄어들어 물이 넘치고, 그때마다 병원을 찾게 됩니다.

프로 운동 선수의 예를 생각해볼까요? 시즌이 시작되고 잘 나가던 성적이 시즌 중반을 지나면서 떨어지는 경우를 흔히 보는데, 대개는 동계 훈련을 착실히 하지 않아 체력이 부족한 경우입니다. 운동으로 밥을 먹고 사는 프로 선수들도 한 시즌을 보내다보면 체력이 문제가 되는데, 스포츠 한 시즌보다 훨씬 길고 치열한, 삶이란 레이스를 펼쳐나가는 우리들은 더하겠지요.


2011년 11월 10일 목요일

위약 효과(Placebo Effect)

위약(僞藥; Placebo; 라틴어로서 '마음에 들다'라는 뜻)은 흉내낸, 혹은 조작된 의학적인 처치를 말한다. 위약으로 치료를 받은 환자가 주관적인 병세의 호전이나 실제 호전을 보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을 위약 효과(Placebo Effect)라고 한다.
- 출처: 위키피디아


새로 개발된 약이 시판되려면 그 약이 치료하려는 질병에 대해 효과가 있는지에 대해 확인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한 집단에서 약을 먹기 전후만을 비교하면 질병의 경과 변화가 결과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그러므로 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치료약과 가짜약(위약)을 먹여 반응의 차이를 비교한다. 이러한 위약대조연구에서는 위약을 먹인 그룹도 흔히 증상의 호전을 보이는데, 치료약의 효과가 이를 확실히 뛰어넘을 때 비로소 그 약의 효과가 증명된다.

질병에 따라 다르지만 위약으로 2-30% 정도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데, 특히 통증, 구역 증상, 천식, 공포증 등에서 더 큰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한다. 최고 권위의 의학학술지 'New England Journal of Medicine'에 올해 발표된 연구 결과를 보면 위약의 효과를 실감하게 된다.

하버드 의대 연구팀은 40여명의 천식 환자들을 상대로 위약과 실제 치료제의 효과를 비교했다. 천식에 실제로 쓰는 진짜 흡입제(알부테롤), 가짜 흡입제(위약), 가짜 침 치료를 교대로 받게한 뒤 환자가 느끼는 증상 정도(주관적 지표)와 폐기능검사(객관적 지표)를 치료 전후에 측정했다.
객관적으로 측정하는 폐기능검사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20% 좋아졌지만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에는 7% 정도에 그쳤다. 이것은 당연한 결과인데, 놀라운 것은 그 다음이다.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경우 진짜 흡입제를 썼을 때는 50% 좋아졌다고 느꼈는데 가짜 흡입제나 가짜 침 치료를 한 경우에도 45% 좋아졌다고 느꼈다. 진짜 치료든 가짜 치료든, 환자가 느끼는 주관적인 증상의 변화 정도는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다.


임상시험이나 실제 진료에서 위약이 투여되는지 여부는 환자에게 알리지 않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위약이라는 것을 알고 먹는 경우에는 어떨까. 언뜻 생각해보면 이 경우엔 병이 좋아질 것이란 믿음을 갖기 어려워 효과가 없을 것 같은데, 또 다른 하버드 의대 연구팀이 작년 'PLoS One' 학술지를 통해 발표한 연구에서 그 답을 찾을 수 있다.

이 연구는 80명의 과민성장증후군(Irritable Bowel Syndrome) 환자들을 대상으로 진행되었는데, 먼저 모든 대상자에게 다음 네 가지 측면을 강조하는 15분 가량의 설명을 듣도록 했다.
1) 위약의 효과가 실제로 크다.
2) 우리 몸은 위약에 대해 조건반사와 같이 자동으로 반응한다.
3) 긍정적인 태도가 도움이 되지만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4) 믿음을 가지고 위약을 먹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위약군과 무치료군으로 나누어 위약군에는 위약이라 쓰여진 젤라틴 캡슐을 규칙적으로 복용하도록 하고 무치료군에는 아무런 처치도 하지 않았다.
3주 뒤에 평가했을 때 위약을 먹은 사람들이 먹지 않은 사람들보다 증세가 호전되었고, 호전된 정도는 과민대장증후군에 효과적인 것으로 알려진 최신 치료약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놀랍게도 환자가 위약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효과가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위약은 경우에 따라 실제 치료와 맞먹는 큰 효과를 보이는데, 객관적인 검사 결과나 질병 자체의 경과보다는 환자의 주관적인 증상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 적절한 치료가 안될 경우 점점 진행해 만성 염증이 기관지를 망가뜨릴 수 있는 천식과 같은 병의 경우엔, 위약으로 주관적인 증상이 좋아졌다 해도 결국 질병의 경과는 나빠지게 될 것이다. 반면에 증상 자체가 문제인 과민성장질환과 같은 기능적 질환의 경우엔 위약이 보다 많은 도움을 줄 수도 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이 특정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먹고 좋아졌다고 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이것 역시 위약 효과일 가능성이 많다. 하지만 이 경우에도 좋아지는 것은 본인의 느낌일 뿐, 실제 내 몸에 미치는 객관적인 효과는 전혀 없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좋아질 것이란 믿음이 클수록 주관적인 효과를 느낄 확률도 높아질 것이다. 하지만 내가 구입한 제품이 약만큼 큰 효과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해도 막상 먹을 때는 '그래도 도움이 되겠지.'란 생각을 가지기 마련이며,두번째 연구의 결과와 같이 막연한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먹는 것만으로 증상이 좋아질 수도 있는 것이다.

물론 판매되는 많은 제품들 중 위약 효과를 광고하는 경우는 절대 없으며, 대부분의 구매자는 근거가 부족한 과장된 광고와 통념을 믿고 비싼 금액을 지불한다. 실제 효과가 아닌 위약 효과라 해도 증상이 나아지면 좋은 것 아니냐고 할지도 모르겠다. 그런 생각을 하는 분이 있다면 같은 돈으로 대신 친구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거나 기부를 하는 것도 고려해보시길. 좋은 사회적 관계나 선행이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들도 충분히 많으니 말이다.


참고문헌
Hrobjartsson A, Gøtzsche PC. Is the placebo powerless? An analysis of clinical trials comparing placebo with no treatment. N Engl J Med. 2001 May 24;344(21):1594-602.
Hrobjartsson A, Gøtzsche PC. Placebo interventions for all clinical conditions. Cochrane Database Syst Rev. 2010 Jan 20;(1):CD003974.
Wechsler ME, Kelley JM, Boyd IO, Dutile S, Marigowda G, Kirsch I, Israel E, Kaptchuk TJ. Active albuterol or placebo, sham acupuncture, or no intervention in asthma. N Engl J Med. 2011 Jul 14;365(2):119-26.
Ted J. Kaptchuk, Elizabeth Friedlander, John M. Kelley, M. Norma Sanchez, Efi Kokkotou, Joyce P. Singer, Magda Kowalczykowski, Franklin G. Miller, Irving Kirsch, Anthony J. Lembo. Placebos without Deception: A Randomized Controlled Trial in Irritable Bowel Syndrome. PLoS One. 2010; 5(12): e15591.

당신이 영양제를 먹는 이유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질문을 해보았다.

"당신이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을 먹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질문에 대한 답은 최근에 건강에 이상이 생겨서, 건강에 도움이 될 것 같아서, 가족이 챙겨줘서, 선물을 받아서, 음식으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서, 의사의 권유로, 의무감으로, 남들이 다 먹으니까 등이었다. 이유는 다양하지만 넓게 보면 결국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믿음이 깔려있는 것이다.

집에서 먹는 일상적인 식사 이외의 다른 음식을 먹을 때 음식을 선택하는 기준이 뭘까? 선택한 음식이 맛이 있다거나, 그 음식을 파는 식당의 분위기가 좋다는 등의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음식에 대한 이런 가치 판단은 어렵지 않다. 누구나 자신의 입맛과 취향에 따라 호불호를 정할 수 있고, 타인의 경험이 반영되기도 하지만 결국 선택의 기준은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사진 출처: wikipedia

영양제나 건강식품을 고를 때는 어떠한가? 맛이나 포장을 기준으로 선택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제품의 가치를 판단하고 선택하는 기준은 그 제품이 내 건강에 도움이 되느냐 그렇지 않느냐라는 것일텐데 그에 대한 근거는 크게 두가지, 경험과 과학적 사실로 구분된다.

첫번째 근거인 경험에는 다른 사람의 경험과 나 자신의 경험이 모두 해당된다. 나 자신의 경험은 한정되어있기 때문에, 처음 선택할 때는 주변 사람이나 관련 웹사이트 등을 통해 '이 제품을 써봤더니 좋더라' 하는 이야기를 듣고 영양제를 구입한다. 먼저 먹어본 사람의 평가를 듣고 맛집을 찾아가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렇게 해서 결국 스스로 먹어보고 경험한 뒤 먹는걸 중단할지, 추가로 더 구입해 계속 먹을지 판단하게 된다.

문제는, 이렇게 경험을 통해 효과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 실제 그 제품의 효과가 아니라 위약(placebo) 효과일 가능성이 많다는 것이다.

새로 개발된 치료약의 효과를 확인하기 위한 연구는 단순히 치료약을 먹기 전후를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각각 치료약과 가짜약(위약)을 먹여 반응의 차이를 비교한다. 이러한 위약대조연구에서는 위약을 먹인 그룹도 증상의 호전을 흔히 보이는데, 치료약의 효과가 이를 뛰어넘을 때 비로소 그 약의 효과가 증명된다. 질병의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위약으로 30% 정도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고 하니, 열명 중 세명은 효과가 있다고 느낀다는 것이다. 내가 효과를 느꼈을 때 그렇지 않았을 때보다 자신의 경험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할 확률이 더 높기때문에, 이러한 경험은 쉽게 확대 재생산된다.



두번째 근거인 과학적 사실의 경우는 믿을만한가? 경험보다 더 믿을만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일단 어디까지 '과학적'으로 볼 것인가부터 문제가 되는데, 특정 성분의 효과에 대해 상반된 결과를 보이는 연구는 흔히 찾을 수 있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다를 수 있기 때문이다.

의학 영역에서 실험실 연구나 동물 연구는 그 근거수준이 가장 낮기때문에, 많은 사람을 대상으로 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제품을 판매하는 업체에서 광고하는 '과학적' 근거의 상당수는 실험실 연구나 질이 낮은 소규모 연구들을 과장한 것이다. 부정적인 연구는 제외하고 효과가 있다고 보고된 연구만 모아 그 효과를 부풀리는 경우도 흔한데, 전문가가 아니라면 그 의미와 가치를 제대로 판단하기 힘들다.

경험적인 근거를 과학적인 근거로 포장하는 경우도 많다. 오래 전부터 사용해왔다는 것인데, 질병의 기전이 충분히 알려져있지 않고 치료 수단도 부족했던 시대에 사용했던 방법이 현재에도 유효하고 안전할까. 역사로만 따지면 현대 의학보다 주술이나 점의 효과를 믿어야할 것이다.

특정 종류의 영양제가 피로나 신체기능에 단기적으로 좋은 효과가 있다는 믿을만한 연구 결과들도 있다. (물론 반대되는 연구 결과도 많다.) 하지만 효과 못지않게 고려해야 할 것은 부작용일 것이다. 영양제가 인기가 많은 것은 약과 달리 부작용이 없다는 믿음때문이기도 한데, 그러한 믿음 역시 과학적 근거에 따르면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고용량의 베타카로틴을 비롯한 항산화제가 흡연자에게 오히려 폐암의 위험성을 높일 수 있다는 것은 잘 알려져있으며, 최근 연구 결과에 따르면 비타민E 보충제는 전립선암의 위험을 높이고 셀레늄은 당뇨의 위험을 높이는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제제를 복용하는 경우 오히려 사망 위험이 높아진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이들은 모두 근거 수준이 높은, 매우 잘 짜여진 대규모 연구들이다.

진료실에서 영양제나 건강기능식품의 장점이 대부분 과장된 것이고, 오히려 해가 될 수도 있다는 이야길 하면 환자들은 흔히 실망스런 표정을 짓는다. 우리는 가능하면 쉬운 방법으로 건강을 챙기려 하지만 치료의학이 눈부시게 발전한 현대에도 질병을 예방하고 건강을 증진하는 방법의 원칙은 변함이 없다. 건강한 식습관을 유지하고 꾸준히 운동하는 것, 정상 체중을 유지하고 흡연과 과음을 피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원칙을 지키는 것은 재미도 없고 노력도 필요하지만, 영양제가 건강에 미치는 위해에 대해 최근 보고되는 많은 연구 결과는 기본을 지키지 않고 쉽게 건강을 유지하려고 하는 현대인에 대한 경고일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Spiegel D. Placebos in practice. BMJ. 2004 Oct 23;329(7472):927-8.
Haskell CF, Robertson B, Jones E, Forster J, Jones R, Wilde A, Maggini S, Kennedy DO. Effects of a multi-vitamin/mineral supplement on cognitive function and fatigue during extended multi-tasking. Hum Psychopharmacol. 2010 Aug;25(6):448-61.
Kennedy DO, Veasey R, Watson A, Dodd F, Jones E, Maggini S, Haskell CF. Effects of high-dose B vitamin complex with vitamin C and minerals on subjective mood and performance in healthy males. Psychopharmacology (Berl). 2010 Jul;211(1):55-68.
Bjelakovic G, Nikolova D, Gluud LL, Simonetti RG, Gluud C. Mortality in randomized trials of antioxidant supplements for primary and secondary prevention: systematic review and meta-analysis. JAMA. 2007 Feb 28;297(8):842-57.
Klein EA, Thompson IM Jr, Tangen CM, Crowley JJ, Lucia MS, Goodman PJ, Minasian LM, Ford LG, Parnes HL, Gaziano JM, Karp DD, Lieber MM, Walther PJ, Klotz L, Parsons JK, Chin JL, Darke AK, Lippman SM, Goodman GE, Meyskens FL Jr, Baker LH. Vitamin E and the risk of prostate cancer: the Selenium and Vitamin E Cancer Prevention Trial (SELECT). JAMA. 2011 Oct 12;306(14):1549-56.
Mursu J, Robien K, Harnack LJ, Park K, Jacobs DR Jr. Dietary Supplements and Mortality Rate in Older Women: The Iowa Women's Health Study. Arch Intern Med. 2011 Oct 10;171(18):1625-33.

2011년 11월 3일 목요일

다른 사람들도 다들 그래요.

건강검진이 처음이시라는 50대 여성. 검사 결과를 설명하는데 얼굴에 걱정하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다행히 큰 문제는 없어 사소한 소견에 대해 하나하나 설명해드립니다.

"간에 낭종이 있는데 이건 물혹이고 치료할 필요가 없으니 걱정 안하셔도 됩니다."
"네? 물혹이 있다구요?"
"네. 하지만 말씀드린대로 이건 문제가 안되는 소견이에요. 그리고 위내시경에서 위염이..."
"간에 있다는 그 물혹은 크기가 큰가요?"
"아뇨. 작습니다. 1센티 정도밖에 안됩니다."
"그럼 그게 커지거나 암 같은 걸로 자랄 수도 있는 건가요?"
"드물게 크기가 커질 수도 있지만 실제 문제를 일으킬 정도가 되는 경우는 거의 없어요. 그리고 암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아직도 불안해하는 표정이시라, 한마디 더 덧붙입니다.

"이런 물혹은 다른 분들한테도 매우 흔합니다. 바깥에 나가서 아무나 붙잡고 전체적인 검사를 해보면 한두개 쯤은 다 가지고 있을거에요."

이 말을 들은 그녀가 비로소 표정이 밝아지는걸 보고 저도 함께 웃었습니다.

여러가지 검사가 포함된 건강검진의 경우 결과를 받고 설명을 들어도 이해가 잘 안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려운 용어도 많지요. 낭종(물혹), 결절(딱딱한 혹), 종양(비정상적인 덩어리), 용종(위장이나 담낭 등의 점막에 생기는 혹) 등등. 요즘은 의사들도 환자가 알아듣기 쉽게 풀어 설명하려 노력하지만, 여전히 환자 입장에서 이런 의학 용어들은 생소할 따름입니다.

게다가 드라마나 소설에서 주인공을 죽이는 병은 모두 암이고, 암은 몸 속에 나쁜 혹이 자라는 병으로 알려져있으니 내 몸 속에 혹이 있다는 이야길 들으면 어떤 종류의 혹이든 일단 놀라는게 당연하지요. 하지만 앞의 예에서 나온 것처럼 치료가 불필요하고 추후 건강에 문제를 일으키지 않아서 그저 변화가 있는지 여부만 지켜보는 것으로 충분한 경우가 더 많습니다.

건강검진은 증상이 없을 때 큰 병을 미리 잡아내고, 나중에 큰 병으로 발전할 수 있는 건강위험요인을 알게해서 이를 일찍부터 관리하고 병을 예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하지만 검사 결과에 나타나는 여러가지 소견으로 인해 불필요한 걱정을 하게 되고, 경우에 따라선 불필요한 추가 검사까지 하게 되는 문제도 있습니다. 정밀 검사가 필요한 정도의 이상 소견이라면 추가 검사를 진행하는 동안 마음 고생을 하더라도 검사를 진행해야겠지만, 앞의 예처럼 큰 의미 없는 유소견이 나온 경우라면 불필요한 걱정과 불안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선 검사 결과의 의미를 잘 전달하고 의사와 환자간에 충분한 의사소통이 이루어져야겠지요.

하루에도 수십번씩 검사 결과를 전달해야하는 의사 입장에서 검사 결과를 어떻게 설명하느냐는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의학적으로 곧이 곧대로 설명하면 이해하기도 힘들고 괜한 걱정을 키우기 쉬운데, 직접적인 설명보다 해당 결과가 얼마나 흔한지를 이야기하는 것이 훨씬 효과적인 경우가 많습니다. 앞에서 소개한 예처럼 말이지요.

허무하게 느껴질지도 모르는 '남들도 다 그렇게 살아요.'란 말이, 내게 힘든 일이 있을 때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될 때가 있습니다. 진료실에서도 그 말은 큰 위력을 발휘하곤 합니다. 오늘도 걱정스런 표정의 환자에게 한번 더 이야기합니다.

"다른 분들도 다들 그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