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2일 월요일. 58일째 날. 시온 마켓 Zion Market에서 장을 보았다. 샌디에고에서 H마트와 자웅을 겨루는 이 한인 마트는 두 번째 방문이다. 아이들을 데리고 오지 않은 오늘은 시간에 여유가 있어 찬찬히 살펴볼 수 있었다. 채소 가격이 무척 쌌다. 채소는 앞으로 여기서 사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쌀과 한국 라면들, 그리고 미국 마트에서 팔지 않는 조기도 샀다. 한입 크기로 잘게 썬 문어와 막걸리도 두 병 카트에 넣었다. 저녁으로 이곳에 와서 처음 생선다운 생선을 먹고, 데친 문어에 막걸리도 (맛은 좀 아쉬웠지만) 한 컵 마시니 마음이 훈훈해졌다.
이 정도면 근사한 한 상 |
저녁을 일찍 먹으니 식사 이후에도 시간이 많이 남는다. DST 이후로 해가 길어진 것도 이유일 것 같다. 식탁을 정리하고 딸아이와 수영장에 갔다. 아이는 저녁 시간에 자쿠지에 앉아있는 걸 좋아해 요즘은 거의 매일 저녁 수영장에 가자고 조르곤 한다. 따뜻한 자쿠지에 앉아 어둑해져 가는 하늘의 별을 보며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도란도란 이야기하다 보니 몸이 노곤해졌다. 이것도 여기 생활에서 느낄 수 있는 행복이다.
3월 23일 화요일. 59일째 날. Jogathon day로 어제 운동장을 여섯 바퀴 달렸다던 둘째가 허벅지가 당긴다고 울상을 지으며 워터 폴로 수업에 가기 싫다고 한다. 주 4회 수업이라 어제에 이어 오늘도 수업에 가야하는 첫째도 마찬가지이다. 침대에서 일어나려 하지 않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차에 태웠다. 수업이 끝나고 집에 와서 둘째는 기분이 나아졌지만 아들은 저녁을 먹으면서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저녁 농구 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은 수업 전에 저녁을 빨리 먹어야 한다.
아이들 운동 수업을 보내는 건 힘든 훈련을 시키기 위함이 아닌데, 아이가 얻는 즐거움은 없이 힘든 시간만 보내는 것 같아 걱정이 된다. 지금과 같은 상태가 계속되면 워터 폴로 수업을 그만두는 것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았다. 농구 수업이 끝나고 집에 오면서 아들과 이야기했다. 오늘 학교에서 힌두이즘의 역사에 대해 소그룹 학습을 하는 시간이 있었는데 역사 선생님의 말씀을 거의 알아들을 수가 없어 40분 동안 가만히 있었다고 한다. 익숙하지 않은 주제에 대한 수업에서 더 어려움을 느끼는 건 당연할 것이다. 그래서 하루 종일 더 기분이 가라앉았던 것 같다. 운동 수업에 대한 아내와 내 생각도 이야기해주고 아이의 생각도 들었다. 힘들지만 지난 주보다 조금은 적응이 된 것 같다고도 한다. 나이가 어린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는 것 때문에 자존심이 떨어지지 않는지도 물었지만 그건 괜찮다고 했다. 시작한지도 얼마 되지 않았으니 수업을 계속 받을지는 남은 등록 기간 동안 생각해보겠다고도 했다. 수업은 언제든 그만둘 수 있으니 너무 힘들면 언제든 이야기하라고 일러 주었다. 이야기를 나누고 나니 아이의 표정도 다시 밝아졌다.
이곳에 온 지 얼마되지 않았지만 아들이 몸 뿐만 아니라 생각도 부쩍 자란 걸 느낀다. 아이는 꾸준히 자라고 있었지만 한국에 있는 동안엔 그걸 느낄 기회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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