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6일 화요일. 52일째 날. 아이들이 water polo 수업에 가는 날이다. 지난 세 번의 수업은 free trial이었고, 오늘부턴 정식으로 등록한 spring camp 수업이다. 둘째는 정식 클래스가 아닌, 어린 아이들을 위한 splash 반에 계속 참여할거라 큰 부담이 없다. 아들은 이제 12세 반 수업을 듣게 될텐데 훈련 강도가 어떨지 모르겠다. 아이는 벌써부터 걱정이다. 수업 시작 전에 코치를 통해 새 반을 확인했다. 12세 반 아이들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코치는 그중 less experienced group을 추천했다. 우리가 생각해도 그 그룹이 나을 것 같았다. 수영을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처음부터 꾸준히 클럽 활동을 해온 아이들의 운동량을 따라가긴 힘들 것 같았다.
미국의 생활 스포츠 인프라에 대해선 익히 들어왔지만, 막상 와서 직접 보니 생각했던 것 이상이었다. 어느 동네든 집에서 걸어갈 수 있는 거리 내에 공원이 있고, 언제든 공원에 나가면 미식축구나 축구, 농구 등 단체 운동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중학교에선 영어, 수학, 과학, 역사와 함께 체육 수업이 필수 과목이다. 이곳에서 스포츠 활동에 참여하지 않는 아이들은 없는 것 같았다. 이사 온 며칠 뒤 산책을 하다 이웃한 고등학교 캠퍼스의 규모를 보고 놀랐는데, 학교 안에 정식 규격의 육상 트랙과 미식축구장, 두 개의 야구장, 여덟 개의 테니스 코트, 여섯 개의 농구 코트가 있었다. 더 놀란 것은 다른 고등학교들도 비슷한 정도의 체육 시설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이들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하키 스틱과, 테니스 라켓, 야구 배트와 글러브를 들고 유니폼을 입은 고등학생들을 연이어 볼 수 있었다. 학교에서는 정규 수업 이외에도 independent study physical education이라는 이름으로 아마추어 스포츠 클럽 활동을 장려하는데, 이러한 클럽에 속한 아이들일 것이다. 입시 위주 교육 환경에서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한국의 체육 수업이 생각나 입맛이 썼다. 운동하는 모습을 멀리서 지켜봐도 학생들의 수준이 꽤 높음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의 스포츠 클럽은 팀웍과 협동심, 배려를 우선적인 덕목으로 내세우지만, 그에 못지 않게 경쟁과 노력도 강조한다. 강도 높은 훈련과 경쟁을 통해 기량을 늘리는 것이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다 보니 종목 별로 다양한 아마추어 대회가 있고, 많은 스포츠 클럽이 이러한 대회에 참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이 water polo 클럽에서도 각종 리그와 토너먼트 참가를 독려했다. 대회에 참가하려면 USA Water Polo에 선수 등록을 해야 한다.
USA Water Polo 웹페이지의 배너. 포스가 느껴진다...... |
각종 유니폼을 입고 포스를 뿜뿜 내보이며 지나가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니 생존 수영 수준의 아이가 오늘 연습을 따라갈 수 있었을지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수업이 끝나고 물에 젖은 타월을 몸에 둘둘 감은 아이들이 하나둘 계단을 올라오는데, 차에 타는 아들 얼굴빛이 파리한게 힘들었나 보다. 기운이 다 빠졌는지 한동안 말이 없다가 이야기를 시작하는데, 아무리 애를 써도 기존 아이들 수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함께 공을 다루는 연습을 하지 못하고 나중엔 혼자 따로 수영 연습만 했단다.
집에 와서도 침울해 보이던 아이는 저녁을 먹고서야 다시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았다. 괜히 워터 폴로 수업에 보냈다고 후회하는 아내를 다독이며 이제 막 시작했으니 좀더 지켜보자고 설득했다. 하지만 하루 사이에 얼굴 살이 쪽 빠진 아이를 보니 나도 마음이 짠했다. 학교 생활도, 농구 수업도, 워터 폴로 수업도 모두 초보 입장이니 자존감이 낮아질 상황의 연속인데, 운동 수업에 참여하는 것이 적응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정말 아이에게 득이 더 될지에 대해 확신이 서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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