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0일 수요일. 46일째 날. 비 예보가 있었는데 점심 때가 되자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는 종종 걸어서 다녀오곤 한다. 오늘도 걸어서 학교에 가는데 금새 먹구름과 바람이 몰려오더니 학교에 다 와서는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다가 금새 멈추기도 해서 일단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우박이 떨어진다. 살면서 그렇게 큰 우박은 처음 보았다. 작은 사탕알만한 얼음 덩어리가 후두둑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어떻게 집에 돌아가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십 분 정도 세차게 내리던 우박은 아이들이 나올 때가 되자 멈췄지만 빗줄기는 약해진 채 계속 내려 H 선생님 차를 얻어타고 집에 돌아왔다.
연수 장소가 샌디에고로 정해졌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샌디에고 생활에서 무엇보다 좋은 건 날씨라고 이야기했다. 여름엔 에어컨이 필요 없고 겨울엔 히터가 필요 없다고 했다.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출국을 준비했고 두꺼운 옷은 거의 가져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날씨는 실제로 좋았다. 하늘 색깔이 이렇게 파랗게 보일 수 있구나 하는 걸 매일 느낀다. 햇볕은 따스하고 공기는 깨끗하다. 하지만 생각보단 기온이 낮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쌀쌀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나와 아이들에겐 쾌적한 날씨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는 춥다는 소리를 매일 달고 산다. 흐리고 비가 오는 날도 생각보단 많았다.
"오늘 날씨는 어때요?"
"어제랑 비슷해."
아침에 입을 옷을 고르는 딸아이와 자주 하는 대화이다. 겨울 치고는 정말 따뜻하니 말로만 듣던 지중해성 기후를 느낄 수 있다. 매일매일의 날씨에도 큰 변화가 없다. 한국에서처럼 절기가 바뀌면서 거짓말처럼 새 계절을 느끼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1년 내내 무더위나 한파는 없지만, 반면에 섭씨 10~20도 근방을 오가는 날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가 더 내려간다. 이 날씨에 추위를 느끼는 사람들은 6개월이 넘게 겨울 옷을 꺼내두어야 할 수 있다. 샌디에고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날씨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5월과 6월까지도 흐린 날이 종종 있어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May Gray", "June Gloom"이란 말도 흔히 한다.
샌디에고 월별 평균 기온과 강수량 |
둘째가 집에서 친구와 놀다 다툼이 생겨 울었다. 저녁엔 코스트코 치킨 뼈로 닭육수를 우려 수제비를 끓였다. 쌀쌀한 날씨에 오랜만에 뜨끈한 국물 음식을 먹으니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남은 수제비를 H 선생님 댁에 가져다 드렸다.
3월 11일 목요일. 47일째 날. 오전에 J 선생님 댁에서 커피를 마셨다. 아들은 오후에 있는 워터 폴로와 농구 수업에 가기 싫은지 짜증을 부렸다. 서너 번 씩만 참여한 상태라 아직 수업에 재미를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워터 폴로 운동 강도가 높아 몸이 힘들기도 하고. 지루한 시간이라 해도 중간중간 친구들과 놀 수 있다면 덜 힘들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타이르는 동안 눈물을 보였다. 원래 내색을 잘 안하고 순한 아이인데 오죽하면 이럴까. 힘들다는 걸 충분히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일단 한 달 간 해보면서 두 수업 모두 지속할지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저녁엔 아들의 학교 숙제인 포스터 만들기를 함께 했다. 샌디에고와 멕시코 사이의 티후아나 강 주변 환경 오염에 대해 배우고 그와 관련해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생각해 내용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 파워포인트를 다루는 데 익숙치 않아 도움이 필요하다. 컴퓨터 사용도 이곳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좀더 익숙해져야 할 일 중 하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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