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5월 17일 월요일

연수일기 63. 아들의 Covid-19 백신 접종

5월 15일 토요일. 112일째 날. 아내가 Covid-19 백신 2차 접종을 받았다. 아내도 나와 마찬가지로 모더나 백신을 신청했었다. 

임상 시험 결과 효과 면에서 화이자(95%)나 모더나(94.1%) 백신은 큰 차이가 없었다. 부작용 중 접종 부위 통증은 모더나 백신이 좀더 심하지만, 전신 증상은 두 백신 간에 차이가 없다. 피로감, 두통이 가장 흔한 전신 증상이고, 그외에도 발열, 근육통, 관절통 등의 빈도가 높았다. 두 백신 다 1차에 비해 2차 접종 시에 전신 부작용이 심한 걸로 알려져 있다. 

아내 역시 두 번째 접종 부작용이 더 심했다. 지난 달에 2차를 맞았던 나도 1차 접종보다 피로감, 두통, 근육통과 관절통이 심했다. 내 경우엔 열은 나지 않았는데, 아내는 오늘 오후부터 밤까지 38도 이상의 열이 있었다. 접종 부위 통증은 두 차례 모두 심한 편이었다. 

나도 아내도 이제 두 번의 접종을 끝냈으니 마음이 홀가분하다. 최근 CDC에서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들은 대부분의 장소에서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새 지침을 발표했다. 야외 뿐 아니라 마트와 같은 실내 공간까지 포함된다. 실제론 백신을 맞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할 방법이 없으므로 이 지침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이 지침과는 달리 아직 마스크 착용 의무화 방침을 유지하는 주(캘리포니아도 여기에 속한다)도 있어 혼란을 느끼는 이들도 많을 것 같다. 우리 동네에서도 야외에선 마스크를 벗은 사람이 이전보다 많이 눈에 띄지만 아직 실내에선 큰 변화는 없어 보인다. 접종을 완료한 비율은 18세 이상의 47%, 전체 인구의 37%에 불과하다. CDC의 지침이 바뀌었다 해도 아직 마스크를 벗기엔 이르다는 생각이 든다. 


5월 16일 일요일. 113일째 날. 지난 월요일에 FDA가 화이자 백신의 긴급 승인 대상 연령을 기존 16세에서 12세 이상으로 확대했다. 목요일부터 샌디에고 카운티 내에도 해당 연령에 대한 예약이 가능해져 만 13세인 첫째 아이 접종을 오늘로 예약했었다.

12-15세 연령에 대한 분석 결과는 지난 3월에 발표된 바 있다. 이 결과가 아직까지 정식으로 publish 되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아마도 아직 임상 시험이 완전히 끝나지 않아서겠지만, 중요한 이슈의 경우 완료되지 않은 중간 분석 결과라도 publish 하는 경우가 많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았던 이유는 모르겠다. 아쉬운대로 FDA 발표 자료와 보고서에서 임상 시험 결과를 확인해보았다.

임상 시험에는 12-15세 2,260 명이 참여해 백신 또는 위약을 맞았다. 참여자의 절반 이상에 대해 2차 접종 후 최소 2개월 간 부작용 여부를 관찰했다. 가장 흔한 이상 반응은 접종 부위 통증, 피로, 두통, 근육통, 발열과 관절통이었고 전신 증상은 2차 접종 이후에 더 심했다. 이상 반응의 빈도와 내용은 16세 이상 연령의 결과와 비슷했다.

면역 반응은 190명의 대상자를 대상으로 분석했으며, 16-25세 연령 170명의 결과와 비교한 결과 동등 이상의 효과를 보였다.(중화 항체 역가는 더 높았다.)

마지막으로 예방 효과 비교. 위약을 접종한 978명 중에서 16 건의 COVID-19 감염이 발생했으나 백신을 접종한 1,005명에서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이 결과를 토대로 100% effective 라는 표현을 썼는데, 일단 틀린 표현은 아니지만 좀 과하지 않나 싶다. 추적 관찰 기간이 제한적이므로 예방 효과가 얼마나 오래 갈 지에 대해선 알 수 없다.

일요일 오전이고 비가 와서인지 사람이 많지 않았다. 여전히 성인이 많았지만 청소년도 몇몇 보였다. 접종 후엔 15분간 머무르며 관찰을 해야 한다. 돌아오는 길에 아들이 좋아하는 인앤아웃 버거를 사왔다. 접종 부위 약간의 통증 외에 저녁까지 특별한 부작용은 없었다.

사진을 찍기 전에 접종을 해버려서 한번 더 포즈를 취해주셨다.


2021년 5월 15일 토요일

연수일기 62. 김치 이야기, 아파트 바베큐장

5월 13일 목요일. 110일째 날. 연구실에서 집에 오는 길에 미라 메사의 한국 반찬 가게에 들러 김치를 샀다. 오후엔 코스트코에서 주유를 하고 장도 봤다. 내일 바베큐장에서 구울 고기와 소세지도 함께 샀다. 

이곳에서 김치는 한인 마트에서 사기도 하고, 공동 구매를 하기도 한다. 한인들이 많은 LA나 어바인에서 주문을 하거나 사오는 사람들도 있다. 우리 가족은 그동안 한인 마트에서 김치를 구입했다. 마트에선 파는 여러 종류의 김치를 돌아가며 먹어 봤지만 맛있는 김치는 찾기 어려웠다(종가집 김치는 맛이 괜찮지만 가격이 비싸다). 우연히 소개받은 이 반찬 가게의 김치는 마트 김치보다는 조금 비싸지만 그만큼 맛은 나았다. 이번엔 묵은지 2kg를 샀는데 총각 김치도 한 박스 서비스로 받았다. 서비스로 받아 좋긴 했지만 총각 김치를 먹어보니 맛은 영 아니다. 

한국에선 처가를 비롯해 여기저기서 가져다 주시는 김치만으로도 충분했다. 김치를 따로 사먹어 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미국에 와선 벌써 김치를 대여섯 번은 산 것 같다. 나도 아이들도 한국에서보다 김치를 더 많이 먹는다. 기름진 음식이 많기도 하고, 밖에서 한국식 반찬을 먹을 일이 없으니 집에서 더 먹게 되는 건 당연하다. 어쩌면 한국에 대한 그리움 때문에 김치에 더 손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소울 푸드라고 하지 않던가. 앞으로도 우리 가족은 또 다른 종류의 김치를 먹게 될 것이고, 적당한 가격에 맛있는 김치를 찾기 위한 여정은 계속될 것이다. 그래도 샌디에고는 LA와 가깝고 한인들도 많아서 김치 사정은 그나마 다른 도시보다 나을 것 같다. 그렇다고 해도 이곳에서 가격도 싸고 맛도 있는 김치는 찾지 못할 것 같기도 하다. 

이곳에서 파는 김치에 만족하지 못한 나머지, 한국에선 김치 한 번 담지 않았지만 미국에 와서 김치를 직접 담기 시작해 김장까지 하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아내도 지난 주엔 한인 마트에서 무우를 사와 팔을 걷어붙이고 직접 깍뚜기를 담았다. 난생 처음 담아본 깍뚜기였음에도 적당히 익으니 마트 김치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맛있었다. 처음이라 많이 만들지 않았는데, 유리병에 담긴 깍뚜기가 매일 줄어드는게 아까울 정도였다. 처음 시도한 깍뚜기로 성공의 맛을 본 아내는 신이 났는지 조만간 다시 담아보겠다고 했고, 나도 열심히 맞장구를 쳐주었다. 배추 김치보다 손이 덜 가서 만들기가 수월하다고 한다. 

갓 담은 깍뚜기


5월 14일 금요일. 111일째 날. 바베큐장에서 C 선생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식사 후에 아이들은 풀에서 물놀이를 했다. 아파트 바베큐장은 세 번째 이용인데, 수영장 옆에 있어서 아이들이 놀기에도 좋다. 두 개의 바베큐장엔 각각 여러 개의 큼지막한 그릴과 테이블이 있어서 사용하기 편하다. 입주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집안에서 고기를 굽다가 화재 경보가 울리는 당황스런 경험을 했다는 이들도 종종 있다. 그래서인지 고기를 구워서 집에 가져가는 사람들도 많다.

풀사이드 바베큐장

한국에서도 캠핑을 자주 다녀 고기를 굽는 건 익숙하다. 한국과 다른 점은 여기선 석쇠를 따로 사용하지 않고 그릴에 직접 고기를 굽는다는 것이다. 여러 사람들이 사용하다 보니 그릴엔 그을음과 기름때가 남을 수밖에 없지만 이곳 사람들은 크게 신경쓰지 않는 것 같았다. 고기를 올리기 전, 그릴에 비치된 솔로 그저 쓱쓱 몇 번 문지르면 끝이다. 이곳에선 한국 캠핑장에서 흔히 쓰는 일회용 석쇠를 구하기 어렵다. 처음 그릴을 이용할 때는 쿠킹 호일을 깔고 고기를 구웠지만 아무래도 맛이 나질 않아서, 안자보레고 여행을 가기 전에 한인 마트에서 석쇠를 따로 샀다. 그때 구입한 석쇠는 집에서 세척이 가능해 이후로도 잘 쓰고 있다.


2021년 5월 13일 목요일

연수일기 61. San Diego Zoo

5월 12일 수요일. 109일째 날. 샌디에고 동물원에 다녀왔다. 아이들이 30분 일찍 하교하는 수요일엔 오후에 집에서 가까운 곳을 구경하러 가기 좋다.

동물원은 다운타운에서 가까운 위치에 발보아 파크와 붙어있다. 사파리 파크와는 달리 주차장은 무료이다. 두 달 전 사파리 파크 방문 전에 구입했던 연간 회원권으로 입장이 가능하지만 아직까지는 사회적 거리두기의 일환으로 미리 예약이 필요하다. 

동물원 입구

예약제로 인원을 제한하고 있는데다 평일이라 사람이 많지 않았다. 동물원의 전체 면적은 100에이커(40만 제곱미터)로, 1800에이커인 사파리 파크에 비해선 훨씬 작다. 서울대공원 동물원(280만 제곱미터), 서울 어린이대공원(53만 제곱미터)보다도 작은 면적이다. 1916년에 개장을 했으니 벌써 100년이 넘었는데, 관리를 잘 해서인지 오래되었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작은 공간이지만 동물 우리를 아기자기하고 짜임새 있게 구성해 면적에 비해 다양한 동물을 볼 수 있었다. 수용하고 있는 동물은 650종, 3700마리가 넘어 동물원 중에서도 많은 편이라고 한다. 아프리카, 아시아, 오세아니아와 북극에 이르기까지 거의 모든 대륙의 동물들을 볼 수 있다. 산책로도 입체적으로 나 있고 조경도 예뻐 걷기에도 지루하지 않았다. 

곤돌라는 운영했지만 캥거루 버스는 다니지 않았고, Children's zoo는 리뉴얼로 닫혀 있었다. 마음 먹고 구경을 한다면 걸어서도 하루에 다 둘러볼 수 있는 크기였지만, 세 시간 동안 쉬엄쉬엄 걸어서 절반 정도만 본 것 같다. 야행성이라 이른 오후 시간엔 잠을 자거나 그늘에 들어가 있어 보지 못한 동물들도 많았다. 아이들이 피곤해 하기도 해 북쪽에 있는 아프리카 동물들은 다음에 보기로 했다. 

기린 안녕!

저녁은 키어니 메사에 위치한 베트남 음식점 Phở Duyên Mai에서 먹었다. 맛이 나쁘지 않았지만 이전에 갔었던 미라 메사 Pho Cow Cali보다는 못했다. 


2021년 5월 12일 수요일

연수일기 60. 학교 숙제, Summer Birthday

5월 10일 월요일. 107일째 날. 저녁을 먹으며 아들이 며칠 전에 학교 숙제로 제출한 동영상에 대해 이야기했다. 

과제 제출은 대부분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 이루어진다. 빠른 인터넷 망, 보편화된 개인용 PC와 스마트 기기 등, IT 기술을 활용한 수업 환경은 한국이 훨씬 좋지만, 학부모로서 느끼기에 실제 학교 현장에서는 미국이 이러한 IT 기술을 더 잘 활용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기본적인 교육 방식의 차이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한국에 비해 미국은 학생이 스스로 참여하는 활동이 월등히 많다. 처음 이곳에 와서 인상 깊었던 점 중 하나는 학교 교육과 학생 평가의 상당 부분이 구글 클래스룸, 그리고 그와 연계된 다양한 웹서비스를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한국에서도 지난 1년간 e학습터와 같은 플랫폼을 이용했지만, 주로 선생님이 올린 동영상을 보는 용도였고 학생의 직접 참여는 댓글 정도가 대부분이었다. 

아들은 한국의 또래 친구들에 비해 컴퓨터 사용에 서툰 편이다. 컴퓨터 게임을 하지 않는 것 외에 방과 후 수업이나 학원 수업을 따로 듣지 않았던 것도 이유일 것이다. 컴퓨터 사용법은 개별 소프트웨어 활용이 필요할 때 익히는 것이 자연스럽고, 어려서부터 굳이 따로 컴퓨터 수업을 들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6학년이 되면서 파워포인트나 워드프로세서 정도는 학교에서도 사용하게 될 것 같아 작년엔 집에서 가끔 가르쳐주기도 했는데, 실제 필요했던 적은 별로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선 초등학생 코딩 수업이 워낙 유행이라 작년엔 한번 배우게 해볼까 생각도 했지만 실행에 옮기진 못했다. 

이곳 학교에서 컴퓨터와 인터넷을 많이 쓰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소프트웨어 활용에도 조금씩 익숙해져 가는 것 같다. 동영상 제작엔 WeVideo를 이용했다. 온라인 기반의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으로, 편집한 동영상을 클라우드에 저장해 공유할 수 있다. 실제 사용하는 걸 보니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어서 아이들도 쉽게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영상의 주제는 한국에 대한 소개였다. 며칠 전 완성한 영상에는 명절, 전통 음식과 옷, 그리고 한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다른 친구들은 나레이션을 넣기도 한다는데 그건 부담이 되었는지 모든 내용을 자막으로 설명했다. 아이들이 보기엔 좀 지루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악을 넣으면 나을 것 같아 이날치의 ‘범 내려온다’를 넣어보라고 권해줬다. 너무 튀는 것 같다며 한참을 고민하다 결국 오늘 그대로 음악을 넣고 발표를 했다고 한다. 

동영상을 발표하고 나면 반 모든 아이들이 쪽지에 각자 느낀 점과 질문 등을 써준다. 저녁을 먹으며 아이들에게 받은 쪽지를 함께 돌려보았다.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활동과 과제, 그리고 모두가 함께한 피드백. 수업과 관련된 내용만으로 저녁 식사 시간 내내 함께 이야기할 수 있었다.


5월 11일 화요일. 108일째 날. 둘째의 summer birthday 날이다. 딸아이는 주말에 구디백을 준비하면서도 기대를 많이 하는 눈치였다. 오늘 입을 옷도 제일 좋아하는 것으로 미리 정해 세탁해두었다. 아이를 데리러 가면서 학교에서 어떻게 시간을 보냈을까 궁금했다. 교문을 나온 아이는 차에 타기도 전에 오늘 있었던 일을 숨넘어가듯 이야기하며 친구들의 축하 메세지로 만든 birthday book을 보여주었다. 선생님은 종이로 왕관을 만들어 주셨다. 같은 학년의 모든 반이 이렇게 하진 않을 것 같다. 아이들 생일을 미리 챙겨주는 것도 품 꽤나 들어갈 터인데, 감사할 따름이다. 어린 아이들에겐 사소하지만 의미 있고 기억에 남을 일들이다.

Birthday Book


2021년 5월 10일 월요일

연수일기 59. 애니스 캐년(Annie's Canyon) 트레일

5월 9일 일요일. 106일째 날. 애니스 캐년 Annie's canyon에 다녀왔다. 솔라나 비치 근처에 있는 캐년으로 짧은 트레일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샌디에고 카운티 내에도 트레일을 즐길 수 있는 몇 개의 캐년이 있다. 대부분 높고 깊진 않으므로 아이들과 짧은 산책을 하기에도 좋은데, 애니스 캐년은 아내가 참여하는 미팅에서 이곳에 사는 분들께 가볼 만 한 곳으로 추천을 받았다.

솔라나 비치의 북쪽에 있다.

트레일헤드는 주택가 안쪽에 있어 근처에 스트릿 파킹을 해야 한다. 샌 앨리요 라군 San Elijo Lagoon 지역을 이웃해 이어진 오솔길을 따라 2-30분 정도 걸으면 캐년 입구를 만날 수 있다. 양 옆으론 형형색색의 꽃들이 가득 피어있고, 시선을 조금 더 멀리하면 강과 바다가 만나는 습지가 보이는 아름다운 길이다. 일요일이라 아이들과 함께 산책을 나온 가족이 많았다. 

커다란 나무가 있는 작은 광장에서 시작해 언덕의 정상으로 가는 길은 두 갈래이다. 오른쪽은 좁은 슬롯 캐년, 왼쪽은 평범한 산길이다. 대부분은 오른쪽 길로 올라가 왼쪽 길로 내려오게 된다. 

올라갈 때는 오른쪽 화살표를 따라

오른쪽 길을 선택하면 좁은 협곡이 앞을 가로막는다. 그랜드 써클의 앤터로프 캐년을 비롯해 전국적으로 유명한 슬롯 캐년이 많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곳도 있다. 지난 달에 갔었던 보레고 사막의 슬롯 캐년도 그 중 하나였다. 애니스 캐년은 길이가 짧아 좁은 협곡을 지나 5분 정도면 정상에 오르는 게 가능하다. 길이가 짧아 아쉽긴 해도 한 사람이 겨우 빠듯하게 지나갈 만한 너비라 슬롯 캐년 특유의 재미를 맛볼 수는 있다. 

조금 더 나아가면 어른 한 명이 겨우 지나갈 만한 협곡을 만난다.

오르막길의 마지막 부분은 경사가 가팔라 철제 사다리와 계단을 딛고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 오르면 야트막한 언덕 아래로 라군 지역을 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강을 볼 수 있다. 잠시 바람을 쐬며 풍경을 감상하다 언덕 능선을 따라 완만하게 이어진 길을 따라 내려왔다. 슬롯 캐년을 지나 언덕 위의 뷰포인트만 다녀오면 한 시간 남짓, 힘들지 않게 걸을 수 있고 슬롯 캐년을 지나는 재미도 있어 아이들도 지루해하지 않는다.

델 마르 비치 근처의 브루어리인 Viewpoint brewing company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창고처럼 보이는 입구로 들어가니 전면이 개방되어 트인 널찍한 실내 공간이 펼쳐진다. 샌디에귀토 라군을 볼 수 있는 바깥 자리에 앉아 맥주 샘플러와 음식을 주문했다. 생각보다 음식 양이 많지 않았지만 맛은 모두 좋았다. 그동안 들렀던 몇 군데의 브루어리 모두 분위기나 맛이 웬만한 레스토랑보다 나아 실망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새로운 로컬 맥주들도 함께 맛볼 수 있으니, 아직 가보지 못한 브루어리들도 부지런히 돌아봐야겠다. 

2021년 5월 9일 일요일

연수일기 58. 어버이날, Mother's day

5월 6일 목요일. 103일째 날. C 선생님 내외와 점심을 같이 했다. 같은 날 입국을 하고 같은 아파트에 살면서 비슷한 고민을 하는 가족이 있는 게 이곳 생활에 큰 힘이 된다. 점심을 먹은 곳은 아침과 브런치를 주로 하는 Snooze란 체인 레스토랑으로 아침 일찍 문을 열고 점심 시간 이후까지만 영업을 한다. 지난 번에 갔었던 Breakfast Republic과 비슷한 곳이다. 이 동네엔 이런 브런치 레스토랑이 많은데, 메뉴 역시 크게 다르지 않고 맛도 비슷할 것 같다. 프라이나 스크램블 같은 계란 요리와 베이컨, 소세지, 빵 등으로 구성된 요리가 다르면 얼마나 다를까. 외국 호텔 조식과 비슷한 음식들인데, 그럭저럭 먹을 만은 하지만 구글 평점이 좋고 소문난 맛집이라 해도 내 입맛엔 이곳의 레스토랑 음식들이 아주 맛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는다. 

아들은 이번 주에 농구 세 번째 달 수업이 시작되었다. 워터 폴로는 한 달 수업 이후 그만두었지만 일주일 두 번의 농구 수업은 계속 참여하고 있다. 수업에 재미가 붙은 이후론 이제 집 차고에서도 종종 드리블 연습을 한다. 다리 사이로 공을 넣어가며 드리블 하는 모습이 제법 그럴싸하다. 이번 달엔 수업을 받는 아이들 숫자가 늘었고 같은 반 친구 하나도 새로 들어왔다고 한다. 


5월 7일 금요일. 104일째 날. 아이들 옷과 수영복을 사기 위해 웨스트필드 UTC 몰에 왔다. UCSD 근처의 대형 쇼핑몰로, Macy's, Nordstrom과 같은 백화점부터 의류, 신발, 악세사리 등 패션 매장과 쉑쉑, 스타벅스 등 푸드 매장, 서점, 애플 스토어와 테슬라 매장까지 입점해 있어 구경만 해도 좋을 곳이다. 스케이트를 탈 수 있는 실내 아이스링크도 있다고 한다. 이전에도 두어 번 가보긴 했지만 내부를 걸어서 둘러본 건 처음이었다. 교외의 쇼핑몰에 비해 젊은이들이 많았다. 번화가에 있지만 두 시간까진 무료 주차라 쇼핑을 하기엔 큰 불편이 없다. 

H마트에서 장을 보고 다이소에 들러 딸아이 학교 생일 행사 때 친구들에게 나누어 줄 선물과 작은 비닐 봉투 세트를 샀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로는 지우개를 골랐다. 생일은 7월이지만, 여름 방학 이후에 생일을 맞는 아이들의 summer birthday를 정해 미리 축하하기로 했다. 덕분에 방학 전까지는 매주 생일이 있다. 딸은 다음 주 화요일이 summer birthday였다. 미국에선 아이들 생일 때 친구들을 초대해 파티를 하거나, 구디백 goodie bag 이라고 부르는 작은 선물을 나누어주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한다. 거리두기 때문에 그동안엔 아이들의 생일 파티도 하기 어려웠을텐데, 상황이 좀 나아지면서 외부 식당에서 생일 파티를 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 모양이다. 집에 돌아와 아이와 함께 비닐 봉투에 지우개를 넣고 포장해 구디백 열여덟 개를 만들었다. 


5월 8일 토요일. 105일째 날. 한국은 어버이날이다. 어제 밤에 부모님들과 영상 통화로 어버이날 인사를 드렸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은 영상으로 인사를 드리려 하는데 그것도 지켜지지 않을 때가 있다. 

미국에도 Parents' day가 있다. 7월의 넷째 일요일로, 빌 클린턴 대통령이 1994년에 관련 법률안에 서명을 해 만들어졌다고 한다. 하지만 미국에선 5월 둘째 일요일인 어머니날 Mother's day과 6월 셋째 일요일인 아버지날 Father's day이 따로 있고, 이들의 역사가 더 오래된 탓에 상대적으로 Parents' day는 덜 알려진 것 같다. 내일이 Mother's day라 마트엔 기념일 카드와 꽃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이번 주 내내 길거리 곳곳에서 카네이션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아이들은 엄마에게 줄 카드를 준비했다. 현관에서 나가는 길에 앞집 발코니에 나와있던 이웃 아주머니가 우리에게 "Happy Mother's day!"라고 인사를 한다. 이곳에서 Mother's day는 자녀들이 어머니에게 감사를 표하고 선물을 드리는 날에 그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축하하고 기념하는 날이란 인상을 받았다. 

2021년 5월 8일 토요일

Covid-19 백신 뉴스 기사에 대한 생각

매일 아침에 일어나면 TV 뉴스를 켠다. 아이들을 깨우고 함께 아침을 먹고 등교와 출근 준비를 하며 보는 것이다. Covid-19와 백신 관련 기사는 매일 빠지지 않는다. 미국은 2억 명 접종의 마일스톤을 넘겼다. CDC 자료에 따르면 18세 이상 미국 성인의 40% 이상이 접종을 완료했고, 60% 가까이 최소 1회 접종을 받았다. 

https://covid.cdc.gov/covid-data-tracker/#vaccinations

이곳 뉴스에선 매일 백신 접종률을 보도한다. 접종 시작 이후 애초의 목표를 넘어서는 접종률을 기록하며 순항함에 따라 정부는 몇 차례 목표를 상향해왔다. Real world data 분석에서는 화이자와 모더나 2회 접종을 한 경우 90%의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올해 내에 모두가 마스크를 벗고 이전과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에 대한 전망은 불투명해져 간다. 변이 바이러스와 최근 둔화된 접종 속도 때문이다. 주마다 상황이 다르겠지만, 존슨앤존슨 백신의 안전성 논란이 불거진 후로 접종을 꺼리는 사람이 늘어났고 2차 접종을 미루는 사람들도 많아졌다고 한다. 이전보다 접종 예약도 수월해졌다. 접종에 적극적인 사람들은 일찍 접종을 받았고 현재 남은 사람들 중에선 접종을 꺼리는 이들이 많기 때문에 접종 속도가 떨어졌다는 분석도 있다. 

접종을 꺼리는 현상(vaccine hesitancy)은 전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문제일 것이나, 사회 문제가 될 정도의 안티 백서는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한국에도 '안아키'와 같은 카페가 존재하지만 이런 주장을 믿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소수이다. 아이들에게 예방접종을 시키지 않아 홍역과 백일해가 다시 유행했던 미국이나 유럽만큼 공중 보건에 위협이 될 정도의 영향은 아닐 것이다. 미국의 안티 백서들이 주장하는 허무맹랑한 주장을 들을 때면 이 나라의 상대적으로 낮은 교육 수준이나 의료 체계의 문제 등을 떠올리며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했다. 한국은 적어도 이 문제에 대해선 과학과 미신을 구별할만한 상식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기에. 

하지만 지금은 모르겠다. 한국의 뉴스에선 낮은 접종률, 그리고 순조로운 접종을 위한 전략보다는 접종의 부작용을 다루는 기사가 더 눈에 띈다. 기사는 반복해 재생산되고 SNS를 통해 확산된다. 사람들은 불안을 느끼고 접종을 꺼린다.   

치료가 아니라 예방이 목적인 백신의 경우, 무엇보다 안전성이 중요한 문제임은 말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안전성을 확인하는 과정은 어디까지나 과학적인 관점에서 이루어져야 하고, 과학적 근거가 마련되었다면 이를 존중해야 한다. 우리보다 먼저 접종을 진행한 나라들의 실제 자료를 바탕으로 백신의 이득과 위험은 빠르게 수치화 되었고, 이를 바탕으로 대부분의 전문가는 AZ 백신의 위험보다 이득이 훨씬 크다고 말한다. 여기서 전문가는 감염병과 백신 부작용, 그리고 공중보건 에 대한 충분한 지식이 있는 전문가를 말하며, 이러한 지식이 없는 의사들은 일반 대중과 큰 차이가 없다. 

접종은 결국 개인의 선택이다. 하지만 의료 지식이 없는 일반 대중이 이와 같은 문제를 현명하게 결정하기란 쉽지 않다. 선택의 기로에 선 우리는 이득과 위험 모두를 고려해야 한다. 하지만 이는 골치아픈 일이며, 이때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충분하고 객관적인 정보이다. 그러므로 언론은 보다 적극적으로 이를 전달할 의무가 있지만 이러한 의무를 다한 기사는 찾아보기 어렵다. 백신 접종 후 부작용을 보도한 어떤 기사도, AZ 백신으로 인한 혈전증의 빈도가 백만분의 일 정도이며 이로 인한 사망보다 코로나 감염으로 인한 사망 위험이 4-10배 높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는다(기고문 참고). 과학적 근거를 담은 기사는 쓰기도 쉽지 않겠지만 독자의 흥미를 끌기도 어렵다. 이에 반해 부작용 사례에 대한 기사는 쉽게 관심을 일으킬 수 있고, 독자의 기억에도 오래 남는다. 

우리에겐 특정 사건이 눈에 많이 띄거나 감정적으로 큰 영향을 받는 경우 해당 사건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그에 대한 견해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다. 이 현상을 현저성 편향(salience bias)이라고 한다. 대중은 머릿속에 쉽게 떠오르는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한다. 객관적인 판단에 필요한 경험이나 정보가 부족할 경우 치우치게 받아들일 가능성은 더욱 커진다. 심각한 부작용만을 다룬 기사가 늘어날수록 백신 접종에 대한 판단에 부작용 사례가 더 큰 영향을 미치며, 실제 확률과 별개로 내가 그 사례가 될 수 있다는 믿음은 커진다.



이곳에서 한국의 인터넷 뉴스를 많이 보진 않지만 최근의 한강 대학생 사망 사건은 또 한 번 언론의 민낯을 보여주고 있는 것 같다. 경찰의 조사가 끝나지 않았음에도 일부 기사들은 이미 옆에 있던 친구를 용의자로 단정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이러한 보도가 온전히 국민의 알 권리를 위해서는 아니었을 것이다. 이 기사들에서 백신 부작용에 대한 기사를 볼 때와 비슷한 기시감을 느낀 건 나 뿐이었을까.


2021년 5월 6일 목요일

연수일기 57. Teachers day, 중학교 수학 테스트

5월 4일 화요일. 101일째 날. Teachers day이다. 아이들이 손으로 쓴 카드와 함께 아마존 기프트 카드를 준비했다. 담임 선생님을 좋아하는 둘째는 영어로 생각할 수 있는 좋은 단어란 단어는 모두 카드에 쓴 것 같다. 2학년이 한 달 밖에 남지 않아 곧 선생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게 벌써부터 아쉽다고 종종 이야기한다. 아직도 친구들과는 어색함이 남아 있지만 선생님의 밝고 유머러스한 성격 덕분에 학교 생활을 즐겁게 할 수 있었던 것 같아 선생님께 감사한 마음이 든다. 

한 달 남짓 남은 학기를 아쉬워하며, 선생님은 ABC countdown이라는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앞으로 남은 26일 동안 A부터 Z까지 알파벳 글자로 시작하는 주제의 작은 파티를 매일 여는 것이다. 여름 방학 이후 생일을 맞아 친구들에게 축하를 받지 못하는 아이들을 위해 중간 중간 아이들의 가상 생일도 넣어 주셨다. 아이는 벌써부터 첫째 날인 내일, Animal day에 가져갈 동물 인형을 고르느라 신이 났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이 뭘 좋아하고 원하는 게 무엇인지를 잘 알고 계신다. 

앞으로 남은 매일이 아이들에겐 파티날


5월 5일 수요일. 102일째 날. 오후에 아들은 Integrated Math B Honors Readiness Test (IMBHRT)를 받았다. 테스트에 대해선 얼마 전 이 글에서도 설명한 바 있다. 7학년 지원자를 대상으로 8학년 수학 과정을 들을 수 있는지 학습 능력을 확인하는 시험이다. 점수가 70% 이상이 되어야 8학년 과정을 들을 수 있다. 테스트는 구글 meet를 통해 진행되었다. 시작 시간이 되자 오늘 참여할 아이들이 화상 회의 화면에 나타났다. 20명이 채 안되는 수였고, 오늘을 포함해 총 3일 중에 선택해 참여할 수 있으니 이 테스트를 보는 아이들이 많진 않은 것 같다. 

테스트가 시작되면 부모는 함께 있을 수 없다. 시험은 1시간 45분 동안 진행되었다. 이런 정식 시험을 보는 건 처음이라 좀 긴장을 했는지 끝나는 시간이 되어 방에서 나오는데 기운이 쭉 빠져 보인다. 하지만 핸드폰 게임을 시작하고는 금새 언제 그랬냐는 듯 낄낄거리는 녀석. 

저녁으론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스팸과 어묵을 볶고 시금치도 데쳐 단무지와 함께 넣었다. 한국에선 자주 사먹던 김밥을 여기선 만들어 먹는데, 그때마다 한국 생각이 많이 난다. 누군가 김밥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 했던가. 

한국에선 오늘이 어린이날이다. 한국에 있다면 아이들이 선물을 받았을텐데. 대신 할머니 할아버지의 축하 인사와 용돈만으로 만족해야 했다. 


2021년 5월 4일 화요일

연수일기 56. 펫코 파크 야구 관람

5월 3일 월요일. 100일째 날. 

샌디에고 파드리스의 홈 경기가 있는 날이다. 메이저리그는 작년엔 무관중 단축 시즌으로 운영했지만 올해는 관중 입장을 제한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야구 개막 이후 종종 경기 스케줄을 찾아보곤 했다. 티켓은 MLB 공식 제휴 업체인 ticketmaster 외에도 판매자와 구매자를 연결하는 stubhub이나 seatgeek 등을 통해서도 가능하다. 한국과는 달리 티켓 가격은 구단마다 천차만별인데 인기 구단일 수록 가격이 비싸고, 같은 구단이라도 경기 일정에 따라 가격이 다르다고 한다. 지난 주말에 티켓 가격을 검색했는데 마침 피츠버그 파이리츠와의 주중 3연전 경기 티켓이 다른 경기에 비해 저렴해 월요일 경기로 예약했다. 티켓을 보다 싸게 구입할 수 있는 구매처로는 stubhub에 대한 추천이 많았고 경기 임박한 시간이 되면 기존 가격보다 훨씬 싸게 살 수도 있다고 했지만, 낮은 가격의 티켓은 티켓마스터와 큰 차이가 없는 것 같았다. 현재는 좌석에 따라 covid-19 검사 결과나 백신 접종 증명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구역이 있는데 3층의 저렴한 좌석들은 해당되지 않는다.

다운타운은 대부분 유료 주차장을 이용해야 하고, 야구장 근처도 마찬가지이다. 2004년에 개장한 펫코 파크를 둘러싼 길은 내셔널리그 타격왕을 8회 수상한 Tony Gwynn과 통산 600세이브를 기록한 마무리의 전설 Trevor Hoffman의 이름을 따서 지어졌다. 보안 검사대에서 경기장에 가방을 가지고 들어가지 못하게 해 주차장에 다시 돌아갔다 와야 했다. 1시간 일찍 여유있게 도착했던지라 그래도 경기 시작 전에 입장할 수 있었다. 

경기장 입구 안쪽 벽면엔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파드리스 출신 선수들의 동판 장식을 볼 수 있었다. 물론 토니 그윈의 동판은 앞쪽에 따로 모셨다. 경기장 시설은 훌륭했다. 한국에선 잠실, 수원 구장과 광주 챔필을 가 본 경험이 있었는데 어느 구장과도 비교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그라운드 안 시설은 물론이고 다양한 종류의 매점, 그라운드 밖의 다양한 볼거리들이 경기장을 찾은 관객들을 더 즐겁게 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명예의 전당 헌액 선수들


오늘 경기엔 김하성 선수가 선발로 출전했다. 지금은 주전도 아니고 성적이 뛰어나지도 않지만 그래도 이곳에서 뛰는 한국 선수를 직접 보니 뿌듯함과 흥분이 느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2회엔 실점 위기에서 멋진 다이빙 캐치로 이닝을 끝내 관중들의 함성과 박수갈채를 받았다. 관객들의 응원 열기는 한국 야구장이 훨씬 뜨겁지만, 관중석에서 직접 느낀 이곳 분위기 역시 단체 응원을 하지 않을 뿐 경기에 대한 열정은 비슷하지 않나 싶다. 

김하성 선수 타석

입장하는 길, 2층과 3층 통로에서 보이는 바다와 항구 풍경도 멋졌지만 관중석에서 보는 그라운드와 외야 바깥의 스카이라인은 정말 아름다웠다. 가장 아름다운 구장으로 손꼽히는 샌프란시스코의 오라클 파크는 얼마나 멋질지 모르겠다. 시간이 많지 않아 경기장 내부를 꼼꼼히 둘러보지 못한 게 아쉬웠지만 다음 번에 다시 방문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해가 지고 나니 날씨가 쌀쌀해지고 가연이가 추워해 6회가 끝나고 경기장을 빠져나왔다. 경기 결과는 파드리스의 2:0 승리. 생각보단 아이들도 지루해하지 않고 경기장 분위기를 좋아해 다음에 또 올 수 있을 것 같다. 

연수일기 55. 해변 달리기, 신용카드 한도 문제

4월 30일 금요일. 97일째 날. 아침에 솔라나 비치를 뛰었다. 모래사장 바닥이 단단한 편이라 달리기를 하기에도 괜찮았다. 날씨가 따뜻해져서 그런지 아침부터 써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이 해변은 세 번째 방문이고, 올 때마다 느끼지만 참 아름답다. 러닝 후엔 근처 카페에서 커피를 마셨다. 

해변 달리기

오늘의 연구 미팅 발표 주제는 pulse wave를 기반으로 한 새로운 심혈관질환 예측 지표에 대한 것이었다. MESA 코호트를 대상으로 해당 측정 결과가 실제 심혈관질환 위험도를 반영함을 확인한 결과를 볼 수 있었다. 내가 진행 중인 연구와 같은 코호트를 대상으로 했던 연구라 흥미롭게 들었다. 나도 조만간 자료 정리를 마무리하고 본격적인 분석을 시작해야 한다. 


5월 1일 토요일. 98일째 날. 방학 때 가기로 했던 세콰이어 국립공원 내 패밀리 캠프 잔금을 오늘 지불해야 했다. 2월에 예약을 하면서 예약금은 한국 신용카드로 지불했었다. 한국 신용카드는 해외 결제에 수수료가 붙으므로, BOA 신용카드를 발급받은 뒤엔 대부분의 결제 건에 이 카드를 사용해왔다. 현재 내 secured credit card의 한도는 3천불이다. 그런데 이 금액이 넘는 캠프 비용을 이 카드로 지불할 수 있을까? 신용카드 계좌에 미리 돈을 넣어 잔고(balance)를 마이너스로 맞추고 해당 결제 후에 잔고가 3천불을 넘지 않게 한다면 가능할 것 같았다. 카드에 1%의 캐시백이 있으므로 이 카드로 결제를 할 수 있다면 이득이 쏠쏠하다.

일단 해당 건 결제는 가능했고 pending 상태로 넘어갔지만, 다음 날 문제가 생겼다. 식당에서 신용카드 결제가 거절되어 계좌를 확인해보니 카드를 사용한 금액이 한도인 3천불로, 사용 가능한 금액(available credit)이 0으로 표시되어 있었다. 이 상태에선 카드 결제가 거절되는 것이 당연하다. 나중에 은행 직원에게 문의해 들은 이야기론 3천불 한도의 secured card라면 3천불이 넘어가는 금액 결제 건은 대개 처음부터 진행이 안된다고 한다. 은행 직원도 해당 건의 결제가 가능했던 게 이상하다며 승인이 완료될 때까지 지켜보라고 했다. 이틀 동안 묶여있던 credit은 pending 상태였던 결제 건이 승인이 되면서 다시 회복되었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신용카드 관련 업무는 은행 본사의 관할이므로 담당자의 재량이 중요할 것 같다. 은행과 신용카드 관련 그동안의 경험은 모아서 나중에 따로 정리해보려 한다.


5월 2일 일요일. 99일째 날. 가까운 트레일 코스에 가려 했는데 점심 때까지 비가 와서 다음으로 미뤘다. 저녁은 크랩헛 Crab Hut에서 먹었다. 한국인들에게 인기가 많다고 하고, 샌디에고에 다녀온 지인에게도 맛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한 번 가보고 싶었다. 샌디에고엔 크랩헛 지점이 세 군데 있다. 한인 마트에 들를 일이 있어 콘보이 지점을 선택했는데, 주차가 불편하고 매장도 작아 오랫동안 기다려야 했다. 이곳보단 미라메사 지점이 더 편할 것 같다. 새우와 킹크랩을 주문했는데 맛은 기대했던 만큼은 아니었다. 마늘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간 소스가 너무 짜고 자극적이어서 둘째는 많이 먹지 못했고, 첫째는 먹고 나서 속이 불편해 한동안 고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