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양제, 정말 먹어도 될까?] 의사가 알려주는 12가지 장기별 건강기능식품 가이드 ⑦ 활력(피로)
무더위와 피로에 지친 몸의 구원투수, 비타민 B를 찾으십니까.
폭염이 기승을 부리는 8월입니다. 밤에도 열대야로 잠을 설치다 보면 몸이 물먹은 솜처럼 무겁게 느껴집니다. 진료실에도 이맘때면 “기운이 없어요”, “이유 없이 피곤해요”라며 피로를 호소하는 분들이 늘어나는데, 검사를 해봐도 특별한 이상은 나오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피로 회복에 좋은 영양제 없나요?”라는 질문이 이어지고, 편의점 에너지 드링크부터 약국의 고함량 제품까지 ‘활력’과 ‘피로 회복’을 앞세운 비타민 B 복합제를 찾게 됩니다. 그런데 정작 라벨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식약처가 인정한 것은 ‘피로 개선’이 아니라 ‘에너지 대사’입니다
먼저 짚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비타민 B1, B2, 나이아신, 판토텐산, 비오틴이 식약처로부터 인정받은 기능성 문구는 ‘피로 개선에 도움’이 아니라 ‘탄수화물·지방·단백질이 에너지로 전환되는 대사 과정에 필요’하다는 내용입니다. B6는 ‘단백질·아미노산 이용’과 ‘호모시스테인 수준 유지’, B12는 ‘엽산 대사’에 필요하다는 문구를 인정받았을 뿐입니다.
이 차이는 핵심적입니다. 비타민 B군은 에너지를 만드는 화학 반응의 조효소(coenzyme), 즉 ‘공장의 부품’일 뿐 그 자체로 활력을 만들어내는 ‘연료’가 아닙니다. 실제로 식약처가 ‘피로 개선’ 기능성을 인정한 원료는 홍삼, 헛개나무과병추출물, 발효생성아미노산복합물 등이며 비타민 B는 아닙니다. ‘피로 회복’, ‘활력 충전’ 같은 광고 문구는 식약처가 인정한 기능성의 범위를 넘어선 마케팅 언어인 셈입니다.
공장 부품이 부족한 사람에게는 도움이 됩니다
그렇다고 비타민 B가 무용지물은 아닙니다. 결핍이 있는 사람에게는 효과가 있습니다. 문제는 ‘내가 그 결핍 대상자인가’입니다.
비타민 B12는 당뇨병 치료제인 메트포르민이나 위산분비억제제(PPI)·H2 수용체 차단제 장기 복용자, 채식주의자, 위 절제 수술을 받은 분에서 흡수가 떨어질 수 있습니다. 노년층의 경우 결핍 유병률이 6~20%에 이른다는 해외 연구들이 있으며, 국내 조사에선 노인의 30% 이상이 권장 섭취 기준에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나기도 했습니다. 이런 분들의 피로감, 손발 저림, 인지 저하는 실제 결핍 증상일 수 있습니다. 습관적 과음자라면 비타민 B1 결핍에도 주의해야 하며, 알코올 사용 장애 환자의 경우 비타민 B1 결핍이 베르니케 뇌병증과 같은 신경학적 응급 질환까지 일으킬 수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특별한 결핍이 없는 ‘보통의 직장인’에게는 어떨까요?
여기서부터가 진짜 문제입니다. 진료실에서 피로를 호소하는 대다수는 뚜렷한 결핍이 없는 건강한 성인입니다. 이분들에게 비타민 B 복합제가 실제로 도움이 될까요?
2021년 Nutrients의 메타분석은 냉정한 답을 내놓았습니다. 명백한 결핍이 없는 6천여 명, 16개 무작위 대조시험을 종합한 결과 B12 단독 또는 B군 복합 보충이 인지 기능이나 우울 증상을 개선한다는 근거는 없었고, 피로 항목은 분석 가능한 연구가 1건뿐이어서 결론조차 낼 수 없었습니다. 흔히 알려진 ‘기억력 개선’ 효과 역시 확인되지 않은 셈입니다. 상반된 결과도 있습니다. 2023년 소규모 연구에서는 건강한 성인이 28일간 B1·B2·B6·B12 복합제를 복용했을 때 운동 지속 시간과 혈중 젖산·암모니아 수치가 개선되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상업 제품 1종을 대상으로 한 32명 규모의 단일 연구라는 한계가 있습니다. 만성피로증후군 환자 대상 최근 메타분석도 ‘긍정적 신호는 있으나 근거 수준이 낮다’는 유보적 결론입니다. 종합하면, 결핍이 없는 건강한 사람에게 체감할 만한 효과가 있다는 근거는 부족합니다.
‘활성형’ 비타민이라 더 효과적일까? — 벤포티아민의 사례
최근에는 ‘활성형’ 또는 ‘고흡수형’ 비타민 B가 유행입니다. 대표적으로 지용성 비타민 B1 유도체인 벤포티아민은 일반 티아민과 달리 세포막을 통과해 같은 용량에서도 혈중 티아민 농도를 10배 이상 높인다는 약동학 연구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문제는 ‘흡수가 잘 된다’와 ‘효과가 있다’는 다른 이야기라는 점입니다. 벤포티아민 관련 연구는 대부분 신경 손상이 이미 진행된 당뇨병성 신경병증 환자 대상이고 그 안에서도 결과가 엇갈립니다. 결핍이 없는 건강한 사람의 피로를 다룬 연구는 사실상 없습니다. 다른 활성형 B1인 푸르설티아민, 활성형 B12(메틸코발라민) 관련 연구들 역시 비슷한 한계를 보입니다. 흡수율이라는 약동학 지표와 ‘활력’이라는 체감 효과 사이에는 아직 건너지 못하는 다리가 있습니다.
“수용성이라 많이 먹어도 그냥 소변으로 나간다”는 말, 절반만 맞습니다
비타민 B 복합제를 권할 때 흔히 “수용성이라 남는 건 소변으로 나가니 안심해도 된다”는 말이 따라붙습니다. 대부분은 맞지만, 나이아신(B3)·피리독신(B6)·엽산(B9)은 예외입니다. 이들은 안전하게 복용할 수 있는 상한섭취량이 정해져 있기도 합니다.
특히 B6는 눈여겨봐야 합니다. 성인 하루 권장 섭취량은 1.5mg, 상한섭취량은 50mg인데, 시중 일부 고함량 제품은 종종 상한에 가까운 40~50mg을 포함합니다. 하루 50mg 이상 장기 복용 시 손발 저림을 특징으로 하는 말초신경병증이 생길 수 있고, 최근에는 하루 6mg의 낮은 용량도 수년 복용 시 독성이 누적될 수 있다는 증례가 보고되었습니다. 호주 식약당국(TGA)은 하루 10mg 이상 함유 제품에 경고 문구를 의무화했고, 유럽식품안전청(EFSA)의 상한섭취량은 이보다 낮은 12mg입니다. “물에 잘 녹으니 무해하다”는 통념과 달리, B6는 고함량·장기 복용 시 신경계에 해를 끼칠 수 있습니다. 이외에 비타민 B12 결핍성 빈혈 환자가 고용량의 엽산(B9)을 장기 복용하면 빈혈의 초기 징후를 가려 진단이 늦어질 수 있다는 문제도 있습니다.
활력을 위한 진짜 처방
여름철 극심한 피로의 진짜 원인은 대개 비타민 B 부족이 아니라 과로와 수면 부족, 탈수, 냉방과 더위 사이의 자율신경 혼란, 혹은 검사가 필요한 다른 질환입니다. 원인 모를 피로가 지속된다면 영양제보다 진료실에서 정확한 원인을 확인하시길 권합니다.
비타민 B는 자동차 엔진오일과 같습니다. 부족하면 엔진이 상하지만, 이미 충분한 오일이 있는 엔진에 계속 들이붓는다고 마력이 세지지는 않습니다. 돼지고기·현미(B1), 달걀·유제품(B2), 생선·닭가슴살·바나나(B6), 고기·생선·달걀(B12) 등 일상 식사로 대부분의 B군은 충분히 채워집니다. 결핍 위험 요인(약물 복용, 채식, 고령, 과음 등)이 없다면, 무더위 속 활력의 진짜 처방은 알약이 아니라 규칙적인 수면과 충분한 수분 섭취, 정확한 검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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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 생성: 구글 제미나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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