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8월 6일 목요일

사투리

"전라도 사투리를 들으면 할머니 냄새가 나."

며칠 전 사투리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아들이 말했다. 밤늦게 독서실에서 아들을 태워 오는 길이었다. 

아들에게는 할머니의 말투가 할머니의 냄새를 생각나게 만드나 보다. 프루스트 효과라고 했던가. 후각은 기억을 가장 강하게 소환하는 감각이라는데, 그렇다면 아들에게 사투리는 할머니와 함께 했던 공간과 시간, 음식에 대한 기억까지 불러올 수 있는 주문 같은 게 아닐까 생각했다.

"아빠도 사투리 써?" 

"할머니댁에 가거나 고등학교 친구들을 만나면 쓰지." 

"그럼 한번 써봐."

아들의 요청에 막상 사투리를 쓰려고 하니 곧바로 되진 않는다. 방언이 그저 단순히 말투가 아니고 특정 관계와 공간에 묶여있는 몸의 습관 같은 거라서일 것이다. 언어학에선 이걸 코드 스위칭이라고 부르는데, 의식적으로 애쓸 때보다 그에 맞는 사회적 맥락과 정서적 방아쇠가 있을 때 자연스럽게 발동된다고 한다. 그러니 스위치가 켜지지 않는 상황에서 옛 말투를 쓰기 어려운 건 보편적인 현상인 셈이다.

일상에서 사투리를 쓰지 않은 지는 오래되었다. 대학에 입학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서부터였나보다. 이후론 대부분 서울에서 살았으니 삼십 년이 넘은 것이다. 친숙하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때 자주 듣는 말이 있다. '고향이 광주세요? 사투리를 전혀 안쓰셔서 몰랐어요.' 자주 듣다 보니 어느 정도 무감각해졌지만 예전엔 이런 말을 들을 때마다 가슴 한구석이 따끔거리곤 했다. 

90년대 초반 내가 대학을 다닐 당시 우리 과엔 지방에서 상경한 학생들이 꽤 많았다. 지방 중에선 대구와 부산으로 대표되는 영남 출신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강의실이나 학생회관에선 경상도 사투리를 노상 들을 수 있었던 데 반해 전라도 사투리는 듣기 어려웠다. 학생 수가 적어서만은 아니었다. 영남 출신 친구들은 졸업 때까지 말투가 변하지 않았지만 나를 포함한 호남 출신 친구들은 사투리 억양이 옅어지는 경우가 흔했다. 음운론적으로 타 지역과 억양의 높낮이 자체가 다른 경상도 사투리는 말투가 잘 바뀌지 않는 반면에 충청, 전라, 제주도 등 다른 지방은 억양의 높낮이가 크지 않아 말투를 바꾸기 수월하고 서울말에 동화되기 쉬운 구조라고 한다. 실제로 호남 지역의 젊은층은 이전보다 사투리를 쓰지 않는다. 그렇지만 당시에 학교에서 전라도 사투리를 쉽게 들을 수 없었던 이유는 순수한 언어의 특성 때문만은 아니었던 것 같다. 

살면서 소수자로서의 감정을 느낀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을 것이다. 소수자라 해봐야 선택받은 집단 안에서의 상대적인 것이었고, 실제 불편을 느끼거나 불이익을 겪는 일은 없었다. 그럼에도 타지의 말투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나는 무의식적으로 위축이 되었던 것 같다. 80년 5월 이후 겨우 십여년이 지난 때였고, 내 고향에 대한 차별과 비하의 말들이 공공연히 오가던 시절이었다. 전라도 출신은 믿을 수 없다거나 인성이 안 좋다는 말은 예사였다. 빨갱이란 말도 마찬가지였다. 전라도 출신은 채용하지 않는다는 회사도 있었고, 심지어 군대에서도 전라도 출신은 더 두들겨 맞는다고들 했다. 그러니 굳이 내가 자란 곳의 말투를 고집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어느 날 결심을 하거나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하루하루 지나며 자연스럽게 바뀌었을 뿐이다. 되돌아보면 내가 쓰던 말투에 대한 부정적인 시선이 스스로도 내재화되면서, 사투리를 감추는 것이 낙인을 피하기 위한 일종의 방어기제가 되었던 것이 아닌가 싶다. 낙인이란 건 본래 그것을 바라보는 다수자의 시선과 마주쳤을 때 실제가 되는 것이고, 말투는 그 시선의 대상이 되는 가장 뚜렷한 표식이었으니까. 부산이나 대구에서 온 친구들과 이런 이야기를 나눠본 적은 없었지만, 아마 그들은 굳이 애써 억양을 바꿀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이것은 내 개인의 경험이었지만 소외와 차별은 엄연히 집단 전체의 구조적 문제이기도 했다. 마침 이와 관련된 최근 시사IN 기사가 있어 옮겨본다. 기사는 호남의 소외에 대해 이렇게 서술한다. '중심부는 경부축(서울-부산축)이었다. 핵심 산업이 몰빵되고 소득 높은 일자리가 많았다. 호남은 식량과 노동력을 중심부에 공급하는 배후지였다. 1960년에서 2000년 사이 한국 인구는 2500만명에서 4600만명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호남 인구는 600만명에서 520만명으로 줄었다. 호남을 떠난 사람들은 수도권 중하층 노동시장과 영세 자영업자로 편입됐다.' 기사에선 밝히지 않았지만 참고로 같은 기간 영남 인구는 60% 늘었다. 조금만 찾아봐도 비슷한 증거는 차고 넘친다. 비대칭적 소외와 차별을 희석해 두 지역 사이의 대칭적 반목으로 포장하는 '지역감정'과 같은 용어에 실소를 머금게 되는 이유이다. 

이것은 과거의 일일 뿐인가? 지금은 달라졌나? 사투리에 대한 대화가 소환한 서른 몇 해 전의 기억이 되묻는다.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들이 존재한다. 그래도 당시의 나로선 전라디언, 홍어, 빨갱이와 같은 엄연한 혐오 발언을 30년 뒤 다시 듣게 될 거라고까진 미처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30년 전 저잣거리 시정잡배의 말들은 익명에 기대어 유령처럼 온라인을 떠돌다 급기야 실체를 획득한 공식적인 발언이 되고 공감을 얻고 유행처럼 소비되고 있다. 아들이 사투리에 대해 이야기를 꺼냈던 배경엔 최근 벌어진 거제 사투리를 둘러싼 어이없는 해프닝이 있었는데, 나는 이와 더불어 고교 야구 경기에서의 지역 비하 응원을 떠올렸다. 두 사건의 성격은 다르지만 사건의 배경에 지역, 특히 호남 혐오를 공유하는 일베라는 집단이 있다는 점에서 서로 이어진다. 앞의 사건에선 난데없이 소환되어 피아를 구분하는 정치적 도구가 되어버린 사투리가 안쓰러웠고, 뒤의 사건에선 아이들 모두가 안쓰러웠다. 사건 이후 이어진 일들에 대해 의견을 더하고 싶진 않고, 그저 이렇게 정리해 본다. 모두가 각자의 의견을 말할 수 있는 자유는 있을 것이나 모든 것을 허용해도 좋다는 의미는 아니라는 것. 백번 양보해도 그냥 들어줄 수 없는 지점이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집에 돌아오는 길, 어둑어둑한 차 안에서 아들은 전라도 사투리를 흉내 낸다. 그래부렀어야~ 워매, 그랬당께~ 어색하게 몇 번을 읊조리더니 씩 웃고 한마디 덧붙인다. 

"전라도 사투리는 참 귀여운 것 같아." 

까슬거리던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았다. 문득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전화를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본래 사투리란 이렇게 정겹고 귀여운 것이거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