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연수일기 114. Back to School

8월 16일 월요일. 205일째 날. 초등학교 개학이다. 어제 밤에 딸을 재우려 방에 들어가니 엉덩이를 쳐들고 침대에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일 학교에서 잘 할 수 있기를, 새 학년엔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기를 빌었다고 한다. 

- 지난 학기에도 잘 했잖아. 

- 영어도 잘 못하고 미국 친구도 못 사귀었는걸. 

침대에 나란히 누워 볼을 토닥여줘도 평소랑 달리 입술을 비죽거린다. 지난 학기에 담임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는데, 새 선생님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충분히 잘 했어. 영어 못하고 단짝 친구 없어도 괜찮아. 새 학년에선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아이를 다독여 재웠다. 

평소엔 몇 번을 깨워야 일어나던 딸은 아침 여섯 시에 잠에서 깼다. 일찌감치 옷을 챙겨입고 아침과 도시락 준비를 하는 엄마를 도왔다. 이번 학기엔 등교 시간이 판데믹 이전과 같아져서 수업 시작 시간인 8시 이전에 교실에 들어가야 한다. 이전보다 일찍 나왔는데도 길이 막혀 학교 주차장까지 가는데 오래 걸렸다. 지금까지 겪은 등교길 중 가장 차가 많은 날이었다. 새로 입학하는 아이들에다 그동안 원격 수업에만 참여했던 아이들까지 더해졌으니 더 붐빌 것이다. 

교문 앞엔 새 학기를 축하하는 장식과 풍선이 걸렸다. 교문 앞은 차와 사람들이 얽혀 어수선했다. 손을 잡고 종종걸음을 치는 아이와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약간은 흥분된 표정이었다. 원격 수업을 하다 일년 반 만에 학교에 온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와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중학교 개학은 내일이다. 집으로 돌아와 학부모 포털에 올라온 아들의 시간표를 확인했다. 이번 학기에 수강할 과목은 역사, 체육, 세계사, 수학, 영어, 선택 과목인 오케스트라, 이렇게 여섯 과목이다. 시간표와 교실을 출력해 아들과 학교에 갔다. 개학 전날인 오늘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학교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행사 이름을 'Mosey Monday'라고 부른다.

학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이들이 건물을 옮겨다니며 내일부터 들어갈 교실을 찾아다녔다. 교실 안은 볼 수 없었지만 미리 붙여진 과목 라벨과 선생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 강의동은 두 개였다. 음악과 미술을 위한 강의동, 다목적 강의동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 체육관은 꽤 넓었다. 카페테리아에선 실내 식사는 안되고 창구를 통해 실외에서 급식을 받는 형태로 운영하려는 듯 했다. 학교 내부와 건물, 시설 모두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내일의 동선을 확인한 아들은 이전보단 마음이 놓이는 듯 했지만,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또 조금은 위축된 것 같다. 아들이 좋아하는 인앤아웃에서 점심을 먹었다. 

학교 안을 자유롭게 구경하는 아이들

8월 17일 화요일. 206일째 날. 오늘도 아이들은 일찍 일어났고, 학교로 가는 길엔 어제보다 더 차가 많았다. 중학교 개학날이라 그럴 것이다. 딸을 데려다 주고 연구실에 출근했다. 

Rob과 네 번째 만나는 날이다. 오늘은 그의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멕시칸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스페인어에 능숙한 그는 멕시코인 종업원과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대화한다. 그는 새우 화이타를, 나에겐 브리또를 주문해 주었다. 이전에 한번 얻어먹은 적이 있어 이번엔 내가 계산했다. Rob은 항상 1불짜리 지폐를 가지고 다니며 팁을 잊지 않는다. 미국의 팁 문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는데, 그는 20퍼센트의 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10퍼센트 팁을 주면 된다고 했다. 레스토랑 직원은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걸 그와의 대화에서 처음 알았고, 그래서 여전히 팁을 제외한 급여만으론 생활할 수 없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최저임금은 13불 정도로 미국 내에선 높은 편이다. 연방 최저임금은 7.25불인데 21개 주가 연방 최저임금을, 약 10개 주가 7.25-10불 정도를, 나머지는 10불 이상을 적용한다. 10-13불로 계산하면 연봉 2만-2만7천불이 된다. 이 돈으론 샌디에고와 같은 도시에선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을 것이다. 

Rob의 아들인 Sam이 뒤늦게 도착해 점심을 함께 먹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Sam은 독립심이 강해 혼자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나에 대해선 아버지에게 미리 들었나 보다. 내 이름을 부르며 하이파이브로 반갑게 첫 인사를 했다. 일주일에 이틀 마트에서 일을 하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한다. 식사 후에 Rob이 동네의 커뮤니티 가든으로 안내해 포도를 따 주었다. 한국의 주말 농장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은데, 30가구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식 주말 농장

연구실에 들렀다가 딸을 픽업해 집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간에 아들도 하교. 중학교 첫날 일정을 마친 아들은 어제보단 표정이 편해 보였다. 큰 문제는 없었나 보다. 아침 등굣길에 다른 고등학교 입구로 잘못 들어가서 헤메다 물어물어 제 학교를 찾아간 것 빼고는. 둘은 전혀 다른 학교이고, 이웃해 있긴 하지만 학교가 워낙 넓은지라 입구는 한참 다르다. 어제 학교 답사를 갈 때는 차를 타고 가서 오늘 걸어가는 길이 익숙치 않았나 보다. 첫날이라 수업은 간단한 소개 정도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각 과목마다 있었던 공지 사항을 다 적지 못하고 두 과목만 적어 왔다. 처음엔 나와 아내가 매일 확인을 해야할 듯. 모든 수업이 구글 클래스룸을 이용하는데, 학교에서 정한 아이디를 받게 되면 조금 더 수월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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