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24일 토요일. 91일째 날. 특별한 계획이 없는 주말이다. 3주 연속 주말에 여행지에 있다 보니 아이들도 집에서 쉬고싶어 했다.
한국에선 집에 TV가 없었지만 이곳에선 아침에 일어나면 TV를 켠다. 아이들을 깨우고 함께 아침을 먹고 등교와 출근 준비를 하며 부산하게 움직이는 동안 주로 ABC뉴스 클립을 배경 음악처럼 틀어둔다. 리스닝에 조금이라도 더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있지만 실제론 영어보단 이곳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여론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최근 클립의 절반 정도는 covid-19와 백신 관련 기사이다. CDC 발표에 따르면 22일 기준 미국의 18세 이상 성인 세 명 중 한 명이 접종을 완료했고, 50% 이상이 최소 1회 접종을 받았다. Real world data 분석에서 화이자와 모더나 2회 접종을 한 경우 90%의 예방 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작년에 경찰의 체포 과정에서 사망한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 대한 기사도 재판이 진행되면서 매일 한두 꼭지 방송된다. 뉴스를 통해 며칠 전 피고인 전직 경찰이 유죄 평결을 받은 것도 알게 되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 이후 시위대의 구호가 된 "Black Lives Matter" 문구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우리 아파트 단지 안에서도 창문에 걸린 이 구호를 볼 수 있다. 경찰에 의한 사망 뉴스는 끊이지 않는다. 당장 지난 달에도 시카고에서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인 13세 소년이, 이번 달엔 미네소타에서 20대 청년이 경찰의 총에 사망한 사건이 있었다.
총격 사건은 더 흔한 뉴스이다. 입국 후 세 달 동안 뉴스에서 본 여러 사람이 사망한 총격만 해도 대여섯 건은 되는 것 같다. 위키피디아에 2021년에 발생한 mass shooting 리스트가 정리되어 있는데, 오늘까지 126건이 발생했고 142명이 사망했다. 총격 사건이 일어나지 않은 날을 찾는 것이 어려울 정도이다.
https://en.wikipedia.org/wiki/List_of_mass_shootings_in_the_United_States_in_2021
이틀 전엔 샌디에고 다운타운의 가슬램프쿼터에서 총격 사건이 벌어져 한 명이 죽고 여러 명이 다쳤다. 이 뉴스는 샌디에고가 총격 사건에서 안전한 곳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내 착각이었음을 깨닫게 했다. 사건이 일어난 장소는 지난 달에 아이들과 저녁을 먹었던 레스토랑에서 겨우 한 블럭 떨어진 곳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총기 소유를 규제하지 않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수정헌법 2조와 미국의 역사, 연방제 정치 제도와 인종 갈등에까지 거미줄처럼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라 이곳에서 오래 살아오지 않은 이방인 입장에선 의견을 정리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이곳에서 총기 사고가 언제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고, 나와 가족도 총격의 희생자가 될 수 있다는 불안은 항상 존재한다. 어제 아이들을 데리고 올드타운과 사람들이 많이 모인 레스토랑에 갔을 때도 문득 총격 사건이 떠올랐다. 일상을 보내면서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 건 슬픈 일이다.
2021년 mass shooting map. 전체 총기 사고로 확대하면 훨씬 많다. |
H 선생님 가족과 아파트 바베큐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바베큐장 옆에 파이어링이 있어 분위기가 괜찮다. 오전 내내 날씨가 흐려 쌀쌀했는데 오후엔 해가 나서 다행이었다.
4월 25일 일요일. 92일째 날. 아마존에 주문했던 해먹이 어제 도착해 파티오에 설치하고 늦은 브런치를 먹었다. 한국에선 캠핑을 가서 설치해 아이들과 놀곤 했다. 가연이가 특히 좋아해 하루 종일 해먹에 오르내리길 반복했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