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6일 화요일

연수일기 44. 그랜드 써클 여행- 나바호 브릿지, 홀스슈밴드

4월 6일 화요일. 73일째 날. 아침에 숙소 앞에서 사진을 찍고 출발했다. 플래그스태프를 떠나기 전 자동세차장과 주유소를 들렀다. 나바호 브리지를 거쳐 페이지까지 가는 일정이다. 보통 홀스슈밴드와 앤터로프 캐년을 보기 위해 페이지를 찾는데, 현재 앤터로프 캐년은 닫혀있는 상태라 볼 수 없다. 일정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앤터로프 캐년이 있는 지역이 나바호 원주민의 자치 지역이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앤터로프 캐년 외에도 자치 지역 내의 모뉴먼트 밸리 역시 닫힌 상태이다.

오늘 첫 목적지인 나바호 브리지까진 2시간 정도 걸린다. 89번 도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중간 갈래길에서 89A번을 타면 나바호 브리지에 닿는다.  89A번 도로는 세도나에서 플래그스태프를 오는 동안 거쳐왔던 길이기도 하다. 오크강 계곡을 따라 흐르던 도로도 멋졌지만 나바호 브리지로 가는 길도 주변 풍광이 훌륭했다. 아리조나 주는 캘리포니아보다 1시간이 빠르지만, 캘리포니아와는 달리 DST를 적용하지 않으므로 현재는 시간대가 같다. 하지만 나바호 자치 지역은 DST를 적용한다. 그랜드써클 여행을 할 때 지역마다 다른 시간대 때문에 시간을 착각해 당황스러운 상황이 생기기도 한다고 한다. 나바호 브리지로 가는 동안 휴대폰의 시간대가 달라지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다리를 건너 비지터센터 주차장에 도착했다. 두 개의 다리가 나란히 있는데, 1928년 건설된 구 나바호 브리지는 도보로만 건널 수 있다. 다리 위에서 서쪽의 마블 캐년과 그 아래를 흐르는 콜로라도 강을 볼 수 있었다. 강물은 에메랄드 빛깔이었다. 허공에는 멸종 위기 동물인 콘도르들이 원을 그리며 날았고 가끔은 다리 아래 철제 구조물에 앉아 꾸벅꾸벅 졸기도 했다. 주변 풍경에 시큰둥하던 아들은 콘도르를 보고 활기를 되찾았다.

다리 건너편으로 마블 캐년, 허공을 나는 콘도르

비지터센터에서 기념품을 산 뒤 리스 페리로 향했다. 콜로라도 강 기슭의 선착장으로 강물을 가까이서 보고 만질 수 있는 곳이다. 나바호 브리지가 건설되기 전에는 강을 건너려면 이곳을 거쳐야 해 꽤나 번성했지만 지금은 주로 래프팅 선착장으로 이용하고 있다고 한다. 강물이 맑았다. 잠시 강가에 앉아 사진도 찍고 아이들과 물수제비를 뜨며 놀았다. 

리스 페리에서 가까운 곳에 Lonely Dell Ranch가 있다. 1900년대 초반 페리 선착장 운영자가 살던 농장으로 당시에 세운 오래된 오두막과 수레 등의 집기가 아직 남아있는 곳이다. 먼지가 피어오르는 붉은 흙길을 따라 들어가니 초록 잎 가득한 나무들이 단정하게 심어진 뜰이 펼쳐졌다. 오두막 앞뜰 커다란 나무 아래 벤치엔 서너 명의 여행객들이 앉아 한가로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앞뜰은 사과, 자두, 살구, 아몬드 나무 등이 심어진 과수원이다. 황량한 붉은빛 사막과 계곡 지형에 둘러싸인 초록빛 과일나무들이라니. 마치 앨리스가 빠진 토끼굴을 거쳐 나온 것 같았다. 수확철에는 과일을 따 가져갈 수도 있다고 한다. 

파릇파릇한 과일 나무들

페이지 시내에 있는 Bird house에서 치킨과 그랜드캐년 맥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이 집 치킨은 한국식 치킨과 비슷해 내 입맛에도 맞았고 아이들도 잘 먹었다. 식사 후 홀스슈밴드로 향했다. 주차장에서 10불의 입장료를 받았다. 밴드 지형을 보려면 주차장에서 15분 정도 걸어 들어가야 한다. 툭 튀어나온 암벽 절벽을 감싸고 도는 콜로라도 강줄기가 말굽 모양을 닮았다고 해 이름 붙여진 지형인데, 한국이었다면 한반도 지형이란 이름이 붙었을 것이다. 사람들도 많았고 사진도 찍을 만 했지만 아주 큰 감흥은 없었다. 해가 질 때 오면 더 좋다고 한다. 

애리조나의 한반도 지형

오늘은 200마일을 운전했다. 에어비앤비를 통해 예약한 페이지 시내의 숙소에 들어가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누군가 먼저 들어와 짐을 풀어놓은 상태였다. 호스트에게 연락을 취했고, 다행히 곧바로 청소 담당자가 와서 다른 여행객의 짐을 수거하고 집을 다시 정리해주었다. 다른 날짜에 오기로 한 여행객이 날짜를 오늘로 착각해 체크인을 했다고 한다. 에어비앤비의 경우 예전과 달리 호스트를 직접 만나지 않고 셀프 체크인을 하는 곳이 많아서 이런 해프닝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문제는 어렵지않게 해결되었지만, 날짜를 착각한 여행객들은 호스트의 연락을 받고 얼마나 당황스러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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