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4월 5일 월요일

연수일기 42. 그랜드 써클 여행- 세도나, 플래그스태프

4월 3일 토요일. 70일째 날. 오늘부터 아이들 학교는 부활절 방학이다. 그랜드 써클 여행을 시작하는 날이다. 그랜드 써클은 애리조나, 유타, 뉴멕시코와 콜로라도, 이렇게 네 개의 주에 걸쳐 있지만 이 중 절반 정도의 루트만 계획했다. 아이들을 데리고 직접 운전을 해 일주일 만에 다 둘러보긴 어렵기도 하고, 아무리 멋진 풍경이라도 아이들 입장에선 다 좋지도 않을 것이다. 직접 들어가는 건 그랜드, 브라이스, 지온 캐년으로 하고 나머지 일정 중에 세도나와 라스베이거스, 팜스프링스를 추가했다. 

아침 6시에 집에서 출발해 다섯 시간을 달려 피닉스에 도착했다. 인앤아웃에서 점심을 해결했다. 위도는 비슷한데 샌디에고보다 기온이 훨씬 높아 햇살 아래 앉아있기가 어려울 정도다. 점심을 먹고 다시 두 시간을 더 달려 Bell Rock에 도착했다. 세도나가 가까워지면서 산과 바위들은 모두 붉은색으로 바뀌었다. 그래서 주립공원 이름도 Red rock state park이다. 세도나는 인구 1만명 정도의 소도시이지만 매년 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아온다. 철분 함량이 높아 붉은 색을 띤 사암에서 전자기파가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이 때문에 전 세계에서 기가 가장 센 곳으로 손꼽힌다. 이곳에서는 볼텍스라고 부르는 이 에너지를 받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에 머무르며, 운동 선수나 유명인들도 많다고 한다. 지친 심신을 치료하는 데 전자기파가 실제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누구든 이곳의 독특한 풍경은 마음에 들어할 것 같다. 

다음 목적지는 세도나에서 꼭 들러야 할 명소 중 하나라고 하는 성십자예배당 Chapel of the Holy Cross이었다. 붉은 바위 산 위에 세워진 예배당으로, 기껏해야 오십여명 정도가 예배를 드릴 수 있을만큼 작고 아담한 건물이다. 예배당 안으로 들어가니 왜 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예배당을 찾는지 알 것 같았다. 전면의 유리 벽을 배경으로 한 커다란 십자가와 예수상이 소박하고 작은 공간을 넘치게 채우고 있었다. 잠시만 바라보았음에도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는 것이 느껴졌다. 


시내로 내려와 Rowe Fine Art Gallery에 들렀다. 다양한 예술 작품을 전시 판매하는 갤러리가 모인 곳이다. 세도나는 영적인 분위기와 치유력을 믿는 예술가들이 모인 곳으로도 유명하다. 거리 곳곳에서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고, 이러한 작품들이 풍경과 어우러져 이 도시만의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갤러리를 나와 저녁을 먹었다. 비빔밥과 불고기덮밥, 두 가지 메뉴만 파는 푸드트럭이었다. 푸드트럭 치고 가격이 비싼 편이었지만 양도 많고 맛도 괜찮아 아이들이 잘 먹었다. 식사 후 세도나 공항으로 향했다. 해가 지는 시간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공항 주차장 앞에 있는 뷰포인트 Sedona Airport Scenic Lookout 에서 일몰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주차장 입구에서 3달러를 받았다. 일몰을 볼 수 있는 공터에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공터 옆의 언덕에서 해가 지는 풍경을 보았다. 붉은 암벽 산에 둘러싸인 세도나 시내가 한눈에 들어왔다. 


첫날 숙소는 세도나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콘빌이란 마을의 농장이다. 숙소에 가는 길에 홀푸드 마켓에서 저녁거리와 맥주를 샀다. 저녁 여덟 시가 넘어 숙소에 도착했다. 호스트 내외분의 인사가 따뜻하다. 오늘은 500마일을 운전했다. 

4월 4일 일요일. 71일째 날. 아침에 일어나 아이들과 농장의 소들을 구경하고 건초를 먹였다. 별채 형식의 독립된 숙소라 편하기도 했지만 아이들을 위한 간단한 체험을 할 수 있어 더 좋았다. 어제 사온 과일로 간단히 아침을 먹고 주유를 한 뒤 세도나로 출발했다. 오전에 세도나 시내를 좀더 보기로 했다. 카페와 레스토랑, 기념품 샵 등이 늘어선 거리는 모든 건물과 길이 붉은색으로 아기자기하고 예쁘게 조성되어 있어서 거리를 걷기만 해도 눈이 즐거웠다. 기념품을 사고, 탁트인 전망의 카페에서 커피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다. 주차장으로 돌아가는 길 작은 광장에서 동물들을 만지는 체험을 했다. 뱀, 커다란 도마뱀, 토끼, 햄스터 등 다양한 동물들이 있었다. 관광객들에게 시달리는 동물들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마냥 좋아했다. 아이들에겐 이곳 풍경보다 동물들이 더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동물들과 더 놀지 못해 아쉬워하는 딸아이를 달래 플래그스태프로 출발했다. 플래그스태프로 가는 89A번 도로는 오크강을 따라간다. 계곡을 따라 중간중간 피크닉을 할 수 있는 장소가 꽤 있었다. 피크닉 준비를 하진 않았지만, 그중 한 군데에 멈춰 계곡에 내려가 보았다. 테이블에서 고기를 구워먹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 로드트립을 하기 전에 야외에서 음식을 해먹을 수 있는 캠핑 장비들을 사두면 좋을 것 같다. 플래그스태프에 가까워지면서 높은 고도 때문인지 길가 곳곳에 쌓여있는 눈을 볼 수 있었다. 오랜만에 눈을 본 아이들이 신나해서 잠시 차를 멈추고 아이들과 눈을 밟으며 놀았다. 

플래그스태프에 도착해 Oregano's에서 피자와 스파게티, 샐러드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비지터 센터에 들러 기념품을 산 뒤 윌리엄스 Williams 로 향했다. 30분 정도 거리로, 루트66을 타고 갈 수 있는 작은 마을이다. 로스앤젤레스와 시카고를 잇는 루트66은 현재는 그저 작은 도로이지만 처음 만들어진 대륙 횡단 고속도로라는 역사적 의미 때문에 일부러 찾는 사람들도 많다고 한다. 1920년대에 정식 고속도로가 되었으니 겨우 백 년이 된 도로이지만, 개척 시대의 기억을 가진 이들에게는 역사적 의미를 붙이고 보존할 만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의미를 알리 없는 아이들은 뭐하러 또 차를 타고 가냐고 아우성이다. 윌리엄스의 메인 거리는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에서 볼 법한 전형적인 미국 소도시의 모습이었다. 


윌리엄스 거리를 구경하고 해가 지기 전에 플래그스태프 숙소로 돌아왔다. 플래그스태프는 노던아리조나 대학도 있는 도시이지만 그랜드캐년 여행자를 위한 베이스캠프 역할을 하는 것 외에 특별히 볼만한 건 없었다. 근처의 Bashas에서 간단히 장을 보았다. 오늘은 120마일을 운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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