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5일 월요일. 72일째 날. 8시에 플래그스태프 숙소를 출발해 1시간 30분이 걸려 그랜드 캐년 비지터센터에 도착했다. 국립공원 내의 숙소라면 가장 편하겠지만 대부분 가격이 높고 예약이 어려워서 많은 사람들이 가까운 소도시에 숙소를 잡는다. 현재는 그랜드 캐년 동쪽 입구가 닫혀있어서 다음 일정인 페이지로 가려면 플래그스태프까지 내려와 돌아가야 하는 상황이라 우리는 플래그스태프에 숙소를 잡았지만, 그랜드 캐년 사우스림에 더 가까운 곳을 원한다면 투사얀에 숙소를 잡아도 좋을 것이다.
Covid-19로 비지터 센터는 문을 닫은 상태였지만 매점에서 국립공원 패스에 붙일 스탬프를 받을 수 있었다. 커피를 한 잔 사서 손에 들고 가장 가까운 마더 포인트로 향했다. 그랜드 캐년이 미국 땅 어디에 붙어있는지도 몰랐던 때부터, 티비에서, 잡지에서, 신문에서, 인터넷 블로그와 SNS에서 숱하게 보고 들었던 이곳. 살면서 한 번쯤은 가봐야 하는 곳이라 생각했던 곳. 그 풍경을 이제야 직접 보게 된다는 사실에 조금은 흥분되기도 했다.
마더 포인트에 올라서자 끝이 안보일 정도로 겹겹이 펼쳐진 협곡이 우리를 맞았다. 눈앞에 펼쳐진 풍경은 장대했지만, 그것이 주는 느낌은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다. 너무 비현실적인 풍경이라 어색해 오히려 특별한 생각이 들지 않았던 것 같다. 얼굴에 부딪히는 바람이 아니었다면 그림을 보고 있다고 생각했을 지도 모르겠다. 이곳에서 야바파이 포인트까지 림트레일의 일부가 이어진다. 포장된 길이라 풍경을 조망하며 아이들과 천천히 걷기 좋았다. 한 시간 남짓 걸으면서 처음의 어색했던 느낌이 가라앉고 차분히 캐년을 바라볼 수 있었다. 처음 보았을 땐 무뚝뚝하고 투박하게 보였던 절벽이 조금은 친숙하게 느껴졌다. 지금 보이는 골짜기들은 수천만 년에 걸쳐 솟아오르고 깎이기를 반복했을 것이다. 매끈하지 않고 울퉁불퉁한 절벽면들은 검버섯이 내려앉아 주름지고 거친 손등처럼, 겹겹이 쌓인 퇴적층은 마치 그동안의 고된 세월을 말해주는 나이테처럼 보이기도 했다.
야바파이 포인트 근처에서 |
64번 도로를 따라 덕온어락뷰 포인트(멀리 보이는 바위가 오리 모양이라 이렇게 이름 붙었다고 한다), 그랜드뷰 포인트, 데저트뷰 와치타워까지 구경했다. 포인트마다 캐년의 모습이 조금씩 달랐다. 이곳이 사우스림의 동쪽 입구인데, 캐머런까지 이어지는 도로가 현재는 이곳에서 막힌 상태라 더 가볼 수는 없었다. 오후 3시이니 다섯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비지터 센터로 돌아오는 길에 사슴 몇 마리를 만났다. 비지터 센터에서 서쪽으로 난 Hermit road는 셔틀을 타고 볼 수 있었지만, 아이들도 좀 지친 상태라 그냥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플래그스태프 시내로 돌아와 다운타운의 타이 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타이 요리는 오랜만이라 좋았고, 음식도 그럭저럭 괜찮았다. 흰 쌀밥을 곁들인 고기 요리를 아이들이 잘 먹었다. 오늘은 200마일을 운전했다. 이번 여행 중 이틀을 묵는 것은 이곳 숙소 뿐인데, 100년 된 주택의 2층을 개조한 아파트로 아이들과 머물기 적당했다. 저녁에 플래그스태프 맥주를 마시며 아이들과 넷플릭스의 한국 드라마를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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