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27일 목요일

연수일기 189. 페어웰 2

1월 24일 월요일. 366일째 날. 이곳에서 마지막 일주일이 남았다. 이번 주엔 내내 저녁에 약속이 잡혀있다. 돌아가기 전에 인사를 나누어야 할 이들을 챙기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덕분에 귀국 준비와 짐 정리를 위한 시간이 부족할까 싶어 지난 주부터 짐을 조금씩 싸고 있다.

딸 친구 J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같은 반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로 정이 많이 들었다. 떠나기 전에 다행히 이렇게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J의 고등학생 오빠도 함께 만났다. 


1월 25일 화요일. 367일째 날. 오전에 A 교수님 연구실을 찾았다. 1년 전에 같은 연구실에 인사를 왔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VA hospital 안에 들어온 건 그때에 이어 두 번째이다. 준비해 간 와인 한 병을 작별 선물로 드렸다. A 교수님께선 좀더 자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다고 하신다. 나 역시 진행 중인 연구 외에 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은 아쉽다. 여섯 달 전 연수 기간이 절반이 지났을 무렵에 문의했던 외래나 클리닉 참관의 기회는 결국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의 상황을 생각하면 최선이 아니었나 생각도 든다. 편안한 환경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이곳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A 교수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연구실을 나오기 전 잠시 마스크를 벗고 함께 셀카를 찍었다. 

이젠 안녕!

오늘은 EIA 프로그램 마지막 미팅이기도 하다. Rob, 그리고 Sam과 자주 만났던 멕시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언젠가부터는 헤어질 때 다음 주 만날 식당을 Sam이 정했다. 오늘도 헤어질 때가 되자 그가 식당 이름을 크게 이야기한다. 자폐가 있는 그는 끝을 길게 늘이는 특유의 톤과 억양으로 말하는데, 그래서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말투에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Rob이 오늘 점심이 마지막이라고 반복해 가르쳐 주었다.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Sam이 예의 그 말투로 말했다. "닥터 오를 만날 수 없다니 슬퍼요. 굿 럭!"

아냐 Sam. 목요일에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 거야. 한 번 더 만날 수 있어 다행이야.

아파트 이웃들과 문라이트 비치에서 바베큐를 했다. 지난 주에 계획 없이 왔을 때 경험이 좋아서 이번엔 미리 계획을 하고 구이용 돼지 고기도 조금 더 준비했다. 이번에도 차콜에 금방 불이 붙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게다가 고기 양이 많아 굽는데 더 오래 걸렸다. 고기를 굽는 동안 어느새 해가 졌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논다. 결국 저녁을 먹기 시작한 건 어스름이 깔린 다음이었다. 일단 아이들부터 급히 고기를 먹였다. 배를 적당히 채운 아이들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마시멜로와 고구마를 구웠다. 

주위가 완전히 컴컴해지자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어른들은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뒤늦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모닥불 앞에서 깔깔대며 게임을 했다. 


1월 26일 수요일. 368일째 날. 학교 선생님들께 작별 메일을 보냈다. 아이들의 withdrawal form을 작성해 전학 담당자에게도 보냈다. 마지막 등교일인 금요일에 한국 학교 전학에 필요한 재학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받기로 했다. 

아내의 할머니들과의 화상 채팅도, 아들의 스케이트 보드 수업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스케이트 보드 수업이 끝난 뒤 강사인 Mike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선 아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를 다시 만나긴 어려울 것이다. 이곳에서 지금 경험하는 이별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데, 아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H 선생님께 페어웰 겸 저녁 초대를 받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국과 밥이 갖춰진 한국식 식사를 맛있게 했다. 같은 랩으로 연수를 와 만나게 된 지도 여섯 달이 되어 간다. 국립 공원을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벌써 여러 곳을 다녀왔다고 한다. 공원에 갈 때마다 항상 주니어 레인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멋진 국립 공원 도감을 보며 여행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남은 절반의 기간 동안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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