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7일 금요일

연수일기 180. 플로리다 여행: 키웨스트

1월 6일 목요일. 348일째 날. 오늘은 플로리다 키를 따라 키 웨스트까지 다녀오는 일정이다.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에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플로리다 남단에 길게 이어진 섬들을 연결해 주는 Overseas highway가 시작된다. 홈스테드(Homestead) 키웨스트(Key West) 잇는 128마일 도로로 미국 1 국도 가장 남쪽 구간이다

다리로 이어진 첫 번째 섬은 키 라르고. 이름처럼 이곳 섬들 중엔 큰 편이다. 내일 이 섬의 욘 페네캠프 주립 공원에 다시 올 예정이다. 몇 개의 섬과 다리를 지나친 뒤 Overseas heritage trail이라 이름 붙여진 길에 차를 잠시 세웠다. 다리의 오른쪽은 멕시코만, 왼쪽은 쿠바와 카리브해이다. 바다는 푸른색과 에메랄드색이 섞여 다채롭게 빛난다. 플로리다 키에는 지구 상에서 세 번째로 산호 군락이 많다고 한다. 물 아래 산호초의 분포에 따라 물 색깔이 달라진다.  

중간중간 섬엔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다양한 해양 스포츠 외에 물고기 먹이 주기 같은 소소한 것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조금 특별한 액티비티를 찾는다면 마라톤 섬에 있는 투르틀 병원에 멈춰도 좋겠다. 이 병원의 환자는 사람이 아니라 거북이다. 일반인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시간 반 길이의 유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오리엔테이션 형식의 짧은 강의와 치료 중인 거북이를 관찰하고 먹이를 주는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침 시간이 맞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1986년에 오픈한 이 병원은 지금까지 천오백마리 이상의 거북이를 치료하고 바다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강의를 들은 후 야외의 풀과 수조(병동과 병실에 해당한다)로 이동하는 길에 치료실과 수술실도 구경할 수 있었다. 갖추어진 장비가 사람 대상의 병원 못지 않았다. 야외 병동은 상태가 좋지 않은 거북이를 위한 개인 수조(중환자실과 1인실)와, 상태가 좋아진 거북이들이 좀더 자유로이 헤엄을 칠 수 있는 넓은 풀(일반 병동, 다인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풀에 있는 거북이들에겐 먹이를 줄 수 있었다. 

강의 듣는 중

먹이를 먹으러 모인 거북이들

이곳의 환자는 대개 플라스틱과 쓰레기를 먹고 장이 막히고 버린 밧줄에 걸려 부상을 입은 거북이들이다. 배의 프로펠러에 부딪히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등껍질에 손상을 받고 변형이 생긴 거북이도 많은데, 손상을 받은 부위가 부풀어올라 bubble butt syndrome이라 불리는 이 질환이 생기면 물 속으로 잠수를 할 수 없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fibropapilloma가 거북이에게 흔하고, 종종 수술로 제거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병원 홈페이지 링크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turtlehospital.org/sea-turtle-injuries/

병원을 나와 다시 다음 섬으로 출발했다. 섬을 이어주는 다리는 모두 42개나 되는데 중에서는 '세븐 마일 브릿지(Seven Mile Bridge)' 가장 유명하다. 오리지널 철교는 1912년에 완공되었다. 1982년에 새 다리 개통 후엔 보행자를 위한 길과 낚시터로 쓰인다고 한다. 현재는 보수 중으로 올드 브릿지를 걸어서 건널 수는 없다. (물론 7마일을 걸어 건너는 사람도 없겠지만) 다리의 끝 부분인 리틀 덕 키에 주차를 하고 콘크리트로 덮인 다리의 끝 부분을 잠시 걸었다. 건너편의 베테랑 기념 공원 Veterans memorial park으로 건너가니 한적한 작은 해변이 있었다. 나무로 된 피크닉 테이블 몇 개와 간이 화장실이 시설의 전부였지만 물이 맑고 얕으며 잔 모래가 깔려 아이들과 놀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을 원한다면 딱맞는 장소일 것이다. 물놀이도 가능했지만 오늘은 참기로. 바다에 발을 담그고 간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천국같은 작은 해변

1시간 남짓 더 달리면 미국 최남단 섬인 키웨스트에 도착한다. 쿠바 음식을 파는 El Siboney restraurant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헤밍웨이 집으로 이동했다. 입장료는 성인 17불, 아이 7불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금으로만 받는다. 유명한 관광지라 해도 남이 살던 집에 큰 흥미는 없었는데, 집안 곳곳에 남겨진 헤밍웨이의 흔적과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헤밍웨이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 역시 집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딸은 집 안과 마당 곳곳을 돌아다니는 많은 고양이들 때문에 신이 났다. 아들에겐 헤밍웨이가 누군지와 그의 대표작이자 퓰리처상을 받은 '노인과 바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소설 전체에 걸쳐 등장인물은 노인 한 명이며, 그 노인이 청새치를 잡는 이야기가 소설의 전부라고 하니 아들은 어떻게 그 이야기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냐고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책을 사주어야겠다. 

정원 구석의 고양이 cemetery

집과 정원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고양이와 놀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집에서 나와 가까운 Southernmost Point에 들렀다. 미국 최남단이란 상징성 때문에 언제 가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다는 곳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줄은 서지 않고 조형물을 배경으로 옆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오늘 숙소는 overseas highway 중간쯤에 있는 아일라모라다의 호텔이다. 여기까지만도 두 시간이 걸린다.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를 당일 치기로 다녀오는 이들이 많은데, 그렇게 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키웨스트 뿐 아니라 중간중간 섬들에 멋진 곳이 많다. 이곳 섬들이야 말로 남부 플로리다만의 여유와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기에 제격인 것 같다. 유명 관광지 한두군데만 보고 급히 육지로 돌아가는 것보단 식당, 바, 거리에서 플로리다 키만의 분위기에 잠시 취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플로리다 키스 브루잉 맥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로 마무리. 바이브는 샌디에고보다 마이애미지만 맥주는 역시 샌디에고가 훨씬 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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