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5일 수요일

연수일기 178. 플로리다 여행: 마이애미

1월 4일 화요일. 346일째 날. 느지막이 일어나 컵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호텔을 나섰다. 마이애미에서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역시 해변 아닐까. 그래서 오전엔 사우스 비치와 아르데코 거리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 구역의 명칭은 Art Deco Historic District이다. 1900년대 초반 서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밝은 파스텔 톤의 색이 특징이다. 마이애미에는 800여 개의 아르데코 스타일 건물이 있는데 대부분 1920-40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랑, 하늘, 분홍, 연두, 보라. 흰색을 배경으로 창틀이나 간판, 지붕 등에 쓰인 파스텔 색깔이 강렬한 한낮의 햇살과 어우러져 거리 전체를 밝게 만든다. 삼사 층 높이의 아담한 건물들은 대부분 레스토랑이나 호텔로, 하나하나는 평범하고 특색이 없어 보이지만 수십 개의 비슷한 건물이 모이니 개성 가득한 거리가 되었다. 아르데코 건물들과 사우스 비치 사잇길은 차가 다니지 않도록 해두어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며 햇살과 바닷바람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길게 이어진 백사장은 고운 모래로 되어 걷거나 일광욕을 즐기기에 좋았다. 유명 해수욕장에서 볼 수 있는 파라솔과 비치 의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사장에 철퍼덕 앉았다. 아이들은 금새 모래놀이를 시작. 캘리포니아 해변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다른 건 바다 모습이었다. 파도는 얕고 색은 에메랄드 빛으로 투명하다. 서핑을 즐기긴 어렵겠지만 물놀이를 하기엔 훨씬 더 좋다. 제주의 김녕이나 금능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

마이애미 로컬 커피숍인 Panther coffee의 아메리카노(커피숍이 있는 호텔 건물도 아르데코 스타일. 커피는 자연스레 아이스로 주문했다)를 홀짝이며 베이 프론트 공원으로 이동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공원 한켠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이 있었다. 미국인이 자랑스럽게 여겨온 탐험가이지만 원주민을 학살한 행위로 근래엔 그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해 콜럼버스 데이를 공휴일에서 제외한 주도 있다. 그와 관련된 기념물을 없애려는 움직임도 많은데 이곳 베이프론트 공원의 동상도 올 여름 붉은 색 스프레이 칠을 당했다가 복원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마이애미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인 리버 워크가 시작된다. 고층 건물과 고급 레스토랑이 많아 보였다. 우리는 반대편인 베이사이드 마켓 플레이스를 향해 걸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기엔 더 적당할 것 같았다. 쇼핑몰엔 식당과 바가 모여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마이애미 바닷가에서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라니. 그래도 아이들 입맛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마이애미에선 세계 모든 대륙의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한끼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트들이 정박한 부두를 바라보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던 중, 아이들이 바닷물에서 흐느적거리는 동물을 발견했다. 처음엔 거북이인 줄 알았지만 아들이 찍은 동영상을 보니 전혀 다른 동물이었다. 군소와 비슷한 생김새인데 날개를 펄럭이며 우아하게, 물 속을 날듯이 헤엄쳤다.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이었다. 구글 검색을 해보고 이 동물이 Aplysia fasciata라는 걸 알았다. 대서양 바다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윈우드 지역으로 이동했다. 벽화와 그래피티가 많기로 유명하고, 최근 마이애미에서 가장 힙한 동네라고 한다. 듣던 대로 관광객이 많았다. 하나같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사진들 일부는 인스타그램에 바로 올라갈 것이다. 그래피티 작품 전시 공간인 윈우드 월스는 오늘 문을 닫아서 들어가볼 수 없었지만, 전시장을 둘러싸고 두세 개 블럭이 그래피티로 가득해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거리 예술이 주는 독특한 느낌을 흠씬 느낄 수 있었다. 

동네 벽화 클라스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는 리틀 하바나. 쿠바 출신 이민자들의 동네이다. 샌디에고에도 리틀 이태리가 있지만 나라 이름 앞에 리틀이란 단어를 붙여 만든 동네 치고 볼 만한 곳은 별로 없다. 대개 그 나라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과 카페 몇 개를 모아놓은 것이 전부이며 그 나라 사람보단 관광객만 북적거리는 국적 불명의 공간이 되기 마련이다. 허나 이곳은 쿠바보다 더 쿠바같은 동네라고 하는데, 쿠바를 가서 직접 보고 비교할 수 없으니 그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곳에 쿠바와 그 주변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긴 하다. 

작은 식당과 카페, 바, 극장이 늘어선 거리는 이국적인 느낌으로 가득하다. 중간중간 쿠바산 시가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플로리다 헤리티지 표식이 있는 도미노 공원 안에선 사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체스와 도미노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공원 바로 옆에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 멋스런 인테리어의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아이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빈 테이블에 앉았을 것이다. 

Old's Havana Cuban Bar & Cocina

대신 가까운 커피숍에서 아내와 쿠바 커피를 한 잔씩 하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주인이 추천한 커피를, 아이들은 파인애플과 망고 주스를 선택했다. 처음 마셔본 쿠바식 커피는 쓰고 부드럽고 달았다. 믹스 커피보다 설탕이 더 많이 들어간 듯 입 안에 텁텁한 뒷맛이 많이 남아서 입맛에 썩 맞진 않았다. 아내는 나보다 약한 커피를 시켰는데도 밤에 잠을 못잘 것 같다며 절반을 남겼다. 카페인에 둔감한 나는 더블샷을 선택했는데 커피 자체가 보통의 에스프레소보다 더 진한 것 같았다.(아니나다를까, 결국 이날 밤 생전 처음으로 커피로 인한 불면을 경험했다.)

저녁으론 쿠바 식당인 El Mago De Las Fritas에서 Frita를 사서 호텔로 들어가기로 했다. 쿠바식 햄버거로 패티와 함께 잘게 채를 썬 감자튀김이 들어간 게 특징적이다. 아주 작고 소박한 가게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맛집이라고 하는데, 식당 벽에 그와 식당 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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