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18일 화요일. 360일째 날. 연구실에 출근했다가 점심 때 Rob을 만났다. 3개월 만이다. 어제 밤 그에게 전화가 와 잠깐 통화했는데 활기찬 목소리는 이전 그대로였다.
늘 만나던 쇼핑몰 푸드코트 앞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멋스러운 롱코트를 입고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그가 보였다. 여느 때처럼 Sam과 함께였다. 짧아진 내 머리를 보고 Sam이 반복해 말한다. "닥터 오. 머리 잘랐네요!" Rob에게 코트가 멋지다고 하니 중고 물품 가게에서 15불에 산 옷이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Rob은 유람선에서 일한 3개월 내내 배 안에만 있었다고 한다. 오미크론으로 인한 환자가 많이 늘어난 이후 배 안의 상황이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육지에 비해 아주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의료진 중엔 감염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중국에 대한 화제가 나왔다. 동양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Rob은 중국 역사와 상황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중국인 가족들의 영향도 클 것이다. 최근 프랑크 디쾨터의 책을 읽으며 중국 현대사를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책에선 솜씨 좋은 독재자가 한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데, Rob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현대 중국인의 가치관과 생각의 뿌리는 이미 70년 전에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화요일이 마지막 EIA 수업이 된다. 목요일에 Rob의 가족을 집에 초대해 저녁을 먹기로 했다.
1월 19일 수요일. 361일째 날. SDGE에 전기와 가스 서비스 해지를 신청했다. 1년 전 서비스 신청 후에 웹페이지 계정을 만들려 몇 번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로 필요를 느끼지 않아 계정을 만들지 않은 상태로 두었다. 서비스 해지는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우선 계정이 필요하다. 분명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웹페이지에선 사용자 정보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어보니 대기 시간이 수십 분.
웹 계정을 만드려면 우선 이름, 이메일 또는 전화번호 등의 사용자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매달 날아오는 고지서엔 내 이름과 이메일이 제대로 적혀 있는데, 해당 정보를 웹페이지에 넣으면 없는 사용자라 나오니 영문을 모를 노릇이다. 고민을 하다 문득 내 이름의 뒷 글자가 middle name으로 등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입력 란에 앞 글자만 넣었더니 그제야 사용자 정보를 찾았다는 메세지가 뜬다. 계정을 만들고 집을 떠나는 날로 해지 신청을 했다. 해지 신청일 아침 5시에 전기와 가스가 끊기게 된다.
그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이름 때문에 사소한 성가심이 꽤 있었다. 일상에선 미국 이름을 만들어 쓰는 게 편하다. 한국 이름만 쓰는 경우 레스토랑이나 카페와 같이 대면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몇 번씩 이름을 말해야 하고, 그나마 그 이름도 틀릴 때가 대부분이다. 본명을 써야 하는 경우, 나와 같이 여권 영문명 두 글자 이름 사이에 한 칸을 뗀 경우엔 뒷 글자를 미들 네임으로 착각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나와 아내는 여권 이름에 스페이스가 있고, 아이들은 없다. 미국에서 살아보니 처음 여권을 만들 때 이름에 빈 칸을 넣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때가 많았다.
아들은 오랜만에 스케이트 보드 수업에 다녀왔다. 지난 번 결제한 수업료에 이제 한 번의 수업이 남았으니 다음 주에 마지막 수업을 받으면 된다. 아들은 한국에 가서도 보드를 탈 거라고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할른지는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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