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월 31일 월요일

연수일기 191. 귀국

1월 30일 일요일. 372일째 날. 오전에 마무리 청소와 짐 점검을 했다. 집 앞에서 마지막으로 가족 사진을 찍었다. 1년 전 같은 자리에서 찍은 사진과 비교하니 아내와 나는 별다른 변화가 없는데 아이들은 한 뼘씩은 큰 것 같다. 

가까운 스펙트럼 지점에 가서 모뎀을 반납하고 Gami 스시에서 점심을 먹었다. 샌디에고엔 한국인이 운영하는 스시 식당이 많은데, 이 집도 그중 하나이다. 언젠가 가봐야겠다 생각만 하다 얼마 전 처음 이용했는데 맛과 가격이 괜찮았다. 연어 초밥을 좋아하는 딸과 같이 일찍부터 자주 왔었음 좋았을텐데. 

출국 전날인 오늘 오후에 마지막으로 갈 곳은 역시 솔라나 비치. 우리 가족이 가장 좋아하는 곳이다. 돗자리에 앉아 피츠 커피를 마시며 마지막 날의 일몰을 보았다. 

마지막 날, 마지막 일몰

저녁엔 아파트 이웃들에게 인사를 했다. 짧은 기간이지만 정이 많이 들었다. 좀더 일찍 만나서 더 자주 함께 추억을 만들지 못한 게 아쉽다. 좋은 분들과 헤어지는 건 항상 아쉽고 후회스럽다. 


1월 31일 월요일. 373일째 날. 새벽 여섯 시부터 아이들을 깨워 출발 준비를 했다. 이민 가방 여섯 개, 대형 트렁크 두 개, 소형 트렁크 한 개, 그리고 기타와 몇 개의 손가방, 카시트까지. 바쁘게 짐을 현관 밖으로 빼는 동안 날이 밝아졌다. 

한국 기사님이 운전하는 콜밴은 우리 차와 같은 시에나였다. 기사님은 문제 없을 거라 했지만 차에 짐이 다 들어가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을 했었다. 다행히 짐을 다 실을 수는 있었다. 만약 작은 가방 하나라도 더 있었다면 난감한 상황이 생겼을 것이다. 기사님도 지금까지 손님들 중 짐이 가장 많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LA 공항으로 가는 길. 아내도 나도 아이들도 말이 없었다. 익숙한 길이지만 오늘 기분은 남달랐다. 앞으로 한동안 이 길을 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내와는 언젠가 우리가 살던 동네에 다시 와보자고 약속을 했다. 언제가 될지 모르겠지만.

공항에 도착해 수속 창구까지 짐을 나르며 서너 번을 왔다갔다 하느라 진이 빠졌다. 돌아가는 항공편을 비지니스석으로 예약하길 잘한 것 같다. 출국과 귀국 항공편에 그동안 모았던 마일리지를 아낌없이 썼다. 아이들은 비지니스석이 처음인지라 비행기에 오르기 전부터 신이 났다. 

지난 일 년 동안 참 많은 경험을 했고 많은 사람도 만났다. 평생 잊지 못할 추억들도 만들었다.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가족과 함께여서 더 행복하고 특별했다. 

2022년 1월 29일 토요일

연수일기 190. 페어웰 3

1월 27일 목요일. 369일째 날. 오전에 연구 코디네이터인 Nova를 만나 연구실 열쇠와 주차증을 반납했다. A 교수님과 Nova의 배려 덕분에 지난 1년 동안 편하게 일할 수 있었다. 오늘도 이 연구실 문을 여는 것도 마지막이다. 

정든 연구실도 안녕!

연구실에서 가까운 Bank of America 지점 상담을 예약해 두었다. 출국 전에 계좌와 신용카드를 닫아야 한다. 입출금 계좌를 닫는 것은 어렵지 않았지만 신용카드를 없애는 단계에서 약간의 문제가 생겼다. 미국 신용카드는 사용 후 일정 기간 동안 사용 내역이 pending 상태에 있다가 며칠 후 확정된다. 레스토랑에서 결제 후 팁을 추가하는 경우 최종 확정 금액엔 팁이 더해진다. pending 내역이 있으면 신용카드 계좌를 닫는 데 번거로움이 생길까 해 며칠 전부터는 신용카드를 일부러 쓰지 않았었고, 그래서 결제 내역은 모두 확정이 된 상태였다. 하지만 갚지 않은 신용카드 사용 금액이 있어 balance가 0이 아니었는데, 이 때문에 신용카드 계좌를 바로 닫을 수 없다고 했다. 카드를 없애기 전 balance를 0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는데, 은행에 방문한다면 바로 처리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 문제였다. 

입출금 계좌를 없앤 뒤 담당 banker가 teller(창구 직원)에게 안내해 신용카드 계좌에 남은 balance에 해당하는 금액을 이체했다. 계좌에 반영되는 데에는 시간이 걸린다. balance가 0이 된 이후 전화로 신용카드를 해지하기로 했다. (다행히 다음날 반영이 되어 국제전화를 걸지 않고 출국 전에 처리할 수 있었다.)

세차를 하고 인앤아웃에서 점심을 먹었다. 인앤아웃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이곳의 햄버거 맛은 한국에서도 생각이 날 것 같다.

Rob 가족을 초대해 아파트 바베큐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Rob과 Sam, 그리고 Jane까지. 돼지 목살 대신 코스트코에서 산 어깨살을 구웠다. 귀국 짐을 싸는 중이라 바베큐 준비도 쉽지 않았다. 그래도 그에게 시즈닝이 되지 않은 한국식 돼지 바베큐를 해주고 싶었다. 해가 지고 날이 꽤 쌀쌀했지만 마음은 따뜻했다. Rob과 Sam은 고기를, Jane은 김치를 맛있게 먹었다.

정부에서 배포하는 자가 키트가 배송되었다. 2개 들이 2 세트이다. 얼마 전 딸의 초등학교에서 1 세트를 받았으니 총 3 세트, 6 차례 검사가 가능한 키트를 받은 셈이다. 교육구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미국은 이제 아이들 대면 수업은 최대한 유지하는 쪽으로 방침이 정해져서 그에 맞춰 대응하는 걸로 보인다. 한국과는 달리 그동안 밀접 접촉자라 해도 자가 격리와 등교를 선택할 수 있었는데, 최근 오미크론으로 아이들 케이스도 급격히 늘어나면서 세부 방침이 바뀌고 있다. 아들의 중학교의 경우도 최근엔 밀접 접촉자 개별 통보가 아니라 그룹 통보 후 검사를 받도록 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검사 양성 케이스가 늘어나면서 이삼일에 한 번 꼴로 통보가 오니 현실적으로 검사소 검사는 어렵다. 학교에서 자가 키트를 배부하고, 정부에서도 무료로 배포를 하고 있지만 필요량을 충족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1월 28일 금요일. 370일째 날. 아내의 EIA 수업도, 내 연구 미팅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 미팅에선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짧게 발표했다. 이곳에 올 때 처음 계획과 비교하면 겨우 절반 정도 마친 것 같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남은 부분은 계속 진행할 생각이다. 추후 현재의 연구가 다 마무리 된 뒤에도 A 교수님과는 함께 연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리사이클링 센터에 들러 남은 재활용품을 다 처리했다. 저녁은 S 선생네 집에서 마지막 페어웰을. 딸은 지난 몇 달간 일주일에 한 번씩 시간을 보냈던 언니들과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1월 29일 토요일. 371일째 날. 한국행 비행기를 타기 위한 코로나 검사를 받은 뒤 버드락 카페에 들렀다. 아내는 한국에 돌아가면 샌디에고에서 즐기던 맛있는 아몬드 라떼를 마시기 어렵다며 아쉬워한다. 

집에 가는 길에 Rob의 집에 들렀다. 여러 번 만나면서도 함께 사진을 찍은 적이 없어서 지난 목요일에 찍으려 했는데 그날도 깜빡했다. Rob이 직접 내린 차를 마시고 그와 Jane과 함께 집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그에게 많은 것을 배우고 느꼈다. 그와의 만남은 생각한 대로 나오지 않는 영어 때문에 애를 먹는 시간이면서 자극과 활력을 얻는 시간이기도 했다. 한국에 돌아가서도 와츠앱을 통해 소식을 전하고 들을 수는 있겠지만 이제 Rob을 직접 볼 수 없다고 생각하니 아쉽다. 살면서 그를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2022년 1월 27일 목요일

연수일기 189. 페어웰 2

1월 24일 월요일. 366일째 날. 이곳에서 마지막 일주일이 남았다. 이번 주엔 내내 저녁에 약속이 잡혀있다. 돌아가기 전에 인사를 나누어야 할 이들을 챙기다 보니 이렇게 되었는데, 덕분에 귀국 준비와 짐 정리를 위한 시간이 부족할까 싶어 지난 주부터 짐을 조금씩 싸고 있다.

딸 친구 J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지난 일 년 동안 같은 반이자 가장 가까운 친구로 정이 많이 들었다. 떠나기 전에 다행히 이렇게 밥을 같이 먹을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할 수 있어 다행이다. 오늘은 처음으로 J의 고등학생 오빠도 함께 만났다. 


1월 25일 화요일. 367일째 날. 오전에 A 교수님 연구실을 찾았다. 1년 전에 같은 연구실에 인사를 왔을 때 기억이 떠올랐다. VA hospital 안에 들어온 건 그때에 이어 두 번째이다. 준비해 간 와인 한 병을 작별 선물로 드렸다. A 교수님께선 좀더 자주 직접 만날 수 있는 기회를 만들지 못했던 것이 미안하다고 하신다. 나 역시 진행 중인 연구 외에 더 다양한 활동에 참여하지 못했던 것이 조금은 아쉽다. 여섯 달 전 연수 기간이 절반이 지났을 무렵에 문의했던 외래나 클리닉 참관의 기회는 결국 가지지 못했다. 하지만 지난 한 해 동안의 상황을 생각하면 최선이 아니었나 생각도 든다. 편안한 환경에서 여유로운 시간을 가지며 이곳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은 역시 A 교수님의 배려 덕분이었다. 연구실을 나오기 전 잠시 마스크를 벗고 함께 셀카를 찍었다. 

이젠 안녕!

오늘은 EIA 프로그램 마지막 미팅이기도 하다. Rob, 그리고 Sam과 자주 만났던 멕시코 음식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언젠가부터는 헤어질 때 다음 주 만날 식당을 Sam이 정했다. 오늘도 헤어질 때가 되자 그가 식당 이름을 크게 이야기한다. 자폐가 있는 그는 끝을 길게 늘이는 특유의 톤과 억양으로 말하는데, 그래서 더 알아듣기 힘들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말투에도 조금은 익숙해졌다. Rob이 오늘 점심이 마지막이라고 반복해 가르쳐 주었다. 뒤늦게 상황을 이해한 Sam이 예의 그 말투로 말했다. "닥터 오를 만날 수 없다니 슬퍼요. 굿 럭!"

아냐 Sam. 목요일에 우리 집에서 저녁 식사를 할 거야. 한 번 더 만날 수 있어 다행이야.

아파트 이웃들과 문라이트 비치에서 바베큐를 했다. 지난 주에 계획 없이 왔을 때 경험이 좋아서 이번엔 미리 계획을 하고 구이용 돼지 고기도 조금 더 준비했다. 이번에도 차콜에 금방 불이 붙지 않아 애를 먹었다. 게다가 고기 양이 많아 굽는데 더 오래 걸렸다. 고기를 굽는 동안 어느새 해가 졌다. 아이들은 모래사장을 뛰어다니며 논다. 결국 저녁을 먹기 시작한 건 어스름이 깔린 다음이었다. 일단 아이들부터 급히 고기를 먹였다. 배를 적당히 채운 아이들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앉아 마시멜로와 고구마를 구웠다. 

주위가 완전히 컴컴해지자 하늘에 별이 가득했다. 어른들은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뒤늦게 식사를 하며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모닥불 앞에서 깔깔대며 게임을 했다. 


1월 26일 수요일. 368일째 날. 학교 선생님들께 작별 메일을 보냈다. 아이들의 withdrawal form을 작성해 전학 담당자에게도 보냈다. 마지막 등교일인 금요일에 한국 학교 전학에 필요한 재학 증명서와 성적 증명서를 받기로 했다. 

아내의 할머니들과의 화상 채팅도, 아들의 스케이트 보드 수업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스케이트 보드 수업이 끝난 뒤 강사인 Mike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돌아선 아들의 표정에 아쉬움이 묻어난다. 그를 다시 만나긴 어려울 것이다. 이곳에서 지금 경험하는 이별은 한국에서의 그것과 조금은 다르게 느껴지는데, 아마 다시 만날 수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싶다.

H 선생님께 페어웰 겸 저녁 초대를 받았다. 덕분에 오랜만에 국과 밥이 갖춰진 한국식 식사를 맛있게 했다. 같은 랩으로 연수를 와 만나게 된 지도 여섯 달이 되어 간다. 국립 공원을 좋아하는 아이들 때문에 벌써 여러 곳을 다녀왔다고 한다. 공원에 갈 때마다 항상 주니어 레인저 프로그램에 참여한다고. 멋진 국립 공원 도감을 보며 여행 이야기를 한참 나누었다. 남은 절반의 기간 동안 즐거운 추억 많이 만드시길. 

2022년 1월 24일 월요일

연수일기 188. 페어웰

1월 20일 목요일. 362일째 날. 출국이 가까워지면서 한국에 계신 고마운 분들께 드릴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고민이다. 오후에 어머니와 누님께 드릴 선물을 사러 샌디에고 미션에 다녀왔다. 도자기로 만든 종 모형과 십자가를 골랐다. 선물과 함께 캘리포니아 미션에 대한 이야기도 해드리면 의미가 더 깊은 선물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L 선생님이 저녁 식사 초대를 해주었다. 여섯 달 사이에 아이들이 많이 자랐다. 오늘부터 다음 주까지 페어웰 모임이 연이어 있다. 최근에 소파를 샀다고 한다. 가구와 살림을 갖추는 데 몇 달이 걸린 셈이다. 최근엔 물류 문제 때문인지 이케아에 품절 상품이 많아 침대나 소파를 사기도 쉽지 않다고 한다. 

이곳에서 쓴 논문 원고를 완성해 MESA P&P committee에 보냈다. 위원회의 리뷰를 거친 다음 저널 투고를 진행하게 된다. 


1월 21일 금요일. 363일째 날. 자동차 엔진 오일을 갈고 SMOG 테스트를 받았다. 애초 계획대로 카맥스에 차를 처분했다면 굳이 할 필요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떠날 때쯤 오일 교환 시기가 될 것 같아 교환을 해서 넘기기로 했다. 차량이 2017년식이라 SMOG 테스트를 받을 시기는 아니지만 판매를 하려면 테스트를 받아야 하고 판매자가 처리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한다.

오일을 갈면서 차를 구매할 분을 위해 타이어 로테이션을 함께 해두려 했는데, 타이어 상태를 확인한 직원이 앞 바퀴 마모가 심하고 편마모도 있어서 교환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지난 1년 동안 18,000 마일 정도를 달렸으니 타이어가 닳았을 만하다. 이것도 중고 업체에 처분한다면 그냥 넘기고 말았겠지만 개인 거래를 하려니 마음에 걸린다. 오늘 타이어 재고가 없어 교환을 하진 못했다. 대신 차를 구매할 분과 상의해 타이어 두 개에 해당하는 가격을 깎아드리기로 했다. 


1월 22일 토요일. 364일째 날. 같은 아파트 L 선생님의 둘째와 오션 비치 피어에 낚시를 다녀왔다. 아이가 갑자기 낚시를 가보고 싶다고 하는데 L 선생님은 이곳에서 낚시를 해본 적이 없는데다 출국을 앞둔 상황이어서 난감한 듯 했다. 떠나기 전에 아들과 다시 한 번쯤 낚시를 가고싶은 마음도 있었기에 우리가 데리고 다녀오기로 했다. 

오션 비치 피어는 집에서 가까운 편이다.(더 가까운 퍼시픽 비치에도 피어가 있지만 구글 지도를 보니 사유지라 아무나 들어가기 어려운 듯 했다.) 미션 베이와 다운타운을 이웃하고 있고 주차장도 작아 주차하기 어렵다고 들었는데 역시나 그랬다. 근처의 유료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오션 비치는 처음이다. 아내와 채팅을 하는 할머님들 말씀으론 오래 된 동네이고 다운타운과 가까워 옛날 샌디에고 분위기가 남아있는 곳이라고 한다. 피어까지 거리는 잠시였다. 길가에 좌판을 펼친 잡상인들이 많았고, 흥겨운 음악으로 디제잉을 하는 이도 있었다. 눈에 들어오는 풍경 곳곳에 세월의 흔적이 보였지만 촌스럽지 않았다. 다운타운의 관광 명소보다 더 독특하고 힙한 느낌이다. 오늘도 물고기는 한 마리도 잡지 못해 아이들이 실망을 했지만, 떠나기 전에 이곳에 와볼 수 있어 좋았다. 

오션 비치 거리

저녁엔 아파트 이웃들과 환송회 겸 저녁을 먹었다. 다들 한국에서 사는 도시가 다르고 우리가 먼저 돌아가게 되지만, 나중에라도 가끔 만날 수 있기를 바란다.  


1월 23일 일요일. 365일째 날. 아내의 후배가 샌디에고에 놀러 와 집에 들렀다. 일전에 LA에 갔을 때 만났던 후배로 지난 달에 연수를 왔다. 떠나기 전에 다시 만날 수 있어 아내가 반가워했다. 카맥스에서 차를 사는 과정에서 애를 많이 먹었다고 한다. 처음 샀던 차량에 문제가 생겨 급히 교환을 해야 했고, 적당한 차가 없어 총 네 번을 방문해야 했다고. 결국 구입한 차는 내 차와 같은 2017년 식 시에나인데 마일리지가 9만이다. 세금을 제하고 31,000불 가량에 구입했다고 한다. 내가 1년 전 같은 연식에 마일리지 6만인 시에나를 세전 25,000불에 구입했음을 생각하면 최근 중고차 가격이 얼마나 올랐는지 알 수 있다. 

아내와 채팅을 하는 버지니아 할머니가 프레첼을 구워 나눠 주신다 해서 오후에 할머니 댁에 들렀다. 몇 달 전에 이어 두 번째이다. 이번엔 나와 아이들도 모두 가서 인사를 했다. 호호 아줌마를 닮은, 작은 체구에 귀여운 얼굴의 할머니가 우리를 반겨 주었다. 이곳에서도 고마운 분들이 많았다. 오늘로 이곳 생활을 시작한지 정확히 만 일 년. 떠날 때가 되니 감사함과 아쉬운 마음이 든다. 

2022년 1월 20일 목요일

연수일기 187. Rob과 재회

1월 18일 화요일. 360일째 날. 연구실에 출근했다가 점심 때 Rob을 만났다. 3개월 만이다. 어제 밤 그에게 전화가 와 잠깐 통화했는데 활기찬 목소리는 이전 그대로였다.

늘 만나던 쇼핑몰 푸드코트 앞에 도착하고 얼마 되지 않아 멋스러운 롱코트를 입고 손을 흔들며 걸어오는 그가 보였다. 여느 때처럼 Sam과 함께였다. 짧아진 내 머리를 보고 Sam이 반복해 말한다. "닥터 오. 머리 잘랐네요!" Rob에게 코트가 멋지다고 하니 중고 물품 가게에서 15불에 산 옷이라며 어깨를 으쓱한다. Rob은 유람선에서 일한 3개월 내내 배 안에만 있었다고 한다. 오미크론으로 인한 환자가 많이 늘어난 이후 배 안의 상황이 걱정되었는데 다행히 육지에 비해 아주 나쁘진 않았던 것 같다. 의료진 중엔 감염된 사람이 없었다고 한다. 

피자를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중국에 대한 화제가 나왔다. 동양 문화에 대해 관심이 많은 Rob은 중국 역사와 상황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 중국인 가족들의 영향도 클 것이다. 최근 프랑크 디쾨터의 책을 읽으며 중국 현대사를 좀더 자세히 알게 되었다. 책에선 솜씨 좋은 독재자가 한 나라를 어떻게 망가뜨렸는지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는데, Rob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현대 중국인의 가치관과 생각의 뿌리는 이미 70년 전에 만들어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다음 주 화요일이 마지막 EIA 수업이 된다. 목요일에 Rob의 가족을 집에 초대해 저녁을 먹기로 했다.


1월 19일 수요일. 361일째 날. SDGE에 전기와 가스 서비스 해지를 신청했다. 1년 전 서비스 신청 후에 웹페이지 계정을 만들려 몇 번 시도했다가 실패한 후로 필요를 느끼지 않아 계정을 만들지 않은 상태로 두었다. 서비스 해지는 웹사이트를 통해 신청할 수 있지만 그러려면 우선 계정이 필요하다. 분명 서비스를 사용하고 있는데 이번에도 웹페이지에선 사용자 정보를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고객 센터에 전화를 걸어보니 대기 시간이 수십 분. 

웹 계정을 만드려면 우선 이름, 이메일 또는 전화번호 등의 사용자 정보를 입력해야 한다. 매달 날아오는 고지서엔 내 이름과 이메일이 제대로 적혀 있는데, 해당 정보를 웹페이지에 넣으면 없는 사용자라 나오니 영문을 모를 노릇이다. 고민을 하다 문득 내 이름의 뒷 글자가 middle name으로 등록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름 입력 란에 앞 글자만 넣었더니 그제야 사용자 정보를 찾았다는 메세지가 뜬다. 계정을 만들고 집을 떠나는 날로 해지 신청을 했다. 해지 신청일 아침 5시에 전기와 가스가 끊기게 된다.

그동안 미국에서 살면서 이름 때문에 사소한 성가심이 꽤 있었다. 일상에선 미국 이름을 만들어 쓰는 게 편하다. 한국 이름만 쓰는 경우 레스토랑이나 카페와 같이 대면 서비스가 필요한 경우 몇 번씩 이름을 말해야 하고, 그나마 그 이름도 틀릴 때가 대부분이다. 본명을 써야 하는 경우, 나와 같이 여권 영문명 두 글자 이름 사이에 한 칸을 뗀 경우엔 뒷 글자를 미들 네임으로 착각하는 일이 흔히 발생한다. 나와 아내는 여권 이름에 스페이스가 있고, 아이들은 없다. 미국에서 살아보니 처음 여권을 만들 때 이름에 빈 칸을 넣지 않았으면 좋았겠다 싶은 때가 많았다. 

아들은 오랜만에 스케이트 보드 수업에 다녀왔다. 지난 번 결제한 수업료에 이제 한 번의 수업이 남았으니 다음 주에 마지막 수업을 받으면 된다. 아들은 한국에 가서도 보드를 탈 거라고 하는데 과연 그렇게 할른지는 모르겠다. 

2022년 1월 18일 화요일

연수일기 186. 문라이트 비치 바베큐

1월 15일 토요일. 357일째 날. 귀국 짐을 정리하면서 중고로 팔 물건과 버릴 물건을 구분하고 있다. 대부분의 쓸만한 살림은 한꺼번에 넘기기로 했기 때문에 팔 수 있는 물건은 많지 않다. 아이들 책 몇 권과 서핑 수트 등 소소한 물품을 샌디에고 한인 게시판에 올렸고, 오늘은 그중 책 일부가 팔렸다. 게시판에 올라오는 물품 중 아이들 책은 항상 인기가 많다. 다음 주까지 다른 중고 물품을 다 처분할 계획이다.

출국 전날까지 운전을 하는 것으로 하고 이후 남은 기간에 대한 자동차 보험금을 환급 받았다. 1년 간의 보험금을 계산하니 185만원 정도였다. 비슷한 금액 차량에 대한 한국의 보험료를 생각하면 무지 비싼 가격인 건 분명하다. 

오후에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을 무심코 보기 시작했는데 재미도 있었고 의외로 생각할 거리도 많은 내용이었다. 결국 여섯 편 모두를 한꺼번에 정주행.


1월 16일 일요일. 358일째 날. 플로리다 바닷 바람을 배부르게 마시고 돌아와 일주일쯤 지나니 잊고있던 익숙한 캘리포니아 바다가 생각난다. 오후에 해변에 나가기로 했는데 바다만 보고 오기 심심하니 라면이라도 끓여 먹을까 생각하다 내친김에 고기까지 구워먹기로 의견을 모았다. 

문라이트 비치에는 바베큐 그릴과 피크닉 테이블은 물론 모닥불 터까지 있다. 이곳에 올 때마다 해가 질 때쯤 모닥불을 피우고 피크닉을 하는 이들을 보며 언젠가 한 번은 바베큐를 해보리라 생각했다. 한국의 캠핑장에서도 수없이 했었고 제주의 바다를 보며 고기를 굽기도 했지만 해변 모래사장은 처음이다. 

가는 길에 랄프스에 들러 차콜 한 봉지를 샀다. 해변에 도착해 아이들이 모래 놀이를 하는 동안 그릴에 불을 피웠다. 미국의 차콜을 사용해보는 건 처음이라 생각보다 불이 잘 붙지 않아 애를 좀 먹었지만 그럭저럭 적응이 되었다. 냉장고에 있던 돼지고기가 구이용 목살이 아닌 등심이어서 좀 아쉬웠다. 그래도 배가 고팠던 아이들은 고기가 구워지기 무섭게 입으로 가져간다. 

그릴에 올라간 고기가 몇 점 남지 않았을 때쯤 해가 지기 시작했다. 모닥불 터마다 불이 붙고 하늘도 붉게 물들었다. 오늘은 구름이 많은 편이었다. 구름이 저무는 햇볕을 반사해 마치 하늘에 붉은 쇳물이 흐르는 듯 보였다. 

문라이트 비치의 일몰

그동안 생각만 하고 실행에 옮기지 못했던 일을 꼽아 보았다. 아쉬움을 달래는 일종의 소소한 소망 목록이라 할 수도 있겠다. 오늘 한 가지를 실행했으니 남은 기간엔 이 목록을 하나하나 지워 나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1월 17일 월요일. 359일째 날. 마틴 루터 킹 데이로 휴일이다. 

S 선생 집에 딸을 데려다주러 갔다가 딸이 언니들과 시간을 보내는 동안 어른들끼리 브런치를 먹기로 했다. 가려고 했던 식당이 영업을 하지 않아 버드락 커피 옆에 있는 멕시코 음식점에서 타코와 엔칠라다를 주문했다. 샌디에고에 오래 산 S 선생 아내와 아이들에게 그동안 도움을 많이 받아서 늘 감사하는 마음이다. 출국 전 다음 주에 페어웰을 하기로 했다. 

주말 동안 몇 가지 중고 물품을 처분했고, 오늘은 아이들이 입었던 wetsuit를 중고 스포츠용품점에 팔았다. 

오후엔 미라마르 호수에 다녀왔다. 몇 번 왔던 곳이지만 이전엔 피크닉 장소 근처에서만 시간을 보냈었다. 오늘은 호수 주변 트레일 코스를 걸었다. 이것 역시 소망 목록 리스트 중 하나이다. 호수를 빙 둘러 차량이 다닐 수 있는 포장 도로가 있고 그 아래로 걷기 좋은 흙길도 있다. 샌디에고엔 좋은 트레일 코스가 많은데 이곳도 손에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걷다 심심하면 호수의 물고기도 구경하고

한 시간 남짓 걸었다. 1월 중순이 되면서 지난 달에 비해 체감 기온이 조금 높아졌다. 실제 기온은 겨울 내내 크게 달라지지 않지만,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온도엔 차이가 있다. 낮엔 걷고 산책하기 참 좋은 날씨다. 

저녁은 콘보이의 Katsu cafe에서 먹기로. 샌디에고에서 몇 안되는 맛집으로 추천할 수 있는 곳이다. 한국 짬뽕을 떠올리게 하는 얼큰한 국물의 스파이시 씨푸드 반자이 라면은 특별히 애정하는 메뉴. 

2022년 1월 15일 토요일

연수일기 185. 귀국 준비

1월 13일 목요일. 355일째 날. 귀국이 가까워오면서 이제 짐을 조금씩 싸기 시작한다. 창고에 넣어두었던 이민 가방을 일 년 만에 꺼내 펼쳤다. 집과 살림을 한꺼번에 넘기기로 해 귀국 준비가 좀 수월해졌지만 지금부터 준비는 해 나가야 할 것 같다. 

본래 자동차는 카맥스에 팔 계획이었지만 살림을 받을 분께서 자동차 구입 문의를 재차 하셔서 생각을 바꿔 자동차도 함께 넘기기로 했다. 중고차 가격이 많이 오른데다 시에나와 같은 미니밴은 물량 자체가 줄어서 새로 연수를 오는 분들이 차를 구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차를 사는 입장에서도 어느 정도 검증이 된 차량을 적절한 가격에 살 수 있다면 이득이 될 것이다. 그동안 자동차 가격과 거래 방법을 상의해왔고 오늘 절반을 계약금으로 받았다. 원화로 거래할 수 있다는 점도 양쪽 모두에게 이득이 된다. 

한국행 항공기 탑승을 위한 PCR 검사의 유효 기간이 3일에서 2일로 줄었다. 출국일이 월요일 아침이라 토요일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 무료 검사가 가능한 곳은 예약도 쉽지 않을 뿐 아니라 토요일 검사 후 일요일 밤까지 결과가 나오지 않을 가능성이 많다. 어쩔 수 없이 유료 검사를 받아야 할 것 같다. 


1월 14일 금요일. 356일째 날.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 공원을 막 뛰기 시작하는데 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딸이 배가 아파서 학교에 있기 어려울 것 같다고 했단다. 판데믹 이후 아이들이 조금만 컨디션이 안 좋아도 학교에선 아이를 집에 보낸다. 코로나 감염의 증상이 다양하므로 학교 입장에서도 어쩔 수 없는 조치일 것이다. 

집으로 온 딸은 이내 컨디션이 좋아졌다. 보건 담당 선생님은 호흡기 증상이나 열이 없어서인지 꼭 코로나 검사를 받을 필요는 없다고 말했다. 가능성이 낮지만 혹시라도 코로나 감염인 경우 반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감염이 될 수도 있음을 생각해 검사를 받아보기로 했다. 학생의 경우 학교와 연계된 검사소에서 무료로 쉽게 검사를 받을 수 있다는 점도 이유가 되었다. 여섯 시간 만에 음성 결과를 받았다. 딸은 미국에 온 이래 이런저런 이유로 벌써 검사가 네 번째이다. 앞으로 출국 전과 한국 도착 후에도 몇 차례 더 검사가 필요할 것이다.

오랜만에 금요 연구 미팅에 참석했다. 1월의 미팅은 다시 온라인으로 진행한다. 2월부터는 오프라인 미팅을 병행한다고 하지만 오프라인 미팅이 시작되기 전에 출국 일정이 잡혀 있으므로 연구팀 멤버를 다시 직접 만나긴 어렵게 되었다. 

Rob이 플로리다에서 샌디에고로 돌아왔다. 다음 주 화요일에 점심을 같이 하기로 했다. 반가운 얼굴을 볼 생각에 기쁘다. 

2022년 1월 11일 화요일

연수일기 183. 개학

1월 9일 일요일. 351일째 날. 어제 밤 늦게 샌디에고 공항에서 우버를 타고 집에 돌아왔다. 아침엔 늦잠을 잤다. 늦은 아침을 먹고 아내와 공원 산책을 했다. 

여행을 다녀와 맛있는 한식을 먹고 싶어 오후에 콘보이의 전주집을 갔는데 문이 닫혀 있었다. 구글 맵엔 일요일에도 영업을 하는 걸로 나왔는데 잘못되었나 보다. 대신 맞은편의 순두부집에서 식사했다. 이곳은 처음이다. 구글 평점이 괜찮아 기대를 했지만 순두부 맛은 보통, 함께 시킨 불고기와 돼지고기 양념 볶음은 간이 너무 세고 달았다. LA 코리아타운의 북창동 순두부보다 훨씬 못했다. 샌디에고에서 맛있는 식당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다. 

저녁엔 아이들과 스타워즈 에피소드 3를 보았다. 


1월 10일 월요일. 352일째 날. 딸의 초등학교 개학날이다. 중학교는 이틀 뒤인 수요일에 개학한다. 오빠는 늦잠을 자고 자기만 등교 준비를 하는 게 억울했는지 딸아이 입술이 비죽 나왔다. 

오늘부턴 아침에 아이를 학교 안 교실 앞까지 데려다 줄 수 있다. 그동안엔 판데믹 때문에 등하교 시간에 부모가 학교 교문 안으로 들어가지 못했던 것 같다. 오미크론 변이로 인해 상황이 다시 안좋아졌음에도 아이들 학교는 오히려 판데믹 이전 모습에 가까워지고 있다. 원격 수업으로 개학을 준비하는 일부 사립 학교도 있다고 하는데, 아이들 학교에선 원격 수업을 다시 도입하려는 움직임은 아직까진 보이지 않는다. 과거 원격 수업 기간 동안 겪었던 어려움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전엔 당연했던 일을 다시 가능하도록 만드는 것이 때로 너무나 오랜 시간이 필요함을 새삼 느끼고 있다. 

부모와 함께 등교하는 아이는 안쪽의 교문을 이용해야 한다. 수업 전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놀고 싶은 딸은 먼저 종종걸음을 친다. 아이 뒤를 따라 교문을 통과해 학교 건물을 오른쪽으로 빙 돌아 교실이 있는 뒤쪽으로 걸었다. 등교한 아이들은 수업 시작 전까지 교실 앞 공터와 놀이터에서 자유롭게 놀이를 한다. 

한국의 학교에선 보기 힘든 등교 풍경

오랜만에 공원을 뛰었다. 돌아와 아들과 코비드 검사 키트를 가지러 학교에 다녀왔다. 학교에선 학생 한 명당 두 개의 키트를 나누어 주고 오늘과 내일 검사하도록 했다. 두 번 다 음성이 나와야 수요일에 학교에 갈 수 있다. 검사를 하고 나서 아들의 부스터 접종을 위해 UCSD 내의 CVS에 다녀왔다. 오늘로 나와 아내, 아들은 3차 접종까지 끝마쳤다. 딸도 2차 접종을 지난 달에 했으니 이곳에서 남은 기간 동안, 그리고 한국에 돌아가서도 한동안은 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다.

두 줄이 나오지 않길 바란 건 처음

오후에 Y의 가족이 여행을 마치고 돌아왔다. 렌트카를 반납하고 함께 집으로 와 바베큐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각자의 여행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그랜드 캐년, 브라이스와 지온 캐년 이야기와 사진을 보니 예전 여행 생각이 났다. 겨울의 캐년은 어떤 모습일까. 그곳은 어느 계절에 가도 나름의 특색과 맛이 있을 것 같다. 언젠가 눈 쌓인 겨울에 서부 여행을 한번 더 해보고 싶다.

2022년 1월 9일 일요일

연수일기 182. 플로리다 여행: 비즈카야 뮤지엄 앤 가든

1월 8일 토요일. 350일째 날. 숙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마이애미와 플로리다 키 호텔들은 저렴한 숙박료에 아침도 포함된 곳이 많은데, 대부분 베이글이나 머핀, 식빵 등과 쥬스, 스낵, 과일 등을 곁들인 간단한 메뉴이다. 판데믹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토스트기에 데운 따뜻한 베이글과 커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오늘은 플로리다 키를 빠져나가 다시 마이애미로 간다. 저녁 6시 비행기라 공항에 가기 전, 비즈카야 뮤지엄과 할리우드 비치를 들러볼 예정이다. 

키 라르고를 벗어나기 전 기념품 샵에 들러 마그넷을 샀다. 이곳에 머문 것은 겨우 이틀인데도 섬을 벗어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플로리다의 바다는 캘리포니아의 그것과 다르다. 캘리포니아 바다를 생각하면 따가운 햇살아래 부서지는 파도, 그 위를 넘는 서퍼의 모습이 떠오른다. 플로리다는 노을이 지는 잔잔한 바다의 이미지다. 술로 비유하자면 캘리포니아는 맥주, 플로리다는 칵테일, 비치 보이스의 음악으로 비유하면 캘리포니아는 역시 Surfin’ USA, 플로리다는 Kokomo 겠지. Kokoma의 가사에 등장하는 지명 중 하나가 키 라르고이다. 

길 위에서 본 무지개

오전엔 비가 흩뿌렸다 말았다 하는 날씨다. 섬을 벗어나 육지로 접어들 무렵, 왼쪽 멀리 무지개가 보였다. 여행 마지막 날 플로리다를 떠나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듯 했다. 여기서부터만도 비즈카야 뮤지엄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뮤지엄은 코코넛 그로브 지역에 있는데, 이곳은 녹지가 많은 해안가 부촌으로 큰 저택과 세련된 상점이 많으며 해안 쪽으론 공원과 요트 정박지가 늘어서 있다. 길가에 늘어선 커다란 반얀 트리가 이곳이 열대 기후임을 말해준다. 양 옆으로 반얀트리가 우거져 마치 터널처럼 만들어진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아 보인다. 

하프가 있는 음악실

비즈카야 뮤지엄 앤 가든은 1916년에 지어진 건물로, 본래 제임스 디어링이라는 백만장자의 개인 별장이었다. 헤밍웨이의 집도 그렇지만, 이 건물도 결국 남의 집에 불과하다. 부자의 저택이었으니 크고 호화로울 것은 분명하지만, 그리 볼 만한 것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저택 안 곳곳을 돌아보는 동안 모래가 파도에 쓸려가듯 사라졌다. 중정을 가운데에 둔 2층 건물은 각각의 방과 주방, 식당, 거실 등이 아기자기하게 구성되었고, 모든 곳이 살던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백 년 전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듯 했다. 디어링의 침실과 손님 방엔 침대 뿐 아니라 침구도 갖추어져 있었다. 주방엔 다양한 크기의 구리 냄비들이 걸려 있었다. 에어비앤비의 백 년 전 버전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백 년이 되었지만 지금 당장 손님을 받아도 될 것 같았다. 

손님 용 방이 있는 탑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2층에 불과한 이 건물엔 승강기가 두 대 있다. 한 대는 사람용, 나머지 한 대는 1, 2층 주방 사이를 잇는 음식용 승강기이다. 음식용 승강기는 그렇다 쳐도 2층짜리 건물에 왜 굳이 승강기가 필요했을까 의아했는데 승강기 앞 안내문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집의 주인인 제임스 디어링은 악성 빈혈이 있어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2층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에 겨웠을 것이다. 그의 나이 57세에 이 빌라를 지었고 그로부터 9년 뒤 사망했으니 막상 그가 이 멋진 별장을 이용한 기간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테라스 정면에 보이는 Barge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는 동쪽 테라스였다. 테라스로 나오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앞은 바다인데, 정면으로 반쯤 가라앉은 돌로 된 배가 보였다. 배와 테라스를 잇는 길은 물에 잠겨 있었는데 썰물 때라 해도 길이 완전히 드러나진 않을 듯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Barge라고 불리는 이 배는 별장을 찾은 손님들과의 레저 공간이었고, 배와 테라스 사이는 곤돌라를 통해 왕복했다고 한다. 백만장자의 스케일이란. Barge의 왼쪽으론 보트 선착장이, 오른쪽으론 티 하우스가 있다. 티 하우스는 이전엔 차를 마시는 공간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인스타그램 용 사진을 찍는 장소로 쓰이는 것 같다. 

티 하우스

건물의 밖과 안 모든 것이 모던하면서도 우아하다. 이곳에선 '위대한 유산', '아이언 맨 3' 등의 영화 외에도 수많은 상업 영상이 촬영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찍는 이라면 누구나 이곳을 로케이션 장소로 점찍을 것이다. 잘 정돈된 정원도 빼놓을 수 없다. 메인 정원 옆으론 맹그로브 숲과 연결된 작은 미니 정원들이 있다. 비가 와서 미니 정원은 보지 못했지만 메인 정원만 봐도 왜 이곳의 명칭에 '가든'이 들어가는지 알 것 같았다. 

뮤지엄을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할리우드 비치로 이동했다. 점심은 할리우드 브루어리에서 먹기로. 바람이 세서 파란 하늘 아래 춤을 추는 야자수를 보며 식사를 했다. 이 정도 바람이라면 캘리포니아에선 파도가 높아져 서퍼들이 즐비하게 보일텐데, 여기 바다는 여전히 잔잔하다. 파란색 물감을 칠한 듯한 하늘에 알록달록한 패러글라이더들이 점점이 날고 있었다.

이제 공항으로 간다. 

2022년 1월 8일 토요일

연수일기 181. 플로리다 여행: 플로리다 키

1월 7일 금요일. 349일째 날. 오늘은 종일 플로리다 키에서 머물 예정이다. 숙소 근처의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로 점심 도시락을 준비했다. 샌디에고의 패스트푸드점 직원 중엔 멕시코인이 많다. 패스트푸드 브랜드에 따라 차이는 있는데 인앤아웃이나 스타벅스엔 백인도 제법 있지만 판다 익스프레스나 서브웨이엔 멕시코인이 대부분이다. 이곳 마이애미와 남부 플로리다의 패스트푸드점 직원은 브랜드에 상관 없이 쿠바를 비롯한 카리브해 주변 국가 출신 사람들과 흑인들이 대부분으로 보인다. 

키 라르고로 가는 길에 아이들과 놀 만한 비치를 찾았는데 근처의 파운더스 파크 비치 Founders Park Beach가 적당해 보였다. 야구장과 축구를 할 수 있는 잔디 운동장, 수영장, 테니스장, 야외 공연장이 있는 꽤 큰 공원이다. 캘리포니아의 공원과 비슷한 시설이지만 캘리포니아엔 스케이트 보드장과 펌프 트랙이, 이곳엔 물놀이 해변이 있다는 것이 다르다. 이슬라모라다 섬에 투숙을 하면 공원의 차량 입장료는 면제이다. 해변 피크닉 테이블에 짐을 펼치고 아이들과 바다로 뛰어들었다. 이곳 해변 역시 물이 맑고 얕아 물놀이 하기에 적당했다. 한 시간쯤 놀다 물 밖으로 나와 샌드위치를 먹고 욘 페네캠프 코랄 리프 주립 공원으로 출발했다. 

파운더스 파크 비치

이곳 공원에서는 카약과 카누, 보트 투어, 배 낚시, 스쿠버 다이빙, 스노클링 등을 할 수 있다. 우리는 미리 스노클링 투어를 예약해두었다. 필요한 장비는 이곳 렌탈 샵에서 모두 빌릴 수 있다.  미리 준비해 간 아이들의 wetsuite 외에 다른 장비를 빌렸다. 코로나 때문인지 튜브의 경우엔 렌탈은 어렵고 구입을 해야 한다. 배를 타고 삼십 분 가량 바다로 나가면 스노클링을 하기 좋은 산호 군락 Grecian Rocks 에 다다른다. 이곳에서 한시간 반 동안 스노클링을 한다. 

산호 군락 옆에 배를 세우자 사람들은 차례로 바다로 뛰어들었다. 파도가 심하진 않지만 배가 서있는 곳은 좀 깊은 곳이라 수면이 제법 일렁거린다. 먼 바다 스노클링이 처음인 아이들은 잔뜩 긴장을 했다. 먼저 아들을 데리고 물에 들어갔다. 사실 나보다 아들이 수영을 훨씬 잘 한다. 처음엔 물결에 몸이 흔들리고 마스크와 튜브가 익숙치 않아 조금 당황해하는 것 같더니 이내 적응이 되었는지 표정이 편안해졌다. 반면 딸은 생각보다 물이 깊고 파도가 있어 겁이 덜컥 났나 보다. 한참을 망설이다 물에 들어왔는데, 튜브로 바닷물이 들어오니 겁이 더 났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결국 아이를 다시 배로 올려 보냈다. 딸이 이런 스노클링을 하려면 조금 더 연습이 필요할 것 같다. 

물고기 관찰 중

산호 군락이 있는 곳은 깊이가 얕고 물결도 더 잔잔하다. 아들과 나란히 산호초 위를 헤엄쳤다. 모양도 색깔도 제각각인 수많은 열대 물고기들이 떼를 지어 눈 앞을 지나다닌다. 작은 물고기들이 많지만 바라쿠다와 같은 제법 큰 물고기도 보였다. 배 가까운 깊은 곳을 지날 때 신기하게 생긴 큰 물고기를 보았다. 눈이 튀어나오고 입술이 두꺼운 놈이었는데, 그게 그루퍼라는 물고기란 걸 나중에 알았다. 나는 먼 바다 스노클링 경험이 한두 번 있지만 아들은 생전 처음이다. 새로운 물고기가 지나갈 때마다 손짓을 하며 오리발을 재게 놀린다. 그렇지 않아도 물고기를 좋아하는 녀석이다. 마스크와 튜브 때문에 대화를 할 수 없고 표정도 볼 수 없지만 아이의 흥분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들은 한 시간 반 동안 줄곧 물에서 나오지 않았다. 배로 올라와서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하고 눈을 빛내며 수다를 떤다. 아빠, 그 물고기 봤어요? 바다에 들어가지 못하고 배에서 눈으로만 오빠의 움직임을 쫓던 딸은 못내 아쉬운 눈치이다. 오늘이 아들에겐 최고의 하루가 되었으리라. 바다에서 아들과 함께한 한 시간 반 만으로도 이번 여행을 위해 들인 시간과 노력이 아깝지 않았다. 

기슭으로 돌아와 몸을 씻고 공원 안 해변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쉬었다. 저녁은 근처 식당에서 생선과 새우 요리, 오징어 튀김 등을 먹었다. 관광지이지만 이곳 식당들은 전반적으로 맛이 괜찮고 가격도 (캘리포니아에 비해) 착하다. 

2022년 1월 7일 금요일

연수일기 180. 플로리다 여행: 키웨스트

1월 6일 목요일. 348일째 날. 오늘은 플로리다 키를 따라 키 웨스트까지 다녀오는 일정이다. 

1번 국도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다 보면 육지와 섬을 잇는 다리에 접어든다. 여기서부터 플로리다 남단에 길게 이어진 섬들을 연결해 주는 Overseas highway가 시작된다. 홈스테드(Homestead) 키웨스트(Key West) 잇는 128마일 도로로 미국 1 국도 가장 남쪽 구간이다

다리로 이어진 첫 번째 섬은 키 라르고. 이름처럼 이곳 섬들 중엔 큰 편이다. 내일 이 섬의 욘 페네캠프 주립 공원에 다시 올 예정이다. 몇 개의 섬과 다리를 지나친 뒤 Overseas heritage trail이라 이름 붙여진 길에 차를 잠시 세웠다. 다리의 오른쪽은 멕시코만, 왼쪽은 쿠바와 카리브해이다. 바다는 푸른색과 에메랄드색이 섞여 다채롭게 빛난다. 플로리다 키에는 지구 상에서 세 번째로 산호 군락이 많다고 한다. 물 아래 산호초의 분포에 따라 물 색깔이 달라진다.  

중간중간 섬엔 액티비티를 할 수 있는 곳이 많다. 다양한 해양 스포츠 외에 물고기 먹이 주기 같은 소소한 것도 있다. 아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조금 특별한 액티비티를 찾는다면 마라톤 섬에 있는 투르틀 병원에 멈춰도 좋겠다. 이 병원의 환자는 사람이 아니라 거북이다. 일반인과 관광객을 대상으로 한시간 반 길이의 유료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는데, 오리엔테이션 형식의 짧은 강의와 치료 중인 거북이를 관찰하고 먹이를 주는 시간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침 시간이 맞아 교육 프로그램에 참여해보기로 했다. 

1986년에 오픈한 이 병원은 지금까지 천오백마리 이상의 거북이를 치료하고 바다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강의를 들은 후 야외의 풀과 수조(병동과 병실에 해당한다)로 이동하는 길에 치료실과 수술실도 구경할 수 있었다. 갖추어진 장비가 사람 대상의 병원 못지 않았다. 야외 병동은 상태가 좋지 않은 거북이를 위한 개인 수조(중환자실과 1인실)와, 상태가 좋아진 거북이들이 좀더 자유로이 헤엄을 칠 수 있는 넓은 풀(일반 병동, 다인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풀에 있는 거북이들에겐 먹이를 줄 수 있었다. 

강의 듣는 중

먹이를 먹으러 모인 거북이들

이곳의 환자는 대개 플라스틱과 쓰레기를 먹고 장이 막히고 버린 밧줄에 걸려 부상을 입은 거북이들이다. 배의 프로펠러에 부딪히거나 알 수 없는 이유로 등껍질에 손상을 받고 변형이 생긴 거북이도 많은데, 손상을 받은 부위가 부풀어올라 bubble butt syndrome이라 불리는 이 질환이 생기면 물 속으로 잠수를 할 수 없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fibropapilloma가 거북이에게 흔하고, 종종 수술로 제거해주어야 한다는 것도 처음 알았다. 병원 홈페이지 링크에서 관련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https://www.turtlehospital.org/sea-turtle-injuries/

병원을 나와 다시 다음 섬으로 출발했다. 섬을 이어주는 다리는 모두 42개나 되는데 중에서는 '세븐 마일 브릿지(Seven Mile Bridge)' 가장 유명하다. 오리지널 철교는 1912년에 완공되었다. 1982년에 새 다리 개통 후엔 보행자를 위한 길과 낚시터로 쓰인다고 한다. 현재는 보수 중으로 올드 브릿지를 걸어서 건널 수는 없다. (물론 7마일을 걸어 건너는 사람도 없겠지만) 다리의 끝 부분인 리틀 덕 키에 주차를 하고 콘크리트로 덮인 다리의 끝 부분을 잠시 걸었다. 건너편의 베테랑 기념 공원 Veterans memorial park으로 건너가니 한적한 작은 해변이 있었다. 나무로 된 피크닉 테이블 몇 개와 간이 화장실이 시설의 전부였지만 물이 맑고 얕으며 잔 모래가 깔려 아이들과 놀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조용하고 한적한 해변을 원한다면 딱맞는 장소일 것이다. 물놀이도 가능했지만 오늘은 참기로. 바다에 발을 담그고 간식을 먹으며 여유를 즐겼다. 

천국같은 작은 해변

1시간 남짓 더 달리면 미국 최남단 섬인 키웨스트에 도착한다. 쿠바 음식을 파는 El Siboney restraurant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헤밍웨이 집으로 이동했다. 입장료는 성인 17불, 아이 7불로, 이유는 모르겠지만 현금으로만 받는다. 유명한 관광지라 해도 남이 살던 집에 큰 흥미는 없었는데, 집안 곳곳에 남겨진 헤밍웨이의 흔적과 이야기를 따라가는 재미가 쏠쏠했다. 헤밍웨이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 역시 집에는 큰 관심이 없었지만, 고양이를 좋아하는 딸은 집 안과 마당 곳곳을 돌아다니는 많은 고양이들 때문에 신이 났다. 아들에겐 헤밍웨이가 누군지와 그의 대표작이자 퓰리처상을 받은 '노인과 바다'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소설 전체에 걸쳐 등장인물은 노인 한 명이며, 그 노인이 청새치를 잡는 이야기가 소설의 전부라고 하니 아들은 어떻게 그 이야기로 책 한 권을 쓸 수 있냐고 한다. 한국에 돌아가면 책을 사주어야겠다. 

정원 구석의 고양이 cemetery

집과 정원 구석구석을 돌아보며 고양이와 놀다 보니 한 시간이 훌쩍 지났다. 집에서 나와 가까운 Southernmost Point에 들렀다. 미국 최남단이란 상징성 때문에 언제 가든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선다는 곳이다. 오늘도 마찬가지였다. 줄은 서지 않고 조형물을 배경으로 옆에서만 사진을 찍었다. 

오늘 숙소는 overseas highway 중간쯤에 있는 아일라모라다의 호텔이다. 여기까지만도 두 시간이 걸린다. 마이애미에서 키웨스트를 당일 치기로 다녀오는 이들이 많은데, 그렇게 하기엔 아깝다는 생각이 든다. 키웨스트 뿐 아니라 중간중간 섬들에 멋진 곳이 많다. 이곳 섬들이야 말로 남부 플로리다만의 여유와 자유로운 분위기를 느끼기에 제격인 것 같다. 유명 관광지 한두군데만 보고 급히 육지로 돌아가는 것보단 식당, 바, 거리에서 플로리다 키만의 분위기에 잠시 취해보아도 좋지 않을까. 그래서 플로리다 키스 브루잉 맥주를 곁들인 저녁 식사로 마무리. 바이브는 샌디에고보다 마이애미지만 맥주는 역시 샌디에고가 훨씬 낫다. 

2022년 1월 6일 목요일

연수일기 179. 플로리다 여행: 에버글레이즈 국립 공원- 보트 투어

1월 5일 수요일. 347일째 날. 오늘은 에버글레이즈 국립 공원에서 하루를 보내는 일정이다. 플로리다는 캘리포니아보다 세 시간이 빨라 아이들은 아직 아침에 잠을 깨기 힘들어한다. 숙소에서 체크 아웃을 하니 벌써 열 시가 넘었다. 근처 작은 레스토랑에서 아침을 먹었다. 에그 베네딕트와 오믈렛 맛이 괜찮았다. 

그제는 샤크 밸리 비지터 센터 쪽으로 들어가 공원의 북쪽을 구경했다. 오늘은 공원의 남쪽 길을 따라 끝까지 들어가는 코스이다. 마이애미 시내를 벗어나 남쪽으로 한 시간쯤 달리니 한적한 시골길이 나타난다. 처음 방문한 곳은 어니스트 F. 코 비지터 센터이다. 이곳은 국립 공원 게이트 바깥에 있어 입장료를 내지 않고도 방문할 수 있다. 에버글레이즈에서 방문했던 세 곳의 비지터 센터 중에서 가장 크고 내부 시설도 잘 되어 있다. 국립 공원의 특징에 대한 정보도 많은데, 첫날 샤크 밸리 투어 때 들었던, 엘리게이터와 크로커다일의 차이점도 정리되어 있었다. 비지터 센터 뒤엔 작은 연못이 있었다. 물이 맑아 안이 다 비쳐 보였다. 작은 물고기 몇 마리가 유유히 헤엄을 쳤다. 비지터 센터와 연결된 정자에서 연못을 바라보고 있으니 오늘 일정을 헤아리며 부산했던 마음이 잔잔해졌다. 

Alligator vs. Crocodile

투어가 예약된 세 시 전까진 플라밍고 비지터 센터에 도착해야 한다. 아무리 바빠도 국립 공원에 왔다면 트레일은 필수. 공원 게이트에서 삼십분 정도 거리에 있는 마호가니 해먹 트레일을 선택했다. 코스가 짧고 데크가 깔려 있어 아이들과 걷기에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았다. 천천히 걸어도 이십 분 정도면 충분한 거리였다. 전체 트레일 코스를 도는 동안 다른 사람을 서너 번 마주쳤을까. 사람보다 새가 더 많은 곳이다. 늪지 사이로 이어진 데크 길 주변엔 눈길을 사로잡을 만한 특별함은 없지만, 소박함과 고요함이 좋았다. 이번 에버글레이즈는 미국에서 방문한 열한 번째 국립 공원이다. 그동안 방문했던 열 곳의 국립 공원은 모두가 제각각 개성이 있었다. 이곳 역시 그랜드 캐년의 장대함이나 옐로 스톤의 다채로움 같은 건 없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밀림 속을 걷는 듯한, 데크가 깔린 트레일

두시 반쯤 플라밍고 비지터 센터에 도착했다. 남쪽으론 차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의 끝에 있는 센터이다. 식당, 롯지, 캠프장이 있고 남쪽 해안을 따라 이어진 긴 트레일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카누와 카약도 타기 좋은 곳이다. 우리는 오늘 보트 투어를 예약했다. 선착장에 딸린 작은 스토어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보트에 올랐다.

자그마한 보트는 생각보다 깔끔하고 세련되어 보였다. 탑승객은 우리 가족 넷을 포함해 여섯 명. 선장은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르고 긴 갈색 곱슬머리를 나풀거리는 백인 청년이었다. 선착장을 출발한 보트는 수로를 따라 북쪽으로 천천히 전진했다. 좁은 수로에서 카약을 탄 이들이 가까이 올 때마다 선장은 속도를 줄여 물결이 낮아지도록 배려한다. 수로 양쪽엔 맹그로브 숲이 빽빽히 이어져 있고, 목이 기다란 새들이 나무 위를 옮겨다니며 물고기를 사냥한다. 

맹그로브 숲이 우거진 수로를 따라

이틀 전 트램 투어 가이드는 두 시간 내내 한시도 입을 쉬지 않고 설명을 했는데, 이 보트 투어 가이드는 무척 과묵한 편이라 투어 내내 침묵을 지켰다. 간간이 새들과 악어, 나무에 대해 짧은 설명을 해주었다. 맹그로브 나무가 자라는 습지는 민물 반, 바닷물 반인 곳이라 염분이 많다. 맹그로브는 염분이 많은 물에서도 잘 사는데 뿌리로 빨아들인 염분 대부분은 잎을 통해 배출한다고 한다. 그래서 잎 뒷면에 소금 결정이 맺힌 걸 볼 수도 있다고. 염분을 품은 오래된 잎은 노랗게 변색되어 떨어지고, 덕분에 남은 잎과 줄기가 건강하게 자랄 수 있도록 한다. 그래서 이런 잎들을 'sacrificial leaves'라고 한다.

수로를 지나 쿳 만, 다시 수로를 지나 화이트 워터 만으로 나가니 사방이 탁 트여 이곳이 호수인지 바다인지 헷갈린다. 습지와 바다가 섞인 곳이지만 이곳은 바다에 가까울 것이다. 카누들은 이곳까지 멀리 나오진 않는다. 장애물이 없는 곳에서 보트는 바다 위를 시원하게 달린다. 바람을 좋아하는 아들은 연신 싱글벙글.

저녁 식사는 플로리다 시티 숙소 근처의 타이 음식점. 지금까지 가본 어느 타이 음식점보다 맛이 형편없는 식당을 이곳에서 만났다. 호텔에 가기 전 플로리다 케이스 아울렛을 들렀다. 규모가 작고 상품도 빈약해 오래 머물지 않고 나왔다. 아이들 운동화라도 살까 하는 생각이었는데 나이키 스토어의 운동화 종류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가짓수도 적고 디자인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2022년 1월 5일 수요일

연수일기 178. 플로리다 여행: 마이애미

1월 4일 화요일. 346일째 날. 느지막이 일어나 컵밥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호텔을 나섰다. 마이애미에서 가장 먼저 가야 할 곳은 역시 해변 아닐까. 그래서 오전엔 사우스 비치와 아르데코 거리를 돌아보기로 했다. 

이 구역의 명칭은 Art Deco Historic District이다. 1900년대 초반 서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건축 양식으로 밝은 파스텔 톤의 색이 특징이다. 마이애미에는 800여 개의 아르데코 스타일 건물이 있는데 대부분 1920-40년 사이에 지어진 것이라 한다. 노랑, 하늘, 분홍, 연두, 보라. 흰색을 배경으로 창틀이나 간판, 지붕 등에 쓰인 파스텔 색깔이 강렬한 한낮의 햇살과 어우러져 거리 전체를 밝게 만든다. 삼사 층 높이의 아담한 건물들은 대부분 레스토랑이나 호텔로, 하나하나는 평범하고 특색이 없어 보이지만 수십 개의 비슷한 건물이 모이니 개성 가득한 거리가 되었다. 아르데코 건물들과 사우스 비치 사잇길은 차가 다니지 않도록 해두어 자전거를 타거나 걸으며 햇살과 바닷바람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다. 

끝이 안보일 정도로 길게 이어진 백사장은 고운 모래로 되어 걷거나 일광욕을 즐기기에 좋았다. 유명 해수욕장에서 볼 수 있는 파라솔과 비치 의자들이 줄을 서 있었다.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모래사장에 철퍼덕 앉았다. 아이들은 금새 모래놀이를 시작. 캘리포니아 해변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무엇보다 다른 건 바다 모습이었다. 파도는 얕고 색은 에메랄드 빛으로 투명하다. 서핑을 즐기긴 어렵겠지만 물놀이를 하기엔 훨씬 더 좋다. 제주의 김녕이나 금능 바다를 떠올리게 하는 곳이었다.

에메랄드 빛 바다

마이애미 로컬 커피숍인 Panther coffee의 아메리카노(커피숍이 있는 호텔 건물도 아르데코 스타일. 커피는 자연스레 아이스로 주문했다)를 홀짝이며 베이 프론트 공원으로 이동했다. 바다를 바라보는 공원 한켠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동상이 있었다. 미국인이 자랑스럽게 여겨온 탐험가이지만 원주민을 학살한 행위로 근래엔 그에 대한 평가가 부정적으로 바뀌고 있다. 캘리포니아를 포함해 콜럼버스 데이를 공휴일에서 제외한 주도 있다. 그와 관련된 기념물을 없애려는 움직임도 많은데 이곳 베이프론트 공원의 동상도 올 여름 붉은 색 스프레이 칠을 당했다가 복원되었다고 한다. 

여기서부터 마이애미 강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는 길인 리버 워크가 시작된다. 고층 건물과 고급 레스토랑이 많아 보였다. 우리는 반대편인 베이사이드 마켓 플레이스를 향해 걸었다. 아이들과 점심을 먹기엔 더 적당할 것 같았다. 쇼핑몰엔 식당과 바가 모여있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마이애미 바닷가에서 토마토 소스 스파게티라니. 그래도 아이들 입맛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 마이애미에선 세계 모든 대륙의 음식을 먹을 수 있으니 한끼쯤 이탈리아 레스토랑에서 먹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요트들이 정박한 부두를 바라보며 주문한 음식을 기다리던 중, 아이들이 바닷물에서 흐느적거리는 동물을 발견했다. 처음엔 거북이인 줄 알았지만 아들이 찍은 동영상을 보니 전혀 다른 동물이었다. 군소와 비슷한 생김새인데 날개를 펄럭이며 우아하게, 물 속을 날듯이 헤엄쳤다. 생전 처음 보는 동물이었다. 구글 검색을 해보고 이 동물이 Aplysia fasciata라는 걸 알았다. 대서양 바다에서만 볼 수 있다고 한다.

점심을 먹고 윈우드 지역으로 이동했다. 벽화와 그래피티가 많기로 유명하고, 최근 마이애미에서 가장 힙한 동네라고 한다. 듣던 대로 관광객이 많았다. 하나같이 사진을 찍느라 정신이 없다. 사진들 일부는 인스타그램에 바로 올라갈 것이다. 그래피티 작품 전시 공간인 윈우드 월스는 오늘 문을 닫아서 들어가볼 수 없었지만, 전시장을 둘러싸고 두세 개 블럭이 그래피티로 가득해서 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거리 예술이 주는 독특한 느낌을 흠씬 느낄 수 있었다. 

동네 벽화 클라스

오늘의 마지막 행선지는 리틀 하바나. 쿠바 출신 이민자들의 동네이다. 샌디에고에도 리틀 이태리가 있지만 나라 이름 앞에 리틀이란 단어를 붙여 만든 동네 치고 볼 만한 곳은 별로 없다. 대개 그 나라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과 카페 몇 개를 모아놓은 것이 전부이며 그 나라 사람보단 관광객만 북적거리는 국적 불명의 공간이 되기 마련이다. 허나 이곳은 쿠바보다 더 쿠바같은 동네라고 하는데, 쿠바를 가서 직접 보고 비교할 수 없으니 그 말이 맞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곳에 쿠바와 그 주변 국가 출신의 사람들이 많은 것 같긴 하다. 

작은 식당과 카페, 바, 극장이 늘어선 거리는 이국적인 느낌으로 가득하다. 중간중간 쿠바산 시가를 파는 가게도 있었다. 플로리다 헤리티지 표식이 있는 도미노 공원 안에선 사각 테이블에 마주 앉아 체스와 도미노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어르신들이 많았다. 공원 바로 옆에 영화에서 막 튀어나온 듯 멋스런 인테리어의 레스토랑이 있었는데, 아이들과 함께가 아니었다면 망설이지 않고 바로 빈 테이블에 앉았을 것이다. 

Old's Havana Cuban Bar & Cocina

대신 가까운 커피숍에서 아내와 쿠바 커피를 한 잔씩 하는 걸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 아내와 나는 주인이 추천한 커피를, 아이들은 파인애플과 망고 주스를 선택했다. 처음 마셔본 쿠바식 커피는 쓰고 부드럽고 달았다. 믹스 커피보다 설탕이 더 많이 들어간 듯 입 안에 텁텁한 뒷맛이 많이 남아서 입맛에 썩 맞진 않았다. 아내는 나보다 약한 커피를 시켰는데도 밤에 잠을 못잘 것 같다며 절반을 남겼다. 카페인에 둔감한 나는 더블샷을 선택했는데 커피 자체가 보통의 에스프레소보다 더 진한 것 같았다.(아니나다를까, 결국 이날 밤 생전 처음으로 커피로 인한 불면을 경험했다.)

저녁으론 쿠바 식당인 El Mago De Las Fritas에서 Frita를 사서 호텔로 들어가기로 했다. 쿠바식 햄버거로 패티와 함께 잘게 채를 썬 감자튀김이 들어간 게 특징적이다. 아주 작고 소박한 가게였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좋아했던 맛집이라고 하는데, 식당 벽에 그와 식당 주인이 함께 찍은 사진이 걸려 있었다. 

2022년 1월 4일 화요일

연수일기 177. 플로리다 여행: 에버글레이즈 국립 공원- 샤크 밸리 트램 투어

1월 3일 월요일. 345일째 날. 밤 10시에 출발한 비행기는 네시간 반 만에 마이애미 포트로더데일 공항에 도착했다. 캘리포니아 시간으론 한밤중인 2시 반, 플로리다 시간으론 5시 반이다. 깜박잠을 두시간이나 잤을까? 착륙을 알리는 방송이 들렸다. 렌트카를 받아 공항을 나서서 호텔로 가는 동안 동이 텄다. 올해 들어 새벽에 뜨는 해를 처음 보는 순간이 마이애미의 도로 한가운데가 될 줄은 몰랐다. 

얼리 체크인 옵션이 있는 호텔을 골랐지만 당일 상황이 안되면 어쩌나 걱정했다. 잠을 제대로 못 잔데다 새벽에 도착해 아이들이 너무 힘들 것 같았다. 어제 밤 공항에서 출발 전에 호텔에 문의했고 아침에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답을 들었다. 전날 확인한 게 다행이었다. 호텔에 도착했을 때 처음엔 체크인이 안된다고 했지만 어제 미리 확인을 한 덕분인지 예약자 이름 확인 후엔 가능하다고 했다. 졸음으로 멍한 상태였기에 데스크 직원의 말이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짐을 풀자마자 침대에 쓰러져 세 시간을 죽은듯이 잤다. 억지로 몸을 일으킨 뒤 아이들도 힘들게 깨워 호텔을 나섰다. 가까운 서브웨이에서 샌드위치를 사서 에버글레이즈 국립 공원으로 향했다. 

예약한 샤크밸리 트램 투어는 오후 두시였다. 이십 분 전에 국립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샤크밸리 비지터 센터는 입구 바로 안쪽에 있다. 그런데 비지터 센터 주차장이 만차라 입구의 차들이 들어가지 못하고 자리가 나길 기다리고 있었다. 나중에 보니 이곳 비지터 센터엔 주차 슬롯이 많지 않았다. 차례를 기다리다간 투어 시작 시간에 맞추지 못할 것 같았다. 차를 돌려 공원으로 들어오기 전 큰길까지 나가 길 옆 풀숲에 차를 세웠다. 게이트에서 비지터 센터까지 거리가 멀지 않은 게 다행이었다. 비지터 센터까지 뛰다시피 해 투어 시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그래서 국립 공원 게이트를 걸어서 통과하는 색다른 경험도 하게 되었다. 

게이트를 걸어 나오면서 사진도 여유 있게 찍었다.

가이드의 사전 설명 후 트램에 올랐다. 샤크밸리 트램 투어는 국립 공원의 관광 프로그램이다. 그래서인지 투어는 길을 따라 전망탑까지 갔다가 되돌아오는, 조금은 심심한 코스로 구성되어 있다. 서행하는 트램 버스에서 주변의 풍경과 동물(주로 새와 악어)들을 볼 뿐이다. 그래도 국립 공원의 역사와 동물들에 대한 가이드의 설명이 있어 지루하지 않았다. Heron과 egret, stork, 그리고 앨리게이터와 크로커다일이 어떻게 다른지 알게 되었다. 전망탑에선 이 구역에 딱 한 마리 있다는 크로커다일도 만날 수 있었다. 

투어 전 가이드 설명

두 시간의 투어가 끝나고 비지터 센터에서 스탬프를 찍고 공원을 나왔다. 트램 앞자리의 나이 지긋한 할아버지가 앨리게이터를 많이 볼 수 있는 곳이라 알려준 오아시스 비지터 센터에 들러보기로 했다. 비지터 센터는 문을 닫을 시간이었지만, 들었던 것처럼 센터 앞 수로에서 악어들을 볼 수 있었다. 야생 악어를 본 것도, 이렇게 많은 악어들을 한 자리에서 본 것도 오늘이 처음이었다. 

악어가 가득한 수로

오늘은 트램 투어 외에 다른 일정이 없었음에도 돌아갈 때는 눈꺼풀이 무거웠다. 아이들도 차 안에서 곯아떨어졌다. 간단히 장을 보고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저녁을 사 호텔로 돌아왔다. 

2022년 1월 3일 월요일

연수일기 176. 플로리다 여행: 출발

1월 2일 일요일. 344일째 날. 며칠 동안 집에 머물렀던 손님들은 아침 일찍 세도나로 여행을 떠났다. 우리도 오늘 마이애미행 비행기를 탄다. 그동안 국내선 비행기를 타야하는 여행에선 LA 공항을 이용했지만 이번엔 샌디에고 공항에서 출발하는 일정이다. 최근 covid-19 환자 폭증으로 인한 승무원 부족과 악천후로 취소되는 항공편이 많다고 해 조금은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 예약한 항공편은 제시간에 출발하는 걸 확인했다. 

오늘 공항까지는 우버를 이용해 가기로 했다. 공항 주차장의 요금은 하루 30불이 넘는다. LA 까지라면 우버 비용도 만만치 않지만 샌디에고 공항이라면 50불 정도에 갈 수 있다. 저녁 비행기라 드라이버를 연결하는 데에도 어려움은 없을 것이다. 

저녁 비행기이고 공항까진 20분이면 갈 수 있으므로 천천히 짐을 싸고 집에서 쉬다 출발할 수 있었다. 샌디에고에 살지만 공항 터미널은 처음이다. 터미널 규모는 아주 작았다. 그래도 LA 공항보다 깔끔하고 번잡스러움도 덜했다. 

미국 전역에 걸쳐 코로나 환자가 폭증했고, 그중에서도 플로리다는 상황이 안좋은 편이라 떠나기 전까지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사람이 많은 곳은 되도록 피하고 최대한 조심해가며 여행하려고 한다. 샌디에고 시간으로 한밤중에 도착하는 일정이라 아이들이 너무 힘들 것 같았는데 다행히 내일 묵을 호텔에서 아침에 얼리 체크인이 가능하다고 한다. 오전엔 호텔에서 잠을 좀더 자고 점심 이후에 일정을 시작하려 한다.

2022년 1월 2일 일요일

연수일기 175. 연말 그리고 새해

12월 29일 수요일. 340일째 날. 한국으로부터 긴 비행 후 어제 유니버셜 스튜디오까지 다녀온 Y의 가족은 늦잠을 잤다.

라호야 코브의 더 메드에서 점심을 먹었다. 라 발렌시아 호텔 레스토랑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뷰가 좋은 곳이다. 월요일부터 내내 날씨가 흐리고 간간이 비도 흩뿌려서 테라스 자리에 앉을 수 없었다.

식사 후 부머 비치에서 물개와 바다사자를 보았다. 몇 번을 와서 봐도 신기하고 재밌는 광경인데, 오늘은 특히 물개와 바다사자가 많았다. 대충 헤아려도 이백 마리 가까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서울에서 온 아이들은 신이 나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다.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고 Y 딸의 아이폰을 사러 베스트바이에 들렀다가 언락 폰을 팔지 않는다고 해 허탕을 쳤다. 올 초에 아들의 언락 아이폰은 베스트바이 매장에서 샀는데 그사이 상황이 바뀌었나 보다. 결국 UTC 몰의 애플스토어에서 구입했다. 

해외 입국자에 대한 자가격리 면제 제외가 몇 주 전 전체 국가로 확대되었었는데, 이후로 4주를 더 연장하는 방침이 오늘 발표되었다. 2월 3일 입국자까지 해당되며, 백신 접종 여부와 상관없이 열흘 동안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2월 1일 한국에 도착하는 우리 가족도 꼼짝없이 자가격리를 하게 되었다. 귀국 후 계획을 다 바꿔야할 것 같다.


12월 30일 목요일. 341일째 날. 오전엔 Y의 가족과 씨월드를 방문했다. 두 번째임에도 돌고래, 오르카, 바다사자 쇼는 신기하고 재미있다. 

오후엔 다운타운의 투나 하버 공원에서 키스 동상을 보고 씨포트 빌리지까지 걸었다. 오늘도 날씨가 썩 좋지 않았지만 해질 무렵이 되자 하늘이 예쁘게 물들었다. 캘리포니아 바다의 낙조를 처음 본 Y의 가족들은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저녁엔 집에서 바베큐. 바베큐장에서 고기를 굽는 것도 실력이 나날이 느는데, 그래서 가장 맛있는 고기는 항상 오늘 구운 고기이다. 코스트코 소고기와 와인을 곁들인 근사한 저녁 후 아이들은 수영장으로 직행했다. 어제 저녁에도 수영장에서 한참을 놀았는데, 아이들은 우리 집에 있는 동안 매일 수영장에 갈 기세이다. 항상 따끈하게 몸을 뎁힐 수 있는 자쿠지가 있어 쌀쌀한 날씨에도 수영을 못할 정도는 아니다. 


12월 31일 금요일. 342일째 날. 아침을 먹고 Y 부부와 버드락 카페에 다녀왔다. 오랜만에 파랗게 개인 하늘이 좋았다.

오후엔 인앤아웃에서 점심을 먹고 샌디에고 주 사파리를 방문. 애뉴얼 패스 혜택인 50퍼센트 할인 티켓 네 장을 Y의 가족을 위해 알뜰하게 썼다. 지난 3월에 가보지 못한 사파리 구역부터 보기로 했다. 아프리카 트램을 타고 사파리 구역을 한 바퀴 돌게 된다. 생각보다 면적이 넓었다. 하지만 쌀쌀한 날씨 탓인지 아프리카 초원의 느낌은 나지 않았다. 다른 동물원 구역에도 동물을 많이 볼 수 없었다. 딸은 지난 번에 보지 못했던 오리너구리를 보고싶어 했는데, 이번엔 안에 들어갈 수는 있었지만 오리너구리가 굴 속에 숨었는지 보이질 않았다.  

한국은 벌써 새해가 되었다. 가족 어른들께 새해 인사를 보내고 영상 통화를 했다. 감사를 드려야 할 지인들에게도 인사를 보냈다. 집으로 돌아와 오늘을 위해 아껴두었던 샴페인을 꺼냈다. 올해가 시작될 때는 한해를 온전히 바이러스와 함께 보내게 될 줄은 몰랐다. 모두가 아직도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지만, 그래도 올해의 마지막 날을 아끼는 사람들과 보낼 수 있어 다행이다. 


1월 1일 토요일. 343일째 날. 샌디에고에도 솔레다드 산과 같은 일출을 볼 수 있는 곳이 있다지만, 새벽부터 부지런을 떨 정도로 새해 첫 해에 의미를 두진 않는다. 그래도 산과 바다를 보기에 새해 첫 날만큼 어울리는 날이 또 있을까.

오전 느지막히 토리 파인즈 트레일을 찾았다. 연초에 오고 십개월만이다. 샌디에고에서 가장 아름다운 트레일 코스가 아닐까. 아내가 샌디에고를 떠나기 전 꼭 한 번 다시 와보고 싶어했는데 그럴 수 있어 다행이다. 산보다는 언덕에 가깝지만, 주말에 새해 첫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많았다. 

햇살은 따스하고 바람은 선선해 걷기엔 딱 좋은 날씨였다. 비치 트레일을 따라 해변의 플랫락까지 내려와  바위에 올랐다. 지난 번에 왔을 땐 해변으로 내려가는 길이 막혀있어 트레일 코스로 돌아가야 했었다. 이번엔 해변을 따라 주차장까지 걸었다. 

이곳은 샌디에고의 많은 해변 중 맨 처음으로 왔던 곳이다. 도착 후 나흘째였다. 몽돌 해변에 쓸리는 파도 소리와 선선한 바닷 바람이 첫 며칠 동안 지친 몸과 마음의 긴장을 풀어주는 것 같았다. 파도 소리와 바람은 그대로이다. 모래 위에 군데군데 조약돌로 만든, 새해를 뜻하는 숫자 2022가 보였다. 우리 가족 뿐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참으로 다사다난한 한 해였다. 올해는 모두가 조금 더 평안을 느낄 수 있길.

델 마르 플라자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집에 돌아와 잠시 쉬었다가 Y 부부의 렌트카를 받기 위해 공항 렌트카 센터에 다녀왔다. 새해 첫 날 휴일이라 그런지 공항 외의 렌트카 사무실은 운영을 하지 않는다. 

내일 Y 가족은 세도나를 거쳐 그랜드 캐년으로, 우리는 마이애미로 여행을 떠난다. 며칠 동안 밤늦게까지 수다를 떨었지만 오늘은 여행을 앞두고 조금 일찍  자리를 정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