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3일 토요일. 294일째 날. 아침 일찍 LA 공항으로 향했다. B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서다. 우리 부부와 가장 가까워 판데믹 전엔 캠핑도 함께 자주 가고 매년 한두 번씩은 이이들 없이 함께 여행을 다녔었다. B는 다섯 해 전에 샌디에고에 연수를 와서 일년을 살았다. 이번에 와선 이전에 살던 동네와 즐겨 가던 곳들을 둘러볼 예정이란다.
LA 공항 로비가 이젠 익숙하다. 국제선 도착 출구는 여전히 한산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금새 보였다. 직접 얼굴을 본 건 작년 12월이 마지막이니 거의 일 년 만이지만 마치 지난 주에 만난 듯 그간의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래되어 편안한 관계라 그럴 것이다. 오늘은 이들과 함께 헌팅턴 라이브러리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을 거쳐 집으로 갈 예정이다.
먼저 헌팅턴 라이브러리로 향했다. LA 동쪽의 패서디나에 위치한 이곳은 희귀 고서적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곳으로, 1919년 철도와 부동산 재벌이었던 헨리 E. 헌팅턴과 아라벨라 헌팅턴 부부가 설립했다. 뉴욕의 휘트니 뮤지엄(1930)과 구겐하임 뮤지엄(1937)보다도 먼저 지어졌으며 개인 콜렉션으로 설립된 문화예술교육기관으로는 미 전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이곳엔 1455년 제작된 구텐베르크의 《성경》 초판본과 1623년 만든 셰익스피어의 《희극, 사극, 비극》 초판본, 프랭클린의 자필서 등이 전시되어 있고, 가장 인기가 많은 헌팅턴 갤러리Huntington Art Gallery는 유럽의 15~20세기 작품 1,2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헌팅턴 아트 갤러리 |
하지만 아쉽게도 판데믹으로 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갤러리의 일부만 운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헌팅턴 갤러리의 상징 작품 중 하나인 Blue boy를 비롯해 몇몇 작품들을 감상한 뒤 로즈 가든과 데저트 가든을 산책했다. 정원의 규모가 무척 커서 다 돌아보는데엔 몇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중국 정원과 일본 정원도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시간 여유가 없어 들어가보진 못했다.
인앤아웃에서 점심을 먹고 조슈아 트리로 향했다. B 부부도 예전에 조슈아 트리에 와 봤지만 그때는 낮에만 잠깐 들렀다고 한다. 오늘은 키스 뷰에서 일몰을 볼 예정이라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입구의 보틀샵에 들렀다가 키스 뷰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노을을 보고 키스 뷰를 내려와 공원 남쪽의 코튼우드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 한 시간 남짓 거리이다. 수세식 화장실이 갖춰진 몇 안되는 캠핑장 중 하나로, 미리 예약이 필요하다.
캠핑장으로 가는 길에 주위는 완전히 깜깜해졌다. 예약한 사이트에는 청년 하나가 모닥불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비어있는 걸 보고 아마 예약이 안된 사이트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모닥불을 피우고 자리를 잡은지 얼마 안된 듯 했는데 자리를 뜨게 되었으니 좀 미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장작에 불을 붙이는 수고를 피할 수 있었다.
키스 뷰에서 보는 하늘 |
라면을 끓이고 준비해간 고구마도 모닥불에 넣었다. 배를 채우고 비치 의자와 돗자리에 앉아 하늘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두 달 전엔 그믐이었지만 오늘은 달이 떠서 그때처럼 별이 쏟아질듯 보이진 않았다. 막 긴 비행을 한 이들에겐 조금은 무리한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의 밤하늘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했다. 하룻밤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국립공원 캠핑장을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캠핑장은 널찍했고 관리 상태도 좋았다. 사이트마다 피크닉 테이블과 화롯대가 있어 편했다. 전기를 쓸 수 없지만 이건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캠핑장의 시간은 언제나 빨리 흐른다. 열 시쯤 되어 철수할 준비를 하는데 별똥별이 배웅을 해주었다. 돌아오는 길엔 B 부부도, 우리 아이들도 떡실신. 이렇게 이틀처럼 보낸 하루가 간다.
11월 14일 일요일. 295일째 날. 오전엔 집에서 쉬다 오후엔 One Paceo 몰을 구경하고 커피를 마셨다. 이 몰은 B가 살던 때엔 없었던 곳이다. B가 살던 라호야 근처는 5년 전과 비교해 아주 큰 변화는 없지만 카멜 밸리 근처는 많이 변했을 것이다. 솔라나 비치에 들렀다가 피자 포트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 오면서 꼭 다시 들러보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라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났던가 보다.
11월 15일 월요일. 296일째 날. B와 UCSD 근처의 렌트카 사무실에 들러 예약한 차를 받았다. 아내는 English chatting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분이 보스턴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잠시 얼굴을 보기로 했다. B의 아내 역시 5년 전에 가깝게 지냈던 분이라 함께 만나게 되었다. 오늘 샌디에고에서 이 세 사람이 함께 모이게 될 거라곤 그들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B 가족이 자주 갔다는 UCSD 근처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B 부부는 이전에 살던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저녁 역시 이들이 가고싶어했던 발라스트 포인트 브루어리에서.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