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5일 목요일. 306일째 날. 추수감사절이다. 체크 아웃 전에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오늘 아침엔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다. 메이시스 퍼레이드 때문인지 일찍부터 호텔 앞 웨스트 48번가는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통제를 한 상태다. 가까이 문을 연 빵집에서 아침 거리를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11시에 체크 아웃을 하고 호텔 앞에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뒤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미리 왕복 예약해 둔 한인 택시였는데, 이어서 예약한 손님이 있었는지 기사님이 운전을 험하게 한다. 아들은 원래 멀미가 심한 편인데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초죽음이 된 상태였다.
마지막 날 아침 호텔 방에서 |
돌아가는 항공편 역시 제트 블루이다. 13시55분 출발, LA 도착은 17시11분. 동부가 세 시간이 빠르니 돌아갈 때는 세 시간을 버는 셈이다. 동부를 다녀 오는 건 해외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더니, 시간대도 그렇고 날씨도 그렇고 그 말이 맞다.
여섯 시간 비행 후 제 시간에 LA 공항에 도착했다. 뉴욕에서 내내 입었던 겨울 점퍼는 가방 속으로 쑤셔 넣었다. 이제 미국을 떠날 때까지 입을 일이 없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이들도 나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네비게이션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했다. 저녁 메뉴는 집에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기로. 돌아오는 길에 알라딘과 디즈니 뮤지컬 음악을 들었다.
뉴욕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 가족 중 가장 기대를 했던 이는 아내였다. 여행 시기는 아내가 결정한 대로 정했다. 보통 대부분의 계획을 내가 세우는 편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항공편과 호텔, 뮤지컬 티켓을 예약했을 뿐 그외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선 출발 일주일 전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신 아내가 방문할 곳들을 정하고 할인 패스도 주문했다. 전망대는 이곳이 더 낫대. 스테이크 하우스는 여기로 예약하는 게 좋겠다. 항상 아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내 시큰둥한 반응 때문에 출발 며칠 전엔 조금 다투기도 했다. 다시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는 결혼 전에 뉴욕에서 십 개월을 살았다. 종종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십 수년 전에 살던 도시를 다시 가는 기분은 남달랐을 것이다. 더군다나 뉴욕 아닌가. 라스베가스나 LA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이지만 아내는 여러 번 이야기했다. "뉴욕은 달라."
다르긴 달랐다. 백년은 되었음직한 붉은 벽돌색 아파트, 건물 외벽 낡은 철제 비상 계단, 사람들의 옷차림, 거리를 부유하는 각종 소음들. 쌀쌀한 날씨도, 코끝을 시리게 하는 차가운 공기도 오랜만이니 좋았다. 샌디에고에서 느끼지 못하는 늦가을의 정취도 그랬다. 붉게 물든 단풍 아래 길 위에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고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폭신함만큼 마음도 말랑말랑해졌다. (사실 그래서 서울 생각도 많이 났다.) 그래도 그저 처음 와 본 도시이니 새로워 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도시가 진정 특별하게 느껴진 순간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널 때였던 것 같다. 다리 입구 주변을 무질서하게 둘러싼 건물들을 벗어나 보행교 중앙에 깔린 나무 데크에 발을 들여놓자 무언가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쇠 난간 아래로 맨해튼을 향해 질주하는 차들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거대한 아치형 주탑 꼭대기에서 거미줄처럼 뻗어나온 철근 케이블 아래에 접어들었을 때, 문득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막상 예전에 살던 동네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일주일 내내 아내는 행복해 했다. 아내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뒤늦게 처음 방문한 이 도시를 즐겼다. 여섯 밤을 오롯이 맨해튼에서 머물기를 잘한 것 같다. 언젠가 또 올 수 있겠지. 그렇게 되었음 한다. 그땐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적당한 흥분과 기대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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