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7일 일요일. 288일째 날. 이곳에서 Daylight Saving Time (DST)라 부르는 썸머 타임이 끝나는 날이다. 지난 3월과는 반대로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늦춰야 한다. 당시에 기록했던 DST 제도에 대한 글을 다시 읽었다.
https://fmdoctor.blogspot.com/2021/03/31-daylight-saving-time.html
DST를 시작할 때는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되는 시기라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막상 시간대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변화를 톡톡히 느끼고 있다. 해 지는 시간이 한 시간 빨라지면서 오후 다섯 시에 해가 지고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깜깜한 밤이 되어 버린다.
이곳에선 밤에 밖에서 할 일도 없고 돌아다니기도 어려우니 해가 지면 꼼짝 없이 집에 있게 되는데, 한국과 달리 집 안의 조명이 밝지 않아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주변에선 이 시기에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특정 계절에만 겪는 우울증을 계절성 정동 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가을 겨울이 되면 우울증이 늘어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덴마크 연구팀의 최근 연구에선 DST가 끝나는 시기에 우울증 위험이 11%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https://journals.lww.com/epidem/Fulltext/2017/05000/Daylight_Savings_Time_Transitions_and_the.7.aspx
DST를 적용하는 기간이 8개월, 나머지가 4개월이니 사실 썸머 타임보다는 윈터 타임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린다. 시간대를 바꾸면서 생기는 두 차례의 변화와 네 달 동안의 긴긴 겨울밤을 생각하면 아예 일 년 내내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고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주 별로 DST 적용 여부가 달라 생기는 혼란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 같다(아리조나는 DST를 적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플로리다에서는 DST를 폐지하고 1년 내내 한 시간을 앞당기는 법안이 승인을 앞두고 있고, 캘리포니아에서도 주민 투표를 한다니 조만간 썸머 타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수도 있겠다.
근데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이렇게 여기저기서 한 시간씩 앞당기다 보면 어느 날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시계를 한 시간 앞당기기로 덜컥 합의라도 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오전에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한참을 놀았다. 오늘도 풀 안엔 우리 가족 뿐.
11월 8일 월요일. 289일째 날. 농구와 스케이트 보드 수업이 있는 날엔 아들과 둘만 드라이브를 하게 된다. 가족 모두가 있을 때완 기분이 다른데, 짧은 시간이지만 둘만 있는 그 느낌이 좋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듣기도 하고 요즘 듣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다. 구글 뮤직을 공유하고 있어서 얼마 전부턴 각자 보관함에 정리한 음악을 들으며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기도 한다. 사실 아직 대중 음악을 많이 듣지 않은 아들의 취향을 옛날 음악으로 물들이는 작업 중이다. 비틀즈, 비지스, 사이먼앤가펑클, 퀸, 스팅. 아재 음악이라고 툴툴거리면서도 어느 순간 내가 수십 년간 들어온 음악을 흥얼거리는 녀석을 보면 행복해진다.
아빠는 너하고 이렇게 둘이서만 드라이브를 하는 시간이 참 좋아.
오늘 농구 수업에 가는 길에 깜깜해진 밤길을 운전하면서, 문득 보조석에 앉은 아들에게 고백했다. 뜬금 없는 고백에 녀석은 잠깐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도 좋아요. 근데 좀 오글거리네요.
11월 9일 화요일. 290일째 날. 퇴근하는 길에 플루 백신을 맞았다. 지난 covid 부스터 백신과 마찬가지로 UCSD 안 드라이브 인 접종소에 예약했다.
저녁엔 한국의 예과 학생들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자유주제탐구 강좌에 특강 형식으로 참여한지 3년 째이다. 연수 기간엔 참여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화상 강의라 다행히 이번 학기에도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의 학생 강의라 그런지 모니터의 학생들 이름만 봐도 반가웠다. 대부분 비디오를 끈 검은 화면이었지만.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