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일 월요일

연수일기 145. Trick or Treat

10월 30일 토요일. 280일째 날. 아니나다를까, 어제 예방접종의 여파로 오후까지 몸살기가 있었다. 오전엔 내내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오후에 일어나 딸과 같이 호박을 깎았다. 도안에 맞춰 그려둔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칼질을 해 고양이 모양을 완성했다. 

딸 친구 J의 가족과 바베큐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두 학기째 단짝이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진즉 식사를 함께 하려 했는데 이제야 기회를 만들었다. 두 가족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LA 갈비를 준비해 오셔서 배불리 먹었다. 딸과 친구는 세 시간이 넘게 자쿠지와 풀을 왕복하며 물놀이를 했다. J의 아빠는 8년 전 주재원으로 미국에 왔다. 2년의 근무 후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첫째 아들이 미국에 남기를 원해 미국 생활을 연장했고, 결국 영주권까지 받았다고 한다. 원래의 계획과 달리 기약없이 길어진 타국에서의 삶은 고달팠을 것이다. 특히 J 엄마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그래도 최근엔 지인의 도움으로 새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우연히 얻었다고 했다. 고단한 생활에 주어진 행운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가족 모두가 건강하길. 


10월 31일 일요일. 281일째 날. 할로윈이다. 오후가 되면서부터 아파트 단지 안에도 코스튬을 입고 어슬렁거리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해가 지기 전부터 할로윈 장식에 불을 켜고 초콜릿과 캔디 박스를 준비했다. 이른 저녁을 먹는데 스파이더맨 복장의 아이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첫 번째 방문. 

아이들은 아파트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기로 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코스튬을 차려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호그와트 학생이 셋, 낫을 든 해골이 둘, 마녀, 드라큐라, 뿔 달린 악마, 그리고 정체 모를 티비 스타 각각 한 명씩이 모였다. 가까운 집 대문부터 두드리기 시작한다. 우리 아파트만 해도 삼분의 일 정도는 대문 앞에 할로윈 장식을 한 것 같다.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에게 그저 사탕만 나누어주는 사람들도 있고, 직접 코스튬을 입고 기다리다 아이들을 깜짝 놀래키며 즐거워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백인 부부는 아예 집 옆 주차장에 캠핑 의자를 놓고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사탕 바구니가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멀찌감치 아이들을 따라가며 지켜만 봐도 즐겁다. 네댓 명씩 무리를 지은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연이어 지나간다. 아파트 전체가 평소보다 달뜬 분위기였다. 

출발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 동안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해졌다. 아파트를 벗어나 큰길 건너 타운하우스 단지를 방문했다. 이곳은 할로윈 장식을 하지 않은 집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이고 집 입구와 앞뜰의 장식도 더 다양하고 화려하다. 단지 입구의 집에선 흥겨운 음악을 크게 틀고 음산한 조명 아래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어린 아이들이 많았지만 종종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늘씬한 여자 아이들도 깔깔거리며 사탕을 얻으러 다녔다. 

아파트에 돌아와 빠진 집들을 한 바퀴 더 돌고 난 아이들은 C 선생님 댁에 모여 사탕을 교환하기로 했다. 어른들도 식탁에 모여 앉아 예정에 없던 모임을 시작했다.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헤어지기 못내 아쉬웠던 엄마들은 조만간 다시 브런치 모임을 하기로 약속까지. 이렇게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추억 하나가 더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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