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4일 목요일. 285일째 날. 오전에 Copa Vida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샌디에고의 로컬 체인 커피숍 중 하나이다. 동네 커피숍이지만 커피 맛이 괜찮고 분위기도 좋다. 샌디에고에서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맛있는 커피숍과 브루어리는 많다.
오랜만에 H 선생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보다 한 달 일찍 연수 생활을 시작해 출국도 그만큼 빠르다. 얼마 남지 않은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 생활을 준비 중이라 신경 쓸 게 많은 모양이다. 조만간 우리도 닥칠 문제들이다. H 마트에서 사온 연어회와 장어, 타마고야끼로 초밥을 만들어 대접했다. 지난 번 장인 장모님이 오셨을 때도 이렇게 만들어 먹었었다. 니기리 초밥은 아이들이 좋아해 그동안 외식 메뉴로 그나마 자주 먹었지만 이젠 이렇게 만들어 먹는 것이 낫다. 레스토랑의 니기리 초밥과 맛에 큰 차이가 없는데 연어와 장어로만 배불리 먹었을 때의 가격을 생각하면. 이래서 이곳에서 몇 개월을 살아도 외식을 선호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11월 5일 금요일. 286일째 날. 오늘부터 대면 연구 미팅을 시작했다. UCSD 캠퍼스에서 정식 오프라인 미팅은 처음이다. A 교수님을 직접 만난 것도, 회의실에 앉아 발표를 듣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절반 정도는 아직 화상으로 참여했지만 모니터로만 만났던 연구팀 멤버들을 직접 볼 수 있어 더 반가웠다. 오늘의 발표는 Hass Avocado Board 시니어 디렉터의 아보카도 연구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아보카도와 관련된 연구만을 하는 기관이지만 펀딩 규모도 크고 연구 성과도 많았다.(아보카도에 대한 연구가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발표 말미엔 출판을 앞두고 있는 Habitual Diet and Avocado Trial (HAT) 연구 결과도 살짝 들을 수 있었다. 1천 명을 두 군으로 나누어 일상 식사와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실험군에 단지 아보카도 한 개씩 만을 6개월 동안 먹게 하면서 양 군의 차이를 확인한 재미난 연구이다.
Avocado에 오롯이 집중했던 한 시간 |
올해가 가기 전에 이렇게 대면 미팅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오랜만에 햇볕을 받으며 캠퍼스를 걸으니 기분도 좋았다.
딸의 covid-19 vaccine 접종을 예약했다. 이번 주부터 5-11세 아이들에 대한 접종이 시작되면서 캘리포니아 지역도 해당 나이 아이들을 예약할 수 있게 되었다. 화이자 백신을 맞은 아들의 경우 접종 부위 통증 외에 큰 부작용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접종 후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으니 주말이 나을 것 같다. 다음 주에 손님이 오고 이어서 추수감사절 연휴엔 뉴욕 여행을 갈 예정이라, 그 이후로 예약했다.
저녁에 델 마르 하이랜드 쇼핑몰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이다. 영화는 오늘 개봉한 이터널스. 대사를 다 알아듣긴 힘들겠지만 아이들도 좋아하는 마블 영화라 대략적인 내용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과 줄거리를 미리 살펴보기도 했다.
럭셔리 극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극장 시설은 괜찮았다. 모든 관이 비슷한 크기로 전동식 안락 의자에 누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상영관 내에서 간식과 음료 주문도 가능했다. 롯데 시네마 샤롯데나 메가박스의 부티크와 비슷한 형태인데, 영화 한 편에 20불이니 가격도 그리 비싸진 않다. 팝콘과 음료수, 맥주를 주문했다. 팝콘은 거의 아이들 세숫대야 만한 그릇에 가득 담아준다. 그런데 뭔가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극장에서 느끼던, 영화 시작을 기다리며 조금은 흥분되고 들뜨던 기분이 들지 않는다. 한국의 멀티플렉스보다 분위기가 차분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극장 입구부터 느낄 수 있는 달달한 팝콘 냄새가 없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미국다운 스케일 |
영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 줄거리를 퍼즐처럼 맞추느라 부산을 떨었다. 설명을 해주는 쪽은 주로 아내였는데, 중요한 대사들을 처음 듣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나에게 아들이 빙글빙글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아빠, 그것도 못 알아 들었어요? 자존심 상하지만 이제 아들이 나보다 영어를 잘 알아듣는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11월 6일 토요일. 287일째 날. 아이들이 늦잠을 잤다. 둘 다 오전까진 컨디션도 썩 좋지 않아 보인다. 어제 늦게 영화를 보고 들어와 피곤했나 보다.
L 선생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샌디에고 생활이 벌써 네 달이 넘어가는데, 이제 적응이 되어선지 가족들 모두 처음보다 건강하고 편안해 보인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쯤이 한참 재미를 느끼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다. 앞으로도 선생님 가족에게 안온한 생활이 계속 이어지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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