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10일 목요일

연수일기 77. 학기 마지막 주, 아들의 covid-19 백신 2차 접종

6월 7일 월요일. 135일째 날. 이곳에서 보낸 아이들의 첫 학기도 이제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목요일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이번 학기도 끝이 난다. 6학년인 아들도 졸업을 한다. 

며칠 전엔 학교 학부모회에서 집 앞에 졸업을 축하하는 게시물을 깜짝 설치해 주었다. 6학년 학생이 사는 집마다 대문 앞에 꽂아두는 것이다. 종종 다른 집 대문 앞이나 창문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자랑하는(?) 게시물이 붙어있는 걸 봤다. 아파트 안에서 이웃한 고등학교의 상징인 큰까마귀(raven) 그림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이 높은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집 앞 화단에 꽂혀있는 게시물을 뒤늦게 발견하곤 한편으론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이런 게시물을 만들게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런 소소한 행동이 모여 만들어진 문화가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이 졸업 앨범을 가지고 왔다. 여기서는 메모리 북이라고 부르고, 6학년 뿐 아니라 전교생의 사진이 다 들어간다. 어쩌다 보니 아들은 한국과 미국 초등학교에서 각각 졸업 앨범을 받게 되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메모리 북


6월 8일 화요일. 136일째 날. 아들이 covid 2차 백신을 맞았다. 1차 접종을 했던 UCSD 접종 센터가 이번 달부터 문을 닫아서 2차는 카운티 접종 사이트에서 가까운 장소를 찾아 신청했다. 접종 장소는 CVS였다. 약국에서 예약 사항을 확인하고, 옷 매장의 피팅룸에서 주사를 맞았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접종 후 15분간 머물면서 이상 반응 유무를 확인했다. 기다리는 동안 접종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나이의 청소년들이었다. 

화이자에선 6개월-11세 소아에 대한 백신 용량을 확인했고, 조만간 4,50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3상 임상 시험을 시작한다. 임상 시험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올해 내에 딸아이도 백신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6월 9일 수요일. 137일째 날. 오늘부터 샌디에고 카운티의 거리두기 단계가 가장 낮은 옐로우 티어로 완화되었다. 내일 졸업식과 학기 마지막 날을 앞두고 졸업을 하는 6학년 아이들은 학교 전체 교실을 돌며 작별 퍼레이드를 했다. 6학년 반에선 아이들이 각자 만든 졸업 동영상을 부모에게 보내주었다. 며칠 전 어렸을 적 사진들을 달라고 하더니 이 영상을 만들려고 그랬나 보다. 

딸아이 반에선 작은 캠핑 파티를 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 책상에 초록색 비닐을 덮어 작은 1인용 텐트를 만들어 주셨다. 아이들은 모두 직접 염색한 티셔츠를 입고 플래시로 만든 모닥불 주위로 모여 돌아가며 책을 읽었다. 

마지막 날은 파티 데이!

2021년 6월 7일 월요일

연수일기 76. 칼라베라 호수(Lake Calavera) 트레일

6월 5일 토요일. 133일째 날. 저녁엔 아이들과 다 같이 영화나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곤 한다. 한국에서부터 있던 습관인데, 한국에선 주말에 주로 봤지만 여기선 시간이 더 많아서 평일 저녁에도 한 편씩은 보게 된다. 최근엔 '로스트 인 스페이스'를 시작했다. 정착할 행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을 하고,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는 로빈슨 가족의 이야기가 조금은 우리 가족의 상황과 겹쳐서 더 실감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에선 자막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지만 여기선 선택의 폭이 좁다. 구글 플레이 무비는 몽땅 한글 자막이 없고, 넷플릭스도 한글 자막이 있는 콘텐츠가 훨씬 적다. 한국 포털 사이트의 영화 콘텐츠는 이곳에서 재생을 할 수 없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6월 6일 일요일. 134일째 날. 칼라베라 호수(Lake Calavera)에 다녀왔다. 칼스배드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호수로, 집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칼라베라 힐즈 중학교 건너편에 길가 주차를 하고 트레일 헤드로 들어가면 정면에 댐이 보인다. 



작고 아담한 호수와 댐을 여러 갈래의 길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메인 트레일을 통해 호수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중간에 피크닉 테이블이 하나 있어 쉬면서 준비해 간 김밥을 먹었다. 전체 트레일 길이는 4마일이 넘지만 메인 트레일만 보면 1.5마일, 쉬지 않고 걸었을 때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대부분 평지라 어린 아이들과 산책하기에도 좋은 길이었다. 호수 북쪽 길은 유모차를 끌고도 갈 수 있을 만한 길이다.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인지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무 데크가 깔린 길도 있다.


칼라베라 마운틴 트레일을 따라서는 언덕에 오를 수도 있다. 높이는 156m에 불과해 마운틴이라 부르기 민망하지만 정상에서 보는 경치도 괜찮을 것 같다. 수백만 년 전엔 이 언덕이 화산이었다고 한다.

왼쪽에 칼라베라 마운틴이 보인다.

캘리포니아의 트레일 코스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지역도 특이한 동식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Roadrunner라고 불리는 새(학명은 Geococcyx californianus) 가족 세 마리를 만났다. 학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새는 멕시코와 캘리포니아 근방에서 주로 서식한다고 한다. 종종걸음을 치며 차례로 길을 건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들에겐 이 새를 본 몇 초 동안이 오늘의 순간.

돌아오는 길에 칼스배드 프리미엄 아울렛에 들러 딸아이의 후드티를 사려 했는데 적당한 걸 찾지 못했다. 대신 샌디에고 파드리스 모자를 하나 샀다. 다음 번 야구장에 갈 때 써야겠다. 

2021년 6월 5일 토요일

연수일기 75. 라호야 쇼어스(la Jolla Shores) 비치

6월 3일 목요일. 131일째 날. 이틀 전 생겼던 BPPV로 인한 현기증은 하루가 지난 다음 날엔 나아졌다. 다행히 정복술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평상시 목요일과 같이 출근할 수 있었다. 

아내의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내 경우엔 실기 시험을 보고 1주일 정도, 아내도 2주가 채 안되어 도착했다. 이제 이곳에 있는 동안 DMV에 다시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이미지로 대표되는 DMV의 느린 업무 처리 속도를 경험하진 못했는데,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님 샌디에고의 DMV 서비스가 나아진 건지는 모르겠다. 이제 두 명 다 신분 확인을 위해 여권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어 맘이 더 홀가분하다. 


6월 4일 금요일. 132일째 날. 오후에 라호야 쇼어스 비치에 다녀왔다. 델 마르 비치처럼 잔디 공원과 해변이 붙어 있으면서도, 이곳은 공원과 해변 사이에 경사가 없고 무료 주차가 가능한 주차장이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이 더 좋다. (델 마르 비치 바로 앞의 주차장은 2시간에 30불이고 무료 주차를 하려면 몇 블록을 걸어야 한다.) 주차장 너비에 비해선 사람들이 많아 오후엔 주차 슬롯이 다 차있는 경우가 많지만, 조금만 기다려도 빈 자리가 생기니 주차가 힘들진 않은 것 같다.

델 마르 비치는 동네 해변의 느낌이라면 이곳은 좀더 관광지 느낌이 난다. 우리에겐 소박하고 예쁜 델 마르 비치의 분위기가 더 좋았지만, 사람마다 달리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웨스트필드 UTC 몰에 들렀다. 딸아이의 옷을 사기 위해서였지만 마음에 드는 옷은 찾지 못했다. 대신 쉑쉑버거를 먹었다. 서부는 인앤아웃, 동부는 쉑쉑이라고 하지만 두 브랜드는 가격 차이가 워낙 커서 비교가 어렵다. 패티의 질만 보자면 쉑쉑이 나았지만(햄버거를 잘 안 먹는 딸도 쉑쉑 버거는 괜찮다고 한다.), 가격과 맛 모두를 고려하면 나와 아내에겐 인앤아웃 압승. 미국을 대표하는 버거 체인 중 하나인 파이브 가이스 체인점도 많이 보이는데, 조만간 먹어보고 세 버거 브랜드를 비교해보려 한다.

2021년 6월 3일 목요일

연수일기 74. CDC의 변경된 마스크 관련 지침에 대해

6월 2일 수요일. 130일째 날.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CDC의 5월 13일 발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발표로 인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마스크를 벗게 됨으로써 새로운 환자 발생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를 했다. 반면에 백신 접종을 하면 마스크를 벗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백신 접종을 주저하던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을 동기를 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있었다.

NY Times의 오늘 칼럼을 보면 긍정적 전망에 조금 더 기대어봐도 될 것 같다. 이 칼럼에서는 그 근거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5월 13일 이후에도 새로운 환자 발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CDC 발표 이후 실제로 일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도 마스크를 벗고 있지만, 환자 발생 추이를 바꿀 만큼 영향이 크진 않았을 것으로 분석한다. 물론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어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위험이 극히 낮다.
둘째는 4월 중순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던 백신 접종자 수가 CDC 발표 이후 감소 추세를 멈추었다는 점이다.(접종 대상 연령으로 새로 추가된 12-15세 청소년을 더하면 하루 백신 접종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CDC 발표가 있던 날, 내 주변의 백신 접종 장소를 안내하는 vaccines.gov 사이트의 트래픽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후에도 발표 이전에 비해 늘어난 트래픽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접종자 수 추이의 변화에 CDC의 발표가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가 일시적으로 건강 관련 행동을 바꿀 수 있지만, 이러한 효과는 제한적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포가 가져온 효과는 오래 가기 힘들고 필연적으로 저항과 반작용을 만나게 된다. 반면 '희망'이 불러일으킨 행동 변화는 좀더 오랫동안 유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백신을 맞지 않으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다라는 무시무시한 메세지만으로 끝나선 안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메세지가 필요하며, 그 내용은 구체적일 수록 좋다. 백신을 맞으면 더이상 자신의 삶을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친구들을 만나고 친척들과 포옹을 나눌 수 있다는 것. 대중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주는 효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으며, 이는 긍정적 강화가 사람들의 건강 관련 행동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사례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백신을 맞으면 할 수 있는 일들
출처: https://www.cdc.gov/coronavirus/2019-ncov/vaccines/fully-vaccinated.html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도 백신 접종자는 거리두기 완화가 가능하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언론도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최근 주요 신문의 논조는 개인적으로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만큼의 태세 전환인데, 내가 한국에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지는 모르겠다.) 백신 접종자가 600만명을 넘어서고, 하루 50만명 씩 접종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노쇼 백신을 예약하기가 어렵다는 소식도 있었다. 미국에서 목격하는 희망적인 추세가 계속 이어지기를, 그리고 한국에서도 '희망'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1년 6월 2일 수요일

연수일기 73. 어지럼증 병상 일기

6월 1일 화요일. 129일째 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시야가 핑 돌았다. 방 천장이 반원의 원주를 따라 돌았다가 다시 곧바로 되돌아오는 식으로 계속 돈다. 몸을 일으켰다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가 없어 다시 누웠다. 최근 며칠간 아침 기상 시에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는데,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어지럼증 외에 다른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빙빙 도는 시야 때문에 울렁거림이 생겨 눈을 감고 어지럼증의 원인이 뭘지 생각했다. 아무래도 양성발작성두위현훈(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 BPPV)이 생긴 것 같았다. 

BPPV는 어지럼증의 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이석증이라고도 불리는데, 내이의 이석기관에서 떨어져 나온 이석이 반고리관을 자극해 어지럼증이 생긴다. 주로 아침 기상 시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지만 머리의 위치를 변화시키면 어지럼증이 유발되고,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면 대개 1분 이내에 가라앉는다. 어지럼증과 함께 특징적인 안진(nystagmus)이 발생한다. 내 증상은 아주 전형적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도 해야 하니 그래도 일어나보려 했다. 화장실로 가는데 가라앉았던 어지럼증이 다시 확 밀려와 화장실 앞에서 주저앉았다. 기어가다시피 욕조로 가 구토를 했다. 오늘 집에서 나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아내가 데려다 주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오늘 연구실에는 나가지 못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BPPV의 치료는 빠져나온 이석을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이석 정복술'이다. 대개는 의사가 환자에게 머리 방향을 지시하고 동작을 도와 시행하지만 방법을 잘 안다면 환자 스스로도 시행할 수 있다. 내친 김에 시도해 보기로 했다. 우선 Dix Hallpike 유발 검사를 통해 어지럼증과 안진이 발생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앉은 자세에서 뒤로 누우면서 머리를 45도 정도 옆으로 돌려 침대 아래로 떨어뜨리고 증상 여부를 확인한다. 왼쪽은 심하지 않았지만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유발 검사를 하니 바로 증상이 생겼다. 안진은 내 자신이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석 정복술 방법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가끔 시행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스스로 해보게 될 줄은 몰랐다. 유발 검사와 정복술을 셀프 시행하는 과정에서 또 화장실로 가 구토를 해야 하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마무리를 했다. 정복술 뒤에는 한동안 머리를 세우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일어나긴 힘들어 침대에 기대어 한참동안 쉬었다. 속이 울렁거려 책을 읽기도 힘들고 움직일 수도 없으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Epley maneuver at home

놀란 아내가 응급실에라도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BPPV의 경우 딱히 다른 치료법이 없다. 증상이 워낙 전형적이고 정복술도 했으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일단 응급실에 가면 여러가지 복잡한 절차를 겪어야 할 것이고, 정확한 감별을 위해 행여 MRI와 같은 영상 검사를 받기라도 하면 진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이다. 의사인 나는 자가 진단과 조치가 가능했지만, 의사가 아니었다면 바로 응급실로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장 이런 문제가 생기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했을까? 911을 부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청구될 것이다. 내가 가입한 여행자 보험이 이 비용을 모두 커버해 줄 수 있을까? 새삼 이곳 의료 체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생활을 준비할 때 모든 이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의료 문제이다. 사고로 응급실에 갔다가 청구서에 프린트 된 엄청난 금액에 까무러칠 뻔했다는 경험담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되도록 병원엔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다. 보험이 없다면 문제가 더 크겠지만, 보험이 있어도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이런저런 귀찮은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기 전에 미리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가 필요한 문제를 미리 해결하려 한다. 미국행 비행기 짐엔 상비약을 잔뜩 넣는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연수를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준비했다. 나는 1년 전부터 말썽이던 오른쪽 어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MRI를 찍었다. 예상대로 인대의 손상이 발견되었고, 손상 정도가 꽤 심하긴 하지만 수술을 받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며 지켜볼 수도 있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만약 미국행 일정이 없었다면 수술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미국에 온 이후 통증은 많이 나아진 상태이다. 아들은 제작년에 다친 무릎이 좋지 않아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역시 MRI 촬영을 했고 큰 문제는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연수가 미뤄지면서 출국을 기다리는 동안 아들의 무릎은 다행히 좋아졌다. 역시 미국에 올 계획이 없었다면 MRI를 찍지 않고 좀더 기다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평소 치아가 썩 좋지 않은 아내는 출국 전에 점검을 위해 다니던 치과 진료를 받았다. 

오전 내내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오후엔 증상이 한결 나아져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다닐 수 있었다. 이 정도로 큰 문제가 없이 나아질 수 있어 다행이다. 아내의 경우 이전에도 각막에 상처가 나고 염증이 종종 생겼는데, 얼마 전에도 비슷한 증상이 생겨 한국에서 처방을 받아 가져온 안연고를 꾸준히 넣고 증상이 좋아졌다. 물론 한국이었다면 동네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을 것이다. 이곳 생활에선 나와 아내가 의사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고나 외상이라도 생기는 경우엔 별 수 없이 이곳 병원에 가야 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길.

2021년 6월 1일 화요일

연수일기 72. 엘핀 포레스트(Elfin Forest) 트레일

5월 30일 일요일. 127일째 날.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를 가기로 했었는데 어제 밤에 예약을 취소했다. 현재는 티켓 구매와 별도로 방문을 미리 예약해야 하며, 하루 전까지는 예약 취소가 가능하다. 재개장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거리두기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운영하지 않는 놀이 시설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공연을 하지 않는 상태이다. 어드벤처 파크에서 하는 '프로즌' 뮤지컬 공연도 작년 3월 이후 닫혔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어벤져스 캐릭터들도 개점 휴업 상태라고 하니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던 분위기를 느끼긴 어려울 것 같다. 

6월 4일에는 개장 준비 중인 생텀과 어벤져스 본부를 포함해 어벤져스 캠퍼스(https://youtu.be/r8t28WOEZNA)도 완전 개장을 한다. 6월 15일까지는 캘리포니아 주민만 입장이 가능해 붐비지 않을 거란 장점은 있지만, 그래도 티켓 가격이 후덜덜하니 즐길 거리가 더 많아진 이후에 가기로 했다. 그동안 아이들과 같이 어벤져스 시리즈나 다시 복습해야겠다. 일정이 급 취소된 덕분에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다. 


5월 31일 월요일. 128일째 날. 메모리얼 데이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엘핀 포레스트 Elfin forest recreational reserve에 다녀왔다. 샌디에고 시 북쪽, 에스콘디도 근처로 집에선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입구 주차장엔 슬롯이 많지 않고 만차여서 입구 바깥의 갓길에 주차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입구 바깥 갓길은 주차를 할 수 없는 곳이라 견인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따로 있는 보조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주차장 안쪽의 트레일 헤드를 지나면 작은 강 Escondido creek을 만난다. 강이라기 보다는 시냇물 정도인데, 한국에선 동네 뒷산을 가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샌디에고 주변의 트레일에서 이런 물길을 보는 건 드문 일이다. Escondido creek의 물길은 에스콘디도 동쪽의 Lake Wohlford에서 시작해, 얼마 전 애니스 트레일에서 보았던 San Elijo Lagoon 까지 이어지고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한다. 

Escondido creek

정상까지 이어진 Way up trail의 길이는 1.4마일 정도인데, 경사가 꽤 있는 언덕길이라 등산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상의 높이는 1300피트(390미터) 정도이니 서울의 남산이나 아차산 보다 높다. 서울 시내만 해도 이보다 높은 산들이 많고 이 정도가 그리 험한 등산 코스라 할 수 없지만, 이곳에선 쉽게 경험하지 못할 만한 코스일 것이다. 샌디에고 사람들에겐 색다른 트레일 코스일 수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등산 코스로 보면 올라가는 길이 너무 밋밋해 한국의 산들에 비하면 오르는 재미가 덜하다. 

Olivenhain Reservoir

정상 가까이 가면 Olivenhain Dam & Reservoir를 만나게 된다. 높은 곳에 댐과 저수지가 있는 풍경이 색다르다. Ray Brooks Overlook의 그늘막 아래에 앉아 바람을 쐬니 햇볕의 열기와 땀이 금새 식고 시원함을 느낀다. 준비해 간 과일과 물을 마시며 30분 정도 쉬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올라갈 땐 1시간 반, 내려올 땐 1시간 정도가 걸렸다.  

2021년 5월 30일 일요일

연수일기 71. 쿠야마카 호수(Lake Cuyamaca) 피크닉

5월 29일 토요일. 126일째 날. 쿠야마카 호수 Lake Cuyamaca에 다녀왔다. 

3월에 줄리안에 갔다가 돌아오면서 들렀던 곳이다. 당시엔 흐리고 비까지 오늘 날씨 때문에 줄리안을 제대로 구경하지 못했었다. 아쉬운 마음에 돌아오는 길에 들러볼 곳을 찾았고, 그게 이 호수였다. 지도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 가까운 곳에 호수가 있다는 것만 확인하고 호수 쪽으로 운전대를 잡았는데, 주차료를 내지 않고는 호숫가에 정차할 만한 곳이 없어 주변 풍경만 둘러보고 돌아왔던 기억이 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샌디에고 근교에 캠핑과 낚시를 즐길 수 있는 장소로 잘 알려져 있는 호수였다. 집에서 1시간 거리로 나들이 삼아 다녀오기 적당해 언젠가 다시 한 번 가봐야겠다 생각했던 터였다. 

한적한 호숫가


줄리안에서 79번 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오면 호수를 만나게 된다. 이곳의 댐은 1888년에 건설되었고, 캘리포니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되었다고 한다. 호수 서쪽에 있는 레스토랑과 낚시 샵 옆으로 주차장 입구가 있다. 이곳에 주차를 하려면 입장료 10불을 내야 한다. 입구 안쪽의 호수 기슭에는 바베큐 그릴이 딸린 피크닉 테이블이 여러 개 있었다. 휴일 소풍을 나온 가족들이 많았고, 낚싯대를 드리운 이들도 꽤 있었다. 낚시를 하려면 캘리포니아 라이센스(하루 17불)와 퍼밋(성인 8불)을 구입해야 한다. 이 호수에선 커다란 송어도 낚을 수 있다고 한다. 

월척이다... (출처: https://www.lakecuyamaca.net/)

낚시 도구 샵에서 낚싯대를 빌리려 했는데, 지금은 거리두기 때문에 대여는 하지 않고 판매만 한다고 했다. 낚시 도구를 다 구입하기엔 부담이 되어 이번엔 낚시는 포기하고 대신 보트를 빌리기로 했다. 모터가 달린 나무 보트를 35불에 오후 반나절 동안 빌릴 수 있다. 운전법은 매우 간단해서, 전진/중립/후진 기어와 엑셀에 해당하는 바에 대한 설명으로 끝. 원칙은 성인만 운전할 수 있지만, 중학생 정도만 되어도 가능할 듯 했다.(실제로 호수 가운데서 아들이 잠깐 운전을 체험해보기도 했다.) 라이프 자켓은 아이들에게만 준다. 안전 교육이나 주의 사항도 없다. 말은 안 했지만 '호수에 빠지더라도 당연히 다들 수영은 할 수 있지?'라는 듯한 태도.  

(출처: https://www.lakecuyamaca.net/)


호수 중간에서 닻을 내려 정박을 하고 간식도 먹으며 시간을 보냈다. 보트에서 낚시를 하는 이들도 많았다. 한 시간 정도 보트를 타고 나와 피크닉 테이블에서 식사를 했다. 호수 주변으로 피크닉과 캠핑이 가능한 구역은 서쪽과 북쪽에 모두 세 군데가 있다. 피크닉과 캠핑 구역 외에 캐빈과 콘도도 있어 좀더 편한 숙박도 가능했다. 다음 번에 레이크뷰 캐빈을 예약해 다시 오기로 했다. 그땐 낚싯대를 준비해오면 좋을 것 같다. 떠나기 전에 보트를 한 번 더 탔다. 

사진만 다시 봐도 힐링이 되는 느낌

돌아오는 길에 줄리안의 맘스 파이에서 애플 사이다를 샀다. 어떤 맛일까 궁금했는데, 사과 쥬스였다. 사과 외에 배즙을 넣어 새콤달달했다. 쥬스를 까다롭게 고르는 딸아이도 맛있어 해 한 병을 더 샀다.

2021년 5월 29일 토요일

연수일기 70. 도서관 책 빌리기, 옐로스톤 국립공원 숙소 예약

5월 27일 목요일. 124일째 날. 아내가 카멜 밸리 도서관에서 책 두 권을 빌렸다. 도서관 카드를 만든 건 꽤 오래 되었지만 실제 책을 빌린 건 처음이다. 예년과 같이 도서관이 열렸다면 책을 좋아하는 아내가 자주 갔을 것이다. 아직까진 대면 서비스가 제한되어 있어서 도서관 안에서 책을 고르거나 읽을 수는 없고 온라인을 통해 신청한 책에 대한 픽업만 가능하다. 샌디에고 공립 도서관의 회원이 되면 홈페이지(https://www.sandiego.gov/public-library)에서 책을 고르고 픽업할 도서관을 선택할 수 있고, 책이 준비되면 메일이나 문자 알림을 받을 수 있다.

내가 아니라 아내가 읽을 책


얼마 전 김치를 샀던 한식 반찬 가게에서 바베큐와 반찬 세트 공구를 신청해 받아왔다. 돼지 목살과 LA갈비, 소불고기와 제육볶음 등 다양한 종류의 고기에 두세 번은 먹을 수 있는 양이라 가격에 비해 나쁘지 않았다. 곱창도 포함되어 있어서 저녁에 구워 먹었다. 곱창은 몇 달 만에 먹는 것 같다. 

8월 첫 주에 갈 옐로스톤 국립공원 숙소를 예약했다. 아직 구체적인 일정을 다 정하지 못했지만, 옐로스톤도 워낙 넓어서 하루 이틀 정도는 국립공원 안의 랏지에서 묵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요세미티 내부의 랏지도 그렇지만 성수기엔 일찍 예약이 차서 몇 달 전에 서둘러 예약을 해야 한다. 무료 취소가 가능해 취소 자리가 자주 난다고 해서 최근엔 매일 예약 사이트를 확인했는데, 마침 올드페이스풀에 위치한 랏지에 이틀 연박 자리가 나서 바로 예약했다. 올드페이스풀 근처가 가장 예약하기 어렵다고 하던데 다행이다. 이제 국립공원 외부 숙소와 솔트레이크 행 항공편을 예약할 차례이다.


5월 28일 금요일. 125일째 날. 오늘 연구 미팅에 모신 연자는 워싱턴 대학의 Joel Kaufman 교수이다. 대기 오염과 건강에 대한 연구 영역에서 손꼽히는 연구자이며, MESA 서브 코호트인 MESA-AIR 연구의 책임 연구자이기도 하다. NEJM, Lancet 등 유수의 저널에 논문을 발표했고, Environmental Health Perspectives의 편집장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관심이 높은 미세먼지가 심혈관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를 소개했다. Covid-19로 연구 미팅은 모두 화상으로 진행하고 있고, 대학의 업무가 정상화 된다면 과거와 같이 오프라인 미팅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지금처럼 미국 전역의 저명한 연구자를 만날 기회는 줄어들 것이다. 그동안 화상회의에 익숙해졌고 그 장점도 명확하기에, 거리두기가 풀린다 해도 연구 미팅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병행해도 좋을 것 같다. 

딸아이가 학교에서 Father's day 선물을 만들어왔다. Father's day는 다음 달이지만, 아마 학교에서 방학 전에 선물을 만드는 시간을 가졌나 보다. 

선택 항목에 Beer or Soju?가 있어야 하지 않을까

저녁에 H 선생님 가족과 식사했다. 랄프스에서 사온 닭다리로 아내가 양념 치킨을 만들었다. 한국에서 보내온 양념 치킨 소스를 지난 번에 다 써버려서 이번엔 소스까지 직접 만들었는데, 마지막에 마늘이 너무 많이 들어갔나보다. 양념 치킨을 잘 먹는 딸아이가 후라이드 치킨만 먹었다. 물론 어른들에겐 너무나 만족스런 메뉴였지만.  

2021년 5월 27일 목요일

연수일기 69. 학교 운동회(Field Day), 미라마르 호수(Lake Miramar) 피크닉

5월 25일 화요일. 122일째 날. 어제는 아이들 학교의 Field day 였다. 운동회를 영국에선 Sports day, 미국에선 Field day라고 부른다고 한다. 어제 아이들을 데리러 갔을 때 운동장에서 풍선 말을 타고 이어 달리기를 하는 모습을 잠깐 볼 수 있었다. 대형 에어 미끄럼틀도 설치되어 있었는데 딸아이 말로는 이걸 통과하는 게임이 가장 재미있었다고 한다. 담임 선생님께서 사진을 보내주셨다. 


5월 26일 수요일. 123일째 날. 오후에 미라마르 호수로 피크닉을 다녀왔다. 3월에 이어 두 번째 방문이다. 미라마르 호수는 댐을 막아 생긴 저수지로, 콜로라도 강과 북부 캘리포니아를 거쳐 모인 이곳의 물은 샌디에고 시민 50만 명의 식수로 쓰인다. 5마일 길이의 산책로가 호수를 둘러싸고 있어 나들이나 운동을 하기 좋은 곳이다. 지난 번 방문 때 닫혀있던 매점도 문을 열었다. 매점에선 간단한 간식을 살 수 있고, 보트를 대여하는 것도 가능했다. 갈매기와 오리가 많았는데, 호수 주변을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커다란 오리들은 사람을 무서워하지도 않는다. 

별표 위치가 주차장과 피크닉 장소
호수 동쪽 기슭엔 전망 좋은 레이크 뷰 공원이 있다.

낚시와 개인 보트 permit fee

카약이나 보트를 탈 수도 있다.


호수와 주변 풍경이 평화롭고 아름답다. 
날씨가 따뜻해져 햇볕을 쬐며 앉아있기 좋았다. 피크닉 테이블 주변엔 바베큐 그릴도 있어 숯과 고기를 준비해와도 좋을 것 같았다. 미국엔 캠핑장 뿐 아니라 공원에서도 바베큐를 할 수 있는 그릴을 쉽게 볼 수 있는데, 처음엔 이런 곳에서 고기를 굽는 게 생경하게 느껴졌지만 이젠 이런 광경에 익숙해졌나 보다. 고기는 없었지만, 볕이 잘 드는 테이블에 앉아 준비해간 버너와 냄비로 라면을 끓여 먹었다. 

2021년 5월 25일 화요일

연수일기 68. 신용카드 도용 문제, 코스트코 치킨

5월 24일 월요일. 121일째 날. 

특별한 일이 없어도 BOA 어플을 종종 들어가보는 편이다. 주말 동안 내가 알지 못하는 거래처에서 1센트가 결제되었다가 다시 환불되는 일이 두 차례 있었다. 다행히 그 이상의 금액 결제 건은 없었다. 혹시 누군가 내 카드 번호를 도용해 결제를 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되어 오늘 아침 은행 담당 직원에게 전화해 상황을 설명했다. 계좌를 확인한 은행 직원도 누군가 카드 번호를 도용해 실제 결제가 되는지 확인해본 것 같으니 기존 카드를 정지시키고 새로 카드를 신청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BOA 어플리케이션에서 기존 카드의 replace를 신청할 수 있다. 신청 과정에서 사유를 missing/stolen으로 선택하면 새로 받을 카드의 번호를 기존 카드와 다르게 변경 가능하다. 신청을 끝내자 기존 카드는 곧바로 정지되었고 어플에서도 해당 카드는 비활성화 상태가 되었다. 오래 지나지 않아 어플에서 변경된 카드 번호를 확인할 수 있었다. 실물 카드는 우편으로 배송된다고 한다. 새 카드 발급 수수료는 없었는데, 다른 사유를 선택하면 다를 수도 있을 것 같다. 

전화 통화를 하지 않고 어플에서 신청할 수 있어 도용이 의심되면 바로 조치를 하는 것이 좋겠다. 무엇보다 은행 어플에 자주 들어가보는 습관을 들이는 게 필요할 것 같다.

번거로운 절차 외에 다행히 실질적인 피해는 없었지만, 이런 일을 경험하니 미국의 신용카드 서비스에 근본적인 의문이 든다. 식당이나 술집에선 내가 아닌 직원의 손에 카드가 맡겨지고, 팁이 더해지는 과정에서 결제 정보가 매장에 남겨진다. 온라인 결제 과정에선 대부분 별도의 인증 절차가 없고, 한국과 같은 결제 후 문자나 푸시 알림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는다. 카드 도용으로 인한 피해가 빈번하게 일어날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이곳 사람들도 이런 시스템의 문제를 모르진 않을텐데, 왜 개선을 하지 않는걸까? 


저녁엔 아내가 닭계장을 만들었다. 코스트코에서 파는 괜찮은 상품들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로티세리 치킨은 가성비 최고의 상품이라 생각한다. 코스트코에 갈 때 두 번에 한 번쯤은 4.99불 짜리 이 치킨을 사온다. 크기도 해서 네 식구가 한 끼 식사로도 충분하다. 처음 사왔을 땐 남는 게 별로 없었는데, 이젠 처음보단 감흥이 떨어져서인지 먹는 양이 줄어 살코기가 제법 남는다. 남은 살코기는 잘 발라서 샐러드 재료로 쓰기도 하고, 닭 뼈와 함께 냉동실에 넣었다가 필요할 때 끓여 육수를 우려낸 다음 칼국수나 수제비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오늘 만든 닭계장도 냉동실에 넣어두었던 뼈와 살코기를 활용했다. 칼칼한 국물이 시원했다. 4.99불 짜리 치킨으로 두 끼 이상이 해결되니 어찌 이 상품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니 공손히 두 다리를 모은 이 치킨을 볼 때마다 감사한 마음을 품도록 하자.

사진은 미처 찍질 못해 구글링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