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3일 화요일. 171일째 날. 아이들을 캠프에 데려다 주고 오늘은 앤시니터스 도서관에서 일을 했다. 연구실이 아닌 곳에서도 작업을 할 수 있는 것이 이럴 땐 도움이 된다.
H 선생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딸의 생일은 지난 일요일, 우리 딸보다 한 살이 적은 H 선생님 첫째 아이의 생일은 내일이다. 오늘 저녁을 먹으면서 함께 조그만 파티를 해주기로 했다. 딸은 오후 내내 종이를 오리고 붙여 동생의 생일 선물을 만들었다. 우리는 식사를 준비했고, H 선생님은 케잌과 생일 풍선을 가져왔다. 다 같이 풍선을 불어서 벽에 붙이니 파티 분위기가 그럴듯하게 완성되었다.
7월 14일 수요일. 172일째 날. 딸은 매일 요리 캠프에서 두어가지 음식을 만든다. 수업이 끝나면 그 중 하나씩은 손에 들고 교실을 나선다. 오늘은 기름에 튀긴 또띠야에 설탕을 바른 간식을 들고 나왔다. 내일은 몽고식 볶음 라면을 만들거란 소식에 아이들이 환호성을 질렀다고 한다.('몽고식'이 아니라 '라면'에 방점) Boys & Girls club 지점 중에 키친이 있는 곳은 이곳 뿐인 것 같다. 키친과 건물 뒤편에 있는 정원 공간을 엮어서 건강한 생활 습관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아이들의 요리 수업도 그런 일환으로 만들어진 프로그램으로 보인다.
키친 입구 위의 'Center for a Healthy Lifestyle'이란 현판이 눈에 띄었다. 교실을 살짝 엿보니 칠판에 분필로 무언가 가득 적혀있다. 요리 레시피와 특성에 대한 내용인 것 같다. 뒤편의 정원에 심어진 과일 나무에서 복숭아나 레몬을 따 요리 재료로 쓰기도 했다. 요리 재료를 준비하고, 수업을 듣고, 요리를 직접 만들고 맛을 보는 과정이 건강한 식습관을 갖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첫날 만들었던 계란과 야채로 만든 머핀은 사실 아내가 종종 집에서 만들었던 음식인데, 딸은 이전엔 손도 대지 않았지만 이번에 자기 스스로 만든 음식은 맛있게 먹었다. 요리 교실은 음식에 picky인 아이들의 교정 프로그램으로 적당하다. 한국에서도 방과 후 요리 교실을 즐거워 했었는데 이번 요리 캠프도 너무나 좋아한다. 다음 학기에도 요리를 할 수 있는 방과 후 프로그램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프로그램 내용과 가격을 생각해보니 한국의 방과 후 프로그램은 참으로 혜자가 아닐 수 없다.)
Center for a Healthy Lifestyle |
아들은 파도를 이기고 써핑 보드를 제어하는 것이 쉽지 않은지 오늘은 좀 힘들어 보인다. 물 위에 뜬 보드를 누르느라 평소 안쓰던 근육을 써서 팔이 아프다고 앓는 소리를 한다. 여기 햇살은 어디서나 강하지만 바다에서는 더 그런 것 같다. 며칠 새에 얼굴이 까맣게 탔다.
7월 15일 목요일. 173일째 날. 앤시니터스의 메인 스트리트에 있는 Better Buzz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먹고 거리를 둘러보았다. 앤시니터스는 인접한 칼스배드, 솔라나 비치나 델 마르와는 분위기가 또 달랐다. 아마 도시를 가득 메운 써핑의 이미지 때문인 것 같다. 이 도시는 바다와 써핑을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을 듯 했다. 거리를 걷다 보면 써핑 샵과 써핑 보드를 쉽게 만나고, 골목 곳곳에 써핑을 소재로 한 벽화와 예술 작품들을 볼 수 있다. 앤시니터스의 Swami's beach는 세계 5대 써핑 비치에 속한다고 한다. 비치 보이스의 Surfin' U.S.A의 가사에도 등장한다. (이 노래 가사에 나오는 열 다섯 개의 비치 중 다섯 개가 샌디에고 카운티에 있다.)
태초에 써퍼가 있었나니 |
써핑 캠프가 끝나기 전 바닷가에 앉아 아이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얕은 바다에서도 밀려오는 파도가 제법 높았다. 가끔은 어른 키만한 파도도 오곤 했는데, 아들은 캠프 첫 날 가까이서 높은 파도를 보고 쓰나미가 오는 것처럼 느껴져 조금 겁이 났다고 했다.
보드를 밀고 몇 번씩 파도를 넘어 허리춤 정도의 깊이에서 파도를 기다린다. 아직은 보드를 다루는 게 서툴러 더 깊이 가면 보드에 올라탈 수 없을 것이다. 몇 차례의 파도를 보내고 적당한 크기의 파도가 오는 것을 확인하면, 기슭 쪽으로 뒤돌아 보드에 올라타 엎드린 뒤 양팔로 열심히 노를 젓는다. 파도가 꽁무니까지 오면 보드 위에 두 다리를 얹고 균형을 잡아 일어선다. 먼 바다의 써퍼들이 타는 커다란 파도와는 비교할 수 없지만, 작은 파도라 해도 보드 위에 선 아이를 기슭까지 실어나르기엔 충분하다.
아이들이 파도를 타는 모습을 보는 것 만도 즐거웠다. 보드 위에 서서 밀려오는 포말과 함께 미끄러질 때의 기분은 경험해보지 않으면 모를 것이다. 파도를 한 번 타려면 보드를 끌고 한참을 나가야 하고 몇 번을 넘어져야 하지만, 그 과정이 있기에 파도를 탔을 때 더 짜릿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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