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8월 22일 일요일

연수일기 116. Rob과의 점심 식사

8월 20일 금요일. 209일째 날. 아내가 EIA 프로그램 첫 미팅을 했다. 신청한 지는 꽤 되었는데, 처음 매칭된 leader의 개인 사정으로 만남이 연기된 후 약속을 잡기가 어려워지면서, 다른 leader 매칭을 요청했다. 두 번째 분이 연결되고 미팅은 금방 잡혔다. 우리 집에서 더 가까운 곳에 사는 분이라 약속을 잡기가 더 수월할 것 같다. 미팅 후에 아내 이야기를 들으니 좋은 분인 것 같다. 은퇴한 간호사인데, 이번이 네 번째 참여자와 연결이고 지난 세 번 모두 한국인이었다고. 

오늘 연구 미팅에선 워싱턴 대학 역학 교실 H교수께서 brain volume과 white matter injury에 대한 연구 결과를 공유했다. MESA 코호트 내 흑인에서 white matter injury가 더 심하다는 것이 주된 내용인데, 인종 간의 차이를 분석한 것이 내 연구 주제와도 유사한 면이 있어 흥미롭게 들었다. 이 코호트에서 brain MRI는 일부 참여자들에게 한 차례만 시행했으므로 단면 연구가 될 수밖에 없으며 연구 대상자 수의 한계도 있다. 그다지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White matter injury 관련 연구는 우리 센터에서도 관심이 있는 주제이고 유사한 연구 결과들도 발표한 바 있다. 훨씬 더 방대한 수의 반복 측정 brain MRI 자료를 가지고 있으므로 더 다양한 연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8월 21일 토요일. 210일째 날. Rob과 아내인 Jane을 집에 초대해 점심을 먹었다. 이번에도 아내가 한국식 돼지 등갈비 요리로 실력 발휘를 했다. Jane은 중국인이었는데 Rob과 나이 차이가 꽤 많이 나 보인다. 아들인 Sam도 함께 오기로 했는데, 영화를 보러 가기로 해 오지 않았다고 한다. 

Rob은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가르쳐 주는 걸 좋아한다. 은퇴 전 teaching hospital에서 주로 일을 해서인 것 같기도 하고, 원체 성격이 그런 것 같기도. 나에겐 많은 도움이 된다. 이번에도 집에 오기 전에 초대와 관련된 동양과 미국의 문화 차이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중국에선 초대한 손님을 왕처럼 모시고, 손님이 배부르게 먹는 것에서 호스트가 만족을 느끼지만 미국에선 그렇지 않다는 것. 이전에 중국인 가정에 초대를 받았을 때, 땅콩 알러지가 있는데도 땅콩이 든 음식을 계속 권해 실랑이를 하다가 초대했던 분 마음이 상했다고. 미국인은 호스트가 가까운 친구와 같이 대했을 때 가장 편안함을 느낀다고 했다. 한국의 문화는 양쪽 모두와 다르지만 그래도 역시 중국 쪽에 더 가까울 듯 하다. 

Rob과의 문자 메세지

맛있는 음식과 유쾌한 대화. Rob이 사온 멕시코 맥주도 곁들였다. 미국인 가족을 집에 초대한 것은 처음이라 조금 긴장을 하기도 했지만 즐거운 점심 식사였다. 아이들을 좋아하는 Rob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계속 질문을 던졌다. 아들은 곧잘 대화를 한다. 쑥스럼쟁이인 딸은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귓속말로 나와 아내에게 확인을 한다. 학교에서 한국인 친구가 옆에 있어 영어만으로 말해야 하는 환경이 아닌 것도 이유일 것이다. 

저녁엔 한국의 B 선생님 부부와 랜선 술자리를 가졌다. 우리 부부와 가장 가깝고 매년 국내외 여행도 함께 다니던 사이이다. 못 보던 사이에 부쩍 커버린 아이들과도, 고양이와도 인사했다. 11월에 샌디에고에 오기로 했는데 한국 상황이 좋지 않아 걱정이다. 계획대로 이곳에서 만날 수 있게 되길.  

2021년 8월 21일 토요일

연수일기 115. 미술 수업, Back to School Night

8월 18일 수요일. 207일째 날. 아침 등교길엔 여전히 차가 많지만 어제보단 정리가 된 느낌이다. 교통 정리를 하는 선생님들께서 지난 학기보다 고생이 많다.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 지난 학기보다 1시간 늦어졌지만 일찍 하교하는 수요일은 12시 30분으로 동일하다. 오늘은 딸 친구 J의 엄마가 이른 하교 시간을 잊어서 우리가 친구를 집에 데려다 주었다. 지난 학기에 우리도 한 번 잊은 적이 있었는데, 수요일엔 종종 이런 일이 생긴다. 수업이 끝난 뒤 딸을 데리고 노드스트롬 랙에서 운동화와 크록스 신발을 샀다. 다행히 아이 마음에 드는 운동화를 찾을 수 있었다. 내 반바지와 아내 옷도 몇 벌 샀다. 샌디에고에서 6개월 동안 쇼핑을 한 결과 옷과 신발은 노드스트롬 랙에서 사는 것이 제일 낫다는 결론. 

하교할 때부터 피곤해 보이던 딸은 방광염 증상이 생겼다. 어제도 밥을 잘 안 먹었는데 몸이 좋지 않아서였던 것 같다. 개학을 맞아 잔뜩 긴장을 해 탈이 났나 보다. 열이 함께 있었다면 또 코로나 검사를 하고 학교도 쉬어야 할 뻔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항생제를 먹이고 오후엔 낮잠을 재웠다. 다행히 저녁 무렵엔 컨디션이 나아졌다. 한국에서 여러 종류의 약을 준비해 왔지만 그동안 해열제와 소염진통제 외엔 거의 쓸 일이 없었다. 약을 찾을 일이 없는 게 가장 좋겠지만 집에 있는 약만으로 해결될 일이라면 그래도 다행이다.


8월 19일 목요일. 208일째 날. 진행 중인 연구는 초기 분석 후 작업이 지지부진하다. 분석이 거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오늘은 연구의 방향을 바꿔야 하지 않나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상보다 진도가 잘 안나가니 조급한 마음도 드는데, 또 꼬이지 않으려면 좀더 깊은 고민이 필요할 것 같다. 

학교가 끝나고 딸과 미술 스튜디오에 갔다. 이번 학기엔 방과 후 활동을 좀더 해보려 한다. 아이가 미술 수업을 받아보고 싶다고 해 며칠 전부터 적당한 학원을 검색했다. 마침 무료 수업이 가능한 곳이 있어 오늘 참여해 보기로 했다. 한시간 반 수업이 끝나고 아이를 데려오며 수업에 대해 물으니 재미있었다고 한다. 워낙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그것만으로도 나쁘지 않았나 보다. 함께 수업을 받는 아이들이나 선생님과 소통이 많이 이루어지는 분위기는 아닌 것 같아 실제 등록을 할지 고민이 좀 된다. 

오랜만에 저녁은 집 앞 쇼핑몰에서 외식. 지나다닐 때마다 한번 들러봐야겠다 생각한 일본 라면집이다. 분위기는 괜찮지만 음식 맛이 기대 이하였다. 다시 가진 않을 것이다.

저녁엔 딸아이 초등학교에서 Back to School 행사가 있었다. 매년 있는 행사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든 아이들이 학교에 돌아오는 특별한 해인 올해는 초, 중학교 모두 같은 이름의 행사가 있다. 학교와 아이들의 교실을 둘러보고 담임 선생님의 소개 말씀을 들었다. 지난 학기엔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기 전 학교 안을 잠깐 둘러보긴 했지만 교실 안을 자세히 볼 수는 없었다. 잘 정돈된 교실엔 아이들 네 명씩 앉는 책상과 의자, 책장이 있다. 아이들 키에 맞는 책꽃이엔 책이 수북했다. 아이들의 학용품도 선반에 차례대로 정리되어 있었다. 벽면은 아이들이 만든 작품들로 꾸며졌다. 한쪽 벽엔 아이들이 자신의 모습을 본따 만든 종이 인형이 손에손을 잡고 나란히 서 있었다. 인형의 얼굴 색이 다양했다. 

E6 교실

선생님과 학교에 대한 소개가 끝나고 선생님과 잠깐 대화를 했다. 차분한 분위기에서 여유롭게 교실을 둘러보고 선생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한국의 참여 수업은 아이들의 수업 모습을 볼 수 있다는 장점은 있지만, 어수선한 분위기라 선생님과 교감을 나누긴 어렵다. 수업을 준비하는 선생님도 더 힘들 것이다. 책상 위엔 아이들이 남겨놓은 편지가 있었다. 뒷면에 부모가 답장을 하는 란이 있어 짧은 편지를 남겼다. 

2021년 8월 18일 수요일

연수일기 114. Back to School

8월 16일 월요일. 205일째 날. 초등학교 개학이다. 어제 밤에 딸을 재우려 방에 들어가니 엉덩이를 쳐들고 침대에 엎드려 기도를 하고 있었다. 내일 학교에서 잘 할 수 있기를, 새 학년엔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기를 빌었다고 한다. 

- 지난 학기에도 잘 했잖아. 

- 영어도 잘 못하고 미국 친구도 못 사귀었는걸. 

침대에 나란히 누워 볼을 토닥여줘도 평소랑 달리 입술을 비죽거린다. 지난 학기에 담임 선생님을 무척 좋아했는데, 새 선생님에 대해서도 걱정을 하는 것 같다. 충분히 잘 했어. 영어 못하고 단짝 친구 없어도 괜찮아. 새 학년에선 더 즐겁게 지낼 수 있을 거야. 아이를 다독여 재웠다. 

평소엔 몇 번을 깨워야 일어나던 딸은 아침 여섯 시에 잠에서 깼다. 일찌감치 옷을 챙겨입고 아침과 도시락 준비를 하는 엄마를 도왔다. 이번 학기엔 등교 시간이 판데믹 이전과 같아져서 수업 시작 시간인 8시 이전에 교실에 들어가야 한다. 이전보다 일찍 나왔는데도 길이 막혀 학교 주차장까지 가는데 오래 걸렸다. 지금까지 겪은 등교길 중 가장 차가 많은 날이었다. 새로 입학하는 아이들에다 그동안 원격 수업에만 참여했던 아이들까지 더해졌으니 더 붐빌 것이다. 

교문 앞엔 새 학기를 축하하는 장식과 풍선이 걸렸다. 교문 앞은 차와 사람들이 얽혀 어수선했다. 손을 잡고 종종걸음을 치는 아이와 부모들도, 선생님들도 약간은 흥분된 표정이었다. 원격 수업을 하다 일년 반 만에 학교에 온 아이도 있을 것이다. 그런 아이와 부모의 마음이 어떨지. 

중학교 개학은 내일이다. 집으로 돌아와 학부모 포털에 올라온 아들의 시간표를 확인했다. 이번 학기에 수강할 과목은 역사, 체육, 세계사, 수학, 영어, 선택 과목인 오케스트라, 이렇게 여섯 과목이다. 시간표와 교실을 출력해 아들과 학교에 갔다. 개학 전날인 오늘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학교 내부를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을 준다. 행사 이름을 'Mosey Monday'라고 부른다.

학교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삼삼오오 짝을 지은 아이들이 건물을 옮겨다니며 내일부터 들어갈 교실을 찾아다녔다. 교실 안은 볼 수 없었지만 미리 붙여진 과목 라벨과 선생님 이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주 강의동은 두 개였다. 음악과 미술을 위한 강의동, 다목적 강의동이 각각 하나씩 있었다. 체육관은 꽤 넓었다. 카페테리아에선 실내 식사는 안되고 창구를 통해 실외에서 급식을 받는 형태로 운영하려는 듯 했다. 학교 내부와 건물, 시설 모두 깔끔하고 마음에 들었다. 내일의 동선을 확인한 아들은 이전보단 마음이 놓이는 듯 했지만, 무리를 지어 다니는 아이들을 보며 또 조금은 위축된 것 같다. 아들이 좋아하는 인앤아웃에서 점심을 먹었다. 

학교 안을 자유롭게 구경하는 아이들

8월 17일 화요일. 206일째 날. 오늘도 아이들은 일찍 일어났고, 학교로 가는 길엔 어제보다 더 차가 많았다. 중학교 개학날이라 그럴 것이다. 딸을 데려다 주고 연구실에 출근했다. 

Rob과 네 번째 만나는 날이다. 오늘은 그의 집과 가까운 곳에 있는 멕시칸 식당에서 함께 식사했다. 스페인어에 능숙한 그는 멕시코인 종업원과는 자연스럽게 스페인어로 대화한다. 그는 새우 화이타를, 나에겐 브리또를 주문해 주었다. 이전에 한번 얻어먹은 적이 있어 이번엔 내가 계산했다. Rob은 항상 1불짜리 지폐를 가지고 다니며 팁을 잊지 않는다. 미국의 팁 문화에 대해 잠깐 이야기했는데, 그는 20퍼센트의 팁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서비스가 맘에 들지 않는다면 10퍼센트 팁을 주면 된다고 했다. 레스토랑 직원은 최저임금 적용을 받지 않는다는 걸 그와의 대화에서 처음 알았고, 그래서 여전히 팁을 제외한 급여만으론 생활할 수 없다고 한다. 캘리포니아 최저임금은 13불 정도로 미국 내에선 높은 편이다. 연방 최저임금은 7.25불인데 21개 주가 연방 최저임금을, 약 10개 주가 7.25-10불 정도를, 나머지는 10불 이상을 적용한다. 10-13불로 계산하면 연봉 2만-2만7천불이 된다. 이 돈으론 샌디에고와 같은 도시에선 가족과 함께 살 수 없을 것이다. 

Rob의 아들인 Sam이 뒤늦게 도착해 점심을 함께 먹었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가 있는 Sam은 독립심이 강해 혼자 움직이는 걸 좋아한다고 했다. 나에 대해선 아버지에게 미리 들었나 보다. 내 이름을 부르며 하이파이브로 반갑게 첫 인사를 했다. 일주일에 이틀 마트에서 일을 하는데 오늘은 쉬는 날이라고 한다. 식사 후에 Rob이 동네의 커뮤니티 가든으로 안내해 포도를 따 주었다. 한국의 주말 농장과 비슷한 개념인 것 같은데, 30가구 정도가 참여하고 있다고 한다. 

캘리포니아식 주말 농장

연구실에 들렀다가 딸을 픽업해 집으로 돌아왔다. 비슷한 시간에 아들도 하교. 중학교 첫날 일정을 마친 아들은 어제보단 표정이 편해 보였다. 큰 문제는 없었나 보다. 아침 등굣길에 다른 고등학교 입구로 잘못 들어가서 헤메다 물어물어 제 학교를 찾아간 것 빼고는. 둘은 전혀 다른 학교이고, 이웃해 있긴 하지만 학교가 워낙 넓은지라 입구는 한참 다르다. 어제 학교 답사를 갈 때는 차를 타고 가서 오늘 걸어가는 길이 익숙치 않았나 보다. 첫날이라 수업은 간단한 소개 정도로 이루어졌다고 하는데, 각 과목마다 있었던 공지 사항을 다 적지 못하고 두 과목만 적어 왔다. 처음엔 나와 아내가 매일 확인을 해야할 듯. 모든 수업이 구글 클래스룸을 이용하는데, 학교에서 정한 아이디를 받게 되면 조금 더 수월해질 것 같다. 

2021년 8월 16일 월요일

연수일기 113. 92130 cares

8월 15일 일요일. 204일째 날. 한 달쯤 전 집을 찾아온 자원봉사자를 통해 아이들 새 학기 학용품 지원 프로그램을 알게 되었다. 처음엔 신경을 쓰지 않고 그냥 넘겼다. 두 번째 방문을 받고는 호기심이 생겨 알려준 웹페이지에 이메일 주소와 아이들 학년 등 간단한 정보를 적었다. 이후 연락이 없어 잊고 있었는데, 며칠 전 프로그램을 통해 연결된 자원봉사자 분이 아이들 백팩과 학용품을 가져다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막상 연락을 받고 보니 좀 당황스러웠다. 이런 지원을 받아도 되나 싶기도 했는데, 이미 쇼핑을 하고 휴가 스케줄을 피해 가져다 줄 날짜까지 확인하니 안 받겠다 하기도 애매한 상황이 되어 버렸다. 오늘 물품을 받기로 했다. 그냥 간단한 학용품 정도가 아닐까 생각했다. 

집 앞에서 만난 봉사자 분은 남자 아이 둘의 엄마였다. 아이들 둘도 함께 데리고 왔다. 백팩은 지금 아이들이 쓰고 있는 것보다 더 좋은 제품이었고, 집에 돌아와 백팩을 열어보니 노트, 펜, 연필, 색연필, 자, 컴퍼스, 필통 등 학교에서 쓸만한 학용품이 종류별로 가득했다. 마침 아쉬웠던 물통까지 있었다. 뜻밖의 선물을 받은 아이들은 좋아했지만 나와 아내는 마음이 더 불편해졌다. 그냥 중간에라도 받지 않겠다고 할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봉사자 분께 다시 감사 문자를 보냈다. 우리 아파트 정도면 소득이 아주 낮은 가족은 없을텐데 왜 여기까지 이런 안내를 해주었을까 궁금해졌다. 생각해보니 우리 아파트 단지 옆에 임대 주택 단지가 있어서가 아닌가 싶기도 하다.(임대 주택이라고 해도 겉으로 보기엔 우리 아파트와 거의 다를 바가 없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학용품 나눔은 92130 cares라는 프로그램의 일환이었다. 92130 zip code 지역의 자치 운동으로, 자원봉사를 통해 기부 활동과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을 연결해주는 활동을 하는 것 같았다. 역시 아무 생각 없이 신청을 할만한 게 아니었던 것 같다. 조만간 아이들에게 학용품을 선물한 분에게 한국 음식이라도 만들어 선물해야 하지 않을까 싶고, 우리도 이곳에서 진짜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도울 기회를 찾아봐야겠다. 

저녁을 먹고 솔라나 비치에 갔다. 샌디에고에 와서 가장 자주 왔던 해변이다. 개인적으론 샌디에고 해변 중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이곳 해변에서 보는 일몰 풍경은 모두 훌륭하지만, 그중에서도 솔라나 비치의 일몰은 특별하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과 구름 빛깔, 반짝이는 파도, 바닷물에 젖어 반들거리는 모래사장. 멀리 해변을 따라 병풍처럼 선 황톳빛 절벽 아래로 파도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를 보고 있자면 이곳이 현실 세계가 아닌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아이들은 샌드 크랩을 잡으며 놀았다. 

연수일기 112. 다시 쿠야마카 호수

8월 12일 목요일. 201일째 날. 디즈니랜드에 가기로 했던 날인데 최근의 후기들을 보고 계획을 바꿨다. 날씨가 덥고 사람도 많아 기다리는 데에 시간을 많이 쓰고 힘들다고 한다. 9월 이후 날씨가 선선해지면 가기로 했다. 디즈니랜드 티켓을 사놓고 방문 예약을 했다가 취소만 두 번째이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도 그렇고 가긴 가야할텐데. 테마파크를 썩 좋아하지 않는데다, 디즈니랜드와는 어째 궁합이 잘 안 맞는 느낌.

대신 쿠야마카 호수에 다녀오기로 했다. 5월에 갔을 때 워낙 좋아서 언젠가 다시 와보기로 했었다. 평일이라 그런지 그때보다 사람이 적어 한적했다. 낚시 용품 샵에서 모터보트를 빌리고 이번엔 낚싯대도 하나 샀다. 퍼밋은 아들 용으로 4불을 내고 하나만 구입했다. 미성년자의 경우 라이센스 구입도 필요없는 듯. 이번엔 주차료 10불도 따로 받지 않았다. 

한적한 호수

지난 달엔 기온이 화씨 100도까지 올라갔었다고 하는데, 오늘은 한낮에 85도 정도. 약간은 덥게 느껴질 수도 있는 기온이지만 선선한 바람이 많이 불어 보트를 타고 놀기 딱 좋았다. 호수 가운데에서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입질이 전혀 없었다. 밖으로 나와 피크닉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라면을 끓이는 동안 아이들은 낚싯대를 들고 데크에 가서 놀았다. 라면이 다 될 때쯤 아이들이 소리를 지르며 흥분해 달려오는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큰 베스를 잡을 뻔 했는데 줄을 감다가 도망가버렸단다. 이곳에선 송어와 베스가 잡힌다고 한다. 

낚시 중인 청소년

보트를 타고 호수를 좀더 돌며 낚시대를 몇 번 더 던졌지만 입질이 없었다. 돌아올 채비를 할 때쯤엔 벌써 네 시간이 훌쩍 지나버렸다. 아쉽지만 첫 월척의 기쁨은 다음 기회에 맛보는 걸로. 


8월 13일 금요일. 202일째 날. 다음 주 개학을 맞아 딸아이 반과 담임 선생님이 정해졌다. 이름으로 검색을 해보니 인상이 좋은 여자 선생님이었다. 여자 선생님을 좋아하는데 다행이다. 

L선생님 가족과 바베큐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한달 전 막 입주를 했을 때 우리 집에서 식사를 하고 두 번째이다. 고기에 비빔국수까지 준비를 해오셔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이들은 한참 수영을 했다. 최근에 한국 분들이 많이 들어와선지 수영장에서 노는 아이들 대부분이 한국 아이들이었다. 식사 후 L선생님 집도 구경할 겸 집으로 자리를 옮겼다. 요즘 이케아에 재고가 없는 상품이 많아 가구를 사는데도 애를 먹는다는데, 며칠 전에야 식탁을 들여왔다고 했다. 오랜만에 밤 늦은 시간까지 수다를 떨며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8월 14일 토요일. 203일째 날. 오늘은 특별한 일 없이 집에서 쉬었다. 수요일에 코스트코에서 사온 식품들을 정리하다 내가 냉장 보관을 해야 할 파스타를 냉동실에 넣었었나 보다. 전자렌지에 간단히 데워 먹을 수 있는 제품이었는데, 꽁꽁 얼어버린 걸 녹히고 요리하느라 아내가 괜한 애를 먹었다. 

내년 한국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날짜는 공식 연수 일정의 마지막 날인 1월 31일이다. 이곳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마일리지를 사용했지만 귀국편은 비지니스석이다. 올 때보다 짐이 많을 것 같기도 하고, 돌아갈 때 마음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국에서의 일상으로 복귀를 앞두고는 편안한 귀국길이 되었음 싶었다. 아직 5개월이 넘게 남아있지만, 귀국 날짜가 정해졌다고 생각하니 기분이 묘하다. 

저녁을 먹고 공원을 산책했다. 아들이 입학할 중학교 앞에도 가 보았다. 아들은 새 학교 입학을 앞두고 또 잔뜩 긴장을 한 눈치이다. 다음 주 월요일 정식으로 학교 안을 구경할 수 있는 시간에 다시 와서 찬찬히 둘러보아야겠다. 

2021년 8월 12일 목요일

연수일기 111. 선물, 중학교 크롬북

8월 10일 화요일. 199일째 날. Nova에게 선물을 주었다. Nova는 NIH 펀드로 조성된 T32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이다. T32 프로그램 관련 연구팀이 주로 이용하는 연구실이 현재 내가 출근하는 곳이고, 그 역시 주로 이곳에서 일한다. 내 연구실 자리도 조정해주었고, 매주 있는 A 교수님 연구 미팅 알림도 Nova를 통해 받는다. 매주 화상 미팅을 통해 만나고 있긴 하지만, 연구실 출근 첫 날에 만나 열쇠를 받은 뒤 직접 얼굴을 본 건 오늘이 두 번째이다. 진즉 선물을 주려고 그동안 몇 차례 그의 사무실을 노크했지만 재택과 사무실 근무가 섞인 상태라 만나질 못했다. 오늘은 미리 약속을 하고 만날 수 있는 시간을 맞췄다. 서울의 풍경을 담은 일러스트가 있는 다이어리와 손부채를 선물했다. 한국을 떠날 때 준비해 온 기념품을 누군가에게 선물한 건 처음이다.(A 교수님께는 내가 쓴 책을 드렸었다.) 건물 에어컨 온도가 너무 낮아 애를 먹고 있었는데, 고맙게도 다른 비어있는 방으로 옮길 수 있도록 해주었다. 새 방은 큰 창이 있어 햇볕이 많이 들어와 온도가 더 높았다. 창이 있는 것도, 출근할 때 겉옷을 가져가지 않아도 되는 것도 감사한 일이다. 

연수 기간이 절반을 넘기면서 남은 기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했다. 캘리포니아는 일차 의료 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고 이 분야에 관심도 많다고 알고 있다. 실제 현장의 진료를 볼 수 있다면 이러한 시스템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사실 처음 이곳에 올 때부터 외래 진료를 참관하길 희망했는데 판데믹으로 쉽지 않았다. UCSD와 연계된 외부 클리닉을 함께 볼 수 있다면 더 좋을 것이다. A 교수님에게 외래 진료 참관이 가능할지를 다시 한 번 문의했고, 담당자에게 내용이 전달되었다. 답을 기다려 봐야겠다.

화요일 점심은 당분간 EIA practice 시간이다. 오늘이 Rob과의 세 번째 만남이었다. 지난 주엔 멕시코에 교환 학생으로 머무는 딸을 데려다 주고 왔다고 한다. 그와의 대화에선 멕시코 이야기가 빠지지 않는다. 과나화토 Guanajuato 라는 아름다운 도시에 대해서도 처음 알았다. 이곳에 있는 남은 기간 동안 멕시코에 가볼 수 있을까. 다음 주엔 멕시코 음식점에서 만나기로 했다.

Rob이 보내준 Guanajuato의 사진

저녁엔 집에서 김밥을 싸먹었다. 여행을 할 때 음식다운 음식을 먹질 못한 아이들이 특히 즐거워했다. 식사 후 오랜만에 공원을 산책했다. 집 앞 공원은 언제 와도 좋지만, 여름이 되니 밤 산책이 더 즐겁다. 초승달이 뜬 하늘이 참 예뻤다. 

공원에 뜬 초승달

8월 11일 수요일. 200일째 날. 출근하는 길에 아들이 새로 입학할 중학교에 들러 크롬북을 받았다. 이번 학기엔 모든 학생들에게 새 크롬북이 지급된다고 했다. 월요일이 새 학교 오리엔테이션이었는데 여행 때문에 참석하지 못했다. 다음 주 화요일 개학을 앞두고 아들이 중학교 시스템에 쉽게 적응을 할 수 있을까 걱정이 좀 된다. 시간표는 8시20분 부터 오후 2시 50분까지 빡빡하게 짜여졌다. 요일마다 다르지만 쉬는 시간은 기본 5분, 점심시간은 35분이니 지금까지보다 더 바쁘게 뛰어다녀야 할 것이다.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하지 못한 학생을 위해 개학 전날인 다음 주 월요일에 학교 내부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준다고 하니 아들과 함께 다시 와야겠다. 

2021년 8월 10일 화요일

연수일기 110. 그랑테턴 옐로스톤 여행- 강가 피크닉, 다시 솔트레이크를 거쳐 집으로

8월 8일 일요일. 197일째 날. 체크아웃을 하고 아침 식사를 할 장소로 차를 몰았다. 메디슨 캠프 그라운드 쪽으로 올라오다 보면 Fountain paint pot을 지나 네즈페르세 강이 파이어홀 강에 합쳐지는 곳에 어제 보아둔 적당한 장소가 있다. 평원의 분위기를 느끼며 피크닉을 하기 좋은 곳이다. 빵과 과일, 치즈, 요플레 등으로 간단히 식사를 하고 강물에 발도 담그며 여유로운 시간을 즐겼다. 평화로운 분위기가 좋았다. 

옐로스톤에서 떠날 시간이 되니 아쉬움이 컸다. 가이저로 대표되는 온천 지형으로 유명하지만, 그 외에 너른 평원과 강, 계곡과 폭포, 호수 등 다채로운 자연 풍경을 볼 수 있고 바이슨과 엘크 등 야생 동물도 많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이 옐로스톤을 제일의 국립공원으로 꼽는 이유일 것 같다. 

여행을 즐겁게 해주었던 로컬 맥주 기념 사진

돌아오는 길에 아이다호 펄스 코스트코에 들러 주유를 하면서 익숙한 핫도그와 치킨베이크로 점심을 먹었다. 옐로스톤에서 먹은 어떤 식사보다 나았다. 솔트레이크까지 다시 다섯 시간 반이 걸렸다. 이 도시는 볼거리가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나마 대표적인 관광지인 템플 스퀘어에 들러볼까 했는데 마침 공사 중이라 볼 수 없었다. 한국 식당 한 곳을 찾아 감자탕과 냉면, 짬뽕을 시켰다. 오랜만의 한식이라 잘 먹었지만 맛에 좋은 점수를 주긴 어려웠다. 

오늘은 360마일을 운전했다. 숙소는 공항 옆에 있는 더블트리 바이 힐튼 호텔이다. 호텔은 평범했지만 오랜만에 깔끔한 호텔에 몸을 누이니 여행으로 쌓인 피로가 풀리는 듯 했다. 


8월 9일 월요일. 198일째 날. 솔트레이크 공항에 렌트카를 반납하고 체크인을 했다. 탑승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공항의 Market street grill에서 아침을 먹었다. 오믈렛 등 일반적인 아침 식사 메뉴의 맛이 예상 외로 훌륭했다. 이곳은 씨푸드 레스토랑인데, 메인 디쉬보다 아침 식사가 더 나아 보였다. 

돌아오는 비행기의 출발이 지연되어 1시간 20분을 더 기다렸다. 지연에 대한 안내를 제대로 해주지 않아 더 지루한 시간이었다. LA에 도착하면 란초 팔로스 베르드 근처로 가 식사를 하려고 했었는데 도착 시간이 오후 세시가 넘어 계획을 바꿨다. 교통 정체가 있는 LA 안에서 다른 곳에 들르긴 힘들 것 같아 집으로 가는 길에 어바인에 들러 저녁을 먹기로 했다. 호텔 셔틀을 타고 주차를 했던 힐튼 호텔로 이동했다. 일주일 동안 비워두었던 우리 차에 타니 벌써 집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하다. 대형 세단을 렌트했음에도 불구하고 실내 공간과 운전의 편의성은 미니밴이 훨씬 낫다. 차를 오래 탔을 때 피로감도 훨씬 덜하다. 이곳에서 왜 미니밴의 인기가 많은지 다시 한 번 알 것 같았다.

이른 저녁은 어바인의 솥뚜껑 삼겹살 집에서. 한국인이 많다는 어바인은 한국 식당이 모인 몰의 생김새도 샌디에고보다 세련되었다. 샌디에고의 콘보이에도 한국식 고깃집이 있지만 무언가 부족한 느낌인데, 이곳은 한국 그대로의 느낌이었다. 덕분에 여행 동안의 외식 빈곤을 한방에 해결. 미국에 온 이래 이렇게 배가 터지도록 먹은 건 처음이었다. 

이번 여행에선 1250마일을 운전했다. 그랜드 써클 2천마일, 요세미티와 1번 도로 1500마일 로드 트립을 하고 나니 웬만한 여행은 할 만하게 느껴지는 장점이 있다. 

2021년 8월 8일 일요일

연수일기 109. 그랑테턴 옐로스톤 여행- 노리스 가이저, 그랜드 프리스마틱 스프링, 그랜드 가이저

8월 7일 토요일. 196일째 날. 일찍 일어난 아내가 랏지 카페테리아에서 아침을 사왔다. 지금까지 먹어본 에그 스크램블 중에서 최악이었다. 이틀 전 잭슨 레이크 랏지 레스토랑의 아침 식사가 그리워졌다. 나중에 실내에서 식사가 가능하게 되면 좀 나으려나. 

오늘 첫 목적지인 노리스 가이저 Norris Geyser로 가는 길에 Gibbon falls을 들렀다. 어제 보았던 캐년의 폭포에 비하면 아주 작은 크기이다. 노리스 가이저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길은 벌써 차들이 줄을 서 있었다. 주차장이 작아 도로 갓길에 overflow parking을 하는 차들도 많다. 그래도 아침이라 기다리는 시간이 오래 걸리진 않았다. 전국구 국립공원인 옐로스톤에선 미국 전역에서 온 차들을 볼 수 있다. 요세미티에선 캘리포니아 번호판을 단 차들이 대부분이었다. 각양각색의 번호판을 보면 옐로스톤이 미국인에게 얼마나 사랑을 받는 국립공원인지 느끼게 된다. 로드트립을 할 때면 종종 아이들과 다른 주에서 온 자동차 번호판을 찾는 놀이를 한다. 옐로스톤엔 워낙 다양한 번호판이 많아 이번엔 가장 멀리서 온 차를 찾았는데 이곳 주차장에서 메인, 알라스카, 하와이 주의 번호판을 찾았다.  

노리스 가이저는 Back basin과 Porcelain basin의 두 지역으로 나뉜다. 역시 나무 데크를 따라 걸으며 다양한 모양의 가이저를 볼 수 있다. 사람이 많지 않고 데크 길이 예쁘게 조성되어 있어 즐겁게 걸었다. Steamboat란 이름이 붙은 가이저는 90미터가 넘는 높이로 분출한다고 한다.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의 두세 배 높이이다. 한번 분출하면 24시간 동안 지속된다고 하는데, 분출 간격은 4일에서 50년까지도 된다고 한다. Minute 가이저는 이전엔 1분에 한 번씩 분출을 했지만 사람들이 던진 돌이 입구를 막아 지금은 훨씬 더 낮은 높이로 불규칙하게 분출한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옐로스톤의 가이저에 돌이나 동전을 던지는 행위는 엄격하게 금지되어 있다.

호젓한 데크 길

이곳에서부터 그랜드 프리스마틱 스프링까지 가는 길은 주변 경치가 좋다. 평원을 굽이굽이 흐르는 강이 평화로운 느낌을 준다. 중간중간 피크닉 에어리어도 있어 잠시 쉬어가도 좋을 것 같다. 191번 도로를 타고 내려오다 파이어홀 캐년 로드로 빠지면 파이어홀 강변을 따라 달리다 중간에 파이어홀 폭포도 볼 수 있다. 

그랜드 프리스마틱 스프링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작은 다리를 통해 파이어홀 강을 건넌다. 둥글게 이어진 데크 길 주변에 네 개의 가이저가 있고, 그 중 하나가 유명한 그랜드 프리스마틱 스프링이다. 다른 가이저에 비해 커서 데크에서는 가이저 전체를 보기 어렵다. 이곳 가이저들은 물 색깔이 유독 푸른빛을 띠었다. 그랜드 프리스마틱 스프링을 내려다보려면 조금 더 남쪽으로 내려와 Fairy falls 트레일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트레일을 따라 15분 정도 걸어서 언덕을 올라가야 한다. 오버룩에서 내려다본 가이저의 모습은 사진에서 보던 그대로였다. 붉은 용암이 흐르는 화산처럼 보이기도 하고, 어찌보면 타오르는 태양처럼 보이기도 했다. 

오버룩에서 본 그랜드 프리스마틱 스프링

숙소로 돌아와 이른 저녁을 먹고 올드 페이스풀 지역을 산책했다. 강을 따라 걸으며 수십 개의 가이저를 볼 수 있다. 마침 그랜드 가이저의 분출 시간이 가까워 가이저 앞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예상 시간은 8시 15분이었는데 1시간 빨리 또는 늦게 분출할 수 있어 여유를 두고 기다려야 한다. 7시 30분쯤 가이저 앞에 도착해 자리를 잡았다. 분출을 예측할 수 있는 가이저 중에선 가장 높게 분출하는 가이저이다. 예상 시간을 5분 정도 지나 분출이 시작되었다. 50미터가 넘는 높이의 물기둥이 치솟는 모습은 장관이었다. 

올드 페이스풀 저녁 산책

저녁 시간에 여유롭게 산책을 하며 가이저 분출을 볼 수 있어 좋았다. 옐로스톤 여행을 할 때는 하루이틀 정도는 올드 페이스풀 지역에 숙소를 잡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원하는 날짜에 예약을 할 수 있을지가 문제지만. 

2021년 8월 7일 토요일

연수일기 108. 그랑테턴 옐로스톤 여행- 맘모스 스프링스, 그랜드 캐년, 올드 페이스풀

8월 6일 금요일. 195일째 날. 숙소를 나와 가디너 내의 마트에서 간식 거리를 사고 근처 커피샾에서 카페인을 보충했다. 옐로스톤 북쪽 게이트로 들어가기 전, 루즈벨트 아치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루즈벨트 대통령이 아치의 초석을 놓아 이렇게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가디너와 북쪽 게이트는 몬태나 주에 속하며, 게이트를 지나 5분만 가면 다시 와이오밍 주이다.

오늘 처음 들를 곳은 맘모스 스프링스 Mammoth Hot Springs이다. 뿜어져 나온 온천수가 흐르면서 물에 포함된 석회질이 굳어 계단식 테라스 모양이 만들어진 곳이다. 아래쪽의 테라스를 빙 둘러 보았다. Devils thumb, Pallete springs, Minerva terrace 등 멋진 이름이 붙은 지형이다. 예전에는 많은 온천수가 흘렀지만 지금은 물이 말라 계단을 따라 넘쳐흐르는 모습은 볼 수 없다. 메인 테라스의 Mound spring에선 비교적 많은 온천수가 김을 내며 흐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곳에서 가장 인상깊었던 지점이다. 개인적으로 이곳은 옐로스톤의 온천 지역 중에선 가장 평범하게 느껴졌다. 터키의 파묵칼레와 비교되기도 하는데, 그만큼은 아닌 것 같다. 어제 웨스트 썸을 보지 않고 만약 북쪽 게이트로 들어와 처음 이곳을 봤다면 느낌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Mound Spring

남쪽으로 내려오며 Sheepeater cliff와 Roaring mountain을 들렀다. Sheepeater cliff란 이름만 듣고 어떤 곳일지 상상하기 어려웠는데, 바위 기둥으로 이루어진 절벽이었다. 50만년 전의 현무암으로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절벽이라는 안내판이 없었다면 누군가 일부러 원통 모양 바위들을 층층이 쌓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아이들은 절벽을 타고 오르내리고 어른들은 아래에서 피크닉 준비를 하는 모습이 자연스럽고 즐거워 보였다. 절벽 가까이 강이 흘러 강물에 손발을 담글 수도 있었다. Roaring mountain에선 산등성이 곳곳에 포탄을 맞은 것처럼 증기가 분출하는 분화구를 볼 수 있었다. 증기가 뿜어져 나올 때는 으르렁거리는 것과 같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한다. 

Sheepeater Cliff

공원 동쪽의 Canyon village에 도착해 점심을 샀다. 캐년 지역으로 들어가기 전, Wapiti lake 피크닉 에어리어에서 점심을 먹었다. 미국의 국립 공원엔 곳곳에 쉬면서 음식을 먹을 수 있는 피크닉 장소가 있어 좋다. 옐로스톤은 공원 내에 적당한 식당이 없고 랏지의 식당 음식들도 변변치 않아 빌리지의 스토어에서 간단히 먹을 음식들을 구입해 피크닉 장소에서 먹는 것이 나았다. 

Upper falls view 앞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Upper fall을 구경했다. 생각보다 폭포 규모가 컸다. 계단을 내려가 Lower fall을 가까이서 볼 수 있는 Uncle Tom's trail은 닫힌 상태였다. 사우스 림 트레일을 따라 Artist point 까지 갈 수 있지만, 다시 주차장으로 돌아와 차를 타고 좀더 가까이 가기로 했다. 5분 정도만 가면 Artist point 주차장에 도착한다. 전망대에 올라 앞에 보이는 광경을 보고 저절로 입이 벌어졌다. Lower fall과 아래 계곡이 한눈에 들어왔다. 너무나 비현실적인 풍경이었다. Artist point에 대한 정보나 사진을 미리 보지 않길 잘한 것 같다. 요세미티에도 같은 이름의 장소가 있다. 화가의 그림같은 풍경을 볼 수 있는 곳에 비슷한 이름을 붙이겠지만, 이런 이름이 붙은 장소 중에 스케일에선 단연 압도적이지 않을까. 

Artist Point

오늘 숙소인 올드페이스풀 스노우 랏지에서 체크인을 했다. 연박이 가능했던 날짜로 어렵게 1 킹베드룸과 2 퀸베드룸을 각각 일박씩 예약했는데, 킹베드룸의 경우 4인 가족이 자긴 어렵다고 한다. 예약 시에 인원 조건을 걸고 검색이 되는 방을 선택했기에 익스트라 베드라도 있을거라 생각했는데 아닌 것 같았다. 다행히 프론트에서 2 퀸베드룸 이틀로 변경해주었다. 4인 가족에겐 퀸베드룸이 적당하고 가격도 더 싸다. 

프론트에 올드 페이스풀 지역 가이저의 예상 분출 시간이 적혀 있었다. 마침 랏지 앞의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가 분출할 시간이 되어 가이저 앞으로 나갔다. 벌써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여러 가이저 중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는 비교적 자주, 그리고 예측 가능한 시간에 분출한다. 그래서인지 분출 시간이 되면 사람이 가장 많이 모인다. 1-2시간 마다 30-50미터 정도 높이의 물줄기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예측 시간인 5시 50분이 오분 정도 지나자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연이어 탄성을 질렀다. 

올드 페이스풀 가이저 분출 모습

이곳에는 올드 페이스풀 랏지, 올드 페이스풀 인, 올드 페이스풀 스노우 랏지, 이렇게 세 개의 큰 숙소가 있다. 스노우 랏지가 가장 최근에 지어졌는데 그래봐야 1999년으로 이십 년이 넘었다. 룸 내부의 가구와 집기 상태는 양호했다. 하지만 청소 상태가...... 낡은 카페트에서 날리는 먼지도 많았다. 각 숙소마다 다른 식당이 있는데 현재는 대부분 내부에서 식사를 할 수 없었다. 가장 괜찮아보이는 랏지의 카페테리아에서 저녁을 사왔다. 이곳의 바베큐 메뉴가 그나마 가장 나아 보였는데, 소고기나 돼지고기는 다 떨어졌고 닭고기만 살 수 있었다. 숙소에 도착할 때 밖에서 립을 굽는 모습을 보았던 아이들은 급 실망. 옐로스톤 안에서 제대로 된 음식을 먹길 기대하는 건 무리일 듯 하다. 

2021년 8월 6일 금요일

연수일기 107. 그랑테턴 옐로스톤 여행- 잭슨 레이크, 웨스트썸

8월 5일 목요일. 194일째 날. 아침 식사를 위해 잭슨 레이크 랏지 레스토랑인 Mural 룸을 며칠 전에 미리 예약해 두었다. 2층 홀에서 보는 아침 풍경은 어제와 다른 느낌이었다. 아침 식사는 호텔식 뷔페였는데, 덕분에 익숙하고 편안하게 식사를 했다. 식사 후 산책을 할 겸 랏지 옆의 언덕으로 오르는 짧은 트레일을 걸었다. 언덕 위에서 보이는 그랑테턴 산맥이 햇살을 받아 눈부시게 빛났다. 지금까지 경험한 국립공원 안팎의 몇몇 숙소 중 잭슨 레이크 랏지가 단연 가장 좋았다. 체크아웃을 하면서도 아쉬움이 진하게 남았다. 언젠가 이곳에 다시 올 수 있을까.

잭슨 레이크 랏지의 홀에서 보이는 풍경

아침 산책 중에 본 그랑테턴

숙소를 나와 콜터 베이 Colter Bay 빌리지로 향했다. 이곳에선 보트를 렌트해 탈 수 있다. 가능하다면 모터 보트를 타려 했는데 호수 수위가 너무 낮아 현재는 카약이나 카누만 가능하다고 했다. 수위가 낮아서인지 베이 기슭 주변엔 조류가 많고 물비린내도 났다. 멀리 나가면 물이야 맑겠지만, 카약과 카누는 세콰이어 캠프에서 원없이 탔던지라 보트는 타지 않고 대신 호수 주변을 걷기로 했다. 잭슨 레이크 주변으로 트레일 코스가 많은데, 그중 짧게 다녀올 수 있는 레이크 쇼어 트레일을 선택했다. 길 양쪽으로 높은 나무들이 병풍처럼 줄지어 섰고, 나무 사이로 호수가 보이는 예쁜 길이었다. 

레이크 쇼어 트레일

빌리지로 돌아와 제너럴 스토어에서 점심 거리를 사 피크닉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빵과 치킨, 요플레, 과일 등으로 배를 채웠다. 식사가 끝날 무렵 후드득 비가 떨어지기 시작한다. 얼른 자리를 걷고 차에 올랐다. 무지개라도 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를 했는데 하늘이 잔뜩 흐려 어려울 것 같았다.

옐로스톤 사우스 게이트를 통과해 그랜트 빌리지의 비지터 센터에 차를 세웠다. 이곳 비지터 센터는 문을 닫았고 국립공원 스탬프도 없었다. 주유만 하고 옐로스톤의 첫 목적지인 웨스트 썸 West Thumb으로 이동했다. 기름 가격이 공원 밖보다 더 쌌다. 캘리포니아에 비해 와이오밍의 기름 값이 워낙 싸긴 했지만, 웨스트 옐로스톤이나 잭슨 등 공원 근처 도시는 상대적으로 기름 값이 높았다. 옐로스톤에 올 때는 굳이 주변 도시에서 주유를 할 필요가 없을 듯 하다. 

옐로스톤은 미국 최초이자 최대의 국립공원이다. 면적은 충청남도 보다 약간 크고 서울과 비교하면 열네 배가 넘는 엄청난 크기이다. 대부분은 와이오밍 주에 있지만, 몬타나와 아이다호 주에도 조금씩 걸치고 있어 옐로스톤을 둘러보다 보면 세 개의 주를 넘나들게 된다.  

웨스트 썸 가이저 베이슨은 옐로스톤 호수와 인접한 온천 지대로, 작은 가이저 여러 개가 모여있다. 옐로스톤에는 이런 온천 지대가 군데군데 있고, 각각의 지대를 옮겨다니며 구경하게 된다. 대부분 가이저 사이로 나무 데크 산책로가 만들어져 있다. 웨스트 썸은 옐로스톤 호수를 함께 볼 수 있어 예쁘기도 하고 조금은 독특한 느낌도 준다. 이런 지형을 처음 본 아이들이 신기해 했다. 데크를 걷다가 사슴 두 마리를 만나기도 했다.

블랙 풀

다시 차를 타고 호수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다 보면 Mud Volcano를 만난다. 이곳은 진흙물 가이저가 많다. 영화의 한 장면처럼 부글부글 끓는 진흙 연못을 볼 수 있다. Dragon's mouth spring이란 동굴에선 동굴 깊숙한 곳 온천에서 뿜어져나오는 가스가 용 울음과 같은 소리를 낸다.  

Dragon's mouth spring

북쪽으로 좀더 가면 Hayden valley 헤이든 밸리이다. 길 양쪽으로 널찍하게 펼쳐진 초록 평원을 유유히 흐르는 옐로스톤 강을 볼 수 있다. 바이슨이 많이 나타나는 지역이기도 하다. 아니나다를까 평원 곳곳에 무리를 지어 풀을 뜯는 커다란 소들이 보였다. 소떼에 막혀 정체가 생겨 30분 정도 움직이지 못하고 서있기도 했다. 도심 한가운데라면 지루할 따름이었겠지만, 차 바로 옆을 지나가는 바이슨들을 구경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안녕, 바이슨!

맘모스 핫 스프링스 지역을 지나며 법원 앞 잔디밭에서 놀고있는 엘크 두 마리를 만났다. 내일 아침에 다시 이곳에 올 것이다. 북쪽 게이트를 통해 공원 밖으로 나왔다. 오늘 숙소는 가디너에 있다. 오늘은 120마일을 운전했다. 옐로스톤 북쪽 게이트 앞엔 가디너, 서쪽 게이트 앞엔 웨스트 옐로스톤이 있고, 남쪽으론 그랑테턴을 지나 잭슨이 있다. 모두가 옐로스톤 관광의 거점 도시이다. 직접 와 보니, 만약 옐로스톤을 다시 온다면 솔트레이크가 아닌 잭슨으로 가는 항공편을 이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