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7월 13일 화요일

연수일기 93. 썸머 캠프 시작, 앤시니터스 도서관

7월 12일 월요일. 170일째 날. 오늘부터 아이들의 썸머 캠프 시작이다. 

딸은 Boys & Girls club의 요리 캠프, 아들은 써핑 캠프 일정이다. 두 캠프 모두 엔시니터스에 있고 시작 시간이 30분 간격이라 차례로 데려다 주면 된다. Boys & Girls의 썸머 캠프는 각 지점 별로 따로 진행하는데, 요리 캠프와 같은 특별한 주제의 캠프는 여러 지점 중 한 개의 지점에서만 열린다. 딸아이는 초등학교 방과후 수업으로 요리 교실에 참여한 적이 있다. 이곳에선 어떤 요리를 만들지 기대를 하면서도, 강사의 영어 설명을 못 알아들으면 어쩌나 하고 걱정을 하는 눈치였다. 

Griset branch


캠프 장소인 엔시니터스의 Griset branch에 딸을 내려 주고 써핑 캠프 장소인 문라이트 비치로 향했다. 아침의 문라이트 비치 풍경은 저녁과 또 달랐다. 비치발리볼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고, 모래밭은 각종 써핑 캠프 천막으로 가득했다. 천막마다 수트를 입은 아이들이 와글와글 모여 있었다. 아들이 등록한
 Leucadia Surf School 담당자를 통해 간단한 오리엔테이션을 들은 후 아이들은 캠프 천막이 있는 해변으로 자리를 옮겼다. 아이들을 데려온 엄마 아빠들 중 많은 이들이 비치 의자와 돗자리를 가져왔다. 아이들이 캠프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동안 비치에서 피크닉을 즐기는 부모들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써핑 클럽 아이들

아이들은 써핑, 어른들은 피크닉


아이들을 다시 데리러 갈 때까지 앤시니터스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했다. 바닷가에 있는 이 도서관에 대한 이야기는 종종 들었지만 최근까지 모든 도서관이 닫혀있어 와 보질 못했다. 그동안 들렀던 다운타운, 카멜밸리, 란초 페나스퀴토스 도서관은 샌디에고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고, 이곳 앤시니터스 도서관은 샌디에고 카운티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이다. 도서관 카드도 각각 따로 만들어야 한다. 

도서관 건물도, 내부도 너무나 아름다웠다. 한 개의 중앙 홀과, 홀을 둘러싼 교육실, 회의실 등으로 구성된 도서관의 규모는 아담하다. 홀에는 어른 키 정도의 야트막한 서가가 줄지어 있고, 입구에 들어서면 보이는 전면 벽은 모두 유리로 되어 앞 바다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 서가들 사이에 컴퓨터 데스크들이 있고, 책을 읽거나 노트북 작업을 할 수 있는 데스크와 소파들도 적당히 있다. 통유리 건너편 파티오에도 테이블과 의자들이 있어 바다 바람을 쐬며 책을 읽을 수도 있다. 홀의 한켠엔 아이들 책과 아이들이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따로 있다. 도서관 입구에 있는 작은 서점에선 베스트셀러와 중고 책들을 아주 싼 가격에 판다. 카운티 도서관 홈페이지도 있지만, 이 도서관은 따로 홈페이지도 운영한다. https://www.encinitaslibfriends.org/




여러 도시의 도서관을 가 보았고, 멋진 도서관도 많이 보았지만 그 중에서도 이 도서관은 손에 꼽을 만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규모가 크고 웅장한 도서관이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도서관으로서 본연의 기능과 지역 커뮤니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할 수 있다면 충분하고, 그 기능을 둘러싼 공간이 아름답다면 더할 나위 없다. 
이곳 생활을 하며 부러운 것들 중에 하나는 동네마다 있는 도서관이다. 이번 주엔 매일 오게 될 것 같은데, 아이들 캠프가 끝난 후에도 종종 와야겠다. 책을 읽다가 지루해지면 해변에 나가 파도 소리를 들어도 좋을 것이다. 판데믹 상황이 나빠져 다시 닫히는 일이 없길 바란다. 

캠프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딸과 아들을 다시 차례로 픽업했다. 딸은 요리 수업이 너무나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계란과 야채를 넣은 머핀을 만들었는데 제법 맛이 괜찮았다. 아들은 처음 해 본 써핑이 힘들었던 것 같다. 인앤아웃에서 점심을 먹고 아들의 휴대폰 개통을 위해 근처 T-mobile 지점에 들렀다. 아들은 미국에 오자마자 샀던 아이폰을 유심 없이 쓰고 있었는데, 여름 캠프와 다음 학기 중학교 생활을 위해 휴대폰이 필요할 것 같았다. 1개월 15불에 무제한 전화, 문자와 2.5G 데이터를 사용할 수 있는 조건으로, 아이가 사용하기 적당하다. 평생 처음 자신의 전화번호가 생긴 아들은 나름 뿌듯한 눈치다. 그래봐야 지금은 그걸로 전화를 할 곳도 없지만. 

2021년 7월 11일 일요일

연수일기 92. 바닷가 저녁 하늘, 딸의 생일

7월 8일 목요일. 166일째 날. 이번 주에 아파트에 입주한 L 선생님 가족을 초대해 저녁 식사를 했다. 지난 1월, 입국 다음 날에 후배 선생님에게 초대를 받아 점심을 먹었었다. 입국 초기, 정착에 필요한 일을 챙기느라 여기저기 뛰어다니고 어수선할 때에 아이들 식사를 챙기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 그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었다. L 선생님도 한국에서 미리 아파트 계약을 해 입주는 일찍 했지만 무빙 세일을 받지 않아 가구와 살림을 갖추지 못한 상태인 것 같았다. 

연수 준비를 하면서 어려웠던 일들, 이곳에서 몇 달 간 겪었던 일들을 나누다 보니 또 금새 시간이 간다. 5학년, 취학 전 아이 둘은 각각 우리 아이들과 짝이 되어 금새 잘 논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이곳 생활에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즐거워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7월 9일 금요일. 167일째 날. 오랜만에 아침에 공원을 뛰었다. 이젠 아침 햇살도 따갑게 느껴져서 완연히 여름임을 느낄 수 있다. 여행을 다니며 이곳저곳을 둘러보니 샌디에고가 참 좋은 도시란 걸 새삼 느꼈다. 이 도시에만 있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지금은 샌디에고 날씨를 왜 좋다고 하는지도 알 것 같다. 저녁엔 아이들과 수영을 했다. 따뜻한 자쿠지에 몸을 담그고 저물어가는 저녁 하늘을 보는 게 우리 가족의 즐거움 중 하나이다. 요즘엔 아파트 수영장에도 오전 오후 가릴 것 없이 사람들이 많다. 우리 아파트의 장점 중에 하나는 커뮤니티 시설인데, 그중에서도 수영장은 발군이다. 웬만한 호텔 수영장이 부럽지 않은 풀이라 입주민 뿐 아니라 지인들도 많이 와서 물놀이를 하곤 한다. 이전엔 저녁 해가 질 무렵에 수영장에 가면 한적했는데 오늘은 늦은 시간까지 수구를 하는 고등학생들이 있어 좀 시끄러웠다. 

 

7월 10일 토요일. 168일째 날. 저녁에 문라이트 스테이트 비치에 다녀왔다. 이곳 비치는 벌써 세 번째 방문이다. 샌디에고엔 아름다운 비치가 많고, 여기도 참 좋은 곳이다. 특히 아이들을 데리고 놀기에 그만이다. 델 마르 비치도 좋지만 비치 바로 앞에 주차가 어렵다. 이곳은 무료 주차장 이용이 어렵지 않고, 비치 앞에 따로 모래놀이를 할 수 있는 모래밭과 작은 잔디밭이 딸린 놀이터도 있어 자주 오게 된다. 

아들과 모래밭에서 팔방 놀이를 했다. 해가 넘어가는 하늘도 보고, 따뜻해진 바다에 들어가 몸도 적셨다. 집에서 15분도 안되는 거리인데, 여름 동안 더 자주 오려고 한다. 해가 지니 모닥불을 피우고 모여 음식을 먹는 사람들도 있었다. 다음엔 저녁 거리와 담요를 싸 와서 좀더 늦게까지 머물다 가야겠다. 매번 감탄하게 만드는 노을을 오랫동안 봐야겠다. 이 해변의 이름처럼, 달빛을 받으며 누워 밤하늘과 별도 볼 수 있겠지. 

문라이트 스테이트 비치의 노을


7월 11일 일요일. 169일째 날. 이곳에서 맞는 딸의 생일이다. 아이는 며칠 전부터 손을 꼽아가며 생일을 기다렸는데, 막상 생일날 한국에서처럼 파티를 해 줄 수 없어 미안할 따름이다. 선물로 미리 사두었던 파스텔 핑크색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주었다. 한국에서 외할머니가 보내신 용돈으로 레고도 주문하려 한다. 

홀푸드 마켓에서 생크림이 얹힌 케잌을 사 초를 꽂고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홀푸드 마켓의 케잌이 한국 케잌과 비슷하다고 하던데, 정말 맛이 괜찮았다. 딸아이가 새로 받은 카메라로 가족 사진을 찍었다. 생일 케잌과 선물을 배경으로 아이 사진도 찍었다. 아이가 잠들고 나서 열어본 앨범엔 처음으로 찍은 사진의 제목이 적혀 있었다. 

'세상에서 제일 멋진 생일' 

2021년 7월 10일 토요일

연수일기 91. 일상으로 복귀

7월 5일 월요일. 163일째 날. 한인마트에서 장을 보고 여행으로 먼지 투성이가 된 차도 세차했다. 저녁엔 오랜만에 H 선생님 가족과 바베큐장에서 식사를 했다. 아이들 등하교 때마다 매일 얼굴을 보다가 방학을 하면서 만나지 못한지 몇 주 되었다. H 선생님 가족도 우리처럼 지난 주에 세콰이어와 요세미티 여행을 하고 돌아왔다. 아이들 방학이 되면 다들 비슷한 시기에 비슷한 곳으로 여행을 간다. 여행에서 있었던 일들을 서로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7월 6일 화요일. 164일째 날. 열흘만에 연구실에 출근했다. 아내는 어제 사온 무로 깍두기를 담았다. 깍두기는 벌써 세 번째 담는 건데, 점점 맛이 나아지고 있다. 저녁엔 딸과 공원을 산책했다. 공원에 나온 것도 오랜만이다. 샌디에고 날씨도 이제 여름을 느낄 수 있다. 기온 자체는 큰 차이가 없지만 햇살이 강해 낮에 바깥에 있으면 땀도 나고 집안 공기도 달라졌다. 그래도 바람이 선선하고 그늘에선 상쾌함을 느낄 수 있는 게 한국의 여름과는 차이가 많다. 

작년과 올 상반기에 걸쳐 각 학교와 병원에서 밀려있던 미국행 장기 연수가 재개되어 올 여름에 샌디에고에도 많은 분들이 들어온다고 한다. 들리는 이야기론 연수 보험 업체를 거친 이만 마흔 명 이상이라 하고, 의대 교수들의 샌디에고 단톡방에서 올 여름에 들어올 예정이라 한 분들도 열 분이 넘는다. 나와 같은 아파트로 이미 계약한 선생님들도 다섯 분은 되는 것 같다. 올 여름 첫 순서로 입국한 선생님을 며칠 전에 집에 남는 공구를 드리기 위해 잠깐 만나기도 했다. 어제는 우리 아파트에 들어올 예정인 선생님들 중 한 분이 입주했다. 심장내과 전문의인 L 선생님으로, 모교 후배라 안면이 있다. 밤에 잠깐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판데믹 상황이 나아지면서 집세와 중고차 가격이 많이 올라 올해 연수 들어올 분들이 애를 꽤 먹을 듯 하다.


7월 7일 수요일. 165일째 날. 오후에 라스아메리카 아울렛에 다녀왔다. 아내와 아이들 옷과 운동화를 샀다. 다음 주부터 아이들 썸머 캠프가 시작된다. 1주일 프로그램 세 개를 붙여 3주간 일정을 만들었다. 세콰이어 패밀리 캠프를 포함해 여름 방학 동안 네 개의 캠프에 참여하는 셈이다. 일부 캠프는 예약할 때 비용을 지불했고, 써핑 캠프와 YMCA 캠프는 시작 일주일 전까지가 결제 기한이라 이번 주에 모두 비용을 지불했다. 아이들 둘의 3주 캠프 비용만 해도 꽤 부담이 된다. 하지만 긴 여름 방학 동안 이런 프로그램에 참여하지 않으면 학교로 돌아갔을 때 다시 적응 기간이 필요할 것이다.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과 좋은 경험이 되었음 좋겠다. 

2021년 7월 5일 월요일

연수일기 90. 독립 기념일 연휴, 불꽃놀이

7월 2일 금요일. 160일째 날. 여행 이후 오랜만에 화상 연구 미팅에 참석했다. 오늘은 외부 연자의 발표가 없어 저널 클럽 이후 각자의 근황을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진 뒤 평소보다 일찍 마무리했다. 진행 중인 연구 결과가 정리되면 미팅에서 발표를 하기로 했다. 초기 분석을 한 뒤 한동안 정체된 상태인데, 신경을 좀더 써서 속도를 내야 겠다.


7월 3일 토요일. 161일째 날. 오늘부터 독립 기념일 연휴가 시작된다. 독립 기념일엔 미국 전역에서 불꽃놀이를 볼 수 있는데, 매년 이어지던 이 전통도 작년엔 판데믹으로 볼 수 없었다고 한다. 공식적인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의 시작은 독립 선언문이 채택된 1776년 다음 해 부터라고 하니 이백 년이 훌쩍 넘었다. 미국인들의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 사랑은 유별나다고 하는데, 작년 한 해를 건너뛰었으니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래서인지 다시 돌아온 불꽃놀이를 알리는 공지와 기사를 여기저기서 볼 수 있었다. 독립 기념일 전날에도 각 카운티에서 소규모로 불꽃놀이를 한다. 밤엔 집 앞에서도 델 마르 해변 쪽에서 쏘아올린 불꽃을 볼 수 있었다. 


7월 4일 일요일. 162일째 날. 독립 기념일이다. 델 마르 페어그라운드에서 불꽃놀이를 보기로 했다. 경마장이자 박람회나 전시 장소로 쓰이는 이곳에선 마침 지역 축제를 하고 있었고, 오늘이 마지막 날이었다. 독립 기념일 불꽃놀이는 9시에 예정되어 있었다. 일찍 가서 축제를 구경하다가 불꽃놀이를 보기로 하고, 6시 입장 티켓을 구입했다. 

전시장을 가득 메운 것은 각종 푸드 트럭이었다. 입구에서부터 고기를 굽는 매캐한 연기 냄새를 맡을 수 있었다. 푸드 트럭의 스케일도, 음식의 크기도 다 어마어마했다. 대왕 핫도그와 돼지고기 구이로 배를 채우고 전시장을 구경했다. 


실외에는 푸드 트럭, 실내에는 쇼핑을 할 수 있는 각종 부스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이들 장난감, 옷, 장신구 등 작은 상품들도 있었지만 정원의 수도 호스, 쿨링 팬, 바베큐 그릴, 침대, 마사지기 등 이런 걸 왜 여기서 파나 싶은 물건들도 많았다. 심드렁해 하던 아이들의 흥미를 사로잡은 건 새끼 돼지 경주장이었다. 다행히 마지막 경주를 볼 수 있었다. 돼지들이 달리는 속도가 생각보다 빨랐다. 귀여운 돼지들의 레이스를 보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환호하고 박수를 쳤다. 우리 아이들도 흔히 볼 수 없는 색다른 광경에 즐거워했다. 


돼지 레이스가 끝나고 불꽃놀이를 잘 볼 수 있는 서쪽 입구로 자리를 옮겼다. 아홉 시가 되자 불꽃이 터지기 시작해 십여 분간 계속되었다. 한국에서도 여의도 불꽃 축제가 유명하지만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교통이 복잡해 한 번도 직접 보러 간 적은 없다. 불꽃의 규모는 생각보다 소박했지만 아이들에겐 오늘 저녁이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2021년 7월 2일 금요일

연수일기 89. 샌 루이스 오비스포, 게티 빌라

7월 1일 목요일. 159일째, 여행 8일째 날. 호텔에서 나와 가까운 소도시인 샌 루이스 오비스포 다운타운에 주차를 하고 근처 카페에서 베이컨과 계란 요리, 아보카도로 아침 식사를 했다. 이 조그만 도시의 아침 거리에서 우연히 만난 카페의 베이컨은 지금까지 미국에서 먹은 베이컨 중 제일 맛있었다. 

커피를 사 들고 시내를 구경했다. 미션 샌 루이스 오비스포가 가까이에 있었다. 18-19세기 초에 걸쳐 스페인 수도사들에 의해 지어진 캘리포니아의 21개 미션 중 하나이다. 1772년에 지어진 이 성당은 독특한 건축 양식으로 이름이 나있다. 종탑과 전실을 둘 다 가지고 있는 성당은 캘리포니아에서 이곳이 유일하다. 다른 성당들과 달리 본당의 제단 우측에 비슷한 크기의 신도석이 있는 L자 형의 건물인 것도 특이한 점이라고 한다. 세 개의 종탑이 있는 새하얀 건물이 아름다웠다. 성당 안에선 미사를 진행하고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회색곰을 흔히 볼 수 있었던 예전엔 이 도시를 '곰들의 계곡'이라 불렀다고 하는데, 성당 앞마당엔 곰 조형물과 연못이 있다.

정면에 세 개의 종탑이 있는 성당 주 건물

이곳을 찾는 여행객들에게 유명한 장소 중 하나인 gum wall을 찾았다. 구글 맵의 위치가 잘못 표기되어 있어 찾는 데 좀 애를 먹었다. 골목의 양쪽 벽은 사람들이 씹던 껌으로 뒤덮여 있다. 시애틀에도 비슷한 껌 벽이 있다고 하는데, 지저분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색다른 곳이고 사진을 찍기 좋다. 골목 입구에선 달달한 풍선껌 냄새가 났다. 

Blast 825 taproom을 찾아 오면 된다.

여기서부터 집까지는 다섯 시간이 넘는 거리이다. 중간에 들를 곳을 찾다 눈에 띈 곳이 산타 모니타의 게티 빌라였다. LA의 게티 센터와 함께 게티 재단의 소장품들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예약이 필요해 어제 미리 해두었다. 입장은 무료이지만 주차료는 받는다. 그리스, 로마 시대의 유물과 예술품도 볼만 하지만, 이곳을 대표하는 건 고대 로마 양식으로 지어진 빌라 자체가 아닐까 싶다. 건축물과 잘 꾸며진 정원이 감탄을 자아낼만큼 아름다웠다. 

Outer Peristyle

사자 가죽을 든 Hercules

게티 빌라를 나와 산타모니카 시내에서 식사를 했다. 퓨전 비빔밥을 파는 체인 식당이었는데, 그럭저럭 먹을만 했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길. 로스앤젤레스 공항을 지나쳤다. 여기서부터 집으로 가는 길은 그래도 익숙한 느낌이다. 5번 고속도로를 따라 남쪽으로 달리면 된다. 중간에 딸이 화장실이 급해 5번 고속도로를 타기 전 우회로로 나가 마트에 들렀다. 다시 차에 타 구글맵을 켜고 운전을 하는데 느낌이 이상했다. 로스앤젤레스와 샌디에고를 연결하는 5번 도로는 차가 많은 편인데, 오늘 따라 차가 거의 없었다. 주변 풍경도 삭막한 평지가 아니라 나무가 많고 중간중간 경사가 있는 언덕이었다. 어찌된 일인지 통행 요금을 내라는 표지판도 보였다. 

알고 보니 5번 도로가 아니라 73번 도로를 탄 것이었다. 오렌지 카운티의 어바인 근처에는 유료 도로가 몇 개 있다. 주변 지리에 익숙치 않은 운전자가 무심코 유료 도로를 통과해 통행료를 내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그중 가장 유명한 길이 73번이었다. 이런 일을 겪지 않으려면 평소 구글맵의 네비게이션에 '유료 도로 제외' 항목을 체크해두어야 한다. 이전엔 이 항목을 체크해두었었다. 국립공원의 경우 매표소를 지나는 길은 모두 유료이지만 이 길 외엔 들어갈 수 없으므로, 유료 도로를 제외해두어도 유료 도로라는 알림과 함께 해당 길을 알려주어 특별한 불편이 없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다리를 건너는 유료 도로를 안내받으려고 체크를 풀었다가 깜빡하고 다시 체크를 해두지 않았던 게 생각났다. 

결국 다음 날 8불 가량의 통행료를 납부했다. 오렌지카운티 유료 도로의 경우 통과한 날부터 5일 이내에 웹사이트에서 통행료를 납부할 수 있다. 오늘은 300마일을 운전했다. 

2021년 7월 1일 목요일

연수일기 88. 캘리포니아 1번 도로, 파소 로블레스

630 수요일. 158일째, 여행 7일째 날. Cannery Row의 스타벅스에서 아침을 먹었다. 이 거리의 원래 이름은 Ocean View Avenue였는데, 이곳을 무대로 한 존 스타인벡의 소설 ‘Cannery Row’를 기리기 위해 소설과 같은 이름으로 바꿨다고 한다. 작은 광장에서 이 소설의 등장 인물들로 만들어진 조형물을 볼 수 있었다. 

몬테레이에는 경치 좋은 드라이브 코스로 유명한 '17마일 드라이브' 길이 있다. 페블 비치와 퍼시픽 그로브를 따라 이어진 왕복 2차선의 이 도로는 대부분 바다를 끼고 있으며, 사유지라 이 길을 운전하려면 양쪽 끝의 게이트에서 요금을 내야 한다. 짧은 길이지만 중간중간 경치를 감상할 수 있는 포인트가 있어 차에서 내려 바람을 쐬고 놀다 보면 몇 시간이 훌쩍 지나간다. 

모스 비치

바다와 변화 무쌍한 해변의 모습이 아름다웠다. 하지만 샌디에고에도 아름다운 해변이 많아 특별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바다 반대쪽은 대부분 골프장이 이어져 있는데, 골프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좀더 특별한 장소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US 오픈을 개최한 최초의 퍼블릭 코스이며 미국 내 퍼블릭 골프장 순위에서 매년 1위에 오르는 페블 비치 골프 링크스도 이곳에 있다. 

길 중간쯤에 있는 Bird rock vista point에서 수백마리의 새들로 가득한 바위섬을 볼 수 있었다. 바위섬은 새똥이 켜켜이 덮여 다른 바위들과 달리 흰색으로 눈에 띠었다. 왜 여기만 새들이 많은지 정확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아마도 근처 지형이나 조류 때문에 먹이가 될 만한 것들이 많아서가 아닐까 싶다. 해변에 사는 다람쥐 몇 마리를 만났는데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아이들은 다람쥐들과 놀며 시간을 보냈다. 

카멜바이더시에서 17마일 드라이브 게이트를 빠져나왔다. 1번 도로를 따라 멀지 않은 곳에 포인트 로보스 Point Lobos 스테이트 자연 보호 지역이 있다. 10불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면 해변 절벽을 따라 난 길을 따라 짧은 트레킹을 할 수 있다. 경치도 좋고 꽃이 많이 핀 길도 예뻐서 아이들과 걸을만 했다. 

이제 본격적으로 1번 도로 일주이다. 30분쯤 가면 절벽 사이 사이를 잇는 creek bridge 들을 만나는데, 그중 가장 유명한 것이 1번 도로 관련 사진이나 기념품에서 자주 볼 수 있는 Bixby creek bridge이다. 이 다리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을 수 있는 뷰포인트가 있어 여기서 잠시 차를 세울 수 있다. 

마그넷에서 보던 풍경
 

빅서어에서 주유를 했다. 갤런당 5.7불로 미국에 와서 가장 비싼 가격이었는데, 7불이 넘는 가격에 주유를 했던 이도 있다고 들었다. 몬테레이에서 오늘 숙소인 파소 로블레스까지는 130마일 거리지만 구글맵으로 세 시간이 넘게 걸린다. 이 구간 대부분이 굴곡이 많은 절벽 위 도로라 속도를 낼 수가 없어 그럴 것이다. 차창을 통해 보이는 주변 풍경은 멋졌지만 운전을 하기엔 쉽지 않은 길이라 신경을 곤두세운 채로 두어 시간쯤 운전을 하니 뒷목이 뻐근했다. 


파소 로블레스 Paso Robles에 도착했을 때는 오후 다섯 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나파밸리 못지 않게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 와이너리를 가볼까 했는데 대부분의 와이너리들이 다섯 시 전에 문을 닫았다. 호텔 체크인 후 직원에게 이 시간에 방문이 가능한 와이너리로 추천받은 CaliPaso winery에서 저녁을 먹기로 했다. 게스트하우스와 레스토랑이 함께 있는 와이너리였는데 테이스팅은 제공하지 않았다. 테이스팅 룸은 다운타운 쪽에 따로 있다고 한다. 레스토랑에 딸린 정원, 포도밭으로 둘러싸인 주변 풍경이 아름다웠다. 우리는 저녁을 먹기 위해 간 거라 식사와 함께 와인 한 병을 주문했다. 식사 후 다운타운을 구경하며 아이스크림을 사 먹고 호텔로 돌아왔다. 오늘은 140마일을 운전했다. 

2021년 6월 30일 수요일

연수일기 87. 팔로알토, 몬테레이

629 화요일. 157일째, 여행 6일째 날. 오늘은 팔로알토를 거쳐 몬테레이 까지의 일정이다. 팔로알토의 스탠포드 대학에 가는 길에 구글 본사에 들렀다. 판데믹 이후 비지팅 센터가 닫혔고 직원들도 아직까진 재택 근무를 하는지 회사 근처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마스크를 쓴 채 비어있는 회사를 외롭게 지키고 있는 안드로이드 조형물 옆에서 사진을 찍었다. 

안녕, 누가!


스탠포드 대학에 도착해 비지터 센터에 주차를 했다. Cantor art center는 오픈을 했고 미리 예약을 하면 입장할 수 있지만 화요일은 휴무라 오늘은 들어갈 수 없다. 조각 가든의 로댕 작품들을 보는 걸로 아쉬움을 달랬다. 사진으로만 보던 지옥의 문과 Three shades를 직접 가까이에서 보고 만져볼 수 있었다. 지옥의 문은 전 세계에서 일곱 군데에만 전시되어 있는데(한국의 플라토 미술관 폐관 이후 여섯 곳이 되었다.) 미술관이 아닌 곳은 스탠포드 대학교가 유일하다고 하니 이 대학교의 특별한 위치를 가늠할 수 있다. 

지옥의 문


또 다른 대표적인 작품인 칼레의 시민도 추모 교회로 가는 길에 만날 수 있었다. 추모 교회는 아직 닫혀 있어 바깥에서만 볼 수 있었지만 교회 건물과 앞뜰 만도 참 아름다웠다. 서점에 들러 아들 책을 한 권 샀다. 대학교 서점 치고는 규모가 크고 관광객이 많아서인지 아이들을 위한 책 코너를 포함해 일반 서점 못지 않게 다양한 책 구성이 잘 되어 있었다.

아름다운 추모 교회 모습

 

점심은 팔로알토 다운타운에서 먹기로 했다. 일본 라면집인 Ramen Nagi는 근처에서 평점이 높은 식당으로 항상 웨이팅이 있다고 했는데, 10분 정도 기다려 자리에 앉았다. 도쿄의 라면집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맛이었다. 식사 후 블루보틀에서 커피를 마셨다. 극장으로 쓰이던 건물을 개조한 매장이 아름답기로 이름난 곳이지만 매장의 아름다움에 비해 커피 맛은 평범했다. 팔로알토에는 실리콘밸리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장소도 많다고 한다. 그중 한 곳인 휴렛팩커드 garage에 들렀다. 작은 집에 불과하지만 'Birthplace of Silicon Valley'라는 거창한 이름이 붙은 곳이다. 

 

Birthplace of Silicon Valley


팔로알토를 떠나는 길에 쿠퍼티노 애플 파크의 애플 스토어에 들렀다. 팔로알토도 집 값이 비싸기로 유명하고 이곳도 마찬가지라고 하는데, 전 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엘리트들이 모인 쿠퍼티노의 교육열은 서울의 강남 못지 않다고 들었다. 이곳 애플 스토어는 카페를 겸하고 있었다. 다른 애플 스토어 중에서도 커피를 파는 곳이 있었던가? 모르겠다. 카페 디자인도, 화장실의 인테리어도 딱 애플 다웠다. 


오늘 숙소는 몬테레이의 하얏트 리젠시 몬터레이 호텔  스파이다. 골프장을 겸한 리조트로 몬테레이에선 가성비가 좋은 호텔인 것 같다. 국립공원 랏지와 에어비앤비가 섞인 일정이었지만 룸 컨디션만 본다면 이번 여행에서 묵었던 곳 중 가장 만족스런 숙소였다. 체크인을 하고 몬테레이의 올드 피셔맨스 와프에 구경을 갔다. 어제 보았던 샌프란시스코의 피셔맨스 와프보다 훨씬 작은 부두였지만 소도시다운 소박함과 정감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Old Fisherman's Wharf

Clam chowder를 파는 식당들이 많았다. 저녁 겸 사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트레이더 조에서 장을 본 뒤 숙소로 돌아왔다. 오늘은 140마일을 운전했다.

원래 생각했던 일정은 내일 1번 해안도로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는데, 중간중간 구경까지 하고 가기엔 너무 빠듯할 것 같아 파소 로블레스에서 하루를 더 묵기로 했다. 와인으로 유명한 곳이라 이번 기회에 와이너리를 가 보는 것도 좋겠다. 

2021년 6월 29일 화요일

연수일기 86. 샌프란시스코

6월 28일 월요일. 156일째, 여행 5일째 날. 아침에 일어나 호수 주변을 산책했다. 물놀이를 하는 사람이 없어 가라앉은 해조류 덕분에 호수의 물이 어제보다 맑았다. 

숙소에서 나오는 길에 Black Cabin Coffee에 들러 커피를 샀다. 로컬 커피 가게는 여행 중에 느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이다. 브랜드 커피에서 느끼기 어려운 훌륭한 맛을 볼 수 있는데, 이곳 커피도 그랬다. 레이크 타호는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경계에 있어 주 경계를 넘을 수 있다. 커피 가게 근처 공원 안에 주 경계선이 있어 그곳에서 사진을 찍었다.

네바다와 캘리포니아 사이

버클리 코스트코에서 주유를 하고 오클랜드의 에어비앤비 숙소에 도착했다. 근처 베트남 식당에서 점심을 사 숙소에서 먹은 뒤 샌프란시스코 시내를 구경하기 위해 오클랜드 베이 브리지를 건넜다. 이전에는 다리를 건널 때 현금으로 통행료를 냈다고 하는데, 지금은 미리 등록한 차량이 아니라면 추후 차량 소유자의 주소로 통행료 invoice가 온다고 한다. (실제로 2-3주 뒤 인보이스가 든 우편물을 받아 온라인으로 6불의 통행료를 납부했다.)

샌프란시스코 시내에선 운전과 주차가 부담스러워 차를 세워두고 리프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도 유리를 깨고 물건을 훔쳐가는 일이 흔히 있다고 들었는데, 피셔맨스 와프 근처의 주차장들은 구글 후기에서도 도난을 당했다는 경험을 쉽게 볼 수 있었다. 차량 털이 사건이 집계되는 것만 해도 하루에 백여 건씩 발생한다고 한다. 그래서 관광객이 적은 다운타운 안쪽의 주차 건물에 차를 세워두기로 했다. 이곳 주차장은 관리인이 상주하고 있어 도난의 위험은 없을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아니나다를까, 길을 걷다 보니 곳곳에 차량 내부의 도난을 조심하라는 안내판을 볼 수 있었다. 

맨 처음 목적지인 롬바드 가는 멀지 않은 곳이었다. 샌프란시스코 특유의 경사가 심한 도로를 올라가다 보니 이 도시에 왔다는 실감이 났다. 롬바드 가는 차 하나가 겨우 지나갈 만한 너비의 급경사에 여덟 번의 급커브 일방 통행로로 유명한 거리이다. 할리우드 영화 여러 편의 차량 추격 씬에도 등장했다고 한다. 경사 도로에 구불구불 난 길로 차들이 줄지어 내려오는 광경이 독특했다.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이 많았다. 경사진 도로를 가득 메운 수국과 도로 주변의 예쁜 집들이 포토 스팟으로 이름날 만 했다. 

구불구불한 길을 일렬로 내려오는 차들

우리도 여러 장의 사진을 찍고 피셔맨스 와프 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Maritime 국립역사공원 표지판을 만나기 전까진 도심 한가운데에 국립공원이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비지터 센터가 닫혀있어 아쉬웠다. Maritime garden에서 잠시 쉬었다가 피셔맨스 와프를 따라 피어 39까지 걸었다. 딸이 바다사자를 보고싶어 했는데, 막상 가 보니 몇 마리 보이지 않았다. (바다사자는 역시 샌디에고의 라호야 코브......)   

반가운 국립공원 표지판


리프트를 타고 페인티드 레이디스로 이동하는 길에 버블티를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Boba guys에 들렀다. 샌프란시스코에서 핫하다는 버블티 카페로 스트로베리 마차라떼가 유명하다고 한다. 실제로 맛은 그닥...... 알라모 스퀘어 공원을 가로질러 가니 빅토리아 풍의 파스텔 톤 색 주택 몇 채가 줄지어 있는 것이 보였다. 그림 엽서에 나올 만한 풍경이었다. 


미니어처처럼 보이는 집


페인티드 레이디스로 가는 길부터 날이 쌀쌀해지고 바람이 심해졌다. 날씨가 좀더 따뜻했다면 공원에 앉아 시간을 보낼 수도 있었을텐데. 바다를 끼고 있는 같은 지중해성 기후라 해도, 이 도시의 날씨는 흐리고 비가 많이 온다고 들었다. LA나 샌디에고보다 기온이 낮고 바람도 많이 분다던데 이날 날씨가 딱 그랬다.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가 힘들어해 오늘 더 돌아다니긴 힘들 것 같았다. 

엽서에서 보던 다리


금문교를 보고 일찍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도심에서 보낸 시간은 겨우 반나절 정도에 불과했지만, 샌프란시스코는 샌디에고보다 더 자유로운 도시라 느껴졌다. 오늘은 200마일을 운전했다. 

주차장에 세워둔 차를 찾아 오클랜드로 건너가는 길에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저녁 식사를 주문했다. 오클랜드란 도시는 오클랜드 애슬래틱스의 연고지 정도로만 알고 있었고 샌프란시스코와 이웃해 있으니 크게 다르지 않겠거니 하고 단순하게 생각했었다. 하지만 다리 하나를 건넜을 뿐인데 오클랜드의 분위기는 건너편과 완전히 달라서 마치 다른 나라에 온 것 같았다. 차를 타고 지나가는 거리 곳곳이 허름하고 어수선한 느낌을 주었다. 낮에 숙소에 들어갈 때는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저녁 시간이 되니 지나다니는 사람도 적었다. 오클랜드가 범죄가 많고 치안이 좋지 않기로 유명한 도시라는 건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에어비앤비 숙소 가격이 샌프란시스코와 차이가 커 별 생각 없이 오클랜드로 숙소를 잡은 건데, 이런 사실을 알았다면 그냥 샌프란시스코 쪽에서 찾았을 것이다. 미국의 빈부, 지역 격차를 조금이나마 체험한 하루였다. 결국 별다른 일은 없이 숙소는 잘 이용했지만.

2021년 6월 28일 월요일

연수일기 85. 레이크 타호

6월 27일 일요일. 155일째, 여행 4일째 날. 레이크 타호로 가는 날이다. 웨스트 게이트 랏지 근처의 Tangled Hearts Bakery에서 아침을 먹었다. 웨스트 게이트 근처에서 구글 평점이 높은 식당이었는데, 아주 작고 소박한 곳이었지만 팬케잌이 맛있었다. 

중간 지점인 샌 안드레아스에서 주유를 하고 엘도라도 내셔널 포레스트를 가로질러 레이크 타호 에메랄드 베이 인스피레이션 포인트에 도착했다. 에메랄드 베이와 호수 가운데 있는 파네트 섬을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이다. 캘리포니아와 네바다 경계에 있는 레이크 타호는 북미에서 가장 큰 고산 호수로, 깊이도 미국에서 두 번째로 깊다고 한다. 여름엔 워터 스포츠를, 겨울엔 스키를 즐길 수 있어 휴양지로 인기가 많은 곳이다.

에메랄드 베이 백사장으로 내려가기 위해서는 호수 서쪽 방향으로 조금 더 가서 주립공원에 주차를 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찾는 휴양지 답게 사람들도 많고 차도 많았다. 에메랄드 베이의 유명세에 비해 주립공원 주차장은 파킹 랏이 터무니없이 적어 유료임에도 주차가 쉽지 않다. 주차 금지 구역인 주변의 갓길에 세워진 차들도 많았다. 주차장 안에서 조금 기다려 다행히 자리가 났다. 오후에 온다면 구경 후 떠나는 차들이 종종 있어 주차장이 만차이더라도 좀 기다려보는 게 좋을 듯 하다.

전망대에서 본 에메랄드 베이


30분쯤 걸어 호숫가 모래사장과 피크닉 장소에 도착했다. 내부 투어를 할 수 있는 Vikingsholm이라는 목사관이 있었는데 우리에겐 바깥에서 보는 것 만으로 충분했다. 백사장에서 일광욕을 하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카약과 보트를 빌려 타고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레이크 타호는 요세미티에 비해 역시 잘 꾸며진 휴양지의 느낌이 훨씬 컸다.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


오늘은 190마일을 운전했다. 오늘 묵을 숙소는 사우스 레이크 타호에 있는 비치 리트릿&로지 앳 타호이다.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고 체크인을 한 뒤 바로 숙소 앞 비치에 나갔다. 모래사장이 넓고 호수 밑바닥도 모래에다 멀리까지 경사가 완만해 물놀이를 하기에 좋았다. 기슭에서 보기엔 호수의 물이 생각보다 탁해 보였는데, 들어가서 보니 얕은 곳은 해조류 때문에 맑게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요세미티의 호수들을 보고 와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허리 높이의 깊이까지 들어가니 물이 좀더 맑게 보였다. 아이들과 물놀이를 한참 하고 백사장에서 모래놀이도 하다 문득 하늘을 보니 해가 저물고 있었다.

숙소 앞 백사장


숙소 바로 건너편에 세이프웨이 마트가 있어 저녁거리를 사왔다. 발코니에서 저물어가는 하늘을 보며 맥주를 한잔 하니 몸이 노곤해진다. 내일은 샌프란시스코로 갈 예정이다. 


2021년 6월 27일 일요일

연수일기 84. 요세미티 여행- Mirror lake, 요세미티 밸리

6월 26일 토요일. 154일째, 여행 3일째 날. 밸리 랏지 스타벅스에서 아침을 먹고 비지터 센터에 들렀다. 비지터 센터와 박물관은 문을 닫은 상태였다. 국립공원 스탬프를 찍고, 근처의 인디언 마을과 Angel Adams gallery를 구경했다. 멋진 흑백 사진들을 구경하는 것 외에 책과 소품을 살 수 있는 코너도 있었다. 

오전엔 미러 레이크 트레일을 걷기로 했다. 비지터 센터에서 출발해 한 시간 남짓 걸으면 미러 레이크에 도착할 수 있다. 아래쪽 호수에선 물놀이를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위쪽 호수엔 생각보다 물이 많지 않았는데, 산에서 눈이 녹아 흘러내린 물이 모인 호수라 봄에 가장 수량이 많고 여름 이후엔 말라버린다고 한다. 그래도 노스돔과 하프돔을 포함해 호수를 둘러싼 산과 절벽이 그림처럼 수면에 비쳐 보였다. 

이름처럼 거울같다.


밸리 랏지로 돌아와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원래 계획은 글래셔 포인트에 가는 것이었다. 글래셔 포인트에서 태프트 포인트까지 걷는 길을 추천받기도 했다. 그런데 거리는 가까워 보여도 자동차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포인트만 보고 내려오는 데에도 2시간 이상 소요될 것 같았다. 이동 시간이 길어 아이들도 힘들어 할 것 같아 그냥 밸리에 좀더 머물기로 했다. 브라이덜 베일 폭포를 보기 위해 갔는데, 폭포 주변 정비 공사로 주차장이 닫혀 있어서 들어가지 못하고 주차장 입구에서 사진만 찍었다.

폭포에서 돌아 나오는 길에 그냥 나가기가 아쉬워 한적한 갓길 주차 공간에 차를 세웠다. 밸리 안의 메르세드 강 양쪽으로 난 길에는 차를 세우고 물놀이를 할 수 있는 곳이 많이 있다. 계곡 물에 발을 담그고 노는 게 성에 안 찼는지 아이들은 결국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물놀이를 시작했다. 계곡만 보자면 한국에도 좋은 곳이 많지만 요세미티는 광대한 넓이에 계곡을 둘러싼 높고 전망 좋은 산, 평원과 호수를 포함해 다양한 경치를 볼 수 있는 점이 매력적이다. 

입수 본능


한 시간을 물에서 더 놀고 밸리를 빠져나왔다. 오늘 숙소는 요세미티 웨스트 게이트 랏지이다. 요세미티 밖에 있지만 웨스트 게이트에서 가까워 인기가 많은 숙소이다. 그렇다 해도 밸리 랏지에선 1시간 가까이 걸린다. 

오늘은 40마일을 운전했다. 웨스트 게이트 랏지는 규모가 크지 않지만 앞마당에 수영장도 있고 전체적으로 깔끔하고 소박하게 꾸며져 있었다. 방 상태도 깨끗하고 마음에 들었다. 바닥이 카펫이 아닌 것도 좋았다. 이곳에선 코인 세탁기를 이용해 빨래와 건조도 할 수 있다. 밀린 빨래를 하고 컵라면으로 저녁을 먹었다. 어제와 오늘, 이틀 동안 보았던 요세미티는 전체의 십분의 일도 안될 테지만, 이곳에서 보냈던 시간은 우리 가족에게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