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9일 수요일

연수일기 174. LA: 더 게티

12월 28일 화요일. 339일째 날. 호텔 근처의 Porto's Bakery and Cafe에서 아침을 먹었다. 쿠바 출신의 제빵사가 운영하는 베이커리 체인으로 LA에서 가장 맛있는 빵을 판다고 알려진 곳이다. 아침인데도 빵집 안엔 손님으로 가득했고 계산대 앞엔 줄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아침거리와 함께 시그니처 메뉴 중 하나인 치즈롤 두 박스를 샀다. 

얼마 전 LA로 연수를 온 아내의 후배 집을 방문했다. 아내가 결혼 전 함께 미국 의사 시험 공부를 했던 후배로 신혼 초에 우리 집에 한 번 온 적이 있다. 십 몇 년 만에 오랜 친구를 만난 아내는 옛 추억을 나누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도착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살림이 갖춰지지 않은 집을 보니 올해 초 처음 도착했을 때가 생각났다. 우리가 출국하기 전에 샌디에고에 오라고 초대를 했지만 가능할지 모르겠다. 

산타모니카 피어를 잠깐 구경하고 게티 뮤지엄으로 이동했다. 정식 이름은 더 게티 The Getty. LA에서 꼭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히지만 어쩌다 보니 이제야 와보게 되었다. 지난 여름에 갔던 게티 빌라가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어서 이곳도 기대가 되었다. 입구에서 트램을 타고 언덕을 올라가 메인 건물에 도착했다. 미국의 유명 미술관은 건물과 외관 자체가 예술품인 경우가 많은데, 이곳도 마찬가지였다. 잘 가꾸어진 정원이 아름다웠다. 건축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프리츠커 상 수상자인 리차드 마이어가 설계한 건물은 중후하면서도 주변의 공간과 어우러져 기하학적 미학의 정수를 느끼게 한다. 고흐와 뭉크, 르노아르, 렘브란트 등 유명 화가의 작품이 있었지만 소장한 미술품이 다소 빈약하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건물과 공간이 주는 압도감 때문일지도 모른다. 

해가 지기 시작했다. 뉘엿뉘엿 저무는 햇볕을 받아 건물의 외벽이 우아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리차드 마이어는 건물의 내외부를 흰색으로 마감하는 것을 선호해서 백색의 건축가로 불린다. 게티 센터 건물 외벽은 순수한 백색은 아니지만 역시 백색에 가까운 밝은 아이보리 색이다. 백색 외벽은 자연광의 밝기에 따라 매번 달라보이는데, 실제 해가 지는 시간에 건물을 바라보고 있으니 왜 그가 백색을 고집했는지 알 것 같았다. 주변이 온통 노을빛에 휩싸인 공간의 압도적인 느낌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몇 년 전 미투 운동이 활발했을 때 과거 80년대에 그에게 성추행을 당했던 여성들의 폭로가 있었고, 이후 그는 실제 설계 업무에서 손을 뗐다고 한다. 아름다움을 넘어 고결함까지 느껴지는 예술 작품을 만들었지만, 그의 성품은 재능에 미치지 못했던 것 같다. 하긴 그런 유명인이 한둘이던가.

유니버셜 스튜디오 앞에서 오랜 이웃인 Y 가족을 만났다. 교환 학생으로 1년 동안 미국에 머물다 귀국을 앞둔 딸을 만나러 왔다가 샌디에고에서 며칠 머물 예정이다. 우리가 한국을 떠날 때 공항까지 배웅을 해준 고마운 이들이다. 1년 만에 보는 반가운 얼굴들. 아이들 모두가 그동안 부쩍 자랐다.

2021년 12월 28일 화요일

연수일기 173. LA: 웨이퍼러스 채플,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투어

12월 27일 월요일. 338일째 날. LA를 거쳐 샌디에고에 올 지인을 마중하러 LA에 다녀오기로 했다. 오늘과 내일 LA에 머물면서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둘러보려 한다. 

아침에 백신 카드를 잊고 나와 다시 집에 돌아갔다 오는 바람에 웨이퍼러스 채플에 도착했을 땐 오전 열 시가 되었다. 웨이퍼러스 채플은 LA 남쪽의 부촌인 랜초 팔로스 베르드, 그곳에서도 아바론 비치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 있다. 백 명도 수용하기 어려운 작은 채플을 굳이 찾아가 볼 것까지 있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채플을 설계한 건축가가 로이드 라이트 주니어(구겐하임 미술관과 낙수장을 설계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아들)이며 이 건물이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예배당 내부

제단이 있는 전면부를 비롯해 천정과 벽면 대부분이 유리로 된 건물 안에 서면 탄성을 내뱉게 된다. 특별한 결혼식을 치르고 싶은 커플에게 예식 장소로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직접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은 아마 그 기억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도 여러 차례 쓰였다고 한다. 

예배당 건물 앞의 아담한 정원도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정원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평화로워질 것 같다. 건물, 정원, 그리고 주변 풍경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로이드 라이트는 특정한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주변의 자연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설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스타일은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채플이 위치한 도로인 Palos Verdes Drive South 길은 LA에서 드라이브를 즐기기 가장 좋은 코스일 것이다. LA 도심의 칙칙한 분위기와 전혀 다른, 캘리포니아 만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근처의 서브웨이에서 점심을 먹었다. 평범한 동네 몰이지만 바다를 보며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 이웃한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경치를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아마 전 세계 서브웨이와 스타벅스 지점 중 경치로는 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점심을 먹고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투어를 위해 노스 할리우드로 이동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할 때쯤 오전에 맑았던 하늘에 짙은 구름이 끼더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투어 중에 실외 세트를 볼 때는 차량을 타고 이동하므로 비가 와도 큰 문제는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미국 마을 거리와 뉴욕의 몇 번가를 지났다. 뉴욕 거리를 재현한 곳은 실제 스파이더 맨의 물구나무 키스 씬을 찍었던 뒷골목도 있다. 

엘렌 쇼, 올 아메리칸, 프렌즈와 빅뱅 이론 세트장 내부를 구경했다. 프렌즈와 빅뱅 이론 세트장에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우리도 프렌즈 소파에 앉아 포즈를 취해 보았다. 프렌즈의 Central Perk는 투어 중간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는 실제 카페로 쓰인다. 영화 제작 과정과 기법을 설명하는 코너에선 특수 효과와 사운드를 입히는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을 이용한 거인과 꼬마가 식탁에 마주 앉은 장면도 재현해보았다. 

프렌즈 오프닝 음악이 들릴 듯한 곳

투어의 마지막은 해리 포터와 히어로를 테마로 꾸민 곳이다. 해리 포터 구역에선 마법 물약을 만들고 호그와트 초대장을 받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호그와트에서 반 배정을 받는 체험도 한다. 말하는 모자 아래 앉으면 모자가 반을 알려주는데, 우리 가족은 모두가 다른 반이 나왔다. 

코리아 타운에서 감자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원래 계획은 그리피스 천문대에 들러 야경을 보는 것이었는데, 저녁까지 줄곧 비가 내려 그냥 호텔로 일찍 돌아가려 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멈춰 잠깐 천문대에 들러보기로 했다. 비가 오고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사람이 적었다. LA 도심을 바라보는 야경은 아름다웠다. 그동안 LA에 올 때마다 천사들의 도시란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날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무수히 많은 불빛들을 보며 처음으로 그 이름이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야경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얼마 전 뉴욕 맨해튼의 야경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에 젖은 그리피스 천문대

2021년 12월 27일 월요일

연수일기 172.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12월 23일 목요일. 334일째 날. 아이들은 올해 마지막 등교 날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단축 수업을 해 12시 30분에 하교했다. 딸은 선생님에게 드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갔다. 학교에서 나올 땐 선생님께 받은 선물을 들고 있었다. 

네 달 동안 받았던 딸의 미술 수업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애초엔 수업을 받으며 미술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기회가 늘 거라고 기대했지만 실제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조용히 스케치만 했다. 그래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은 수업에 가는 걸 좋아했다. 한 시간 반 동안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쉽지는 않을텐데. 딸은 한국에 돌아가서도 미술 수업을 계속 받고 싶다고 한다. 

저녁엔 후배인 S 선생 집에서 포트럭 파티를 했다. 다섯 가족이 모여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S 선생의 아내는 요리를 잘 하고 손도 크다.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걸 즐겨서 덕분에 그동안 우리도 즐거운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었다.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따로 시간을 내어 우리 딸과 시간을 보내주었는데, 그것도 벌써 세 달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작은 기프트 카드를 준비했다. 


12월 24일 금요일. 335일째 날. 크리스마스 이브엔 항상 가까운 친구 가족들과 함께 모여 시간을 보냈었다. 올해는 이곳에 떨어져 있어 늘 보던 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여럿이 모여야 제맛. 이곳에서 오늘같은 날을 조용히 보낸다면 좀 우울해질 것 같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아파트 이웃들을 집에 초대해 포트럭 파티를 하기로 했다. 오후엔 초대한 아이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포장하고 김밥을 준비했다. 나도 아이들 도시락으로 종종 싸주는 스팸 무스비를 만들었다. 

Y 선생님은 어묵꼬치를, L 선생님은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를, 다른 L 선생님은 직접 튀긴 치킨을 가져오셨다. 각자 가져온 와인과 맥주까지 곁들이니 넘치도록 풍성한 크리스마스 파티 식탁이 차려졌다. 웃고 떠들다 보니 자정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곳에서 좋은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다.


12월 25일 토요일. 336일째 날. 느지막히 일어나 아이들은 산타의 선물을 개봉했다. 크리스마스인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영화를 보며 빈둥거릴 예정. 요즘 아이들과 집에서 보는 영상은 스타워즈이다. 조만간 디즈니랜드 파크에 갈 예정이라 미리 예습도 할 겸, 맨 처음 만들어진 네 번째 에피소드부터 보기 시작해 그동안 세 편을 보았다. 4편이 1977년에 만들어졌으니 40년이 넘었다. 사실 난 스타워즈의 광팬은 아니었다. 단순한 스토리 구조 때문에 어렸을 적 처음 보았을 때도 아주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우주선과 외계인, 광선검, 전투 장면을 보며 어색하다고 느끼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 한껏 눈높이가 올라간 아이들 눈은 40년 전 아이들과 다를 것이다. 지금 보면 조악한 특수 효과와 유치한 대사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오글거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은 에피소드 1, 2를 보았다. 이 영화들도 벌써 이십 년이 되었지만, 만듦새는 앞선 에피소드 세 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다. 홈시어터를 테스트하는 레퍼런스 타이틀로 꼽히던 에피소드 1의 DVD를 반복해 보았던 기억이 난다. 포드 레이싱 경주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흥미진진했다. 디즈니랜드 파크에 가기 전에 남은 에피소드를 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12월 26일 일요일. 337일째 날.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했던 이웃들과 오후에 스파이더 맨 노웨이 홈을 보았다. 미국에서 극장은 두 번째이다. 지난 번에 갔던 시네폴리스는 객석에서 음식 주문이 가능하고 서빙도 받을 수 있었다. 럭셔리를 표방하는 극장이라 좌석 수가 적어서  열한 명의 티켓을 함께 예약하기 어려웠다. 이번엔 UCSD 근처의 AMC에서 보기로 했다. 이곳은 시네폴리스에 비해 좀더 최신 멀티플렉스 분위기였다. 일반 극장이지만 전동식 의자는 시네폴리스 못지 않게 편했다. 

영화관 로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마블 캐릭터 중 아이언 맨과 스파이더 맨을 가장 좋아한다. 아이언 맨은 사라졌고 스파이더 맨만 남았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 시리즈는 몇 번을 반복해 보았다. 이전 스파이더 맨 시리즈들의 후속편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항상 아쉬웠기에 세 명의 스파이더 맨이 나온다는 사실은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은 일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한 화면에서 셋을 보니 뭉클했다. 다른 우주로 건너온 두 명의 스파이더 맨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기도 하고, 그때 마무리하지 못했던 일을 매듭짓거나 구하지 못했던 사람 대신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이를 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소환은 그들에게도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선물같은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거미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모습은 자유롭게 보였다. 중년이 된 토비 맥과이어는 약간은 짠해 보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 영화로 마무리하길 잘 했다.

2021년 12월 23일 목요일

연수일기 171. Cutwater Spirit

12월 21일 화요일. 332일째 날. 이번 주부터 많은 학교가 방학을 시작해서인지 아침 출근길 도로에 차가 줄었다. 이미 휴가를 떠난 이들도 많은 것 같다. 나도 올해 연구실에 나가는 건 오늘이 마지막이다. 

C 박사님을 만나 저녁을 먹었다. C 박사님은 페이스북을 통해 알게 된 분으로, UCSD에서 학위를 취득하고 회사를 창업해 운영하고 계신다. 샌디에고에서 사는 이야기나 실리콘밸리, 창업에 대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왔고, 올려주신 정보를 통해 생활에 도움도 받았다. 그동안 가끔 댓글만 다는 정도로 아는 척을 하다 떠날 때가 가까워오니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누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기회가 마련되어 다행이다. 

약속 장소는 Cutwater Spirit이었다. 샌디에고 최초의 distillery(증류주 제조장)라고 하는데, 발라스트 포인트를 포함해 브루어리가 모여있는 미라마르에 있다. 주변의 브루어리보다 조금 더 힙하고 세련된 분위기였다. 증류주 기반의 칵테일이 주 메뉴로, 메뉴의 첫 번째에 있는 vodka mule, 다음으론 margarita를 시켰다. 캔으로 만든 칵테일은 일반 마트에서도 판매한다고. 칵테일도, 안주로 시킨 음식도 괜찮았다. 알고보니 이곳은 발라스트 포인트의 창업자인 Yuseff Cherney가 세운 곳이었다. 

마트에서 살 수 있는 Cutwater Spirit 칵테일

맛있는 음식과 함께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C 박사님과 샌디에고에서의 생활, 가족, 맛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발라스트 포인트와 Cutwater Spirit에 대한 재미난 이야기도 들었다. 자세한 스토리는 링크 참고. 발라스트 포인트를 $1 billion이란 어마어마한 가격에 매각한 뒤 곧바로 이 distillery를 오픈했는데, 매각 당시 계약에 조건을 걸어서인지 이곳에선 맥주는 제한된 종류만 팔고 있다. 낮 시간에 오면 가끔 바에서 창업자인 Yuseff Cherney를 만나 이야기를 나눌 수도 있다고 한다.  


12월 22일 수요일. 333일째 날. 귀국해 가족 친지들에게 줄 선물을 사기 위해 칼스배드 아울렛을 방문했다. 블랙 프라이데이 이후에 많은 매장에서 50퍼센트 이상 할인을 하고 있다. 덕분에 폴로 매장에서 괜찮은 가격의 티셔츠를 여러 벌 샀다. 한국을 떠날 때 여러 사람에게 고마운 도움을 받았기에 돌아가서 답례를 해야 할 분들도 많다. 선물을 뭘 해야 하나 아내가 고민이 많았는데 오늘 대부분 해결해서 마음의 짐을 조금이나마 덜었다. 

아들의 스케이트 보드 수업에 강사인 Mike가 나타나지 않았다. 미리 연락 없이 수업을 빵꾸내는 게 최근 들어 두 번째이다. 문자에도 답이 늦고 통화 연결도 잘 안된다. 뒤늦게 문자에 답이 오긴 했다. 아들의 스케이트 보딩 실력은 제법 늘었다. 수업 내용과 방식엔 문제가 없고 아들도 Mike를 좋아하지만, 성실함은 부족한 것 같다. 패키지로 예약한 수업은 이제 두 번이 남았을 뿐인데, 기간이 더 남았다고 해도 수업을 계속 연장하지는 않을 것이다. 

2021년 12월 21일 화요일

연수일기 170. 크리스마스 카드 레인

12월 20일 월요일. 331일째 날. 오늘 아침엔 미션 베이 공원을 뛰었다. 아침 운동을 하러 15마일을 운전해 가는 건 오버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여기서 조깅을 해보는 게 아내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였다. 평소보다 더 길게, 4킬로미터를 뛰었다. 막상 아내는 기대했던 감흥이 없었나 보다. 한강 공원을 뛰는 것과 비슷한 기분이라고. 미션 베이 공원에 몇 번 왔었지만 나도 손에 꼽을만한 곳은 아니었다. 아내는 라호야를 기준으로 북쪽에 비해 남쪽이 전반적으로 분위기가 못하다고 했는데 동감이다. 뭐랄까, 상대적으로 조금은 어정쩡하게 촌스러운 느낌. 임페리얼 비치처럼 아예 시골스런 분위기면 오히려 낫다.

저녁에 크리스마스 카드 레인이란 이름의 거리를 구경했다. 마침 딸이 다니는 미술 학원과 가까워서 딸을 데리고 오는 길에 들렀다. 크레스몬트의 Oviedo 스트리트 주변을 일컫는데, 부근의 모든 집들이 크리스마스 장식을 화려하게 했다. 크리스마스 장식을 한 집들은 널렸지만 이곳의 장식 스케일은 남달랐다. 수백 수천 개의 전구와 각자 제작한 특별한 크리스마스 카드는 기본이었다. 그 중에 끝판왕은 오만 개의 전구를 사용했다고 밝힌 집인데, 카드의 테마는 인크레더블 캐릭터였다. 장식 자체가 인크레더블했다. 





개성 가득한 장식들. 마지막이 끝판왕.

집집마다 개성있는 장식을 보는 재미가 있었다. 어느 집의 장식이 더 독특하고 화려한지 비교도 하게 된다. 이웃 간에 묘한 경쟁심도 조금은 들지 않을까 싶다. 이 동네에서 살면 크리스마스 장식은 필수일테니 이사를 오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해가 지고 완전히 깜깜해지자 골목은 차와 사람으로 북적였다. 차들은 서행을 하면서 크리스마스 장식을 구경했다. 

2021년 12월 20일 월요일

연수일기 169. 메디테이션 가든

12월 18일 토요일. 329일째 날. 네 번째 유행이 시작되고 이번 달 들어 미국에선 매일 12만 명이 넘는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얼마 전엔 미국의 covid-19 사망자가 80만 명을 넘었고, 2차 세계 대전 사망자의 두 배가 넘었다는 뉴스도 있었다. 영국과 독일을 비롯해 유럽도 상황이 나빠지면서 거리두기를 강화하고 있다. 뉴욕주에는 올 초 수준을 넘는 하루 2만 명 이상의 확진자가 쏟아지면서 브로드웨이 뮤지컬도 일부 다시 취소되었다고 한다. 한 달 전 맨해튼 거리를 걸을 때만 해도 상황이 이렇게 급격하게 나빠질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이번 유행의 파고는 얼마나 높게, 얼마나 오랫동안 머물까. 매일 기록적인 수치를 보이는 확진자와 사망자 숫자가 이제는 무감각하게 느껴진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어김없이 다가온다.

이곳에서 맞는 크리스마스는 조금은 특별하다. 마을 전체, 아니 도시 전체가 들떠있다. 산타 모자를 쓰고 거리를 걷는 사람들과 커다란 크리스마스 장식을 단 자동차를 본다. 집 지붕과 현관, 차고 문, 앞뜰의 나무에 색색의 전구가 걸리고 잔디 위엔 장식이 세워진다. 모두가 한국에선 보기 어려운 광경이다.

크리스마스 휴가를 앞두고 환자가 늘어날 것을 대비해 검사소가 더 많이 설치된다고 한다. 뉴스를 들으며 크리스마스 장식이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지나는데 순간 차창 밖으로 보이는 것들이 모두 현실이 아닌 환상처럼 느껴졌다. 중환자 병상의 여유 상황은 다시 나빠지고 있고, 의료진도 지쳐간다. 백신의 효과는 예전같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새로이 나타난 변이는 이제 막 기세를 떨치기 시작했을 뿐이다. 그럼에도 우리가 가진 것은 많지 않다. 거리 두기, 마스크, 그리고 백신과 부스터. 일 년 동안 줄곧 해왔던 것들이다. 마치 미지의 상대에게 가진 패를 다 읽혀버린 도박꾼이 된 기분이다. 우리는 새로운 상대를 아직 충분히 알지 못한다. 지금 막 커튼을 걷고 나타난 상대와의 싸움도 버거운데, 커튼 뒤엔 또 다른 상대들이 숨을 죽이며 등장을 기다리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면 숨이 막혀온다.

2천 년 전 어느 청년이 보여준 것과 같은 기적은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구원을 가져다줄 대상을 찾다 지친 사람들은 분노와 조롱을 내뱉고 돌을 던진다. 하지만 애초에 모두를 일거에 구원할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진 패를 하나하나 다시 확인하고 그저 묵묵히 지루한 싸움을 반복하는 것 뿐이다. 그것이 수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무사히 이번 크리스마스를 맞을 수 있게 해주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혼자가 아닌 다른 이들과 함께 했을 때 완성된 패를 만들 수 있다는 것도. 우리 각자는 온전한 카드 세트를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며, 스스로는 카드 낱장 무늬 하나 정도에 불과할 뿐이다. 그러니 분노와 조롱을 멈추고 조금만 더 손을 내밀어 주길.

다시 긴 겨울이다. 하지만 크리스마스는 모두에게 다가온다. 

귀국을 한 달 앞두고 미용실에서 일 년 동안 기른 머리를 잘랐다. 미용실에 간다는 이야기에 아내가 제일 좋아했다. 아이들은 오랜만에 짧아진 아빠 머리가 어색하다고 자꾸 놀린다. 


12월 19일 일요일. 330일째 날. 오후에 문라이트 스테이트 비치에 다녀왔다. 해변에 가기 전, 근처의 메디테이션 가든에 들렀다. Encinitas temple에 딸린 정원으로 올해 내내 닫혀있었다가 최근에 다시 문을 열었다. 올해 여름에 문이 닫힌 걸 모르고 이곳을 찾았다가 허탕을 친 적이 있다. 

서핑하기 좋은 해변으로 유명한 Swami's beach를 내려다보는 절벽 위 이 사원은 요가와 명상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건물은 프로그램에 참여자를 위한 시설이지만 정원은 누구에게나 개방되어 무료로 둘러볼 수 있다. 아담한 정원엔 다양한 식물이 잘 가꾸어져 있다. 정원은 아래 해변과는 달리 조용하고 평화롭다. 중간 중간 벤치에 앉아 명상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짧은 산책로를 따라 안쪽으로 들어가면 작은 광장이 있는데, 갑작스레 나타나는 탁 트인 전망에 놀라게 된다. 조용한 정원에서 벤치에 앉아 햇볕에 반짝이는 바다를 보고 있자면 마음이 차분해진다. 

메디테이션 가든

문라이트 스테이트 비치는 아이들의 여름 서핑 캠프 이후로 오랜만이다. 오늘은 햇살이 따뜻해 해변에 앉아있을 만했다. 돗자리를 깔고 누워 아내는 책을 읽고 나와 아이들은 바닷물에 젖은 부드러운 모래 위를 뛰어다녔다. 서핑을 즐기는 사람들은 여전히 많지만 겨울의 바닷물은 발을 오래 담그기엔 차다. 아이들은 돗자리 옆으로 돌아와 모래를 파고 경사를 만들어 미끄럼을 타며 해가 질 때까지 한참을 놀았다.

문라이트 스테이트 비치의 일몰


2021년 12월 18일 토요일

연수일기 168. 중학교 발표회

12월 16일 목요일. 327일째 날.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곧장 연구실에 가면 대개는 내가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된다. 오늘 아침 연구실 건물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올렸지만 작동이 되지 않았다. 컴컴한 복도를 조심조심 걸었다. 복귀가 되기까지는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내가 일하는 곳은 복도 맨 끝 방이라 두 벽면에 걸쳐 창이 있어 전등을 켜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지만 창이 없는 방은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전 때문인지 와이파이 신호도 잡히지 않아서 휴대폰을 테더링해 일을 했다. 이곳에 있으면서 학교 시설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걸 경험했다. 정전이 되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거나, 전산에 문제가 생기거나 해킹이 되는 등 문제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드웨어의 문제도 있겠지만 막상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썩 시원친 않게 느껴진다. 연구실이 있는 별관 건물의 경우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고치는 데 두 달이 넘게 걸렸다. 한국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이 너무 급한 건지, 이곳이 너무 느린 건지는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연수를 시작한 선생님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올해 초 UCSD에 연수를 온 의사는 네 명 뿐으로, 예년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였다. 어려운 시기에 연수를 와서 첫 몇 개월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여름 이후론 새로운 분들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막상 네 명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 적이 없다. 꼼꼼하고 주변을 잘 챙기는 C 선생님 덕에 뒤늦게나마 네 명이 모일 수 있었다. 

아내는 지난 일 년 동안 영어 수업을 함께 했던 할머니들 세 분을 집에 초대해 점심을 대접했다. 클레어, 수잔, 노리 할머니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친숙하게 느껴진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할머니들과의 만남은 아내의 이곳 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오늘 할머님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가능하다면 떠나기 전에 뵙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저녁엔 아들의 학교에서 발표회가 있었다. 'Holiday Howl'이란 제목의 행사로(아들 학교의 상징은 늑대이다), 과학, 미술, 음악 등의 선택 과목 결과물을 발표하는 시간이다. 평소와 달리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교문 입구가 활짝 열렸다. 교문 앞엔 푸드 트럭이 자리를 잡았고, 평소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잔디밭엔 페이스 페인팅과 마술 공연 부스가 설치되었다. 구석에선 자원 봉사를 하는 아이와 부모들이 1불 짜리 핫초코와 팝콘을 팔고 있다. 

교문엔 손님을 환영하는 풍선

다목적실엔 미술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작품이 걸렸다. 건물 앞에 마련된 두 개의 무대에선 음악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컬, 오케스트라, 밴드(7학년, 8학년), 네 개로 구성된 음악 공연은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아들은 오늘 공연할 세 곡을 지난 몇 달 동안 연습했다. 이번 주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생각에 나름 긴장도 하는 눈치였다. 

보컬 공연이 끝나고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연주는 훌륭했다. 두 달 전 있었던 커피 콘서트 때보다 아이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지휘도 열정적이었다. 임시 공연장인 건물 입구 계단을 둘러싼 사람들은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열정적인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공연 시작 직전


12월 17일 금요일. 328일째 날.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금요 연구 미팅이다. 오늘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다음 주 금요일부턴 크리스마스 휴가에 들어간다. 이제 앞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연구 미팅도 세 번 정도에 불과하다. 

딸은 오후에 Covid 백신 2차 접종을 받았다. 오미크론 변이가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하는 상황이라 접종 스케줄은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내와 나도 부스터 접종을 받았으니 이제 당분간 가능한 접종은 모두 맞은 셈이다. 

2021년 12월 16일 목요일

연수일기 167. 논문

12월 13일 월요일. 324일째 날. 내년 초 겨울 방학 기간에 마이애미 행 항공권을 예약했다. 지난 뉴욕 여행이 먼 거리를 가는 걸로는 마지막이라 생각했었다. 한 달도 되지 않아 생각이 바뀐 것이다. 

올 연말에 한국에서 아들 친구 가족이 올 예정이다. 마침 아이들 방학 기간이라 며칠 동안 함께 지내다 이들은 서부 여행을 갈 것이라, 이후 방학이 일주일 정도 남는다. 일주일 동안 특별한 일정 없이 집에 있을 것을 생각하니 시간이 아깝기도 하고, 출국을 앞두고 기분도 가라앉을 것 같아 어딘가로 떠나기로 했다. 그래서 생각한 곳이 더 따뜻한 플로리다. 마이애미와 키웨스트, 그리고 근처의 에버글라데스 국립공원을 들를까 한다. 


12월 14일 화요일. 325일째 날. 며칠 간 날씨가 쌀쌀했는데 오늘은 아침부터 하루 종일 비바람이 불었다. 일기 예보에선 오늘 하루 폭풍의 영향을 받는다고 한다. 겨울에도 영하로 떨어지지 않는 날씨지만 바람이 강해서인지 체감 온도는 훨씬 낮을 때가 많다. 어제 오늘은 샌디에고에도 겨울이 있다는 걸 여실히 느끼는 중이다.  

진행 중인 연구의 논문 초안을 완성했다. 자료를 처음 분석하고 결과를 확인한 게 지난 6월이니 이후로 여섯 달이 지났다. 지난 달 뉴욕 여행을 가기 전까지 초안을 쓰는 것이 목표였는데 이것도 한 달이 늦어졌다. 자료를 분석하면서 연구 방향이 조금 바뀌기도 했고, 애초 계획서의 제외 기준을 반영하지 않은 걸 뒤늦게 발견해 재분석을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순조로운 연구를 위해선 잘 작성된 계획서가 가장 중요하고, 이후는 그 계획을 충실히 반영하면 된다는 당연한 원칙을 다시 느끼기도 했다. 결국 일정이 지연된 가장 큰 이유는 역시나 게으름 때문이다.

그래도 연말 휴가 이전에 초안을 공저자들에게 보낼 수 있어 다행이다. A 교수님은 원고를 보낸 지 몇 시간 만에 첨삭을 해 답신을 주었다. 지난 분석 과정에서 A 교수님이 준 의견은 많진 않았다. 하지만 지금 되짚어보면 그 의견은 꼭 필요한 내용이었고, 대부분 옳았다. 그와 연구를 진행하면서 대가는 지식과 경험 뿐만 아니라 협업 과정에서의 태도도 역시 다르다는 생각을 여러 차례 했다. 배울 점이 많은 분이다. 


12월 15일 수요일. 326일째 날. 오랜만에 화창한 아침이다. 오랜만이라 해봐야 기껏해야 사나흘일 뿐이지만. 화창한 날이 대부분이다 보니 며칠만 구름이 끼어도 요즘 날씨가 왜 이러나 하는 생각이 든다. 아침에 공원을 뛰는데 쓰러진 나무들이 여럿 보인다. 폭풍이 지나갔다 해도 나무가 뿌리뽑힐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지반이 약하거나 이곳 나무들 뿌리가 깊지 않나 보다. 

주말에 국경을 넘어 멕시코 엔세나다에 다녀오려 계획했었는데 예약한 호텔을 취소했다. 국경이 열린지 얼마 되지 않았고 최근 코로나 환자가 급격히 늘어나는 추세여서 부담도 된다. 엔세나다는 비교적 안전하다고 하지만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가는 게 꺼림직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아내가 안전에 대해 불안함을 느끼는 것도 마음에 걸렸다. 멕시코를 사랑하는 Rob은 엔세나다는 특별할 게 없다고, 멕시코엔 그보다 멋진 곳이 많다고 했다. 샌디에고에 살면서 차로 국경을 한 번쯤은 넘어보고 싶었는데, 아쉽긴 하다. 살면서 언젠가 멕시코에 가게 될 수 있을까.

저녁엔 바베큐장에서 C, Y 선생님 가족과 고기를 구웠다. 딸은 친구와 수영 시합을 했다. 식사 후에 따뜻한 파이어링 옆으로 자리를 옮기려 했는데 어제 비가 와서인지 점화가 되지 않았다. 대신 클럽 하우스 안에서 이야기를 나눴다. 떠날 날이 가까워오니 이런 시간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2021년 12월 13일 월요일

연수일기 166. 선셋 클리프스 자연 공원

12월 11일 토요일. 322일째 날. 오후에 선셋 클리프스에 다녀왔다. 샌디에고에서 손꼽히는 관광지 중 하나이고,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이 일몰을 보기 좋은 곳으로 유명하다. 사실 샌디에고에선 모든 해변의 일몰이 아름답고, 해가 지는 걸 보기 위해서라면 꼭 선셋 클리프스나 코로나도와 같은 유명한 곳을 갈 필요는 없다. 집에서 5분 거리인 토리 파인즈나 델 마르 비치만 가도 끝내주는 노을을 볼 수 있으니까. 오늘에서야 선셋 클리프스에 가게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주차장에서부터 랏케이 포인트까지 천천히 걸었다. 듣던 대로 경치가 멋진 곳이었다. 절벽을 따라 선셋 클리프스 대로 옆으로 이어진 산책길도 괜찮은데, 중간중간 길이 끊기고 도로를 이용해야 하는 게 아이들과 걷기엔 좀 불편했다. 해변으로 내려가는 계단도 설치되어 있었지만 내려가 보진 않았다. 케이브 주변엔 펜스가 둘러져 있어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웠다. 바람이 센 날이어서 큰 파도를 즐기는 서퍼들이 보였다. 널찍한 바위로 이루어진 뷰 포인트에는 사진을 찍는 사람들도 많았다. 바위에 부딪혀 부서지는 파도가 눈높이까지 솟아오른다. 

산책길을 따라 이어진 절벽

한 시간 정도 짧은 산책을 하고, 저녁을 먹기 위해 근처의 리버티 스테이션 퍼블릭 마켓으로 이동했다. 샌디에고에 와서 두 주쯤 지났을 때 왔던 곳이다. 스톤 브루잉에 자리가 준비되는 동안 마켓을 구경했다. 열 달 전보다 활기찬 분위기였고 사람도 많았다. 아르헨티나 음식인 엠파나다스를 하나 사서 맛을 보았다. 밀가루 안에 다진 고기와 야채를 넣어서 구운 것으로 만두와 비슷한데 피가 더 딱딱하고 두껍다. 가장 기본인 소고기를 넣은 걸로 골랐다. 남미에선 길거리 음식으로 인기가 많다던데, 맛은 그저그랬다.

브루어리마다 분위기가 다르고 좋은 곳도 많지만, 발라스트 포인트 미라마르 지점과 더불어 이곳 스톤 브루잉 야외 좌석도 손꼽을 만하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는 시간이 되니 나무에 걸린 전구와 크리스마스 장식에 불이 밝혀졌다. 쌀쌀한 날씨여도 테이블마다 히터가 있어 춥지 않았다. 음식도 맛있고 네 종류의 맥주를 맛볼 수 있는 플라이트 메뉴가 있어 더 즐거운 곳이다. 


12월 12일 일요일. 323일째 날. C, Y 선생님 부부와 솔라나 비치에 다녀왔다. 어제 못 보았던 일몰을 보기로 했다. 샌디에고의 해변 중에서 솔라나 비치가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아내와 내가 가장 좋아하는 해변이고, 일몰을 가장 많이 본 곳이기도 하다. 

해가 진 뒤 피자 포트 브루어리에서 맥주와 피자로 저녁을 먹었다. 한국에서도 이곳의 캔맥주를 찾아볼 수 있을만큼 유명한 로컬 브루어리의 본점 치고는 작은 규모에 소박하고 편한 곳이다. 발라스트 포인트나 스톤은 조금은 세련된 분위기인데 반해 이곳은 왁자지껄한 동네 펍 분위기가 난다. 아이들을 데려온 가족들도 많다. 의자에 앉아 피자를 먹는 사람들도 있고 테이블 옆에 서서 스포츠 채널의 풋볼 경기를 보며 맥주를 마시기도 한다. 한쪽 공간엔 아이들 둘이 커다란 게임기에 바짝 붙어 슈팅 게임을 하고 있다. 

화면에 나타나는 괴물을 잡느라 정신없는 아이들

피자 포트 본점 답게 이곳에선 스와미 맥주 여섯 개 들이 팩을 마트에서보다 훨씬 싼 가격에 살 수 있다. 남은 피자를 포장하고 캔맥주 몇 개를 더 샀다. 

2021년 12월 11일 토요일

연수일기 165. 크리스마스 공연

12월 8일 수요일. 319일째 날. 어제 딸에게 짖궂게 대했던 같은 반 남자 아이는 동양인이었다. 지난 학기의 학교 졸업 앨범에서 얼굴을 확인했다. 부잡하게 생긴 아이였다. 성을 보면 한국인 또는 중국인으로 보이는데, 아마 미국에서 태어난 게 아닌가 싶다. 일단 딸이 한국 아이라 괴롭힘을 당한 건 아니란 생각에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한편으론 녀석에게 괘씸한 생각이 들기도. 

오후엔 딸이 만든 국립 공원 보드 게임을 했다. 종이로 게임 판과 말, 국립공원 패스를 만들었다.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모든 주에 국립 공원 방문 스탬프를 찍으면 이기는 게임이다. 제법 그럴 듯 했다. 도통 게임이 끝나질 않는다는 문제가 있긴 했지만. 

딸의 아이스 스케이팅 수업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오늘은 모든 아이들이 간단한 크리스마스 공연을 했다. 비틀거리고 넘어지기 일쑤였지만 다들 즐거운 표정이었다. 한국에 돌아가면 올 겨울이 가기 전에 조만간 집 앞 올림픽 공원에서 스케이트를 타는 아이 모습을 볼 수 있겠지.

아이들의 공연


12월 9일 목요일. 320일째 날. 내일이 딸아이 반 선생님의 생일이라고 한다. 학부모 대표께서 짧은 축하 동영상을 찍어 보내주면 편집해 선생님께 선물하겠다고 한다. 두 문장의 짧은 메세지 뿐이지만 몇 번을 반복해 찍어서 가장 나은 영상을 보냈다. 선생님의 내일 하루가 행복하시길. 

Happy Birthday, Mrs Schengel. Have a great birthday!


12월 10일 금요일. 321일째 날. 내년 1월 말에 연수를 오실 분에게 전체 살림을 무빙 세일로 넘기는 것을 상의하고 있었는데, 오늘 확정이 되었다. 살림 물품을 정리하다 보니 올해 초에 이케아와 마트에서 살림을 사고 중고 물품을 받느라 매일 돌아다니던 기억이 난다. 새로 들어오실 분은 입국 초기에 시간과 노력을 절약할 수 있어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도 출국 준비가 조금은 수월해질 것 같다. 

거울로 된 클라짓 문이 깨진 지 한참 되었는데 오늘 새 거울로 교체했다. 세입자의 부주의로 생긴 문제라 비용이 나오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그렇진 않은 것 같다. 지금 사는 아파트는 장점이 많다. 수영장 등 커뮤니티 시설이 훌륭하고, 관리도 잘 된다. 빌트 인 살림에 생긴 문제는 대부분 아파트 리싱 오피스에서 해결해준다. 심지어 전구가 나갔을 때도 새 전구를 가져다주거나 갈아준다. 웹페이지를 통한 접수도 편하다. 하긴, 그러니 렌트비가 비싸겠지. 

H 선생님의 아내가 내일 출국을 앞두고 인사를 왔다. 두 주 전에 가족들을 먼저 보내고 며칠 동안 마음이 편하지 않았을 것 같다. 친하게 지내던 가족이 귀국을 하니 우리 마음도 조금 허전하다. 한국에 돌아가면 다시 만나기로 약속했다. 

2021년 12월 8일 수요일

연수일기 164. 선생님의 메일

12월 5일 일요일. 316일째 날. 라호야의 글라이더 포트에 가보기로 했다. 바다와 맞닿은 언덕에서 패러글라이딩을 할 수 있는 곳이다. 실제 하늘을 난다면 더 좋겠지만 파란 하늘을 떠다니는 패러글라이더만 봐도 좋을 것 같다. 코스트코에서 간단히 장을 보며 주유를 하고 인앤아웃에서 버거를 산 뒤 라호야로 이동을 했는데 생각보다 시간이 걸려 오후 네 시가 넘었다. 해가 질 시간이 가까워서인지 패러글라이딩을 하는 모습은 보지 못했고, 하늘을 날고 있는 글라이더(무동력 비행기) 모형 한두 개만 볼 수 있었다. 날씨가 좋을 때 좀더 이른 시간에 오는 게 좋을 것 같다.


12월 6일 월요일. 317일째 날. 오전에 Cardiff-by-the-Sea 카디프 바이 더 시 도서관에서 논문 원고를 썼다. 샌디에고 카운티 도서관 중 하나이다. 이곳은 처음이었는데 아담하고 깔끔한 건물과 실내가 마음에 들었다. 도서관 앞의 Pipes cafe에서 브런치를 먹고 San Elijo State Beach 샌 엘리요 스테이트 비치를 잠깐 산책했다. 해변 캠핑장엔 RV 몇 대와 텐트들이 있었다. 몇 발짝만 걸으면 바다이고 깨끗한 화장실도 가까이 있어 캠핑 하기엔 아주 좋을 것 같다. 바닷 바람을 쐬다 심심하면 카페에 걸어가 맛있는 커피를 홀짝이며 책을 읽어도 좋겠다. 한국의 어느 해변에 이런 곳이 있다면 이렇게 한적한 분위기는 아닐 것이다.  

Cardiff-by-the-Sea Branch Library

해변 앞의 서퍼 동상. 뒤에 새겨진 시 제목은 Magic Carpet Ride

아들의 농구 수업은 오늘이 마지막이다. 당분간 윈터 브레이크가 있고 1월 중순에 새 시즌이 시작되어 더 등록하긴 힘들 것 같다. 가끔은 수업 가는 걸 귀찮아 하기도 했지만, 꾸준히 했던 수업이라 아들도 마지막 수업이 못내 아쉬운 눈치이다. 


12월 7일 화요일. 318일째 날. 비가 오고 날씨가 쌀쌀해졌다. 딸을 학교에서 데리고 와 집에서 다른 일을 하다 학교 선생님의 메일을 받았다. 오늘 딸이 교실에서 필통을 바닥에 던지고 울었다고 한다.

놀란 선생님이 아이를 데리고 나와 이유를 물었다. 네 명이 앉은 책상에 함께 앉은 남자 아이가 책상에 선을 긋고 자신을 밀어냈다고 한다. 책을 펴지 못할 정도로 선을 그어서 책과 학용품을 가지고 바닥으로 내려가 앉았는데(여기 교실에서 아이들은 종종 바닥에 엎드려 책을 읽는다) 그 아이가 놀리는 듯한 표정으로 무언가를 말했고, 딸은 그 행동에 화가 폭발해 필통을 바닥에 던지게 되었다고. 그 남자 아이는 지난 학기에도 같은 반이었는데, 그때부터 종종 짖궂은 행동을 했다고 한다. 

딸은 오빠에 비해 감정적이고 아직은 감정을 제어하는 데에도 서툴러서 가끔 분을 참지 못하고 과한 행동을 한다. 겨우 아홉 살이니 당연할 수도 있다. 선생님도 당부하셨지만, 교실에서 물건을 던지는 건 해서는 안되는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한번 더 이야기해 주었다. 앞으로 그런 행동을 다시 하지 않기로 약속도 했다. 한편으론 아이가 좀 안쓰럽기도 했다. 한국에서처럼 말이 쉽게 통하는 상황이었다면 먼저 말싸움을 해서 감정을 누그러뜨렸을 수도 있었을텐데. 화가 난 마음을 표현하고 그 아이에게 따지기 어려우니 순간 욱하는 행동이 더 나왔을 것이다. 

영어를 잘 못하는 작은 동양 여자 아이라 그 아이가 더 우습게 본 건 아닌지 걱정도 조금 되었다. 캘리포니아의 초등학교 저학년 교실에서 차별이나 따돌림은 드문 일일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최근에 보고 들은 일들이 떠올라 마음 한구석이 불편하다. 선생님께 딸에게 들었던 이야기와 함께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주의를 주겠다고 메일로 말씀드렸다. 더불어 그 아이의 평소 행동에 대해서도 알려드리고 앞으로 잘 지켜봐달라 부탁했다. 


2021년 12월 5일 일요일

연수일기 163. Oxford 고등학교 총격 사건, 그리고 학교 뉴스 레터

12월 3일 금요일. 314일째 날. 사흘 전 미시간 주의 Oxford 고등학교에서 총격 사건으로 학생 네 명이 사망하고 일곱 명이 다쳤다. 학교에서의 총격 사건은 일상에 가깝고, 한 사건이 채 잊혀지기도 전에 다시 반복된다. 올해만 벌써 서른 번의 교내 총격 사건이 있었다는 사실을 위키피디아에서 확인했다. 이번 총격에선 2018년 열 명이 사망한 텍사스 사건 이후 가장 많은 사망자가 발생했다. 

사건의 전후 상황을 자세히 밝힌 기사를 보았다. 친구들에게 총을 쏜 범인은 15세 아이였다. 그가 사용한 반자동 9밀리 권총은 부모가 사준 것으로, 이른 크리스마스 선물이었다. 추수감사절 다음 날 아빠는 아이와 총기샵에 함께 갔고, 그날 엄마는 새로 산 총을 아이와 함께 테스트했다. 사건이 벌어지기 전, 아이가 온라인으로 탄약을 검색하는 걸 본 선생님이 부모에게 그 사실을 알렸다. 하지만 엄마는 아들에게 다음과 같은 문자를 보냈다고 한다. 

“LOL I’m not mad at you. You have to learn not to get caught.” 

사건이 발생하기 하루 전의 일이다. 

이후에도 사건을 막을 수 있는 기회는 있었다. 사건 당일 아침, 선생님이 아이의 노트에 총과 총상을 입은 사람과 함께 웃는 얼굴의 이모티콘이 그려진 것을 발견했다. 노트엔 “Blood everywhere”, “The thoughts won’t stop. Help me.”라는 글귀도 함께 적혀 있었다. 학교에선 즉시 부모를 불렀고 아이에게 상담을 권했다고 한다. 하지만 부모는 그날 아이가 학교에 있길 원했다. 아이에게 총을 가져왔는지 묻지 않았고 아이의 백팩을 확인하지도 않았다. 

겨우 몇 시간 뒤, 아이는 화장실에서 백팩에 든 권총을 꺼내 친구들을 향해 쏘기 시작했다. 

기사의 내용은 끔찍했다. 아이의 부모는 과실 치사 혐의로 구속되었다. 가장 화가 났던 것은 사건을 미리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못했다는 점이었다. 아이의 크리스마스 선물이 총이 아닌 다른 것이었다면. 총을 다른 곳에 보관했더라면. 선생님의 알림에 대해 조금이라도 신경을 썼더라면. 그날 아침 아이의 가방을 열어보기만 했더라면. 네 명의 꽃다운 아이들이 목숨을 잃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이런 사건을 접할 때마다 총기 소지를 제한해야 한다는 생각은 확고해진다. 

semiautomatic 9-millimeter Sig Sauer handgun
(아이가 사용한 총과 유사한 모델)

사건이 발생하고 학교에서 보낸 뉴스 레터를 받았다. 이천 마일 건너의 일이었지만 레터에선 사망한 학생들에 대한 애도와 슬픔, 그리고 이 사건으로 충격을 받았을 아이들에 대한 걱정과 당부의 마음을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오늘은 또 다른 레터를 받았다. 어제 토리파인즈 고등학교 남자 화장실 벽에서 나찌 문양의 낙서가, 다른 고등학교 여자 화장실에는 특정 학생을 위협하는 낙서가 발견되었다는 내용이었다 (구체적인 내용은 밝히지 않았다). 차별이 적다고 하는 캘리포니아의 학교에서도 hate crime을 걱정해야 할 만한 일이 종종 생긴다. 

미국 학교의 교육 방식은 훌륭하다. 

하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은 안전한가? 잘 모르겠다.


12월 4일 토요일. 315일째 날. 아내가 부스터 접종을 받았다. 오미크론 변이로 부스터 접종을 독려하는 상황이라 이전보다 접종 예약 슬롯에 여유가 없는 것 같다. 다른 곳에 예약을 해 둔 상태지만, 시온 마트의 약국에서 워크인 접종이 가능하다고 해 오늘 장을 보러 간 김에 이른 날짜에 맞았다. 2차 접종 후 열이 나고 이상 반응이 심했는데, 다행히 이번 접종 후엔 열은 나지 않았고 다른 증상도 접종 부위의 통증과 피로감 정도에 그쳤다.  

저녁엔 집 앞 몰에 크리스마스 트리 점등식이 있었다. 레스토랑 야외 좌석에서 오랜만에 외식을 했다. 평소보다 사람들이 많았다. 몰 안의 광장엔 캐럴이 울려퍼지고 장난감 기차가 돌아다녔다. 트리 앞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방문한 산타 할아버지, 할머니와 함께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섰다. 한국에선 언젠가부터 인파가 많은 특별한 장소에 가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기분을 느끼기 어려운데, 여기선 어딜 가든 벌써 크리스마스가 찾아온 것 같다. 

2021년 12월 3일 금요일

연수일기 162. 12월

12월 2일 목요일. 313일째 날. 백악관에서 오미크론 변이 관련 대응책을 발표했다. 소아와 청소년에 대한 접종과 부스터 샷에 대한 접종률을 높이는 것, 자가 진단 키트 보급 등이 주된 내용이다. 여행과 입국 관련 강화된 조치도 포함되어 있다. 미국행 항공기 탑승 3일 전 검사에서 1일 전 검사로 강화, 입국 후 3-5일에 재검, 입국 후 자가 격리 의무화 등 세 가지 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뉴스가 보도되었던 게 며칠 전이다. 이 세 가지 중 실제 대응책에 포함된 것은 첫 번째 항목인 검사 일정 뿐이었다. 미국행을 준비하고 있는 사람들에겐 다행스런 소식이다.

딸은 어제부터 Advent calendar 초콜릿을 매일 아침 하나씩 열어서 학교에 간식으로 가져간다. 12월 첫째 날부터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며 숨겨진 선물을 하나씩 뜯어보는 재미가 있는데, 초콜릿이 든 캘린더는 가격도 부담이 없어 좋다. 오늘은 루돌프 얼굴 모양의 초콜릿이 나왔다.

트레이더 조에서 산 어드벤트 캘린더

라디오 채널에선 하루 종일 크리스마스 노래가 나온다. 상가엔 이미 크리스마스 트리와 장식이 들어섰다. 12월이 왔고 곧 휴가 시즌이라는 게 실감이 난다. 

2021년 12월 2일 목요일

연수일기 161. 오미크론

12월 1일 수요일. 312일째 날. 며칠 전부터 뉴스는 새로운 오미크론 변이 기사로 가득하다. 델타 변이의 위력에 호되게 당했던 경험이 있어서인지 전 세계가 이번 변이엔 훨씬 빠르게 대응하는 것 같다. 변이를 대하는 각국의 표정도 심각하다. 백악관에선 이미 지난 금요일에 대통령이 직접 대응 방향을 발표했다.

한국도 새 변이에 감염된 환자가 보고되면서 모든 입국자에게 열흘 간의 자가 격리를 의무화하는 방침을 오늘 발표했다. 12월 3일 0시부터 입국하는 사람들이 대상인데, 해외에 나와 있는 사람들이 갑작스레 귀국을 하는 등 만 하루 동안 일대 혼란이 벌어질 것 같다.

새 변이 출현의 원인으로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아프리카 등 저개발 국가의 낮은 백신 접종률이다. 1회 접종률을 예로 들면 에티오피아는 7%, 나이지리아는 3%, 콩고는 0%이다. 미국의 부스터 접종률보다 낮은 수치다. 가난한 나라들의 접종률이 낮은 상황에서 부유한 나라들의 부스터 접종을 진행하는 것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시각은 오래 전부터 있었고, 부스터 접종 전에 가난한 나라에 백신을 더 보내야 한다는 의견도 많았다. 더 나아가 이러한 불공정한 상황이 이번 오미크론 변이 출현을 불러 일으켰다는 의견도 있다. 하지만 오늘 뉴욕 타임즈 기사를 보면 상황이 그리 단순하진 않은 것 같다.

인구 6천만인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비축된 백신은 이미 1천6백만 도즈에 이르고, 사용하지 못하는 백신을 폐기할 가능성이 높아져 더 이상의 백신 원조를 거절했다고 한다. 화이자 등 제약회사에서도 가난한 나라엔 할인 가격으로 백신을 판다. 백신이 쌓여 있지만 남아프리카 공화국에서 최소 1회 이상 접종한 인구는 29%에 불과하다. 백신 접종률이 높아지지 않는 이유는 백신이 부족해서가 아니란 의미이다. 더 중요한 이유는 두 가지인데, 일단 백신이 있다 해도 인력과 시설 등 접종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부족하다는 것이 첫 번째이다. 백신이 부족하다면 다른 나라의 생산 라인을 늘려 해결할 수 있겠지만 인프라의 부족과 관련해선 단기적으로 해결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 전 세계 대부분의 나라가 병상과 의료진 부족에 시달리는 상황을 보면 더욱.

두 번째 이유는 부유한 나라와 마찬가지로 백신 맞기를 꺼리는 현상이다. 올 2월에 아프리카 15개 국에서 조사한 결과를 보면 다섯 명 중 한 명은 백신을 맞지 않겠다고 답했다. 이는 미국의 통계 수치와 비슷한 결과이지만, 미국은 정치적 신념이 백신에 대한 믿음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반면 아프리카에선 가난과 착취, 정부에 대한 불신과 과거의 경험이 큰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HIV 치료제가 개발된 이후 가격이 떨어지기까지 막상 환자가 가장 많은 아프리카에서 너무나 오랜 기간 어려움을 겪었고, 그 동안 정부 역시 손을 놓고 있었던 것. 다국적 제약회사 임상 시험 과정에서 동의서 없이 연구 참여가 이루어졌던 사례 등이 그러한 경험이다. 앞의 조사에선 응답자의 45%가 백신 관련 연구에서 아프리카인이 실험 동물처럼 다루어졌다고 답했다.

두 가지 문제 모두 쉽게 해결하기 어렵다. 그건 오미크론을 넘어 파이와 오메가까지, 앞으로도 계속 새로운 변이가 나타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이다. 답답하다. 

2021년 12월 1일 수요일

연수일기 160. 쓰레기 재활용

11월 29일 월요일. 310일째 날. 잃어버린 비치 체어를 찾기 위해 허츠 렌트카 사무실을 방문했다. 2주 전 B가 렌트카 트렁크에 비치 체어를 실었다가 깜빡 잊고 그대로 차를 반납해버렸다. 뒤늦게 한국으로 돌아가는 날 깨닫고 B가 라호야 허츠 사무실에 전화했다. 다행히 미라 메사 지점에서 비치 체어를 보관하고 있다고 했고, 뉴욕 여행을 다녀와서 찾으러 가기로 했다.

지난 토요일에 지점에 들렀다. 그런데 이날 사무실에 있던 직원은 비치 체어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고 차량이 이미 다른 곳으로 가버려서 잃어버린 물건은 지금 찾을 수 없다고 한다. 그날은 빈손으로 돌아왔다. 오늘 다시 지점에 전화를 했고, 이전에 B와 통화했던 직원과 연결이 되었다. 그런데 들었던대로 체어는 잘 보관하고 있다고 한다. 토요일에 있었던 직원이 왜 허탕을 치게 했는지는 본인도 모르는 눈치. 오전에 사무실에 다시 들렀다. 통화했던 직원이 안쪽의 창고에서 비치 체어를 찾아 주었다. 토요일에 있던 직원도 이 창고를 들여다봤지만 빈손으로 나왔던 걸 보면 성의가 없었던 것 같다. 두 번을 방문하는 수고가 있었어도 잃어버린 물건을 찾아서 다행이다. 

카멜 밸리 도서관에서 아내가 예약한 책을 찾고 리사이클링 센터에도 들렀다. 이번이 두 번째 방문이다. 페트병과 캔, 유리병을 팔고 받은 돈은 3불이 채 안되었다. 지난 번보다 재활용품 양이 많을 거라 생각했는데 막상 금액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래도 인앤아웃 햄버거 하나는 먹을 수 있는 금액이다. 돈보다도 환경에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를 생각한다. 

미국에 와서 놀란 점 중 하나는 어마어마한 쓰레기 양, 그리고 도통 분리 수거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국립공원 등 관광지는 놀랄만큼 깨끗하게 관리되며 사람들도 쓰레기를 버리지 않는다. 하지만 도심의 쓰레기통은 대개 음식과 재활용품, 일반 쓰레기가 마구 섞여있다. 아파트 쓰레기함은 일반과 재활용, 두 종류로 나뉘어 있지만 엄격하게 나누어 버리진 않는다. 그나마 이렇게 분리된 쓰레기함이 없는 곳도 많을 것이다. 한국처럼 요일을 정해 재활용 쓰레기를 수거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그렇다면 재활용률도 낮을 수밖에 없지 않을까. 갑자기 궁금해져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았다. 

미국 전체의 재활용률은 2018년 기준으로 32.1%라고 한다. 다음 페이지에서 확인할 수 있다. 최근엔 중국의 쓰레기 수입 금지로 재활용률이 낮아졌다고 하는데 정확한 수치는 모르겠다. 

https://www.epa.gov/facts-and-figures-about-materials-waste-and-recycling/national-overview-facts-and-figures-materials

미국에서 재활용률이 가장 높은 도시인 샌프란시스코나 LA의 경우 80%라고 하는데, 이는 독일이나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높은 수치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통계에 따르면 60%로 재활용을 잘 하는 국가로 꼽히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낮은 40% 정도라고 한다. 80%란 수치는 무질서하고 우중충한 LA 도심을 생각하면 놀랍게 느껴진다. 재활용, 퇴비용, 일반 쓰레기를 색깔 별로 분리한 쓰레기통, 레스토랑의 재활용 가능 용기 사용 등에 의한 결과라고 하는데 쉽게 믿기진 않는다. 그보다는 결국 쓰레기 수거 업체를 통한 재활용 프로세스를 열심히 해서가 아닐까 싶다. 물론 그만큼의 비용이 들 것이다.

포장 용기 보증금제를 시행하는 캘리포니아는 다른 주에 비해 재활용률이 높은 편이다. 전 세계에서 포장 용기 보증금제를 제일 먼저 시행한 곳이 1970년대 미국 오리건 주라고 한다. 그 나라가 지금은 세계 제일의 쓰레기 대국이라니 아이러니할 따름이다. 현재는 캘리포니아를 비롯해 10개 주에서 보증금제를 시행하고 있다. 보증금제를 실시하는 주와 실시하지 않는 주 사이엔 포장 용기의 재활용률에 차이가 크다. 아래 그래프를 보면 알루미늄 캔의 경우 82.5%, 46.1%로 두 배 가까운 차이가 나며, PET나 유리병은 그 차이가 더 크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어렸을 적 집 앞 수퍼에 빈 병이 가득 든 봉지를 낑낑거리며 가지고 가 받은 돈으로 아이스크림을 샀던 생각이 난다. 한국도 이 제도를 시행하면 어떨까. 

포장용기 보증금제 시행 여부에 따른 재활용률

미국이 세계 제일의 쓰레기 배출국이란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재활용률 수치 역시 낮은 편이다. 미국에 대한 뒷담화를 할 때 빠지지 않는 것도 쓰레기와 분리 수거 문제이다. 분리 수거를 잘 하는 한국과 비교하며 약간의 우월감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실제 통계를 찾아보면 주마다 차이가 크다. 잘 하고 있는 주도 있고 엉망인 주도 있다. 이 나라도 쓰레기 관리에 뒷짐만 지고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모든 주가 당장 캘리포니아와 같은 수준이 되긴 어렵겠지만 좀더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자그마치 336 페이지!

11월 30일 화요일. 311일째 날. 딸이 학교에서 빌려온 영어 소설을 다 읽었다. 꽤 두껍고 글밥도 많은 책이라 처음 도서관에서 빌려온 걸 보고 저걸 얼마나 읽을까 생각했는데 시간이 꽤 걸리긴 했지만 결국 다 읽는 데 성공했다. 반 친구들이 많이 읽는 책이라 내용이 궁금해서 빌려왔다고 한다. 역시 아이들에게는 또래 친구들이 미치는 영향만큼 강력한 것이 없다. 저녁에 자쿠지에 앉아 읽었던 책 이야기를 하는 걸 들으니 이해 못한 부분도 있고 건너뛴 대목도 있는 것 같지만 그래도 두꺼운 책 한 권을 다 읽어낸 것이 어딘가 싶다. 다음 권도 도서관에서 빌려올 거라고. 

미술 학원 수업 날짜를 옮겼는데 중간에 착오가 있어 수업을 받지 못하고 그냥 돌아왔다. 학원에 컴플레인을 했더니 추가로 수업 한 번을 해주기로 했다. 

밤엔 아들이 배앓이를 심하게 했다. 장이 예민한 편이라 어려서부터 종종 배앓이를 했는데 미국에 와선 다행히 그 횟수가 줄었다. 최근엔 심하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오늘 저녁에 먹은 새우가 문제였던 것 같다. 집에 있는 상비약을 먹였지만 쉬 나아지지 않았다. 잠을 못 자고 침대에 누워 끙끙거리는 아들 옆에서 배를 만져주기도 하고 핫팩을 올려주기도 하면서 통증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나와 아내야 의사라 스스로 진단과 처방이 가능하지만, 의사가 아니라면 이런 경우에 참 답답할 것이다. 통증이 서서히 누그러들면서 아이는 잠이 들었다. 미국에서 열 달을 살면서 가족 중 누구도 병원에 갈 만큼 심하게 아프거나 사고를 당하지 않아서 항상 감사할 따름이다. 

2021년 11월 29일 월요일

연수일기 159. 딸의 covid-19 백신 접종, Happy Thanksgiving

11월 26일 금요일. 307일째 날. 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갑다. 여느 아침처럼 공원의 펌프 트랙에선 반팔과 반바지를 입고 보드를 타는 사람들이 여럿 있다. 어제와는 딴판의 날씨. 샌디에고에 돌아온 걸 실감했다. 

집 앞 상가엔 그새 크리스마스 트리가 세워졌다. 다음 주 토요일에 점등식을 한다니 그날엔 상가에서 저녁을 먹고 구경해도 좋을 것 같다.

오후에 딸이 covid-19 백신을 맞았다. 다행히 특별한 부작용은 없었다. 2차 접종은 1월로 예약이 되었다. 백신 예약 슬롯에 이전만큼 여유가 많진 않아 보인다. 더 이른 일정인 3주 뒤에 워크인으로 와서 접종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안내를 받았다. 한국에 가기 전에 격리 면제 신청 등 처리할 일이 있음을 고려하면 2차도 되도록 빨리 맞는 게 좋을 것 같다. 

H 선생님 가족을 집에 초대해 저녁을 먹었다. 원래 다음 달에 출국 예정이었는데, 둘째의 어린이집 등록 문제로 이번 일요일에 아빠가 아이들을 데리고 먼저 출국을 하게 되었다. 오늘 식사가 페어웰이 되는 셈이다. 오늘 오전에 귀국을 위한 PCR 검사를 받았는데, 주말이라 결과가 늦게 나올지도 몰라 두 군데서 검사했다고 한다. 2학년인 첫째는 백신 접종을 1차만 끝낸 상태라 한국에 돌아가면 자가 격리 대상이 된다. 


11월 27일 토요일. 308일째 날. 뉴욕에서 함께 저녁을 먹었던 이웃 가족들을 포함해 네 가족이 다시 모였다. C, Y 선생님 딸의 생일이기도 하다. 중학교 2학년인 아이는 우리 아들과 등하교를 같이 한다.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누나가 있다는 게 학교 생활엔 많은 도움이 될 것 같다. 

Y 선생님이 아이들을 위해 치즈 떡볶이와 꼬치 어묵을 준비해 주셨다. 미국에 와서 꼬치 어묵은 처음이다. 아이들이 한국에 있을 때 아파트 앞 상가에서 자주 먹던 어묵을 그리워했는데 오늘 소원을 풀었다. 어제와 오늘, 연휴의 마지막을 추수감사절 답게 보낸 것 같아 감사하다.


11월 28일 일요일. 309일째 날. 아내와 아이들이 트레이더 조에서 사온 진저브레드 하우스를 만들었다. 미국에선 흔히 크리스마스 시즌에 아이들과 만든다고 한다. 쿠키는 벽과 지붕이 되고 화이트 크림이 접착제 역할을 한다. 키트에 따라 미리 만들어진 크림이 들어있기도 한 모양인데, 우리가 샀던 건 머랭을 쳐야 해서 아내의 손목이 고생을 좀 했다. 크림에 레몬즙을 넣어서 나중에 굳어질 수 있도록 했다. 만들어진 쿠키 하우스를 보니 그럴 듯 하다. 헨젤과 그레텔에 나오는 과자집이 생각나는 모양. 

진저브레드 하우스 완성!

오후엔 아이들과 공원을 산책했다. 저녁엔 한국의 후배들과 연구 미팅이 있었다.  

2021년 11월 26일 금요일

연수일기 158. 뉴욕 여행- 집으로

11월 25일 목요일. 306일째 날. 추수감사절이다. 체크 아웃 전에 아침을 먹기 위해 호텔을 나섰다. 오늘 아침엔 문을 연 식당이 많지 않다. 메이시스 퍼레이드 때문인지 일찍부터 호텔 앞 웨스트 48번가는 자동차가 다니지 못하도록 통제를 한 상태다. 가까이 문을 연 빵집에서 아침 거리를 사서 호텔로 돌아왔다.

11시에 체크 아웃을 하고 호텔 앞에서 마지막으로 사진을 찍은 뒤 공항으로 가는 택시를 탔다. 미리 왕복 예약해 둔 한인 택시였는데, 이어서 예약한 손님이 있었는지 기사님이 운전을 험하게 한다. 아들은 원래 멀미가 심한 편인데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초죽음이 된 상태였다.  

마지막 날 아침 호텔 방에서

돌아가는 항공편 역시 제트 블루이다. 13시55분 출발, LA 도착은 17시11분. 동부가 세 시간이 빠르니 돌아갈 때는 세 시간을 버는 셈이다. 동부를 다녀 오는 건 해외 여행을 하는 느낌이 든다더니, 시간대도 그렇고 날씨도 그렇고 그 말이 맞다.

여섯 시간 비행 후 제 시간에 LA 공항에 도착했다. 뉴욕에서 내내 입었던 겨울 점퍼는 가방 속으로 쑤셔 넣었다. 이제 미국을 떠날 때까지 입을 일이 없을 것이다. 

저녁을 먹고 들어갈까 잠시 고민했지만, 아이들도 나도 빨리 집에 가고 싶어 네비게이션 목적지를 집으로 설정했다. 저녁 메뉴는 집에서 짜파게티를 끓여 먹기로. 돌아오는 길에 알라딘과 디즈니 뮤지컬 음악을 들었다. 

뉴욕 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 가족 중 가장 기대를 했던 이는 아내였다. 여행 시기는 아내가 결정한 대로 정했다. 보통 대부분의 계획을 내가 세우는 편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 나는 항공편과 호텔, 뮤지컬 티켓을 예약했을 뿐 그외 구체적인 일정에 대해선 출발 일주일 전까지도 아무 생각이 없었다. 대신 아내가 방문할 곳들을 정하고 할인 패스도 주문했다. 전망대는 이곳이 더 낫대. 스테이크 하우스는 여기로 예약하는 게 좋겠다. 항상 아내가 먼저 이야기를 꺼냈고, 내 시큰둥한 반응 때문에 출발 며칠 전엔 조금 다투기도 했다. 다시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이 든다.

아내는 결혼 전에 뉴욕에서 십 개월을 살았다. 종종 그때의 추억을 이야기하곤 한다. 십 수년 전에 살던 도시를 다시 가는 기분은 남달랐을 것이다. 더군다나 뉴욕 아닌가. 라스베가스나 LA도 사람들로 북적이는 도시이지만 아내는 여러 번 이야기했다. "뉴욕은 달라."

다르긴 달랐다. 백년은 되었음직한 붉은 벽돌색 아파트, 건물 외벽 낡은 철제 비상 계단, 사람들의 옷차림, 거리를 부유하는 각종 소음들. 쌀쌀한 날씨도, 코끝을 시리게 하는 차가운 공기도 오랜만이니 좋았다. 샌디에고에서 느끼지 못하는 늦가을의 정취도 그랬다. 붉게 물든 단풍 아래 길 위에 수북히 쌓인 낙엽을 밟고 한 걸음씩 내디딜 때마다 느껴지는 폭신함만큼 마음도 말랑말랑해졌다. (사실 그래서 서울 생각도 많이 났다.) 그래도 그저 처음 와 본 도시이니 새로워 보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이 도시가 진정 특별하게 느껴진 순간은 브루클린 다리를 건널 때였던 것 같다. 다리 입구 주변을 무질서하게 둘러싼 건물들을 벗어나 보행교 중앙에 깔린 나무 데크에 발을 들여놓자 무언가 다른 세계로 들어서는 느낌이 들었다. 쇠 난간 아래로 맨해튼을 향해 질주하는 차들을 보며 천천히 걸었다. 거대한 아치형 주탑 꼭대기에서 거미줄처럼 뻗어나온 철근 케이블 아래에 접어들었을 때, 문득

이곳이 마음에 들었다. 

막상 예전에 살던 동네는 제대로 보지도 못했지만, 일주일 내내 아내는 행복해 했다. 아내 만큼은 아니었지만 나도 뒤늦게 처음 방문한 이 도시를 즐겼다. 여섯 밤을 오롯이 맨해튼에서 머물기를 잘한 것 같다. 언젠가 또 올 수 있겠지. 그렇게 되었음 한다. 그땐 여행 계획을 세우면서부터 적당한 흥분과 기대감을 느끼게 되지 않을까. 

2021년 11월 25일 목요일

연수일기 157. 뉴욕 여행- 자연사 박물관, 뮤지컬 알라딘

11월 24일 수요일. 305일째 날. 내일은 체크아웃 후 바로 공항으로 갈 예정이라 오늘이 뉴욕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다. 원래 일요일에 자연사 박물관에 갈 계획이었는데, 예약한 바우처를 주말에 받을 수가 없어서 오늘로 변경했었다. 예약을 다시 하면서 입장 시간이 12시로 늦춰졌다. 덕분에 오전 시간이 비어 늦잠을 자고 오전에는 호텔에서 쉬기로 했다. 

그동안 갔던 미술관과 박물관은 개장 즈음에 입장을 해서 붐비는 시간을 피할 수 있었다. 오늘은 입구에서부터 백신 접종 카드를 확인하는 긴 줄이 늘어서있다. 입장 후에도 바우처를 티켓으로 바꾸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층 로비에서부터 뼈만 남은 거대한 공룡 두 마리가 시선을 끈다. 우주의 탄생과 빅뱅 이론을 설명하는 짧은 영상을 보고 지구의 다양한 광물과 단층을 전시하는 방을 지났다. 1, 2층엔 박제된 동물들이 많았는데, 대부분 동물원이나 아쿠아리움, 국립 공원에서 직접 볼 수 있는 동물들이라 새롭진 않았다. 딸이 보고싶어하는 해양생물관에서 한참 시간을 보낸 뒤 4층의 공룡 전시관을 둘러보았다. 영화 ‘박물관이 살아있다’에서 등장한 살아 움직이던 공룡 화석 모형이 있는 곳이다. 복원 가능한 공룡 중 가장 크다고 알려진 Titanosaur의 모형은 전시실 하나를 다 차지했다. 아이들은 전시된 공룡 알과 머리뼈를 만져보며 신기해했다.

박물관 로비

자연사 박물관은 스마트폰 앱이 잘 만들어져 있다. 전시물에 대한 설명도 재미있고, 지도는 실시간 위치를 파악해 마치 네비게이션처럼 안내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어서 잘 사용하면 동선을 줄일 수 있다. 

박물관의 절반도 못 보았지만 금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관람객은 많은데 카페는 대부분 문을 닫아 휴식 공간이 부족했다. 지하의 푸드 코트는 운영을 했지만 막상 내려가 보니 정신없는 분위기에 음식도 시원치 않았다. 아이스크림만 하나씩 먹고 박물관을 나왔다. 

지하철을 타고 호텔 근처로 돌아와 중국 국수 전문점인 Mee noodle shop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딸이 구글 맵을 검색해 찾은 음식점이다. 코코넛카레 국물에 고기를 넣은 요리, 돼지고기 볶음, 국수는 다 맛있었다. 곁들여 시킨 만두는 피가 너무 두꺼웠다. 

그동안의 빡빡한 일정에 지친 몸을 달래며 호텔에서 게으름을 피워본다. 방에서 쉬다가 알라딘 뮤지컬을 보기 위해 다시 나섰다. 극장에 입장하기 전 타임스퀘어 근처의 파이브 가이즈에서 햄버거를 먹었다. 언젠가는 먹어봐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뉴욕에서 처음 먹게 될 줄은 몰랐다. 햄버거는 충분히 맛있었지만 내 기준엔 역시 인앤아웃이 최고. 

라이온 킹을 보았던 민스코프 극장에 비해 New Amsterdam Theatre는 고전적인 옛 극장에 좀 더 가까운 모습이다. 좌석 간격도 더 좁은 느낌이다. 지난 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극장은 관객으로 가득 찼다. 브로드웨이 극장이 1년 반 동안 문을 닫았다가 다시 열었던 게 올 9월이니 이제 겨우 두 달이 되었다. 그래서인지 관객들의 흥분과 기대가 더한 듯 하다. 뮤지컬이 시작할 때 울려 퍼지는 환호와 박수엔 오랜 기다림에 목말라한 관객들의 마음이 녹아들었을 것이다. 

공연 시작 전

알라딘 뮤지컬에 대한 한 줄 평은 역시 '지니가 다 했다.' 양탄자를 타고 밤하늘을 날아다니는 'Whole new world' 신은 괜찮았다. 아이들은 라이온 킹보다 알라딘이 더 재미있었다고 한다. 익숙한 음악이 더 많아서인듯. 더 난 라이온 킹에 한 표. 

돌아오는 길에 크리스피 크림 도넛에 한 번 더 들렀는데 폐점 시간이 가까워 오리지널 글레이즈드 도넛이 다 떨어졌다. 달달한 도넛에 맛을 들인 아들이 아쉬워 했다. 이렇게 뉴욕에서의 마지막 밤도 지나간다. 

2021년 11월 24일 수요일

연수일기 156. 뉴욕 여행-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하이 라인

11월 23일 화요일. 304일째 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 오픈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규모가 크다고는 들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일단 1층 앞쪽에 있는 이집트관과 그리스, 로마관 전시물 만으로도 기가 질릴 정도이다. 아들은 미이라 사진을 찍느라 바쁘다. 미이라가 있는 박물관은 많지만 이렇게 많은 미이라를 만날 수 있는 곳은 없을 것 같다. 이집트관 하나만 해도 작은 박물관 하나 정도 크기인데, 심지어는 신전을 통째로 뜯어다 놓은 방도 있었다. 

이집트 신전이 있는 방

아메리카관의 카페에서 카페인을 충전하고 메두사의 머리를 든 페르세우스 상을 비롯해 중세 유럽 조각품들을 구경했다. 아프리카 오세아니아관은 과감히 스킵. 맨 안쪽에 있는 Robert Lehman Collection에서부터 그림 전시실이 시작된다. 점묘법 화풍으로 유명한 폴 시냑, 마티스, 고갱을 거쳐 2층의 갤러리로 이동해 르누아르와 드가를 만났다. 한 곳에서 이렇게 많은 르누아르의 대표작을 볼 수 있는 미술관도 드물 것 같다. 피카소의 초기 작품(아내와 나는 특히 'Woman in White'가 마음에 들었다.)도 있었고, 클림트와 모네, 세잔, 반 고흐의 작품들도 볼 수 있었다. 

미술관을 나와 우버를 타고 첼시 마켓으로 이동했다. 오늘과 내일은 기온이 뚝 떨어졌고 바람도 차다. 아이들과 걷는 거리를 최대한 줄이려 하는데 마음대로 될지 모르겠다. 첼시 마켓의 김밥집에서 점심을 먹으려 했는데 와서 보니 오늘은 영업을 하지 않았다. 구글 맵의 영업 시간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게 잘못이다. 마켓 안엔 사람이 많고 웬만한 레스토랑 앞엔 대기 줄이 있었는데, 다행히 타이 음식점 한 곳은 레스토랑 안 공간도 넓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 지쳤던 아이들도 기운을 차렸다. 

첼시 마켓에서 나와 리틀 아일랜드에 들렀다. 올해 개장한 작은 수상 공원으로, 영국의 건축가 토마스 헤더윅이 설계했다. 허드슨 야드의 유명한 건물인 베슬을 설계한 건축가이기도 하다. 첼시 구역에선 하이 라인이 가장 유명하지만, 개성으로 따지자면 베슬과 리틀 아일랜드의 명성이 더 높아질 지도 모르겠다. 하이힐 뒤축을 닮은 거대한 콘크리트 화분들은 제각각 높낮이가 달라 묘한 느낌을 주는데, 그 화분들 위에 나무와 잔디, 산책길로 공원을 조성한 아이디어가 돋보인다. 원형 극장도 있어 날씨가 좋은 계절엔 공연도 볼 수 있다고 한다. 

리틀 아일랜드(왼쪽)로 들어가는 입구

공원을 나와 하이 라인에 올랐다. 휘트니 미술관부터 허드슨 야드까지 이어진 1.5마일 정도의 고가 산책로이자 공원이다. 버려진 화물 철로를 공원으로 만들어 뉴욕에서도 가장 획기적이고 매력적인 장소로 탈바꿈시킨 아이디어는 정말 대단하게 느껴진다. 가을을 흠뻑 느낄 수 있는 단풍 나무와 갈대까지, 다양한 종류의 풀과 나무가 있어 공원이란 이름이 어색하지 않았다. 뉴욕의 멋스러움이 느껴지는 건물들을 다른 눈높이로 가까이에서 보는 것은 특별한 경험이었다. 이곳을 모티브로 한 서울로 7017도 개장 초기엔 보잘 것 없다는 비판이 많았지만 몇 년이 지난 지금은 지역 명소로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한다. 앞으로도 하이 라인과 비교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겠지만,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길로 자리매김 하길. 

빌딩 숲 사이를 걷는 기분

기온이 내려가고 허드슨 강의 바람이 세서 걷기 쉽지 않았지만 공원의 끝인 허드슨 야드 쇼핑몰에 도착했다. 쇼핑몰 안에서 커피로 잠시 추위를 녹인 뒤 베슬 Vessel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벌집 모양의 독특한 외관으로 2009년 개장 후 단숨에 관광 명소로 떠올랐고 포토 스팟으로 유명해졌지만, 최근 투신 자살 사건이 잇따르면서 현재는 폐쇄된 상태였다. 올 7월에 네 번째 사고 이후 영구 폐쇄도 검토하고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건물 밖에서 사진을 찍는 것만으로 아쉬움을 달랬다. 

벌집 핏자가 생각나는 외관

숙소로 돌아와 잠깐 쉬다가 저녁을 먹으러 가까운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Becco는 파스타를 리필해 먹을 수 있는 이탈리안 레스토랑이다. 마침 같은 시기에 여행을 온 우리 아파트 이웃인 C, Y, L 선생님 가족과 함께 식사하기로 했다. 뉴욕의 거리에서 만난 이웃과의 저녁 식사는 따뜻하고 즐거웠다. 하루 종일 추운데서 걷느라 피곤에 지친 아이들도 친구들을 만나니 금새 기운을 차리고 재잘거린다. 

2021년 11월 23일 화요일

연수일기 155. 뉴욕 여행- MoMA, Top of the Rock

11월 22일 월요일. 303일째 날. 오늘 가기로 한 뉴욕 현대 미술관(MoMA)은 호텔에서 걸어서 15분 거리다. 어제 많이 걸어서 오늘은 미술관과 저녁 록펠러 센터 전망대, 두 개의 일정만 소화하기로 했다. 록펠러 2세가 록펠러 센터를 지었고, MoMA를 설립한 이는 록펠러 2세의 부인인 애비 올드리치 록펠러였으므로 오늘 하루는 이 부부의 유산을 보는 셈이다. 

이번 여행에서 세 개의 미술관과 한 개의 박물관을 예약했는데 그중 가장 기대가 되는 게 MoMA 였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 외에도 피카소, 달리, 샤갈, 세잔, 모네 등 익숙한 작가를 만날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잭슨 폴록이나 앤디 워홀 등의 작품도 유명하지만 이들 현대 미술 작가보단 18-19세기 초까지 작가들의 작품이 마음에 든다. 이들의 작품이 모여있는 5층부터 돌아보기로 했다. 

반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이 가장 먼저 눈에 띈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캔버스의 크기가 생각보다 작다는 것. 그리고 노래. 푸른색과 회색 하늘, 보라색 안개와 소용돌이치는 구름을 보며 이 노래의 가사와 선율을 떠올렸다. 


Starry, starry night
Paint your palette blue and gray
Look out on a summer's day
With eyes that know the darkness in my soul

Shadows on the hills
Sketch the trees and the daffodils
Catch the breeze and the winter chills
In colors on the snowy linen l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Starry, starry night
Flaming flowers that brightly blaze
Swirling clouds in violet haze
Reflect in Vincent's eyes of china blue

Colors changing hue
Morning fields of amber grain
Weathered faces lined in pain
Are soothed beneath the artist's loving hand

Now I understand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 did not know how
Perhaps they'll listen now

For they could not love you

But still your love was true

And when no hope was left in sight

On that starry, starry night


You took your life, as lovers often do

But I could've told you Vincent

This world was never meant for

One as beautiful as you


Starry, starry night

Portraits hung in empty halls

Frame-less heads on nameless walls

With eyes that watch the world and can't forget


Like the strangers that you've met

The ragged men in ragged clothes

The silver thorn of bloody rose

Lie crushed and broken on the virgin snow


Now I think I know

What you tried to say to me

And how you suffered for your sanity
And how you tried to set them free

They would not listen, they're not listening still

Perhaps they never will

세잔과 피카소, 루소와 칸딘스키, 클림트와 샤갈, 마티스와 프리다 칼로, 그리고 달리를 지나쳤다. 유명한 그림이 너무 많아서인지 오랜 시간이 아니었는데도 금새 지친다. 1층 조각 공원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쉬었다. 모딜리아니와 몬드리안을 거쳐 모네의 수련이 있는 방에서도 한참을 앉아 있었다. 그곳에선 마음이 평안해지는 듯 했다. 잭슨 폴락, 앤디 워홀,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지났을 때는 이미 두시간 반이 지난 뒤였다. 아이들이 힘들어 해서 더 머물기는 어려웠다. 나오기 전 기념품 샵에서 마그넷을 샀다. 

미술관을 나오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C, Y 선생님 부부와 마주쳤다. 우리와 마찬가지로 이번 연휴에 뉴욕에 온다는 이야기는 들었는데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될 줄은 몰랐다. 뉴욕에 있는 동안 식사를 한 번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오늘 점심은 뉴욕 정통 스테이크. Gallaghers Steakhouse를 예약해 두었다. 29불 짜리 점심 코스 가성비가 훌륭한 곳으로 유명하다.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편안한 인테리어와 분위기가 마음에 들었다. 메인으로 필렛 미뇽, 양고기, 연어를 주문했다. 고기는 역시 훌륭, 다른 음식 맛도 다 괜찮았다. 하우스 와인 두 잔을 시켰는데, 코스의 가격이 매우 저렴한 반면 와인은 뉴욕 레스토랑 다운 가격이다.

미국의 레스토랑에선 항상 식사 시간이 오래 걸린다. 여기서도 식사를 마치기까지 두 시간이 훌쩍 지났다. 예약해 둔 록펠러 센터의 Top of the Rock 전망대 입장이 네 시여서 바로 이동하니 시간이 딱 맞았다. 맨해튼의 랜드 마크는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고, 전망대 중에선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을 볼 수 있는 이곳이 가장 인기가 많다.

맨해튼의 야경

일몰과 야경을 볼 수 있는 이 시간에 사람이 가장 많다고 한다. 예전엔 사람으로 가득해 사진을 찍기도 어려울 때가 많았다고 하는데, 판데믹으로 입장 예약과 제한을 하는 지금은 오히려 전망대에서 차분히 시간을 보내기 더 나은 것 같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저무는 해와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그리고 하나둘 켜지는 빌딩 숲 불빛들을 지켜보았다.

호텔로 돌아오는 길에 아내와 딸은 할랄가이즈에 들러 저녁 거리를 사고 아들과 나는 여행사 사무실에 가서 예약해 둔 자연사 박물관 바우처를 받았다. 타임 스퀘어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는 청년들을 구경하고 크리스피 크림 도넛에도 들렀다. 아들은 이곳에서 처음 먹은 크리스피 크림 도넛이 맘에 들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