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7일 월요일

연수일기 172.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

12월 23일 목요일. 334일째 날. 아이들은 올해 마지막 등교 날이다. 초등학교와 중학교 모두 단축 수업을 해 12시 30분에 하교했다. 딸은 선생님에게 드릴 크리스마스 카드를 만들어 갔다. 학교에서 나올 땐 선생님께 받은 선물을 들고 있었다. 

네 달 동안 받았던 딸의 미술 수업도 오늘이 마지막이다. 애초엔 수업을 받으며 미술 선생님이나 친구들과 영어로 의사소통을 하는 기회가 늘 거라고 기대했지만 실제론 대부분의 시간 동안 조용히 스케치만 했다. 그래도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딸은 수업에 가는 걸 좋아했다. 한 시간 반 동안 가만히 앉아서 그림을 그리는 것도 쉽지는 않을텐데. 딸은 한국에 돌아가서도 미술 수업을 계속 받고 싶다고 한다. 

저녁엔 후배인 S 선생 집에서 포트럭 파티를 했다. 다섯 가족이 모여 준비해 온 음식을 나누어 먹었다. S 선생의 아내는 요리를 잘 하고 손도 크다. 성격이 활달하고 사람들과 만나는 걸 즐겨서 덕분에 그동안 우리도 즐거운 시간을 자주 가질 수 있었다. 고등학생인 아이들이 일주일에 한 번씩 따로 시간을 내어 우리 딸과 시간을 보내주었는데, 그것도 벌써 세 달이 되었다. 아이들에게 고마운 마음에 크리스마스 선물로 작은 기프트 카드를 준비했다. 


12월 24일 금요일. 335일째 날. 크리스마스 이브엔 항상 가까운 친구 가족들과 함께 모여 시간을 보냈었다. 올해는 이곳에 떨어져 있어 늘 보던 이들을 만나지 못하지만,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여럿이 모여야 제맛. 이곳에서 오늘같은 날을 조용히 보낸다면 좀 우울해질 것 같다. 어제에 이어 오늘은 아파트 이웃들을 집에 초대해 포트럭 파티를 하기로 했다. 오후엔 초대한 아이들에게 줄 작은 선물을 포장하고 김밥을 준비했다. 나도 아이들 도시락으로 종종 싸주는 스팸 무스비를 만들었다. 

Y 선생님은 어묵꼬치를, L 선생님은 아스파라거스 베이컨 말이를, 다른 L 선생님은 직접 튀긴 치킨을 가져오셨다. 각자 가져온 와인과 맥주까지 곁들이니 넘치도록 풍성한 크리스마스 파티 식탁이 차려졌다. 웃고 떠들다 보니 자정이 훌쩍 넘어버렸다. 이곳에서 좋은 이웃들을 만날 수 있었던 건 행운이다.


12월 25일 토요일. 336일째 날. 느지막히 일어나 아이들은 산타의 선물을 개봉했다. 크리스마스인 오늘은 하루 종일 집에서 영화를 보며 빈둥거릴 예정. 요즘 아이들과 집에서 보는 영상은 스타워즈이다. 조만간 디즈니랜드 파크에 갈 예정이라 미리 예습도 할 겸, 맨 처음 만들어진 네 번째 에피소드부터 보기 시작해 그동안 세 편을 보았다. 4편이 1977년에 만들어졌으니 40년이 넘었다. 사실 난 스타워즈의 광팬은 아니었다. 단순한 스토리 구조 때문에 어렸을 적 처음 보았을 때도 아주 재미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았던 것 같다. 그래도 우주선과 외계인, 광선검, 전투 장면을 보며 어색하다고 느끼진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 시대, 한껏 눈높이가 올라간 아이들 눈은 40년 전 아이들과 다를 것이다. 지금 보면 조악한 특수 효과와 유치한 대사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은 어김없이 오글거린다는 반응을 보였다. 

오늘은 에피소드 1, 2를 보았다. 이 영화들도 벌써 이십 년이 되었지만, 만듦새는 앞선 에피소드 세 편에 비할 수 없을 정도로 매끈하다. 홈시어터를 테스트하는 레퍼런스 타이틀로 꼽히던 에피소드 1의 DVD를 반복해 보았던 기억이 난다. 포드 레이싱 경주 장면은 지금 다시 봐도 흥미진진했다. 디즈니랜드 파크에 가기 전에 남은 에피소드를 다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12월 26일 일요일. 337일째 날. 크리스마스 이브를 함께 했던 이웃들과 오후에 스파이더 맨 노웨이 홈을 보았다. 미국에서 극장은 두 번째이다. 지난 번에 갔던 시네폴리스는 객석에서 음식 주문이 가능하고 서빙도 받을 수 있었다. 럭셔리를 표방하는 극장이라 좌석 수가 적어서  열한 명의 티켓을 함께 예약하기 어려웠다. 이번엔 UCSD 근처의 AMC에서 보기로 했다. 이곳은 시네폴리스에 비해 좀더 최신 멀티플렉스 분위기였다. 일반 극장이지만 전동식 의자는 시네폴리스 못지 않게 편했다. 

영화관 로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겠지만, 마블 캐릭터 중 아이언 맨과 스파이더 맨을 가장 좋아한다. 아이언 맨은 사라졌고 스파이더 맨만 남았다. 샘 레이미의 스파이더 맨 시리즈는 몇 번을 반복해 보았다. 이전 스파이더 맨 시리즈들의 후속편이 더이상 나오지 않는다는 소식을 들을 때마다 항상 아쉬웠기에 세 명의 스파이더 맨이 나온다는 사실은 크리스마스 선물과도 같은 일이었다. 영화를 보기 전 이미 알고 있었지만 직접 한 화면에서 셋을 보니 뭉클했다. 다른 우주로 건너온 두 명의 스파이더 맨은 과거의 기억을 떠올리며 회한에 젖기도 하고, 그때 마무리하지 못했던 일을 매듭짓거나 구하지 못했던 사람 대신 비슷한 상황에서 다른 이를 구하기도 한다. 자신의 의지와 무관한 소환은 그들에게도 과거를 되돌릴 수 있는 선물같은 일이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그들이 거미줄을 타고 날아다니는 모습은 자유롭게 보였다. 중년이 된 토비 맥과이어는 약간은 짠해 보이기도 하고. 

크리스마스 연휴를 이 영화로 마무리하길 잘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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