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18일 토요일

연수일기 168. 중학교 발표회

12월 16일 목요일. 327일째 날.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곧장 연구실에 가면 대개는 내가 가장 먼저 출근하는 사람이 된다. 오늘 아침 연구실 건물의 출입문을 열고 들어가 전등 스위치를 올렸지만 작동이 되지 않았다. 컴컴한 복도를 조심조심 걸었다. 복귀가 되기까지는 세 시간이 넘게 걸렸다. 내가 일하는 곳은 복도 맨 끝 방이라 두 벽면에 걸쳐 창이 있어 전등을 켜지 않아도 큰 문제는 없지만 창이 없는 방은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단전 때문인지 와이파이 신호도 잡히지 않아서 휴대폰을 테더링해 일을 했다. 이곳에 있으면서 학교 시설에 이런저런 문제가 생기는 걸 경험했다. 정전이 되거나 엘리베이터가 고장나거나, 전산에 문제가 생기거나 해킹이 되는 등 문제의 종류도 다양하다. 하드웨어의 문제도 있겠지만 막상 생긴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도 썩 시원친 않게 느껴진다. 연구실이 있는 별관 건물의 경우 고장난 엘리베이터를 고치는 데 두 달이 넘게 걸렸다. 한국이었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한국이 너무 급한 건지, 이곳이 너무 느린 건지는 모르겠다.

비슷한 시기에 연수를 시작한 선생님들을 만나 점심을 먹었다. 올해 초 UCSD에 연수를 온 의사는 네 명 뿐으로, 예년에 비하면 매우 적은 수였다. 어려운 시기에 연수를 와서 첫 몇 개월이 정신없이 지나가고 여름 이후론 새로운 분들이 많이 들어오다 보니 막상 네 명이 함께 모여 식사를 한 적이 없다. 꼼꼼하고 주변을 잘 챙기는 C 선생님 덕에 뒤늦게나마 네 명이 모일 수 있었다. 

아내는 지난 일 년 동안 영어 수업을 함께 했던 할머니들 세 분을 집에 초대해 점심을 대접했다. 클레어, 수잔, 노리 할머니를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지만 할머니들에 대한 이야기는 하도 많이 들어서 친숙하게 느껴진다. 일주일에 두 번씩 있는 할머니들과의 만남은 아내의 이곳 생활에 큰 힘이 되었다. 나는 오늘 할머님들을 만나지 못했지만, 가능하다면 떠나기 전에 뵙고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저녁엔 아들의 학교에서 발표회가 있었다. 'Holiday Howl'이란 제목의 행사로(아들 학교의 상징은 늑대이다), 과학, 미술, 음악 등의 선택 과목 결과물을 발표하는 시간이다. 평소와 달리 누구나 들어갈 수 있도록 교문 입구가 활짝 열렸다. 교문 앞엔 푸드 트럭이 자리를 잡았고, 평소 아이들이 점심을 먹는 잔디밭엔 페이스 페인팅과 마술 공연 부스가 설치되었다. 구석에선 자원 봉사를 하는 아이와 부모들이 1불 짜리 핫초코와 팝콘을 팔고 있다. 

교문엔 손님을 환영하는 풍선

다목적실엔 미술 수업을 받는 아이들의 작품이 걸렸다. 건물 앞에 마련된 두 개의 무대에선 음악 공연을 준비하고 있었다. 보컬, 오케스트라, 밴드(7학년, 8학년), 네 개로 구성된 음악 공연은 오늘 행사의 하이라이트이다. 오케스트라에서 첼로를 연주하는 아들은 오늘 공연할 세 곡을 지난 몇 달 동안 연습했다. 이번 주엔 사람들 앞에서 연주할 생각에 나름 긴장도 하는 눈치였다. 

보컬 공연이 끝나고 오케스트라 연주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의 연주는 훌륭했다. 두 달 전 있었던 커피 콘서트 때보다 아이들의 실력이 일취월장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선생님의 지휘도 열정적이었다. 임시 공연장인 건물 입구 계단을 둘러싼 사람들은 한 곡 한 곡이 끝날 때마다 열정적인 환호와 박수를 보냈다. 

공연 시작 직전


12월 17일 금요일. 328일째 날. 오늘이 올해의 마지막 금요 연구 미팅이다. 오늘은 온라인으로 진행했다. 다음 주 금요일부턴 크리스마스 휴가에 들어간다. 이제 앞으로 참여할 수 있는 연구 미팅도 세 번 정도에 불과하다. 

딸은 오후에 Covid 백신 2차 접종을 받았다. 오미크론 변이가 급격하게 퍼지기 시작하는 상황이라 접종 스케줄은 빨리 마무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아내와 나도 부스터 접종을 받았으니 이제 당분간 가능한 접종은 모두 맞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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