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2월 28일 화요일

연수일기 173. LA: 웨이퍼러스 채플,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투어

12월 27일 월요일. 338일째 날. LA를 거쳐 샌디에고에 올 지인을 마중하러 LA에 다녀오기로 했다. 오늘과 내일 LA에 머물면서 그동안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둘러보려 한다. 

아침에 백신 카드를 잊고 나와 다시 집에 돌아갔다 오는 바람에 웨이퍼러스 채플에 도착했을 땐 오전 열 시가 되었다. 웨이퍼러스 채플은 LA 남쪽의 부촌인 랜초 팔로스 베르드, 그곳에서도 아바론 비치를 바라보는 언덕 위에 있다. 백 명도 수용하기 어려운 작은 채플을 굳이 찾아가 볼 것까지 있을까 싶을 수도 있지만, 이 채플을 설계한 건축가가 로이드 라이트 주니어(구겐하임 미술관과 낙수장을 설계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아들)이며 이 건물이 National Register of Historic Places로 등재되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생각이 달라질 것이다.

예배당 내부

제단이 있는 전면부를 비롯해 천정과 벽면 대부분이 유리로 된 건물 안에 서면 탄성을 내뱉게 된다. 특별한 결혼식을 치르고 싶은 커플에게 예식 장소로 인기가 높다고 하는데 직접 보니 충분히 이해가 간다. 이곳에서 진행되는 행사에 참여한 사람은 아마 그 기억을 잊기 어려울 것이다.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도 여러 차례 쓰였다고 한다. 

예배당 건물 앞의 아담한 정원도 고즈넉하고 아름답다. 정원 벤치에 앉아 바다를 보면 기도를 하지 않아도 마음이 평화로워질 것 같다. 건물, 정원, 그리고 주변 풍경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다. 로이드 라이트는 특정한 스타일을 고집하지 않고 주변의 자연과 유기적으로 결합된 설계를 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그의 스타일은 아들에게도 고스란히 이어졌다는 생각이 든다. 

채플이 위치한 도로인 Palos Verdes Drive South 길은 LA에서 드라이브를 즐기기 가장 좋은 코스일 것이다. LA 도심의 칙칙한 분위기와 전혀 다른, 캘리포니아 만의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다. 근처의 서브웨이에서 점심을 먹었다. 평범한 동네 몰이지만 바다를 보며 샌드위치를 먹을 수 있다. 이웃한 스타벅스에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경치를 감상해도 좋을 것이다. 아마 전 세계 서브웨이와 스타벅스 지점 중 경치로는 손에 꼽히지 않을까 싶다. 

점심을 먹고 워너브러더스 스튜디오 투어를 위해 노스 할리우드로 이동했다. 스튜디오에 도착할 때쯤 오전에 맑았던 하늘에 짙은 구름이 끼더니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투어 중에 실외 세트를 볼 때는 차량을 타고 이동하므로 비가 와도 큰 문제는 없다. 드라마나 영화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미국 마을 거리와 뉴욕의 몇 번가를 지났다. 뉴욕 거리를 재현한 곳은 실제 스파이더 맨의 물구나무 키스 씬을 찍었던 뒷골목도 있다. 

엘렌 쇼, 올 아메리칸, 프렌즈와 빅뱅 이론 세트장 내부를 구경했다. 프렌즈와 빅뱅 이론 세트장에선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우리도 프렌즈 소파에 앉아 포즈를 취해 보았다. 프렌즈의 Central Perk는 투어 중간 간식을 사 먹을 수 있는 실제 카페로 쓰인다. 영화 제작 과정과 기법을 설명하는 코너에선 특수 효과와 사운드를 입히는 과정을 간접 체험할 수 있다. 반지의 제왕이나 해리 포터에서 볼 수 있는 원근법을 이용한 거인과 꼬마가 식탁에 마주 앉은 장면도 재현해보았다. 

프렌즈 오프닝 음악이 들릴 듯한 곳

투어의 마지막은 해리 포터와 히어로를 테마로 꾸민 곳이다. 해리 포터 구역에선 마법 물약을 만들고 호그와트 초대장을 받는 장면을 사진으로 남길 수 있다. 호그와트에서 반 배정을 받는 체험도 한다. 말하는 모자 아래 앉으면 모자가 반을 알려주는데, 우리 가족은 모두가 다른 반이 나왔다. 

코리아 타운에서 감자탕으로 저녁을 먹었다. 원래 계획은 그리피스 천문대에 들러 야경을 보는 것이었는데, 저녁까지 줄곧 비가 내려 그냥 호텔로 일찍 돌아가려 했었다. 호텔로 돌아가는 길에 비가 멈춰 잠깐 천문대에 들러보기로 했다. 비가 오고 날씨가 쌀쌀해서인지 사람이 적었다. LA 도심을 바라보는 야경은 아름다웠다. 그동안 LA에 올 때마다 천사들의 도시란 이름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날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무수히 많은 불빛들을 보며 처음으로 그 이름이 어울릴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야경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았던 것은 얼마 전 뉴욕 맨해튼의 야경을 보았기 때문일 것이다.

비에 젖은 그리피스 천문대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