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8일 토요일. 350일째 날. 숙소에서 간단히 아침을 먹었다. 마이애미와 플로리다 키 호텔들은 저렴한 숙박료에 아침도 포함된 곳이 많은데, 대부분 베이글이나 머핀, 식빵 등과 쥬스, 스낵, 과일 등을 곁들인 간단한 메뉴이다. 판데믹 영향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토스트기에 데운 따뜻한 베이글과 커피로 든든히 배를 채웠다. 오늘은 플로리다 키를 빠져나가 다시 마이애미로 간다. 저녁 6시 비행기라 공항에 가기 전, 비즈카야 뮤지엄과 할리우드 비치를 들러볼 예정이다.
키 라르고를 벗어나기 전 기념품 샵에 들러 마그넷을 샀다. 이곳에 머문 것은 겨우 이틀인데도 섬을 벗어나려니 아쉬운 마음이 든다. 플로리다의 바다는 캘리포니아의 그것과 다르다. 캘리포니아 바다를 생각하면 따가운 햇살아래 부서지는 파도, 그 위를 넘는 서퍼의 모습이 떠오른다. 플로리다는 노을이 지는 잔잔한 바다의 이미지다. 술로 비유하자면 캘리포니아는 맥주, 플로리다는 칵테일, 비치 보이스의 음악으로 비유하면 캘리포니아는 역시 Surfin’ USA, 플로리다는 Kokomo 겠지. Kokoma의 가사에 등장하는 지명 중 하나가 키 라르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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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본 무지개 |
오전엔 비가 흩뿌렸다 말았다 하는 날씨다. 섬을 벗어나 육지로 접어들 무렵, 왼쪽 멀리 무지개가 보였다. 여행 마지막 날 플로리다를 떠나는 우리에게 인사를 하는 듯 했다. 여기서부터만도 비즈카야 뮤지엄까지는 1시간이 넘게 걸린다. 뮤지엄은 코코넛 그로브 지역에 있는데, 이곳은 녹지가 많은 해안가 부촌으로 큰 저택과 세련된 상점이 많으며 해안 쪽으론 공원과 요트 정박지가 늘어서 있다. 길가에 늘어선 커다란 반얀 트리가 이곳이 열대 기후임을 말해준다. 양 옆으로 반얀트리가 우거져 마치 터널처럼 만들어진 길은 드라이브 코스로도 좋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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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프가 있는 음악실 |
비즈카야 뮤지엄 앤 가든은 1916년에 지어진 건물로, 본래 제임스 디어링이라는 백만장자의 개인 별장이었다. 헤밍웨이의 집도 그렇지만, 이 건물도 결국 남의 집에 불과하다. 부자의 저택이었으니 크고 호화로울 것은 분명하지만, 그리 볼 만한 것이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런 마음은 저택 안 곳곳을 돌아보는 동안 모래가 파도에 쓸려가듯 사라졌다. 중정을 가운데에 둔 2층 건물은 각각의 방과 주방, 식당, 거실 등이 아기자기하게 구성되었고, 모든 곳이 살던 그대로 잘 보존되어 있었다. 백 년 전 이곳에서 살던 사람들의 모습이 보일 듯 했다. 디어링의 침실과 손님 방엔 침대 뿐 아니라 침구도 갖추어져 있었다. 주방엔 다양한 크기의 구리 냄비들이 걸려 있었다. 에어비앤비의 백 년 전 버전이라 해도 되지 않을까. 백 년이 되었지만 지금 당장 손님을 받아도 될 것 같았다.
손님 용 방이 있는 탑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2층에 불과한 이 건물엔 승강기가 두 대 있다. 한 대는 사람용, 나머지 한 대는 1, 2층 주방 사이를 잇는 음식용 승강기이다. 음식용 승강기는 그렇다 쳐도 2층짜리 건물에 왜 굳이 승강기가 필요했을까 의아했는데 승강기 앞 안내문을 보고 의문이 풀렸다. 집의 주인인 제임스 디어링은 악성 빈혈이 있어 건강이 좋지 않았다고 한다. 2층 계단을 오르는 것도 힘에 겨웠을 것이다. 그의 나이 57세에 이 빌라를 지었고 그로부터 9년 뒤 사망했으니 막상 그가 이 멋진 별장을 이용한 기간도 그리 길지는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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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라스 정면에 보이는 Barge |
이 건물의 하이라이트는 동쪽 테라스였다. 테라스로 나오자 감탄이 절로 나왔다. 앞은 바다인데, 정면으로 반쯤 가라앉은 돌로 된 배가 보였다. 배와 테라스를 잇는 길은 물에 잠겨 있었는데 썰물 때라 해도 길이 완전히 드러나진 않을 듯 했다. 나중에 찾아보니 Barge라고 불리는 이 배는 별장을 찾은 손님들과의 레저 공간이었고, 배와 테라스 사이는 곤돌라를 통해 왕복했다고 한다. 백만장자의 스케일이란. Barge의 왼쪽으론 보트 선착장이, 오른쪽으론 티 하우스가 있다. 티 하우스는 이전엔 차를 마시는 공간이었겠지만 지금은 그 안에서 인스타그램 용 사진을 찍는 장소로 쓰이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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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 하우스 |
건물의 밖과 안 모든 것이 모던하면서도 우아하다. 이곳에선 '위대한 유산', '아이언 맨 3' 등의 영화 외에도 수많은 상업 영상이 촬영되었다고 한다. 영화를 찍는 이라면 누구나 이곳을 로케이션 장소로 점찍을 것이다. 잘 정돈된 정원도 빼놓을 수 없다. 메인 정원 옆으론 맹그로브 숲과 연결된 작은 미니 정원들이 있다. 비가 와서 미니 정원은 보지 못했지만 메인 정원만 봐도 왜 이곳의 명칭에 '가든'이 들어가는지 알 것 같았다.
뮤지엄을 나와 점심을 먹기 위해 할리우드 비치로 이동했다. 점심은 할리우드 브루어리에서 먹기로. 바람이 세서 파란 하늘 아래 춤을 추는 야자수를 보며 식사를 했다. 이 정도 바람이라면 캘리포니아에선 파도가 높아져 서퍼들이 즐비하게 보일텐데, 여기 바다는 여전히 잔잔하다. 파란색 물감을 칠한 듯한 하늘에 알록달록한 패러글라이더들이 점점이 날고 있었다.
이제 공항으로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