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19일 금요일

연수일기 151. 손님,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 (2)

11월 16일 화요일. 297일째 날. 이번 주는 딸 학교의 선생님 면담 주간이라 매일 일찍 하교한다. 아이가 일찍 하교하는 걸 깜빡하고 오후에 선생님 면담 일정을 잡았다. 지난 학기엔 화상으로 면담을 했었다. Back to school 행사에서 선생님을 뵙긴 했지만 따로 직접 면담을 하는 건 처음이라, 되도록 함께 가고 싶었다. 딸을 잠시 이웃집에 데려다 놓고 학교에 다녀오기로 했다. 

지난 번 행사 때도 그랬지만 선생님은 경험이 많고 자신의 교육 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아이의 성격과 학교 생활에 대해서도 잘 파악하고 계셨다. 최근에 학교에서 있었지만 우리가 몰랐던 일 몇 가지도 알게 되었고, 덕분에 딸의 생각과 기분에 대해서도 좀더 알게 되었다. 지난 학기에 비해 영어 읽기도 훨씬 나아졌다. 무엇보다 반가웠던 건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말을 건네는 걸 꺼려하던 아이가 최근엔 달라지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저녁은 아파트 바베큐장에서, B를 보기 위해 온 S 선생까지 함께 했다. 


11월 17일 수요일. 298일째 날. 아침에 B의 렌트카를 반납하고 산 후안 카피스트라노에 다녀오기로 했다. 지난 9월에 갔을 때 좋은 느낌을 받아 B 부부가 오면 함께 다시 가보려 생각했었다.

그런데 아침에 문제가 생겼다. B 부부가 금요일 아침 출국을 위해 월요일에 CVS에서 검사했던 covid-19 결과지를 어제 저녁에 받았는데, 결과 보고 일시가 없었다. 대한항공의 경우 한국행 출국 72시간 내에 결과가 보고된 서류가 필요하다. 결과 보고 일시가 적혀있지 않은 경우 결과를 받은 이메일 등으로 갈음할 수 있다고 들었지만 이번 경우엔 내 휴대폰 문자로 결과가 나왔음을 통보받았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하루만에 결과가 나오는 유료 검사를 다시 받아야 하나 고심을 하다 CVS에서 검사를 담당하는 MinuteClinic에 전화를 해보았다. 두세 번의 시도 끝에 고객 센터 직원과 연결이 되었고, 사정을 설명해 검사 일시 외에 결과 보고 일시가 표기된 원본을 이메일로 받았다. 올레! 

예정했던 것보다 조금 늦어졌지만 그래도 문제가 해결되어 마음 편히 출발할 수 있었다. 기차역 옆의 Los Rios 역사 지구에 주차를 하고 같은 이름의 거리를 둘러본다. 자동차 한두 대가 겨우 지나갈 만한 작은 오솔길 양 옆으로 버터플라이 가든, 카페, 레스토랑과 소박한 잡화점 등이 듬성듬성 이어져 있다. 이전에 갔던 Ramos House Coffee가 쉬는 날이라 근처의 The Tea House on Los Rios에서 이른 점심을 먹었는데 이곳도 음식 맛이 좋았다. 레스토랑 이름에 걸맞게 차와 스콘이 특히 훌륭했다. 아내들은 실내 분위기와 앙증맞은 식기들을 마음에 들어했다. 

작은 공방 겸 갤러리

만족스런 식사를 마치고 이웃한 작은 공방 겸 갤러리를 구경한 뒤 미션에 입장했다. 두 번째 방문이지만 지난 번과 마찬가지로 고즈넉한 분위기가 좋다. 왜 이 미션이 ‘캘리포니아 미션의 보석 (The Jewel of the California Missions)’이라고 불리워지는지 알 것 같다. 예전 그대로의 모습을 간직한 예배당에 들어서면 예상하지 못했던 분위기와 규모에 설풋 놀란다. 십자가 아래 아치 문을 지나 네 개의 종을 볼 수 있는 sacred garden는 작은 공간이지만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답다. 1812년 대지진으로 무너지기 전의 규모와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그레이트 스톤 처치의 남은 건물 벽과 잔해는 세월의 무게를 느끼게 해준다.

Sacred Garden

저녁은 집 앞 몰의 데킬라 바에서. 몰에 있는 레스토랑과 바 중에 괜찮은 곳 중 하나이다.


11월 18일 목요일. 299일째 날. 오후에 딸의 covid-19 검사를 위해 랜초 산타페의 CVS에 다녀왔다. 다음 주에 뉴욕에서 뮤지컬을 보려면 백신 미접종자의 경우 검사 결과가 필요하다. 딸은 미국에 와서 pcr 검사만 벌써 세 번째이다. 한국보다 수월한 전비강 검사라 딸도 부담을 크게 느끼지 않는 건 좋지만 검사를 할 때마다 정확성에 의문이 드는 건 사실이다. 집에서 더 가까운 CVS 검사 예약이 마감되어 좀 먼 곳의 검사소를 선택했는데 길이 막혀 가는 데만 다녀오는 데 두 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음 주 여행을 다녀와 딸도 백신 접종을 하면 이제 검사를 받을 일도 많지 않을 것이다. 

2021년 11월 16일 화요일

연수일기 150. 헌팅턴, 조슈아 트리 캠핑장

11월 13일 토요일. 294일째 날. 아침 일찍 LA 공항으로 향했다. B 부부를 마중하기 위해서다. 우리 부부와 가장 가까워 판데믹 전엔 캠핑도 함께 자주 가고 매년 한두 번씩은 이이들 없이 함께 여행을 다녔었다. B는 다섯 해 전에 샌디에고에 연수를 와서 일년을 살았다. 이번에 와선 이전에 살던 동네와 즐겨 가던 곳들을 둘러볼 예정이란다. 

LA 공항 로비가 이젠 익숙하다. 국제선 도착 출구는 여전히 한산했다. 반가운 얼굴들이 금새 보였다. 직접 얼굴을 본 건 작년 12월이 마지막이니 거의 일 년 만이지만 마치 지난 주에 만난 듯 그간의 시간이 느껴지지 않는다. 오래되어 편안한 관계라 그럴 것이다. 오늘은 이들과 함께 헌팅턴 라이브러리와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을 거쳐 집으로 갈 예정이다.

먼저 헌팅턴 라이브러리로 향했다. LA 동쪽의 패서디나에 위치한 이곳은 희귀 고서적과 아름다운 정원으로 유명한 곳으로, 1919년 철도와 부동산 재벌이었던 헨리 E. 헌팅턴과 아라벨라 헌팅턴 부부가 설립했다. 뉴욕의 휘트니 뮤지엄(1930)과 구겐하임 뮤지엄(1937)보다도 먼저 지어졌으며 개인 콜렉션으로 설립된 문화예술교육기관으로는 미 전체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가장 오랜 역사를 가졌다고 한다. 이곳엔 1455년 제작된 구텐베르크의 《성경》 초판본과 1623년 만든 셰익스피어의 《희극, 사극, 비극》 초판본, 프랭클린의 자필서 등이 전시되어 있고, 가장 인기가 많은 헌팅턴 갤러리Huntington Art Gallery는 유럽의 15~20세기 작품 1,2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다. 

헌팅턴 아트 갤러리

하지만 아쉽게도 판데믹으로 도서관은 문을 닫았고 갤러리의 일부만 운영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헌팅턴 갤러리의 상징 작품 중 하나인 Blue boy를 비롯해 몇몇 작품들을 감상한 뒤 로즈 가든과 데저트 가든을 산책했다. 정원의 규모가 무척 커서 다 돌아보는데엔 몇 시간이 걸릴 것 같았다. 중국 정원과 일본 정원도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시간 여유가 없어 들어가보진 못했다. 

인앤아웃에서 점심을 먹고 조슈아 트리로 향했다. B 부부도 예전에 조슈아 트리에 와 봤지만 그때는 낮에만 잠깐 들렀다고 한다. 오늘은 키스 뷰에서 일몰을 볼 예정이라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한다. 입구의 보틀샵에 들렀다가 키스 뷰에 도착했을 때는 해가 넘어가기 직전이었다. 노을을 보고 키스 뷰를 내려와 공원 남쪽의 코튼우드 캠핑장으로 이동했다. 여기서부터 한 시간 남짓 거리이다. 수세식 화장실이 갖춰진 몇 안되는 캠핑장 중 하나로, 미리 예약이 필요하다. 

캠핑장으로 가는 길에 주위는 완전히 깜깜해졌다. 예약한 사이트에는 청년 하나가 모닥불 앞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늦은 시간까지 비어있는 걸 보고 아마 예약이 안된 사이트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모닥불을 피우고 자리를 잡은지 얼마 안된 듯 했는데 자리를 뜨게 되었으니 좀 미안하게 되었다. 하지만 덕분에 우리는 장작에 불을 붙이는 수고를 피할 수 있었다. 

키스 뷰에서 보는 하늘

라면을 끓이고 준비해간 고구마도 모닥불에 넣었다. 배를 채우고 비치 의자와 돗자리에 앉아 하늘을 보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두 달 전엔 그믐이었지만 오늘은 달이 떠서 그때처럼 별이 쏟아질듯 보이진 않았다. 막 긴 비행을 한 이들에겐 조금은 무리한 여정이었지만, 그래도 이곳의 밤하늘을 함께 볼 수 있었으면 했다. 하룻밤을 보내지 못하더라도 국립공원 캠핑장을 경험해보고 싶기도 했다. 캠핑장은 널찍했고 관리 상태도 좋았다. 사이트마다 피크닉 테이블과 화롯대가 있어 편했다. 전기를 쓸 수 없지만 이건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캠핑장의 시간은 언제나 빨리 흐른다. 열 시쯤 되어 철수할 준비를 하는데 별똥별이 배웅을 해주었다. 돌아오는 길엔 B 부부도, 우리 아이들도 떡실신. 이렇게 이틀처럼 보낸 하루가 간다. 


11월 14일 일요일. 295일째 날. 오전엔 집에서 쉬다 오후엔 One Paceo 몰을 구경하고 커피를 마셨다. 이 몰은 B가 살던 때엔 없었던 곳이다. B가 살던 라호야 근처는 5년 전과 비교해 아주 큰 변화는 없지만 카멜 밸리 근처는 많이 변했을 것이다. 솔라나 비치에 들렀다가 피자 포트에서 저녁을 먹었다. 이번에 오면서 꼭 다시 들러보고 싶었던 곳 중의 하나라고. 옛날 생각이 많이 났던가 보다.


11월 15일 월요일. 296일째 날. B와 UCSD 근처의 렌트카 사무실에 들러 예약한 차를 받았다. 아내는 English chatting 프로그램을 함께 하는 분이 보스턴으로 이사를 가게 되어 잠시 얼굴을 보기로 했다. B의 아내 역시 5년 전에 가깝게 지냈던 분이라 함께 만나게 되었다. 오늘 샌디에고에서 이 세 사람이 함께 모이게 될 거라곤 그들 중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B 가족이 자주 갔다는 UCSD 근처 일식집에서 점심을 먹고 B 부부는 이전에 살던 동네를 둘러보기로 했다. 저녁 역시 이들이 가고싶어했던 발라스트 포인트 브루어리에서. 

2021년 11월 13일 토요일

연수일기 149. 플루 백신, 리사이클링 센터

11월 10일 수요일. 291일째 날. 할로윈 저녁을 함께 했던 가족들을 집에 초대했다. 다섯 집 아이들이 모이니 온 집안이 시끌벅적. 체스와 장기, 그림 그리기와 레고 놀이에 아이들이 지겨워질 때쯤 차고에 비치 의자와 돗자리를 깔고 포터블 프로젝터로 해리포터 영화를 틀어주었다. 초등 저학년부터 중학생까지 모두가 좋아할만한 영화로 해리포터 만한 것도 없을 듯하다. 마침 얼마 전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다녀온 우리 아이들도 즐거워했다. 아이들이 영화에 빠져있는 동안 어른들은 와인을 곁들인 수다에 빠졌다. 


11월 11일 목요일. 292일째 날. 연방 공휴일 중 하나인 재향군인의 날(Veterans Day)이다. 이 날은 1918년 11월 11일 독일이 제1차 세계대전 휴전 협정에 서명한 데에서 유래됐다고 한다. 

오후에 코스트코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플루 백신을 맞았다. 의료 보험 없이도 월그린, CVS, 코스트코 등의 약국에서 맞을 수 있는데 코스트코의 회원 가격이 가장 저렴하다. 접수를 한 뒤 한 시간 이상을 기다린 뒤에야 실제 접종을 받을 수 있었다. 한국의 개인 의원이나 보건소에서라면 같은 시간에 스무 명 이상은 너끈히 접종을 받았을 것이다.  

약국 체인 별 접종 가격

11월 12일 금요일. 293일째 날. 출근하는 길에 근처의 리사이클링 센터를 들렀다. 캔이나 병에 담긴 음료를 살 때 영수증에 CA CRV 또는 CA REDEMP VA라고 적힌 항목이 있는데, 재활용 비용에 대한 수수료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이 금액을 리사이클링 센터에서 돌려받을 수 있다는 건 몰랐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리사이클링 센터가 있었다. 직원에게 맥주 캔과 병, 페트병 등을 보여주니 이곳에서 수거가 가능한 것과 아닌 것을 구별해 알려준다. 라벨에 CA CRV라는 표시가 있는 것은 확실히 가능하고, 해당 표시가 없어도 재활용 표시가 있는 경우엔 대부분 받아주는 것 같았다. 종류 별로 나누어 갯수나 무게를 확인해 현금으로 돌려준다. 어렸을 적 집 앞 수퍼에 빈 병을 팔았던 기억이 났다. 우리가 머무는 잠시 동안에도 차 트렁크 가득 재활용품을 실은 이들이 두어 명 더 도착했다. 우리는 오늘은 첫날이라 가져온 재활용품 양이 많지 않았다. 1불 지폐 두 장과 동전 몇 개를 손에 쥐었다. 아파트 쓰레기장에 일반 쓰레기와 재활용 쓰레기를 구분해 버리도록 되어있지만, 쓰레기를 버리면서도 과연 재활용이 잘 될까 싶어 마음 한구석이 조금 불편했었다. 이제라도 이런 시스템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다행이다. 다음 번엔 좀더 많이 가져올 수 있을 것이다.  

재활용품 별 가격표

저녁에 딸의 초등학교에서 무비 나이트 행사를 했다. 아버지회에서 학교 운동장에 스크린과 프로젝터를 설치하고 경품 쿠폰과 팝콘도 준비했다. 오늘의 영화는 스페이스 잼 2. 우리가 도착했을 땐 이미 꽤 많은 가족이 스크린 앞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었다. 이번 주 날씨가 여름만큼 따뜻해서 저녁에도 많이 춥지 않았다. 딸은 친구들과 만나기로 약속을 했다는데 이미 어두워진 뒤라 친구들을 찾을 수 없어 서운해 했다. 그닥 재미있는 영화는 아니었다. 함께 온 아들도 심드렁. 그래도 이렇게 아이들과의 추억 한 가지가 또 생겼다. 

2021년 11월 10일 수요일

연수일기 148. Daylight Saving Time (2)

11월 7일 일요일. 288일째 날. 이곳에서 Daylight Saving Time (DST)라 부르는 썸머 타임이 끝나는 날이다. 지난 3월과는 반대로 시계를 한 시간 뒤로 늦춰야 한다. 당시에 기록했던 DST 제도에 대한 글을 다시 읽었다.

https://fmdoctor.blogspot.com/2021/03/31-daylight-saving-time.html

DST를 시작할 때는 이곳에 온지 얼마 안되는 시기라 모든 것이 새로웠기에 막상 시간대의 변화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 변화를 톡톡히 느끼고 있다. 해 지는 시간이 한 시간 빨라지면서 오후 다섯 시에 해가 지고 삼십 분도 지나지 않아 순식간에 깜깜한 밤이 되어 버린다.

이곳에선 밤에 밖에서 할 일도 없고 돌아다니기도 어려우니 해가 지면 꼼짝 없이 집에 있게 되는데, 한국과 달리 집 안의 조명이 밝지 않아 기분이 가라앉는 느낌이다. 주변에선 이 시기에 우울감을 느끼는 사람들을 흔히 볼 수 있다. 특정 계절에만 겪는 우울증을 계절성 정동 장애(Seasonal Affective Disorder, SAD)라고 부른다. 미국에서 가을 겨울이 되면 우울증이 늘어나는 이유를 알 것 같다. 덴마크 연구팀의 최근 연구에선 DST가 끝나는 시기에 우울증 위험이 11% 늘어나는 것을 확인하기도 했다.

https://journals.lww.com/epidem/Fulltext/2017/05000/Daylight_Savings_Time_Transitions_and_the.7.aspx

DST를 적용하는 기간이 8개월, 나머지가 4개월이니 사실 썸머 타임보다는 윈터 타임이라고 부르는 게 어울린다. 시간대를 바꾸면서 생기는 두 차례의 변화와 네 달 동안의 긴긴 겨울밤을 생각하면 아예 일 년 내내 시간을 한 시간 앞당겨 고정하는 게 낫지 않을까. 주 별로 DST 적용 여부가 달라 생기는 혼란도 무시하기 어려울 것 같다(아리조나는 DST를 적용하지 않는다). 실제로 플로리다에서는 DST를 폐지하고 1년 내내 한 시간을 앞당기는 법안이 승인을 앞두고 있고, 캘리포니아에서도 주민 투표를 한다니 조만간 썸머 타임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수도 있겠다.
근데 지구는 둥그니까 자꾸 이렇게 여기저기서 한 시간씩 앞당기다 보면 어느 날 전 세계 모든 나라가 시계를 한 시간 앞당기기로 덜컥 합의라도 하게 되진 않을까 하는 쓸데없는 생각을 했다.

오전에 아이들과 수영장에서 한참을 놀았다. 오늘도 풀 안엔 우리 가족 뿐.


11월 8일 월요일. 289일째 날. 농구와 스케이트 보드 수업이 있는 날엔 아들과 둘만 드라이브를 하게 된다. 가족 모두가 있을 때완 기분이 다른데, 짧은 시간이지만 둘만 있는 그 느낌이 좋다.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듣기도 하고 요즘 듣는 음악에 대해 이야기할 때도 있다. 구글 뮤직을 공유하고 있어서 얼마 전부턴 각자 보관함에 정리한 음악을 들으며 서로의 취향을 확인하기도 한다. 사실 아직 대중 음악을 많이 듣지 않은 아들의 취향을 옛날 음악으로 물들이는 작업 중이다. 비틀즈, 비지스, 사이먼앤가펑클, 퀸, 스팅. 아재 음악이라고 툴툴거리면서도 어느 순간 내가 수십 년간 들어온 음악을 흥얼거리는 녀석을 보면 행복해진다. 

아빠는 너하고 이렇게 둘이서만 드라이브를 하는 시간이 참 좋아. 

오늘 농구 수업에 가는 길에 깜깜해진 밤길을 운전하면서, 문득 보조석에 앉은 아들에게 고백했다. 뜬금 없는 고백에 녀석은 잠깐 당황한 듯 했지만 이내 담담하게 대답했다.

저도 좋아요. 근데 좀 오글거리네요.  


11월 9일 화요일. 290일째 날. 퇴근하는 길에 플루 백신을 맞았다. 지난 covid 부스터 백신과 마찬가지로 UCSD 안 드라이브 인 접종소에 예약했다. 

저녁엔 한국의 예과 학생들 대상으로 강의를 했다. 자유주제탐구 강좌에 특강 형식으로 참여한지 3년 째이다. 연수 기간엔 참여하지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화상 강의라 다행히 이번 학기에도 강의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오랜만의 학생 강의라 그런지 모니터의 학생들 이름만 봐도 반가웠다. 대부분 비디오를 끈 검은 화면이었지만. 

2021년 11월 7일 일요일

연수일기 147. 대면 연구 미팅, 영화관

11월 4일 목요일. 285일째 날. 오전에 Copa Vida에 들러 커피를 주문했다. 샌디에고의 로컬 체인 커피숍 중 하나이다. 동네 커피숍이지만 커피 맛이 괜찮고 분위기도 좋다. 샌디에고에서 맛있는 레스토랑을 찾기는 참으로 어렵지만 맛있는 커피숍과 브루어리는 많다. 

오랜만에 H 선생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우리보다 한 달 일찍 연수 생활을 시작해 출국도 그만큼 빠르다. 얼마 남지 않은 이곳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 생활을 준비 중이라 신경 쓸 게 많은 모양이다. 조만간 우리도 닥칠 문제들이다. H 마트에서 사온 연어회와 장어, 타마고야끼로 초밥을 만들어 대접했다. 지난 번 장인 장모님이 오셨을 때도 이렇게 만들어 먹었었다. 니기리 초밥은 아이들이 좋아해 그동안 외식 메뉴로 그나마 자주 먹었지만 이젠 이렇게 만들어 먹는 것이 낫다. 레스토랑의 니기리 초밥과 맛에 큰 차이가 없는데 연어와 장어로만 배불리 먹었을 때의 가격을 생각하면. 이래서 이곳에서 몇 개월을 살아도 외식을 선호하지 않게 되는 것 같다. 


11월 5일 금요일. 286일째 날. 오늘부터 대면 연구 미팅을 시작했다. UCSD 캠퍼스에서 정식 오프라인 미팅은 처음이다. A 교수님을 직접 만난 것도, 회의실에 앉아 발표를 듣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었다. 절반 정도는 아직 화상으로 참여했지만 모니터로만 만났던 연구팀 멤버들을 직접 볼 수 있어 더 반가웠다. 오늘의 발표는 Hass Avocado Board 시니어 디렉터의 아보카도 연구에 대한 내용이었다. 그야말로 아보카도와 관련된 연구만을 하는 기관이지만 펀딩 규모도 크고 연구 성과도 많았다.(아보카도에 대한 연구가 이렇게 많은 줄 미처 몰랐다.) 발표 말미엔 출판을 앞두고 있는 Habitual Diet and Avocado Trial (HAT) 연구 결과도 살짝 들을 수 있었다. 1천 명을 두 군으로 나누어 일상 식사와 생활 습관을 유지하고 실험군에 단지 아보카도 한 개씩 만을 6개월 동안 먹게 하면서 양 군의 차이를 확인한 재미난 연구이다. 

Avocado에 오롯이 집중했던 한 시간

올해가 가기 전에 이렇게 대면 미팅을 다시 할 수 있게 되어 다행이다. 오랜만에 햇볕을 받으며 캠퍼스를 걸으니 기분도 좋았다. 

딸의 covid-19 vaccine 접종을 예약했다. 이번 주부터 5-11세 아이들에 대한 접종이 시작되면서 캘리포니아 지역도 해당 나이 아이들을 예약할 수 있게 되었다. 화이자 백신을 맞은 아들의 경우 접종 부위 통증 외에 큰 부작용은 없었지만 혹시라도 접종 후 컨디션이 안 좋을 수 있으니 주말이 나을 것 같다. 다음 주에 손님이 오고 이어서 추수감사절 연휴엔 뉴욕 여행을 갈 예정이라, 그 이후로 예약했다. 

저녁에 델 마르 하이랜드 쇼핑몰에 있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극장이다. 영화는 오늘 개봉한 이터널스. 대사를 다 알아듣긴 힘들겠지만 아이들도 좋아하는 마블 영화라 대략적인 내용 정도는 파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영화관에 들어가기 전 아이들과 줄거리를 미리 살펴보기도 했다. 

럭셔리 극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극장 시설은 괜찮았다. 모든 관이 비슷한 크기로 전동식 안락 의자에 누워 영화를 볼 수 있었다. 상영관 내에서 간식과 음료 주문도 가능했다. 롯데 시네마 샤롯데나 메가박스의 부티크와 비슷한 형태인데, 영화 한 편에 20불이니 가격도 그리 비싸진 않다. 팝콘과 음료수, 맥주를 주문했다. 팝콘은 거의 아이들 세숫대야 만한 그릇에 가득 담아준다. 그런데 뭔가 조금은 부족한 느낌이 들었다. 한국의 극장에서 느끼던, 영화 시작을 기다리며 조금은 흥분되고 들뜨던 기분이 들지 않는다. 한국의 멀티플렉스보다 분위기가 차분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극장 입구부터 느낄 수 있는 달달한 팝콘 냄새가 없어서인 것 같기도 하다. 

미국다운 스케일

영화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에 서로가 이해하지 못한 줄거리를 퍼즐처럼 맞추느라 부산을 떨었다. 설명을 해주는 쪽은 주로 아내였는데, 중요한 대사들을 처음 듣는 듯한 반응을 보이는 나에게 아들이 빙글빙글 웃으며 한 마디 한다. 아빠, 그것도 못 알아 들었어요? 자존심 상하지만 이제 아들이 나보다 영어를 잘 알아듣는다는 걸 인정해야 할 것 같다. 


11월 6일 토요일. 287일째 날. 아이들이 늦잠을 잤다. 둘 다 오전까진 컨디션도 썩 좋지 않아 보인다. 어제 늦게 영화를 보고 들어와 피곤했나 보다. 

L 선생님 가족과 저녁을 먹었다. 샌디에고 생활이 벌써 네 달이 넘어가는데, 이제 적응이 되어선지 가족들 모두 처음보다 건강하고 편안해 보인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그쯤이 한참 재미를 느끼기 시작할 때였던 것 같다. 앞으로도 선생님 가족에게 안온한 생활이 계속 이어지길. 

2021년 11월 4일 목요일

연수일기 146. 선거, 전세 제도

11월 1일 월요일. 282일째 날. 연구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 아침 운동은 대개 근처 공원을 뛴다. 가끔은 조금 멀리까지 산책을 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큰길 건너편 동네를 구경했다. 아파트 옆 몰에서 큰길을 건너 솔라나 랜치 초등학교와 공원까진 몇 번 와 보았는데, 공원을 넘어서 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작은 밸리를 넘어 단독 주택 단지가 있다. 안쪽으로 갈 수록 새로 지은 걸로 보이는 집들이 나타났고, 맨 안쪽엔 공사 중인 집들도 많았다. 기존의 주택들과는 달리 좀더 모던한 형식의 건물들로 약간 판교의 주택 단지와 비슷한 느낌도 준다. 

주택 단지 건너는 밸리 지역이라 맨 끝에 위치한 집들은 전망이 좋아 보였다. 뒤뜰에서 밸리와 델 마르 컨츄리 클럽이 보인다. 전망이 좋은 집을 선호하는 미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위치였다. 전체적으로 동네가 깨끗하고 살기 좋아 보였다. 이쪽 단지는 인기가 많아 이미 분양이 끝났고 대기도 있다고 한다. 주택 가격도 꽤 높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더 오를 것이다. 한국인도 많이 구입했다고 들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동산 보는 눈은 알아줘야 한다. 


11월 2일 화요일. 283일째 날. 구글 캘린더의 미국 기념일 항목에 선거일이라 적혀 있어서 무슨 선거가 있나 했는데,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 선거였다. 두 곳 다 민주당 강세로 지난 대선 때 바이든에게 훨씬 더 많은 표를 던진 지역이다. 하지만 개표 결과 버지니아는 공화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뉴저지도 개표 막판까지 접전이 벌어지다 현 민주당 주지사가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다. 버지니아에서 공화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된 것은 12년 만이라고 한다. 내년 중간 선거의 전초전 역할을 한 이번 선거에서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중간 평가 결과를 확인한 셈인데, 새 정부가 출범한지 겨우 아홉 달 되었지만 민심은 썩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판데믹에 대한 대처와 지지부진한 새 예산안이 민주당 후보들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부가 얼마나 있을지 싶다. 최근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어도 지난 1년 동안 미국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살림살이 어려움이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만 했을까. 최근 유권자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흔히 한다. 빈곤층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전망을 확대하려는 당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그렇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셈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정치란, 선거란 참 어렵다. 


11월 3일 수요일. 284일째 날. 아침엔 안개가 가득 피었다가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졌다. 바닷가 도시라 그런지 아침엔 안개도 종종 끼고 아침엔 구름 낀 흐린 날씨가 잦다. 하지만 오후에는 항상 거짓말처럼 맑아져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아내의 오늘 날씨 이야기에 이곳에서 십여 년째 사는 노리 할머니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That's San Diego."라고 했다고. 

안개가 잔뜩 낀 공원

한국의 집 전세 계약 만기 문제로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최근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오늘 세입자 분이 이사를 나가고 마무리를 다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작년에 연수가 미뤄지면서 조금은 갑작스럽게 집을 마련했던 건 연수를 다녀와서 머물 곳이 미리 정해지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는데, 올해 한국의 아파트 값 상황을 보면 당시 그렇게 결정했던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아내가 매주 참여하는 영어 채팅에서 얼마 전 한국의 렌트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세에 대해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전세 제도는 한국 생활에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제도 중 하나일 것이다. 남의 집을 빌려 살았는데 2년 뒤 그 돈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니. 이런 환상적인 제도가. 공짜로 집을 빌려주는 거 아닌가? 그럼 집 주인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뭔가? 보증금이란 개념을 설명하기도 어려웠지만(외국인의 경우 이 돈을 deposit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 돈을 정말로 그대로 돌려주는지를 몇 번씩 되묻는 통에 아내가 진땀을 흘렸다고. 과거의 높은 이자율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제도이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는 외국인들 눈엔 비상식적인 계약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아이들 옷을 사러 라호야에 갔다가 BJ's Restaurant & Brewhouse에서 저녁을 먹었다. 캘리포니아에선 괜찮은 브루어리 겸 식당 체인으로 알려져 있다. 분위기는 딱 미국 펍이고 맥주는 평범. 스테이크는 괜찮았지만 잠발라야는 너무 자극적이고 짰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딥디쉬피자도 괜찮아 보였지만 그럴 먹기 위해 굳이 다시 오진 않을 것 같다. 

2021년 11월 1일 월요일

연수일기 145. Trick or Treat

10월 30일 토요일. 280일째 날. 아니나다를까, 어제 예방접종의 여파로 오후까지 몸살기가 있었다. 오전엔 내내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오후에 일어나 딸과 같이 호박을 깎았다. 도안에 맞춰 그려둔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칼질을 해 고양이 모양을 완성했다. 

딸 친구 J의 가족과 바베큐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두 학기째 단짝이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진즉 식사를 함께 하려 했는데 이제야 기회를 만들었다. 두 가족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LA 갈비를 준비해 오셔서 배불리 먹었다. 딸과 친구는 세 시간이 넘게 자쿠지와 풀을 왕복하며 물놀이를 했다. J의 아빠는 8년 전 주재원으로 미국에 왔다. 2년의 근무 후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첫째 아들이 미국에 남기를 원해 미국 생활을 연장했고, 결국 영주권까지 받았다고 한다. 원래의 계획과 달리 기약없이 길어진 타국에서의 삶은 고달팠을 것이다. 특히 J 엄마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그래도 최근엔 지인의 도움으로 새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우연히 얻었다고 했다. 고단한 생활에 주어진 행운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가족 모두가 건강하길. 


10월 31일 일요일. 281일째 날. 할로윈이다. 오후가 되면서부터 아파트 단지 안에도 코스튬을 입고 어슬렁거리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해가 지기 전부터 할로윈 장식에 불을 켜고 초콜릿과 캔디 박스를 준비했다. 이른 저녁을 먹는데 스파이더맨 복장의 아이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첫 번째 방문. 

아이들은 아파트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기로 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코스튬을 차려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호그와트 학생이 셋, 낫을 든 해골이 둘, 마녀, 드라큐라, 뿔 달린 악마, 그리고 정체 모를 티비 스타 각각 한 명씩이 모였다. 가까운 집 대문부터 두드리기 시작한다. 우리 아파트만 해도 삼분의 일 정도는 대문 앞에 할로윈 장식을 한 것 같다.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에게 그저 사탕만 나누어주는 사람들도 있고, 직접 코스튬을 입고 기다리다 아이들을 깜짝 놀래키며 즐거워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백인 부부는 아예 집 옆 주차장에 캠핑 의자를 놓고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사탕 바구니가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멀찌감치 아이들을 따라가며 지켜만 봐도 즐겁다. 네댓 명씩 무리를 지은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연이어 지나간다. 아파트 전체가 평소보다 달뜬 분위기였다. 

출발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 동안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해졌다. 아파트를 벗어나 큰길 건너 타운하우스 단지를 방문했다. 이곳은 할로윈 장식을 하지 않은 집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이고 집 입구와 앞뜰의 장식도 더 다양하고 화려하다. 단지 입구의 집에선 흥겨운 음악을 크게 틀고 음산한 조명 아래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어린 아이들이 많았지만 종종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늘씬한 여자 아이들도 깔깔거리며 사탕을 얻으러 다녔다. 

아파트에 돌아와 빠진 집들을 한 바퀴 더 돌고 난 아이들은 C 선생님 댁에 모여 사탕을 교환하기로 했다. 어른들도 식탁에 모여 앉아 예정에 없던 모임을 시작했다.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헤어지기 못내 아쉬웠던 엄마들은 조만간 다시 브런치 모임을 하기로 약속까지. 이렇게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추억 하나가 더 생겼다.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연수일기 144. 미국 중학교의 시험

10월 28일 목요일. 278일째 날. 아들은 얼마 전 보았던 과학 시험 점수 때문에 툴툴거린다. 성적이 먼저 나왔는데 네 문제를 틀렸고, 처음엔 무슨 문제를 틀렸는지 알 수 없어 의아해 했다. 어제 틀린 문제를 다시 확인했는데 실수를 했다고. 

중학교에선 시험을 자주 본다. 간단한 퀴즈부터 시험지를 주고 정해진 시간 안에 스무 문제 이상을 풀게 하는 좀더 그럴 듯한 시험까지. 수학, 역사, 과학의 경우 과목 당 서너 번씩은 시험을 본 것 같다. 역사 과목에선 중국에 이어 얼마 전 일본 역사에 대한 단원을 마쳤는데, 각 나라에 대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시험을 보았다. 

숙제도 매일 주어진다. 모든 숙제는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 확인하고 제출한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을 잘 이용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는데 금새 적응을 했다. 역시 아이들에겐 디지털 환경이 그리 어렵지 않나 보다. 영어로 숙제를 작성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얼마 전 과학 노트를 무심코 펼쳤다가 생각보다 그동안 작성한 양이 많은 것에 놀랐다. 

서울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자유학년제로 한 해 동안 시험을 보지 않는다. 체험 중심의 수업과 과정 중심의 평가라는 취지는 좋지만, 실제 의도한 효과를 거두려면 현장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작년과 올해와 같은 원격 수업 위주의 환경에서는 이런 방식의 수업이 잘 되긴 어려웠을 것 같다. 아들의 한국 친구들은 아직도 격주로 등교 수업을 한다. 이렇게 1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변화하는 환경에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10월 29일 금요일. 279일째 날. 아이들이 할로윈 코스튬을 입고 학교에 가는 날이다. 아들은 그리핀도르 가운과 넥타이를 하고 등교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코스튬을 입었지만 같은 옷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등교 지도를 한다. 일 년 내내 즐거운 일이 끊이지 않는 학교지만 오늘은 아이들에게 정말 특별한 하루가 될 것 같다. 꼭 할로윈이 아니더라도 일 년에 하루 정도는 한국에서도 이런 즐거운 이벤트를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교를 기다리는 아이들

트레이더 조에서 할로윈 호박을 다시 샀다. 마트에 호박이 다 들어가버린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직 팔고 있었다. 

오후에 모더나 백신 부스터 접종을 받았다. 이전과 달리 UCSD 접종소는 드라이브 스루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모더나의 경우 부스터는 절반 용량을 맞는다. 지난 두 번째와 같이 접종 부위에 통증이 생겼다. 지난 번에 다음 날까지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2021년 10월 28일 목요일

연수일기 143. 인플레이션

10월 25일 월요일. 275일째 날. 이곳 생활도 아홉 달이 되어간다. 초기 정착 과정 이후엔 비교적 태평하고 큰 변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올 여름 이후 일상에서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이 너무 급격해서 조금 과장하자면 상품 가격이 올라가며 내는 바람 소리가 느껴질 정도이다. 숙슉. 정부가 주도하는 양적 완화의 위력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이런 상황은 살면서 처음인 것 같다. 마트의 상품에 붙은 가격표는 지난 주와 이번 주가 다르다. 올해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CPI-U(도시 지역 소비자 물가 지수)를 보면 미국에서 판데믹이 심해진 2020년 봄에 급격하게 떨어진 물가가 1년 동안 낮게 유지되다가 올해 3월 이후 급격하게 올라 여름에는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최근에 판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서 물가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출처: https://www.bls.gov/regions/west/news-release/consumerpriceindex_losangeles.htm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식료품과 기름값을 제외하면 이제 막 판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을 뿐이지만, 두 가지 항목을 포함시키면 9월의 소비자 물가 지수는 판데믹 이전보다 높다. 식료품과 기름 가격이 올 봄 이후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항목의 가격은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숫자이므로 체감하는 인플레이션은 심할 수밖에 없다. 양적 완화로 인해 풀린 수조 달러의 현금(이 돈은 저소득층에게 더 많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판데믹으로 인해 줄어든 생산 라인과 공급 라인이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것은 일시적인 환경 변화일 뿐이다. 관련 기사를 참고하면 내년 까진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그 다음엔 경기 하락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주로 이용하는 코스트코 주유소도 올해 초엔 갤런 당 3불 정도였지만 최근엔 4불을 넘어섰다. 원체 캘리포니아가 다른 주에 비해 물가도, 기름 값도 높은 지역이긴 하다. 어느 지역 주유소는 갤런 당 7불이 넘는 믿기 힘든 가격을 내걸었다는데, 그나마 샌디에고 카운티는 양반인가 보다. 우리 가족은 그래도 일 년의 절반 정도는 예년보다 낮은 물가를 체험했으니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까.


10월 26일 화요일. 276일째 날. Rob이 크루즈 의사로 일하게 되어 당분간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플로리다 남쪽 바다에 떠있는 크루즈 안에서 내게 소식을 보냈다. 지원을 했을 때는 세부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는데, 출발 하루 전날에야 갑자기 알려주어서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배에 탔다고 한다. 2주 동안 승객이 없는 배 안에서 자가 격리를 하고, 그 뒤에도 4주의 준비 기간 후에야 승객을 태운 배에서 본격적인 일을 하게 된다고. 

3주 전 만든 호박 랜턴이 썩어버린 뒤로 호박은 할로윈 직전에 다시 사려고 했다. 다른 장식을 사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미라 메사에 가서 몇 군데 마트를 돌아보니 이미 할로윈 장식을 다 치웠나 보다. 심지어 달러 트리에선 크리스마스 장식을 팔고 있었다. 급히 집 근처 랄프스를 다시 들러 몇 개 남지 않은 램프를 사왔다. 파티오에 걸어두니 제법 그럴 듯한 장식이 되었다. 바깥에 잔뜩 쌓아두고 팔던 호박은 이제 다 치웠는지 보이질 않아 다른 곳에 다시 들러봐야 할 것 같다. 

TRICK OR TREAT


10월 27일 수요일. 277일째 날. 딸의 초등학교에선 이번 주가 레드 리본 위크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마약상에게 납치, 살해되었던 마약 단속국 직원을 기리기 위해 시작한 행사가 마약을 반대하는 전국 캠페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매년 10월에 있는 이 주간엔 흡연, 술, 약물과 폭력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요일마다 지정한 색깔의 옷을 입기도 하고 특별한 헤어스타일을 하는 날을 정한 학교도 있다고. 

오늘 딸 학교에선 차를 타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행사를 한다. 아침에 평소보다 서둘러 집에서 출발해 딸과 학교까지 걸어갔다. 아침 운동은 이걸로 대신.  


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연수일기 142. 오케스트라 커피 콘서트

10월 21일 목요일. 271일째 날. 어제 FDA에서 모더나와 얀센 백신에 대한 부스터 샷을 응급 승인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백신 간의 교차 접종(mix and match)도 함께 승인했다. 한국에선 일찍부터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 간의 교차 접종을 해왔지만 그 근거가 충분하진 않은 편이었는데, 최근 다른 기전의 백신 간의 교차 접종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들도 나오고 있어 다행이다. 뉴스에선 12세 미만 아이들에 대한 접종 승인도 추수감사절 즈음엔 이루어지지 않을까 전망한다. 


10월 22일 금요일. 272일째 날. 아들 학교의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커피 콘서트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참여 수업에 가깝다. 부모를 초대해 그동안 아이들이 연습했던 곡을 들려주는 시간이다. 그래서 행사도 정규 수업 시간에 한다. 

방문 시간에 맞춰 학교 오피스에 도착했다. 방문증을 받아 음악실에 가니 아이들이 준비 중이다. 테이블엔 학부모들이 준비한 커피와 쿠키가 가득했다. 선생님의 소개와 인사가 끝나고 간단한 합주가 이루어졌다. 연습 전 스트레칭부터 튜닝에 이어지는 준비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교과목 담당인 존슨 선생님은 민머리에 덩치가 커서 아이들에게 처음엔 좀 무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아주 유쾌하고 부드러운 분이다. 집에서 연습할 첼로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문의했을 때에도 흔쾌히 남는 악기를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세세한 기술을 가르치는 보조 선생님도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 음악 선택 수업은 오케스트라, 보컬, 밴드 등의 세부 과목으로 나뉘는데 각 세부 과목마다 존슨 선생님 외에 보조 선생님이 한 분씩 참여한다. 선택 수업에 보조 교사까지 있는 게 놀랍기도 한데, 보조 교사의 인건비는 교육청이 아닌 각 수업의 학부모들 기부금에서 충당한다. 다음 학기까지 예정된 몇 번의 연주회에 드는 비용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안 뿐 아니라 지역 내 초등학교나 공원 등에서도 작은 연주회를 한다고 했다. 가장 큰 행사는 디즈니랜드에서 하는 모금을 겸한 연주회인데, 버스 렌트를 포함한 부대 비용 역시 학부모 담당이다. 올해 초엔 다 준비했던 행사가 판데믹으로 취소되었었다고 한다. 연주회 후 디즈니랜드에서 놀 수도 있어 아이들이 특히 기대하는 행사라는데 얼마나 실망이 컸을지. 내년 3월에 다시 갈 수 있도록 계획 중이지만 우리는 참여할 수 없어 아쉽다.

정식 연주는 초급반과 중급반을 나누어 진행했다. 겨우 네 곡으로 구성된 짧은 콘서트였지만 아이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부모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쳤다. 아들은 한국에서 개인 교습을 받을 때보다 학교 수업에 참여하면서 더 열심히 첼로 연습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수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학교 수업을 통해 악기를 익히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과 합주를 하는 것은 다른 데서 얻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 타인과 어울리고 조화를 이루는 방법과 함께 음을 맞춰 연주를 해냈을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저녁엔 치킨과 맥주를 사서 S 선생님 집에 갔다. 아파트 앞 몰의 한국 치킨집은 두 번째 이용인데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다. 매장도 북적거리고 포장을 기다리는 손님도 많았다. 치킨 맛도 좋고 양도 많은 편이라 앞으로도 종종 먹게 될 것 같다.


10월 23일 토요일. 273일째 날. 지난 3주간 주말마다 여행이나 LA 나들이를 다녀온 지라 이번 주말만큼은 집에서 쉬기로 아이들과 약속했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10월 24일 일요일. 274일째 날. 할로윈을 일주일 앞두고 아파트 앞 몰에서 trick or treat 행사를 한다. 형형색색의 코스튬을 입은 꼬마들이 상가 앞을 몰려다녔다.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아이들을 직접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장을 보러 나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화해 나오지 않겠느냐 했더니 귀찮다고 단칼에 거절한다. 

UCSD My Chart에서 부스터 접종 예약 알림이 와서 다음 금요일로 예약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