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1월 4일 목요일

연수일기 146. 선거, 전세 제도

11월 1일 월요일. 282일째 날. 연구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 아침 운동은 대개 근처 공원을 뛴다. 가끔은 조금 멀리까지 산책을 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큰길 건너편 동네를 구경했다. 아파트 옆 몰에서 큰길을 건너 솔라나 랜치 초등학교와 공원까진 몇 번 와 보았는데, 공원을 넘어서 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작은 밸리를 넘어 단독 주택 단지가 있다. 안쪽으로 갈 수록 새로 지은 걸로 보이는 집들이 나타났고, 맨 안쪽엔 공사 중인 집들도 많았다. 기존의 주택들과는 달리 좀더 모던한 형식의 건물들로 약간 판교의 주택 단지와 비슷한 느낌도 준다. 

주택 단지 건너는 밸리 지역이라 맨 끝에 위치한 집들은 전망이 좋아 보였다. 뒤뜰에서 밸리와 델 마르 컨츄리 클럽이 보인다. 전망이 좋은 집을 선호하는 미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위치였다. 전체적으로 동네가 깨끗하고 살기 좋아 보였다. 이쪽 단지는 인기가 많아 이미 분양이 끝났고 대기도 있다고 한다. 주택 가격도 꽤 높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더 오를 것이다. 한국인도 많이 구입했다고 들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동산 보는 눈은 알아줘야 한다. 


11월 2일 화요일. 283일째 날. 구글 캘린더의 미국 기념일 항목에 선거일이라 적혀 있어서 무슨 선거가 있나 했는데,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 선거였다. 두 곳 다 민주당 강세로 지난 대선 때 바이든에게 훨씬 더 많은 표를 던진 지역이다. 하지만 개표 결과 버지니아는 공화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뉴저지도 개표 막판까지 접전이 벌어지다 현 민주당 주지사가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다. 버지니아에서 공화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된 것은 12년 만이라고 한다. 내년 중간 선거의 전초전 역할을 한 이번 선거에서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중간 평가 결과를 확인한 셈인데, 새 정부가 출범한지 겨우 아홉 달 되었지만 민심은 썩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판데믹에 대한 대처와 지지부진한 새 예산안이 민주당 후보들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부가 얼마나 있을지 싶다. 최근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어도 지난 1년 동안 미국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살림살이 어려움이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만 했을까. 최근 유권자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흔히 한다. 빈곤층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전망을 확대하려는 당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그렇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셈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정치란, 선거란 참 어렵다. 


11월 3일 수요일. 284일째 날. 아침엔 안개가 가득 피었다가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졌다. 바닷가 도시라 그런지 아침엔 안개도 종종 끼고 아침엔 구름 낀 흐린 날씨가 잦다. 하지만 오후에는 항상 거짓말처럼 맑아져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아내의 오늘 날씨 이야기에 이곳에서 십여 년째 사는 노리 할머니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That's San Diego."라고 했다고. 

안개가 잔뜩 낀 공원

한국의 집 전세 계약 만기 문제로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최근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오늘 세입자 분이 이사를 나가고 마무리를 다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작년에 연수가 미뤄지면서 조금은 갑작스럽게 집을 마련했던 건 연수를 다녀와서 머물 곳이 미리 정해지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는데, 올해 한국의 아파트 값 상황을 보면 당시 그렇게 결정했던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아내가 매주 참여하는 영어 채팅에서 얼마 전 한국의 렌트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세에 대해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전세 제도는 한국 생활에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제도 중 하나일 것이다. 남의 집을 빌려 살았는데 2년 뒤 그 돈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니. 이런 환상적인 제도가. 공짜로 집을 빌려주는 거 아닌가? 그럼 집 주인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뭔가? 보증금이란 개념을 설명하기도 어려웠지만(외국인의 경우 이 돈을 deposit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 돈을 정말로 그대로 돌려주는지를 몇 번씩 되묻는 통에 아내가 진땀을 흘렸다고. 과거의 높은 이자율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제도이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는 외국인들 눈엔 비상식적인 계약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아이들 옷을 사러 라호야에 갔다가 BJ's Restaurant & Brewhouse에서 저녁을 먹었다. 캘리포니아에선 괜찮은 브루어리 겸 식당 체인으로 알려져 있다. 분위기는 딱 미국 펍이고 맥주는 평범. 스테이크는 괜찮았지만 잠발라야는 너무 자극적이고 짰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딥디쉬피자도 괜찮아 보였지만 그럴 먹기 위해 굳이 다시 오진 않을 것 같다. 

2021년 11월 1일 월요일

연수일기 145. Trick or Treat

10월 30일 토요일. 280일째 날. 아니나다를까, 어제 예방접종의 여파로 오후까지 몸살기가 있었다. 오전엔 내내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다 오후에 일어나 딸과 같이 호박을 깎았다. 도안에 맞춰 그려둔 선을 따라 조심스럽게 칼질을 해 고양이 모양을 완성했다. 

딸 친구 J의 가족과 바베큐장에서 저녁을 먹었다. 두 학기째 단짝이고 같은 아파트에 살아서 진즉 식사를 함께 하려 했는데 이제야 기회를 만들었다. 두 가족이 충분히 먹고도 남을 LA 갈비를 준비해 오셔서 배불리 먹었다. 딸과 친구는 세 시간이 넘게 자쿠지와 풀을 왕복하며 물놀이를 했다. J의 아빠는 8년 전 주재원으로 미국에 왔다. 2년의 근무 후 한국으로 돌아가려 했지만 첫째 아들이 미국에 남기를 원해 미국 생활을 연장했고, 결국 영주권까지 받았다고 한다. 원래의 계획과 달리 기약없이 길어진 타국에서의 삶은 고달팠을 것이다. 특히 J 엄마 마음 고생이 심했을 것 같다. 그래도 최근엔 지인의 도움으로 새 사업을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우연히 얻었다고 했다. 고단한 생활에 주어진 행운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다. 앞으로 좋은 일만 있기를. 가족 모두가 건강하길. 


10월 31일 일요일. 281일째 날. 할로윈이다. 오후가 되면서부터 아파트 단지 안에도 코스튬을 입고 어슬렁거리는 아이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우리도 해가 지기 전부터 할로윈 장식에 불을 켜고 초콜릿과 캔디 박스를 준비했다. 이른 저녁을 먹는데 스파이더맨 복장의 아이가 우리 집 초인종을 눌렀다. 첫 번째 방문. 

아이들은 아파트의 다른 친구들과 함께 돌아다니기로 했다. 서둘러 저녁을 먹고 코스튬을 차려입은 아이들을 데리고 약속 장소로 나갔다. 호그와트 학생이 셋, 낫을 든 해골이 둘, 마녀, 드라큐라, 뿔 달린 악마, 그리고 정체 모를 티비 스타 각각 한 명씩이 모였다. 가까운 집 대문부터 두드리기 시작한다. 우리 아파트만 해도 삼분의 일 정도는 대문 앞에 할로윈 장식을 한 것 같다.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에게 그저 사탕만 나누어주는 사람들도 있고, 직접 코스튬을 입고 기다리다 아이들을 깜짝 놀래키며 즐거워하는 이들도 있다. 어떤 백인 부부는 아예 집 옆 주차장에 캠핑 의자를 놓고 앉아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아이들의 사탕 바구니가 빠른 속도로 채워졌다. 멀찌감치 아이들을 따라가며 지켜만 봐도 즐겁다. 네댓 명씩 무리를 지은 아이들이 키득거리며 연이어 지나간다. 아파트 전체가 평소보다 달뜬 분위기였다. 

출발

아파트를 한 바퀴 도는 동안 해가 완전히 져서 깜깜해졌다. 아파트를 벗어나 큰길 건너 타운하우스 단지를 방문했다. 이곳은 할로윈 장식을 하지 않은 집을 찾기가 오히려 어려울 정도이고 집 입구와 앞뜰의 장식도 더 다양하고 화려하다. 단지 입구의 집에선 흥겨운 음악을 크게 틀고 음산한 조명 아래에 테이블과 의자를 두고 앉아 아이들을 기다렸다. 어린 아이들이 많았지만 종종 중학생 쯤으로 보이는 늘씬한 여자 아이들도 깔깔거리며 사탕을 얻으러 다녔다. 

아파트에 돌아와 빠진 집들을 한 바퀴 더 돌고 난 아이들은 C 선생님 댁에 모여 사탕을 교환하기로 했다. 어른들도 식탁에 모여 앉아 예정에 없던 모임을 시작했다. 덕분에 늦은 시간까지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헤어지기 못내 아쉬웠던 엄마들은 조만간 다시 브런치 모임을 하기로 약속까지. 이렇게 아이들에게도, 어른들에게도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추억 하나가 더 생겼다. 

2021년 10월 30일 토요일

연수일기 144. 미국 중학교의 시험

10월 28일 목요일. 278일째 날. 아들은 얼마 전 보았던 과학 시험 점수 때문에 툴툴거린다. 성적이 먼저 나왔는데 네 문제를 틀렸고, 처음엔 무슨 문제를 틀렸는지 알 수 없어 의아해 했다. 어제 틀린 문제를 다시 확인했는데 실수를 했다고. 

중학교에선 시험을 자주 본다. 간단한 퀴즈부터 시험지를 주고 정해진 시간 안에 스무 문제 이상을 풀게 하는 좀더 그럴 듯한 시험까지. 수학, 역사, 과학의 경우 과목 당 서너 번씩은 시험을 본 것 같다. 역사 과목에선 중국에 이어 얼마 전 일본 역사에 대한 단원을 마쳤는데, 각 나라에 대한 단원이 끝날 때마다 시험을 보았다. 

숙제도 매일 주어진다. 모든 숙제는 구글 클래스룸을 통해 확인하고 제출한다. 처음엔 익숙하지 않은 시스템을 잘 이용할 수 있을지 걱정도 되었는데 금새 적응을 했다. 역시 아이들에겐 디지털 환경이 그리 어렵지 않나 보다. 영어로 숙제를 작성하는 데에도 어느 정도 익숙해진 것 같다. 얼마 전 과학 노트를 무심코 펼쳤다가 생각보다 그동안 작성한 양이 많은 것에 놀랐다. 

서울의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은 자유학년제로 한 해 동안 시험을 보지 않는다. 체험 중심의 수업과 과정 중심의 평가라는 취지는 좋지만, 실제 의도한 효과를 거두려면 현장에서 많은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게다가 작년과 올해와 같은 원격 수업 위주의 환경에서는 이런 방식의 수업이 잘 되긴 어려웠을 것 같다. 아들의 한국 친구들은 아직도 격주로 등교 수업을 한다. 이렇게 1년을 보내고 2학년이 되었을 때 다시 변화하는 환경에 아이들이 잘 적응할 수 있을까. 


10월 29일 금요일. 279일째 날. 아이들이 할로윈 코스튬을 입고 학교에 가는 날이다. 아들은 그리핀도르 가운과 넥타이를 하고 등교했다. 초등학교 아이들은 거의 모두가 코스튬을 입었지만 같은 옷이 하나도 없었다. 아이들 뿐 아니라 선생님들도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고 환하게 웃으며 등교 지도를 한다. 일 년 내내 즐거운 일이 끊이지 않는 학교지만 오늘은 아이들에게 정말 특별한 하루가 될 것 같다. 꼭 할로윈이 아니더라도 일 년에 하루 정도는 한국에서도 이런 즐거운 이벤트를 할 수 있다면 좋을 것 같다.

하교를 기다리는 아이들

트레이더 조에서 할로윈 호박을 다시 샀다. 마트에 호박이 다 들어가버린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직 팔고 있었다. 

오후에 모더나 백신 부스터 접종을 받았다. 이전과 달리 UCSD 접종소는 드라이브 스루 형태로 운영하고 있었다. 모더나의 경우 부스터는 절반 용량을 맞는다. 지난 두 번째와 같이 접종 부위에 통증이 생겼다. 지난 번에 다음 날까지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는데, 이번에도 비슷하지 않을까. 

2021년 10월 28일 목요일

연수일기 143. 인플레이션

10월 25일 월요일. 275일째 날. 이곳 생활도 아홉 달이 되어간다. 초기 정착 과정 이후엔 비교적 태평하고 큰 변화 없는 생활을 하고 있다. 그 와중에서 올 여름 이후 일상에서 체감하는 가장 큰 변화는 인플레이션이다. 

인플레이션이 너무 급격해서 조금 과장하자면 상품 가격이 올라가며 내는 바람 소리가 느껴질 정도이다. 숙슉. 정부가 주도하는 양적 완화의 위력을 온몸으로 체감하는 이런 상황은 살면서 처음인 것 같다. 마트의 상품에 붙은 가격표는 지난 주와 이번 주가 다르다. 올해 물가가 얼마나 올랐는지 궁금해 자료를 찾아보았다.

로스앤젤레스 지역의 CPI-U(도시 지역 소비자 물가 지수)를 보면 미국에서 판데믹이 심해진 2020년 봄에 급격하게 떨어진 물가가 1년 동안 낮게 유지되다가 올해 3월 이후 급격하게 올라 여름에는 이전 수준을 회복한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최근에 판데믹 이전 수준을 넘어서 물가가 계속 높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출처: https://www.bls.gov/regions/west/news-release/consumerpriceindex_losangeles.htm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식료품과 기름값을 제외하면 이제 막 판데믹 이전 수준을 회복했을 뿐이지만, 두 가지 항목을 포함시키면 9월의 소비자 물가 지수는 판데믹 이전보다 높다. 식료품과 기름 가격이 올 봄 이후 얼마나 많이 올랐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 이 두 가지 항목의 가격은 미국에서 살면서 가장 많이 접하는 숫자이므로 체감하는 인플레이션은 심할 수밖에 없다. 양적 완화로 인해 풀린 수조 달러의 현금(이 돈은 저소득층에게 더 많이 지급되었다.), 그리고 판데믹으로 인해 줄어든 생산 라인과 공급 라인이 인플레이션의 주된 원인으로 꼽힌다. 이것은 일시적인 환경 변화일 뿐이다. 관련 기사를 참고하면 내년 까진 이런 추세가 이어지고 그 다음엔 경기 하락이 찾아올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주로 이용하는 코스트코 주유소도 올해 초엔 갤런 당 3불 정도였지만 최근엔 4불을 넘어섰다. 원체 캘리포니아가 다른 주에 비해 물가도, 기름 값도 높은 지역이긴 하다. 어느 지역 주유소는 갤런 당 7불이 넘는 믿기 힘든 가격을 내걸었다는데, 그나마 샌디에고 카운티는 양반인가 보다. 우리 가족은 그래도 일 년의 절반 정도는 예년보다 낮은 물가를 체험했으니 다행스럽게 여겨야 할까.


10월 26일 화요일. 276일째 날. Rob이 크루즈 의사로 일하게 되어 당분간 만나지 못하게 되었다. 플로리다 남쪽 바다에 떠있는 크루즈 안에서 내게 소식을 보냈다. 지원을 했을 때는 세부적인 내용은 알지 못했는데, 출발 하루 전날에야 갑자기 알려주어서 짐도 제대로 챙기지 못하고 배에 탔다고 한다. 2주 동안 승객이 없는 배 안에서 자가 격리를 하고, 그 뒤에도 4주의 준비 기간 후에야 승객을 태운 배에서 본격적인 일을 하게 된다고. 

3주 전 만든 호박 랜턴이 썩어버린 뒤로 호박은 할로윈 직전에 다시 사려고 했다. 다른 장식을 사는 것도 차일피일 미루고 있었는데, 오늘 미라 메사에 가서 몇 군데 마트를 돌아보니 이미 할로윈 장식을 다 치웠나 보다. 심지어 달러 트리에선 크리스마스 장식을 팔고 있었다. 급히 집 근처 랄프스를 다시 들러 몇 개 남지 않은 램프를 사왔다. 파티오에 걸어두니 제법 그럴 듯한 장식이 되었다. 바깥에 잔뜩 쌓아두고 팔던 호박은 이제 다 치웠는지 보이질 않아 다른 곳에 다시 들러봐야 할 것 같다. 

TRICK OR TREAT


10월 27일 수요일. 277일째 날. 딸의 초등학교에선 이번 주가 레드 리본 위크이다. 캘리포니아에서 마약상에게 납치, 살해되었던 마약 단속국 직원을 기리기 위해 시작한 행사가 마약을 반대하는 전국 캠페인으로 발전했다고 한다. 매년 10월에 있는 이 주간엔 흡연, 술, 약물과 폭력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열린다. 요일마다 지정한 색깔의 옷을 입기도 하고 특별한 헤어스타일을 하는 날을 정한 학교도 있다고. 

오늘 딸 학교에선 차를 타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등교하는 행사를 한다. 아침에 평소보다 서둘러 집에서 출발해 딸과 학교까지 걸어갔다. 아침 운동은 이걸로 대신.  


2021년 10월 25일 월요일

연수일기 142. 오케스트라 커피 콘서트

10월 21일 목요일. 271일째 날. 어제 FDA에서 모더나와 얀센 백신에 대한 부스터 샷을 응급 승인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백신 간의 교차 접종(mix and match)도 함께 승인했다. 한국에선 일찍부터 아스트라제네카와 화이자 백신 간의 교차 접종을 해왔지만 그 근거가 충분하진 않은 편이었는데, 최근 다른 기전의 백신 간의 교차 접종 효과가 좋다는 연구 결과들도 나오고 있어 다행이다. 뉴스에선 12세 미만 아이들에 대한 접종 승인도 추수감사절 즈음엔 이루어지지 않을까 전망한다. 


10월 22일 금요일. 272일째 날. 아들 학교의 오케스트라 콘서트가 있는 날이다. 커피 콘서트라고 이름을 붙였지만 참여 수업에 가깝다. 부모를 초대해 그동안 아이들이 연습했던 곡을 들려주는 시간이다. 그래서 행사도 정규 수업 시간에 한다. 

방문 시간에 맞춰 학교 오피스에 도착했다. 방문증을 받아 음악실에 가니 아이들이 준비 중이다. 테이블엔 학부모들이 준비한 커피와 쿠키가 가득했다. 선생님의 소개와 인사가 끝나고 간단한 합주가 이루어졌다. 연습 전 스트레칭부터 튜닝에 이어지는 준비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잘 알 수 있었다. 교과목 담당인 존슨 선생님은 민머리에 덩치가 커서 아이들에게 처음엔 좀 무섭게 느껴질 수 있지만 아주 유쾌하고 부드러운 분이다. 집에서 연습할 첼로를 빌려줄 수 있는지 문의했을 때에도 흔쾌히 남는 악기를 가져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셨다.

아이들에게 개별적으로 세세한 기술을 가르치는 보조 선생님도 함께 행사에 참여했다. 음악 선택 수업은 오케스트라, 보컬, 밴드 등의 세부 과목으로 나뉘는데 각 세부 과목마다 존슨 선생님 외에 보조 선생님이 한 분씩 참여한다. 선택 수업에 보조 교사까지 있는 게 놀랍기도 한데, 보조 교사의 인건비는 교육청이 아닌 각 수업의 학부모들 기부금에서 충당한다. 다음 학기까지 예정된 몇 번의 연주회에 드는 비용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안 뿐 아니라 지역 내 초등학교나 공원 등에서도 작은 연주회를 한다고 했다. 가장 큰 행사는 디즈니랜드에서 하는 모금을 겸한 연주회인데, 버스 렌트를 포함한 부대 비용 역시 학부모 담당이다. 올해 초엔 다 준비했던 행사가 판데믹으로 취소되었었다고 한다. 연주회 후 디즈니랜드에서 놀 수도 있어 아이들이 특히 기대하는 행사라는데 얼마나 실망이 컸을지. 내년 3월에 다시 갈 수 있도록 계획 중이지만 우리는 참여할 수 없어 아쉽다.

정식 연주는 초급반과 중급반을 나누어 진행했다. 겨우 네 곡으로 구성된 짧은 콘서트였지만 아이들이 성장한 모습을 보기엔 충분한 시간이었다. 한 곡이 끝날 때마다 부모들은 아낌없는 박수를 쳤다. 아들은 한국에서 개인 교습을 받을 때보다 학교 수업에 참여하면서 더 열심히 첼로 연습을 한다. 가장 좋아하는 수업 중 하나이기도 하다. 학교 수업을 통해 악기를 익히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다른 아이들과 합주를 하는 것은 다른 데서 얻기 어려운 소중한 경험이 될 것 같다. 이 과정을 통해 타인과 어울리고 조화를 이루는 방법과 함께 음을 맞춰 연주를 해냈을 때의 기쁨을 느낄 수 있길 바란다. 

마지막 곡을 앞두고

저녁엔 치킨과 맥주를 사서 S 선생님 집에 갔다. 아파트 앞 몰의 한국 치킨집은 두 번째 이용인데 장사가 잘 되는 것 같다. 매장도 북적거리고 포장을 기다리는 손님도 많았다. 치킨 맛도 좋고 양도 많은 편이라 앞으로도 종종 먹게 될 것 같다.


10월 23일 토요일. 273일째 날. 지난 3주간 주말마다 여행이나 LA 나들이를 다녀온 지라 이번 주말만큼은 집에서 쉬기로 아이들과 약속했다. 오랜만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아이들과 뒹굴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10월 24일 일요일. 274일째 날. 할로윈을 일주일 앞두고 아파트 앞 몰에서 trick or treat 행사를 한다. 형형색색의 코스튬을 입은 꼬마들이 상가 앞을 몰려다녔다. 사탕을 얻으러 다니는 아이들을 직접 본 건 처음이라 신기하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장을 보러 나왔다가 이 광경을 보고 집에 있는 아이들에게 전화해 나오지 않겠느냐 했더니 귀찮다고 단칼에 거절한다. 

UCSD My Chart에서 부스터 접종 예약 알림이 와서 다음 금요일로 예약했다.  

2021년 10월 21일 목요일

연수일기 141. 두 번째 신용카드 도용, 달고나 만들기

10월 18일 월요일. 268일째 날. 오전에 델 마르 브랜치 도서관에 들렀다가 근처 Stratford Court Cafe에서 점심을 먹었다. 델 마르에 산책을 왔을 때 레스토랑 분위기가 좋아보여 한 번 들러보겠다 생각했었다. 베이컨이 든 스크램블은 괜찮았고, 소시지 요리는 별로였다. 날씨가 쌀쌀해 오래 앉아있기 어려웠다. 

새벽에 신용카드 승인 알람을 받았다. 해외에서 승인된 건이라 확인 문자와 메일이 함께 왔다. 확인해보니 네덜란드에 위치한 처음 보는 이름의 회사였다. 내가 사용한 건이 아니라고 확인을 하니 바로 카드가 정지되었다. 두 번째 신용카드 도용인데 지난 번엔 이런 확인 알람이 없었다. 어렵지 않게 처리할 수 있어 다행이지만, 몇 개월 사이에 두 번이나 도용을 당할 정도니 이곳에서 이런 사고가 얼마나 많은지 짐작이 간다. 카드 도용이 빈번하게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미국에 살면서 이곳의 시스템에 좋은 점도 있지만 비효율적이라 느끼는 부분이 많은데, 은행 업무와 관련된 것도 포함된다. 사회 전체로 볼 때 이런 문제에 낭비되는 리소스가 얼마나 많을지 상상이 안된다.


10월 19일 화요일. 269일째 날. 저녁에 아이들과 달고나를 만들었다. 한국에서도 만들어본 적이 있었지만 매끄럽게 만들기는 쉽지 않았다. 국자에 베이킹소다를 넣어 적당하게 부풀리는 것도, 국자와 철판에 엉겨붙지 않게 마무리하는 것도 매번 실패다. 어렸을 때 학교 가는 골목에서 보았던 달고나 아저씨는 젓가락을 몇 번 젓기만 해도 국자 안 설탕물이 금새 부풀어 올랐고, 고운 설탕을 뿌린 철판에 손목 스냅을 이용해 국자를 떨구면 말랑한 상태의 달고나 덩어리가 탁 하고 깨끗하게 떨어졌다. 그 손놀림은 어찌 그렇게 쉬워 보였던 걸까. 그래도 몇 번의 실패 끝에 그럴 듯한 모양의 달고나를 완성했다. 딸은 별모양판을 찍은 달고나를 손에 들고 신이 났다. 

달고나 만들기

10월 20일 수요일. 270일째 날. 아들의 스케이트 보드 수업은 오늘로 여섯 번째이다. 이제 경사진 트랙을 내려오기도 한다. 경사가 조금만 높아져도 넘어지기 일쑤이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농구 실력도 마찬가지이다. 이곳에 처음 왔을 때 딱 맞던 바지는 이제 복숭아뼈가 보일 정도로 짧아져서 조만간 또 옷을 사야할 것 같다. 아들에 비해 더디 자라는 것처럼 보이던 딸도 쌀쌀해진 날씨 때문에 긴팔 셔츠를 오랜만에 입히니 옷이 좀 작게 보인다. 

오랜만에 저녁 수영을 했다. 가을이 되면서 수영장에 사람이 줄어 한적하다. 자쿠지에서 저녁 노을을 보는 것도, 해가 완전히 져 어두워진 밤하늘과 별을 보는 것도 좋다. 딸은 이곳 수영장을 너무나 좋아해 요즘 이틀에 한 번은 수영장에 가자고 하는데 그동안엔 그만큼 따라가 주지 못했다. 딸의 기억 속에 수영장에서 보낸 시간이 많이 남을 것이다. 그 안에 아빠도 자주 등장하길. 앞으론 더 자주 같이 가줘야겠다.

2021년 10월 18일 월요일

연수일기 140. 할리우드, 유니버셜 스튜디오

10월 16일 토요일. 266일째 날. 풀러턴에 살고 계신 지인을 방문했다. 점심을 먹기 전에 근처 공원을 산책했다. 동네가 깨끗하고 살기 편해 보였다. 가까운 써니힐 고등학교가 유명해 한국인에게 인기가 많다고 한다. 직접 차려주신 점심도, 식사 이후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나눈 대화도 반갑고 좋았다. 오랜만에 먹는 정통 한식인데다 음식 솜씨가 좋으셔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아들은 갈비를, 딸은 시래기 나물을 너무 좋아했다. 집을 나설 때는 잡채와 나물을 잔뜩 싸주셨다.  

LA 근처에 와서 그냥 가긴 서운해서 하룻밤을 머물고 내일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가기로 계획했다. 숙소에 가기 전에 할리우드에 들러 워크 오브 페임 거리를 걸었다. LA를 여행 온 많은 이들이 이 거리를 찾는다. 직접 본 거리의 모습은 실망스러웠다. 마리화나 냄새, 그리고 LA 도심 특유의 어수선하고 칙칙한 느낌이 이 거리에도 배어있었다. 아이들도 불편해 했다. 저녁 시간이라 더 그렇게 느꼈을 것 같기도 하다. LA에 올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샌디에고와 LA는 이웃한 도시임에도 너무도 다르다. 한 시간쯤 거리를 구경하고 숙소인 호텔로 일찍 들어갔다. 

할리우드 밤거리


10월 17일 일요일. 267일째 날. 드디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간다.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디즈니랜드에 대해선 수없이 들었지만 놀이기구 타는 걸 그닥 좋아하지 않는 우리 가족에겐 급히 가야할 곳은 아니었다. 재개장을 한 이후에도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이제야 그중 하나를 가보게 되었다. 몇 년 전에 싱가포르 유니버셜 스튜디오에 갔었다. 무더운 날씨 탓에 고생했던 기억이 있다. 오늘은 돌아다니기 딱 좋은 쾌적한 날씨였다. 개장 시간에 맞춰 도착했어도 주차장에 차들이 많다. 시티 워크를 지나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상징인 지구본 구조물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첫 목적지는 역시 해리포터 존. 포비든 저니부터 탑승. 무슨 어트랙션인지 모르고 얼떨결에 탄 딸은 놀이기구가 움직이는 내내 비명을 지르고 눈물까지 찔끔 흘렸다. 그래도 이전에 싱가포르에선 놀이기구 하나를 타고 다른 건 안타겠다고 했는데 이젠 좀 컸는지 그 정도의 반응은 아니다. 호그와트 성과 다이애건 앨리를 돌아보며 금새 기분이 다시 좋아졌다. 올리밴더스 입장을 기다리며 버터 맥주를 마셨다. 올리밴더스 지팡이 가게는 기념품샵임과 동시에 마법사가 지팡이를 골라주는 체험을 할 수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이런 체험을 하고 나면 지팡이를 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상술의 끝판왕) 우리도 헤르미온느 지팡이를 샀다. 인터랙티브 기능이 있는 (비싼) 지팡이로 간단한 주문을 실행해볼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했다. 거리 곳곳에서 호그와트 가운을 입은 아이들이 지팡이를 휘두르고 있었다. 

호그와트 성

해리포터 존에서만 오전이 훌쩍 지나갔다. Lower Lot으로 내려가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점심을 해결하고 트랜스포머와 쥬라기 월드 어트랙션을 탔다. 둘 다 싱가포르 유니버셜과 비슷했다. 딸에게 무서운 놀이기구가 아니라고 안심을 시켰는데, 쥬라기 월드에선 마지막에 경사를 내려올 때 깜짝 놀랐는지 울음을 터뜨렸다. "아빠가 무서운 거 아니라며~ 엉엉~~" 싱가포르에서 미이라 어트랙션을 타고 공포에 떨었던 아들은 그 기억이 아직 생생한지 이번엔 탑승 거부.

오후가 되니 사람들이 더 많아졌다. 다시 Upper Lot으로 돌아와 스튜디오 투어에 입장했다. 버스를 타고 돌며 가이드의 설명을 듣는데, 킹콩, 분노의 질주, 죠스 등의 세트에선 중간중간 체험을 할 수 있어 지루하지 않다. 폭우와 물난리가 나는 영화 장면 체험도 있고 파괴된 여객기를 그대로 재현해 둔 우주 전쟁 세트도 있었다. 생각 이상으로 좋았다. 한 시간이 금새 지나간다. 캘리포니아 유니버셜은 해리포터와 스튜디오 투어가 다 먹여살리는 느낌. 

쿵푸 팬더 극장에서 짧은 4D 영화를 보고 마지막으로 해리포터 존을 다시 돌아보았다. 두 번을 들렀는데도 자세히 보지 못한 가게와 소품들이 많다. 사실 이곳에서만 하루 종일 있어도 모자란 느낌일 것 같다. 아들은 그리핀도르 머플러를 샀다. 할로윈 코스튬으로 미리 사두었던 가운과 함께 걸치면 좋을 것이다. 딸은 마법 지팡이를 몇 번 더 휘둘렀다. 

유니버셜 스튜디오보다 다이애건 앨리를 떠나는 게 아쉬웠다. 이번 주말 아이들의 일기는 당연히 해리포터 이야기.

2021년 10월 16일 토요일

연수일기 139. 부스터샷

10월 15일 금요일. 265일째 날. 샌디에고 카운티는 80%의 완전 접종률을 달성했고, 1회 이상 접종자는 89.2%이다.

  • 완전 접종은 얀센 1회, 화이자나 모더나 2회 접종 후 2주가 지난 경우를 말하고, 80% 수치는 접종 대상 연령(12세 이상) 수를 분모로 한 것.
  • 같은 기준을 적용할 때, 미국 전체는 완전 접종 66%, 부분 접종 77%.
  • 하지만 12세 이상이 아닌, 전체 인구를 기준으로 하면 미국 전체 접종률 수치는 완전 접종 57%, 부분 접종 66%.
이런 수치는 CDC 뿐 아니라 NY times 등의 언론사 페이지에서도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한국의 접종률이 궁금해 질병관리청 홈페이지를 확인해보았다. 질병관리청의 백신 접종 현황 페이지에선 일일 접종자 수(실적)만 알 수 있고, 접종률 수치는 알 수 없다.
우리나라의 총 인구 수와 연령별 인구 수를 알고 있어서 금방 접종률을 계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가장 궁금한 건 오늘 몇 명이 접종을 했느냐가 아니고, 그래서 오늘까지 국민의 몇 퍼센트가 접종을 했느냐이다. 언론 기사에선 접종률 수치를 간간이 확인할 수 있다. 이 수치는 어디서 왔을까? 질병관리청 홈페이지를 뒤지다가 답을 찾았다. 보도자료 메뉴에서 매일 hwp와 pdf 문서로 접종 현황을 보고하고 있었다. 현재 한국의 접종률은 전 인구를 기준으로 완전 접종 61.6%, 부분 접종 78.3%이다. 이 놀라운 수치를 보도자료를 찾아야만 볼 수 있는 게 아쉽다. 다음이나 네이버 등의 포털에서는 접종률을 포함해 좀더 직관적인 수치와 현황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중요한 질병관리청 홈페이지에서 이런 서비스를 해야 하는 것 아닐까.

FDA expert 패널에서는 모더나 백신의 부스터 접종을 만장일치로 찬성하는 의견을 냈다. 조만간 모더나 부스터에 대한 FDA 응급 승인 결정이 날 듯. 나도 미국을 떠나기 전 세 번째 접종을 받게 될 것 같다. 접종 대상은 화이자 백신과 동일하다. 하지만 용량은 절반으로 줄여 승인이 될 예정인데, 만장일치 결정임에도 불구하고 일부 전문가들은 과학적 근거 외에 (부스터를 맞고 있는 화이자 백신 접종자와 비교해) 모더나 백신 접종자에 대한 형평성 문제(?) 등을 고려한 것이라고 한다. 모더나 백신은 FDA에서 제시하는 일반적으로 부스터 샷이 충족해야 할 여러 조건 중 딱 하나만 만족했을 뿐이다.

NY times 기사 링크

화이자 백신에 비해 모더나 백신의 효과가 더 좋고 오래 간다는 점에 대해선 큰 이견이 없는데, 이로 인해 부스터 샷의 필요성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게 된다. A/S가 덜 필요한 좋은 제품을 만들었는데 그로 인해 타 회사의 제품에 비해 매출이 줄어들 만한 상황. 회사 입장에선 부스터 샷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필요 없다고 말하기도 애매할 것 같다.

또 하나의 문제는 부스터 샷의 효과가 얼마나 갈까 하는 점이다. 몇 개월이 될지, 몇 년이 될지. 이에 대해선 아무도 답을 할 수 없다. 한국에서도 백신 접종이 의료진에 대한 부스터샷을 시작했다.

오늘 연구 미팅에선 노스웨스턴 대학 Philip Greenland 교수의 의학 논문 작성법에 대한 발표가 있었다. 그는 JAMA의 senior editor 세 명 중 한 명이다. 내게는 어느 정도 익숙한 내용의 강의였지만 JAMA의 논문 심사 시스템이나 editor로서의 관점을 엿볼 수 있었던 점은 흥미로웠다. 함께 연구 모임에 참여하고 있는 postdoc과 학생들에겐 탑 저널의 에디터를 만날 수 있는 이런 시간이 무척 귀중할 것이다. 판데믹 이후 JAMA의 투고 논문이 50% 늘었다고 한다. 1만4천 건의 투고 원고 중 저널에 실리는 건 4백 편에 불과하니 3퍼센트가 안되는 수치이다. 금요 세미나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이 언젠가 바늘 구멍 통과하기와 같은 이 확률을 뚫는 연구 성과를 낼 수 있기를.

서론을 쓰는 법

딸은 오늘 친구 J와 슬립 오버를 한다. 미국에 와서 처음으로 하는 슬립 오버라 며칠 전부터 기대가 많았다. 사실 지난 달에 약속을 해두었다가 당일 우리가 다른 일로 정신이 없어 잊어버리는 바람에 울고불고 하는 딸을 달래느라 혼이 났었다. 방 안에선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깔깔거리는 웃음 소리가 끊이질 않는다. 지난 몇 달간 아이들은 친구와 노는 시간이 늘 부족했다.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과 이곳에서 경험하는 다른 것들이 조금이나마 부족함을 채워주었기를 바란다. 

2021년 10월 15일 금요일

연수일기 138. 오징어 게임, 할로윈 코스튬

10월 13일 수요일. 263일째 날. 미국에서 느끼는 드라마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꽤나 놀랍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며 로컬 라디오 방송을 듣는다. 아침 시간엔 청취자를 연결해 시시껄렁한 연예 퀴즈를 내고 맞춘 이들에게 상품을 주는 코너가 있다. 브리트니 스피어스가 데뷔한 연도나 저스틴 팀버레이크의 넘버원 히트곡이 실린 앨범 이름 같은 걸 묻는 식이다. 그런데 며칠 전 문제 중 하나가 이랬다.

'최근 핫한 넷플릭스 드라마의 제목이기도 한 한국의 놀이 이름은?'
아내와 매주 채팅을 하는 그룹은 평균 연령 70대 이상의 할머님들이다. 아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나이를 무색케 하는 할머님들의 지식과 활동력에 놀라게 된다. 다들 교육 수준이 높고, 캘리포니아에서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분들이라는 편향이 있긴 하지만. 그동안 화상 채팅을 하다 판데믹 상황이 나아지면서 최근엔 공원에서 직접 만나 모임을 한다. 그런데 오늘은 모임 내내 오징어 게임 이야기를 했다고. 할머님 대부분이 드라마를 보셨단다.

할로윈 파티를 준비하는 고등학교 아이들은 촌스러운 초록색 추리닝과 동그라미 세모 네모가 그려진 마스크와 핑크 유니폼을 코스튬으로 준비하고 있다. 웬만한 상품은 하루이틀 만에 배송이 되는 아마존이지만, 이들 코스튬은 지금 주문해도 2주가 남은 할로윈까지 받아보기 쉽지 않다. BTS가 빌보드 차트를 점령하고 각종 기록을 냈다지만 내가 십대가 아니어선지 이곳에서 BTS의 인기는 실감하기 어렵다. 그런데 오징어 게임의 인기는 연령 불문 진짜인 듯 하다.

딸이 아이스 스케이팅을 시작했다. 서울에선 겨울이면 집 근처 올림픽 공원 스케이트장에서 놀곤 했었다. 샌디에고에서 겨울 스포츠를 하게 될 거란 생각은 안했는데, 친구 J가 아이스 스케이트를 탄다고 하니 예전 생각이 났나보다. 샌디에고에도 아이스 링크가 몇 개 있다. 집에서 가까운 미라 메사의 아이스 아레나에 등록했다. 수업은 주 1회에 겨우 30분으로 짧지만, 수업료가 그리 비싸지 않고 수업 외 시간에도 자유 스케이팅을 할 수 있어서 괜찮은 것 같다. 오랜만에 아이스 스케이트를 탄 딸은 신이 났다. 


10월 14일 목요일. 264일째 날. 아이들 할로윈 코스튬을 샀다. 학교에서는 할로윈 전 금요일에 코스튬을 입고 등교하는 걸 허용하는 대신 나이에 맞지 않는 의상은 피하도록 안내를 해준다. 할로윈 주말에 사탕을 받으러 돌아다닐 때도 코스튬이 필요할 것이다. 

미국엔 코스튬 만을 전문적으로 파는 매장이 많고 샌디에고에도 여러 군데 있었다. 신기하고 재미있는 코스튬이 많았다. 아들은 호그와트의 그리핀도르 가운과 넥타이를 샀다. 딸은 마음에 드는 코스튬이 없다고 한다. 튀기 싫어하는 성격이라 특별한 옷을 입기는 싫다고. 평소와 같은 옷차림은 오히려 어색할 것 같아 오랜 상의 후에 악마 머리띠와 꼬리, 삼지창 정도만 준비하는 걸로 합의를 보았다. 

Plague Doctor

미용실에서 아들 머리를 잘랐다. 삼개월 전과 같은 미용실이다. 아들은 미용실에 도착하기 전부터 이전과 같이 거침없는 바리깡질을 당할까 봐 불안해했다. 다행히 이번엔 사장으로 보이는 남자 미용사 분이 가위를 잡으셨는데 지난 번 미용사보다 솜씨가 훨씬 좋았다. 이번에는 아들도 만족. 

2021년 10월 13일 수요일

연수일기 137. Sam

10월 11일 월요일. 261일째 날. S 선생님, L 선생님 부부와 캐롤라인 카페에서 브런치를 먹었다. 지난 주엔 폭우도 오고 날씨가 구름이 많이 끼고 쌀쌀한 편이었는데 오늘도 바람이 셌다. 캐롤라인 카페의 야외 좌석은 평소에도 바닷 바람이 센 편이다. 바람을 너무 맞아서 아내는 감기 기운이 생겼다. 며칠간 조심해야 할 것 같다. 괜히 열감기라도 생기거나 아이들에게 감기가 옮기라도 하면 또 번거로운 일이 생긴다. 

아들이 부엉이를 조각하던 큰 호박이 썩었다. 어제 호박 안에 곰팡이가 잔뜩 피어 걱정을 했는데 오늘 보니 파내고 남은 호박 살점이 썩어 곤죽이 되었다. 절반쯤 파낸 부엉이가 아까웠지만 어쩔 수 없이 호박은 쓰레기통 행. 나중에 알고 보니 속을 비운 호박에 곰팡이가 슬거나 썩는 일이 아주 흔하다고 한다. 그래서 실제로 할로윈 밤에 쓸 호박 랜턴은 하루이틀 전에 만드는 게 좋다고. 할로윈 전에 다시 만들기로 했다.

딸 학교에서 파는 후드티를 주문했다. 학교 로고와 함께 상징인 말 그림이 프린트 되어 있어 나중에 한국으로 돌아간 뒤에도 추억거리가 되줄 것이다. 


10월 12일 화요일. 262일째 날. Rob과 Sam을 만날 때면 요즘엔 Sam이 다음 번 만날 장소를 정한다. 오늘은 베트남 식당이었다. 연구실과 아주 가까운 곳이라 산책하듯 걸어서 갈 수 있었다. 두 사람은 자전거를 타고 왔다. 

지난 주엔 가기로 했던 베트남 식당이 화요일에 문을 닫아서 근처의 파네라 브레드로 자리를 옮겨 점심을 먹었었다. 자폐 스펙트럼이 있는 Sam이 원하던 식당이 아닌 다른 곳으로 갑자기 옮겨야 하는 상황을 바로 따를지 조금 걱정이 되었는데 문이 닫힌 식당 앞을 잠시 맴돌다가 아버지의 말을 듣고 순순히 차를 탔다. 예전에 장애를 가진 아이들에 대한 미국 교육에 관해 이야기하다 Rob이 말했다. 적절한 교육이 없었다면 Sam이 지금과 같이 살지 못했을 거라고. 기본적인 독립 생활이 가능하고 마트에서 일까지 하고 있는 Sam을 보면 다행이란 생각이 들면서 한편으론 우리 교육 시스템의 부족함이 떠올라 씁쓸한 마음이 든다. 

식사를 마치고 여느 때와 같이 Sam이 다음 주 만날 식당을 정했다. 구글 맵으로 문을 닫지 않는 식당을 확인했다고 한다. 밝게 인사를 한 그가 먼저 떠나는데, 세워둔 자전거를 타려다 옆에 주차된 차 안을 들여다 본 모양이다. 젊은 남자가 화난 표정으로 차에서 내렸다. Rob이 걱정스런 표정으로 운전자에게 다가가 Sam에게 자폐가 있다고 설명했다. 설명을 들은 남자가 이내 굳었던 표정을 풀고 상황을 이해했다는 듯 오히려 사과를 했다. 장소가 서울의 어느 식당이었다면 어땠을까. 혹시라도 왜 문제 있는 아들을 식당에 데리고 왔느냐고 성을 내진 않았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