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일 월요일. 282일째 날. 연구실 출근을 하지 않는 날 아침 운동은 대개 근처 공원을 뛴다. 가끔은 조금 멀리까지 산책을 가기도 하는데, 오늘은 큰길 건너편 동네를 구경했다. 아파트 옆 몰에서 큰길을 건너 솔라나 랜치 초등학교와 공원까진 몇 번 와 보았는데, 공원을 넘어서 가본 적은 처음이었다. 작은 밸리를 넘어 단독 주택 단지가 있다. 안쪽으로 갈 수록 새로 지은 걸로 보이는 집들이 나타났고, 맨 안쪽엔 공사 중인 집들도 많았다. 기존의 주택들과는 달리 좀더 모던한 형식의 건물들로 약간 판교의 주택 단지와 비슷한 느낌도 준다.
주택 단지 건너는 밸리 지역이라 맨 끝에 위치한 집들은 전망이 좋아 보였다. 뒤뜰에서 밸리와 델 마르 컨츄리 클럽이 보인다. 전망이 좋은 집을 선호하는 미국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위치였다. 전체적으로 동네가 깨끗하고 살기 좋아 보였다. 이쪽 단지는 인기가 많아 이미 분양이 끝났고 대기도 있다고 한다. 주택 가격도 꽤 높다고 들었는데 앞으로 더 오를 것이다. 한국인도 많이 구입했다고 들었다. 역시 우리나라 사람들의 부동산 보는 눈은 알아줘야 한다.
11월 2일 화요일. 283일째 날. 구글 캘린더의 미국 기념일 항목에 선거일이라 적혀 있어서 무슨 선거가 있나 했는데, 버지니아와 뉴저지 주 선거였다. 두 곳 다 민주당 강세로 지난 대선 때 바이든에게 훨씬 더 많은 표를 던진 지역이다. 하지만 개표 결과 버지니아는 공화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되었다. 뉴저지도 개표 막판까지 접전이 벌어지다 현 민주당 주지사가 가까스로 재선에 성공했다. 버지니아에서 공화당 후보가 주지사에 당선된 것은 12년 만이라고 한다. 내년 중간 선거의 전초전 역할을 한 이번 선거에서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중간 평가 결과를 확인한 셈인데, 새 정부가 출범한지 겨우 아홉 달 되었지만 민심은 썩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판데믹에 대한 대처와 지지부진한 새 예산안이 민주당 후보들의 발목을 잡았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국민을 만족시킬 수 있는 정부가 얼마나 있을지 싶다. 최근 물가가 많이 오르긴 했어도 지난 1년 동안 미국 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살림살이 어려움이 자영업자가 많은 한국만 했을까. 최근 유권자들은 자신이 속한 계층의 이익에 반하는 선택을 흔히 한다. 빈곤층에 가까움에도 불구하고 사회 안전망을 확대하려는 당을 선택하지 않을 수 있고 그 반대의 경우도 흔히 볼 수 있다. 한국의 경우도 그렇다. 선거를 앞둔 정치인들은 과거보다 훨씬 더 복잡한 셈이 필요할 것이다. 어느 나라든 정치란, 선거란 참 어렵다.
11월 3일 수요일. 284일째 날. 아침엔 안개가 가득 피었다가 정오가 가까워지면서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아졌다. 바닷가 도시라 그런지 아침엔 안개도 종종 끼고 아침엔 구름 낀 흐린 날씨가 잦다. 하지만 오후에는 항상 거짓말처럼 맑아져 파란 하늘을 볼 수 있다. 아내의 오늘 날씨 이야기에 이곳에서 십여 년째 사는 노리 할머니가 대수롭지 않다는 말투로 "That's San Diego."라고 했다고.
안개가 잔뜩 낀 공원 |
한국의 집 전세 계약 만기 문제로 이런저런 준비를 하느라 최근에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오늘 세입자 분이 이사를 나가고 마무리를 다 하고 나니 마음이 편해졌다. 작년에 연수가 미뤄지면서 조금은 갑작스럽게 집을 마련했던 건 연수를 다녀와서 머물 곳이 미리 정해지면 좋겠다는 단순한 생각 때문이었는데, 올해 한국의 아파트 값 상황을 보면 당시 그렇게 결정했던 게 다행스럽게 느껴진다.
아내가 매주 참여하는 영어 채팅에서 얼마 전 한국의 렌트 제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전세에 대해 설명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한다. 전세 제도는 한국 생활에서 외국인이 이해하기 가장 어려운 제도 중 하나일 것이다. 남의 집을 빌려 살았는데 2년 뒤 그 돈을 고스란히 받을 수 있다니. 이런 환상적인 제도가. 공짜로 집을 빌려주는 거 아닌가? 그럼 집 주인에게 돌아가는 이득은 뭔가? 보증금이란 개념을 설명하기도 어려웠지만(외국인의 경우 이 돈을 deposit과 비슷한 개념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다.) 그 돈을 정말로 그대로 돌려주는지를 몇 번씩 되묻는 통에 아내가 진땀을 흘렸다고. 과거의 높은 이자율과 부동산 가격의 상승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제도이지만,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없는 외국인들 눈엔 비상식적인 계약으로 보이는 게 당연하다.
아이들 옷을 사러 라호야에 갔다가 BJ's Restaurant & Brewhouse에서 저녁을 먹었다. 캘리포니아에선 괜찮은 브루어리 겸 식당 체인으로 알려져 있다. 분위기는 딱 미국 펍이고 맥주는 평범. 스테이크는 괜찮았지만 잠발라야는 너무 자극적이고 짰다. 사람들이 많이 먹는 딥디쉬피자도 괜찮아 보였지만 그럴 먹기 위해 굳이 다시 오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