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영양제, 정말 먹어도 될까?] 의사가 알려주는 12가지 장기별 건강기능식품 가이드 ④ 장
유산균, 과연 누구에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까?
곧 가정의 달 5월입니다. 소중한 이들을 위한 선물 꾸러미 속에 빠지지 않는 단골 손님이 있습니다. 바로 유산균입니다. 홍삼에 이어 건강기능식품 시장 점유율 2위를 차지할 만큼 우리에게 친숙한 이 영양제는 면역력 강화부터 배변 활동 개선, 심지어 다이어트와 피부 관리까지 책임지는 만능 해결사로 대접받곤 합니다. 해외 수입 원료를 쓴 프리미엄 제품부터 수백억 마리의 균이 들어있다는 제품까지. 대한민국 국민 중에 집 냉장고 한 켠에 유산균 제품 하나쯤 없는 분이 얼마나 될까 싶습니다.
유산균, 또는 프로바이오틱스(probiotics)는 ‘적당한 양을 섭취했을 때 숙주에게 건강상의 이익을 주는 살아있는 미생물'입니다(WHO 정의). 하지만 우리가 선물 상자에 담아 보낸 그 막연한 믿음 중에 의학적으로 확실한 근거 위에 서 있는 것은 얼마나 될까요?
근거 있는 곳과 없는 곳: 유산균 효능의 경계선
의학계에서 프로바이오틱스의 효능을 인정하는 영역은 생각보다 구체적이고 한정적입니다. 수많은 임상시험을 분석한 연구들을 종합하면 그 경계가 명확해집니다.
가장 많은 근거가 쌓인 분야는 ‘항생제 연관 설사(Antibiotic-Associated Diarrhea)’ 예방입니다. 항생제는 병원균만 골라 죽이지 않고 장 속의 이로운 균까지 광범위하게 교란해 설사와 같은 부작용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많은 연구 결과 유산균을 항생제와 함께 복용했을 때 설사 발생 위험이 약 30~50% 낮아진다고 합니다. 그나마 믿을 만한 근거가 있는 영역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과민성장증후군에서도 일부 증상 개선 효과가 보고되기는 합니다. 복통, 복부 팽만감 등이 다소 줄어든다는 연구들이 있어 시험 삼아 복용해볼 수 있는 여지를 줍니다. 그러나 연구마다 결과가 들쭉날쭉하고 전반적인 근거의 질이 낮습니다. 주요 소화기학회들이 여전히 과민성장증후군에 유산균 복용을 공식적으로 권고하지 않는 이유입니다. 이전에 소개해드린 관절 영양제의 근거와 비슷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효과가 없다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확신할 만큼 근거가 탄탄하지도 않다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이미 장내 환경이 건강한 성인에게는 유산균이 장에 정착조차 하지 못한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튼튼하게 자리 잡은 장내 '원주민' 균들이 외부에서 들어온 소수의 '외래종'에게 쉽사리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이 경우 유산균은 장에 뿌리내리지 못한 채 배출되는, 이른바 '비싼 변'에 불과하게 될 수 있습니다. 한편으로 많은 이들이 기대하는 '건강한 성인의 면역력 증진'이나 '체중 감량' 등의 효과는 근거가 매우 빈약합니다.
유산균에도 이름이 있다: 균주 특이성의 함정
유산균 이야기에서 빠뜨릴 수 없는 개념이 있습니다. 바로 '균주 특이성(Strain Specificity)'입니다.
'유산균'이라는 말은 수천 종의 서로 다른 미생물을 통칭하는 개념입니다.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 비피도박테리움(Bifidobacterium) 등 종류가 다를 뿐 아니라, 같은 종 안에서도 균주에 따라 효능이 다릅니다. 항생제 연관 설사를 예방하는 데 효과적인 균주가 과민성장증후군에도 통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뜻입니다. 비유하자면, 독감 백신과 파상풍 백신이 모두 '백신'이라고 불리지만 서로 전혀 다른 질병을 표적으로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의학적 근거는 '유산균 일반'이 아니라 특정 균주에 대해 특정 질환에서 쌓인 것입니다.(식약처 홈페이지에서 기능성을 인정받은 19종의 균주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유산균 광고나 관련 영상에서 균주명 확인을 강조하는 배경엔 이런 이유가 있습니다.
하지만 막상 균주명이 표시되어 있어도 그 균주의 개별 효능을 일반 소비자가 파악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습니다. 그런데 시중의 많은 제품은 여러 종을 섞어 넣는 방식을 택하면서 정작 각 균주의 구체적인 근거는 알려주지 않습니다. 소비자가 고르는 것은 결국 '브랜드'와 '마리 수'이지, '어떤 균이 내 증상에 맞는가'가 아닌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제품 광고에서 흔히 강조하는 '100억 마리 보장'이라는 숫자에도 함정이 있습니다. 숫자가 많다고 해서 반드시 그에 비례해 효과가 커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식약처 기준으로 생균 1억마리 이상이라면 기능성을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현명한 선택을 위하여
그렇다면 현명한 선택은 무엇일까요? 유산균이 도움이 될 수 있는 상황은 있습니다. 과거 항생제 부작용을 경험했는데 다시 항생제를 복용하게 되었을 때, 혹은 과민성장증후군으로 배가 자주 불편한 분이라면 시험 삼아 복용해볼 수 있습니다. 단, 증상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굳이 계속 복용할 이유는 없습니다. 특별한 증상도 없이 막연하게 '장 건강이나 면역력에 좋겠지'라는 기대로 고가의 유산균을 꾸준히 구매하는 것은 근거보다 마케팅을 믿는 일에 가깝습니다.
외부에서 유산균을 넣어주는 것보다 더 효율적이고 확실한 방법은, 이미 내 몸 안에 있는 유익균이 잘 자라도록 돕는 것입니다. 식이섬유가 풍부한 채소와 통곡물, 규칙적인 식사, 그리고 충분한 수면이 그 역할을 합니다. 장내 미생물 생태계는 수십 년에 걸친 식습관과 생활환경이 켜켜이 쌓여 만들어진 정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유산균 캡슐은 잘 정돈된 정원에 뿌리는 씨앗 한 줌과 같습니다. 토양(식이섬유)이 충분하고 햇빛(규칙적인 생활)과 물(수면, 스트레스 관리)이 갖춰진 정원이라면 씨앗이 잘 자랄 수 있지만 메마른 땅이라면 아무리 씨앗을 뿌려봤자 살아남기 어려울 것입니다. 장 건강의 토대는 결국 식탁 위에서, 그리고 생활 속에서 만들어집니다.
(참고문헌)
Goodman 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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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품의약품안전처. 건강기능식품 기능성 원료: 프로바이오틱스.
(그림 Gemi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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