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10월 4일 월요일

연수일기 133. 주말 여행: 라스베가스, 그랜드 캐년 웨스트림

10월 1일 금요일. 251일째 날. 장인 장모님을 모시고 라스베가스에 짧은 주말 여행을 다녀오기로 했다. 아이들 학교가 끝나자마자 출발을 해도 오후 3시이다. 금요일 오후에 정체가 있다는 말은 들었지만 그래도 9시 전에는 도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미국 도로에서 만나본 것 중 최고의 정체를 만날 줄은 몰랐다. 테메큘라에서 바스토우까지의 도로는 내내 막혔다 풀렸다를 반복했다.

저녁을 먹기로 한 바스토우의 인앤아웃에 도착했을 때 이미 일곱 시가 지난 시간이었다. 주유를 하고 인앤아웃에 잠깐 들른 것 말고는 줄곧 운전을 했지만 결국 밤 열 시가 넘어 라스베가스 메인 스트립에 도착했다. 짐을 풀고 매점에 다녀오는 길에 잠깐 카지노를 구경하는 걸로 오늘 일정은 마무리. 


10월 2일 토요일. 252일째 날. 한식당에서 곰탕으로 아침을 먹고 가까운 판다 익스프레스에서 점심 먹거리를 산 뒤 그랜드 캐년 웨스트 림으로 향했다. 라스베가스에서 웨스트 림까지는 두시간 반이 걸린다. 

두 분이 머무시는 동안 일정을 어떻게 구성할까에 대해 아내와 상의를 많이 했다. 미국 서부는 처음이시니 세도나를 거쳐 그랜드 캐년에 가시면 좋겠다 싶었는데, 주말 동안 우리가 모시고 가긴 힘들 것 같아 가이드 투어를 우선 알아보았다. 그런데 다리가 불편하신 장모님이 오랜 시간 차를 타시긴 어려울 것 같았다. 국내선 비행기를 타는 것도 부담스러워 하시는 것 같아 결국 그랜드 캐년 대신 가까운 데스 밸리와 조슈아 트리 가이드 투어를 가시는 걸로 계획했다. 대신 주말엔 우리가 모시고 라스베가스 정도는 다녀올 수 있을 것 같았다. 라스베가스에서 토요일 낮에 뭘 할까 생각하다 그랜드 캐년 웨스트 림에 대해 알게 되었다. 사우스 림보다는 못하지만 캐년의 분위기를 느끼기엔 괜찮을 것 같았다. 애초에 가보려 했던 후버댐도 돌아오는 길에 들를 수 있다. 

정오가 지나 웨스트 림 입구에 도착했다. 웨스트 림은 국립 공원이 아닌 인디언 자치구에 포함되어 국립 공원 애뉴얼 패스를 사용할 수 없다. 딱 두 개인 뷰포인트에 일인 당 45불의 입장료는 좀 과하다 싶다. 게다가 바닥이 투명한 전망대인 스카이 워크는 입장료를 따로 받는다. 웹페이지에선 스카이 워크나 집라인 등을 패키지로 묶은 티켓을 우선 보여주고 일반 입장 티켓은 찾기 어렵게 해두었다. 너무 장삿속이 보이는 것 같지만 웨스트 림에 살고 있는 인디언들의 생계에 관광 수입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걸 생각하면 이해해 주어야 할 것 같다. 

그랜드 캐년의 3분의 1 이상 면적이 후알라파이 인디언 자치 구역이다. 스카이 워크로 유명해지기 전까진 방문객 수가 사우스 림의 10%도 안되었다고 한다. 스카이 워크가 처음 생길 때 환경 훼손에 대한 우려의 시선이 많았다는데, 사우스 림이었다면 절대 만들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그랜드 캐년의 분위기와 썩 어울리지 않는 스카이 워크가 이곳 인디언들에겐 생계를 책임지는 명물이 된 것이다. 이날 우린 스카이 워크엔 올라가지 않았다. 멀리서 본 스카이 워크는 좀 서글퍼 보였다.

웨스트 림 안에선 개인 차량을 이용할 수 없고, 뷰포인트를 순환하는 셔틀 버스를 타야 한다. 이글 포인트와 구아노 포인트를 차례로 보았다. 사우스 림과 비교하면 산책로나 편의 시설도 부족하고 황량한 느낌이지만, 끝없이 펼쳐진 장대한 캐년의 모습은 다르지 않았다. 그랜드 캐년을 처음 보는 장인께서는 감탄을 연발하신다. 이 풍경 만으로 두시간 반을 달려온 게 아깝지 않게 느껴졌다. 

구아노 포인트에서 보는 전경

피크닉 테이블에서 점심을 먹고 다시 차에 올랐다. 돌아가는 길에 후버 댐을 잠시 구경했다. 숙소인 미라지 호텔에 도착해 주차를 하고 쇼를 보기 위해 트레저 아일랜드 호텔로 이동했다. 한동안 문을 닫았던 공연장 중 상당 수가 다시 쇼를 시작했다. 오늘 예약한 쇼는 태양의 서커스 'Mystere'이다. 몇 년 전 라스베가스에 왔을 때 KA 쇼와 비틀즈 Love를 보았었는데 모두 볼 만했다. 최근 미국에선 중단했던 공연과 콘서트 등을 다시 시작하는 도시가 많다. 뉴욕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극장도 개장을 했는데, 입장하기 위해선 백신 접종 증명서나 검사 음성 증명서를 보여주어야 한다. 하지만 라스베가스 쇼엔 그런 조건이 없었다. 공연장 좌석은 거의 가득 찼고, 마스크를 벗고 팝콘을 먹는 사람들도 많았다.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도 꽤 있을 것이다. 공연 내내 마스크를 절대 벗으면 안될 것 같았다. 무대 위의 단원들도 모두 마스크를 쓴 채 공연을 했다. 관객들은 한동안 중단했던 공연을 다시 볼 수 있다는 기쁨에 들떠 보였지만 화려한 쇼를 보면서도 마음이 썩 편하진 않았다. 

쇼가 끝나고 돌아오는 길엔 대마초 냄새가 가득하다. 호텔에 들어가기 전에 미라지의 화산쇼를 구경했다. 라스베가스에 이전에 두 번을 왔어도 화산쇼를 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쇼라고 하기엔 민망할 정도로 짧았지만 아이들은 즐겁게 보았다. 


10월 3일 일요일. 253일째 날. 한식당에서 아침을 먹고 메인 스트립 근처의 CVS에 들러 예약한 딸의 covid-19 검사를 시행했다. 다음 주에 예약한 콘서트 때문에 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 후 M&M 스토어에 들렀다. 지난 번 라스베가스에 왔을 때 딸이 이곳에 가고싶어 했는데 시간이 부족해 들르지 못했고, 이번에는 꼭 가기로 약속을 했었다. 딸은 노란 쿠션과 초콜릿 캐릭터가 그려진 노트를 골랐다. 

돌아올 때는 부모님께서 황량한 사막의 풍경을 느껴보실 수 있도록 모하비 사막을 가로지르는 길을 선택했다. CF에 등장할만한 풍경의 연속이었다. 막상 장인어른께선 휴대전화도 터지지 않고 인적도 드문 도로에서 자동차가 고장나거나 기름이 떨어지지 않을까 걱정하느라 풍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셨지만. 장인어른은 사막을 벗어나 주유소가 보인 뒤에야 마음을 놓으셨다. 미국 횡단 도로인 66번 도로에 있는 이 오래된 모텔 주유소는 지난 번 그랜드 서클 여행 때 들렀던 곳으로 위키피디아에도 올라간 유서 깊은 곳이다. 그땐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먼지를 뒤집어쓴 주유 미터기가 작동을 할 거라곤 생각 못했는데, 실제 주유를 할 수 있는 기계였다. 직원이 직접 계기판을 손으로 돌려 금액을 맞추고 주유를 하는 방식이었다. 결국 미국에서 처음으로 셀프가 아닌 주유소를 경험했다. 주유를 하는 동안 장인어른께선 66번 도로 기념품을 사셨다. 

골동품 수준의 주유기

팜스프링스 풍력 발전 지대를 지나쳐 데저트힐 아울렛을 들렀다가 집에 도착하니 여덟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빡빡한 일정에다 사흘 동안 내내 운전을 하느라 몸은 피곤했지만 미국 서부를 처음 보신 부모님께서 즐거워하셔서 흡족했다. 

2021년 10월 1일 금요일

연수일기 132. 장인 장모님의 방문

9월 28일 화요일. 248일째 날. 아침에 아이들 도시락을 준비했다. 한국에서도 이곳에서도 요리는 대부분 아내의 몫이다. 한국에서보다 집밥을 더 많이 먹으니 식사 준비에도 더 많은 시간을 써야 한다. 나도 시간 여유가 더 있으니 진즉 함께 했어야 하는데 그러질 못했다. 이번 주부터는 나도 일주일에 하루 아침과 도시락 준비를 하기로 했다. 

오늘 도시락 메뉴는 스팸무스비. 내가 만들었던 몇 안되는 음식 중 아이들이 제일 좋아하는 메뉴이다. 평소보다 일찍 일어나서 나름 부지런히 준비했지만 아이들 등교 시간에 겨우 맞출 수 있었다. 매일 아침마다 아이들 도시락을 챙겨 온 아내에게 새삼 감사할 따름이다. 

저녁은 아파트 앞 몰의 Flora에서 먹었다. 이곳도 이번 주엔 레스토랑 위크 저녁 코스 메뉴를 제공한다. 프리 픽스 메뉴와 함께 피자와 파스타도 주문했다. 그동안의 경험으론 근처 상가의 레스토랑 중엔 가장 나은 것 같다. 오늘 메뉴도 맛이 괜찮았다. 


9월 29일 수요일. 249일째 날. 장인 장모님이 오시는 날이다. 딸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LA 공항에 마중을 나갔다. 항공편이 예정된 시간보다 일찍 착륙을 해 늦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다행히 두 분이 게이트에서 나오기 오 분 전에 도착할 수 있었다. 판데믹 상황 때문에 처제들과 다른 가족들이 함께 오지 못해 아쉽지만, 두 분이라도 오실 수 있어 감사하고 반갑다. 

오랜만에 직접 아이들 얼굴을 보고 즐거워하는 두 분을 보니 나도 마음이 좋았다. 아파트도 구경하고, 아들이 스케이트 보드 수업을 받는 모습도 보고 공원도 구경했다.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우리를 미국에 보내고 매일 얼마나 걱정을 하셨을까. 그래도 직접 와서 사는 모습을 보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시는 눈치이다. 


9월 30일 목요일. 250일째 날. 오늘 점심은 델 마르 비치의 Jake's Del Mar 레스토랑을 예약했다. 델 마르 해변의 전망 좋은 식당으로 인기가 많다. 아들의 졸업식 때 왔던 이후로 두 번째이다. 메뉴는 역시 레스토랑 위크 코스. 샐러드와 샌드위치 등의 비교적 간단한 코스 메뉴가 20불이었다. 행사 메뉴 네 가지를 모두 하나씩 시켰는데 다 맛있고 양도 적당했다. 식사 후 장인 장모님과 델 마르 해변을 구경했다. 

오후엔 한인 마트를 구경시켜 드릴 겸 H 마트에서 함께 장을 봤다. 연어 회와 초밥용 장어, 타마고를 사서 집에서 초밥을 만들었다. 이전에도 처가에 가면 종종 해먹던 방식이다. 회나 초밥은 너무 비싸서 한국에서만큼 자주 사 먹기가 부담스러운데, H 마트의 회 코너가 그런 아쉬움을 채워주곤 한다. 미소 된장국과 장모님이 가져오신 김치, 그리고 소주를 곁들이니 한국에서 먹던 것과 다르지 않은 그득한 한상이 되었다. 

근사한 저녁상

2021년 9월 28일 화요일

연수일기 131. 다시 임페리얼 비치

9월 25일 토요일. 245일째 날. 임페리얼 비치 피어에 낚시를 다녀왔다. 이번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출발 전에 채비를 단단히 했다. 바늘도 두 개씩 달았다. 

여름 캠프 때 일주일 간 매일 왔던 임페리얼 비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Trident coffee에서 콜드브루 커피를 사서 해변으로 이동했다. 다운타운이나 카운티 북쪽의 해변에 비해 역시 한적하다. 마이크 헤세 브루어리에서 타코와 맥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임페리얼 비치에서 식사를 하기엔 가장 좋은 곳이다. 타코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식사 후 피어로 자리를 옮겨 낚싯대를 드리웠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셌지만 낚시를 하는 사람은 꽤 많았다. 아이들의 두꺼운 후드도 챙겨왔지만 체감 기온이 쌀쌀했다.

오늘 점심은 다양한 타코

오늘도 조황이 좋지 않아 아들이 실망. 해초가 자주 걸려 애를 먹었고, 바닥에 바늘과 줄이 엉켜서 싱커 하나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주변에선 간간이 물고기가 걸려 올라오는데 우리 낚싯대엔 입질이 없는 게 아무래도 이전에 쓰고 얼려두었던 오징어 미끼가 시원찮은 것 같다. 다음번 낚시를 올 때는 미끼를 새로 사기로 했다. 


9월 26일 일요일. 246일째 날. 아이들도 나도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딸은 여느 일요일처럼 오전에 스플래시 수업을 다녀왔다. 아홉 살까지는 연습과 놀이가 섞인 스플래시 수업을 하지만, 열 살부터는 좀더 힘든 정식 워터 폴로 수업을 받는다. 스플래시 수업을 받는 아이들 중 기본 수영 실력이 갖춰진 경우 예비 열 살 반으로 옮겨 주중에 두 번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알림을 얼마 전 받았는데, 딸은 그냥 스플래시 반에 남아있기로 했다. 남은 기간 동안 굳이 무리해 수업을 받을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9월 27일 월요일. 247일째 날. C 선생님, L 선생님과 점심을 먹었다. 두 분 선생님은 올 1월 같은 시기에 입국해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올 여름에는 많은 의사 가족들이 들어왔지만 지난 겨울에는 서너 가족이 전부였다. 어려운 시기를 지내온 터라 두 선생님을 만날 때는 약간의 전우애와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시그니처 아파트 앞 몰의 케밥 식당에서 레스토랑 위크 메뉴를 먹었다. 이번 주는 샌디에고 레스토랑 위크이다. 올해는 두 번째인데, 행사에 참여하는 레스토랑에서 프리 픽스된 메뉴를 할인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평소보다 부담 없이 외식을 할 수 있으니 이번 주엔 다른 식당도 이용해 볼 생각이다. 


2021년 9월 25일 토요일

연수일기 130. 대면 수업이 시작된 캠퍼스

9월 22일 수요일. 242일째 날. 미국에 살면서 자주 하는 일 중 하나는 마트에 가는 것이다. 처음엔 종류가 다른 마트를 구경하는 게 재밌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한국과 달리 온라인 장보기와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어려우므로 무언가 필요한 게 있다면 차를 몰고 직접 가야 한다. 마트마다 특성이 달라서 한 곳에서 모든 걸 사기 어렵고 결국 또 여러 곳을 방문해야 하는 것도 힘든 점이다. 고기와 생수는 코스트코, 과일과 채소는 트레이더 조, 잡화는 랄프스, 이런 식이다. 한인 마트도 정기적으로 가야 한다. 대부분 차를 타고 가야 하므로 가까운 거리라 해도 장을 보고 오면 두어 시간이 훌쩍 간다. 이곳에서 오래 사는 사람들의 마트에서 장을 보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는 푸념 아닌 푸념도 이해가 되었다. 

그나마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몰에 트레이더 조가 있는 트세권인 게 다행이다. 트레이더 조는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마트이기도 하다. 물건의 품질이 좋고 맛있다. 가격도 나쁘지 않다. 아내는 한국에 돌아가면 트레이더 조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한다. 언젠가 캘리포니아에서 경험한 마트에 대해선 따로 정리를 해보려 한다.

오늘은 메이플 버터, 펌프킨 스프레드를 여러 개 사왔다. 가을 이 시기에만 나오는 시즌 상품으로, 다른 곳에선 팔지 않고 맛도 있어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용기가 귀여워서 한국에 돌아갈 때 선물용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가격도 싸서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9월 23일 목요일. 243일째 날. 연구실에 갔다가 오랜만에 UCSD 캠퍼스에 들렀다. 전면 대면 수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이전보다 훨씬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이젤 도서관 앞 길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동아리와 종교 모임을 홍보하는 부스도 늘어서 있었다. 서점과 타겟 입구에는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섰다. 학생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평소 학기 중엔 늘 이런 분위기였을텐데. 역시 학교엔 학생들이 있어야 한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져 의대 건물 쪽으로 돌아서 산책을 했다. 



9월 24일 금요일. 244일째 날. 아내의 생일이다. 아이들과 미리 카드와 선물을 준비했다. 홀푸드 마켓에서 산 작은 케잌에 초를 꽂고, 아들이 생일 축하 음악을 첼로로 연주했다. 가족 모두가 이곳에서 생일을 한 번씩 지내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도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2021년 9월 22일 수요일

연수일기 129. 델 마르 산책

9월 20일 월요일. 240일째 날. 오전에 Del Mar 델 마르에 나들이를 갔다. 솔라나 비치의 Lofty coffee에서 간단한 아침과 함께 커피를 마신 뒤 델 마르로 돌아와 브랜치 도서관 앞에 차를 세웠다. 이 브랜치 도서관은 지금까지 가 본 카운티 내의 도서관 중 가장 규모가 작지만, 귀엽고 예쁜 도서관이다. 건물의 외관은 공공 시설보다는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데, 목재 표면이 그대로 드러난 천장과 기둥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실내 한쪽엔 서재를 연상케 하는 작은 공간도 있다. 이곳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잠시 책을 읽었다. 

도서관 안의 작은 서재

도서관을 나와 해변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면 Seagrove 시그로브 공원을 만난다.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침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잔디에서 요가를 하는 이들도 있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이들도 있다. 델 마르는 관광지 느낌이 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동네이다. 시그로브 공원은 샌디에고에선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가 아닐까. 델 마르 쇼핑 센터의 3층 데크에 올라가니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 시간 전에 커피를 마셨지만, 하늘과 전망이 너무 좋아 그냥 내려가기 아쉬워 커피 한 잔을 또 시켜 테이블에 앉았다. 

데크에서 보이는 바다

한국은 오늘 시간이 추석이다. 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했다. 지난 설에 이어 명절에 직접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내년 설 연휴에 귀국을 할 예정이니 그땐 세배를 드릴 수 있겠지.


9월 21일 화요일. 241일째 날. Rob에게 내가 쓴 책을 선물했다. 삽화가 있는 몇 개의 에피소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한국어 책이라 바로 읽을 수는 없겠지만, 한국어를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읽어보겠다고 한다. 

저녁엔 한국의 지인들과 랜선 모임을 했다. 정신과인 S 선생님과 Y 선생님은 부부로,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살아서 한 달에 한두 번 씩은 가족 모임을 했었다. 아내와 함께 볼 수 있는 가장 편한 이들이고, 이곳에 살면서 제일 그리운 가족 중 하나이다. 온라인으로나마 얼굴을 볼 수 있어 반갑고 좋았다. 

2021년 9월 20일 월요일

연수일기 128. 은사님의 방문

9월 17일 금요일. 237일째 날.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며 내일 구울 바베큐용 고기와 맥주도 샀다. 한국은 내일부터 추석 연휴이다. 명절 상여금 입금 문자를 받고 연휴 전날임을 알았다. 이전부터 월급날엔 종종 아이들과 외식을 하곤 했다. 한국에서보다 적은 금액이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도 급여를 받을 수 있음이 새삼 고마운 오늘이다. 

산불로 세콰이어의 나무들이 불에 탈 위험에 처했다는 뉴스를 어제 들었는데, 오늘 뉴스에선 가장 오래된 나무인 제너럴 셔먼 트리가 불에 타지 않도록 기둥에 알루미늄 호일을 감았다고 한다. 이천 년을 넘게 사는 동안 갖가지 일을 겪어왔을 나무가 설마 산불에 쓰러질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들지만, 오죽 산불이 심하면 이렇게까지 할까 싶기도 하다. 

FDA 자문 위원회에서 화이자 백신의 일반 성인 부스터 접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근거가 나오기 전까지 부스터 접종은 65세 이상과 고위험군에 대한 것으로 한정될 듯 하다. 

사진 출처: BBC News


9월 18일 토요일. 238일째 날. 미국 출장 중인 C 교수님이 어제 샌디에고에 오셨다. 전공의 때부터 모셨던 은사이자 멘토이시다. 보스턴에서 예정되었던 공식 일정이 끝나고 여유가 생겨 샌디에고에서 며칠 머물기로 하셨다고. 샌디에고에서 볼 만한 곳들을 미리 추천해 드렸고, 오늘 하루는 교수님 내외를 모시고 안내를 해드리기로 했다. 

어젠 다운타운 주변과 라호야 코브, 카브릴로 국가 기념물과 선셋 클리프스를 보셨다고 한다. 오늘 아침엔 숙소에서 멀지 않은 코로나도 섬에 들렀다 집으로 오시기로. 얼마 전 갔었던 샌디에고 미션을 함께 둘러보고 점심을 먹으러 Caroline's seaside cafe에 갔다. UCSD 학생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고, 주말 점심 시간이라 더 사람이 많았다. 오랜만에 뵙는지라 그간의 소식을 나누고 미국 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 드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간다. 주문한 음식 일부가 누락되어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리는 바람에 늦게 나온 음식 값을 환불해주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 그래도 분위기와 뷰가 좋아 두 분 다 즐거워하셨다.

라떼를 좋아하는 사모님을 위해 로컬 카페에 들렀다가 솔라나 비치에서 함께 해변을 걸었다. 샌디에고에 처음인 사모님께선 미국 동부와는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인상적이라며 감탄하신다. 앤시니터스 바닷가 도서관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주말엔 문을 닫아 갈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일 산책하는 공원도 잠깐 구경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아파트 바베큐장에 자리를 잡았다. 같은 의국 출신인 H 선생님 가족도 함께 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도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다. 


9월 19일 일요일. 239일째 날. 새로운 스파이더 맨 영화 예고편을 본 아들이 며칠 전부터 스파이더 맨을 다시 보고싶다 노래를 불러 지난 주말 홈 커밍에 이어 파 프롬 홈을 보았다. 아들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사실 내가 더 푹 빠져 보았다. 마블 영화 시리즈는 몇 번을 봐도 재미있다. 스파이더 맨은 아이언 맨과 더불어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라, 12월에 개봉할 새 영화가 정말 기대된다. 

의국 동기인 S 선생이 C 교수님께 저녁을 대접하기로 해 우리도 합류했다. C 교수님은 오늘 발보아 파크를 구경하고 토리 파인즈 트레일을 걸으셨다고. 하루 종일 걸어 녹초가 되어 나타나셨지만 맛있는 저녁과 와인 덕에 금새 기운을 차리신 듯 했다. 지난 번 방문 때 언니들과 금새 친해진 딸은 며칠 전부터 다시 만나는 걸 기대했는데, 오늘도 언니들 옆에 딱 붙어 있다. 함께 상가에 아이스크림도 사러 다녀왔다.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연수일기 127. Thrifty store

9월 14일 화요일. 234일째 날. 오늘도 Rob과의 만남 장소는 멕시코 음식점이었다. 그는 이 식당을 참 좋아하나 보다. 지난 번 점심을 먹을 때 중고 물품을 파는 Thrift store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식사 후에 같이 구경을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한국에선 중고나라나 당근 마켓 같은 일대일 교환 플랫폼을 통해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미국에선 오프라인 스토어를 더 흔하게 이용하는 듯 하다. 그를 따라 간 곳은 가까운 Goodwill store였다. 한국에서 Goodwill에 헌 옷을 종종 기부했었지만 직접 방문한 건 처음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구글 맵을 검색하니 이런 thrifty store가 이곳 말고도 여러 군데 있었는데, 기부를 통해 유통되는 중고 물품 시장 규모도 꽤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 주방 용품, 가구 등 다양한 물품이 있었지만 역시 옷이 가장 많았다. 옷의 가격은 바지, 상의, 재킷 등 종류 별로 대부분 동일하다. 청바지와 양복 바지와 면 바지의 가격이 같고, 바람막이 점퍼와 골프 재킷과 수트 재킷의 가격 역시 같다. 재킷 코너를 살피던 Rob이 재밌는 게 있다고 나를 부른다. 한눈에도 싸구려로 보이는 폴리에스터 자켓과 백퍼센트 울 맞춤 수트 자켓을 들고 가격표를 보여주었다. 역시 같은 가격이다. 부지런을 떨면 좋은 질의 옷을 말도 안되는 가격에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ob이 입는 모든 옷은 thrifty store에서 산다고 했다. 태국에 아이들을 위한 장학 재단을 만들어 매년 큰 돈을 기부하는(얼마 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은퇴한 마취과 의사 치고는 참으로 검소한 분이다. 이 나라엔 그와 같이 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 상위층에 속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겉모습에 신경쓰지 않는 이들이 많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굿윌 스토어

저녁에 공원을 산책하다 체육관 건물에 차려진 투표소를 발견했다. 오늘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Recall 투표 날이다. 자원봉사자가 우리에게도 투표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우린 권한이 없다. '주민 소환 투표'로 번역할 수 있는 recall은 의회에서 투표를 하는 탄핵과 달리 주민 투표로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이다. 리콜 제도가 있는 주는 스무 개이지만 주지사에 대해 실제 투표가 이루어진 건 이번을 포함해 네 번에 불과하다고 한다. 네 번 중 두 번이 캘리포니아이고, 이전의 캘리포니아 리콜이 유일하게 주지사 해임을 이끌어냈다니 제도가 있다고 손바닥 뒤집듯 해임이 이루어지진 않을 듯 하다. 

투표소 입구


9월 15일 수요일. 235일째 날. 아내가 참여 중인 UCSD 수요 커피 모임에서 오늘 드디어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했다. 장소는 UCSD 근처의 도일 커뮤니티 공원이었다. 그동안의 온라인 미팅 때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한다. 그동안 온라인이라도 모임을 할 수 있어 좋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라도 대면 모임이 가능해져 다행이다. 모임을 주도하는 할머님들께 빵과 뜨개질 세트 등 선물을 잔뜩 받아 왔다. 오랫동안 모니터로만 보던 이들을 만나니 마치 TV에서 보던 연예인을 보는 기분을 느꼈다고.   

미라 메사의 다이소에서 낚시 용품 몇 가지를, H 마트에서 수박을 샀다. 엄청 큰 씨없는 수박이 한 통에 겨우 5달러이다. 껍질도 얇고 맛이 참 달았다. 수박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당분간 자주 사야겠다.


9월 16일 목요일. 236일째 날. 세콰이어 국립 공원 근처 산불이 심해져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들도 불에 탈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적당한 자연적인 산불은 세콰이어 나무들이 잘 자라는데 도움이 되지만, 최근엔 산불이 너무 심해져 되려 나무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 같다. 제너럴 셔먼 트리 사진을 찍고 온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나무들이 무사하길 빈다. 

2021년 9월 14일 화요일

연수일기 126. 미션 바실리카 샌디에고 데 알칼라

9월 12일 일요일. 232일째 날. 해질 무렵에 토리 파인즈 비치에 다녀왔다. 샌디에고에 와 맨 처음 갔던 해변이다. 그땐 1월이었고 날씨가 쌀쌀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저녁의 해변 바람은 벌써 서늘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이 해변 특유의 반질반질한 몽돌을 줍기도 하고, 모래를 파 작은 조개도 살펴보며 놀았다. 


9월 13일 월요일. 233일째 날. 지난 주에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에 다녀온 뒤 가끔 평일 오전에 나들이를 하기로 아내와 이야기했다. 그때 갔었던 미션이 좋아서 오늘은 샌디에고 미션에 가보기로 했다. 

미션에 가기 전 그 근처의 머리 호수 Lake Murray에 들렀다. 샌디에고의 다른 많은 호수들처럼 이곳도 댐을 막아 생긴 저수지이다. 호숫가엔 피크닉 에어리어, 그리고 주변엔 트레일 코스가 있다. 여기서도 보트를 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미라마르 호수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나무 그늘 아래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근처에서 사온 커피를 마셨다. 

샌디에고 미션의 정식 이름은 '미션 바실리카 샌디에고 데 알칼라'이다. 미션을 건축한 해는 1769년으로, 캘리포니아의 21개 미션 중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이전에 보았던 두 개의 미션과 마찬가지로 Junipero Serra 신부가 설립했다. 수도사가 거처하던 숙소와 미사를 드리는 건물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현재도 매일 미사가 진행된다. 종을 치는 시간인 정오 근처가 되자 종탑이 보이는 작은 정원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타종이 끝날 무렵 신부님이 갑자기 나타나 환영 인사와 짧은 기도를 해주었다. 모인 사람들도 함께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다. 짧지만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잠깐동안 미션이 세워졌던 이백년쯤 전으로 다녀온 느낌이랄까. 

성당 내부

종탑이 보이는 정원

작은 박물관에서 캘리포니아 21개 미션의 모형을 액자에 넣어 전시한 벽면을 만났다. 모양이 제각각인 미션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여행을 할 때 시간이 남는다면 이 미션들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가까이 있는 미션 중 아직 가보지 않은 오션사이드의 미션도 조만간 가보려 한다. 

딸을 데리러 가기 전 시간이 남아 노스 파크로 향했다. 샌디에고의 힙한 동네로 알려져 있다. 카페와 브루어리가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걷다 보면 독특한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중고 서점은 Verbatim Books도 그 중 하나이다. 이곳의 분위기는 설명보단 사진으로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 


벽면의 책장은 스티븐 킹의 작품들로만 채워져 있다.

저녁엔 다시 시작한 농구 수업에 아들을 데려다 주었다. 지난 학기와 달리 같은 나이 대의 수업은 집에서 좀 떨어진 오션 에어 레크레이션 센터에만 있다. 이번 학기에도 아침 저녁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2021년 9월 12일 일요일

연수일기 125. 오션사이드 도서관

9월 10일 금요일. 230일째 날. 오늘 연구 미팅엔 한국에서 새로 연수를 오신 내분비내과 H 선생님이 참석했다. 그룹 내에 한국인이 한 명 더 생기니 반갑고 든든한 기분이다. 아무쪼록 즐겁고 보람된 일 많은 연수 기간이 되시길 바란다. 

지난 주말에 펑크가 났던 딸의 워터 폴로 수업을 오늘 보충하기로 해 오후에 다녀왔다. 앞으로는 일요일 오전에 수업을 하게 될 듯 하다. 

내일이 9/11이라, 라디오에선 이번 주 내내 관련 뉴스가 나온다. 이십 년이 지났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깊은 상처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 Rob과도 9/11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는 당시 외상 센터에서 근무했었고, 사건이 난 뒤 전국적으로 테러 경보가 발동되어 퇴근을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밤을 지샜다고 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는 7년 전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도 그 사건이 있었던 걸 알고 있었다. 


9월 11일 토요일. 231일째 날. 오션사이드에 다녀왔다. 오늘은 낚시를 하기 전에 도서관과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오션사이드 도서관은 씨티 홀과 이웃해 있고 해변과 달리 이 건물엔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흰색 바탕에 기둥과 아치에 파스텔톤 색을 입힌 지중해풍 느낌의 건물이 특징적이다. 건물 내부도 같은 형식이었는데 천장이 높고 볕이 잘 드는 로비가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1층은 전체가 아이들과 청소년 책으로 채워졌고, 2층은 성인용 책과 열람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도서관도 1층 구석엔 중고 책을 싸게 파는 서점이 있다. 도서관 출입문 앞 광장 가운데 얕은 풀은 말라 있었는데, 물이 채워지면 훨씬 분위기가 좋을 것 같다. 

도서관 입구

도서관 1층 로비

도서관 건너편 아티스트 앨리 골목에서 예술가들이 독특한 미술품과 장신구 등을 파는 벼룩 시장을 구경했다. 오션사이드의 메인 스트리트 구역엔 레스토랑, 카페, 펍 등이 많았다. 

피어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번까지 사용한 싱커가 파도가 센 바다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가벼운 것 같아 베이트 샵에서 좀더 무게가 나가는 걸 샀다. 싱커를 낚싯대에 다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아직은 낚시 채비를 하는 것도 익숙하진 않다.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한동안 고기가 잡히질 않자 아들은 무거운 싱커 때문인 것 같다고 툴툴거린다. 옆 자리 나이 지긋한 할아버님이 팔뚝만한 물고기를 잡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징어 미끼가 문제인가 싶어 옆에서 새우를 얻어 써보기도 했지만 영 입질이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결국 오늘은 빈손으로 접기로. 다음 번엔 미리 채비를 단단히 하고 오기로 했다. 

저녁은 피어 입구에 있는 틴 피쉬에서 먹었다. 야외 좌석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해산물 튀김과 타코 등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생선과 새우 튀김, 그리고 딸을 위해 치킨 너겟 세트도 하나 샀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니 피어 주변은 분위기가 더 들떠 오른다. 피어 옆 원형 극장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롤러 스케이트와 보드를 타는 이들로 채워졌다.

2021년 9월 10일 금요일

연수일기 124. 오랜만에 캠퍼스

9월 7일 화요일. 227일째 날. 오늘도 연구실 퇴근 후 딸을 미술 수업에 데려다 주고 근처 도서관에 갔다가 다시 딸을 집으로 데려가는 일정이다. 미술 수업 시작 때까지는 항상 시간이 좀 남아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요즘 하는 생각들, 얼마 전에 다녀왔던 여행 이야기. 오늘처럼 갑자기 레몬 사탕이 먹고 싶어 손을 잡고 마트에 들르기도 한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딸이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 수업까지 2주 동안 그린 곰을 완성해 보여주었다. 커다란 곰 얼굴로, 나름 공들여 그린 티가 난다. 무료 수업을 포함해 세 번을 참여했는데 아직까진 수업이 재미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9월 8일 수요일. 228일째 날. 오전에 아내는 EIA 프로그램 미팅을, 나는 DS-2019에 travel sign을 받기 위해 UCSD에 들렀다. 연수 기간 중에 해외 여행을 하기 위해선 담당 기관인 IFSO의 사인을 미리 받아야 한다. 아직까진 학내 서비스가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아서 이 사인을 받으려면 우편으로 신청을 해야하는 듯 하다. 번거롭기도 하고 비용도 드는지라, IFSO에선 미리 신청을 받아 사인이 된 서류를 방문해 받을 수 있는 픽업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장소는 캠퍼스 안 주차장이었다. 연구실이 외부에 있어 캠퍼스에 들어온 건 지난 5월이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서류를 받고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서점에서 마그넷을 하나 사고, 얼마 전 부분 개관을 한 가이젤 도서관도 구경했다. 도서관 안을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아직까진 1, 2층 일부 열람실만 개관한 상태라 썰렁했다. 다음 주에는 완전 개관을 하고 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도 입장할 수 있다고 하니 이후에 다시 와봐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걷는 캠퍼스가 반갑고 좋았다. 무리를 지어 밝은 얼굴로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보니 내 마음에도 활력이 도는 듯 했다. 

Geisel 도서관 2층 열람실

잔디밭에 그물 해먹도 있는 한가로운 캠퍼스

오후엔 아들의 스케이트 보드 수업을 위해 카멜 밸리 스케이트 파크에 다녀왔다. 지난 주에 갔던 린다 비스타 파크보단 슬로프 규모가 작았다. 이번 주엔 기온이 높고 햇살도 따가워 낮에 돌아다니기 부담스러운 날씨인데, 한 시간 수업을 끝낸 아들은 땀에 흠뻑 젖었다. 아직은 서툴지만 혼자 연습할 때와 달리 기술을 배우는 게 재미있나 보다. 


9월 9일 목요일. 229일째 날. 저녁에 딸과 수영장에 있는데 번개가 여러 번 치더니 천둥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내려갔던 기온이 9월 들어 다시 높아져 내륙 지역은 다시 폭염이라고 한다. 샌디에고는 그래봐야 큰 차이가 없지만. 산불, 태풍, 폭염으로 요즘은 기상 관련 뉴스도 더 많아졌는데, 오늘 서해안 쪽은 국지성 호우가 내린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주먹만한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밤 늦게까지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이곳에서 듣기 어려운 시원한 빗소리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