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28일 화요일

연수일기 131. 다시 임페리얼 비치

9월 25일 토요일. 245일째 날. 임페리얼 비치 피어에 낚시를 다녀왔다. 이번엔 시간을 절약하기 위해 출발 전에 채비를 단단히 했다. 바늘도 두 개씩 달았다. 

여름 캠프 때 일주일 간 매일 왔던 임페리얼 비치는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Trident coffee에서 콜드브루 커피를 사서 해변으로 이동했다. 다운타운이나 카운티 북쪽의 해변에 비해 역시 한적하다. 마이크 헤세 브루어리에서 타코와 맥주로 늦은 점심을 먹었다. 임페리얼 비치에서 식사를 하기엔 가장 좋은 곳이다. 타코를 싫어하지 않는다면. 식사 후 피어로 자리를 옮겨 낚싯대를 드리웠다. 날이 흐리고 바람이 셌지만 낚시를 하는 사람은 꽤 많았다. 아이들의 두꺼운 후드도 챙겨왔지만 체감 기온이 쌀쌀했다.

오늘 점심은 다양한 타코

오늘도 조황이 좋지 않아 아들이 실망. 해초가 자주 걸려 애를 먹었고, 바닥에 바늘과 줄이 엉켜서 싱커 하나를 잃어버리기도 했다. 주변에선 간간이 물고기가 걸려 올라오는데 우리 낚싯대엔 입질이 없는 게 아무래도 이전에 쓰고 얼려두었던 오징어 미끼가 시원찮은 것 같다. 다음번 낚시를 올 때는 미끼를 새로 사기로 했다. 


9월 26일 일요일. 246일째 날. 아이들도 나도 컨디션이 썩 좋지 않았다. 그래도 딸은 여느 일요일처럼 오전에 스플래시 수업을 다녀왔다. 아홉 살까지는 연습과 놀이가 섞인 스플래시 수업을 하지만, 열 살부터는 좀더 힘든 정식 워터 폴로 수업을 받는다. 스플래시 수업을 받는 아이들 중 기본 수영 실력이 갖춰진 경우 예비 열 살 반으로 옮겨 주중에 두 번 수업을 받을 수 있다는 알림을 얼마 전 받았는데, 딸은 그냥 스플래시 반에 남아있기로 했다. 남은 기간 동안 굳이 무리해 수업을 받을 필요까진 없을 것 같다. 


9월 27일 월요일. 247일째 날. C 선생님, L 선생님과 점심을 먹었다. 두 분 선생님은 올 1월 같은 시기에 입국해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 올 여름에는 많은 의사 가족들이 들어왔지만 지난 겨울에는 서너 가족이 전부였다. 어려운 시기를 지내온 터라 두 선생님을 만날 때는 약간의 전우애와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시그니처 아파트 앞 몰의 케밥 식당에서 레스토랑 위크 메뉴를 먹었다. 이번 주는 샌디에고 레스토랑 위크이다. 올해는 두 번째인데, 행사에 참여하는 레스토랑에서 프리 픽스된 메뉴를 할인 가격으로 먹을 수 있다. 평소보다 부담 없이 외식을 할 수 있으니 이번 주엔 다른 식당도 이용해 볼 생각이다. 


2021년 9월 25일 토요일

연수일기 130. 대면 수업이 시작된 캠퍼스

9월 22일 수요일. 242일째 날. 미국에 살면서 자주 하는 일 중 하나는 마트에 가는 것이다. 처음엔 종류가 다른 마트를 구경하는 게 재밌기도 했지만, 지금은 그저 해야 하는 일일 뿐이다. 한국과 달리 온라인 장보기와 배달 서비스를 이용하는 게 어려우므로 무언가 필요한 게 있다면 차를 몰고 직접 가야 한다. 마트마다 특성이 달라서 한 곳에서 모든 걸 사기 어렵고 결국 또 여러 곳을 방문해야 하는 것도 힘든 점이다. 고기와 생수는 코스트코, 과일과 채소는 트레이더 조, 잡화는 랄프스, 이런 식이다. 한인 마트도 정기적으로 가야 한다. 대부분 차를 타고 가야 하므로 가까운 거리라 해도 장을 보고 오면 두어 시간이 훌쩍 간다. 이곳에서 오래 사는 사람들의 마트에서 장을 보다 보면 하루가 다 간다는 푸념 아닌 푸념도 이해가 되었다. 

그나마 걸어갈 수 있는 가까운 몰에 트레이더 조가 있는 트세권인 게 다행이다. 트레이더 조는 가장 가까우면서 가장 마음에 드는 마트이기도 하다. 물건의 품질이 좋고 맛있다. 가격도 나쁘지 않다. 아내는 한국에 돌아가면 트레이더 조가 많이 그리울 것 같다고 한다. 언젠가 캘리포니아에서 경험한 마트에 대해선 따로 정리를 해보려 한다.

오늘은 메이플 버터, 펌프킨 스프레드를 여러 개 사왔다. 가을 이 시기에만 나오는 시즌 상품으로, 다른 곳에선 팔지 않고 맛도 있어서 인기가 많다고 한다. 용기가 귀여워서 한국에 돌아갈 때 선물용으로도 괜찮을 것 같았다. 가격도 싸서 큰 부담이 되지 않는다.


9월 23일 목요일. 243일째 날. 연구실에 갔다가 오랜만에 UCSD 캠퍼스에 들렀다. 전면 대면 수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처음이다. 이전보다 훨씬 활기찬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가이젤 도서관 앞 길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동아리와 종교 모임을 홍보하는 부스도 늘어서 있었다. 서점과 타겟 입구에는 학생들이 길게 줄을 섰다. 학생들의 표정도 밝아 보였다. 평소 학기 중엔 늘 이런 분위기였을텐데. 역시 학교엔 학생들이 있어야 한다. 

덩달아 나도 기분이 좋아져 의대 건물 쪽으로 돌아서 산책을 했다. 



9월 24일 금요일. 244일째 날. 아내의 생일이다. 아이들과 미리 카드와 선물을 준비했다. 홀푸드 마켓에서 산 작은 케잌에 초를 꽂고, 아들이 생일 축하 음악을 첼로로 연주했다. 가족 모두가 이곳에서 생일을 한 번씩 지내게 되었다. 앞으로 남은 기간도 건강하게 보낼 수 있기를.

2021년 9월 22일 수요일

연수일기 129. 델 마르 산책

9월 20일 월요일. 240일째 날. 오전에 Del Mar 델 마르에 나들이를 갔다. 솔라나 비치의 Lofty coffee에서 간단한 아침과 함께 커피를 마신 뒤 델 마르로 돌아와 브랜치 도서관 앞에 차를 세웠다. 이 브랜치 도서관은 지금까지 가 본 카운티 내의 도서관 중 가장 규모가 작지만, 귀엽고 예쁜 도서관이다. 건물의 외관은 공공 시설보다는 가정집을 연상케 하는데, 목재 표면이 그대로 드러난 천장과 기둥이 편안한 느낌을 준다. 실내 한쪽엔 서재를 연상케 하는 작은 공간도 있다. 이곳에 놓인 작은 테이블에 앉아 잠시 책을 읽었다. 

도서관 안의 작은 서재

도서관을 나와 해변 쪽으로 천천히 걸어 내려가면 Seagrove 시그로브 공원을 만난다. 선선한 바닷바람을 맞으며 아침 산책을 하는 사람들이 많다. 잔디에서 요가를 하는 이들도 있고, 벤치에 앉아 책을 읽는 이들도 있다. 델 마르는 관광지 느낌이 나지 않으면서도 세련된 동네이다. 시그로브 공원은 샌디에고에선 가장 아름다운 공원 중 하나가 아닐까. 델 마르 쇼핑 센터의 3층 데크에 올라가니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한눈에 들어왔다. 두 시간 전에 커피를 마셨지만, 하늘과 전망이 너무 좋아 그냥 내려가기 아쉬워 커피 한 잔을 또 시켜 테이블에 앉았다. 

데크에서 보이는 바다

한국은 오늘 시간이 추석이다. 부모님과 영상 통화를 했다. 지난 설에 이어 명절에 직접 인사를 드리지 못해 죄송스럽다. 내년 설 연휴에 귀국을 할 예정이니 그땐 세배를 드릴 수 있겠지.


9월 21일 화요일. 241일째 날. Rob에게 내가 쓴 책을 선물했다. 삽화가 있는 몇 개의 에피소드에 대해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한국어 책이라 바로 읽을 수는 없겠지만, 한국어를 아는 지인의 도움을 받아 읽어보겠다고 한다. 

저녁엔 한국의 지인들과 랜선 모임을 했다. 정신과인 S 선생님과 Y 선생님은 부부로, 우리와 가까운 곳에 살아서 한 달에 한두 번 씩은 가족 모임을 했었다. 아내와 함께 볼 수 있는 가장 편한 이들이고, 이곳에 살면서 제일 그리운 가족 중 하나이다. 온라인으로나마 얼굴을 볼 수 있어 반갑고 좋았다. 

2021년 9월 20일 월요일

연수일기 128. 은사님의 방문

9월 17일 금요일. 237일째 날. 코스트코에서 장을 보며 내일 구울 바베큐용 고기와 맥주도 샀다. 한국은 내일부터 추석 연휴이다. 명절 상여금 입금 문자를 받고 연휴 전날임을 알았다. 이전부터 월급날엔 종종 아이들과 외식을 하곤 했다. 한국에서보다 적은 금액이지만 여기 있는 동안에도 급여를 받을 수 있음이 새삼 고마운 오늘이다. 

산불로 세콰이어의 나무들이 불에 탈 위험에 처했다는 뉴스를 어제 들었는데, 오늘 뉴스에선 가장 오래된 나무인 제너럴 셔먼 트리가 불에 타지 않도록 기둥에 알루미늄 호일을 감았다고 한다. 이천 년을 넘게 사는 동안 갖가지 일을 겪어왔을 나무가 설마 산불에 쓰러질까 하는 생각이 우선 들지만, 오죽 산불이 심하면 이렇게까지 할까 싶기도 하다. 

FDA 자문 위원회에서 화이자 백신의 일반 성인 부스터 접종에 대한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옳은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새로운 근거가 나오기 전까지 부스터 접종은 65세 이상과 고위험군에 대한 것으로 한정될 듯 하다. 

사진 출처: BBC News


9월 18일 토요일. 238일째 날. 미국 출장 중인 C 교수님이 어제 샌디에고에 오셨다. 전공의 때부터 모셨던 은사이자 멘토이시다. 보스턴에서 예정되었던 공식 일정이 끝나고 여유가 생겨 샌디에고에서 며칠 머물기로 하셨다고. 샌디에고에서 볼 만한 곳들을 미리 추천해 드렸고, 오늘 하루는 교수님 내외를 모시고 안내를 해드리기로 했다. 

어젠 다운타운 주변과 라호야 코브, 카브릴로 국가 기념물과 선셋 클리프스를 보셨다고 한다. 오늘 아침엔 숙소에서 멀지 않은 코로나도 섬에 들렀다 집으로 오시기로. 얼마 전 갔었던 샌디에고 미션을 함께 둘러보고 점심을 먹으러 Caroline's seaside cafe에 갔다. UCSD 학생들에게 워낙 인기가 많은 곳이기도 하고, 주말 점심 시간이라 더 사람이 많았다. 오랜만에 뵙는지라 그간의 소식을 나누고 미국 생활에 대해서도 이야기 드리다 보니 시간이 훌쩍 간다. 주문한 음식 일부가 누락되어 한 시간이 넘게 기다리는 바람에 늦게 나온 음식 값을 환불해주는 작은 사고가 있었다. 그래도 분위기와 뷰가 좋아 두 분 다 즐거워하셨다.

라떼를 좋아하는 사모님을 위해 로컬 카페에 들렀다가 솔라나 비치에서 함께 해변을 걸었다. 샌디에고에 처음인 사모님께선 미국 동부와는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 인상적이라며 감탄하신다. 앤시니터스 바닷가 도서관을 보여드리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주말엔 문을 닫아 갈 수가 없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매일 산책하는 공원도 잠깐 구경했다. 

저녁을 먹기 위해 아파트 바베큐장에 자리를 잡았다. 같은 의국 출신인 H 선생님 가족도 함께 했다. 식사가 끝난 뒤에도 밤 늦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아이들은 여느 때처럼 수영장에서 물놀이를 했다. 


9월 19일 일요일. 239일째 날. 새로운 스파이더 맨 영화 예고편을 본 아들이 며칠 전부터 스파이더 맨을 다시 보고싶다 노래를 불러 지난 주말 홈 커밍에 이어 파 프롬 홈을 보았다. 아들도 재미있게 보았지만 사실 내가 더 푹 빠져 보았다. 마블 영화 시리즈는 몇 번을 봐도 재미있다. 스파이더 맨은 아이언 맨과 더불어 가장 애정하는 캐릭터라, 12월에 개봉할 새 영화가 정말 기대된다. 

의국 동기인 S 선생이 C 교수님께 저녁을 대접하기로 해 우리도 합류했다. C 교수님은 오늘 발보아 파크를 구경하고 토리 파인즈 트레일을 걸으셨다고. 하루 종일 걸어 녹초가 되어 나타나셨지만 맛있는 저녁과 와인 덕에 금새 기운을 차리신 듯 했다. 지난 번 방문 때 언니들과 금새 친해진 딸은 며칠 전부터 다시 만나는 걸 기대했는데, 오늘도 언니들 옆에 딱 붙어 있다. 함께 상가에 아이스크림도 사러 다녀왔다. 

2021년 9월 17일 금요일

연수일기 127. Thrifty store

9월 14일 화요일. 234일째 날. 오늘도 Rob과의 만남 장소는 멕시코 음식점이었다. 그는 이 식당을 참 좋아하나 보다. 지난 번 점심을 먹을 때 중고 물품을 파는 Thrift store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식사 후에 같이 구경을 가지 않겠느냐고 한다. 한국에선 중고나라나 당근 마켓 같은 일대일 교환 플랫폼을 통해 중고 물품을 거래하는 경우가 더 많지만 미국에선 오프라인 스토어를 더 흔하게 이용하는 듯 하다. 그를 따라 간 곳은 가까운 Goodwill store였다. 한국에서 Goodwill에 헌 옷을 종종 기부했었지만 직접 방문한 건 처음이다. 

생각보다 규모가 컸다. 구글 맵을 검색하니 이런 thrifty store가 이곳 말고도 여러 군데 있었는데, 기부를 통해 유통되는 중고 물품 시장 규모도 꽤 크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옷, 주방 용품, 가구 등 다양한 물품이 있었지만 역시 옷이 가장 많았다. 옷의 가격은 바지, 상의, 재킷 등 종류 별로 대부분 동일하다. 청바지와 양복 바지와 면 바지의 가격이 같고, 바람막이 점퍼와 골프 재킷과 수트 재킷의 가격 역시 같다. 재킷 코너를 살피던 Rob이 재밌는 게 있다고 나를 부른다. 한눈에도 싸구려로 보이는 폴리에스터 자켓과 백퍼센트 울 맞춤 수트 자켓을 들고 가격표를 보여주었다. 역시 같은 가격이다. 부지런을 떨면 좋은 질의 옷을 말도 안되는 가격에 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Rob이 입는 모든 옷은 thrifty store에서 산다고 했다. 태국에 아이들을 위한 장학 재단을 만들어 매년 큰 돈을 기부하는(얼마 전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은퇴한 마취과 의사 치고는 참으로 검소한 분이다. 이 나라엔 그와 같이 교육 수준이 높고 소득 상위층에 속하면서도 다른 사람에게 보여지는 겉모습에 신경쓰지 않는 이들이 많다.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굿윌 스토어

저녁에 공원을 산책하다 체육관 건물에 차려진 투표소를 발견했다. 오늘은 캘리포니아 주지사 Recall 투표 날이다. 자원봉사자가 우리에게도 투표를 하지 않겠느냐고 물었지만 우린 권한이 없다. '주민 소환 투표'로 번역할 수 있는 recall은 의회에서 투표를 하는 탄핵과 달리 주민 투표로 재신임 여부를 결정하는 제도이다. 리콜 제도가 있는 주는 스무 개이지만 주지사에 대해 실제 투표가 이루어진 건 이번을 포함해 네 번에 불과하다고 한다. 네 번 중 두 번이 캘리포니아이고, 이전의 캘리포니아 리콜이 유일하게 주지사 해임을 이끌어냈다니 제도가 있다고 손바닥 뒤집듯 해임이 이루어지진 않을 듯 하다. 

투표소 입구


9월 15일 수요일. 235일째 날. 아내가 참여 중인 UCSD 수요 커피 모임에서 오늘 드디어 처음으로 오프라인 모임을 했다. 장소는 UCSD 근처의 도일 커뮤니티 공원이었다. 그동안의 온라인 미팅 때보다 많은 사람이 모였다고 한다. 그동안 온라인이라도 모임을 할 수 있어 좋았지만 그래도 아쉬운 부분이 있었는데 이제라도 대면 모임이 가능해져 다행이다. 모임을 주도하는 할머님들께 빵과 뜨개질 세트 등 선물을 잔뜩 받아 왔다. 오랫동안 모니터로만 보던 이들을 만나니 마치 TV에서 보던 연예인을 보는 기분을 느꼈다고.   

미라 메사의 다이소에서 낚시 용품 몇 가지를, H 마트에서 수박을 샀다. 엄청 큰 씨없는 수박이 한 통에 겨우 5달러이다. 껍질도 얇고 맛이 참 달았다. 수박을 좋아하는 아들을 위해 당분간 자주 사야겠다.


9월 16일 목요일. 236일째 날. 세콰이어 국립 공원 근처 산불이 심해져 자이언트 세콰이어 나무들도 불에 탈 위험에 처했다고 한다. 적당한 자연적인 산불은 세콰이어 나무들이 잘 자라는데 도움이 되지만, 최근엔 산불이 너무 심해져 되려 나무들에게 위협이 되는 것 같다. 제너럴 셔먼 트리 사진을 찍고 온 게 얼마 되지 않았는데. 나무들이 무사하길 빈다. 

2021년 9월 14일 화요일

연수일기 126. 미션 바실리카 샌디에고 데 알칼라

9월 12일 일요일. 232일째 날. 해질 무렵에 토리 파인즈 비치에 다녀왔다. 샌디에고에 와 맨 처음 갔던 해변이다. 그땐 1월이었고 날씨가 쌀쌀했다. 그때만큼은 아니지만 저녁의 해변 바람은 벌써 서늘한 느낌이 든다. 아이들은 이 해변 특유의 반질반질한 몽돌을 줍기도 하고, 모래를 파 작은 조개도 살펴보며 놀았다. 


9월 13일 월요일. 233일째 날. 지난 주에 샌 후안 카피스트라노에 다녀온 뒤 가끔 평일 오전에 나들이를 하기로 아내와 이야기했다. 그때 갔었던 미션이 좋아서 오늘은 샌디에고 미션에 가보기로 했다. 

미션에 가기 전 그 근처의 머리 호수 Lake Murray에 들렀다. 샌디에고의 다른 많은 호수들처럼 이곳도 댐을 막아 생긴 저수지이다. 호숫가엔 피크닉 에어리어, 그리고 주변엔 트레일 코스가 있다. 여기서도 보트를 탈 수 있었다. 전체적으로 미라마르 호수와 분위기가 비슷했다. 나무 그늘 아래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근처에서 사온 커피를 마셨다. 

샌디에고 미션의 정식 이름은 '미션 바실리카 샌디에고 데 알칼라'이다. 미션을 건축한 해는 1769년으로, 캘리포니아의 21개 미션 중 가장 먼저 만들어졌다. 이전에 보았던 두 개의 미션과 마찬가지로 Junipero Serra 신부가 설립했다. 수도사가 거처하던 숙소와 미사를 드리는 건물을 차례로 둘러보았다. 현재도 매일 미사가 진행된다. 종을 치는 시간인 정오 근처가 되자 종탑이 보이는 작은 정원으로 사람들이 모였다. 타종이 끝날 무렵 신부님이 갑자기 나타나 환영 인사와 짧은 기도를 해주었다. 모인 사람들도 함께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다. 짧지만 인상적인 순간이었다. 잠깐동안 미션이 세워졌던 이백년쯤 전으로 다녀온 느낌이랄까. 

성당 내부

종탑이 보이는 정원

작은 박물관에서 캘리포니아 21개 미션의 모형을 액자에 넣어 전시한 벽면을 만났다. 모양이 제각각인 미션을 비교하는 재미가 있었다. 캘리포니아 여행을 할 때 시간이 남는다면 이 미션들을 돌아보는 것도 좋겠다. 가까이 있는 미션 중 아직 가보지 않은 오션사이드의 미션도 조만간 가보려 한다. 

딸을 데리러 가기 전 시간이 남아 노스 파크로 향했다. 샌디에고의 힙한 동네로 알려져 있다. 카페와 브루어리가 즐비하게 늘어선 거리를 걷다 보면 독특한 가게들을 만날 수 있다. 중고 서점은 Verbatim Books도 그 중 하나이다. 이곳의 분위기는 설명보단 사진으로 대신하는 것이 좋겠다. 


벽면의 책장은 스티븐 킹의 작품들로만 채워져 있다.

저녁엔 다시 시작한 농구 수업에 아들을 데려다 주었다. 지난 학기와 달리 같은 나이 대의 수업은 집에서 좀 떨어진 오션 에어 레크레이션 센터에만 있다. 이번 학기에도 아침 저녁으로 아이들을 실어 나르는 일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2021년 9월 12일 일요일

연수일기 125. 오션사이드 도서관

9월 10일 금요일. 230일째 날. 오늘 연구 미팅엔 한국에서 새로 연수를 오신 내분비내과 H 선생님이 참석했다. 그룹 내에 한국인이 한 명 더 생기니 반갑고 든든한 기분이다. 아무쪼록 즐겁고 보람된 일 많은 연수 기간이 되시길 바란다. 

지난 주말에 펑크가 났던 딸의 워터 폴로 수업을 오늘 보충하기로 해 오후에 다녀왔다. 앞으로는 일요일 오전에 수업을 하게 될 듯 하다. 

내일이 9/11이라, 라디오에선 이번 주 내내 관련 뉴스가 나온다. 이십 년이 지났지만 이 나라 사람들의 마음에 남은 깊은 상처는 아직 회복되지 않은 것 같다. Rob과도 9/11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는 당시 외상 센터에서 근무했었고, 사건이 난 뒤 전국적으로 테러 경보가 발동되어 퇴근을 하지 못하고 병원에서 밤을 지샜다고 한다. 트라우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나는 7년 전의 세월호 사건에 대해 설명했는데, 그도 그 사건이 있었던 걸 알고 있었다. 


9월 11일 토요일. 231일째 날. 오션사이드에 다녀왔다. 오늘은 낚시를 하기 전에 도서관과 시내를 둘러보기로 했다. 오션사이드 도서관은 씨티 홀과 이웃해 있고 해변과 달리 이 건물엔 무료 주차가 가능하다. 흰색 바탕에 기둥과 아치에 파스텔톤 색을 입힌 지중해풍 느낌의 건물이 특징적이다. 건물 내부도 같은 형식이었는데 천장이 높고 볕이 잘 드는 로비가 시원한 느낌을 주었다. 1층은 전체가 아이들과 청소년 책으로 채워졌고, 2층은 성인용 책과 열람실로 구성되어 있었다. 이 도서관도 1층 구석엔 중고 책을 싸게 파는 서점이 있다. 도서관 출입문 앞 광장 가운데 얕은 풀은 말라 있었는데, 물이 채워지면 훨씬 분위기가 좋을 것 같다. 

도서관 입구

도서관 1층 로비

도서관 건너편 아티스트 앨리 골목에서 예술가들이 독특한 미술품과 장신구 등을 파는 벼룩 시장을 구경했다. 오션사이드의 메인 스트리트 구역엔 레스토랑, 카페, 펍 등이 많았다. 

피어 중간에 자리를 잡았다. 지난 번까지 사용한 싱커가 파도가 센 바다에서 사용하기엔 너무 가벼운 것 같아 베이트 샵에서 좀더 무게가 나가는 걸 샀다. 싱커를 낚싯대에 다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아직은 낚시 채비를 하는 것도 익숙하진 않다. 낚싯대를 드리웠지만 한동안 고기가 잡히질 않자 아들은 무거운 싱커 때문인 것 같다고 툴툴거린다. 옆 자리 나이 지긋한 할아버님이 팔뚝만한 물고기를 잡는 걸 보니 괜히 마음이 조급해졌다. 오징어 미끼가 문제인가 싶어 옆에서 새우를 얻어 써보기도 했지만 영 입질이 없었다. 해가 뉘엿뉘엿 넘어갈 무렵까지 자리를 지켰지만 결국 오늘은 빈손으로 접기로. 다음 번엔 미리 채비를 단단히 하고 오기로 했다. 

저녁은 피어 입구에 있는 틴 피쉬에서 먹었다. 야외 좌석에서 비교적 저렴하게 해산물 튀김과 타코 등을 먹을 수 있는 식당이다. 생선과 새우 튀김, 그리고 딸을 위해 치킨 너겟 세트도 하나 샀다. 해가 지고 어두워지니 피어 주변은 분위기가 더 들떠 오른다. 피어 옆 원형 극장은 흥겨운 음악에 맞춰 롤러 스케이트와 보드를 타는 이들로 채워졌다.

2021년 9월 10일 금요일

연수일기 124. 오랜만에 캠퍼스

9월 7일 화요일. 227일째 날. 오늘도 연구실 퇴근 후 딸을 미술 수업에 데려다 주고 근처 도서관에 갔다가 다시 딸을 집으로 데려가는 일정이다. 미술 수업 시작 때까지는 항상 시간이 좀 남아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눈다. 특별한 내용은 아니다. 오늘 학교에서 있었던 일, 요즘 하는 생각들, 얼마 전에 다녀왔던 여행 이야기. 오늘처럼 갑자기 레몬 사탕이 먹고 싶어 손을 잡고 마트에 들르기도 한다. 미국 생활을 하면서 좋은 점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좋은 건 이렇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소소한 시간이 많아졌다는 것이다. 

수업이 끝나고 딸이 지난 주에 이어 이번 주 수업까지 2주 동안 그린 곰을 완성해 보여주었다. 커다란 곰 얼굴로, 나름 공들여 그린 티가 난다. 무료 수업을 포함해 세 번을 참여했는데 아직까진 수업이 재미있다고 하니 다행이다. 


9월 8일 수요일. 228일째 날. 오전에 아내는 EIA 프로그램 미팅을, 나는 DS-2019에 travel sign을 받기 위해 UCSD에 들렀다. 연수 기간 중에 해외 여행을 하기 위해선 담당 기관인 IFSO의 사인을 미리 받아야 한다. 아직까진 학내 서비스가 완전히 정상화되지 않아서 이 사인을 받으려면 우편으로 신청을 해야하는 듯 하다. 번거롭기도 하고 비용도 드는지라, IFSO에선 미리 신청을 받아 사인이 된 서류를 방문해 받을 수 있는 픽업 이벤트를 마련했는데 그날이 오늘이다. 

장소는 캠퍼스 안 주차장이었다. 연구실이 외부에 있어 캠퍼스에 들어온 건 지난 5월이 마지막이었다. 오랜만의 방문이라 서류를 받고 한 바퀴 둘러보기로 했다. 서점에서 마그넷을 하나 사고, 얼마 전 부분 개관을 한 가이젤 도서관도 구경했다. 도서관 안을 보는 건 처음이었는데, 아직까진 1, 2층 일부 열람실만 개관한 상태라 썰렁했다. 다음 주에는 완전 개관을 하고 학생 뿐 아니라 일반인도 입장할 수 있다고 하니 이후에 다시 와봐야 할 것 같다. 오랜만에 걷는 캠퍼스가 반갑고 좋았다. 무리를 지어 밝은 얼굴로 지나다니는 학생들을 보니 내 마음에도 활력이 도는 듯 했다. 

Geisel 도서관 2층 열람실

잔디밭에 그물 해먹도 있는 한가로운 캠퍼스

오후엔 아들의 스케이트 보드 수업을 위해 카멜 밸리 스케이트 파크에 다녀왔다. 지난 주에 갔던 린다 비스타 파크보단 슬로프 규모가 작았다. 이번 주엔 기온이 높고 햇살도 따가워 낮에 돌아다니기 부담스러운 날씨인데, 한 시간 수업을 끝낸 아들은 땀에 흠뻑 젖었다. 아직은 서툴지만 혼자 연습할 때와 달리 기술을 배우는 게 재미있나 보다. 


9월 9일 목요일. 229일째 날. 저녁에 딸과 수영장에 있는데 번개가 여러 번 치더니 천둥과 함께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조금 내려갔던 기온이 9월 들어 다시 높아져 내륙 지역은 다시 폭염이라고 한다. 샌디에고는 그래봐야 큰 차이가 없지만. 산불, 태풍, 폭염으로 요즘은 기상 관련 뉴스도 더 많아졌는데, 오늘 서해안 쪽은 국지성 호우가 내린다고 했다. 아니나다를까 주먹만한 빗방울이 떨어지는데, 밤 늦게까지 비가 내렸다. 오랜만에 이곳에서 듣기 어려운 시원한 빗소리가 좋았다. 

2021년 9월 7일 화요일

연수일기 123. 이틀 간의 식사 초대

9월 5일 일요일. 225일째 날. 어제 밤 두 시가 넘어 집에 도착해 아이들도 나도 아침에 늦잠을 잤다. 딸의 워터 폴로 스플래쉬 수업 시간이 갑자기 금요일에서 일요일 오전으로 바뀌어 시간에 맞춰 연습 장소인 고등학교에 갔는데 정문이 닫혀 있었다. 정문 앞엔 수업에 온 차들이 줄지어 서서 어찌된 일인지 영문을 몰라 하고. 수업 스케줄 전달에 착오가 있었던 것 같다. 자체 시설이 아닌 고등학교 수영장을 빌려서 하다 보니 생기는 문제겠지만, 일요일 아침 침대에서 나오기 싫어하는 아이를 애써 데리고 왔는데 이런 일이 생기니 약간 짜증도 난다. (그랬다가도 다시 저렴한 수업료를 생각하면 마음이 평온해진다.)

후배인 S 선생님 집에 저녁 초대를 받아 방문했다. 의국 동기인 S 선생님은 한국에 있을 때 종종 보았지만, 가족들은 몇 년 전 샌디에고로 이사한 이후엔 만나질 못했다. 아주 오래 전 한국에서 봤을 땐 꼬마였던 아이들이 몰라보게 커서 이젠 고등학생이다. 큰 애는 얼마 전 SAT를 봤다고 한다. 

작년에 이사를 했다는 집은 우리 집에서도 멀지 않았다. 이곳에서 아파트가 아닌 단독 주택을 처음 구경하게 되었다. 널찍한 거실과 2층이 있어 아이들이 좋아했다. 뒤뜰에는 자그마치 월풀 욕조가. 손님 치르는 솜씨가 훌륭하신 제수씨 덕에 음식과 다양한 안주(와 술)를 배가 부르게 먹었다. 집도 음식도, 미국 생활을 오래 한 경험에서 우러나는 이야기도 좋았다. 분위기에 취해 그만 또 과음을 한 것 외엔.  


9월 6일 월요일. 226일째 날. 미국의 노동절 휴일이다. Rob에게 커뮤니티 가든에서 하는 바베큐 점심 초대를 받았다. 이전에 잠깐 구경을 하고 포도를 받았던 가든이다. 그땐 몰랐는데 이 가든은 장로 교회에 딸린 것이었다. Rob과 제인, 샘과 더불어 사진으로만 보았던 딸 니나까지 모여 환대를 해주었다. 니나는 UCSD에 입학해 첫 학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Rob이 그릴에 차콜을 채우고 불을 붙였다. 미국에서 경험하는 정통 미국 가정식 바베큐. 손잡이가 깨진, 십년은 되었음직한 그릴은 오랫동안 써온 듯 했다. 소세지와 양념이 된 소고기, 닭다리를 차례로 구웠다. 우리 입맛에 소세지와 닭다리는 짜고 고기의 양념은 너무 셌다. 하지만 Rob 가족과의 대화는 늘 그렇듯 즐거웠다. 못 알아들어 되물어야 하는 경우가 많지만, 누구랑 이야기한들 그렇지 않을까. 중국인인 제인의 영어는 알아듣기 어려웠지만(제인도 우리 영어를 알아듣기 힘들었을 것이다), 준비한 음식을 권하는 따뜻한 마음은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다. 

불 피우기 전

가든 탐험 중

아이들은 정원 이곳저곳을 구경하고 꽃도 땄다. 아들은 사다리에 올라가 포도를 수확했고, 제인은 대파와 허브를 뽑아서 우리에게 선물했다. 민트를 심을 화분도 함께 받았다. 

2021년 9월 6일 월요일

연수일기 122. 조슈아 트리 국립공원

9월 4일 토요일. 224일째 날. 조슈아 트리 국립 공원에 다녀왔다. 이번 주말이 뉴문이라 별 보기에 적당한 시기이다. 10월까지 보인다는 은하수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조슈아 트리는 샌디에고에서 가장 가까운 국립 공원으로, 공원 서쪽 입구에 있는 비지팅 센터까지는 두 시간 반이 걸린다. 

코스트코에 들러 주유와 점심을 해결하고 팜 스프링스의 풍력 발전 단지에서 차를 멈추고 잠시 사진도 찍었다. 팜 스프링스의 온도는 화씨 100도가 넘어 잠깐 차에서 내렸는데도 등판에 땀이 맺혔다. 마치 건식 사우나에 있는 것 같았다. 공원 안에서 많이 걷기는 어려울 것이다. 

공원에 들어가기 전에 Pioneertown 파이오니어타운에 들렀다. 유카 밸리 북쪽의 아주 작은 마을로, 과거 서부 영화의 세트장으로 쓰였고 지금도 영화와 광고 사진의 무대로 활용된다고 한다. 메인 스트리트에 들어서니 마치 옛날 영화 속으로 들어온 느낌이 들었다. 메인 스트리트는 아주 짧아 구경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지만 모든 곳이 포토 스팟이다. 

Pioneertown main street

마을을 나와 조슈아 트리 브루어리에서 맥주 두 캔을 샀다. 비지터 센터에서 스탬프를 찍고 공원 서쪽 입구로 입장. 이로써 미국 국립 공원 열 개의 스탬프를 채우는 기록을 달성했다. 오후 네 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 입구엔 직원이 없었다. 퇴근 시간 이후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고 들었는데, 더운 날씨 때문에 일찍 철수를 한 모양이다. 시선이 향하는 곳 어디서든 조슈아 트리를 볼 수 있다. 이곳이 조슈아 트리를 재배하는 농장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공원의 이름을 짓는데 이 선인장의 이름 외에 다른 이름을 생각할 수는 없었을 것 같다. 첫 번째 목적지 스컬 락에 도착하니 해골 모양의 바위가 우리를 반겼다. 해골 모양 바위 뒤쪽으로 아이들이 올라가서 놀기 좋은 바위들이 여러 개 있었다. 

Skull Rock

바위를 오르내리며 놀다가 다음 장소인 히든 밸리 피크닉 에어리어로 향했다. 공원에서 트레일을 하기에 가장 좋다고 들었다. 준비해간 주먹밥으로 이른 저녁을 먹고 히든 밸리 트레일 코스를 걸었다.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평지를 한 바퀴 도는 코스로 삼십 분 정도면 걸을 수 있다. 팜 스프링스에서 날씨가 너무 더워 걱정을 했는데, 오후 늦은 시간이 되면서 기온도 다소 낮아지고 바위산에 가려진 트레일 코스에 그늘이 많아 걷기에 괜찮았다. 조슈아 트리와 유카 등 사막 식물들도 가까이서 볼 수 있고 길을 따라 펼쳐진 풍경도 아름다워 아이들과 산책하기에도 참 좋았다. 

트레일 입구로 나와 일몰을 보기 위해 Keys view 키스 뷰로 향했다. 조슈아 트리 공원은 그동안 갔던 다른 국립 공원에 비해 사람이 훨씬 적었다. 아직은 더운 날씨 탓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공원에 들어온 이후 키스 뷰 주차장에서 가장 많은 차를 만났다. 주차할 자리가 없어 길 바깥에 차를 세워야 했다. 일몰 시간이 되면 모두가 이곳에 모일테니, 해 지는 걸 보려면 조금 일찍 와서 주차를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뷰포인트에 오르니 탁 트인 전망이 펼쳐졌다. 아래 코첼라 밸리 너머 멀리 팜 데저트까지 볼 수 있었다. 시시각각 변하는 하늘 빛을 배경으로 지는 해를 지켜보았다. 해가 지는 광경은 어디서든 아름답다. 


해가 지고 나니 금새 어둠이 깔린다. 키스 뷰를 내려와 별을 보기 위한 장소로 가는 길에 하늘은 완전히 깜깜해졌고, 숨어있던 별들이 거짓말처럼 갑작스레 모습을 드러냈다. 차창을 열고 하늘을 보던 아이들이 벌써 탄성을 지른다. 공원 내 어디서든 별을 볼 수 있지만, 공원 입구에서 먼 안쪽으로 갈 수록 별이 더 잘 보인다고 한다. 군데군데 길 가에 주차를 할 수 있는 공간마다 차를 세우고 별을 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우리가 별을 볼 곳은 화이트 탱크 캠프 그라운드 근처의 공터였다. 이곳은 주차 공간 옆으로 풀숲이 없는 널찍한 공간이 있어 돗자리를 깔고 하늘을 보기 적당했다. 

돗자리를 깔고 낮은 비치 의자 두 개를 놓고 자리를 잡았다. 밤하늘을 가로지르는 은하수와 별무리가 보석을 흩뿌린 듯 반짝였다. 머리 위를 가득 메운 별무리가 쏟아질 듯 했다. 별이 쏟아질 듯 보인다는 표현은 이젠 다른 곳에서는 쓸 수 없을 것 같다. 간간이 별똥별이 떨어졌다. 사방이 적막했다. 풀벌레 소리, 멀리 다른 곳에서 별을 보는 사람들의 말소리가 밤공기에 실려 두런두런 들렸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었다. 가끔 지나가는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헤드라이트 불빛이 우리가 혼자 있는 게 아님을 깨닫게 해주었다. 

별 보러 가는 길

은하수

밤이 되자 기온이 내려가 선선해졌지만 아직은 춥진 않았다. 10월 이후가 되면 밤엔 쌀쌀할테니 따뜻한 옷이나 담요가 필요할 것 같다. 가스 버너로 물을 끓여 컵라면을 먹고, 믹스 커피와 브루어리에서 사온 캔 맥주도 마시며 별을 보다 보니 두어 시간이 훌쩍 지났다. 열 시에 공원을 나올 계획이었지만 떠나는 게 아쉬워 미적거리다 보니 막상 공원 입구를 나온 건 열한 시가 다 되어서였다. 돌아오는 길 내내 뒷자리에서 쌕쌕거리며 잠을 자던 아이들은 별무리 사이를 나는 꿈이라도 꾸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