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6월 24일 목요일

연수일기 81. 여행과 여행 사이

6월 20일 일요일. 148일째 날. 어제 저녁 늦게 세콰이어에서 돌아와 늦잠을 잤다. 오늘은 하루 종일 아무 것도 안하고 쉬기로 했다. 어제 돌아오는 길에 베이커스필드의 코스트코에서 주유를 하고 핫도그와 아이스크림을 먹었는데, 40도가 넘는 기온에 열기가 심해 잠깐동안도 걸어다니기 힘들 정도였다. 캘리포니아 북부를 포함해 미국 많은 지역에 벌써 폭염이 심하다던데, 잠시나마 그 위력을 실감할 수 있었다. LA를 지나 샌디에고에 가까워지자 기온은 거짓말처럼 내려가 낮 최고 기온도 25도를 넘지 않는다. 겨우 200마일 거리인데 온도가 20도나 차이 나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샌디에고 날씨를 왜 좋다고 하는지 다시 실감할 수 있었다. 겨울엔 생각보단 쌀쌀하기도 하지만. 


6월 21일 월요일. 149일째 날. 콘보이의 프라임 그릴에서 점심을 먹었다. 만나나 부가 BBQ와 비슷한 한국식 고깃집이다. 만나와 마찬가지로 부페식으로 일정 금액에 무제한 고기를 먹을 수도 있다. 만나보다 가격은 약간 비싸지만 실내는 더 깔끔했다. 메뉴에 돼지갈비가 있는 것도 차이이다. 돼지갈비를 좋아하는 딸을 위해 갔는데 막상 갈비 맛은 별로였다. 대신 부채살과 삼겹살은 괜찮았다. 고기를 먹고 바로 옆에 있는 설빙에서 눈꽃빙수를 먹었다. LA를 비롯해 캘리포니아에 몇 군데 지점이 있다고 한다.


6월 22일 화요일. 150일째 날. 오랜만에 연구실에 출근했다. 저녁엔 펫코 파크에 야구를 보러 갔다. LA 다저스와의 경기였고, 입장 제한이 완전히 풀린데다 같은 지구 순위를 다투는 다저스와의 경기어서 지난 달보다 훨씬 관중이 많았다. 4만 명이 넘는 사람들은 대부분 마스크를 쓰지 않았다. 야구장 풍경만 보면 샌디에고는 이전의 생활을 거의 회복했다고 느껴질 법 했다. 관중들은 모두 흥에 겨운 모습이었다. 

양팀의 선발 투수는 클레이튼 커쇼와 블레이크 스넬. 사이영 상 수상자인 두 투수의 피칭을 보는 것도 흥분되는 일이지만 역시 당대 최고 투수인 커쇼를 직접 볼 수 있다는 건 기대가 되지 않을 수 없다. 나이를 속이진 못하는지 이번 시즌엔 예전만큼의 구위를 보이지 못하지만 그래도 커쇼는 커쇼... 라고 생각했지만 1회부터 투런 홈런을 맞았다. 이후 점수가 나지 않던 경기의 승부처는 5회. 스넬 타석에 대타로 나온 김하성 선수가 커쇼를 상대로 솔로 홈런을 날렸다. 경기장은 열광의 도가니. 슬픈 것은 피자를 사러 나왔다가 그 순간을 직접 보지 못했다는 것. ㅠ ㅠ 주변에 있던 미국 아재들과 손바닥이 아프도록 하이파이브만 열심히 했다. 

펫코 파크에서 마시는 Ballast point 맥주!


6월 23일 수요일. 151일째 날. 오전에 아이들과 공원을 산책했다. 빌린 책을 반납하러 카멜밸리 도서관에 간 아내가 도서관이 완전히 문을 열었다는 반가운 소식을 전해 주었다. 방학동안 아이들과 도서관들을 구경하러 다니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저녁엔 짐을 싸며 시간을 보냈다. 내일은 요세미티 국립공원으로 떠날 예정이다. 세콰이어에서 일주일을 보내고 돌아온지 닷새만에 다시 일주일 여행. 한국에서도 여행 짐을 챙기는 데야 이력이 났지만 이곳에 와선 더 익숙해지는 중이다. 

2021년 6월 21일 월요일

연수일기 80. 몬테시토 세콰이어 랏지(Montecito Sequoia Lodge) 패밀리 캠프

6월 13-19일. 141-147일째 날. 몬테시토 세콰이어 랏지(Montecito Sequoia Lodge) 패밀리 캠프에 다녀왔다. 방학 동안 네 개의 캠프를 예약했고, 이번 주가 그 첫 번째 프로그램이다. 

몬테시토 랏지는 세콰이어 국립공원과 킹스캐년 국립공원 경계 바깥에 있지만 양쪽 국립공원 사이, 가까운 곳에 있어 두 국립공원에 접근하기 용이한 위치다. 랏지에 가는 길이 국립공원을 통과하므로 국립공원 입장료도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남쪽 세콰이어 국립공원을 통과하는 길을 선택했다. 랏지로 가는 길에 제너럴 셔먼 트리(General Sherman Tree)를 보기 위해서였다. 풋힐 비지터 센터에 들러 국립공원 패스포트에 스탬프를 찍고 Generals highway를 따라 올라가 세계에서 가장 큰 나무인 제너럴 셔먼 트리를 만났다. 주차장에서 나무까지 이어지는 짧은 트레일을 걸어 나무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여기서 몬테시토 랏지까진 다시 30분 정도가 걸린다. 다행히 저녁 식사 시간이 끝나는 7시 전에 도착했다. 

랏지 입구에서 보이는 호수


몬테시토 세콰이어 랏지 홈페이지: https://www.mslodge.com/

이곳 랏지에선 6월에서 8월까지 10주간 여름 가족 캠프를 운영한다. 여기 캠프는 이전에 샌디에고에서 연수를 했던 동료의 추천을 받아 예약했다. 랏지 종류에 따라 캠프 비용도 달라지는데, 4인 가족이 묵을 수 있는 기본 랏지만 해도 가격이 5천불 가까이 된다. 1주일에 5백만원이 넘는 비용이니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곳을 선택한 건 우선은 동료의 추천 때문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세 끼 식사와 액티비티 비용이 모두 포함되어 있다는 점 때문이었다. 클럽메드의 미국 국립공원 버전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개인적으론 클럽메드보다 훨씬 좋았다.

결론적으론, 비용이 하나도 아깝지 않았다. 캠프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지금 남기고 싶은 기억이 너무나 많다. 캠프의 특장점 몇 가지를 정리해보자면,

1) 식사: 최고다. 샌디에고의 어느 레스토랑과 비교해도 꿀리지 않을만한 맛과 질이다. 점심, 저녁엔 각종 육류가 빠지지 않고 디저트나 과일도 하나같이 다 맛있다. 어느 날 점심엔 탕수육이 나오기도 했다. 식사 시간이 아니더라도 언제든 주방 냉장고에 남겨둔 음식을 먹을 수 있어서 배고플 틈이 없다. 입이 짧은 딸아이도 일주일 내내 잘 먹어준 식사.

2) 시설: 수십 년 된 랏지인만큼 세월의 흔적을 느끼게 된다. 깔끔한 호텔식 숙소를 기대한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우리는 숙소에 대해선 워낙 기대를 하지 않아서, 오히려 예상보다 괜찮다고 생각했다. 리모델링을 해선지 방 내부의 집기도 낡았다는 느낌이 많이 들진 않았다. 랏지 홈페이지의 사진은 실제보다 더 후지게 보여 개선이 필요할 것 같다. 물론 호텔처럼 깨끗하진 않다. 식당과 공용 공간으로 쓰는 메인 랏지는 고풍스러운 분위기가 좋다. 기타 액티비티 시설들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3) 직원: 시설이나 식당 직원들 외에 캠프에는 액티비티를 담당하는 직원들이 따로 있다. 아이들 나이에 따라 다섯 개의 반으로 나누어 각각의 반을 담당하는 직원도 있다. 직원들은 모두 활기차고 친절하다. 상당 수의 직원들은 조증이 아닌가 싶을 정도... 딸아이는 자신이 속한 반을 담당한 스태프를 너무나 좋아해 떠나기 전날 직접 쓴 편지를 전하기도 했다. 

4) 프로그램: 식사와 더불어 역시 훌륭하다. 활쏘기, 사격, 테니스, 승마, 하이킹, 산악자전거, 수영(호수/풀장), 보트 타기, 트램폴린, 아트&크래프트, 파인 아트, 기타 강습, 요가 등 너무나 다양한 액티비티나 수업에 참여할 수 있다. 아이들은 반 별로 미리 짜여진 시간표에 따라 액티비티에 참여하므로 부모들은 자유롭게 휴식을 취하거나 본인이 원하는 액티비티에 참여할 수 있다. 나와 아내는 하이킹, 가죽 공예, 머그컵 만들기, 그래피티 체험, 기타, 요가 수업 등에 참여했다. 

Tokopah Falls 트레일 중에 만난 풍경

우리 가족의 체험 흔적

오후 액티비티가 끝나면 특별한 프로그램으로, 댄스 파티, 카니발, 숙박객들이 참여하는 공연 등이 있어 소박하지만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 체크아웃 전날 오후엔 호숫가에서 술이 제공되는 비치 파티가 있었다. 매일 저녁엔 캠프 파이어와 싱어롱 시간이 있다. 결국 원한다면 아침부터 밤까지 계속 무언가를 보고 듣거나 참여하면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카니발 게임 체험

댄스 파티

캠프 파이어와 싱어롱 시간

5) 위치: 세콰이어와 킹스캐년 국립공원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랏지 앞엔 작은 호수가 있어 보트나 수영을 즐길 수 있다. 보트를 타다가 건너편의 사슴 가족을 만나기도 했다. 산책로가 잘 조성되어 있어 주변을 걷기도 좋다. 

산책을 하며 멀리서 보는 호수와 랏지 전경


6) 기타: TV는 식당에만 있고, 휴대전화 신호는 잡히지 않는다. 와이파이도 안될 거라 생각했는데 느리긴 하지만 메일이나 카톡 확인을 할 정도는 되었다. 

방학이면 아이들을 보낼 캠프를 찾게 된다. 한 번 쯤은 이런 패밀리 캠프도 좋지 않을까. 하지만 1-2년 정도의 일정으로 미국에 온 한국 가족들은 이런 캠프에 많이 참여하진 않는 것 같다. 이번 주 캠프에 참여한 사람들 중 한국인은 우리 가족밖에 없었다. 나도 동료의 추천이 아니었으면 이런 캠프가 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처음 캠프에 참가하는 가족들도 많았지만, 두 번, 세 번째 연달아 왔다는 가족들도 있었다. 애리조나 피닉스에서 혼자 아이들 셋을 데리고 11시간을 운전해 왔다는 어느 엄마는 처음 참석한 이 캠프가 너무나 좋았다며 체크아웃 날 아침에 내년 캠프를 미리 예약했다고 이야기했다. 우리도 만약 1년 더 미국에 머문다면 같은 선택을 했을 것 같다. 직접 경험하기 전엔 부담스럽게 느껴졌던 비용에 대해서도 전혀 아까워하지 않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킹스캐년 국립공원 비지터 센터와 파노라믹 포인트에 들렀다. 이곳에서의 일주일은 정말 우리 가족에게 잊을 수 없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미국에서 살면서 국립공원의 절경을 보고 지나치는 것 외에 색다른 경험을 하길 원한다면, 매일 삼시세끼를 찍으며 오늘은 뭘 해먹을 지 고민에 지쳤다면, 아이들에게 특별한 시간을 만들어주고 싶다면, 이 캠프가 해답이 될 거라 생각한다.

2021년 6월 13일 일요일

연수일기 79. 라스아메리카 프리미엄 아울렛

6월 11일 금요일. 139일째 날. 아이들 방학 첫 날이다. 라스아메리카 프리미엄 아울렛에 다녀왔다. 샌디에고에 있는 두 개의 프리미엄 아울렛 중 하나로, 북쪽엔 칼스배드 아울렛이, 남쪽엔 라스아메리카 아울렛이 있다. 그동안 칼스배드 아울렛은 세 번 정도 방문했었지만 이곳 라스아메리카 아울렛은 처음이었다. 

라스아메리카 아울렛은 멕시코 국경에 이웃해있다. 로스앤젤레스에서부터 이어지는 5번 고속도로를 타고 샌디에고 다운타운을 지나 남쪽으로 계속 내려가서 국경 전 마지막 출구로 나가면 바로 아울렛이다. 출구 전에는 마지막 출구를 지나치면 멕시코 국경으로 가게 된다는 경고 안내판이 연이어 있다. 

두 아울렛 모두 아주 큰 규모는 아니고 물건도 아주 많진 않지만 브랜드 제품을 저렴하게 사긴 괜찮다. 굳이 비교를 하자면 둘 중에선 라스아메리카 아울렛이 조금 더 크고 브랜드도 다양해 보인다. 아내는 팜스프링스의 데저트힐 프리미엄 아울렛보다도 이곳이 더 낫다고 했다. 나이키 매장이 아주 큰 편이었고, 아이들 옷을 파는 매장들도 괜찮았다. Children's place 매장에서 아이들 옷 몇 벌을 샀다. 

아직 사람이 많지 않다.

멕시코 국경 근처라서인지 이곳 매장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모두가 히스패닉인들이다. 아울렛 안에서 국경 너머 멕시코 땅이 보인다. 건너편이 티후아나의 다운타운이라 언덕에 집들이 빽빽하게 늘어서 있다. 판데믹 전엔 쉽게 국경을 건너 멕시코 본토의 길거리 타코를 먹고 올 수도 있었다고 하는데, 조만간 멕시코 땅에서 데킬라와 코로나 맥주를 마실 수 있는 날이 오길. 

가까이 멕시코 땅이 보인다.

6월 12일 토요일. 140일째 날. 엔진 오일을 교체했다. 시에나 매뉴얼엔 5천 마일마다 엔진 오일을 교체하도록 권한다. 차를 구입한 지 4개월 만에 5천 마일을 넘어 6천 마일을 채웠다. 이곳에선 차가 막히는 일이 거의 없고 고속도로 주행을 많이 해서 5천 마일을 넘겨 교체를 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다. 교환 주기를 넘기기도 했고, 내일 세콰이어 국립 공원까지 운전을 앞두고 있어 그 전에 교체하기로 했다. 

그루폰 사이트에서 반값 할인 쿠폰을 사서 가까운 Vavoline instant oil change 체인점을 찾았다. 엔진 오일과 함께 캐빈 필터도 교체했다. 직원의 권유에 얼떨결에 교체를 하긴 했지만, 황사나 대기 오염과는 거리가 먼 이곳 하늘을 보면 캐빈 필터는 굳이 한국에서만큼 자주 교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2021년 6월 11일 금요일

연수일기 78. 졸업

6월 10일 목요일. 138일째 날. 아들의 졸업식 날이다. 

고학년 아이들이 등교하는 학교 정문엔 졸업을 축하하는 풍선이 걸렸다. 캠핑 의자나 접이식 의자를 들고 마스크를 쓴 부모들이 행사장인 운동장에 들어가기 위해 입장을 기다렸다. 평소와 달리 들뜬 분위기다. 


행사장엔 연단과 졸업하는 아이들이 앉을, 각자의 이름표가 붙은 보라색 의자가 설치되었다. 아이들 의자 뒤편에 부모들이 자유롭게 자리를 잡았다. 졸업생 형제 자매가 있는 저학년 아이들도 함께 참석할 수 있다. 행사장 주변이 정리되었을 즈음, 졸업식의 시작을 알리는 미국 국가가 울렸다. 오늘 졸업할 아이들이 반 별로 교실에서 나와 줄을 지어 행사장 자신의 좌석까지 행진을 했다. 남자 아이들은 단정한 셔츠, 여자 아이들은 드레스로 한껏 멋을 낸 모습이다. 

교장 선생님과 DMUSD 대표의 졸업 축하 말씀이 끝나고, 졸업식의 꽃인 졸업 증서 수여가 있었다. 담임 선생님이 학생의 이름을 부르면 학생이 연단으로 올라와 교장 선생님께 졸업 증서를 받는다. 행사에 참여한 모두가 마스크를 썼지만 졸업 증서를 받고 기념 사진을 위해 포즈를 취하는 아이들은 잠시나마 마스크를 벗고 활짝 웃는다. 졸업 증서 수여식 이후 졸업생들을 위해 참석한 모두가 박수를 치고 환호를 하며 행사가 마무리 되었다.


올 한 해는 학교 선생님들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특별한 한 해로 기억될 것이다. 한 학기를 지내면서 여러 어려움이 있었겠지만, 대면 수업을 중단하지 않고 한 학기를 마무리했음을 자축하는 분위기였다. 우리 아이들에게도 커다란 도전이 되었던 시간이었다. 큰 문제 없이 잘 마무리한 아이들이 자랑스럽다. 아들은 졸업 동영상 자막으로 다음과 같은 짧은 소감을 담았다.

I've met a lot of people and friends here. 

There were some troubles and a little emotional problems.

But I graduated! Thank you all in C6 class and all I've met. I'll miss you. 

2021년 6월 10일 목요일

연수일기 77. 학기 마지막 주, 아들의 covid-19 백신 2차 접종

6월 7일 월요일. 135일째 날. 이곳에서 보낸 아이들의 첫 학기도 이제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다. 목요일 졸업식을 마지막으로 이번 학기도 끝이 난다. 6학년인 아들도 졸업을 한다. 

며칠 전엔 학교 학부모회에서 집 앞에 졸업을 축하하는 게시물을 깜짝 설치해 주었다. 6학년 학생이 사는 집마다 대문 앞에 꽂아두는 것이다. 종종 다른 집 대문 앞이나 창문에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를 자랑하는(?) 게시물이 붙어있는 걸 봤다. 아파트 안에서 이웃한 고등학교의 상징인 큰까마귀(raven) 그림도 자주 만날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이 높은 것 같다고 생각했었다. 집 앞 화단에 꽂혀있는 게시물을 뒤늦게 발견하곤 한편으론 감사한 마음도 들었다. 학교에 대한 자긍심이 이런 게시물을 만들게 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이런 소소한 행동이 모여 만들어진 문화가 학교에 대한 소속감과 자긍심을 높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아이들이 졸업 앨범을 가지고 왔다. 여기서는 메모리 북이라고 부르고, 6학년 뿐 아니라 전교생의 사진이 다 들어간다. 어쩌다 보니 아들은 한국과 미국 초등학교에서 각각 졸업 앨범을 받게 되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
메모리 북


6월 8일 화요일. 136일째 날. 아들이 covid 2차 백신을 맞았다. 1차 접종을 했던 UCSD 접종 센터가 이번 달부터 문을 닫아서 2차는 카운티 접종 사이트에서 가까운 장소를 찾아 신청했다. 접종 장소는 CVS였다. 약국에서 예약 사항을 확인하고, 옷 매장의 피팅룸에서 주사를 맞았다. 1차 때와 마찬가지로 접종 후 15분간 머물면서 이상 반응 유무를 확인했다. 기다리는 동안 접종을 받으러 온 사람들은 대부분 비슷한 나이의 청소년들이었다. 

화이자에선 6개월-11세 소아에 대한 백신 용량을 확인했고, 조만간 4,500명의 아이들을 대상으로 3상 임상 시험을 시작한다. 임상 시험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좋은 결과가 나온다면 올해 내에 딸아이도 백신을 맞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본다.


6월 9일 수요일. 137일째 날. 오늘부터 샌디에고 카운티의 거리두기 단계가 가장 낮은 옐로우 티어로 완화되었다. 내일 졸업식과 학기 마지막 날을 앞두고 졸업을 하는 6학년 아이들은 학교 전체 교실을 돌며 작별 퍼레이드를 했다. 6학년 반에선 아이들이 각자 만든 졸업 동영상을 부모에게 보내주었다. 며칠 전 어렸을 적 사진들을 달라고 하더니 이 영상을 만들려고 그랬나 보다. 

딸아이 반에선 작은 캠핑 파티를 열었다. 선생님은 아이들 책상에 초록색 비닐을 덮어 작은 1인용 텐트를 만들어 주셨다. 아이들은 모두 직접 염색한 티셔츠를 입고 플래시로 만든 모닥불 주위로 모여 돌아가며 책을 읽었다. 

마지막 날은 파티 데이!

2021년 6월 7일 월요일

연수일기 76. 칼라베라 호수(Lake Calavera) 트레일

6월 5일 토요일. 133일째 날. 저녁엔 아이들과 다 같이 영화나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곤 한다. 한국에서부터 있던 습관인데, 한국에선 주말에 주로 봤지만 여기선 시간이 더 많아서 평일 저녁에도 한 편씩은 보게 된다. 최근엔 '로스트 인 스페이스'를 시작했다. 정착할 행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름 모를 행성에 불시착을 하고,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하는 로빈슨 가족의 이야기가 조금은 우리 가족의 상황과 겹쳐서 더 실감나게 느껴지기도 한다. 

한국에선 자막이 있는 영화나 드라마를 쉽게 찾아 볼 수 있었지만 여기선 선택의 폭이 좁다. 구글 플레이 무비는 몽땅 한글 자막이 없고, 넷플릭스도 한글 자막이 있는 콘텐츠가 훨씬 적다. 한국 포털 사이트의 영화 콘텐츠는 이곳에서 재생을 할 수 없다.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볼 수도 있겠지만 여기서 굳이 그렇게 하고 싶지는 않다.  


6월 6일 일요일. 134일째 날. 칼라베라 호수(Lake Calavera)에 다녀왔다. 칼스배드의 북동쪽 끝에 위치한 호수로, 집에서 30분 정도 걸린다. 칼라베라 힐즈 중학교 건너편에 길가 주차를 하고 트레일 헤드로 들어가면 정면에 댐이 보인다. 



작고 아담한 호수와 댐을 여러 갈래의 길이 둘러싸고 있다. 호수에서 가장 가까운 메인 트레일을 통해 호수를 한 바퀴 돌 수 있다. 중간에 피크닉 테이블이 하나 있어 쉬면서 준비해 간 김밥을 먹었다. 전체 트레일 길이는 4마일이 넘지만 메인 트레일만 보면 1.5마일, 쉬지 않고 걸었을 때 40분 정도면 충분하다. 대부분 평지라 어린 아이들과 산책하기에도 좋은 길이었다. 호수 북쪽 길은 유모차를 끌고도 갈 수 있을 만한 길이다. 경사가 심하지 않아서인지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많았다. 

나무 데크가 깔린 길도 있다.


칼라베라 마운틴 트레일을 따라서는 언덕에 오를 수도 있다. 높이는 156m에 불과해 마운틴이라 부르기 민망하지만 정상에서 보는 경치도 괜찮을 것 같다. 수백만 년 전엔 이 언덕이 화산이었다고 한다.

왼쪽에 칼라베라 마운틴이 보인다.

캘리포니아의 트레일 코스들이 대부분 그렇듯, 이 지역도 특이한 동식물들을 많이 볼 수 있다고 한다. Roadrunner라고 불리는 새(학명은 Geococcyx californianus) 가족 세 마리를 만났다. 학명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새는 멕시코와 캘리포니아 근방에서 주로 서식한다고 한다. 종종걸음을 치며 차례로 길을 건너는 모습이 귀엽기도 하고 우습기도 하다. 동물을 좋아하는 아들에겐 이 새를 본 몇 초 동안이 오늘의 순간.

돌아오는 길에 칼스배드 프리미엄 아울렛에 들러 딸아이의 후드티를 사려 했는데 적당한 걸 찾지 못했다. 대신 샌디에고 파드리스 모자를 하나 샀다. 다음 번 야구장에 갈 때 써야겠다. 

2021년 6월 5일 토요일

연수일기 75. 라호야 쇼어스(la Jolla Shores) 비치

6월 3일 목요일. 131일째 날. 이틀 전 생겼던 BPPV로 인한 현기증은 하루가 지난 다음 날엔 나아졌다. 다행히 정복술이 효과가 있었던 것 같다. 오늘은 평상시 목요일과 같이 출근할 수 있었다. 

아내의 캘리포니아 운전면허증이 우편으로 도착했다. 내 경우엔 실기 시험을 보고 1주일 정도, 아내도 2주가 채 안되어 도착했다. 이제 이곳에 있는 동안 DMV에 다시 갈 일은 없을 것 같다. 주토피아의 나무늘보 이미지로 대표되는 DMV의 느린 업무 처리 속도를 경험하진 못했는데, 우리가 운이 좋았던 건지 아님 샌디에고의 DMV 서비스가 나아진 건지는 모르겠다. 이제 두 명 다 신분 확인을 위해 여권을 준비하지 않아도 되어 맘이 더 홀가분하다. 


6월 4일 금요일. 132일째 날. 오후에 라호야 쇼어스 비치에 다녀왔다. 델 마르 비치처럼 잔디 공원과 해변이 붙어 있으면서도, 이곳은 공원과 해변 사이에 경사가 없고 무료 주차가 가능한 주차장이 바로 옆에 있다는 점이 더 좋다. (델 마르 비치 바로 앞의 주차장은 2시간에 30불이고 무료 주차를 하려면 몇 블록을 걸어야 한다.) 주차장 너비에 비해선 사람들이 많아 오후엔 주차 슬롯이 다 차있는 경우가 많지만, 조금만 기다려도 빈 자리가 생기니 주차가 힘들진 않은 것 같다.

델 마르 비치는 동네 해변의 느낌이라면 이곳은 좀더 관광지 느낌이 난다. 우리에겐 소박하고 예쁜 델 마르 비치의 분위기가 더 좋았지만, 사람마다 달리 느껴질 수 있을 것이다. 





돌아오는 길에 웨스트필드 UTC 몰에 들렀다. 딸아이의 옷을 사기 위해서였지만 마음에 드는 옷은 찾지 못했다. 대신 쉑쉑버거를 먹었다. 서부는 인앤아웃, 동부는 쉑쉑이라고 하지만 두 브랜드는 가격 차이가 워낙 커서 비교가 어렵다. 패티의 질만 보자면 쉑쉑이 나았지만(햄버거를 잘 안 먹는 딸도 쉑쉑 버거는 괜찮다고 한다.), 가격과 맛 모두를 고려하면 나와 아내에겐 인앤아웃 압승. 미국을 대표하는 버거 체인 중 하나인 파이브 가이스 체인점도 많이 보이는데, 조만간 먹어보고 세 버거 브랜드를 비교해보려 한다.

2021년 6월 3일 목요일

연수일기 74. CDC의 변경된 마스크 관련 지침에 대해

6월 2일 수요일. 130일째 날.

백신 접종을 완료한 사람은 마스크를 쓰지 않아도 된다는 CDC의 5월 13일 발표 이후, 많은 사람들이 이 발표로 인해 백신을 접종하지 않은 사람들까지 마스크를 벗게 됨으로써 새로운 환자 발생이 늘어날 것이란 우려를 했다. 반면에 백신 접종을 하면 마스크를 벗고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이 백신 접종을 주저하던 사람들에게 백신을 맞을 동기를 줄 것이란 긍정적인 전망도 있었다.

NY Times의 오늘 칼럼을 보면 긍정적 전망에 조금 더 기대어봐도 될 것 같다. 이 칼럼에서는 그 근거로 두 가지를 들고 있다.
첫째는 5월 13일 이후에도 새로운 환자 발생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문가들은 CDC 발표 이후 실제로 일부 백신을 맞지 않은 사람들도 마스크를 벗고 있지만, 환자 발생 추이를 바꿀 만큼 영향이 크진 않았을 것으로 분석한다. 물론 백신을 맞은 사람들은 마스크를 벗어도 바이러스를 퍼뜨릴 위험이 극히 낮다.
둘째는 4월 중순 이후 지속적으로 줄어들던 백신 접종자 수가 CDC 발표 이후 감소 추세를 멈추었다는 점이다.(접종 대상 연령으로 새로 추가된 12-15세 청소년을 더하면 하루 백신 접종자 수는 오히려 늘었다.) CDC 발표가 있던 날, 내 주변의 백신 접종 장소를 안내하는 vaccines.gov 사이트의 트래픽이 급격히 증가했고 이후에도 발표 이전에 비해 늘어난 트래픽을 보이고 있다는 점은 접종자 수 추이의 변화에 CDC의 발표가 영향을 주었음을 시사한다.
위기의 상황에서 느끼는 '공포'가 일시적으로 건강 관련 행동을 바꿀 수 있지만, 이러한 효과는 제한적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공포가 가져온 효과는 오래 가기 힘들고 필연적으로 저항과 반작용을 만나게 된다. 반면 '희망'이 불러일으킨 행동 변화는 좀더 오랫동안 유지 가능하다. 그러므로, 백신을 맞지 않으면 코로나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죽을 수도 있다라는 무시무시한 메세지만으로 끝나선 안된다. 심리학에서 말하는 긍정적 강화(positive reinforcement)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메세지가 필요하며, 그 내용은 구체적일 수록 좋다. 백신을 맞으면 더이상 자신의 삶을 제한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고 식당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것, 쇼핑을 하고 영화를 볼 수 있다는 것, 친구들을 만나고 친척들과 포옹을 나눌 수 있다는 것. 대중에게 이러한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 주는 효과를 우리는 지금 목격하고 있으며, 이는 긍정적 강화가 사람들의 건강 관련 행동에 영향을 준 또 하나의 사례로 기억될 지도 모르겠다.

백신을 맞으면 할 수 있는 일들
출처: https://www.cdc.gov/coronavirus/2019-ncov/vaccines/fully-vaccinated.html


한국의 질병관리본부도 백신 접종자는 거리두기 완화가 가능하다는 지침을 발표했다. 이전과는 다르게 언론도 백신 접종을 독려하고 있다.(최근 주요 신문의 논조는 개인적으로 어리둥절하게 느껴질 만큼의 태세 전환인데, 내가 한국에 없어서 더 그렇게 느껴지는 지는 모르겠다.) 백신 접종자가 600만명을 넘어서고, 하루 50만명 씩 접종을 하고 있다는 뉴스를 봤다. 노쇼 백신을 예약하기가 어렵다는 소식도 있었다. 미국에서 목격하는 희망적인 추세가 계속 이어지기를, 그리고 한국에서도 '희망'이 불러일으키는 효과를 모두가 경험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2021년 6월 2일 수요일

연수일기 73. 어지럼증 병상 일기

6월 1일 화요일. 129일째 날. 아침에 침대에서 일어나는데 갑자기 시야가 핑 돌았다. 방 천장이 반원의 원주를 따라 돌았다가 다시 곧바로 되돌아오는 식으로 계속 돈다. 몸을 일으켰다가 침대에서 내려올 수가 없어 다시 누웠다. 최근 며칠간 아침 기상 시에 약간의 어지럼증을 느꼈는데,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어지럼증 외에 다른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빙빙 도는 시야 때문에 울렁거림이 생겨 눈을 감고 어지럼증의 원인이 뭘지 생각했다. 아무래도 양성발작성두위현훈(Benign Paroxysmal Positional Vertigo, BPPV)이 생긴 것 같았다. 

BPPV는 어지럼증의 흔한 원인 중 하나이다. 이석증이라고도 불리는데, 내이의 이석기관에서 떨어져 나온 이석이 반고리관을 자극해 어지럼증이 생긴다. 주로 아침 기상 시에 자리에서 일어날 때 생기는 경우가 많다. 가만히 있을 때는 괜찮지만 머리의 위치를 변화시키면 어지럼증이 유발되고, 머리를 움직이지 않고 기다리면 대개 1분 이내에 가라앉는다. 어지럼증과 함께 특징적인 안진(nystagmus)이 발생한다. 내 증상은 아주 전형적이었다. 

아이들을 학교에 내려주고 출근도 해야 하니 그래도 일어나보려 했다. 화장실로 가는데 가라앉았던 어지럼증이 다시 확 밀려와 화장실 앞에서 주저앉았다. 기어가다시피 욕조로 가 구토를 했다. 오늘 집에서 나가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아이들은 아내가 데려다 주었다. 다시 침대에 누워 오늘 연구실에는 나가지 못하겠다는 메일을 보냈다.

BPPV의 치료는 빠져나온 이석을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이석 정복술'이다. 대개는 의사가 환자에게 머리 방향을 지시하고 동작을 도와 시행하지만 방법을 잘 안다면 환자 스스로도 시행할 수 있다. 내친 김에 시도해 보기로 했다. 우선 Dix Hallpike 유발 검사를 통해 어지럼증과 안진이 발생하는지 확인해야 한다. 앉은 자세에서 뒤로 누우면서 머리를 45도 정도 옆으로 돌려 침대 아래로 떨어뜨리고 증상 여부를 확인한다. 왼쪽은 심하지 않았지만 오른쪽으로 머리를 돌리고 유발 검사를 하니 바로 증상이 생겼다. 안진은 내 자신이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이석 정복술 방법은 유튜브 영상으로도 확인할 수 있다. 진료실에서 환자에게 가끔 시행한 적이 있었지만 내가 스스로 해보게 될 줄은 몰랐다. 유발 검사와 정복술을 셀프 시행하는 과정에서 또 화장실로 가 구토를 해야 하기도 했지만 그럭저럭 마무리를 했다. 정복술 뒤에는 한동안 머리를 세우고 앉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일어나긴 힘들어 침대에 기대어 한참동안 쉬었다. 속이 울렁거려 책을 읽기도 힘들고 움직일 수도 없으니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다. 

Epley maneuver at home

놀란 아내가 응급실에라도 가야하지 않겠냐고 했지만, BPPV의 경우 딱히 다른 치료법이 없다. 증상이 워낙 전형적이고 정복술도 했으니 기다려보기로 했다. 일단 응급실에 가면 여러가지 복잡한 절차를 겪어야 할 것이고, 정확한 감별을 위해 행여 MRI와 같은 영상 검사를 받기라도 하면 진료비가 어마어마하게 나올 것이다. 의사인 나는 자가 진단과 조치가 가능했지만, 의사가 아니었다면 바로 응급실로 달려갔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당장 이런 문제가 생기면 어느 병원으로 가야 했을까? 911을 부르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이것도 만만치 않은 비용이 청구될 것이다. 내가 가입한 여행자 보험이 이 비용을 모두 커버해 줄 수 있을까? 새삼 이곳 의료 체계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 생활을 준비할 때 모든 이들이 걱정하는 부분이 의료 문제이다. 사고로 응급실에 갔다가 청구서에 프린트 된 엄청난 금액에 까무러칠 뻔했다는 경험담은 쉽게 찾아볼 수 있고, 되도록 병원엔 발을 들이지 않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는 수없이 들었다. 보험이 없다면 문제가 더 크겠지만, 보험이 있어도 보험금 지급 과정에서 이런저런 귀찮은 문제들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미국에 오기 전에 미리 건강 상태를 확인하고 치료가 필요한 문제를 미리 해결하려 한다. 미국행 비행기 짐엔 상비약을 잔뜩 넣는다. 

우리 가족도 마찬가지였다. 연수를 떠나기 몇 달 전부터 준비했다. 나는 1년 전부터 말썽이던 오른쪽 어깨의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MRI를 찍었다. 예상대로 인대의 손상이 발견되었고, 손상 정도가 꽤 심하긴 하지만 수술을 받지 않고 스트레칭을 하며 지켜볼 수도 있겠다는 의견을 받았다. 만약 미국행 일정이 없었다면 수술을 받았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 미국에 온 이후 통증은 많이 나아진 상태이다. 아들은 제작년에 다친 무릎이 좋지 않아 진료를 받는 과정에서 역시 MRI 촬영을 했고 큰 문제는 아니라는 걸 확인했다. 연수가 미뤄지면서 출국을 기다리는 동안 아들의 무릎은 다행히 좋아졌다. 역시 미국에 올 계획이 없었다면 MRI를 찍지 않고 좀더 기다려볼 수도 있었을 것이다. 평소 치아가 썩 좋지 않은 아내는 출국 전에 점검을 위해 다니던 치과 진료를 받았다. 

오전 내내 침대에서 시간을 보냈다. 다행히 오후엔 증상이 한결 나아져 침대에서 내려와 걸어다닐 수 있었다. 이 정도로 큰 문제가 없이 나아질 수 있어 다행이다. 아내의 경우 이전에도 각막에 상처가 나고 염증이 종종 생겼는데, 얼마 전에도 비슷한 증상이 생겨 한국에서 처방을 받아 가져온 안연고를 꾸준히 넣고 증상이 좋아졌다. 물론 한국이었다면 동네 안과에 가서 진료를 받았을 것이다. 이곳 생활에선 나와 아내가 의사라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사고나 외상이라도 생기는 경우엔 별 수 없이 이곳 병원에 가야 할 것이다. 그런 날이 오지 않길.

2021년 6월 1일 화요일

연수일기 72. 엘핀 포레스트(Elfin Forest) 트레일

5월 30일 일요일. 127일째 날. 캘리포니아 디즈니랜드를 가기로 했었는데 어제 밤에 예약을 취소했다. 현재는 티켓 구매와 별도로 방문을 미리 예약해야 하며, 하루 전까지는 예약 취소가 가능하다. 재개장을 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 거리두기가 완전히 풀리지 않아서 운영하지 않는 놀이 시설도 있는 데다 무엇보다 대부분의 공연을 하지 않는 상태이다. 어드벤처 파크에서 하는 '프로즌' 뮤지컬 공연도 작년 3월 이후 닫혔다고 한다. 길거리에서 만날 수 있는 어벤져스 캐릭터들도 개점 휴업 상태라고 하니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던 분위기를 느끼긴 어려울 것 같다. 

6월 4일에는 개장 준비 중인 생텀과 어벤져스 본부를 포함해 어벤져스 캠퍼스(https://youtu.be/r8t28WOEZNA)도 완전 개장을 한다. 6월 15일까지는 캘리포니아 주민만 입장이 가능해 붐비지 않을 거란 장점은 있지만, 그래도 티켓 가격이 후덜덜하니 즐길 거리가 더 많아진 이후에 가기로 했다. 그동안 아이들과 같이 어벤져스 시리즈나 다시 복습해야겠다. 일정이 급 취소된 덕분에 하루 종일 집에서 쉬었다. 


5월 31일 월요일. 128일째 날. 메모리얼 데이 연휴의 마지막 날이다. 엘핀 포레스트 Elfin forest recreational reserve에 다녀왔다. 샌디에고 시 북쪽, 에스콘디도 근처로 집에선 30분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다. 입구 주차장엔 슬롯이 많지 않고 만차여서 입구 바깥의 갓길에 주차를 했다. 나중에 알았지만 입구 바깥 갓길은 주차를 할 수 없는 곳이라 견인이 될 수 있다고 하니 따로 있는 보조 주차장을 이용하는 것이 좋겠다. 

주차장 안쪽의 트레일 헤드를 지나면 작은 강 Escondido creek을 만난다. 강이라기 보다는 시냇물 정도인데, 한국에선 동네 뒷산을 가도 쉽게 볼 수 있지만 샌디에고 주변의 트레일에서 이런 물길을 보는 건 드문 일이다. Escondido creek의 물길은 에스콘디도 동쪽의 Lake Wohlford에서 시작해, 얼마 전 애니스 트레일에서 보았던 San Elijo Lagoon 까지 이어지고 태평양으로 흘러 들어간다고 한다. 

Escondido creek

정상까지 이어진 Way up trail의 길이는 1.4마일 정도인데, 경사가 꽤 있는 언덕길이라 등산을 하는 기분이 들었다. 정상의 높이는 1300피트(390미터) 정도이니 서울의 남산이나 아차산 보다 높다. 서울 시내만 해도 이보다 높은 산들이 많고 이 정도가 그리 험한 등산 코스라 할 수 없지만, 이곳에선 쉽게 경험하지 못할 만한 코스일 것이다. 샌디에고 사람들에겐 색다른 트레일 코스일 수도 있을 듯 하다. 하지만 등산 코스로 보면 올라가는 길이 너무 밋밋해 한국의 산들에 비하면 오르는 재미가 덜하다. 

Olivenhain Reservoir

정상 가까이 가면 Olivenhain Dam & Reservoir를 만나게 된다. 높은 곳에 댐과 저수지가 있는 풍경이 색다르다. Ray Brooks Overlook의 그늘막 아래에 앉아 바람을 쐬니 햇볕의 열기와 땀이 금새 식고 시원함을 느낀다. 준비해 간 과일과 물을 마시며 30분 정도 쉬다가 내려가기로 했다. 올라갈 땐 1시간 반, 내려올 땐 1시간 정도가 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