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3월 16일 화요일

연수일기 32. 학부모 상담

3월 15일 월요일. 51일째 날. 오후에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 중간에 있었던 방학 1주일을 제외하고, 지난 주까지 아이들이 딱 4주를 학교에서 지냈다. 아이들과 있는 시간이 늘어서 한국에서보다 더 학교 생활에 대한 이야기나 아이들의 생각을 듣는 기회도 많아졌지만, 담임 선생님들은 아이들의 학교 생활을 어떻게 바라보고 계신지 궁금했다. 

지난 주에 선생님들께서 미리 report card를 보내주셨다. 평가 항목은 Learning and Behavioral outcomes, Standards for Mathematical Practice, Academic Scoring Key의 세 그룹이었고, 마지막 항목의 경우 Mathematics, Reading, Writing, Language, Social studies, Science, Fine arts and Physical education의 세부 항목으로 나뉘었다. 각각의 항목을 Exceed / Secure / Developing / Beginning의 네 단계로 평가했다. 첫째 아이의 경우 대부분의 항목이 S였고, 둘째는 첫 번째 그룹 외에는 대부분 D나 B였다. 전체적인 형식은 한국 학교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맨 끝에 선생님의 자유 코멘트가 있었다. 

- Gabe is a hard-working, respectful student. He prefers to work independently or with classmates, rather than getting help from the teacher, and has shown a strong ability to work and learn in English. He is allowed to use Google Translate when needed, and clearly uses it effectively to support his understanding. He consistently performs at or above grade level in math, solving challenging word problems. For reading during Black History Month, he selected a scientist to study and read an article and created an informational poster. Most recently he performed amazingly well on a thermal energy science test, demonstrating a strong understanding of not only the concepts, but the high-level academic language in English. Socially, Gabe is quiet and well-liked. I've observed him helping a classmate learn to fold a paper crane and playing four-square outside. Gabe is a joy to teach.

- Lynn has been a wonderful addition to the classroom. She is rapidly making progress and attempting things in English more frequently. She has made friends and is a joy to work with. She would benefit from continued exposure to English through reading and writing.

아들의 담임선생님께서는 i-Ready라고 하는 프로그램의 평가 점수를 미리 보내주셨다. i-Ready는 읽기와 수학 능력을 게임 형식의 학습으로 평가할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보이는데 아이들 학교가 속한 Del Mar 학군은 이 프로그램을 학습 레벨 평가 방법으로 채택하고 있었다. 한국 아이들은 대부분 수학 과목은 큰 어려움을 느끼지 않는다던데, 초등학교 레벨 교과 과정에 차이가 있는 것도 이유겠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이 선행을 해서이기도 할 것이다. 학원에 가보지 않은 우리 집 아이들도 1년 정도 앞서 문제집을 풀고 있으니... 아이들이 가져오는 수업 자료를 보면 수학의 경우 문제 수준이 높지 않지만 답을 구하는 과정에서 풀이를 중요하게 여기는 걸 알 수 있다. 

Math Performance

상담은 zoom을 통해 진행했다. 각각 15분 정도의 시간이었는데, 영어 상담이라 좀 긴장을 했지만 다행히 선생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에 큰 어려움은 없었다. 아이들의 담임 선생님을 포함해 직접 이야기해 본 선생님들은 소수이지만 대부분이 열정적이었다. 선생님들의 봉급이 그다지 높지 않다고 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육자로서의 책임감과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에 대한 애정과 열정은 높다고도 했다. 굳이 한국과 비교할 필요는 없겠지만 만약 차이가 있다면 결국 환경과 시스템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 미국의 교육에 대해선 또 언젠가 생각을 정리할 기회가 있을 것이다. 

2021년 3월 15일 월요일

연수일기 31-1. Gabe's diary: 스케이트 보드

미국 아이들은 스케이트 보드를 많이 탄다. 어딜 갈 때마다 항상 보드를 타는 꼬맹이, 친구, 형들이 있다. 그래서 나도 덩달아 타보기로 했다. 멋져 보이기도 하고, 나중에 한국에 돌아가서 자랑거리가 될 수도 있을 것 같다.(농구도 잘 하고 보드도 잘 타면 너무 완벽하지 않은가.) 하지만 자랑을 하려면 무엇보다 잘 타야 한다. 공원에 가면 나보다 훨씬 작은 꼬마들도 보드 위에서 점프를 한다. 한국에선 절대 볼 수 없는 광경이다. 그 모습을 보고 다짐했다. 보드 마스터가 되어야지. 꼬마들도 잘 타는데 금방 배울 수 있겠지. 

하지만 보드를 산 지 2주일 정도 지난 지금, 몇 번 타지 않은 보드는 차고 구석에 처박혀 있다. 솔직히 학교 생활과 수영, 농구 때문에 힘들어서 보드를 탈 여유가 없기도 하다. 하지만 보드는 내가 타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게 사실이다. 과거의 나에게 미안하기도 하고 이대로 방치하면 안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이제부터 진짜 열심히 연습을 해 볼 것이다.(마치 다이어트를 시작하는 사람 같다.) 그래서 오늘 아침엔 꼭 보드 연습을 하리라 다짐을 했지만, 일기를 쓰는 지금엔 그 다짐이 실패로 돌아갔다는 걸 고백한다. 

2주 전, 스케이트 보드가 집에 도착한 뒤 첫 보딩을 앞두고 가벼운 마음으로 동영상을 보았다. 왕초보도 이것만 보면 기초 해결이란 제목의 동영상이다. 영상에서는 보드에 올라서는 법과 발로 미는 법, 방향 전환 하는 법 등을 알려주었다. 쉬워 보였다. 하지만 보드에 처음으로 발을 올리는 순간, 온 몸이 후들거려서 서 있을 수가 없었다. 균형을 잡는 게 생각보다 어려웠다. 발로 땅을 밀어 보았다. 원래 속도를 내야 하는데 넘어지는 게 싫어서 아주 천천히. 삼십 분쯤 연습을 하니 좀 익숙해지는 것 같았다. 동영상에서 배운 방향 전환도 시도해 보았다. 

아직 속도는 거의 굼벵이 수준이고 속도가 나지 않으니 금새 멈춰 버린다. 보드를 타고 날아다니는 꼬맹이들은 얼마나 연습을 한 건지 모르겠다. 일단 그날은 헬멧과 보호대 때문에 땀이 나서 오래 연습하지 못했다. 날씨는 왜 벌써 더워진걸까. 그 이후로는 타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게 된다. 나중에 자랑을 하려면 더 열심히 연습해야 할텐데. 

연수일기 31. Daylight Saving Time

3월 14일 일요일. 50일째 날. 썸머 타임을 시작하는 날이다. 여기서는 Daylight Saving Time (DST)이라고 부른다. 시계를 한 시간 앞으로 당기는데, 자정이 아닌 새벽 2시에 시간이 바뀐다고 했다. 미국에서 이 제도를 처음 시행한 것은 1918년이고, 이전에는 4월부터 시작했지만 2005년 이후에는 3월 둘째 일요일로 시작 날짜가 앞당겨졌다고 한다. 일요일에 시작하는 것은 하루라도 바뀐 시간대에 적응을 할 수 있는 시간을 주기 위함일 것이다. 어렸을 적 썸머 타임 시작 전날 탁상 시계를 돌려 맞추었던 기억이 나 찾아보니 우리나라에서 이 제도가 시행되었던 건 내가 중학생 때인 1987년부터 2년 간이었다. 올림픽 개최로 잠시 도입했다가 없앴다고 하니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 짝이 없는 일이다. 군사 정부 아래에 있었던 때라 가능했을 것이다.

해가 떠있는 시간에 활동을 더 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는 일견 합리적이지만 바뀐 시간대로 인한 혼란과 생체 리듬 변화로 인한 건강 문제 등 부작용이 많아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많다고 한다. 2008년 스웨덴 연구자들이 NEJM에 발표한 연구에 따르면 DST 시작 후 첫 주에 급성 심근 경색 발생율이 5% 높아지고, 반대로 가을에 DST가 끝나고 시간을 늦추면 심근 경색이 줄어들었다. 

https://www.nejm.org/doi/full/10.1056/nejmc0807104

2019년에 발표된 논문에서는 2015년까지 발표된 일곱 개의 연구를 메타 분석한 결과 역시 DST 시작 후 심근 경색이 5% 높았다고 했다.   

https://www.ncbi.nlm.nih.gov/pmc/articles/PMC6463000/

대부분의 연구자들은 DST와 심장 질환 사이의 관련성이 수면 사이클의 변화에서 기인한다고 말한다. 수면 사이클과 건강이 밀접한 관련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고, 하루 아침에 기상 시간을 당긴 것이 수억 명 중에서 일부, 특히 건강이 좋지 않은 이들에게 영향을 줄 가능성은 충분하다.  

DST 시작 첫 주엔 교통 사고도 급증한다고 한다. 전기가 없는 시대도 아닌데 이 제도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문도 있다. (실제로 전기료 절감에는 큰 도움이 안된다고 한다.) 애초에 해가 떠 있는 동안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였고, 아침에 낭비되는 햇볕을 아끼자는 아이디어에서 출발했다고 하니 효율만을 중요시하는 대표적인 제도라고 할 수도 있겠다. 일찍 일어나면 해가 있는 시간을 운동이나 건강한 생활 습관에 쓸 수 있다는, 말그대로 매우 '건강한' 주장은 이 제도를 처음 생각해낸 벤자민 프랭클린이나 처칠과 같은 이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일 듯 하다. 우리가 아끼던 말던 해는 전날과 비슷한 시간에 같은 자리에서 뜨고 진다. 

이게 좋은 제도인지는 생각해봐야 할 것 같다. 사흘이 지났지만 오전 시간에 몸이 무거운 것이 아직 바뀐 시간대에 완전히 적응이 안된 듯 하다. 나이가 들수록 환경에 대한 적응력은 수직 강하... 아이들을 아침에 깨우기도 더 어려워졌다. 취지가 무색하게도 아직은 아침에 이전과 같은 시간에 깨면 하늘이 어둑해 햇볕을 보기 어렵다. 아내와 달리 아침 잠이 많은 나에게 유일한 장점은 일어나서 아침 노을을 볼 수 있다는 것 정도.

아침에 문을 열고 나오면 이런 하늘을 볼 수 있다.


2021년 3월 14일 일요일

연수일기 30. 솔라나 비치의 일몰, 사파리 파크

3월 12일 금요일. 48일째 날. 오늘 금요 연구 미팅에서는 Johns Hopkins의 Kunihiro Matsushita 교수를 초청해 Peripheral Artery Disease에 대한 발표를 들었다. 심근 경색이나 뇌졸중 등의 질환에 비해 상대적으로 주목을 덜 받는 말초동맥질환 관련 최신 연구들을 통해 해당 질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진료실에서 흔히 접하는 임상적인 내용이라 발표 내용을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후로 박사후 연구원의 발표가 있었는데, 그동안 진행해온 연구 프로젝트와 앞으로의 계획을 소개하는 내용이었다. 연구 과제에 지원하고 연구비를 받는 것을 포함해 연구 그룹에 속한 이들이 실제적인 조언을 나누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오후 늦게 아이들과 솔라나 비치 Solana beach에 갔다. 날이 쌀쌀해 해변을 오래 걷진 못했다. 근처의 피자 포트 Pizza Port 브루어리에서 새우가 들어간 피자를 샀다. 매장 내에서 크래프트 맥주를 함께 마시지 못해 아쉬웠지만, 그래도 피자 맛이 좋았다. 아이들도 잘 먹었다. 아들 키가 어느새 부쩍 자란 것 같은데, 그래선지 요즘은 먹는 양도 늘었다. 하긴 한국에서보다 운동량이 엄청 늘었으니 당연한 일이다. 플래처 코브 비치 공원에 차를 세우고 피자를 먹으며 저녁 하늘을 바라보았다. 해가 저물어가면서 시간이 지나는 게 아쉬울 정도로 하늘 빛이 예뻤다. 

솔라나 비치의 일몰. 해 지는 걸 보며 한참을 머물렀다. 


3월 13일 토요일. 49일째 날. 사파리 파크에 다녀왔다. 샌디에고 동물원에서 운영하는 공원으로, 다운타운에 있는 동물원과 달리 샌디에고 시내의 북동쪽 외곽에 위치하고 있다. 집에서 가기엔 더 가까운 곳이다. 지금은 seaworld와 마찬가지로 방문을 위해서는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메일로 받았던 임시 연간 회원권 바코드를 입구의 티켓 창구에서 실물 카드와 교환할 수 있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트램을 운영하지 않아 사바나와 평원의 동물들을 보는 데에는 제한이 있었지만, 워낙 넓은 곳이라 어차피 하루에 모든 곳을 돌아보기는 어려웠다. 서너 번은 와야 충분히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네 시간 정도에 걸쳐 쉬엄쉬엄 둘러 보았지만 걸어서 볼 수 있는 구역도 다 보지 못했다. 아프리카를 모티브로 한 구역이 많았지만 walkabout australia라는 이름의 왈라비, 오리너구리와 같은 호주 동물들을 볼 수 있는 구역도 있었고, world garden이란 이름의 선인장 정원 언덕도 있었다. 시선이 가는 곳마다 기부자의 이름이 새겨진 현판이 눈에 들어왔다. 기부가 보편화된 미국의 문화를 느낄 수 있었는데, 조형물과 담장, 벤치 등 곳곳에 설치된 현판을 보니 조금은 과하다 싶은 생각도 들었다. 

동물들을 보는 것 외에도 산책로와 조경이 훌륭해서 걷는 것이 즐거웠다. seaworld도 그랬지만 예약제 운영이라 아직까진 사람이 많지 않아 방문하기엔 더 좋은 거 같다. 날씨가 너무 더워지기 전에 다시 오고 싶은 곳이었다. 트램을 타고 초원을 거니는 동물들도 볼 수 있게 되기를.

선인장이 가득한 World Garden 꼭대기에서 바라본 풍경


2021년 3월 13일 토요일

연수일기 29. 샌디에고 날씨 이야기

3월 10일 수요일. 46일째 날. 비 예보가 있었는데 점심 때가 되자 구름 사이로 파란 하늘이 보였다. 오후에 아이들을 데리러 갈 때는 종종 걸어서 다녀오곤 한다. 오늘도 걸어서 학교에 가는데 금새 먹구름과 바람이 몰려오더니 학교에 다 와서는 비가 흩뿌리기 시작했다. 비가 오다가 금새 멈추기도 해서 일단 학교 앞에서 아이들을 기다리는데 갑자기 빗줄기가 굵어지더니 우박이 떨어진다. 살면서 그렇게 큰 우박은 처음 보았다. 작은 사탕알만한 얼음 덩어리가 후두둑 소리를 내며 쏟아졌다. 어떻게 집에 돌아가나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십 분 정도 세차게 내리던 우박은 아이들이 나올 때가 되자 멈췄지만 빗줄기는 약해진 채 계속 내려 H 선생님 차를 얻어타고 집에 돌아왔다. 

연수 장소가 샌디에고로 정해졌을 때 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샌디에고 생활에서 무엇보다 좋은 건 날씨라고 이야기했다. 여름엔 에어컨이 필요 없고 겨울엔 히터가 필요 없다고 했다. 날씨가 좋다는 이야기를 하도 들어서 우리도 그렇게 생각하고 출국을 준비했고 두꺼운 옷은 거의 가져오지 않았다. 

지금까지 살아보니 날씨는 실제로 좋았다. 하늘 색깔이 이렇게 파랗게 보일 수 있구나 하는 걸 매일 느낀다. 햇볕은 따스하고 공기는 깨끗하다. 하지만 생각보단 기온이 낮았고 바람이 많이 불어 쌀쌀하게 느껴질 때도 많았다. 나와 아이들에겐 쾌적한 날씨지만 추위를 많이 타는 아내는 춥다는 소리를 매일 달고 산다. 흐리고 비가 오는 날도 생각보단 많았다. 

"오늘 날씨는 어때요?" 

"어제랑 비슷해."

아침에 입을 옷을 고르는 딸아이와 자주 하는 대화이다. 겨울 치고는 정말 따뜻하니 말로만 듣던 지중해성 기후를 느낄 수 있다. 매일매일의 날씨에도 큰 변화가 없다. 한국에서처럼 절기가 바뀌면서 거짓말처럼 새 계절을 느끼는 일은 앞으로도 없을 것이다. 

1년 내내 무더위나 한파는 없지만, 반면에 섭씨 10~20도 근방을 오가는 날이 오랫동안 지속된다. 바람이 불면 체감온도가 더 내려간다. 이 날씨에 추위를 느끼는 사람들은 6개월이 넘게 겨울 옷을 꺼내두어야 할 수 있다. 샌디에고에서 살아보지 않은 사람들이 흔히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날씨라는 사실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5월과 6월까지도 흐린 날이 종종 있어 이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May Gray", "June Gloom"이란 말도 흔히 한다. 

샌디에고 월별 평균 기온과 강수량


둘째가 집에서 친구와 놀다 다툼이 생겨 울었다. 저녁엔 코스트코 치킨 뼈로 닭육수를 우려 수제비를 끓였다. 쌀쌀한 날씨에 오랜만에 뜨끈한 국물 음식을 먹으니 마음까지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남은 수제비를 H 선생님 댁에 가져다 드렸다. 


3월 11일 목요일. 47일째 날. 오전에 J 선생님 댁에서 커피를 마셨다. 아들은 오후에 있는 워터 폴로와 농구 수업에 가기 싫은지 짜증을 부렸다. 서너 번 씩만 참여한 상태라 아직 수업에 재미를 느끼긴 어려울 것이다. 워터 폴로 운동 강도가 높아 몸이 힘들기도 하고. 지루한 시간이라 해도 중간중간 친구들과 놀 수 있다면 덜 힘들텐데, 그러지 못하는 것도 이유일 것이다. 아이를 데리고 타이르는 동안 눈물을 보였다. 원래 내색을 잘 안하고 순한 아이인데 오죽하면 이럴까. 힘들다는 걸 충분히 이해해주고 다독여주는 것이 중요할 것 같다. 일단 한 달 간 해보면서 두 수업 모두 지속할지에 대해선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저녁엔 아들의 학교 숙제인 포스터 만들기를 함께 했다. 샌디에고와 멕시코 사이의 티후아나 강 주변 환경 오염에 대해 배우고 그와 관련해 스스로 할 수 있는 활동을 생각해 내용을 만드는 것이다. 아직 파워포인트를 다루는 데 익숙치 않아 도움이 필요하다. 컴퓨터 사용도 이곳에 있는 동안 아이들이 좀더 익숙해져야 할 일 중 하나이다.

2021년 3월 11일 목요일

연수일기 28. 학교 기부 행사

3월 8일 월요일. 44일째 날. 딸아이 책장을 마련했다. 그동안 중고 물품 게시판을 꾸준히 들여다보았지만 적당한 물건이 나오지 않아 결국 이케아에서 새 책장을 샀다. 책장을 조립하고 늦은 오후에 집 근처의 트레일 코스를 걸었다. 해변의 유명한 코스처럼 화려하고 멋진 풍광은 없지만 소박하고 조용한 길이었다. 트레일 코스는 vernal pool이라 불리는 조그만 호수를 거쳐 델 마르 보호 지역까지 연결된다. 'vernal'은 '봄철의'란 뜻인데, 이런 호수는 겨울에 물이 모여 봄에 가장 깊어지고 여름이 되면 물이 마르는 주기를 거치며 주변에 다양한 동식물이 서식한다고 한다. 호수를 구경하고 돌아오니 한 시간 남짓 되었다. 

집 근처 트레일 코스에서 만난 오솔길

아이들 학교에서는 Jog-a-thon이라는 이름의 기부 행사를 시작했다. 미국 학교에선 다양한 기부 행사를 통해 기금을 모은다고 들었다. 이번 행사는 델 마르 학군의 가장 큰 모금 행사라고 한다. 400불 이상 이상을 기부하는 경우 물통, 타월, 기프트카드 등의 선물을 준다. 학교 전체의 목표 금액은 8만불이었고, 각 반마다 현재 모금 금액을 그래프로 보여주었다. 담임 선생님들도 은근히 신경이 쓰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학교 전체의 목표 금액에 도달하거나 모든 학생이 참여하는 등 일정 지표 달성에 대해 교장 선생님이 하루 동안 학교 옥상에서 일을 하거나 머리카락 염색을 하는 등의 재미난 공약을 걸기도 했다. 행사 웹페이지 곳곳에서 400불 이상을 권유하는 뉘앙스를 느낄 수 있었는데, 아이 둘에 각각 400불은 부담이 되어 아내와 상의해 적당한 금액을 보냈다. 모여진 금액은 STEAM이라고 하는 교육 프로그램 선생님들의 활동 비용에 쓰인다고 한다. 학교에 편입한지 한 달 밖에 안되었지만 벌써 학급 문고를 보내는 행사를 통해 몇 권의 책을 기부하기도 했다.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를 할 수 있는데, 한국과는 좀 다른 문화이지만 이런 기부 행사에도 적절히 참여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아이들이 실제로 모여서 러닝도 했을텐데 그런 참여 행사를 가질 수 없어 아쉽다. 


3월 9일 화요일. 45일째 날. 오전에 논문을 수정하고 저자 답신을 작성해 보낸 뒤 영문 학회지에 보낼 에디토리얼 원고를 준비했다. 그동안 미뤄두었던 일상적인 일들도 이제 평소와 같이 그때그때 처리하는 것이 좋겠다. 오늘 오후는 아이들이 워터 폴로 수업에 가는 날이라, 학교에서 데려와 잠깐 집에서 쉬었다가 다시 수업에 데려가야 한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가고, 저녁엔 아들의 농구 수업 시간에 맞춰 또 공원 농구장에 데려다 주어야 했다. 농구 수업이 있는 화요일과 목요일엔 아이들을 실어 나르다 보면 하루가 갈 것 같다. 다음 주에 정식 워터 폴로 수업이 시작되기 전까지 아들은 둘째가 속한 어린 아이들 반에서 임시 수업을 받고 있다. 두 번째 수업인 오늘은 지난 번과 달리 별다른 문제는 없이 흔쾌히 참여했다. 수업이 끝나고 좀 힘들어하긴 했지만. 이렇게 짜여진 시간표대로 흘러가는 시간이 점점 늘어가고 있다. 아이들에게도, 나에게도. 

2021년 3월 7일 일요일

연수일기 27. 스케이트 보드

3월 5일 금요일. 41일째 날. 아침에 공원을 뛰었고, 금요 연구 미팅이 있었다. 오후에 아이들과 Five below에 갔다. 일본이나 우리나라에 다이소가 있다면 미국엔 Dollor tree와 Five below가 있다. 이름 그대로 Dollor tree는 1달러 전후 상품을, Five below는 5달러 전후 상품을 판다. Dollor tree는 가격이 너무 싸서인지 질이 낮고 조잡한 상품이 많아 보였던 데 반해 Five below는 상대적으로 쓸만한 상품이 더 많이 눈에 띄었다. 

이 회사는 2012년 나스닥에 상장되었는데 주가가 100불 대 초반까지 꾸준히 상승했다가 2020년 초에 covid-19의 영향으로 70불 대로 폭락했지만 이후 다시 1년간 급격히 올라 현재는 200불 전후이다. 10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한 상점이라 그런지 아이들이 많았고, 가연이가 좋아하는 슬라임을 비롯한 아기자기한 팬시 상품들도 있었다.(하지만 팬시 상품은 역시 한국이 제일이다.) 노드스트롬 랙에서 아들 티셔츠를 사고 루비오스 타코 Rubio's coastal grill 에서 저녁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샌디에고에는 멕시코 음식을 파는 식당과 체인점이 많고, 루비오스 타코 지점도 흔히 볼 수 있다. 가격이 저렴하고 대표 메뉴인 피쉬 타코 맛도 괜찮아 멕시코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인기가 많을 것 같다. 


3월 6일 토요일. 42일째 날. 코스트코에서 등갈비와 돼지 목살, 치킨을 샀다. 한 달 전에 회원으로 가입한 후 다섯 번째 방문인데 이제 코스트코에서 사야 할 물품들이 어느정도 정리된 것 같다. 

아마존에 주문했던 스케이트보드가 왔다. 이곳에선 모든 아이들이 스케이트보드나 스쿠터(킥보드)를 타는 것 같다. 아이들 뿐 아니라 어른들도 스케이트보드를 많이 탄다. 공원에 있는 두 개의 펌프 트랙은 아침 일찍부터 보딩을 즐기는 사람들로 붐빈다. 아들이 보드에 관심을 보이는 것 같아 주문했는데 이곳에 있는 동안 나도 함께 타보려 한다. (내년 초에 이곳을 떠나기 전까지 펌프 트랙에 올라가보는 것이 목표인데 과연 가능할지 모르겠다.) 아이는 함께 주문한 헬멧을 쓰고 아파트 앞에서 조심스레 연습을 시작했다. 아파트 단지 안이 조용하고 길도 넓어서 스케이트보드 연습을 하기엔 적당하다. 

첫 보딩

아들의 첫 보딩과 스케이트 보드에 대한 후기는 여기에.

https://fmdoctor.blogspot.com/2021/03/31-1-gabes-diary.html

H 선생님네 가족을 초대해 저녁을 먹었다. 아내가 오전에 샀던 등갈비로 김치찜을 만들었다. 아내가 이제 중고로 구입한 인스턴트팟에 익숙해진 것 같다. 아내의 요리 덕분에 이곳에서도 한국에서 먹던 음식들을 종종 먹을 수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3월 7일 일요일. 43일째 날. 점심을 뭘 먹을까 고민하다 코스트코에서 피자를 사먹기로 했다. 집에서 가장 가까워 애용하는 코스트코 지점까지 거리는 10마일, 15분이 걸리는데 이 정도의 거리는 이제 아주 가깝게 느껴진다. 어제 장을 보면서 당분간 오지 않아도 되겠다고 생각했는데 연이어 이틀을 오게 되었다. 한국 코스트코에서도 파는 피자이지만 실제 먹어본 건 오늘이 처음이다. 한국보다 싼 9.95불 가격에 미국 피자 답게 크기가 자그마치 18인치로 엄청 크다. 좀 짜긴 했지만 맛도 괜찮았다. 냉동실에 넣어두고 오븐에 구워 아이들 간식으로 주어도 좋을 것 같다. 

2021년 3월 4일 목요일

연수일기 26. Bird Rock 카페, 아이들 운동 수업

3월 3일 수요일. 39일째 날. 아침에 러닝을 했다. 일주일에 적어도 두세번은 운동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한국에서도 병원 지하에 피트니스센터가 있는 것이 규칙적으로 운동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이곳은 사방이 다 운동할 수 있는 공간이고 시간도 더 많아 핑계를 댈 수 없는 환경이다. 

아이들을 데리러 가야 하는 하교 시간을 놓쳤다. 수요일은 다른 요일보다 30분 빠른 1시에 수업이 끝나는 것을 잊어버리고 말았다. 먼저 미국에 다녀온 이들에게 아이들 픽업 시간을 잊은 적이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 주의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어쩔 수 없나 보다. 다행히 딸아이 친구 어머니께서 아이들을 데려다 주셨다.


3월 4일 목요일. 40일째 날. 오후에 아이들 학교에 데리러 가는 길에 Bird Rock Coffee Roasters 카페에 들렀다. 토리 파인즈 비치로 가는 길가에 있는 전망 좋은 곳이다. 샌디에고에 여섯 개의 지점을 가진 로컬 카페로, 규모는 작지만 커피 맛으로 샌디에고 카운티에서 손꼽힌다고 한다. 길 쪽을 바라보는 야외 좌석에 앉으면 바다 쪽으로 이어진 습지를 볼 수 있다. 하늘이 맑아 햇볕이 따뜻했다. 다음 번엔 책과 노트북을 가지고 와야겠다.

샌디에고에서 손꼽히는 커피 맛집 풍경

오늘은 아이들이 오후에 워터 폴로 수업을 가는 날이었다. 아이들을 위한 운동 수업은 많았지만 막상 적당한 프로그램을 찾긴 어려웠다. covid-19로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공공 시설이 문을 닫았고 운영 중인 사설 수업들은 가격이 만만치 않았다. 미국에 다녀온 이들은 모두가 아이들에게 운동을 시키라고 했다. 영어를 잘 못하더라도 운동을 하며 좀 더 쉽게 친구를 사귈 수 있다고. 아들은 어제부터 집 근처 공원에서 농구 수업을 시작했다. 여자 아이들은 축구 수업을 많이 받는 것 같았지만 우리 둘째는 내키지 않아해 고민 중이었는데 우연히 아이들 학교에 이웃한 고등학교 수영장에서 하는 워터 폴로 수업을 알게 되었다. 친구와 함께 다닐 수 있다 하니 아이도 좋다고 한다. 가격도 저렴했다. 주 2회 농구 수업료가 200불이었지만 이 워터 폴로 수업의 경우 나이가 어린 둘째는 주 2회에 85불, 첫째는 주 4회에 200불이었다. 두 아이 다 물에서 하는 활동은 좋아하는 편이라 즐겁게 할 수 있을거라 생각했지만, 친구와 함께라서 좋아하는 둘째와 달리 아들은 수업에 가고싶지 않아 했다. 또 처음 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싫은 모양이었다. 1주일 무료 수업을 들을 수 있었기에 일단 다음 주까지만 참여해보고 다시 상의하자고 설득했다. 

수업이 있는 고등학교 수영장 입구로 가서 기다리는 동안 다른 아이들과 부모님들이 하나둘 도착했다. 야외 수영장을 대여해 쓰는 거라 그냥 수영장으로 내려가는 입구 앞에서 모여서 코치와 함께 들어간다. 길가에 모여있는 아이들은 수영복에 수건이나 겉옷만 두른 차림이다. 한국이라면 불편하게 생각할 수도 있는 상황이지만 이곳에선 당연하게 여기는 것 같다. 우리가 처음 온 걸 알고 옆에서 함께 기다리던 다른 미국인 어머니가 수업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다른 지역에서도 워터 폴로 수업을 들었지만 이곳 수업이 더 알차고 아이들도 즐거워한다고 했다. 자세한 설명을 듣고 아내는 좀 안심이 된 눈치이다.

그냥 이곳에서 모인다...

근처 공원에서 시간을 보내다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맞춰 다시 아이들을 데리러 왔다. 오늘은 임시로 참여한 수업이라 첫째도 둘째가 속한 10세 미만 아이들과 함께 수업을 받았는데, 대신 코치가 자유형 수영을 계속 시켰다고 한다. 10세 미만 아이들의 수업은 놀이에 가깝고 그 이상 나이의 수업은 좀더 힘들텐데, 우선 아이가 물에서 얼마나 몸을 놀릴 수 있는지 확인을 한 것 같다. 표정이 수업 시작 전보다 밝아져 다행이었다. 

저녁엔 다시 농구 수업에 참여했다. 아들은 처음부터 농구 수업에 가고 싶지 않아 했다. 사실 운동을 그닥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아빠인 나 역시 마찬가지) 또 처음 보는 사람들에 둘러싸여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는 게 싫기도 했을 것이다. 몇 번 공원에 갔을 때 목격했던 이곳 아이들의 농구 실력에 주눅이 든 것 같기도 했다. 쉬는 시간이 많았던 아파트 상가 어린이 스포츠 클럽과는 달리 이곳 수업 시간은 오로지 농구만으로 충실히 채워져 있었다. 드리블과 패스 연습을 거쳐 마지막 20분 정도는 두 팀으로 나누어 시합을 했다. 멀찍이 코트 밖에서 관전을 할 때면 아이는 공이 아니라 공을 쫓는 아이들을 쫓아다니며, 늘 선수인지 심판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정도의 애매한 위치를 맴돌고 있었다. 공은 잡지 못하고 골대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이리저리 맴도는 아이를 멀리서 보고 있자니 마음이 답답했다. 좀더 자신감을 가지고 다른 아이들처럼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좋으련만. 결국 시간이 해결해줄 문제이다. 


2021년 3월 3일 수요일

연수일기 25. DMV 방문, 운전면허 필기 시험

3월 1일 월요일. 37일째 날. 한국은 공휴일이지만 이곳은 그저 3월의 첫 날이다. 우리 가족은 새 집에서 딱 한 달을 보냈고, 아이들은 학교에 등교하는 세 번째 주를 시작했다. 지난 2월은 흑인 역사의 달 Black History Month, 이번 3월은 여성 역사의 달 Women's History Month 이라고 한다. 국제 여성의 날인 3월 8일을 기념해 1978년 캘리포니아 소노마 카운티에서 여성 역사 주간을 만든 것이 미국에서 여성 역사의 달의 시초라고 하니 캘리포니아에선 조금 더 특별한 의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교에선 지난 달과 이번 달에 각각 인류와 역사에 기여한 흑인과 여성을 주제로 하는 활동이 진행된다.


3월 2일 화요일. 38일째 날. 아침에 아이들을 데려다 주고 운전 면허 필기 시험을 보기 위해 Poway DMV(Department of Motor Vehicles)를 방문했다. 샌디에고엔 네 개의 DMV가 있는데, 이곳이 집에서 제일 가깝다. 지난 토요일에 SSN 카드를 받고 곧바로 필기 시험 접수를 했다. covid-19로 필기 시험 예약을 따로 받지 않고 DMV에서 줄을 서서 기다려 시험을 치러야 하는데, 웹페이지에서 미리 예약 번호를 받아 가면 대기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아침 여덟시 반에 DMV 앞에 도착하니 건물 앞에 이미 줄을 서있는 사람들이 열 명 남짓 있었다. 직원이 체온 체크를 하고 방문 목적과 준비해간 서류들을 확인했다. Real ID를 신청했기 때문에 내 경우엔 SSN 카드, 아내의 경우엔 denial letter 외에도 각각 두 종류 이상의 거주지 증명이 필요했다. 관공서나 학교에서는 뭘 하든 두 종류 이상의 거주지 증명서를 요구하곤 하는데, 이젠 그 관행에 좀 익숙해진 것 같다.

창구에 접수를 하고 38불을 지불한 뒤 곧바로 필기 시험을 보았다. 접수 창구 옆에 칸막이가 세워진 모니터 여러 대가 있는 곳이 필기 시험을 보는 곳이다. 비어있는 모니터 앞에 서서 터치 스크린을 이용해 문제를 푼다. 시험 시작 전에 안내 동영상을 보고 연습 문제를 풀어볼 수 있다. 교통 법규와 도로표지판에 대한 시험으로 나뉘어 있고, 각각의 시험을 이어서 선택해 완료해야 한다. 어제 저녁에 예상 문제를 풀어본 것이 도움이 되었다. 똑같은 문제는 절반이 안되었지만 일부 문항이 같거나 약간 변형한 문제도 많았다. 세 문제까지는 패스를 할 수 있으므로 적절히 이용하는 것이 좋다. 교통 법규 36문제 중 6문제, 도로표지판 12문제 중 2문제까지는 틀려도 합격 가능하다. 답을 선택하고 나면 오답 여부를 바로 확인할 수 있고, 시험을 끝내면 합격 여부도 바로 알려준다. 불합격 했을 때 한 자리에서 3회까지 응시 가능하고, 세 번 떨어지면 접수비를 다시 내고 재응시를 해야 한다. 합격 안내를 확인하고 다시 창구로 가니 임시 면허증과 영수증을 주면서 되도록 빨리 실기 시험을 예약하라고 한다. 모든 과정을 끝내는데 한 시간 반이 걸렸다. 늦은 일 처리와 대기 시간의 악명이 높은 DMV였지만 생각보다 일찍 끝나서 다행이었다. Poway DMV가 상대적으로 민원인이 적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원칙적으로는 정식 면허증을 받기 전까진 운전할 때 캘리포니아 운전 면허가 있는 18세 이상의 성인을 동반해야 한다. 현실적으로 지키기 어려운 규정이긴 한데, 결국 거주 목적으로 입국한 경우 최대한 빨리 면허를 받으라는 것이다. 국제 면허증이나 임시 면허증만 가지고 운전을 하다 교통 경찰이라도 만나게 되면 딱지를 떼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흔히 듣기도 했다. 이제 실기 시험을 예약해야 하는데, 실기 시험을 보러 DMV를 다시 방문할 때는 운전 면허를 소지한 성인 동반 여부를 체크한다고 하니 같이 가줄 수 있는 사람을 우선 구해야 할 것 같다. 

DMV 내부 풍경. 시험이 끝나고 찍었다.

아들은 오늘부터 농구 수업을 시작했다. 화요일과 목요일 저녁 시간 수업이다. 집에서 가까운 공원에서 하는 수업이라 걸어서 갈 수 있다. 열 명 남짓의 아이들이 함께 수업을 듣는다. 농구 수업이 이곳 생활에 적응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 


2021년 3월 1일 월요일

연수일기 24. SSN 카드, 토리 파인즈 트레일

2월 27일 토요일. 35일째 날. SSN card가 도착했다. 지난 주 금요일에 인터뷰를 했으니 일주일만에 카드를 받은 것이다. covid-19로 대부분의 프로세스가 지체되는 상황에서 생각보다 너무 빨리 카드가 도착해 놀랐다. 미준모 카페 글들을 보면 몇 달째 인터뷰도 못하는 이들도 있다던데, 주마다 상황이 다른 것 같다. 막상 받고 보니 종이 쪽지에 불과한 이 카드를 받기 위해 다들 이런저런 고생을 하나 싶어 쓴웃음이 나왔다. 아뭏든 이제 다음 단계인 운전면허 시험 예약을 할 수 있겠다.

오후엔 공원에 산책을 나갔다가 아들과 농구를 했다. 나야 농구공을 제대로 잡아본 적도 없지만, 아이는 지난 1년 간 아파트 상가의 어린이 스포츠 클럽에서 농구를 했었다. 수업보단 친구들과 놀이를 하는 시간이 더 많았을 거라 아직도 초보 수준인데, 이곳 아이들의 농구 실력에 이미 주눅이 든 것 같다. 남자 아이들은 스포츠에 참여하는 것이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친구를 사귈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란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들도 다음 주부턴 이 공원에서 하는 농구 수업에 참여하기로 했다. 공을 튀기며 다른 아이들과 몸을 부대끼는 것이 이곳에서 느끼는 새로운 재미가 되면 좋겠다. 하지만 아이는 일단 또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해야 한다니 부담부터 느끼는 것 같다. 


2월 28일 일요일. 36일째 날. 토리 파인즈 주립 보호 지역에 트래킹을 다녀왔다. 토리 파인즈 해변은 샌디에고에 도착해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가장 먼저 바다를 보러 갔던 곳이라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그날 해변을 걸으며 조만간 트레일 코스에 와야겠다 생각했는데 딱 한 달 만에 실행에 옮긴 것이다. 해변을 따라 야트막한 능선과 골짜기를 걸으며 이곳 특유의 풍경과 바다를 볼 수 있는 멋진 트레일 코스가 있어서 바다를 보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려는 사람들, 트레일을 걷거나 뛰며 운동을 하는 사람들 모두가 자주 찾는 곳이다. 

오전 11시쯤 주차를 하고 비지터 센터까지 올라갔다가 비치 트레일을 따라 Flat Rock까지 해변으로 내려가는 코스를 선택했다. 이곳에서만 자생하는 토리 소나무들을 볼 수 있는데, 한국에선 흔한 소나무지만 선인장들과 한 곳에서 자라는 모습이 독특한 느낌이 주었다. 돌아올 때는 노스포크 트레일로 돌아가는 길을 택했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오후 1시 30분이 넘었다. 중간에 아이들이 조금 힘들어하긴 했지만 반나절 가량의 조금 특별한 산책 코스로 더할 나위 없이 맞춤한 곳이었다. 

토리 파인즈 보호 지역 입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