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8일 월요일. 16일째 날.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가는 날이다.
한국에서 생각했던 곳과 다른 동네에 집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학교 문제였다. 두 아이 생일이 4월, 7월로 미국에서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이라 한국에서보다 6개월을 앞서서 각각 7학년, 3학년 2학기로 편입해야 한다고 했다. 7학년이면 중학교에 해당했다. 평범한 시기에 왔다면 별 생각 없이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중학교도 온라인 위주로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몇 번 씩은 대면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선생님, 친구들과 부딪히며 학교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이곳 생활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첫째를 되도록 6학년으로 보내고 싶었고, 해당 district와 학교에 몇 차례 메일을 보냈지만 나이 원칙에 따라 학년이 정해진다는 답신만 받았다.
입국 후 갑자기 동네를 변경하게 된 것은 애초 생각했던 아파트에 적당한 집이 없었기도 했지만, A 아파트가 속한 Del Mar Union School District (DMUSD)와 학교에서 6학년 편입이 가능하다는 답신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초등학교는 매일 등교해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국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DMUSD는 이웃한 solana district와 달리 아이들의 생일보다 한국에서 학년을 마치고 왔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은 1월 말에 출국했으므로 공식적으로 학년을 마치지 않았고, 그래서 한국에서 다니던 학년을 그대로 유지해 편입하게 된다고 했다. 서로 이웃한 교육구인데도 원칙에 차이가 있다는 게 이상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한 학기 동안 두 아이가 매일 함께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아이들 선생님께서 안내 메일과 반 아이들의 명단을 보내주셨다. 6학년인 아들은 열다섯명, 2학년인 딸은 열아홉명이 각각 한 반이다. 지난 일 년간 줄곧 띄엄띄엄 등교를 했던 아이들은 학교에 매일 가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되나 보다. 익숙치 않은 환경의 새 학교라 더 그럴 것이다. 그래도 둘째는 새 친구들을 만나는 게 기대가 된다고 하는데, 첫째는 친구를 만나는 기대보단 영어를 듣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아침 여덟 시에 맞추어 학교에 도착했다. 지난 주에 학교를 둘러보러 한 번 왔었던 길이다. 걸어서 등하교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지만, 집에서 출발해 차로 5분 정도면 갈 수 있어서 부담이 되는 거리는 아니다. 집에 올 때는 종종 걸어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교문 앞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나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동안 입학 관련해 안내를 해주었던 직원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단한 안내를 들은 후에 아이들을 각자의 교실로 보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뒤돌아 걸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교실에서 첫날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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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 |
처음 학교에 간 아이들에 대한 생각도 잠시, 하교 시간에 맞춰 다시 데리러 가기 전까지 무빙세일로 받기로 한 침대와 가구들을 서둘러 옮겨야 했다. 연수를 떠나기 전, 집과 살림살이는 연수를 끝내고 돌아가는 분에게 물려받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조건이 맞는 분을 찾기 어려웠고, 결국 살림살이만 무빙세일을 통해 구하기로 했다. SDSARAM 게시판을 통해 마침 우리에게 적당한 침대와 식탁, 소파 등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C 선생님과 연락이 되었다. 살림살이를 받는 날짜가 입국 2주 뒤였기 때문에 아파트 입주 후에도 일주일은 거실에 이불과 침낭을 깔고 자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2월에는 연수를 시작하고 끝내는 이들이 많아서 우리와 더 일정이 맞는 분을 천천히 찾아도 되었겠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급해 좀 일찍 거래 약속을 한 것 같다. 결과적으론 깨끗하고 상태 좋은 물품들이어서 만족할 수 있었지만.
세 개의 침대와 소파, 식탁과 의자를 옮기려면 트럭이 필요했다. 처음 계획은 한인 이사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살림을 받아와야 하는 날엔 예약이 불가능했다. 이 업체의 요금은 3시간 기본에 330불이었는데, 다른 현지 업체들은 가격이 훨씬 비쌌다. 이사 업체를 알아보다가 미국은 트럭만 빌려서 하는 셀프 이사가 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홀 U-Haul 트럭은 웹페이지를 통해 쉽게 예약할 수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A 아파트로 집 주소가 정해진 다음 유홀 웹페이지에서 트럭과 함께 무빙 헬퍼 서비스를 함께 예약했다. 헬퍼 서비스는 유홀에서 중개를 하는 형식이다. 짐을 옮기기 전날 배정된 헬퍼로부터 일정 확인 이메일을 받았다.
당일 아침, 집에서 가장 가까운 유홀 지점을 방문했다. 미리 웹사이트를 통해 인적사항과 국제운전면허증 등을 올리고 체크인을 해두어서 금새 트럭 운전석에 오를 수 있었다. 트럭 운전은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출발 전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지 못해 알람이 울리긴 했지만. 살림을 받기로 한 집까지 트럭을 운전해 두 명의 헬퍼를 만나고, 짐을 싣고 다시 A 아파트로 돌아와 모두 내리기까지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헬퍼 중 한 분은 대학생처럼 앳된 외모의 백인 청년이었는데, 호리호리한 체형에도 가구를 옮기는 솜씨가 좋았다. 가구와 물건들 상태가 모두 깔끔해 마음에 들었다. 가구를 옮기는 동안 살림을 넘겨주신 C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록에 없던 자잘한 물건과 주방 물품, 양념들까지도 꼼꼼하게 박스에 넣어 챙겨주셨고, 감사하게도 아이가 입을만한 옷까지 함께 받을 수 있었다. 트럭 운전도, 타국에서의 이사도 처음이었지만 무사히 잘 마무리 되었다는 생각에 트럭을 다시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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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시간 동안 이사를 책임져준 트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