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2월 24일 수요일

연수일기 19. 델 마르 해변, 즐거운 저녁 식사

2월 20일 토요일. 28일째 날. 아침 일찍 자동차 시트를 추가로 수선하기 위해 담당자가 집에 찾아왔다. 픽업 트럭에 작업 도구를 가득 싣고 아내와 함께 왔는데 휴일이라 어딘가로 나들이를 가는 길인 것 같았다. 수선이 끝난 뒤 늦은 아침을 먹고 델 마르 해변과 파워하우스 파크에 갔다. 토리파인스 스테이트 비치와 솔라나 비치 사이에 있는 해변이다. 해변 가까이에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많았다. 공원 잔디밭 아래로 모래 해변이 이어져 있어서 파도와 써핑을 하는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피크닉을 즐길 수 있었다. 그래서인지 다른 해변에 비해 정돈되고 세련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다른 해변보다 가족, 친구들과 한가로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이 더 많았다. 아내와 조만간 어느 오후에 그늘막과 접이식 의자를 가지고 다시 오자고 이야기했다. 이곳에 와 오래지 않아 벌써 여러 해변과 공원을 구경했지만 어느 곳이 더 낫다 이야기하기 어려울 것 같다. 모두다 각자의 특색이 있고 아름다웠다. 


저녁엔 H 선생님 가족을 초대해 식사를 했다. 입국 다음 날 집을 보러 왔을 때 우리에게 점심 식사를 대접해주었던 후배이다. 이사 온 뒤에는 아파트 바베큐장에 우리를 초대하기도 했었다. 미국 전화번호를 만들기 전에 아파트 투어 관련 연락을 부탁하기도 했고, 그동안 여러가지 도움을 받았다. 아내는 요리와 상차림을 좋아하는 편이다. 한국에선 자주 있는 일이었지만, 이곳에 와서 집에 누군가를 초대한 것은 처음이었다. 불고기와 매콤한 돼지고기 두루치기를 준비했고, 한국식 양념 요리를 먹을 기회가 아무래도 적은지라 모두가 맛있게 먹었다. 가족만이 아닌 다른 사람들과 여유로운 시간을 가진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2월 21일 일요일. 29일째 날. 입국 후 딱 4주째 되는 날이다. 특별한 스케줄 없이 집에서 시간을 보내다 오후에 퍼시픽 하이랜즈 랜치 공원에 갔다. 이 공원은 사나흘에 한번은 오게 되는 것 같다. 집 근처라 산책이나 운동 겸 다녀오기 딱 좋다. 널찍한 잔디밭에서 아이들과 축구공을 차며 놀았다. 아들은 하루 종일 기운이 없어 보였다. 내일부터 다시 시작될 학교 생활이 걱정되는 모양이다. 문제가 있어도 잘 내색을 하지 않는 아이지만 이곳 학교를 다녀와서는 힘들다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어쩔 수 없는 일이고, 적응을 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하겠지만 그래도 아이들이 너무 많은 마음 고생을 하진 않기를 바래본다.  

2021년 2월 22일 월요일

연수일기 18. SSN 신청, 드림백 도착

2월 19일 금요일. 27일째 날. 아침에 Social Security Number (SSN) 신청을 위해 SSA office에 방문했다. 연수 프로그램 시작 후 일주일 정도 지나면 관련 사항이 SSA로 넘어가므로, 이후 SSN 신청을 하면 된다고 한다. Covid-19 이전에는 가까운 사무소에 방문해 신청을 위한 인터뷰를 바로 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zip code 별로 지정된 사무소에 미리 예약을 해야 인터뷰를 받을 수 있었다. 지난 주에 집 주소로 지정된 사무소에 전화로 예약을 했고, 이틀 뒤 인터뷰 일정을 알려주는 전화를 받았었다. zip code 별 지정 사무소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다.

https://secure.ssa.gov/ICON/main.jsp

예약된 시간에 사무소 문을 두드리니 경비가 문을 열어주었다. 예약제로 운영을 해서인지 사무소 안팎에 사람이 전혀 없었다. 신청서를 작성하는 동안 담당자가 여권, DS-2019, I-94(출입국 증명서)를 확인했다. 인터뷰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 Social security card 신청을 증명하는 receipt를 받았고, 카드는 2주 이내에 집으로 배달된다고 했다. J2 비자인 아내는 운전면허 시험 접수에 쓰기 위해 SSN을 받을 수 없다는 denial letter를 신청했고, 이건 그 자리에서 바로 발행해주었다. 

참 한적하다......

집으로 돌아와 금요일마다 있는 온라인 research meeting에 참석했다. 콜럼비아 대학에서 postdoc fellow로 있는 분의 발표였고, 불규칙한 식사와 야식이 인슐린 저항성과 대사 질환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 결과였다. 이곳에서 내가 연구하려는 주제는 다량영양소의 비율이 심혈관질환과 당뇨병 발생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것인데, 한국에서는 영양 관련 변수가 잘 정리된 코호트 자료가 없어 이러한 주제에 대해 종적 연구를 직접 진행하기 어렵다. Multi-Ethnic Study of Atherosclerosis (MESA)라는 코호트 자료를 이용할 계획이다. 금요일의 research meeting에서는 내가 관심 있는 주제와 관련된 내용들도 많아 앞으로 도움이 될 것이다. 

12월 말일에 발송했던 드림백 가방이 도착했다. covid-19와 선박 부족 문제로 3개월이 걸리기도 한다고 들었는데, 두 달이 채 안되어 도착했으니 생각보다 빨랐다. 덕분에 아이들이 읽을 책과 인라인 스케이트가 생겼다. 1년 전 겨울엔 자주 얼음판 위에서 스케이트를 탔었는데, 여기선 인라인으로 아쉬움을 달래야할 것 같다. 오후에 아파트 단지 내에서 인라인 스케이트를 타며 놀았다. 


오랜만에 스케이트


2021년 2월 20일 토요일

연수일기 17. 데스밸리 투어

2월 18일 목요일. 26일째 날. 새벽 6시가 채 되기 전 컴컴한 어둠을 헤치고 집에서 출발했다. 가이드께서 준비한 도넛과 마들렌으로 중간에 차 안에서 아침을 해결하고 5시간 가까이 달려 이스트시에라의 데스밸리 입구에 도착했다. 어느새 창밖 풍경은 황량한 황토빛으로 변해있었다. 가는 길에 누가 기르는지 알 수 없는 당나귀들을 만났다. 사람과 차를 무서워하지도 않고 먹이를 달라고 다가와 아이가 마들렌 몇 개를 주니 잘 먹는다. 


입구를 지나 오래지 않아 공군 전투기가 낮게 지나갔는데, 운이 좋으면 근처 협곡 위에서 골짜기 사이를 지나는 훈련 중인 전투기를 내려다 볼 수 있다고 했다. 모자잌 캐년 Mosaic canyon에 도착해 짧은 트레일을 했다. 골짜기 벽은 색이 다른 돌들이 점점이 박힌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이 모양이 모자이크 같다고 해 이렇게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아이들 둘이 바위를 타고 오르내리며 신나게 뛰어다닌다. 황량한 사막이라 아이들이 심드렁한 반응을 보이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는데 그렇지 않아 다행이었다. 




샌드듄 지형을 구경하고 비지터 센터에서 점심을 먹었다. 센터 앞마당의 피크닉을 할 수 있는 돌테이블과 벤치에 자리를 깔았다. 가이드께서 코펠과 조리도구를 꺼내 불고기와 햇반, 라면을 뚝딱 준비해주셨다. 배도 고팠던데다 익숙한 음식이라 가족 모두 맛있게 먹었다. 가이드께서 아이들에게 국립공원 passport를 선물해주셨다. 전국의 국립공원에 대한 간단한 설명과 스탬프를 받을 수 있는 지면이 포함된 수첩이다. 19세기 말에 옐로우스톤이 세계 최초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이후 지금까지 62개의 국립공원이 있다고 한다. 수첩의 첫 장에서는 국립공원이 
환경과 문화유산을 보호할 뿐 아니라 공원 관리, 연구, 교육에 관련된 일자리를 만들어왔다는 것을 큰 가치로 내세우고 있었다.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이 뛰어난 곳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많은 나라에서 이와 같은 시스템을 도입하는데 영감을 주어온 것에 대한 자부심도 느낄 수 있었다. 62개의 국립공원 중에서 데스밸리가 다섯 번째로 면적이 넓다고 한다. 점심을 배불리 먹고 선물받은 수첩에 오늘 날짜의 초록색 데스밸리 스탬프까지 받은 아이들은 만족스런 표정이다. 




다음 코스는 배드워터 베이슨 Badwater Basin이었다. 해수면보다 85미터 낮은 분지 지형으로 바닷물이 있었던 흔적인 소금 결정으로 가득한 곳이다. 사람들이 걸어서 난 길은 소금이 다져져 하얗게 보였는데 꼭 눈밭을 걷는 기분이었다. 근처에는 더 큰 소금 결정이 가득한 데빌스 골프코스라는 이름의 지형도 있었다. 



되풀이되는 화산 폭발로 산등성이에 금속 성분이 겹겹이 쌓여 다양한 색깔을 내는 아티스트 팔레트 Artist's pallett와 데스밸리 특유의 굽이굽이 칼로 깎아낸 듯한 모래 언덕들을 내려다볼 수 있는 자브리스키 포인트 Zabriskie point, 그리고 데스밸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단테스 뷰 Dante's view에 올랐을 때 막 해가 지고 있었다. 저무는 태양 빛에 물든 하늘과 구름, 그 아래 시시각각 변하는 능선의 색깔이 아름다웠다. 기껏해야 이십여분 정도였지만 이곳에서 본 광경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인앤아웃에서 늦은 저녁을 먹고 밤 열한 시가 넘어 집에 도착했다. 미국의 국립공원과 자연의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많이 들어왔지만 제대로 실감한 것은 오늘이 처음이었다. 앞으로 스탬프의 빈 칸을 얼마나 더 채울 수 있을까.

2021년 2월 18일 목요일

연수일기 16. Campus ID card

2월 16일 화요일. 24일째 날. 아침에 자동차 시트를 고치기 위해 카맥스를 방문했다. 차를 구입한 곳은 에스콘디도 지점이었지만 수리는 집에서 더 가까운 키어니메사 지점에서 하기로 했다. 시간에 맞춰 수리를 담당하는 창구 앞에 도착하니 직원이 나와 맞아주었다. 처음 차를 살 때는 운전석 가죽 시트 뒤쪽의 작은 파손 부위만 확인했는데 며칠 뒤 2열 시트 뒤 여러 군데에 더 길게 찢긴 부위가 있는 걸 발견했다. 가장 큰 상처는 더 벌어지지 않도록 글루건으로 때워진 상태였다. 

직원이 찢어진 부위를 확인하고 수리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사무실 내에서 책을 읽었다. 무빙세일 살림을 받을 때 함께 받은 몇 권 중 하나이다. 한국어 책을 가져오질 않아 그동안 아쉬웠는데 오랜만에 책을 읽을 수 있어 좋았다. 같은 병원의 소아정신과 교수님이 2012년부터 2년간 피츠버그에 연수를 와 지내면서 아이들의 학교 생활에 대해 느낀 점을 쓴 책이다. 소아정신과 선생님이어서인지 새로운 환경에서 아이가 겪는 심리적 문제, 변화와 성장을 더 세심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인상적인 것은 첫째 아이와 번갈아가며 서술을 한 것인데, 아이가 일기를 쓰듯 스스로의 경험과 생각을 쓰고 그에 대해 아빠가 자신의 생각을 덧붙이는 형식이었다. 첫째 아이는 당시 6학년이었으니 지금 우리 아들과 같은 나이이다. 책을 읽으며 지난 며칠간 아들이 학교에서 느꼈을 기분을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스스로의 생각을 정리하기 위해 나 뿐만 아니라 아이들도 일기를 쓰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시간이 흐른 뒤 기억을 되살리고 변화를 확인하는 데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한 시간쯤 지나 수리가 마무리되었다. 솜씨가 좋았다. 크게 찢긴 부위도 자세히 보지 않으면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살펴보니 2열 시트 뒤에 미처 수리되지 않은 작은 상처가 두 군데 남아있어서 재수리를 요청했는데, 기술자가 다른 곳에 약속이 되어있어 당장은 어렵다고 했다. 상의 후 기술자가 토요일 오전에 직접 집으로 방문해 수리해주기로 했다. 근처 자동 세차장에서 세차를 하고 H마트에서 장을 봐 집에 돌아왔다.  

둘째는 같은 아파트에 사는 학교 친구네 집에 가서 놀았다고 한다. 어려서부터 미국에서 살아서 한국어와 영어를 모두 잘 하는 친구이다. 같은 반에 한국 아이가 많지 않은데, 다른 친구들과의 의사소통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게 도움이 될 것 같다. 덕분에 딸아이가 새 학교에서의 첫 주를 즐겁게 지낼 수 있었던 것 같아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2월 17일 수요일. 25일째 날. 오후에 UCSD에 들러 campus id card를 만들었다. 이전이라면 언제든 간단히 방문해 만들 수 있었겠지만 covid-19로 student service center의 대부분의 업무도 미리 예약을 해야 진행할 수 있다. 미리 신청해두었던 예약 시간에 방문해 id card를 받을 수 있었다. 이 카드로 교통수단이나 박물관 등의 이용 할인을 받을 수 있고 교내 레스토랑이나 카페, 매점, 서점 등에서 데빗카드와 같은 형식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고 한다. 아내와 아이들과 교내 서점에 들러 책을 몇 권 샀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Geisel 도서관도 가까이에서 볼 수 있었다. 교내에 지나다니는 이들이 적어서인지 조금은 쓸쓸하게 느껴졌다. 학생들로 북적이는 교정을 빨리 볼 수 있게 되길 소망한다. 

Geisel 도서관 전경


연수일기 15. 마트 이야기, 문라이트 스테이트(Moonlight State) 비치

2월 14일 일요일. 22일째 날. 아침 산책 겸 아내와 트레이더 조에 장을 보러 다녀왔다. 무빙 세일 물품을 주셨던 C 선생님께서 미국은 쇼핑의 천국이라고 하셨는데 그때는 그 의미가 와닿지 않았지만 이곳에서 살아보니 조금은 이해가 될 것 같다. 미국에 와서 느꼈던 것 중 하나는 다양한 브랜드의 마트가 많다는 것이었다. 식료품, 의류, 잡화 등 품목별로 쇼핑에 최적화된 특색있는 마트들이 있다. 식료품을 취급하는 마트들 중 가장 마음에 드는 곳은 트레이더 조, 코스트코, 그리고 랄프스였다. 코스트코에 대해선 이전에도 이야기했지만 고기의 가성비로는 최고이고, 랄프스는 식료품 외에도 다양한 생필품을 저렴하게 사기에 적당하다 (한국식 종합 마트와 가장 유사한 듯). 트레이더 조는 상대적으로 질 좋은 건강한 식품을 저렴하게 판매한다는 이미지가 있는 것 같고, 그래서인지 유기농 식품도 많다. 몇 가지 자체 브랜드 냉동 식품을 먹어본 결과 맛도 훌륭했다. 많이들 추천하는 만다린 오렌지 치킨 역시 괜찮았다. 한국인들 사이에서 트세권, 코세권, 홀세권(홀푸드마켓)이란 말도 있던데, 이곳에선 집에서 가까운 곳에 좋은 마트가 있는 것이 삶의 질에 미치는 영향이 많음을 느끼고 있다. 계란, 우유 등과 함께 벽난로 위에 올릴 작은 화분 두 개를 함께 샀다. 오후에는 집 앞에서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쳤다. 

2월 15일 월요일. 23일째 날. 프레지던트 데이로 미국에 와서 처음 맞는 공휴일이다. 한국과는 달리 이곳은 날짜가 고정된 공휴일보다 몇 월 몇 번째 특정 요일로 지정된 공휴일이 많아서 익숙치가 않은데, 대개는 월요일이라 연휴가 보장된다는 장점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이렇게 만든 건지... 이번 주는 초등학교 방학이라 아이들은 일주일을 쉬게 된다. 
오후에 문라이트 스테이트(Moonlight State) 비치를 방문했다. 바닷가 도시라 해안선을 따라 가족과 소풍을 오거나 산책을 할 수 있는 공원과 해변이 워낙 많아서 해변들만 번갈아 방문해도 몇 달이 훌쩍 지날 것 같다. 지난 주에 갔던 솔라나 비치에 비해 규모는 작았는데, 몽돌 해변 앞 언덕에 넓은 모래사장이 있어 돗자리를 깔고 놀기에 좋았다. 휴일 오후라 사람들이 꽤 있었는데, 우리도 다른 이들과 거리를 두고 모래사장 한켠에 중고로 구입한 비치 의자와 돗자리를 폈다. 이곳 바다는 파도가 높아서인지 써핑을 즐기는 사람들이 많았다. 

모래사장 너머엔 몽돌 해변이 있다.

비슷한 시기에 같은 아파트에 입주한 C 선생님이 집에 들러 Julian Pie Company 애플파이를 선물했다. 유명한 파이 집이라고 하는데 맛있었다. 산부인과 전문의인 C 선생님은 대학 졸업 동기인데, 근무하는 병원이 달라 졸업하고는 처음 만났다. 우리 딸과 같은 나이의 딸들이 있어 앞으로 자주 보게 될 것 같다. 입국 후 그동안 서로 겪었던 어려움을 이야기하다 보니 금새 시간이 간다. 연수를 시작할 때 마주치게 되는 이런저런 시행착오는 누구든 피할 수 없나 보다. 

2021년 2월 16일 화요일

연수일기 14. 발렌타인 선물, 다운타운과 가스램프 쿼터

2월12일 금요일. 20일째 날.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Panera bread에 들러 커피를 사오는 것이 아침의 루틴이 되어가고 있다. 한 달에 8.99달러면 커피를 무제한으로 마실 수 있는데, 마침 3개월 무료 체험 행사를 하고 있었다. 같은 쇼핑몰에 있는 UPS 오피스에서 아마존에 반품할 물품들을 접수했다. 어딜 가든 차를 타고 이동해야 하는 미국에서 생활에 꼭 필요한 스토어들이 집 근처 걸어갈 수 있는 거리에 있다는 것은 큰 장점이다.

처음으로 코스트코 주유소를 이용해 보았다. 다른 주유소에 비해 갤런 당 0.5불 정도는 저렴한 것 같다. 12갤런을 넣었으니 6불, 열 번만 주유하면 골드 회원 가입비 60불 정도는 될 수 있겠다. 이그제크티브 가입비 만큼 더 이득을 보려면 캐시 리워드를 받아야 하니 역시 고기를 많이 사먹어야 한다는 결론. 이케아에서 의자 네 개와 수면등, 소품 들을 더 구입했다. 이케아엔 벌써 네 번째인데, 이제 당분간 다시 올 일은 없을 것 같다. 

집에 돌아와 A 교수님이 주관하는 온라인 research meeting에 참석했다. 매주 금요일 12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되며, 2명의 연구자들이 각자의 연구 주제를 발표하는 형식이다. 오랜만에 다른 연구자들의 학술 발표를 들을 수 있어서 좋았다. 두 번째로 UC Davis 대학의 P 선생님이 발표한 sugar-sweetened beverage와 인슐린 저항성에 대한 발표가 특히 흥미로웠다. 

아이들은 오늘 발렌타인 선물과 카드를 잔뜩 받아왔다. 선물이라 해봐야 아주 소박한 것들인데, 흥분한 녀석들은 한참동안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들어 댄다. 아들이 받은 선물 중엔 태극기와 한글 인사를 그린 (글자가 아니라 그림 같았다) 카드도 있었다. 지난 닷새 동안 학교에서 답답한 시간을 보내느라 힘들었을텐데, 잔뜩 움츠린 마음을 조금이나마 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아 위안이 된다. 오늘로서 새 학교의 첫 주가 끝났다. 큰 문제 없이 잘 지내준 아이들이 고마웠다. 프레지던트 데이가 낀 다음 주는 학교 방학이라 아이들이 긴장을 풀 수 있을 것이다.

선물 언박싱 시간

이날 새 자동차 번호판과 등록증이 도착했다. 카맥스에서 차를 구입한지 딱 2주 만이다. 미국 운전면허를 담당하는 DMV의 느린 일 처리 속도에 대해 익히 들어온데다 covid-19로 관공서 업무가 평소보다 더 느릴거라 생각했는데 예상보다 너무 빨리 도착해 놀랐다. 종이로 된 임시 번호판을 떼고 새로 받은 정식 번호판을 붙였다. 함께 배송된 연도와 월 스티커는 유효 기간에 해당하는 것으로 뒤쪽 번호판에 부착해야 한다. 이제 자동차 관련해 할 일이 마무리되었다.


2월13일 토요일. 21일째 날. 벌써 미국에서 세 번째 맞는 주말이다. 시간이 참 빠르다. 오후에 다운타운에 있는 샌디에고 중앙 도서관을 방문했다. 한동안 문을 닫았던 도서관들의 일부가 최근 제한된 형태의 운영을 시작했다. 온라인으로 미리 대여한 책들의 픽업만 가능하다. 범죄 현장에서 볼 수 있을 것 같은 노란 테이프로 묶인 서가가 안쓰러웠다. 그래도 도서관 카드는 만들 수 있었다. 이 카드로 35개의 브랜치 도서관을 이용할 수 있다. 아쉬움을 뒤로 하고 도서관을 나와 바로 옆에 위치한 펫코 파크 Petco Park에 들렀다. 올해 메이저리그 운영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작년처럼 관객 입장을 제한하고 경기 수를 축소해 운영한다면 티켓을 구입하는 것도 쉽진 않을 것 같다. 그래도 시즌이 시작되면 한두 번 쯤은 경기를 관람하고 싶다. 

야구장을 지나쳐 가스램프 쿼터 Gaslamp Quarter에서 늦은 점심을 먹었다. 다운타운의 한 구역으로 나이트 라이프를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술집과 레스토랑들이 즐비한 거리로 유명하다. 식사 후 하버 쪽으로 가서 해가 지는 걸 볼까 하다 날씨가 쌀쌀해져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지금같은 때에 혹시 감기에 걸리기라도 하면 난처해진다. 짧은 기간 여행을 온 것이 아니니 무리할 필요는 없다. 

2021년 2월 15일 월요일

연수일기 13. UCSD 방문

2월 9일 화요일. 17일째 날. 아침에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 주고 돌아와 집 근처를 뛰었다. 운동을 쉰 지 두 달이 넘었더니 몸이 근질근질했다. 아파트 gym이 문을 닫은 상태라 근력 운동은 어렵지만 러닝이라도 하면 나을 것 같았다. 겨우 30분도 안되는 시간이었는데 이전보다 숨이 찼다. 그새 체력이 떨어졌나 보다. 그래도 오랜만에 운동으로 땀을 내니 기분이 개운해졌다. 당분간은 러닝을 하고 날씨가 조금만 더 따뜻해지면 수영도 할 수 있을 것 같다. 어제 받았던 무빙세일 살림 중에 청소 용품과 몇 가지 물건들을 추가로 오늘 받기로 해서 C 선생님 댁을 다시 방문했다. C 선생님은 연수를 마치고 내일 출국 예정이라고 했다. 청소 용품들 외에 아이들 옷과 미처 챙기지 못한 자질구레한 주방 용품, 그리고 꼭 필요한 양념들까지 꼼꼼하게 포장해 넘겨주셨다. 마음 씀씀이가 참 감사했다.

오후에는 나를 초청해준 UCSD의 A 교수님과 온라인 미팅이 있었다. 입국 후 2주일이 지났지만 A 교수님을 뵙지 못했다. 작년 3월에 처음 온라인 미팅을 했으니 거의 1년 만에 얼굴을 본 셈이었다. 작년에 연구 계획서를 완성하고 7월에 MESA 코호트 데이터를 받았지만 연수 일정이 미뤄지고 난 뒤엔 거의 진행하지 못했다. 이제는 묵혀두었던 계획서와 자료도 들여다보아야 할 것 같다. 연구 주제에 대한 시간을 규칙적으로 갖지 않으면 금새 감이 떨어지고, 이후에 다시 진행하려면 훨씬 더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든다. 목요일에 A 교수님의 연구실에 찾아뵙고 직접 인사를 드리기로 약속했다.

미팅 후에 Social Security Number (SSN) 신청을 위한 인터뷰 예약을 했다. 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으로 비자와 입국 관련 자료가 넘어가는 데 시간이 걸리므로 J-1 프로그램 시작 날짜 이후 일주일 이상 지난 뒤에 신청을 하는 것이 좋다고 들었다. 이전에는 근처의 office 어느 곳이든 직접 방문하면 인터뷰가 가능했지만 지금은 covid-19 때문에 zip code에 따라 정해진 office에서만 신청이 가능하고, 인터뷰도 전화 예약을 통해서만 일정을 잡을 수 있다고 한다. SSA office에 전화를 걸어 직원과 연결되기까지 15분 정도 걸렸고, 인적 사항과 입국 날짜 등을 알려주니 인터뷰 일정을 잡아서 다시 알려주겠다고 했다. 이메일로 보내줄 수는 없고 전화만 가능하다고 한다. 연락이 다시 올 때까지 언제 올지도 모르는 전화를 행여 놓칠까 걱정하며 기다려야 했다. 이틀 뒤 인터뷰 일정을 알려주는 전화를 받았고, 다음 주로 예약했다.


2월 10일 수요일. 18일째 날. 노드스트롬 랙에 들러 나와 아내의 러닝화와 몇 벌의 옷을 샀다. 다른 마트들보다 저렴하고 다양한 물건이 많아 괜찮았다. 코스트코에 들러 돼지고기를 산 뒤 아이들을 데려오기 위해 학교로 향했다. 수요일은 학교 수업이 30분 일찍 끝나서 조금 더 서둘러야 한다. 오후에는 SDSARAM을 통해 중고 청소기와 킥보드, 농구공과 축구공 등을 받았다. 지난 며칠 간 중고 거래를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르겠다. 그래도 이번 주말이 되면 살림 마련과 집안 정리가 거의 마무리가 될 것 같다.


2월 11일 목요일. 19일째 날. 오후에 A 교수님을 만나기 위해 San Diego VA medical center로 향했다. A 교수님의 연구실은 5층의 vascular surgery 파트에 위치하고 있었다. 처음 무작정 이메일을 보내고 긍정적인 답신을 받았을 때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 흔쾌히 승낙을 받지 못했다면 이 도시가 아닌 다른 곳에 와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중간에 일정이 연기되는 등 어려움이 많았던 만큼 직접 만나 인사를 나누니 더 반가웠다. 짧게 깎은 희끗희끗한 머리칼에 대비되는 소년처럼 맑고 깊은 푸른색 눈동자가 인상적이었다. 동료 교수와 직원들에게도 나를 소개해주어 인사를 나누었다. VA hospital 내부와 UCSD 캠퍼스도 A 교수님과 함께 둘러볼 수 있었다. 다음 스케줄까지 시간이 많이 남지 않았지만 감사하게도 먼저 안내를 해주겠다고 했다. 캠퍼스는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아도 직접 돌아보니 생각보다 더 아름다웠다. 그동안에도 많은 메일을 주고받았지만, 바다 건너에서 찾아온 후배 연구자를 위해 기꺼이 번거로운 일을 하고 시간을 내어준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감사를 표현하자 "My pleasure."라는 짧은 대답이 돌아왔다. 미리 준비해 간 내가 썼던 에세이 책에 사인을 해 선물했다. 그가 한국어 책을 직접 읽지는 못하겠지만 뜻밖의 선물에 진정으로 즐거워하는 마음이 느껴져 내 마음도 좋았다.

발렌타인 데이를 앞두고 학교에서는 내일 아이들과 선물을 나눈다고 했다. 이전에는 다과를 준비해 파티를 했지만 역시 covid-19로 파티 없이 선물만 주고받게 되었다. 딸아이는 며칠 전부터 직접 카드를 만들었는데, 너무 욕심을 부리다 보니 겨우 세 명 분 정도만 만든 상태였다. 결국 어제와 오늘 저녁엔 모든 가족이 카드 제작에 동참하게 되었고, 다 만들고 나니 자정이 되어버렸다. 한국에서도 하지 않던 아이 숙제 함께 만드는 일을 이곳에 온지 얼마 되지도 않은 지금 하게 될 줄은 몰랐다.  

각각의 카드 안에 두 개의 작은 카드와 종이로 접은 당근, 토끼, 알약이 숨어있다.

오늘 한국은 설날이다. 저녁에 부모님과 영상 통화로 새해 인사와 세배를 올렸다. 명절 연휴를 적적하게 지내실 부모님들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래도 언제든 영상 통화로 아이들과 함께 인사를 드릴 수 있어 다행이다. 이곳에 있는 동안에는 좀더 자주 연락을 드려야겠다고 생각했다. 

2021년 2월 14일 일요일

연수일기 12-1. Gabe's diary: 첫 등교

월요일에 처음으로 정식 등교를 했다. 전날 밤까지도 긴장은 되지 않았고, 그저 내일 올 침대를 기대하면서 잠이 들었다. 하지만 차를 타고 학교에 가면서 스멀스멀 찾아왔다. 그 긴장감이. 학교 앞에서 선생님들이 환영을 해주고 인사도 해주셨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영어로 말씀하셔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엄마 아빠와 헤어지고 교실에 가는 동안 함께 동행해주신 선생님께서 내 취미나 잘 하는 것에 대해 물어보셨다. 더듬더듬 대답은 했지만 잘 전달이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교실에 도착했을 땐 수업 시작도 전에 기운이 다 빠졌다. 이곳에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몰라 행동 하나하나가 전부 어색했다. 다른 아이들이 나를 어떻게 볼지도 걱정이었다. 바보 같았겠지. 아무리 처음이라고 이해해도 그랬을 것이다.  

담임선생님은 유쾌하게 환영해주셨다. 해야 할 일을 알려주셨는데 대충 이해하고 내 자리에 앉았다. 한국과 달리 큰 책상에 아이들이 빙 둘러 앉게 된다. 친구들을 흘끔흘끔 쳐다보는 이상한 짓을 하기 전에 다행히도 선생님께서 먼저 오셔서 노트북에 대해 말씀해주셨다. 선생님 말씀은 금새 끝났는데 솔직히 뭐라 하셨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이걸 다시 어떻게 물어봐야 하나. Yes나 Ok만 하는 나에겐 너무나 어려운 문제였다. 당황한 표정의 얼굴을 본 옆 자리 여자 아이가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정식으로 자기 소개와 인사를 하고 천천히 대화를 풀어 나갈 거란 예상과 달리 인사도 없이 바로 말을 걸으니 더 당황스러웠다. 여기서 중요한 건 내가 그 물음에 No라고 대답해버린 것이다. No thanks도 아니고 그냥 No. 도움이 가장 절실히 필요한 때에 No라니. 그리고 얼마 뒤에 매우 어색하게 Hi 라고 했다. (죽어라, 과거의 나. 거기서 인사를 왜. 바보에서 멍청이로 레벨업한 기분이다.) 

그때는 날 어떻게 봤을지 무지 걱정이 되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런 사소한 건 기억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이후로 이 친구에게 많은 도움을 받았다. 짧은 학교 생활에서 얻은 교훈은 '사소한 실수는 금방 잊어버리니 너무 걱정하지 말자'이다. 그날 노트북은 결국 선생님께서 다시 오셔서 한번 더 설명해주시고 사용법을 직접 보여주기도 하셨다. 여기서 느낀 두 번째 교훈은 '이곳에선 당황을 온몸으로 표현해라'이다. 이 교훈을 잊지 않아야겠다. 

그렇게 1교시가 끝나고, 다음 수업을 위해 내 사물함에서 공책을 꺼내야했다. 사물함에 가서 공책을 가져오는 그 짧은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애써 당당한 태도로 공책을 가져와 펼쳤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이 난관이었다. 열심히 수업을 들었지만, 역시나. 예상했다. 수업이 끝난 후에도 내 노트는 비어있는 그대로.

연수일기 12. 아이들의 첫 등교, 무빙세일 물품 받기, 유홀 트럭

2월 8일 월요일. 16일째 날. 아이들이 처음 학교에 가는 날이다. 

한국에서 생각했던 곳과 다른 동네에 집을 얻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아이들의 학교 문제였다. 두 아이 생일이 4월, 7월로 미국에서 새 학년이 시작되기 전이라 한국에서보다 6개월을 앞서서 각각 7학년, 3학년 2학기로 편입해야 한다고 했다. 7학년이면 중학교에 해당했다. 평범한 시기에 왔다면 별 생각 없이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미국의 중학교도 온라인 위주로 수업을 운영하고 있다. 초등학교도 비슷한 상황이지만 그래도 일주일에 몇 번 씩은 대면 수업을 받을 수 있다. 선생님, 친구들과 부딪히며 학교 생활을 하지 않는다면 아이들이 이곳 생활에 쉽게 적응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첫째를 되도록 6학년으로 보내고 싶었고, 해당 district와 학교에 몇 차례 메일을 보냈지만 나이 원칙에 따라 학년이 정해진다는 답신만 받았다. 

입국 후 갑자기 동네를 변경하게 된 것은 애초 생각했던 아파트에 적당한 집이 없었기도 했지만, A 아파트가 속한 Del Mar Union School District (DMUSD)와 학교에서 6학년 편입이 가능하다는 답신을 주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이 초등학교는 매일 등교해 수업을 받을 수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입국한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DMUSD는 이웃한 solana district와 달리 아이들의 생일보다 한국에서 학년을 마치고 왔는지를 더 중요하게 보는 것 같았다. 우리 아이들은 1월 말에 출국했으므로 공식적으로 학년을 마치지 않았고, 그래서 한국에서 다니던 학년을 그대로 유지해 편입하게 된다고 했다. 서로 이웃한 교육구인데도 원칙에 차이가 있다는 게 이상하기도 했지만, 우리는 한 학기 동안 두 아이가 매일 함께 학교에 갈 수 있다는 게 너무나 좋았다.

아이들 선생님께서 안내 메일과 반 아이들의 명단을 보내주셨다. 6학년인 아들은 열다섯명, 2학년인 딸은 열아홉명이 각각 한 반이다. 지난 일 년간 줄곧 띄엄띄엄 등교를 했던 아이들은 학교에 매일 가야 한다는 게 부담이 되나 보다. 익숙치 않은 환경의 새 학교라 더 그럴 것이다. 그래도 둘째는 새 친구들을 만나는 게 기대가 된다고 하는데, 첫째는 친구를 만나는 기대보단 영어를 듣고 말해야 하는 상황에 대한 걱정이 앞서는 모양이다.   

아침 여덟 시에 맞추어 학교에 도착했다. 지난 주에 학교를 둘러보러 한 번 왔었던 길이다. 걸어서 등하교를 할 수 있다면 더 좋지만, 집에서 출발해 차로 5분 정도면 갈 수 있어서 부담이 되는 거리는 아니다. 집에 올 때는 종종 걸어서 올 수도 있을 것 같다. 교문 앞에 교장 선생님을 비롯한 여러 선생님들이 나와 아이들에게 인사를 했다. 그동안 입학 관련해 안내를 해주었던 직원 분이 우리를 반갑게 맞아주었다. 간단한 안내를 들은 후에 아이들을 각자의 교실로 보냈다.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뒤돌아 걸어가는 모습에 마음이 짠했다.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는 교실에서 첫날을 어떻게 보내게 될까. 

아이들 뒷모습이 사라질 때까지 한참을 서 있었다.

처음 학교에 간 아이들에 대한 생각도 잠시, 하교 시간에 맞춰 다시 데리러 가기 전까지 무빙세일로 받기로 한 침대와 가구들을 서둘러 옮겨야 했다. 연수를 떠나기 전, 집과 살림살이는 연수를 끝내고 돌아가는 분에게 물려받는 것이 가장 편하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하지만 조건이 맞는 분을 찾기 어려웠고, 결국 살림살이만 무빙세일을 통해 구하기로 했다. SDSARAM 게시판을 통해 마침 우리에게 적당한 침대와 식탁, 소파 등을 한꺼번에 판매하는 C 선생님과 연락이 되었다. 살림살이를 받는 날짜가 입국 2주 뒤였기 때문에 아파트 입주 후에도 일주일은 거실에 이불과 침낭을 깔고 자야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1-2월에는 연수를 시작하고 끝내는 이들이 많아서 우리와 더 일정이 맞는 분을 천천히 찾아도 되었겠지만, 당시에는 마음이 급해 좀 일찍 거래 약속을 한 것 같다. 결과적으론 깨끗하고 상태 좋은 물품들이어서 만족할 수 있었지만.
세 개의 침대와 소파, 식탁과 의자를 옮기려면 트럭이 필요했다. 처음 계획은 한인 이사 업체를 이용하는 것이었지만 살림을 받아와야 하는 날엔 예약이 불가능했다. 이 업체의 요금은 3시간 기본에 330불이었는데, 다른 현지 업체들은 가격이 훨씬 비쌌다. 이사 업체를 알아보다가 미국은 트럭만 빌려서 하는 셀프 이사가 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유홀 U-Haul 트럭은 웹페이지를 통해 쉽게 예약할 수 있었고 가격도 저렴했다. A 아파트로 집 주소가 정해진 다음 유홀 웹페이지에서 트럭과 함께 무빙 헬퍼 서비스를 함께 예약했다. 헬퍼 서비스는 유홀에서 중개를 하는 형식이다. 짐을 옮기기 전날 배정된 헬퍼로부터 일정 확인 이메일을 받았다.
당일 아침, 집에서 가장 가까운 유홀 지점을 방문했다. 미리 웹사이트를 통해 인적사항과 국제운전면허증 등을 올리고 체크인을 해두어서 금새 트럭 운전석에 오를 수 있었다. 트럭 운전은 처음이었지만 생각보다 어렵진 않았다. 출발 전에 사이드 브레이크를 풀지 못해 알람이 울리긴 했지만. 살림을 받기로 한 집까지 트럭을 운전해 두 명의 헬퍼를 만나고, 짐을 싣고 다시 A 아파트로 돌아와 모두 내리기까지 세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헬퍼 중 한 분은 대학생처럼 앳된 외모의 백인 청년이었는데, 호리호리한 체형에도 가구를 옮기는 솜씨가 좋았다. 가구와 물건들 상태가 모두 깔끔해 마음에 들었다. 가구를 옮기는 동안 살림을 넘겨주신 C 선생님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목록에 없던 자잘한 물건과 주방 물품, 양념들까지도 꼼꼼하게 박스에 넣어 챙겨주셨고, 감사하게도 아이가 입을만한 옷까지 함께 받을 수 있었다. 트럭 운전도, 타국에서의 이사도 처음이었지만 무사히 잘 마무리 되었다는 생각에 트럭을 다시 반납하고 돌아오는 길이 즐거웠다.

세 시간 동안 이사를 책임져준 트럭



2021년 2월 12일 금요일

연수일기 11. 두 번째 맞는 주말, 코스트코 회원 가입

2월 6일 토요일. 14일째 날. 입국해 두 번째 맞는 주말이다. 

코스트코 회원 가입을 꼭 해야 할까? 몇 년 전 한국에서도 회원 가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막상 매장엔 딱 한 번 가고 말았다. 식료품이든 생활용품이든 모두가 대용량이라 우리 가족 생활 패턴엔 맞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런데 미국에 연수 온 이들은 이구동성으로 코스트코 회원 가입을 권한다. (심지어 인계장에도 나오는 이야기이다.) 일 년에 60불을 내는 골드 회원이 아니라 120불을 내고 2% 리워드를 받을 수 있는 이그제큐티브 회원으로 가입하는 것이 결국 이득이라는 이야기도 많았다. 소고기가 싸고 퀄리티가 워낙 좋아서 고기만 사먹어도 이득이란 후기도 흔히 들을 수 있었다. 그렇다고 다른 마트의 고기 질이 떨어지는 건 아니다. 개인적으론 이곳에 와서 며칠간 먹었던 랄프스와 트레이더 조의 고기도 훌륭했다. 회원 가입을 권하는 이들은 객관적이고 논리적인 시각을 잃고 스스로의 경험에 기인한 자기 위안에 빠진 것 아닐까. 쓸데없이 심각하게 고민했던 문제였다. 회원 가입을 할까 말까 망설이길 수차례, 결국 이날 오전에 가입하고 말았다. 그것도 골드 회원을 생각했다가 가입 창구의 직원 설득에 홀랑 넘어가 이그제큐티브 회원으로. 앞으로 고기는 무조건 코스트코에서 사먹어야 할 것 같다. 아, 물론 들었던 바와 같이 맛있긴 했다. 

무빙세일로 받기로 한 TV는 32인치였다. 아무래도 더 큰 TV가 필요할 것 같아 중고 장터를 주시하고 있었는데, 마침 한국에서 가져온 47인치 LG TV를 무료로 준다는 글이 막 올라와 눈에 띄었다. 이런 물품은 타이밍의 싸움이다. 바로 연락해 받아오기로 했다. SDSARAM 게시판을 샌디에고 당근마켓이라고도 부르던데, 이곳에서 거래되는 물품들은 참으로 많고 다양하다. 갓 입국한 이들에게 유용한 탁자와 의자 같은 물품들은 올라오기가 무섭게 팔리곤 한다. TV도 그런 물품 중의 하나였다. 연식이 오래되었고 요즘 유행하는 스마트TV도 아니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애플TV를 연결하면 굳이 케이블 TV 신청은 필요 없을 것이다. 변압기를 추가로 사야 했지만 역시 중고로 10불 정도면 얻을 수 있기 때문에 문제될 것이 없었다. 

무료로 가져온 TV에 한국에서 가져온 닌텐도 스위치를 연결해 아이들과 수퍼마리오 오딧세이를 했다. 모든 걸 갖추고 시작할 수 있다면 좋겠지만, 시간이 걸리고 불편하더라도 필요한 살림을 하나씩 모으는 재미도 쏠쏠하다. 


2월 7일 일요일. 15일째 날. 오전에 미션베이 공원을 산책했다. 휴일 오전이라 그런지 운동을 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해변을 따라 미션베이 공원을 포함해 세 개의 공원이 이어져 있고 그 길이만 해도 2.5마일 가까이 된다. 미국의 다른 도시들도 그렇겠지만 어디서든 가까운 공원을 갈 수 있다는 건 이곳 생활에서 큰 장점인 것 같다. 이 공원에서 조금 더 가면 샌디에고 관광의 필수 코스인 씨월드에 갈 수 있다. 지난 주말 샌디에고 동물원에 이어서 이번 주말엔 씨월드도 재개장을 한다고 들었는데, 조만간 가보게 될 것이다. 공원 산책 후에 UCSD 캠퍼스에 잠깐 들렀다. 캠퍼스 내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이곳 주차 시스템을 잘 알지 못해 오래 머물진 못했다. 

리버티 스테이션의 스톤 브루잉 Stone Brewing에서 점심을 먹었다. 샌디에고에도 브루어리가 많고 그만큼 다양한 로컬 맥주가 있다고 들었다. 1996년에 오픈한 스톤 브루잉은 미국에서 아홉 번째로 큰 양조장이라고 한다. 브루어리는 대개 야외 테이블을 운영하고 있어서 지금과 같은 거리두기 상황에서도 어렵지 않게 식사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는데, 생각과 같았다. 레스토랑의 음식 가격이 워낙 비싸서, 비교적 저렴한 가격에 식사를 하기엔 브루어리도 괜찮은 것 같다. 훌륭한 크래프트 맥주와 함께 할 수 있으니 금상첨화.

집에 돌아와 아이들과 배드민턴을 쳤다. 라켓과 공은 아마존에서 주문했다. 이사 후 일주일간 아마존을 통해 받은 택배가 몇 개인지 모르겠다. 아마존 프라임 가입은 코스트코와 더불어 필수라고 들었는데, 역시 족보를 충실히 따라가고 있는 요즘이다.  

미션베이 공원